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15)화 (15/111)

#15

“아…….”

백매는 사존이 이렇게 자신을 두고 갈 것이라곤 생각을 못 했기에 몹시 어리둥절하였다. 그는 팔짱을 끼며 생각했다.

‘기, 기다려? 난 따라가고 싶은데……. 괜찮겠지? 내 꿈이잖아? 하지만, 사존께서… 으음…….’

백매는 짧은 시간 동안의 숱한 고민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진청난을 따라 동굴 안쪽을 향해 오도도 뛰어갔다.

동굴 안쪽은 백매의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갈림길을 지나니 또 갈림길이 나왔고, 그것을 지나자 또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이곳에서 길을 잃는다면 동굴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진청난의 걸음은 거침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길을 가는 것처럼. 아무런 조사 없이 산길을 올랐던 때처럼 말이다.

백매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기척을 없애거나, 발소리를 줄이지 않았으니 그가 자신이 따라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은 어린 제자를 탓하지 않았다.

‘대체 어딜 가시는 거지?’

백매는 이 ‘자신이 바라는 사존’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더는 이곳에서의 볼일은 없었으니, 남은 시간 동안 자신과 식사를 하거나, 경치를 즐기면 안 되는 건가?

그렇게 속으로 의문과 아쉬움을 토로하던 차에 돌연 누군가의 발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턱. 턱. 그것은 백매와 진청난의 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마치 무거운 것을 내려놓는 듯한 묵직한 발소리는 인간의 것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것의 소리가 점차 멀어지자 진청난은 걸음에 속력을 냈다.

“멈춰!”

그는 불새를 쫓던 때보다 더욱더 빠르게 달려 나갔다.

신선 화백매 또한 진청난 못지않은 보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절 자신에 관한 그의 관념이 강고한 탓인지, 아무리 영기를 운용하여도 이 시절의 자신을 뛰어넘는 행동은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그는 그저 젊은 소년 때의 혈기왕성하고 강인한 체력과 엉성한 보법으로 열심히 뜀박질을 할 뿐이었고, 당연히 진청난의 속도를 쫓아갈 수 없었다.

진청난의 보법이 그만큼 훌륭하건만 어찌 된 일인지 상대와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아 무거운 발소리는 멈추지 않을 듯싶었다.

그러다 문득, 무거운 발소리가 끊겼다.

그것이 멈추어 선 것이다. 백매가 남은 영기를 끌어모아 속도에 박차를 가하자 곧 진청난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

“네 모습을 보이거라!”

진청난이 그것을 향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그리고 동시에 괴로움이 담겨 있었다. 백매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무엇에 화났고, 무엇에 괴로워하시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자신이 우매한 탓이겠지.

다만 그가 힘들어한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고, 그것은 백매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행복해야 했다. 적어도 제 꿈에서만큼은 그래야 했다. 그마저도 못 한다면 이 얼마나 한심한 제자란 말인가. 당신을 행복하게 할 능력이 없다면, 하다못해 내 행복이라도 베어 당신의 슬픔을 끊어 내리라. 차라리 그게 나았다.

백매는 천천히 그의 곁에 다가가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사존, 괴로워 마세요. 이건… 이건 단순한 꿈에 불과해요. 악몽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그럴 가치가 없어요. 괴로워하지 마세요.”

백매의 떨리는 목소리가 청난을 달래 주었다. 청난의 구겨졌던 표정이 풀어지며 백매를 바라보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단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끝은 맺어 보자꾸나.”

백매의 예상과 달리 진청난의 반응은 덤덤하였다. 그의 표정에 구김은 없었으나 여전히 아파 보였다.

‘내 사존은 왜 이리도 슬퍼하시는 거지. 역시 내 탓인가?’

백매의 손이 가늘게 떨려 왔다. 그러나 진청난은 마침 시선을 돌린 바람에 그런 백매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진청난의 곧게 선 눈빛의 끝을 따라가니, 그곳에는 한 인영이 보였다. 그것의 뒤로는 무너진 돌무더기가 보였다. 진청난이 그를 향해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자 백매가 그의 옆에 붙어 따라 걸었다.

동굴은 어두웠으나, 시야는 어둠에 익숙해져 무언가를 식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백매와 진청난이 발걸음을 옮길수록 상대의 실루엣이 점점 드러났다. 하지만 불과 세 걸음 후, 그것을 제대로 바라본 백매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발끝에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빛이 닿은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즉,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까만 진흙으로 사람의 윤곽을 빚어 놓은 것만 같았다.

백매가 진청난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이것을 예상했던 것인지 표정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그가 얕게 한숨을 내쉬자 그것은 모래성이 무너지듯 모래자갈이 되어 흙바닥 위에 고르게 퍼졌다.

“사존, 저것은……?”

“내 한계다. 내가 저것의 정체를 끝내 밝히지 못한 탓이겠지.”

청난은 지나온 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백매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 또 다른 길목으로 들어갔다.

“그날, 형님께서 쓰러진 주 사질을 안고 의원에 갔고, 나는 남아서 잔재를 살폈었다.”

진청난은 차근히 말을 이었다. 얼핏 들으면 막연히 자신을 쫓아온 어린 제자에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았지만, 그의 어투는 마치 자책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다 이 흔적을 발견했어.”

진청난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앞에는 지금까지 걸었던 동굴과 달리 탁 트인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백매는 그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을 이루고 있는 것들 때문에 놀라고 말았다.

그 안에는 진법. 즉, 수야각의 술법을 연구한 흔적들로 가득했다.

진청난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범인은 이미 떠난 후였다. 그 후 그것의 정체를 알아내려 하였지만 결국 알 수 없었어. 그러니, 꿈에서도 알지 못할 수밖에.”

진청난이 말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그의 표정은 더욱 울적해져 갔다. 그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고, 백매는 그의 눈물을 닦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탓에 대화의 기이함을 한 박자 늦게 눈치채고야 말았다.

“스승이 뜻 모를 소리만 했구나. 너는 잊어도 된단다.”

진청난은 다시 동굴 바깥을 향해 걸어갔다. 백매는 그저 눈으로만 그를 좇았다. 그의 스승은, 마치 자신이 꿈을 꾸는 주체이며 백매는 꿈속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꿈속의 인물이 이렇게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던가? 아니, 그보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건 맞는 건가?’

그러다 홀연히 한 가지, 이제껏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던 가설이 떠올랐다.

만약, 만약에 사존께서…….

“사……!”

그 순간에 그의 시야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땅이 울리는 게 아니었다. 발도, 손도 모든 것이 가만히 있건만, 시야만이 흔들렸다. 마치 잔잔한 물에 파동이 생긴 것만 같았다. 얼음이 깨지듯 균열이 일어나더니 곧, 파사사- 여러 조각으로 깨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광경을 보는 것은 백매만이 아니었는지 진청난의 눈동자도 사방을 헤매었다. 그러다 허공을 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곧 잠에서 깨려나 보구나. 오랫동안 전생의 꿈에 휘둘리기만 했지. 이번엔 자각몽이기에 무언가 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오랜만에 만나 즐거웠다. 너와 더 있고 싶지만 시간이 다 된 모양이야. 더욱이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

진청난은 한 글자라도 더 말하기 위해 쉼 없이 말을 이었다. 또 그러면서도 그의 말투는 다급하지 않아 마치 차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스승은 요즘 한 아이에게 글을 가르치며 지낸단다. 며칠 되지 않았지. 그 아이는 너랑 꽤 닮았어. 너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진청난의 말이 잠시 끊겼다. 그는 어찌 말해야 할지 몰라 먹먹한 것 같았다.

“참, 이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을 주마. 이건 절대로 악몽이 될 수 없어. 왜냐면 내가 널…….”

진청난의 입술은 여전히 움직였지만,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백매는 이 꿈속에서 그와 작별해야 하는 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그에겐 생각이나 말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서둘러 자신의 감정을 소리로 내질렀다.

“사존! 전, 전 절대로 사존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요!”

진청난이 백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곧 모든 시야가 깨졌다. 잔해조차 남지 않은 어둠이 그의 주변을 가득 메꾸더니 혼이 사라지는 느낌이 닥쳐왔다.

“……!”

백매가 눈을 비비며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강렬한 햇빛이 그의 눈을 밝게 비추었다. 그는 고개를 거의 흔들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매화 향은 나긋했으며, 바람에 실려 온 꽃잎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그의 등은 여전히 두꺼운 나무 기둥이 받쳐 주었으며, 그의 무릎 위에는 어린 소년이 쓰러져 있었다.

소년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백매가 잠들기 전에 술법을 걸었던 화로에서 피어난 연기가 소년의 몸 주변을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백매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전에 없던 그리움, 그리고 벅차오름이 묻어났다. 그는 웃고 싶기도 울고 싶기도 하였다. 이 복잡한 마음은 단 한 가지의 모습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소년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감격하고 기뻐하는 것뿐이었다.

“내 술법은 잘못된 게 아니었어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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