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3)화 (3/111)

#3

“허억… 헉… 헉…….”

“으음… 청난아, 괜찮아?”

“하… 하… 괘, 괜찮아요.”

산에 오른 지 일각 정도가 지났다. 청난은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청난이 마을의 해결사인 건 분명했으나, 그는 두뇌파지 행동파가 아니었다. 논을 보고 ‘북쪽에 물길을 트는 것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역할이지, 손수 물길을 만드는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힘겹게 몇 걸음 더 걷자 수색 중이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먼저 청난과 주모를 발견하고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어어- 동재 어멈! 왔어?”

주모를 부르며 뛰다시피 다가온 이는 소를 잡는 백정이었다. 주모와 현재의 수색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던 백정은 뒤늦게 옆에 서 있던 청난을 보았다.

“청난이가 왔구나. 너희 아버지는?”

“서점 아저씨는 책 구하러 나갔대. 청난이가 짐작 가는 곳이 있대서 데려왔어.”

“몸도 약한 것이 고생하는구나. 동재를 찾으면 이 아저씨가 맛있는 걸 사 주마.”

“하하, 좋아요. 동재랑 같이 먹을게요.”

“그래, 그래.”

백정은 어린 청난을 귀찮아하는 기색은커녕 반갑게 맞이하였다. 한 명씩 모여 청난의 머리를 쓰다듬은 어른들은 금세 다시 흩어져 동재의 이름을 불러 대었다.

그동안 청난은 한 나무 아래로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앉아 흙을 한 움큼 쥐었다.

‘아직 촉촉해.’

화회초는 화기가 강한 풀인 탓에 주변의 땅을 메마르게 한다. 즉, 화회초가 가까워질수록 땅은 점점 건조해질 터였다.

그렇게 청난은 열두 곳의 흙바닥을 살펴보고서야 가장 가까운 어른이었던 백정에게 다가가 그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아저씨, 저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으음?”

백정은 청난이 가리키는 손끝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지금껏 지나온 곳과 특별히 달라 보이진 않았다. 청난은 마저 말을 이었다.

“대략 이각 정도 걸으면, 무척 더워질 거예요. 숨이 턱턱 막힌다 싶으면 그때부턴 풀 사이를 유심히 살펴야 해요. 동재가 그 사이에 쓰러져 있을지 몰라요.”

청난은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평온하였다. 그는 애써 어른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생의 권력과 현생의 숱한 오냐오냐로 인해 바뀌지 않고, 바꿀 생각도 없는 습관이었다.

“…….”

백정은 청난의 올곧은 표정을 잠시 보고는 곧 소리를 내지르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해 주었다.

청난의 말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었으나, 그가 이렇게 일을 해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어른들은 그 말에 동재가 눈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크게 안심하였다.

하지만 청난은 그럴 수 없었다.

‘땅이 너무 극단적으로 건조해졌어. 화회초 한두 뿌리만으로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야. 처음 예상한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해.’

청난은 무겁게 발걸음을 떼었다.

청난의 말대로 조금 더 걷자 그곳에는 화회초가 피어 있었다. 그 근방의 열기는 평범한 사람이 서 있기에는 너무나 뜨거웠기에 청난은 백정의 뒤에 업혀서야 가까스로 올 수 있었다.

청난은 현기증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땅에서 자란 화회초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이럴 수는 없어. 뭔가 잘못됐어.’

청난은 업힌 덕분에 올라간 시야로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화회초는 오직 이곳에만 피어 있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청난은 급격히 올라가는 기온을 느끼며 화회초가 얼마나 있을지 가늠해 보았었다. 많게는 수백 뿌리, 적게는 수십 뿌리는 피어 있으리라 예상했지 이런 광경은 예상하지 못했다.

화회초의 영향으로 건조해진 땅은 거의 모래사장처럼 변해 있었다.

황폐해진 땅 위에 피어 있는 화회초는 단 한 뿌리.

그렇다. 단 한 뿌리만이 위엄을 자랑하며 죽은 땅 위에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청난이 알고 있는 화회초 한 뿌리는 이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무엇을 놓친 거지?’

청난은 주모를 만나 이곳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풍경, 감각을 빠르게 되새김하였지만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고, 그것은 필히 위험할 테지.

‘우선 어른들을 내려보내자. 어떻게 말하지? 다른 곳을 찾아보자고?’

그들은 저기 나 있는 풀이 화회초라는 것도 모르고 있으니 적당히 둘러대면 위험한 곳은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청난이 변명거리를 고심하는 동안 어른들은 이 열기를 더는 버티지 못하겠는지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 근처에 있을 거야! 흩어져서 찾아보세!”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을 때, 청난은 그들의 발아래가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기로 인해 보이는 아지랑이라고 여기는 듯하였으나, 청난은 전생에 저것을 본 적이 있었다.

“아! 잠깐만요! 아저씨!”

청난은 급하게 소리쳤으나, 평범한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곧장 반응할 반사 신경을 가지지 못했다.

가장 앞쪽에 있던 사람의 발아래 흙이 파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깊고 넓어지며 한 사람 한 사람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아아악!”

구덩이 안으로 사람들이 휩쓸려 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개미지옥과 그곳에 떨어지는 개미 떼처럼 보였다.

그리고 백정의 등에 업힌 청난도 그 개미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덥다. 너무 덥다.

너무 뜨거워 몸속이 익어 버릴 것만 같았다. 청난은 괴로움에 발버둥 치고 싶었으나 그럴 힘도 나지 않았다. 허억, 허억……. 들이마시는 숨은 너무나 뜨거웠지만 잠시라도 멈추었다간 이대로 정신을 잃을 듯해 억지로라도 숨을 들이켜야 했다.

‘운기조식을 해야 해!’

운기조식은 본디 자신이 가진 영기를 사용하는 것이나, 청난의 몸이 지닌 영기는 너무나 미약한 까닭에 대지의 영기를 끌어다 써야 했다.

이것은 항간에선 사도의 술법으로 분류되는 것이었지만 정과 사를 나누다가 눈앞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찌 의를 행한다 할 수 있겠는가.

“후…….”

청난은 그제야 둥글게 말고 있던 허리를 펴고 옆으로 굴러 일어났다. 전생엔 그토록 고상했던 수사였건만, 지금은 굴러다니는 것쯤이야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청난이 주변을 둘러보니 의식을 잃고 쓰러진 주민들이 있었다.

‘하나… 둘… 셋… 네 명. 나보다 앞에 있던 사람들이야. 딱 나까지 말려든 모양이네. 이걸 불행이라 해야 할지, 행운이라 해야 할지…….’

제아무리 영기도 없는 나약한 몸이라지만, 가지고 있는 기억만큼은 이런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청난은 또다시 대지의 영기를 끌어와 쓰러진 주민들을 돌본 후에야 주변을 살펴보았다.

땅속에 만들어진 거대한 동굴. 청난은 이것만으로 이곳을 만든 존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화회초에, 불개미까지 있을 줄은 몰랐네.’

불개미.

그것은 무려 성인 남성 네다섯을 합친 것만큼 컸으며, 생김새와 습성은 개미와 유사했다. 화회초처럼 강한 화기를 지닌 땅에서만 서식하는 요마의 일종인데, 차이가 있다면 화회초가 자라는 땅이 점차 메말라 간다면, 불개미가 서식하는 지역은 그야말로 가뭄의 땅이요, 불모의 땅이 된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이것은 수기에 굉장히 취약해 수기의 술법을 쓴다면 간단히 퇴치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청난은 술법을 쓸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다만 어렵다.

조금 멍청해도 신체 건강한 이가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곳에 떨어진 이들은 여전히 의식이 없는데, 그들이 깨길 기다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청난은 고개를 돌려 쓰러진 마을 주민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청난이 기어 다닐 적부터 알고 지낸 이웃들이었다.

“역시 내가 해야겠네. 하하…….”

청난의 손끝이 떨려 왔다.

지난 생의 죽음이 평탄치 못했던 탓일까, 청난은 죽음이 두려웠다. 아니, 이것이 정상이던가. 청난처럼 죽음을 겪고도 살아 있는 자가 달리 없었으니, 제 고충을 털어놓으며 상담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청난은 심호흡을 하고는 마을 주민들과 있던 작은 굴을 벗어났다. 그러자 또 다른 굴들로 연결된 공간이 나왔다.

우르르르르르.

청난이 다시 움직이려던 찰나에 멀리서부터 땅울림이 전해져 왔다.

이곳의 주인이 돌아왔다!

그것이 이 ‘식량 창고’를 발견하기 전에 끝내야만 했다.

청난은 굴속으로, 그리고 또 그 안의 굴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더는 들어갈 곳이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그제야 멈추어 섰다.

“허억… 허억.”

청난이 품에서 꺼낸 것은 다섯 개로 쪼개진 매화나무의 가지로, 마름모를 닮은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여느 가지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해 보였다. 청난은 그중 한 개를 발아래에 묻었다.

이것으로 술법의 이 할을 끝냈다!

한 그루의 매화나무에서 자란 가지들은 서로를 연결하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청난의 부족한 영력을 매화가지의 특성이 채워 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네 개.”

청난은 손에 든 나머지 나뭇가지를 움켜쥐었다.

청난은 같은 일을 세 번 더 반복하였다. 다행히 이동하는 길목에서 불개미를 만나지 않아 옷이 조금 더 더러워지는 정도로 일을 해낼 수 있었다.

문제는 남은 하나였다.

청난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한숨을 절로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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