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설마 벌써 죽지는 않겠지? 아직 열 살밖에 안 됐는데 말이야. 크흠.”
서른 해도 더 산 기억이 생생한데 스스로를 열 살이라 말하려니 조금은 낯간지러웠다. 그는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청난은 살짝 고개를 내밀어 옆 굴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마지막 가지를 묻어야 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불개미가 낮잠을 자고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어쩐지 오늘 재수가 없을 것 같더라니…….’
오늘 꾸었던 꿈이 이 사태를 예측한 예지몽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마지막 가지를 심겠다고 달려 나가는 것은 곧 자살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어.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한다면 남은 길은 먹혀 죽는 것뿐이겠지.’
청난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다고 방법도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조금 위험할 뿐.
청난은 즉시 신발을 벗었다. 그러곤 한 짝을 불개미가 있는 방향으로 힘껏 던졌다.
‘흐아아앗-!’
탁.
속으로 내지른 함성과 달리 신발이 날아간 거리는 초라했다.
청난은 불개미의 머리를 때릴 생각이었건만, 그것은 불개미의 근처에 떨어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예민한 불개미가 잠에서 깨어나 떨어진 신발을 향해 커다란 입을 쩌억 벌렸다.
청난은 곧장 다른 한 짝을 반대 방향으로 던졌다.
이번에도 청난의 힘은 약했지만, 다행히 던진 방향이 내리막인 덕분에 신발은 텅텅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신발이 소리와 함께 점차 멀어지자, 이번에도 불개미는 입을 벌리며 그것을 쫓아갔다.
이 순간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이다.’
청난이 방금 전까지 불개미가 있던 곳으로 있는 힘껏 내달렸다. 동굴 바닥은 험하며 갖은 자갈이나 돌멩이 따위로 난잡했고, 청난은 맨발인 데다 피부가 여리기까지 하였으니 상처를 입어 피가 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불개미가 곧 피 냄새를 맡을 텐데, 그 전에 끝내지 못하면 끝나는 건 나 자신이었으니!
목표 지점까지 불과 세 걸음. 눈앞에 성공이 보였다. 청난의 어린 안면 근육이 절로 미소를 지으려던 때,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윽!”
뒤꿈치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날카로운 손톱이 자신의 발을 잡고 있었다.
푸스스스스스!
“끄아아악!”
청난은 비명을 터뜨렸다. 불개미가 발을 잡아당기자 청난은 그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튀어나온 돌을 붙잡아 보고, 손가락으로 땅을 긁어도 보았지만 그 어떤 발버둥도 몸을 해치기만 할 뿐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불개미의 날카로운 이빨이 곧 찾아들 먹이를 기다리며 아가리를 벌렸다. 청난은 땅에 심기 위해 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높이 들어 올리더니, 불개미의 두꺼운 껍질 사이의 연한 관절에 힘껏 찔러 넣었다!
끼에엑-!
불개미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발을 붙잡았던 힘이 사라지자 청난은 박차고 일어나 남은 힘을 쥐어짜 내달렸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목표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리는 무사하지 못했지만, 그게 뭔 대수인가. 진짜 대수는 불개미가 곧 쫓아올 테고, 그의 손에는 매화나무 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난이 누구인가. 한때는 수선계에서 누구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던 그가 아닌가. 읽은 책만 수천이며, 그가 발전시킨 술법만 수십이었다.
찰나의 순간은 청난이 묘책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청난은 매화나무 가지를 묻는 대신에 자신의 왼손을 땅 위에 올리고 날카로운 돌로 손등을 강하게 내리쳤다.
“큭!”
고통과 함께 피부가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청난은 돌 끝에 피를 묻히고는 그것으로 자신의 손목에 매화나무 가지에 그려진 것과 같은 문양을 그렸다. 청난의 손등에서 시작된 피는 손을 따라 흐르며 곧 땅을 적셨다. 청난은 눈을 감고 이 순간에 집중하였다.
자신의 피가 나무뿌리처럼 땅속에 내려앉을 수 있도록.
그의 숨은 거칠어졌으나, 건조했던 입술 표면은 젖어 갔다.
곧 땅을 짚은 청난의 손바닥에 물기가 닿았다. 그것은 그의 무릎에 닿더니 곧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청난의 술법이 성공했다!
바닥은 금세 촉촉해졌다. 예민한 불개미가 이것을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던 불개미는 온몸에 닿은 청량함에 괴로워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끼에에엑! 끼에에엑!
“허억, 헉.”
청난은 짧은 숨을 몰아쉬었다.
“윽…!”
그제야 찢어진 피부로부터 아프다는 감각이 전해졌다. 불개미의 압박감에 막혔던 목소리가 이제야 터져 나왔다.
“하… 하하……. 아?”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길지 못했다.
불개미는 목숨을 위협받는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니 청난의 계획대로 밖으로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이 멍청한 불개미는 도망칠 공간으로 밖을 택하지 않고, 방금까지 자신이 숙면을 취하던 안락한 장소로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바로 청난이 있는 이곳으로!
불개미의 크기는 성인 남성 네다섯 명을 합친 정도에 육박한다. 그 덩치로 청난을 밟는다면, 틀림없이 압사당할 것이다.
청난은 고개를 크게 흔들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에게는 이곳에서 멀찍이 달아날 체력도 능력도 없었다. 그러니 노려 볼 만한 건 아주 작은 틈!
청난은 그것이 자신의 위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을 노리기 위해 눈조차 깜박이지 않으며 그것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잠깐의 실수는 곧 죽음이다.
쿵! 쿵! 불개미가 육중한 걸음을 뗄 때마다 청난은 명계의 강 앞으로 한 발짝씩 밀쳐지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삼 초. 그 후에는 불개미가 이곳에 도착한다.
“……어?”
하지만 불개미는 그 육중한 발이 청난에게 닿기도 전에 많은 양의 피를 사방에 흩뿌리며 터져 버렸다.
청난의 몸 또한 그 붉은빛으로 뒤덮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청난은 멍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청난이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경계하던 차에, 낮은 음성이 귀를 울렸다.
“이건 또 뭐지.”
이 목소리는 마을 주민의 것이 아니었다.
청난은 낯선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폈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이 목소리의 주인이 꼭 땅을 밟고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요즘 사파는 어린 꼬맹이도 키우나? 불쌍하게도 버려지고 말았나 보군.”
그 목소리가 이어짐에 따라 청난의 시선이 땅에서 위로 올라갔다. 이 동굴의 천장 바로 아래, 사람의 키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그곳에서 한 남성이 청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청난은 그자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지는 강한 법력에 도저히 모를 수 없었다. 한때 청난이 목표로 하였으며, 될 수 있었던 경지.
사람이 하늘의 인정을 받아 비승한 존재, 신선이었다.
그 신선의 머리카락은 흑단처럼 검었고, 그에 비해 피부는 백색에 가까웠다. 얼굴의 높아야 할 것은 높았고, 깊어야 할 것은 바르게 깊었으니, 이보다 더 정갈하고 깊은 여운을 주는 이목구비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즉, 잘생겼다.
청난은 어쩐지 그가 낯설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청난은 그의 외모를 감상하며 낯익음의 원인을 찾아 헤맬 생각 따윈 들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분위기만큼이나 냉랭한 시선이 자신을 쏘아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청난은 꼴깍 침을 삼켰다.
“그… 그…….”
“네가 감히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나?”
청난은 무해한 어린아이를 연기하려 하였으나, 제대로 된 단어를 뱉기도 전에 상대에 의해 끊어지고 말았다.
청난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감히’? ‘무엇을’? 그 신선의 어조는 마치 청난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청난이 이곳에서 저지른 일은 불개미에게 납치되어 발버둥 치다가 죽기 일보 직전 겨우 살길을 연 것뿐이었다.
‘설마 이 불개미가 저 신선의 애완동물인 것은 아니겠지? 아니, 죽인 건 본인이잖아? 난 겁만 주었는걸!’
그것도 자신의 손을 찧으면서 가까스로 준 겁이었다. 누가 보아도 자신이 피해자 아닌가?
청난은 불안한 모습을 연기하고 싶었으나, 근육이 다 발달하지 못한 탓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몰랐나 보군.”
신선은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발끝이 점차 아래로 향하더니 곧 청난과 같은 땅을 밟았다. 청난은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기에 땅을 밟고 서 있는 신발만을 겨우 볼 수 있었다. 그의 신발 위를 덮은 옷자락은 마치 강철로 만든 듯 조금의 나부낌도 없었다. 실로 주인은 닮은 옷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그 옷자락을 분석했더니 감히 그를 더 살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동했다. 호기심에 몸이 먼저 움직이고 마는 것은 전생에서부터 고쳐지지 않는 습관 중 하나였다.
청난의 눈동자는 망설임 없이 그의 다리, 허리, 가슴을 지나 그의 얼굴로 향했다.
그렇게 얼굴을 마주하니 청난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방금 전까지 날 서 있던 자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는 서글퍼 보였다. 그의 두 눈동자는 보는 사람을 홀리게 만들 것 같은 매력이 있었다. 그렇게 바라본 두 눈동자에 가득 담긴 것은 저를 익사시킬 것 같은 아득함이었다.
그는 눈앞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뺏긴 듯 허망해 보이기도 했고, 다신 볼 수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후회하는 것처럼도, 오랜 세월에 지친 것처럼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