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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13)화 (13/111)

#13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누군가 내게 손을 쓴 건가? 설마 그 꼬마가?’

백매는 이번에도 무엇 하나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변화가 사존, 진청난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만은 알았다.

그는 애초에 이 꿈속에서라도 사존의 곁을 지키겠다고 생각하였는데, 알아내야 할 것까지 생기자 더더욱 그에게서 떨어질 이유가 없었다.

“사존,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음, 네가 굳이? 너도 알겠지만, 이 일은 굳이 너까지 나설 필요가 없다.”

“압니다. 하지만 사존께서 가시는 길에 제가 나서면 안 될 일이 있었나요?”

자신의 말을 곧장 따라 배운 백매의 대답에 청난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들고 있던 작은 주머니를 그에게 건네었다.

“하하하, 없지. 너는 내 사랑스러운 제자가 아니더냐. 가는 길에 담소를 나눌 상대가 생겼으니 지루할 일은 없겠구나.”

“백매가 사존을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백매는 그에게 포권을 취하며 고아한 사존의 예의 바른 제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리고 이내 살포시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우선 이곳을 몰래 빠져나가는 것부터 할까요?”

“역시 너만큼 날 잘 아는 아이는 없어.”

그들이 수야각을 벗어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초하가 즉시 자신의 사존에게 가 이 사실을 알렸으나, 그때는 이미 두 사람이 멀리 벗어난 후였다.

“사존, 이쪽입니다. 저 식당이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합니다.”

“아가, 오늘따라 신이 나 보이는구나.”

“그… 오래간만에 나와 그렇습니다.”

진청난의 말대로 신이 나 앞서 나가던 백매는 뒤늦게 조급했던 발걸음을 진정시켰다.

“혼을 낸 게 아니니 더 놀아도 된다. 나도 오늘은 식사를 하고 싶구나.”

“네! 그럼, 제자가 안내하겠습니다.”

진청난이 그를 달래었지만, 백매는 조금 전 어린아이 같은 모습은 자제하고자 마음먹은 차였기에 아까처럼 뛰는 것 대신 차분히 사존의 손을 잡아 이끌기만 하였다.

‘너무 들뜨고 말았어. 사존께서 아시면 내가 나이를 허투루 먹었다고 생각하실 거야.’

지금의 모습은 열여섯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그는 삼백 년은 족히 산 신선이 아닌가. 백매에게 뒤늦게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진청난과 백매는 사흘도 걸리지 않아 산귀 소굴이 있는 곳의 인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청난은 벽곡 수련을 끝냈기에 먹지 않아도 되었으며, 수야각에서 나오는 그 맛없는 풀떼기들도 가리지 않고 곧잘 먹었다. 하지만 백매는 알고 있었다. 사존께선 풀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풀‘만’ 먹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풀은 고기와 함께 먹을 때야말로 최고의 맛을 낸다. 그것이 그의 음식 철학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의를 중히 여기는 가문에서 태어나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이런 점잖지 못한 말은 차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백매는 이것을 지금의 미래이자, 자신의 과거에 그의 잠꼬대를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백매는 그를 자계(子鷄)로 유명해진 가게로 안내하였다. 과연 식당 안은 북적거렸지만, 다행히도 가게 안쪽에는 비어 있는 자리가 몇 보였다. 덤으로 자신들을 향한 선망 어린 시선도 느껴졌다. 그 사이에 껴 있던 점소이가 빠르게 다가왔다.

“풍채가 남다르신 분께서 오셨군요. 이 가게에서만 오 년을 일했는데, 손님 같은 분은 뵌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기려고 하나 봅니다. 아, 옆에 계신 공자께서는… 동생분이신가 봅니다. 공자께서도 풍채가 남다르십니다. 하하.”

실컷 아부를 이어 가던 점소이는 한 박자 뒤늦게 백매를 발견했다. 백매는 자신이 사존과 비교되는 것이 그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아 한 걸음 뒤로 물러서려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청난이 백매의 어깨를 끌어당기는 바람에 백매는 도리어 그에게 붙고 말았다.

“제 아들이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오, 벌써 부인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멋지신 분을 부군으로 두시다니 복 받은 분이시겠군요.”

“아, 아닙니다. 사존, 다들 오해하시지 않습니까.”

백매는 점소이가 그를 오해할까 서둘러 정정했다. 그는 혼례를 치르지 않았으니까.

그러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을 대변하는 건 또다시 점소이였다. 방금 전까지 알랑거리던 가벼운 목소리에 다소 진지함이 묻어났다.

“선사님이셨군요. 산귀 놈을 잡으러 오신 것입니까?”

“네, 맞습니다.”

진청난은 자신을 보는 시선들을 돌아보고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허어……. 이렇게 지체 높은 분께서 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산귀 놈이 그렇게도 강합니까?”

“제 모습만 보고 어찌 지체 높은지 아십니까?”

“그야… 풍채가 남다르시지 않습니까. 더구나 제자까지 두셨으니 분명 훌륭하신 선사님이실 수밖에요.”

“제자가 있다 하여 모두 좋은 수사는 아니니 그것만으로 신임하시는 건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청난은 말을 잇기 전에 자신을 보는 이들과 눈을 마주했다. 그는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군중은 진청난이 말한 ‘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바로 인지하지 못하였는지 반응이 오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진청난은 그사이에 또 다른 충격을 더해 주었다.

“수야각주, 진청난이라고 합니다.”

진청난이 포권을 취해 수선자로서 인사하였다. 그는 지금 단순히 식사하러 온 객이 아닌, 자신에게 의뢰한 ‘의뢰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수야각. 수선에 문외한인 민간인들도 예의 다섯 문파의 이름은 상식으로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 큰 문파의 각주가 직접 왔으니, 놀라는 이도, 혼란스러워하는 이도 있었으며, 겁을 먹은 이 또한 있었다.

놀란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백매 또한 스승을 따라 인사하는 것을 잊을 정도로 놀랐다.

분명, 이 산귀는 그 힘이 대단하니 주민들이 경각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옳았다. 그것은 매우 진청난스러운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어떻게 알고? 이때의 그에게 이 산귀는 사소한 장난에 불과했어야 했다. 백매는 놀란 눈을 감추지 않고 자신의 사존을 바라보았다.

“사존… 혹시…….”

“쉬잇.”

진청난은 백매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검지를 입술에 붙이며 웃음으로 말을 끊었다. 백매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청난은 식당의 객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다. 자신들이 얼마나 뛰어난 수사인지 관해,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불을 조심하라는 권고와 함께 수야각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문파인지에 관해 대변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동안 백매의 눈앞에는 조금 전 자신에게 손짓하던 그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는 정말 아름다웠고, 아름다웠으며, 아름다웠다.

‘사존께선 신선이신 게 분명해.’

물론 아닌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그를 향한 이 경외심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다 돌연 자신이 신선이었음을 깨닫고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쳤다.

“응? 아가, 무얼 하느냐?”

“아, 아닙니다…….”

어느새 자신과 사존이 식사하던 중이란 걸 알게 된 백매는 다른 생각을 벗어던지기 위해 식사에 집념하였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다시금 머릿속은 진청난의 미소로 범벅되었다.

‘사존께서 원래 이토록 잘 웃으시는 분이셨던가. 온화하신 분인 건 알았지만, 나한테도 이렇게 잘 웃어 주셨던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백매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꿈은 내가 원하는 장면인 걸까?’

사실 이 술법은 제자들을 달래기 위해 진청난이 만들었던 것을 따라 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자신의 기술이 완벽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모르는 다른 효과가 있다 하여도 이상할 건 없었다.

더구나 그는 꿈속에서 일어나 이곳에 오기까지 내내 진청난을 보며 감탄하기 바빴지 않은가. 백매는 이것이 지금까지 생각 중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더는 마을에 있기 부담스러워졌다. 작지도 않은 마을에서 소문이 어찌 그리 빨리 퍼지는지, 그들이 길을 걸을 때면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물론이며, 한두 마디씩 웅성거리는 것이 꽤나 불편했다. 결국 그들은 해가 지기도 전에 마을을 떠났다.

마을에서 사전 조사를 하지 못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진청난은 가야 할 길을 이미 알고 있는 듯이 거침없이 나아갔다. 또, 그 길은 정답이었다. 이미 이것에 대해 결론을 내린 백매는 또다시 그의 모습에 감탄만을 이었다.

산은 가팔랐지만, 둘 중 누구도 숨차 하지 않았다. 그저 발밑에서 밟히는 나뭇가지 소리만이 주변을 메웠다.

고요함을 먼저 깬 것은 진청난이었다.

“이렇게 산을 오르는 것도 간만이구나.”

“그런… 가요?”

백매는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였다. 진청난은 뒤에서 따라오던 그를 보며 싱긋 웃고는 다시 정면만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래.”

백매는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야각은 높은 산중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문파 내에서 모든 숙식이 해결된다고 하여도, 대부분의 수사는 아랫마을에 드나드는 것을 즐겼고, 진청난 또한 그러하였다. 비록 수야각주의 자리를 이은 후로는 밖에 나서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그가 몰래 나가겠다고 한다면 그 누가 알아차리겠는가.

하지만 백매는 그가 어떤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말에 틀린 것이 무엇 있겠는가.

그저 그의 기분이 좋길 바라며, 흔들리는 빈손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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