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17)화 (17/111)

#17

“음? 지금은 말씀하실 수 없는 건가요?”

“지금은……. 제가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청난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내가 무례했나? 내 수업이 맘에 들지 않은 건가? 난 진 공자가 마음에 드는데……. 그만하자는 말은 아니겠지? 내 나이치고는 굉장히 잘했어. 당연하지, 어느 열 살이 나처럼 말할 수 있겠어?’

청난은 속으로 그에게 들을 만한 말을 백여 개쯤 생각하였다. 하지만 많은 보기 중 정답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지금 바로 듣고 이 불안함을 떨쳐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기한을 못 박았으니 그를 재촉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청난에게는 그의 손을 이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청난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알아본 점소이와 짧은 사담을 나눈 후 자리로 안내되었다. 청난이기 때문에 신경을 쓴 것인지, 식당이 다소 붐볐음에도 그들의 음식은 비교적 일찍 나왔다.

음식 주문은 오로지 진영이 하였다. 청난이 메뉴를 읽어 주면 그중에서 그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가 고른 것들은 전부 청난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더구나 그는 군살이 적은 체형인 것에 비해 많이 먹는지, 주문한 음식의 가짓수만 보면 지금 이 자리에 대여섯 명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청난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종류대로 먹어 볼 수 있었다.

진영은 혼자 식사하는 것이 익숙한지 청난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청난이 눈앞에 음식에 통 집중할 수 없는 것은 진영의 ‘할 말’ 때문이었다.

청난의 입이 오물거리기만 할 뿐 새로운 것을 넣지 않자 진영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입맛에 안 맞으신가요?”

“아, 아니에요. 참 맛있네요. 공자께선 저와 식성이 비슷하신 것 같아요. 전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거든요.”

청난은 마치 숙제를 재촉당한 듯 음식을 하나씩 입에 넣었다.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넘긴 탓에 먹은 것이 고기인지 채소인지도 구분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청난이 열심히 음식을 입에 넣을 동안, 이번엔 진영의 손이 멈췄다.

청난은 그가 준비되지 않은 말을 정리하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는 어린 데다, 사회생활을 한 경험도 많지 않을 테니, 이별을 고한다는 서두를 어떻게 떼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청난은 마지막으로 스승의 도리로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 주기로 하였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보편적이진 않은 편이죠. 나이는 고작 셈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세월이 담겨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오해할 만해요. 더구나 공자께서는 다른 대가 자제분들과도 교류를 하셔야 하니, 저보다 나은 스승을 찾고, 저는 그저 친구로서…….”

“아, 아, 아, 아, 아닙니다!”

진영은 청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그가 말을 끝내는 것을 만류하였다.

다급한 그의 목소리는 음량 조절이 안 된 탓에 식당 내 이목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소리 지른 맹인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고, 그 앞의 꼬마도 어른에게 고함을 들은 것치고는 눈만 끔벅거릴 뿐 담담해 보였다. 구경거리도 없는데 보아서 무얼 하겠는가. 집중된 이목은 빠르게 해산되었다.

진영은 자신들을 향한 눈빛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에야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사… 사…….”

“사?”

청난은 그의 말을 침착하게 기다려 주었다.

“사… 람 된 도리로 어찌 두 스승을 섬기겠나요. 제겐 선생님뿐이에요. 믿어 주세요.”

청난은 이번에도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입을 열면 웃음보가 터질 것 같다.

대체 이 청년에게 이런 고리타분한 사상을 주입한 게 누구란 말인가. 적어도 청난 자신은 아니었다.

청난은 이런 사람을 딱 한 명 알고 있었다. 진청난의 친형인 진주국이었다. 백매를 비롯하여 청난의 제자들에게 각종 고리타분한 사상을 주입하여 ‘사존 수비대’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바가 있었다. 몇 번 그를 말렸었지만, 청난은 제 사람들에겐 약했던 터라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다행이네요. 전 공자랑 지내는 게 좋았거든요. 그럼, 무슨 얘길 하시려는 건가요?”

“그, 그것이…….”

진영은 운만 떼었을 뿐 말을 잇지 않았다. 이 정도가 되자 청난은 긴장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진영은 고개를 숙인 채 청난과 마주 보지 않으려 하기까지 하였다. 청난은 진영의 머리카락을 보며 그의 목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네?”

‘설마 연애 상담이었어? 나한테?’

해고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저에게 연애 상담을 하는 이는 처음이라 다소 얼떨떨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의 그는 수선자였으며, 현생에서는 이제 열 살 된 아이지 않은가. 대체 누가 고작 십 년 산 아이에게 연애 상담을 하겠는가. 그런 식으로 아이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동 학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히 청난의 정신은 몹시 성숙하여 피해를 입은 이가 아무도 없었으니, 청난은 이 보기보다 여린 심성을 가진 제자를 달래 주기로 하였다.

“제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조금 험하게 대하고 말았어요. 저라는 걸 안다면 실망하실까 겁나요.”

아이고 저런. 첫 연애 상담부터 난도가 높았다. 청난은 침착하게 그와의 대화를 이었다.

“그분은 진 공자에 대해 잘 모르는군요?”

“아직은요.”

“그 사람한테 미안한가요?”

“네, 너무 미안해요. 죄송해요. 고작 저 때문에 다치기까지 하셨어요. 그런 취급을 받을 분이 아니신데…….”

진영의 목소리는 쥐구멍에 숨은 것처럼 점점 작아졌다. 청난이 봐 온 진영은 쾌활하였는데, 그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 과거, 문파의 장로들이 사랑을 하는 사람은 돌변해 버린다며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 조금은 이해되려고 했다.

청난은 연애에 소질이 없었지만, 관계를 두루 맺는 데는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 덕에 나름 나쁘지 않은 방안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럼 공자께서 간호해 주세요. 그 사람이 부르면 언제든지 가는 거예요. 느리다 하더라도 말이죠. 불 꺼 달라고 하면 불을 꺼 주세요. 사방에 후후 입바람을 불다 보면 언젠간 촛불을 끌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 다 나으실 때까지 옆에서 돌봐 주세요.”

“절 보기도 싫어하면요? 어떡해야 하죠?”

“음… 몰래라도 해야죠.”

청난은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체하였다. 그러자 건너편의 진영의 표정은 더욱 심란해져 갔다. 청난은 그에겐 직설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공자께는 힘드실 걸 알아요. 그저, 진심을 다하라는 말이었어요. 선의든, 악의든, 모든 행동과 말에는 의도가 표 나기 마련이거든요. 공자께서 그분께 선의를 가진다면, 전해질 거예요. 자신을 향한 선의를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진영의 표정이 보다 밝아졌다. 그럼에도 생각을 아예 떨쳐 내진 못하였는지, 여전히 그의 젓가락질은 느렸다. 하지만 더 이상 청난이 조언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청난은 제 입 안에 음식을 담으면서 동시에 진영의 접시 위에 고기를 몇 점 올려 주었다.

식당을 나오자 진영의 표정은 더욱 나아져 보였다. 적어도 낑낑대는 강아지 같은 모습은 사라졌다. 점심이 지난 시간이라 저잣거리는 더욱 북적였다. 이 시간쯤엔 마을 밖에서 온 객들도 많이 돌아다니는 터라, 마을 해결사라는 칭호만으로는 이 험난한 저잣거리를 건너기 힘들 것 같았다.

청난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최대한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러자 누군가 자신의 팔을 잡아당겼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끌리는 대로 몸이 기울어진 청난은 곧 그의 가슴에 기댔다. 청난은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이 뛰는 심장의 주인이 진영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확실하게 진영이었다.

“아, 이번에도 폐를 끼치네요.”

청난은 뒤늦게 자신의 뒤에서 장성한 남자 셋이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또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 준 것이었다.

“공자께서는 정말 감이 탁월하세요. 어떻게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감이라도 좋아서 다행이에요. 그 덕에 선생님께서 다치지 않으실 수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절 지켜 주는 제자가 있으니, 저는 참 운이 좋은 스승이네요. 제 안전은 걱정 없겠어요.”

청난은 너스레를 떨며 진영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청난은 그새 모래가 묻은 옷자락을 탁탁 털다가, 진영의 옷도 털어 주기 위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그새 또 달라졌을 줄이야. 진영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벌리는가 싶더니 이내 닫았다. 그것을 다섯 번은 반복하고서야 스스로도 포기한 것인지 양 입술을 굳게 닫아 버렸다.

‘내가… 뭘 잘못했나?’

진영은 저잣거리에 나올 때는 산책 나온 강아지 같았고, 그 후에는 돌연 연애 상담을 하더니, 이제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청난은 집에 돌아가면 자신에게 사람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는지 고심해 보기로 하였다.

진영은 먼저 말보를 틀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집까지 가서 어색한 채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청난에게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의 모습이 어리다는 것이었다. 청난은 몇 걸음 안 가 닭꼬치를 팔고 있는 가판대를 찾았다.

“공자, 저기서 주전부리를 팔고 있어요. 저희 가서 먹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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