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7)화 (7/111)

#7

백매는 수야각에 전해 내려오는 술법인 술진의 극의를 전수받지 못했다. 그렇게 극의의 대가 끊기면서 수야각은 점차 쇠락해 가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백매는 영생을 살며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뭘 그렇게 봐?]

“넌 알 거 없어.”

갑자기 고막을 때려 오는 전음에 백매는 단번에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짜증만이 남았다.

백매는 이 불청객에게 전음으로 답하는 세밀함 따윈 베풀어 주지 않았다. 상대가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허공에 던질 뿐이었다. 상대는 이런 그를 상대하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닌지 그의 대답을 용케 잡아내어 또다시 전음을 날렸다.

[얼음 같은 백매선이 뭐에 그리 관심을 두는 건지 나한테도 좀 알려 주지 그래?]

“그 비상한 머리에 내 말 다섯 글자를 이해하는 능력은 없나 보지?”

[오, 인간이네? 웬일이야?]

그들은 서로 대화하는 것이 맞긴 한 것인지 각자 다른 말을 하였다.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그럼 상대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관계가 벌써 삼백 년째였다.

“넌 내 사문에 관심이 많았지?”

[맞아. 아니라면 네가 폐관할 동안 소식을 전해 줄 수 없었겠지.]

“그럼…….”

백매는 입술을 벌렸지만 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날카롭고 무성의하게 말을 툭툭 내뱉었던 그의 입이 이제야 예의를 곱씹어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그가 곱씹은 것은 전음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백매는 입술을 몇 번 오물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사존의 술법이 전승되는 곳이 있어?”

[사존? 진청난 사존을 말하는 거야?]

“알면서 되묻는 건 무슨 속셈이야?”

[속셈이라니. 그냥 좀 놀라서. 그건 왜 물어봐? 당연히 없지. 너는 후임 없이 비승하고, 네 사매 사제들은 네 눈치를 봤는데 어떻게 이어졌겠어? 진즉에 끊겼지.]

“…….”

[아, 널 탓하는 건 아니야. 이해해. 모두가 이해할걸? 사존은 어떠실지 모르겠다.]

“……그렇게 부르지 마.”

뾰족한 창이 찔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 창끝에 닿은 것은 죄책감이었다. 아마도 고의적인 그 말은 백매의 약점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가 말한 것 중 거짓이 없으니 화낼 면목도 없었다. 그러니 다른 것을 지적할 뿐이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금방 올라올 거지? 대신선이 너 찾더라. 너한테 연락이 안 되니까 자꾸만 날 찾아오는데, 이게 무슨 고생이야?]

“넌 당해도 싸. 그리고 바로 안 올라가.”

[왜? 할 거 있어?]

“그래. 이젠 대답 안 할 거니까 꺼져.”

상대가 그의 요구대로 적절히 꺼져 준 것인지 더 이상 전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백매의 눈동자는 또다시 초점을 잃더니, 양부와 대화하는 청난을 비추었다. 불쾌함이 역력했던 표정이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금 더 지켜보자.’

판단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석상처럼 굳건히 서 있던 백매의 발이 드디어 땅에서 떨어졌다. 그는 이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으로 향했다.

청난은 일주일을 꼬박 이불 속에서 보내고서야 외출을 허락받았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오래간만에 제 다리로 일어나 집 안을 돌아다니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예전엔 몇 달을 가만히 있어도 아프긴커녕 더 좋아지기도 하였는데……. 이럴 땐 어려진 게 아니라 나이를 더 먹은 것 같다니까.’

전생의 청난의 몸은 지금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훌륭했으니 그리 느낄 만도 하였다. 별명도 신에 가장 가까운 수사가 아니었는가.

벽곡 수련을 끝냈으니 먹지 않아도 되었으며, 환골탈태하여 선골이 되었으니 잔병치레는커녕 전염병이 도는 지역에 가도 저 혼자만은 무탈하였다. 애당초 그는 무골을 타고났기에 아파 본 적이 손에 꼽기도 했다.

그 탓에 앓고 있는 제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설전을 벌였던 일도 있었다. 청난은 죽고 나서야 제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청운은 청난의 체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갓난아이 시절부터 다른 이들에겐 가벼운 잔병치레인 것이 청난에게는 생사를 오고 가는 중병이곤 하였으니 그럴 만했다. 그런 그가 온몸에 피를 묻힌 채 남의 등에 업혀 돌아왔으니, 청운이 어디 침착할 수 있겠는가.

그 덕에 청난은 말 그대로 일주일간 침상 밖에는 단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었다.

청운은 큰집과 약조한 일주일이 되어서야 청난을 놓아주었다. 그럼에도 못마땅한지 그의 옷을 입혀 주는 내내 투덜거렸다.

“조심히 다녀오너라. 분위기가 이상하면 바로 도망쳐야 한다. 갑자기 어지러워도 바로 집으로 돌아오렴.”

“친구 사귀러 가는 것뿐이잖아요. 아버지는 걱정이 너무 많으세요.”

“이 정도론 부족하지. 너도 귀여운 아들이 생긴다면 이 아비의 마음이 이해될 게다.”

“하하…….”

청난은 그저 웃기만 하였다. 청난은 전생에 아들과 같던 제자가 있었고, 그 아이는 누가 봐도 귀여웠다. 하지만 청난은 그 아이를 일주일간 침대 위에 가둔 적도, 또래 아이를 만나러 가는데 좌불안석이었던 적도 없었다.

‘아버지, 팔불출이에요.’

청난은 꺼내지 못할 말을 그저 속으로만 삭였다. 대신 다른 것을 말하였다.

“아버지, 이건… 좀 과한 것 같아요.”

“뭐가 말이냐?”

뭐긴요. 스무 겹의 옷이죠.

“날이 춥잖느냐.”

지금은 봄이었다. 벌써 가로수에는 분홍빛의 꽃들이 활짝 펴 있었다.

“하지만 이러다간 넘어질지도 몰라요.”

“음… 그러냐?”

“네, 이렇게요.”

청난은 두툼히 감싸진 발을 한 걸음 옮겼다. 사실 껴입은 옷은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으나, 청난은 이 옷들을 벗기 위해 일부러 몸을 휘청거렸다. 그 모습에 청운이 급하게 달려와 그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 안 되겠구나. 좀 벗자. 넘어지면 위험하지.”

“네, 좋아요!”

청난은 기쁘게 대답했다. 청운은 어쩐지 속은 기분도 들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 넘어지면 큰일이지.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결국 청난은 깔끔한 차림새로 큰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열 살 생애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이 거대한 대문이 드디어 입을 쩍 벌려 주었다. 그 안에는 나이가 지긋한 하인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소공자께 글을 가르치게 된 청난입니다.”

“…….”

하인은 단순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틀어 청난이 들어오게끔 하였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작은 주인을 향해 안내하였다. 저택은 그 넓은 크기만큼 다양한 연령대의 하인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택 안은 너무나 조용했다. 모두가 입을 여는 것이 중죄라도 되는 양 단 한 마디의 수다도 없이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다소 기이했다.

청난은 늙은 하인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서는 비밀을 전하듯 작게 속삭였다.

“할아버지, 주인어른께선 무서우신 분인가요? 다들 한 마디도 안 하잖아요. 저, 돌아가면 안 될까요?”

“……괜찮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셔서 그런 것뿐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러곤 아무 말도 한 적 없다는 듯 다시금 입술을 꾹 닫았다. 그리고는 청난이 무슨 말을 하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청난도 어쩔 수 없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소공자의 거처는 본관이 아닌 별채에 있었다. 지난밤 전해 들은 바로는 어린 아들이 병약한 탓에, 사람의 발이 잘 닿지 않으며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한적한 곳에 거처를 내주었다고 했다. 과연 그 말대로였다. 청난의 발걸음이 안쪽을 향할수록 길게 뻗은 매화 가지가 보였고, 매화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별관이 보이자 안내하던 늙은 하인은 본래의 일을 하러 사라졌다. 청난은 매화의 기묘한 향기에 취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딸랑-.

어디선가 풍경 종소리가 들려와 청난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별채의 마당에는 잉어가 헤엄치는 작은 연못이 있었고, 그 옆에는 두꺼운 매화나무가 길게 가지를 뻗어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신선의 거처 같았다.

“아, 선생님이신가요?”

갑자기 들려온 사람의 목소리에 청난은 흠칫 놀랐다. 이곳에 사람을 만나러 온 것이니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건만, 풍경에 취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잊고야 만 것이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유심히 살펴보자 두꺼운 매화나무 옆으로 사람의 형상이 얼핏 보였다. 청난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방이 풀로 가득했으나 잘 다듬어진 까닭에 걷는 데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청난이 매화나무를 빙 돌아가자 그곳에는 약관, 즉 이십 세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청년이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

그를 본 청난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아이라고 하지 않았나? 말벗이 되어 줄 또래를 찾던 게 아니었어?’

친구에 나이 없다는 말이 있다지만, 그것은 몸도 마음도 어느 정도 자란 어른들의 이야기지, 곧 성인이 되는 청년과 열 살의 아이를 두고 그리 말하진 않았다. 이 모습은 청난이 말벗이 되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이 청년이 청난을 돌봐 주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청난은 당혹스러운 나머지 표정 관리를 하는 것도 잊고 말았다. 하지만 청년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그저 자리를 털고 일어날 뿐이었다.

“오늘 선생님께서 오신다는 말은 전해 들었습니다. 진영(秦泳)입니다.”

청년, 진영은 청난의 앞으로 공수를 취하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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