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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2)화 (2/111)

#2

“사존! 사존! 정신 차려 보세요! 제발, 제발요…….”

시끄럽게 부르짖는 목소리에 정신이 끌려 나왔다. 자신을 정신 차리게 만든 목소리는 어느새 울먹임으로 변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는 굉장히 익숙하고도 반가운 목소리였다.

‘아가…….’

비록 눈을 떠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으나, 그를 거둔 이후 매일 함께한 이 목소리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나의 제자, 백매. 그의 목소리로부터 슬픔이, 괴로움이 전해져 왔다.

‘평생 외로움을 모르고 살게 해 주고 싶었건만, 이 스승은 그것조차 해 줄 수가 없구나.’

“사존… 사존, 조금만 참으세요. 제자가, 제자가……. 흐윽… 흐끄윽…….”

백매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그걸 듣고만 있어야 하는 건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이 스승은 무사하다. 그리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천 근 같은 눈꺼풀은 아무리 달래도 뜨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이상 닥쳐오는 운명을 외면하기도 힘들었다.

백매야.

내가 없더라도 수선을 게을리하지 말거라.

너의 사제, 사매들을 챙겨 주면 좋겠구나.

너무 슬퍼 말아라. 나는 괜찮다.

너를 믿었고, 너를 아꼈다.

그와 자신이 대화가 부족했던 사이는 아니라 생각했건만, 마지막이 찾아오니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전하기에는 남은 시간도 기력도 부족했다. 그러니 선택하여야만 했다. 그에게 해야 할 마지막 말은 무엇일까.

메마른 입술을 힘겹게 벌렸다. 혓바닥이 그새 굳어 버린 것인지 짧은 소리를 내는 데에도 힘에 부쳤다. 수많은 생각을 스치고 나온 말은 그에게 반드시 해야 했던,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말이었다.

“너… 는… 신… 이…….”

아.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그 한 가지도 전하지 못하고 말았다. 행복을 바라던 제자의 슬픈 울음소리가 이 삶의 마지막이 되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은 저잣거리에도 지나는 발걸음이 두 손가락을 채 넘지 않았다. 그중 지어진 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 서점의 앞에는 열댓 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자신의 키만 한 빗자루를 들고 삭삭 바닥을 쓸고 있었다.

“에휴…….”

아이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오래된 빗자루는 이제 생을 다한 것인지, 같은 곳을 여러 번 쓸어도 주먹만 한 나뭇잎조차 쓸어 내지 못하였다.

아. 별것도 아닌 일임에도 짜증이 났다.

‘이게 다 어제 꾼 꿈 때문인 게 분명해.’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도 달갑지 않은 일인데, 심지어 종종 꿈에 나오는 친절함까지 베풀어 주었다. 그러니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어젯밤 꾼 꿈은 그 짧지 않은 인생 중에 하필이면 죽었을 때다!

오늘은 재수가 없을 것 같다.

바닥을 쓸고 있는 아이, 청난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청난은 전생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환생이란 건 꾸며진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말이 아니었던가? 과거의 진청난이었다면 온갖 고서적을 뒤적이며 이 의문스러운 현상을 연구했을지도 몰랐지만 지금의 청난은 아니었다.

청난은 이번 생마저 수선계에 몸담을 생각은 아주 조금도 없었다.

그는 전생에서 신선이 되고자 수련의 길을 걸었지만 우습게도 비승을 목전에 두고 생을 마감했었다.

그것도 제자 앞에서!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새롭게 태어난 후였는데, 심지어 그리 행복하지도 못했다.

그때 당시, 청난은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막 태어난 뇌는 무엇도 투과하지 못한 채 부정적인 감정을 곧이곧대로 흡수해 버리고 말았다. 그 시절 청난은 이 끝나지 않을 듯한 형벌에 괴로워하며 차라리 생이 끝나길 바라기도 했었다.

하지만 새 삶은 소망을 들어주기는커녕 더욱 고통스럽기만 했다. 어느 날 내린 지독한 폭설에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잃고 만 것이다.

싸늘한 시체의 팔에 안긴 청난은 자신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구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드디어 끝이 난다고 생각했던 찰나에, 지금의 양아버지에게 발견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한 삶을 살다 보니 전생의 고통도 서서히 잊을 수 있었다. 간혹 꿈을 꾸지 않았다면 자신을 그저 망상을 좋아하는 아이라 생각해 버렸을지도 몰랐다.

누구나 우러러보던, 전생의 이름 높은 수사로서의 삶에 비한다면 누가 들어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이었지만, 청난은 이런 삶이 좋았다.

“후…….”

땡볕 아래에서 오래 서 있던 탓에 슬슬 현기증이 일었다. 청난은 애써 강렬한 열기와 싸우려 들지 않고 순순히 빗자루를 정리했다. 이런 날에는 일찍 들어가 쉬는 것이 상책이었다.

청난의 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책을 사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책을 여유롭게 읽을 형편이 되지 못하기도 하였으나, 청난의 양아버지, 청운의 취향이 대중적인 것에서 벗어났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런데도 이 서점 부자가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책을 많이 읽었고, 그 덕에 여러 방면에서 아는 것이 많은 덕분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면 이 부자를 찾아왔고, 답례로 생필품이나 음식 등을 듬뿍 나누어 준 것이다.

청난이 빗자루를 제자리에 두고 온 사이 가게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손님인가?’

청난이 천천히 문을 밀고 들어가자 예상대로 가게 안에는 손님으로 온 주막의 주모가 서 있었다.

문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녀는 입술을 깨물더니 대답을 재촉하듯 빠르게 말을 꺼냈다.

“내 아들, 내 아들 동재가 사라졌어. 그 아이는 이제야 열 살인데 대체 어디에….”

“진정하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청난의 목소리는 어른들 못지않게 차분했고, 말끝에는 힘이 실려 있어 듬직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것은 큰일이 아니며, 그가 금방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힘이 있었다. 덕분에 주모는 진정하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내가 좀 아팠어. 근데 어제 우리 집에 어떤 수사들이 묵고 갔거든. 이곳에 무슨 약초를 찾으러 왔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동재가 그걸 찾으러 산에 간 것 같아. 요즘 산에서 흉흉한 소문도 도는데, 큰일이 난 건 아니겠지?”

그녀의 말대로 최근 인근 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근처에 있는 수선 문파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이런 작은 마을의 일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서, 의례적인 답변도 주지 않았다.

“그 수사들 아직 주막에 있나요?”

“아니. 이른 아침에 나갔어. 동재가 안 보인 것도 그 무렵부터였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동재랑 친하잖아요.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헤헤.”

어른스럽던 청난의 목소리가 어느새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것처럼 변했다.

청난은 자신의 턱을 문지르며 고심하는 시늉을 하더니, 주모를 올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 약초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세요?”

“어, ‘화회초’라 하였어. 들어 본 적 없는 데다 독특한 이름이라 그건 확실히 기억해.”

청난이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화회초.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번 생이 아닌 전생에서.

화회초는 강한 화기를 품은 땅에서만 자라는 탓에 화(火)계 수사들이 특별한 방법으로 배양해야만 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자란다는 것은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청난이 다시 태어난 이후엔 그것이 마냥 불가능하다고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삼백 년 전부터 오계의 균형이 기울기 시작한 탓이다.

‘그래도 아직까진 심각한 지경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적어도 자신이 자연사하기 전까진 괜찮을 줄 알았다.

만약 화회초가 자연적으로 서식하게 된 것이 사실이라면, 오계의 균형은 이미 망한 지 오래라는 뜻이었다.

청난은 꿈틀대는 눈썹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청난은 더는 수선계와 얽힐 생각이 없었지만 이 일에는 책임감을 느꼈다. 오계의 불균형의 원인은 수(水)계 수사의 부족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청난이 각주로서 이끌었던 문파, 수야각이 바로 수계를 대표하는 문파였다.

청난은 어린 소꿉친구를 찾는 것 이상으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볼 필요를 느꼈다. 청난은 다시금 어린 말투로 그녀를 달래 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단지 소문일 뿐이잖아요. 원래는 산짐승도 살지 않았던 산인데 갑자기 요마가 나오겠어요? 잠깐 길을 잃었을 거예요.”

아니었다.

요물이 괜히 요물이겠는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조차 갑작스레 생길 수 있는 것이 요물이었다.

하지만 청난은 남을 속일지라도 안심시키는 것을 우선시하였다.

“짐작 가는 곳이 있어요. 제가 찾아올게요.”

“아니다. 아줌마와 함께 가자. 내가 어떻게 널 혼자 보내겠니? 아줌마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다.”

“하하, 좋아요.”

청난은 주모와 함께 가게 밖으로 나가 한 발짝 앞장서서 걸었다. 그리고 뒤를 살짝 돌아보고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어서 가요, 아주머니.”

“뛰지 마라, 뛰지 마.”

청난이 이렇게 발걸음을 서두르는 것은 단순히 주모를 안심시키려는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내 걱정이 과한 것이라면 좋을 텐데.’

속에서부터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화회초로 끝난다면,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보다 더한 것이 나온다면, 이 마을에 재앙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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