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밤은 어둡고, 산은 울창했다. 그리고 이곳에 서 있는 자는 단 두 명의 사제.
이 아래에서는 그들의 사형제가 한바탕 연회를 벌여 떠들썩하건만, 그에 비해 이곳은 나뭇잎 사이로 달빛이 비칠 뿐 마냥 차갑고 스산하기만 하였다.
이런 분위기는 썩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상황이 싫지 않은 것은 아마도 연회의 붉은 등불이 이곳까지 비치는 탓이거나 혹은, 그와 함께 있기 때문이겠지.
“이제 내려가자꾸나. 연회의 주인공이 빠져서야 주최자의 면이 살겠느냐.”
“주인공이라기엔, 저들이 축하하는 건 사존과의 이별인데도요?”
“저런, 무엇이 널 심통하게 만들었을꼬.”
“……너무 어린애 취급 하십니다.”
“새삼스럽게.”
확실히 이 아이는 벌써 약관이 되었으니 이러한 말투는 과했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태도를 대체 언제 바꿔야 한다는 말인가. 열다섯부터 어른 취급을 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열여섯부터? 선은 명확하지 않았고, 그는 여전히 자신의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정말로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 이유로 그의 가벼운 불평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이별이 뭐 그리 대수라고. 헤어짐이 있어야 만남도 있는 법이란다. 더욱이 억울할 일도 아닌데, 축하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 수선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그 길을 걷는 것이잖느냐. 아가, 너도 이 스승을 축하해 주려무나.”
“…….”
“아이고, 알았다. 그만 뚱해 있거라.”
“…….”
“옳지.”
나는 곧 죽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사람이 아닌, 신으로서.
진(秦)가의 둘째, 청난(靑蘭).
명문 수사 문파 ‘수야각(水㴬閣)’의 각주.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을 가진, 신에 가장 가까운 수사[仙近修士].
그는 무수한 이명(異名)만큼이나 많은 업적을 이룩했다. 그러니 뭇사람들이 그가 우화등선하여 신선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확신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이제 그때에 이르렀다.
맑은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쳤다. 그것은 신선이 되는 마지막 관문인 천겁(天劫)의 증조였다. 범인(凡人)은 감히 이겨 낼 수 없는 시련이기에, 청난은 다른 이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내일 낮 해가 뜨기 전에 이곳을 떠나기로 하였다.
저 아래의 연회는 그런 청난과의 이별을, 그리고 새로운 신선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원하는 자리이다.
“너에게 내 모든 것을 전수했으니, 나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겠구나.”
청난은 고개를 살짝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으나, 둥글게 호를 그린 입매만은 볼 수 있었다.
‘괜한 걱정을 했구나.’
이 아이는 여린 심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저와의 이별을 마음 아파 할까 걱정했었다. 설령 좋은 일이라 하여도 이별은 이별이니. 다행히도 그는 생각보다 더 강하게 자랐다.
“너는 내 반쪽만 하였었는데, 언제 그리 컸더냐.”
청난이 자신의 허리 옆에서 땅과 수평으로 손을 두고 흔들었다. 이 제자는 그것보다 곱절가량 컸다.
“모두 다 사존 덕분입니다.”
그의 입꼬리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올라 내려올 줄을 몰랐다.
걱정하던 것이 사라졌으니, 청난 또한 절로 기뻐 입꼬리를 올렸다. 이러다 입이 먼저 승천하는 것은 아니겠지? 청난은 스스로의 생각이 우스워 푸흣 웃음을 내뱉었다.
“이리 기뻐할 줄 알았더라면 네게 일찍 전수해 줄 것을 그랬구나.”
“사존의 뒤를 이을 수 있는데 어찌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구나. 이젠 정말 들어가자. 이러다 내 형님이 목 빠지다 못해 거북이가 되시겠어.”
청난은 몸을 돌려 홍롱등 불빛이 흘러나오는 강당을 흘긋 바라보았다. 이제 저곳에서 다른 사형제들과 덕담을 나누고, 술잔을 나누며 하루를 정리하면 어느새 내일이 되겠지. 그러면 나는 떠나고, 그는 남아 내 삶의 흔적인 이곳을 지켜 줄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흥겨웠는데, 이 잠깐의 생각 탓에 청난은 심장이 빠르게 식는 듯했다. 그는 애써 미소를 짓고는 농담을 던지듯 말을 건넸다.
“이 스승을 너무 기다리게 하지 않을 테지? 네 재능이라면 필히 하늘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니 수련을 게을리… 아가?”
그런데 대답도, 발걸음도, 뒤로 뻗은 자신의 손을 맞잡는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청난이 의아하여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어찌 그러고 있어? 어디 몸이 좋지 않은 게야?”
청난은 성큼 걸어가 그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짚었다. 혹시나 몸이 안 좋은데도 애써 이 스승의 아쉬움을 달래 준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난은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의 맥이 너무나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습관처럼 짚었던 그의 맥이,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낯선 것처럼 느껴졌다.
어째서?
무언가 기이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청난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저 제자의 얼굴을 보려는 것뿐인데 긴장되는 연유는 무엇일까.
그는 오늘도 저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고, 그 모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청난이 그의 손목에 올린 손가락 끝으로 영기를 움직였다. 이 기이함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하지만 그가 한발 물러나 청난의 손에서 벗어난 탓에 수포가 되었다.
그는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평소처럼 나긋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단지, 사존을 떠나보낼 생각에 조금 아쉬워서 그럽니다.”
청난은 텅 비게 된 손을 가벼이 쥐고는 소매 안에서 양손을 포개었다. 마치 잠에서 막 깬 것처럼 멍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청난은 나직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조금 아쉬울 뿐이더냐? 섭섭하구나. 나는 많이도 아쉬운데.”
“…….”
“알아, 알아. 내가 걱정할까 말을 아끼는 것 아니더냐. 하지만 걱정 말아라. 이 스승은 네게 다시 돌아올 테니.”
신선은 인계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하지만 단지 애제자를 보러 올 뿐인데, 그런 사소한 것까지 간섭이라고 하겠는가? 그렇다 하여도, 어쩌겠는가. 날 잡아다 묶기라도 하게?
당장은 바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난은 오래도록 제자와 생이별할 생각은 없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공사다망한 사존을 붙잡겠습니까.”
“가지 않겠다는 게 아니란다.”
“사존.”
“응?”
“선사께서는 돌아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 뭔가 이상하다.
“아니,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제자의 손이 청난의 머리 위로 올라온 순간 청난은 재빨리 몸을 숙이고 단숨에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휘익!
청난이 손을 크게 휘두르며 영기를 분출시키자 그가 허리를 뒤로 꺾었다. 청난의 손에서 휘둘러진 위협적인 영기는 그의 높은 콧날을 스치듯 지나가 뒤쪽에 있던 두꺼운 나무를 두 동강 내었다.
파악-! 부서진 나무가 땅에 떨어지며 먼지를 일으켰다. 그사이 그는 뒤로 크게 도약하며 청난에게서 멀어졌다.
“사존,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제 머리 위로 올라오던 그의 손끝은 영기를 내뿜지도, 날카로운 쇠붙이를 잡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이 그를 저리도 기쁘게 만든 것이지?
청난은 다시금 제자에게 다가가려 하였다. 그의 손끝이 움찔거렸고, 그의 온몸에 넘쳐흐르는 영기는 언제든 제 주인을 지킬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청난은 다시금 멍해지고 말았다. 어디선가 꽃 내음이 났나. 새가 지저귀었나. 땅이 흔들렸던가. 시야가 흔들렸던가. 오감이 자신의 것이 아닌 듯 세상이 엉켜 들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든 생각은 하나였다.
‘내가 왜 그랬지?’
청난은 손끝에 집중하던 영기를 풀어 내었다.
“……아, 미안하구나. 내가 피곤한 모양이야. 걱정하지…….”
푸욱-.
살이 가르는 소리에 청난은 말을 끝내지 못하였다. 고개를 숙이자 자신의 배를 관통한 날카로운 날붙이가 보였다. 통증은 뒤늦게 찾아왔다.
쿨럭-. 피를 한 움큼 토하고서야 자신의 몸이 둔감해졌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피 냄새에 섞여 달콤한 꽃 내음이 풍겨 왔다. 이것은 이 근처에 서식하는 식물의 향이 아니었다.
“이… 이건……. 컥!”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몸을 따라오지 않고 여전히 위를 향한 눈동자에 상대의 모습이 비쳤다.
그는…….
청난은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었다. 영맥 또한 막혀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뚱이는 차디찬 흙바닥 위로 내던져졌다.
털썩-. 청난의 무게만큼 먼지가 일어나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아니, 먼지가 없었다 하더라도 제 시야가 정상적이었을 것 같지 않았다.
전신이 싸늘해지는 게 느껴졌다.
관통된 곳으로부터 흘러나온 피가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고개조차 돌릴 수 없어 힘겹게 눈동자를 돌릴 뿐이었다. 사내는 아까 선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저를 비웃는 듯이.
그는 누구인가.
그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청난은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시선을 거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