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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19)화 (19/111)

#19

청난은 지난밤 일이 신경 쓰이는 탓에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가까스로 쪽잠만 겨우 잤고, 이른 아침이 되자마자 문을 박차고 나섰다. 청난은 즉시 마을에서 가장 거대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의욕에는 없는 체력을 만드는 힘은 없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가슴 아래가 조여드는 것처럼 괴로웠다. 청난은 서둘러 나오면서 아낀 시간만큼을 그 자리에서 숨을 헐떡이는 데에 써야 했다. 거기에 잠이 부족한 탓인 건지 정신이 점차 몽롱해지기까지 하였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청난은 숨을 헐떡이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가 한 걸음을 걷자 흙길이었고, 또 한 걸음을 걷자 산길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한 걸음을 걷자, 그는 자신이 어디를 걷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아?”

청난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정말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사방이 처음 보는 장소였는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목을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기이하게도 있어야 할 게 없었다!

대체 강렬한 해는 어디로 퇴청한 걸까. 청난의 사고로는 도저히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양아버지 청운이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길을 잃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여기에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찾아가야지.’

그렇게 청난은 무작정 걸어 보기로 하였다.

나무가 보였고, 강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풍경 사이로 얼핏 보이는 것은, 황성에나 있을 법한 고급스러운 건축물이었다.

“우와…….”

청난은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려 감탄을 내뱉었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호화로웠으며, 그 모든 곳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그럼에도 기이하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홀린 듯 향하는 발걸음은 몹시 가벼웠다. 만약 구름 위를 걷는다면 이런 기분이리라.

그렇게 걸으니 돌로 조각된 다리가 나타났다. 그 아래에 흐르는 강은 불과 세 걸음으로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아마 깊지도 않을 테지. 그러니 이 다리는 그다지 쓸모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다리의 반대편에는 한 남성이 서 있었다. 그는 간소한 복장을 하였는데, 그럼에도 기품이 엿보였다. 청난은 그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짐작했다.

‘모르는 어른은 따라가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걸. 헤매는 것보단 모르는 어른을 따라가 사탕을 먹는 게 차라리 낫지.’

청난은 또 한 번 자신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과한 후 성큼 돌계단에 발을 올렸다.

청난이 다가오자 남성은 환영의 뜻으로 양팔을 벌렸다. 하지만 청난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오, 착한 아이네? ‘낯선 이는 경계해라.’ 어른들이 항상 하는 얘기지.”

그는 마치 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청난은 그 또한 어른이라고 지적하는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청난은 양손을 소매에 숨기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랬더라면 다가가는 게 아니라, 멀리 달아나지 않았을까요?”

“네가 똑똑한 꼬마란 증거지. 걔가 널 괜히 아낀 건 아닌 모양이야.”

남성은 자신의 품을 강요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였다. 그는 말끝을 늘이며 말하였는데, 그것이 평소의 말투인지 청난을 놀리고 있는 것인지는 구분하기 힘들었다.

‘걔?’

그보다는 마치 공통의 지기가 있다는 것 같은 말이 신경 쓰였다.

“저를 데려온 게 당신인가요?”

“응. 내 오랜 친우가 아끼는 인간이 누구인가 궁금했거든. 하지만 이렇게 어린아이일 줄은 몰랐어.”

그가 무릎을 땅에 대고 앉으며 청난과 눈높이를 맞추어 주었다. 청난은 조금도 표정을 바꾸지 않고 말했다.

“진군, 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 당신의 오랜 친구라면 그분 또한 선인이실 텐데, 제게는 그런 고귀한 친구가 없습니다.”

청난은 이자를 본 순간 이곳이 신선들의 땅, 선계라 확신했다.

이 남성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영기가 인간의 것이라기엔 몹시 강대하였고, 더구나 며칠 전 불개미의 동굴에서 만났던 그 선인과 유사하기까지 했다. 차이가 있다면, 불개미의 동굴에서 보았던 그는 맑고 청아한 폭포수 같았다면, 이 사내의 것은 강렬하게 불타는 재해처럼 느껴진다는 것 정도일까.

이 정도 되는 기운이라면 주변의 대지가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저자가 밟고 있는 풀은 여전히 파릇파릇하지 않은가. 청난은 틀림없이 저것이 자신보다도 영기가 충만한 생명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이곳이 선계가 아닐 수 있겠는가.

청난은 마지막 확신을 위해 넌지시 그를 떠보았다.

“선인에게 아껴지기는커녕 선사님 외의 다른 존재는 감히 뵙지도 못했어요.”

“어제 하루 종일 함께 보냈으면서. 왜? 백매가 나한테도 숨기래?”

“……!”

그는 원하던 대로 청난의 그물에 걸려 주었고, 그의 예상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말을 첨가하기까지 하였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청난은 그의 말을 곧장 이해할 수 없었다. ‘백매’라는 두 글자는 마치 하얀 물감 같아서, 단숨에 청난의 머릿속을 백지로 만들어 버렸다.

청난이 알기로 ‘백매’라는 이름을 가진 신선은 삼백 년 전 비승한 신선뿐이었다.

수야각의 소각주이자, 자신의 제자였던 화백매.

그리고 이 선인은 자신이 그와 전날을 함께 보냈다고 얘기했고, 청난이 어제 하루 종일을 함께한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청난의 머릿속에는 지난 날 따뜻한 물색이라 말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한, 그는 청난의 식습관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어째서 내게 잘하였는지, 또한, 자신은 어째서 그를 아낄 수밖에 없었는지 그 까닭을, 지금 알게 되었다.

“백매…….”

“그가 내 얘기는 안 했어? 내가 가장 친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날 이리도 모른 체하다니, 서운하네.”

“……진영이 백매라고?”

청난의 눈동자에 막연함이 감돌자 싱글싱글 웃던 남성은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몰랐었나 보네……. 내가 실수했어. 백매가 들으면 또 십 년은 알은체도 안 할 텐데… 잊어 줄래?”

그의 드세던 기운이 순식간에 꺾이며 눈썹의 앞머리가 휘어 올라갔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올라간 입꼬리 탓에 표정이 다소 기이해 보였다.

그 표정은 꽤나 낯익었다.

청난은 조금 전의 충격조차 다 가시지 않은 탓에 이 ‘설마’를 모른 체 넘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성격이었더라면, 그는 수야각주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청난은 조심스럽게 말보를 떼었다.

“실례지만, 선인께서는 신명이 어찌 되십니까?”

“연꽃의 연, 그리고 불의 화를 써서 연화.”

“아.”

그는 울적한 와중에도 청난의 질문에 착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이번에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덕에 청난은 조금 전보단 충격이 덜했다.

연화. 아마도 성은 ‘한’일 것이다. 자신의 성을 말하지 않은 것은 그가 집안에서 그리 좋은 취급은 받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한연화(漢蓮花).

청난은 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전생과 동 시간대를 살았던, 백매와 비슷한 시기에 우화등선한 또 한 명의 선인이 바로 그였으니까.

그는 청난을 매우 잘 따랐었고, 수야각에도 자주 찾아왔었다. 백매보다 조금 더 어렸는데, 그보다는 조금 더 늦게 비승을 하여 인간으로서 머문 기간이 조금 더 길었다. 그 탓에 전생에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장성한 모습이라 청난이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백매는 작정하고 숨기 위해 술법을 걸었을 테니 내가 알아보지 못했던 건 당연하고.’

그럼에도 청난은 그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에 마음이 불편했다.

‘서운해하진 않겠지?’

왜 바로 정체를 말하지 않은 걸까. 청난은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 하얀 백지 위에 몇 가지 생각이 정리되던 때에 느닷없이 팔에 통증이 찾아왔다.

“으윽!”

연화가 청난의 팔을 당긴 것이었다. 청난의 신음에 연화는 곧바로 손을 놓아 주었지만 미안한 기색은 없었다. 청난은 자신의 오른팔이 아직 달려 있는지 힐끔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또 다행스럽게도 오른팔은 잘 붙어 있었다.

청난은 그가 자신이 돌보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화를 낼 수도 서먹서먹하게 굴 수도 없었다. 그는 달래듯이 차근차근 물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 거죠?”

“사과의 의미로 선계를 구경시켜 주려고. 대신 백매에겐 비밀로 해 줄래?”

“보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늘 내려가면, 다신 못 올 텐데?”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사실, 보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눈앞에 있으면 괜히 미련이 생길 테니까.

“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확신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우… 우와악! 연화선…!”

연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난의 몸이 허공을 부유했다!

청난이 그의 팔에 안긴 채 버둥거렸지만, 연화는 그런 미세한 진동은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듯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의 성격상, 자신이 몇 마디 더 한다고 순순히 내려놔 줄 것 같진 않았다.

결국 청난은 의미 없는 버둥거림을 포기하고 몸을 축 늘어트렸다.

연화는 양 무릎을 접으며 몸을 낮추더니, 순식간에 바람을 가르며 높게 솟아올랐다. 청난은 엄청난 기백에 신음 소리조차 낼 수 없었고, 그저 그의 옷자락을 꽉 쥐어 잡았다.

순식간에 수 리를 날았고, 그럼에도 선계의 사치스러운 경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연화의 경공은 청난이 전생이 이루었던 것에 비해서는 섬세하지 못하였으나, 그의 영기는 감히 인간과 비할 수 없을 만큼 충만하였다. 그 때문에 평범한 것보다도 못한 청난의 여린 몸으로는 그저 들쳐진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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