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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14)화 (14/111)

#14

‘쓰다듬어 주시면 좋겠다. 이건 내 꿈이니 해 주실지도 몰라. 원래 자주 쓰다듬으시기도 하셨고. 음, 너무 어리광인가. 하지만 지금은 열여섯에 불과한걸.’

백매가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그 염원이 이루어졌다. 진청난의 손이 백매의 머리 위에 올라온 것이다.

“아가, 무얼 그리 보느냐?”

“그것이……. 사존의 손을 보고 있었습니다.”

“녀석, 누가 보면 평생 한 번을 안 쓰다듬어 준 줄 알겠구나.”

진청난은 부드럽게 그의 뒤통수를 어루만져 주었다. 백매는 부디 이 꿈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지길 바랐으며, 동시에 이 감촉을 기억하기 위해 그의 손길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한번 터진 말문은 계속 이어졌다. 이 시기의 그들은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누울 때까지 함께했었다. 그런데도 백매뿐만 아니라 진청난 또한 서로를 오랫동안 보지 못한 듯 다양한 화제로 옮겨 가며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그들은 한 동굴 앞에 도착했다. 그 안쪽에서는 강한 화기가 느껴져, 백매는 이곳이 그 녀석의 소굴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동굴로 향하던 청난의 발걸음이 돌연 멈추었다.

“사존?”

뒤를 돌아 백매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온화함과 더불어 진지함이 엿보였다. 백매는 동굴 속에서 느껴지는 화기보다 그의 촉촉한 입술이 벌어지는 것이 더 긴장되었다.

“백매야, 너는 신선이 되고 싶으냐?”

그리고 듣게 된 것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백매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였다. 고민하는 게 아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것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백매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신선이 되는 것만을 목표로 한 적은 없었다.

수야각에 입문하였을 땐, 그저 살아갈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척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신선이 되길 원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목표가 아닌 단순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 시절에는 사존께서 분명히 신선이 되실 것이라 생각하였었기에. 그의 옆에 있기 위해서 신선이 되고 싶었다.

때문에 그가 없는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이 시기는 분명 신선이 되려고 했던 시기였으니, 그에 맞는 대답을 꺼내었다.

“……그럼요, 전 수선자니까요.”

“그래, 내가 실없는 소리를 했구나.”

진청난은 짧게 웃음 짓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하였다. 이상한 것 없는 대화였건만, 그들의 사이에는 어색함이 흘렀다.

백매는 필요할 때면 사회성을 뽐낼 수 있었는데, 진청난의 앞에서는 그 재주가 소용없게 돼 버렸다. 아니면 최근 삼백 년 동안 닳아 없어져 버린 것일지도. 어쨌든 지금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고, 마침 자신은 거대한 쥐구멍처럼 생긴 동굴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백매는 진청난을 가로질러 먼저 들어가려 하였으나, 진청난의 발이 더 빨랐다.

결국 백매는 그와 불과 세 걸음의 차이를 좁히지도 넓히지도 못한 채 좁은 동굴 속을 저벅저벅 걷게 되었다.

백매는 속으로 대략 여든 가지 정도의 문장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중에서 이 어색함을 해결해 줄 것만 같은 기발한 문장은 없었다. 진청난은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인 건지 얼핏 보이는 얼굴 근육이 축 처져 있었기에 그를 보는 백매의 마음 또한 축 처졌다.

그 순간, 백매는 동굴의 안쪽에서부터 자신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강렬한 열기를 느꼈다.

“사, 사존!”

백매가 그를 부르기도 전에 그것을 발견한 진청난이 백매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그는 마치 비를 피하듯 넓은 소매를 높게 들어 백매의 머리 위를 막아 주었다.

그가 손을 내리자 시야가 트였다. 동굴 안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진청난은 여전히 백매를 보호하듯 한 걸음 앞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그리 심각해 보이진 않았으나, 늘어져 있지도 않았다.

‘사존이시라면 이것이 별거 아니란 건 이미 눈치채셨을 텐데. 그럼에도 방심하지 않으시다니, 역시 대단해! 굉장해!’

백매가 감탄을 잇는 동안에도 진청난의 손짓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끝에 맺힌 영기는 점점 형태를 갖추더니 새의 모습이 되었다. 그것은 백매가 꼬마 청난에게 술법을 쓰기 위해 만들었던 새보다 더 웅장하고 성숙한 모양새였다. 그 둘을 한데 모아 둔다면 어미와 자식으로 오해할 정도로 닮기도 했다.

그 새는 손끝에서 날아올라 사냥감을 찾는 맹수의 기세로 동굴 안을 날아다녔다. 꼼꼼하게 순찰을 마친 그것은 제 주인의 귓가에서 지저귐으로써 제 할 일을 마치곤 이내 형태가 무너지며 사라졌다. 진청난은 흡족하게 웃었다.

“백매야.”

“네, 사존.”

“너는 어디에 있을 것 같으냐?”

주변을 살피던 그의 눈동자가 살짝 아래로 내려와 백매를 바라보았다. 그의 물음은 조언을 구하는 것이 아닌, 스승으로서 의무를 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백매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제자가 생각하기엔 저쪽입니다.”

백매가 검지를 들고는 자신의 등 뒤, 즉 동굴 밖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진청난의 눈매가 둥글게 휘어졌다.

“좋아, 정답이다. 감이 좋아졌구나.”

진청난은 백매에게 바짝 붙었다. 조금 전 그의 머리 위를 막아 주었던 손은 이젠 그의 허리에 닿았다.

백매는 별것 아닌 요마에게 긴장씩이나 해 줄 만큼 사람이 좋지 못하였다. 게다가 연모하는 분의 손길이 닿자 더더욱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그저 얼굴을 붉히기만 하였다. 이때의 백매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하여 진청난보다 작았었다. 그 탓에 그가 허리에 두른 손을 당기자 백매는 그에게 바짝 기대고 말았다.

“이 스승을 꼭 잡거라.”

“예… 네!”

진청난은 백매를 안은 채 앞으로 성큼 나아갔다. 그 속도는 매우 빨랐으나, 그의 몸짓은 부드러웠다. 흰 복식의 소매가 허공에서 나부끼니, 마치 여러 마리의 학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의 날렵한 발걸음은 호숫가 앞에 가서야 멈추었다. 그 호수는 거대하다 말할 수 없었으나, 그리 작지도 않았다.

진청난과 백매가 쫓던 존재는 호수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것의 전체적인 형상은 새를 닮았으나, 전신이 불에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허공에 날갯짓을 하며 잔불을 날리는 모습은 마치 발이 땅에 닿은 인간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진청난의 앞에서는 소용없는 짓이다.

“다녀올 테니 잘 보고 있거라.”

진청난은 백매를 두른 팔을 풀었다. 그러고는 거침없이 나아가 호수 위로 성큼 발걸음을 내디뎠다.

만약 다른 이가 그렇게 수면 위에 몸을 맡긴다면 순식간에 온몸이 흠뻑 젖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진청난의 몸에는 물 한 방울조차 튀지 않았다. 그의 발끝은 수면에조차 닿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그는 허공을 밟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서두르지 않고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조금 전 불새의 비웃음을 갚아 주는 것만 같았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불새의 날갯짓이 불규칙해졌다.

허공답보(虛空踏步).

말 그대로 허공을 밟는 경공을 의미하며, 이 경지에 도달한 자는 두 손 안에 꼽을 수 있었다. 그러한 것을 진청난은 불과 17세에 해내어 수선계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그에게 밟을 수 있는 땅의 유무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를 좌지우지하는 환경적 요소는 다른 것에 있었다.

“얘야, 자리를 잘못 잡았구나.”

그의 어투는 마치 우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 다정했다. 하지만 그의 손길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주변을 가득히 채운 호수의 물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끌어 올려지는 것처럼 수직으로 상승하며 거대한 물기둥을 형성하였다.

애초에 그 불새의 수준은 진청난에게 감히 견줄 수 없기도 했거니와, 그를 호수 위로 유인한 것은 제 팔에 맹독을 주입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진청난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손짓만 하였는데, 그에 비해 불새는 자신을 따라오는 물기둥을 피하기 바빠 자신을 가둘 진법이 완성되어 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였다.

‘굳이 저 안쪽으로 걸어갈 필요도 없으셨을 텐데. 꽤 화나셨나 보네. 그 정도로 주민들의 피해가 컸었던가.’

진청난의 손속이 과히 매서웠다. 진청난은 두드러지게 분노를 표현하는 성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악한 존재에게는 예외였다. 어쨌든 그도 사람이고, ‘그들’은 저마다 감정을 부을 곳이 필요하지 않은가.

진청난의 손짓에 따라 물기둥이 불새를 쫓는 동시에 진법이 그려졌다. 마치 거대한 붓이 호수의 물을 찍어 허공에 선을 그은 것만 같았다. 당하는 불새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꽤 장관이었다.

진청난이 다시금 손짓하니 호수 안쪽에서부터 주먹만 한 크기의 자갈이 튀어나와 그의 손 위에 안착하였다. 자갈을 완성된 진 가운데에 던지자 그가 펼쳐 놓은 술법들이 밧줄처럼 불새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피에에에엑!

불새가 몸부림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곧 그것은 비명 소리와 함께 자갈 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말았다.

진청난이 보여 준 경지는 능히 뛰어난 것이었으나, 그에 비해 상대가 너무 모자란 탓에 전투에 걸린 시간은 불과 일각조차 되지 않았다.

진청난은 허공에서 내려와 흙을 밟으며 백매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그의 앞에 멈추는 대신 불새가 깃든 자갈을 그의 손 위에 올려 주기만 했을 뿐, 그를 스쳐 지나가 버렸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네…, 네?”

그는 무엇이 그리도 급한 것인지 백매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았다. 백매가 부르려 하였을 땐 그는 이미 동굴 안쪽으로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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