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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6)화 (6/111)

#6

“네가 잠든 사이 주모 아주머니가 연화문에 신고하셨다. 수사들이 그리 헐레벌떡하는 건 난생처음 보았지 뭐니.”

청운의 말투에는 빈정거림이 역력하였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들의 말로는 네가 빠진 곳은 요물의 둥지였는데, 다행히도 죽어 가던 개체라서 지금은 해치웠다고 하더구나. 네가 무사히 돌아온 것도 그 요물이 늙었던 덕이라지. 하늘이 도왔어. 정말… 후…….”

청운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그의 이마에는 출구 없는 미로가 생겨났다.

청운은 큰 호흡을 두어 번 하였다. 소리 지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으……! 게으른 수사들이 신고했을 때 바로 와 주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렇지 않니?”

“참으세요, 아버지. 다들 바쁜 사람들이잖아요.”

청난은 청운의 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써 웃어 보였다. 하지만 속이 타들어 갈 듯 화난 건 청난도 매한가지였다.

그가 수사라고 불릴 적에는 대부분의 수사가 충실히 수련하였고 의무를 짊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직하게 수선을 쌓는 이는 소수고, 대부분의 수사는 영약을 찾는 등의 요행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각 문파에는 구역이 정해져 있어, 힘없는 민간인들에게 소소한 ‘성의’를 받는 대신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자신의 영역을 시간 내어 챙기기는커녕 신고를 받아도 가볍게 넘기다가 이 사달을 내었다.

‘내가 죽은 지 고작 삼백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찌 이리도 크게 달라진 것인지.’

특히 청난이 사는 마을을 비롯해 이 주변을 책임지는 문파인 ‘연화문’은 그 정도가 특히 심했다.

애초에 수선계의 분위기가 이리 흐려진 것은 연화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삼백 년 전, 뛰어난 재능을 가진 화(火)계 수사가 있었다. 그는 기대받던 대로 비승하여 신선이 되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수선계에는 신선이 인계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천진난만한 신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인계에 찾아왔다. 무릇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다. 그가 동문의 부탁을 모른 체하겠는가? 또, 신선을 등에 업은 이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그렇게 연화문을 필두로 한 화계 수사들은 날이 갈수록 오만방자해졌고, 그 태도는 다른 문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야 말았다.

“하아…….”

“어린애 한숨이 삼십 년은 산 사람 같구나. 그리 신경 쓰지 마라. 아차, 네가 잠들었을 때 손님이 왔던 걸 잊었구나.”

“저한테요?”

“그래, 너한테. 큰집에서 왔다고 했다.”

“……아? 큰집에서 저를 왜 찾죠?”

‘큰집’이란 별명을 가진 그곳의 사람들은 외출은커녕 대문을 여는 일도 적었기에 마을 토박이라 하여도 그곳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몇 되지 않았다.

“네가 소공자의 글 선생이 되어 주길 원한다는구나.”

“아……. 그 집에 어린 공자께서 계신 줄은 몰랐어요.”

“나도 어제야 알았어. 몸이 안 좋은 모양이던데, 네가 이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라는 얘기를 듣고 온 모양이야. 굳이 나이 어린 너를 원하는 것을 보니 선생보다는 말벗을 찾는 모양이었지. 네게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것 같아 물어보겠다고만 하고 돌려보냈다. 어때, 가겠느냐?”

청난은 조금 전까지 현재의 수선계를 한탄하며 전생의 일들을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양부께서 그에게 선생이 되는 것이 어떠한지 물으니 청난은 전생의 제자가 생각났다.

그는 여섯의 제자를 두었는데, 그중 첫째 아이는 재능도 대단하고 성실하였으니, 곳곳에서 호평이 줄을 이었었다. 그뿐만 아니라 스승에 대한 효심은 어찌나 깊은지 좋은 것이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제게 찾아와 이르고 하였었다.

그런 아이를 어찌 사랑스럽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여, 그를 사랑스럽게 보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지낼 날들을 그리기도 하였었다. 한데, 그것을 망친 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지. 잊으려 했던 후회가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었다.

“…….”

“난아?”

“…….”

“청난.”

“……아. 잠시 다른 생각 좀 했어요. 네 네, 할게요. 몸이 나아지면 찾아가겠다고 전해 주세요.”

“흐으음 그래. 피곤한 것 같으니 이만 나가마.”

방금 전 청난의 표정에 청운은 의아했지만 묻지 않겠다 한 것은 자신이었기에 무엇도 묻을 수 없었다.

갓난아이 시절에 우여곡절을 겪었던 이 아이는 너무나도 빨리 성숙해져, 쉬이 제 속을 꺼내지 않았다. 이번처럼 말이다. 청운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한 움큼 생긴 걱정을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또다시 방 안에는 오직 청난만이 남았다.

길게 뻗은 매화나무는 여전히 그의 시야 속에서 굳건했다. 꽃 한 송이 피어 있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코끝에 매화 향이 닿는 듯하였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그 아이를 떠올리는 것은 더더욱 막을 수 없었으니, 청난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얇은 눈꺼풀을 내려 오늘 하루를 끝내는 것뿐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고, 잠에 빠지는 것으로 하루를 마쳤다.

청난이 지내는 마을의 이름은 아랑(????浪) 마을로, 산골짜기에 위치하여 사방이 산으로 덮인 마을이다. 지형이 고르지 않은 탓에 크고 작은 물줄기가 유달리 많이 형성되는 편이었다.

그리고 불개미의 동굴에서부터 주민 다섯 명이 생환한 날에도 새로운 물줄기가 생겨났다. 무언가의 발자국과 함께.

“이거, 다른 요괴가 있는 건 아니오?”

“이렇게 사람 같은 요괴가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네. 수사 양반들도 모두 퇴치했다 하지 않았나.”

“맞아, 맞아. 그 게으름뱅이들을 믿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사람과 똑같은 발자국을 가진 요괴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어.”

“그래, 생긴 거야 똑같지. 그치. 발바닥 두 개에 각각 다섯 개 발가락이 달렸으니 완전 사람 발 모양이지. 근데 이게 말이 돼?”

말하던 이는 화를 버럭 내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 크기가 사람인가? 내가 누워도 되겠어! 내 확신하건대 이 흔적의 주인은 둘 중 하나일 걸세. 신이거나, 귀신이거나!”

“에휴, 이 마을에 정들었는데 떠날 준비를 해야 하나. 아무리 정들었어도 목숨이 먼저지.”

“갈 데는 있고? 진정해 이 사람아. 애들 장난이 분명해. 청난이 그 녀석 말고는 다 장난치기 좋아하잖는가. 지금쯤 어른들을 골렸다며 신나 있을 테지.”

그래, 그래 맞아.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그 말에 동의하면서 우스운 걱정을 했다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흩어질 때까지 자신들이 그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발자국의 주인이자, 지금 그 위에 서 있는 자는 몸이 집채만 하지도 않았고, 발이 유달리 크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키가 클 뿐이었다. 오히려 그의 모습은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을 만했다.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높게 올려 묶은 모습은 위엄이 돋보였으며 짙은 눈썹과 긴 속눈썹은 수려하였다. 열려 본 적 없는 듯 굳게 닫힌 입매는 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으며, 더욱이 이 땅을 굳건히 지키는 장군의 기개 또한 느껴졌다.

누군가가 말한 신 아니면 귀신이라는 유추는 틀리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들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옳았다.

그는 청난이 만났던 그 신선이었다.

청난의 눈에는 그가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단순히 모습을 숨겼을 뿐이었다. 그는 청난이 마을 주민의 등에 업혀 산을 내려가던 때부터 이곳에서 천리안을 통해 청난을 관찰하고 있었다.

“몸이 약한가?”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막 일어난 청난이 비치고 있었다. 그가 봤던 상처는 어린아이임을 생각하여도 그리 위중한 것이 못 되었었기에 이토록 오래 잠들 줄 몰랐고, 깨어나서도 저렇게까지 아파할 줄은 몰랐다.

“영력이라도 넣을 걸 그랬나.”

그의 말은 퍽 다정하게도 들릴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청난의 몸 상태 따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날 청난과 만났을 때, 그는 청난의 손에 나 있는 상처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자신의 피를 사용하는 것은 사도들이나 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신선인 그에게 정파나 사파 따위가 무어가 중요하겠는가. 어차피 인간의 일인데. 그가 신경 쓰는 부분은 다른 것이었다.

아이의 손에 나 있던 상처는 마름모처럼 생겼으나, 마름모는 아니었다. 신선은 그 모양이 익숙했다.

“사존…….”

그를 부르는 단 두 글자에 그리움이란 이름의 괴로움이 치고 올라왔다. 그에게 그리움은 제 뼈에 심어진 독과 같았다.

그를 떠올릴 때면 슬픔에 목이 말랐고, 그리움에 목이 메었다. 하지만 이제는 참아 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마름모를 닮은 문양은 그의 사존께서 제자들에게 기초를 설명할 때면 그리곤 하셨던 무늬였다.

-간단하면서도 독특한 것이 좋아. 간단하게 그리라는 건 빨라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독특해야 하는 건 다른 것과 겹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지. 맞다. 너는 실력이 뛰어나니 굳이 매개체가 필요하지 않겠지. 그런데도 굳이 만들라는 건 재미를 위해서야. 그리 살면 재미없지 않으냐? 자, 이리 와서 스승에게 자랑해 다오. 내 제자가 얼마나 창의적인지 궁금하구나.

수백 년 전의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신선이 되어 얻게 된 장점은 망각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쓴 것을 삼킨 듯 이마를 구겼다가 이내 긴 숨을 내뱉으며 샛길로 샌 생각을 바로잡았다.

‘그 꼬마는 어디서 그걸 본 거지? 그 술법은 분명 수야각의 것이다.’

기초적인 술법이었지만, 그것은 수야각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이제는 그 술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음을 그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것의 대가 끊긴 것이 바로 그부터였기 때문이니.

그가 바로 수야각주 진청난의 제자 화백매(禾白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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