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청난이 본 진영의 첫인상은 아주 좋았다. 아니, 그보다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에 가까웠다. 잘생긴 사람을 싫어하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는 고운 얼굴과 곧게 뻗은 자태를 가지고 있으니 미남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고, 보기만 해도 눈앞이 훤해지는 듯했다.
다만, 본인의 눈앞은 훤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진영의 키는 청난에 비해 두 뼘은 컸다. 하지만 이 사람은 저를 향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청난은 그를 보며 배려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난은 말없이 그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성은 청, 이름은 난입니다. 마을 어귀에서 아버지와 서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공자께서 몸이 약하시다 들었습니다. 바깥은 날이 차니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어떨까요?”
청난은 그의 앞에 공수하며 예를 표하는 대신 그의 손을 굳건히 잡아 주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임에도 진영은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조금도 놀라지 않고 평온해 보였다. 청난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팡이는 안에 있나요?”
“네.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요.”
“그럼 제가 도와드릴게요.”
청난은 손을 잡은 팔이 흔들리지 않도록 힘을 주고는 한 발짝씩 신중하게 발을 옮겼다.
“선생님께선 눈치가 좋으시네요.”
“공자께서 제게 숨길 생각이 없으셨던 덕분이죠.”
청난의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진영의 손아귀 힘은 결코 병약한 자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예를 타고난 신체라 말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런 아들을 병약하다 표현하고,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별채에 두며, 집요할 정도로 발길을 닦아 놓은 이유는 그의 눈에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무골을 타고나서 무얼 하겠는가. 또한, 문을 익혀도 그 한계가 분명하지 않겠는가.
진 대인은 집안에서 천성적으로 부족하게 태어난 자식을 수치라 여긴 모양이었다. 청난은 그제야 이 집의 대문이 굳게 닫혔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선생님께선 생각보다 어른스러우시네요.”
공자만큼은 아니겠지요. 청난은 굳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책 속에 살다시피 했거든요. 장난감이라곤 책밖에 없었어요. 덕분에 공자께 읽어 드리고 싶은 책도 많이 알고 있죠. 잘됐죠?”
“책을 읽어 주실 건가요?”
“그럼요. 아니면, 공자께선 읽기보단 쓰기가 더 좋으신가요?”
“아, 그건 안 되죠. 제 악필은 지나가는 신선께서 오셔도 못 구하실 게 분명하거든요.”
진영은 일부러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였다.
“하하하, 그럼 더 좋죠. 신선도 못 하는 일을 제가 해낸다면 분명 인생의 큰 자랑거리가 되지 않겠어요? 적어도 제 아버지는 이웃을 만날 때마다 자랑하실 거예요.”
청난은 말하는 동시에 생각했다.
‘당연히 악필일 수밖에. 앞도 안 보이는데 명필이라면 신선은 다름 아닌 진 공자가 아니겠어?’
예민한 주제이건만, 다행히도 진영은 조금도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그가 사람을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별관의 위치나 지금까지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전무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에게 친교 기술을 쌓을 기회가 많진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러니 후자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청난은 편하게 그와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대갓집이라 한들 이곳은 별관에 불과했기 때문에 방문까지의 거리가 짧았다. 청난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대화했을 뿐인데도 이 말벗이 참 맘에 들었다.
그는 전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대화를 유쾌하게 이끌어 갔다. 그의 표정은 편안했고 또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마치 호감을 사기 위해 만들어진 발명품 같았다,
‘진 공자는 외모가 우수할 그뿐만 아니라 말솜씨까지 이토록 빼어나니, 이 집의 대문이 굳게 닫혔던 게 아니었더라면 이 마을은 더는 혼례식이 치러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
청난은 이런 생각을 하며 옅게 미소 지었다.
진영의 방은 그 주인을 닮은 듯 단정하였다. 모든 물건이 있어야 할 제자리에 정돈되어 있었으며, 장식은 은은하게 멋을 내었다. 그리고 방의 중앙에는 미리 준비된 듯 두 개의 단상이, 그 위에는 종이와 문방사우가 놓여 있었다. 그것들은 꽤 값져 보였다.
‘그래도 부모가 완전히 모른 체하진 않는 모양이야. 그러니 나를 부른 것이겠지만.’
청난은 내심 안심하며 진영이 준비된 자리에 앉는 것을 도와주었다. 자리에 앉은 진영은 맞은편의 비어 있는 탁상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자리를 권하였다. 청난이 자리에 가 앉자 어떻게 안 것인지 만족스럽게 입술 끝으로 호선을 그렸다.
“오늘은 첫날이니, 수업은 하지 않고 가볍게 문답만 할 생각이에요. 공자께선 제게 궁금하신 게 있나요?”
“네, 있어요. 선생님께선 앞으로도 제게 말을 높이실 생각이신가요?”
“그럼요.”
“제가 대갓집의 자식이라서?”
“저보다 연상이시니까요.”
“음… 그건 어쩔 수 없네요.”
진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는 장난기가 엿보였다. 진영이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방금처럼 ‘선생’이라 부르면 될 것 같네요.”
“저보다 어리셔도요?”
“그럼 소(小)선생이 되겠죠.”
“하하, 좋아요. 그냥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맘에 들어요.”
그 뒤로도 담소가 이어졌다. 진영은 꽉 막힌 아버지를 뒀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었으며, 때문에 청난은 일상의 사소한 것에 관해 묻고 답하면서도 마치 오랜 지기와 학문을 나누는 듯한 성취감까지 느꼈다.
청난이 취향, 가족 구성, 집 위치, 심지어 발 크기까지 말하게 되었을 무렵에, 진영은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질문을 건넸다.
“사파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청난은 갑작스럽게 전공 질문을 받게 될 줄은 몰라 눈을 끔벅였다. 다시 질문할 생각이 없는 듯 진영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으며, 닫힌 눈꺼풀은 마치 청난을 빤히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일게 했다. 청난은 늦지 않게 입을 열었다.
“대부분의 사파는 남을 해하는 것으로 자신의 힘을 키워 나가니 당연히 나쁘다 생각하죠.”
“‘대부분’이라면, 안 그런 사파도 있다는 건가요?”
진영의 어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는데, 어째선지 청난은 그의 기분이 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사파’가 지칭하는 대상에 따라 달라요. 사파란 ‘사도를 전승하는 문파에 소속된 자’를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파의 술법이 아닌 것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로 쓰이죠. 그런 자들은 사람을 해치지 않고, 동물의 것으로 대신하기도 해요.”
“어차피 무언가를 해쳤다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요.”
“공자, 모든 행위는 무언가를 희생하게 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동물은 고기를 전혀 먹지 않지만, 어떤 동물은 채식만으론 살아남을 수 없어 반드시 남의 살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한 가지 잣대만으로 옳고 그름을 평가하겠습니까. 그렇게 규정지어 버린다면, 언젠간 실수를 하게 될 거예요.”
“…….”
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청난의 답을 곱씹어 생각하고 있기보다는 그 대답이 못마땅한 듯해 보였다. 청난은 굳이 그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공자께서 수선계에 관심이 많은 줄 몰랐네요.”
“그런 건 아니에요. 다들 싫어하니까 선생님도 그러신가 했어요.”
진영은 자신의 앞에 놓인 과자를 하나 집어 베어 먹었다. 보아하니 심통한 표정을 지었던 것에 뒤늦게 무안함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청난은 진영이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귀여울 수밖에. 대체 얼마나 어린 거야?’
죽어 있던 기간을 차치하고도 적어도 열 살은 더 어려 보였다. 청난은 오래간만에 보육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요. 그럼 저에 대한 궁금증은 더 없으시죠? 그럼 수업을 시작해 볼게요.”
“음? 오늘은 수업하지 않는다셨잖아요?”
“첫째로 알려 드릴 건, 모든 스승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에요.”
청난은 파하하 웃더니 상 위에 놓인 붓을 들었다. 벼루에는 이미 먹물이 채워져 있어 먹을 갈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하지만 청난은 아직 붓끝을 먹물로 적시지 않았다.
“공자께서 수선계에 흥미가 있으신 것 같으니 그것에 관해 알려 드릴게요. 동떨어진 세계처럼 느껴져도 사실은 꽤 밀접한 관계에 있어요. 이 마을도… 으음, 넘어가죠.”
“좋아요. 나중엔 알려 주실 거죠?”
진영은 자신이 아직 배울 단계가 되지 못했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실 청난은 ‘이 마을도 수선계의 보호를 받고 있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연화문이 맡은 바 일을 하지 않은 탓에 생긴 상처가 지금도 옷 아래에 남아 있는데 연화문의 체면을 세워 줄 필요가 있겠는가. 더구나 집 안에만 있어 정보와 소식이 느릴 그를 속이는 것 같아 양심에 찔리기도 하였다.
청난은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우선, 공자께선 수선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세요?”
“…….”
“잘 모르시는 게 당연해요. 수선할 자질을 가진 사람은 드무니까요. 다른 사람 일이란 거죠.”
청난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진영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불쾌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아 보여 설명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