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 변함없는 우리의 일상 (18/20)
  • 18. 변함없는 우리의 일상

    약 한 달간의 산후조리원 생활을 끝으로 무사히 퇴원하고 집으로 온 지 몇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두 사람의 아기, 그러니까 세빈이는 그동안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세원이 자신의 말대로 가사 도우미를 고용했고, 하빈은 가사 도우미 아줌마와 함께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아줌마가 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아기를 보는 일은 직접 하고 싶다며 하빈도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였다.

    세원의 어머니는 하빈이 집으로 온 뒤에 두어 번 방문해 세빈을 보고 갔다. 올 때마다 바리바리 반찬이며 아기 육아용품을 싸 들고 와 하빈에게 건네곤 했다.

    하빈은 그런 세원 어머니의 마음씀씀이에 기분이 좋아지는 한편으로는 마음이 이상했다. 자신에게 엄마가 있었더라면 저렇게 챙겨 주셨을까, 싶어져서였다.

    지환은 바쁜 와중에도 종종 하빈에게 전화를 걸어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하빈은 집에서 혼자 지내며 말할 사람이 오직 세원과 도우미 아줌마밖에 없던 터라 지환과의 대화가 너무 즐거웠다. 예전 같았으면 귀찮았을 수다도 지금은 조잘조잘 끊임없이 이야기를 늘어놨다.

    출산 이후 하빈의 생활은 그렇게 평범하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오늘은 아줌마도 일찍 퇴근하고 하빈과 세빈 단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원도 일찍 퇴근한다고 했으니 곧 올 때가 다 된 참이었다.

    저녁은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는데……. 하빈이 세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는 아기의 눈을 바라봤다. 자신을 닮아 큰 눈이 참 예뻤다.

    “코는 아빠를 좀 닮은 것 같다.”

    하빈이 중얼거리며 세빈의 코를 아프지 않게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허우적거리는 세빈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 마? 싫어? 아기를 놀리는 데에 재미가 들릴 것 같았다.

    “손도 작고 발도 작고.”

    세빈의 자그만 손발을 조물조물거리며 하빈이 말했다. 세빈은 하빈에게 안아달라는 듯이 칭얼거렸다. 결국 하빈은 소파에 눕혀뒀던 세빈을 다시 안아 들고 거실을 서성였다.

    “잠이 오나? 왜 이렇게 칭얼거리지…….”

    한참을 토닥이자 세빈이 그제야 잠이 들었다. 거실에 꺼내 놓은 침대에 아기를 눕히고 한숨 돌린 하빈이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세원 씨는 퇴근했으려나?”

    하빈이 전화를 걸며 티비를 켰다. 티비에서는 때 지난 드라마가 다시 방영되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티비를 쳐다보고 있던 하빈이 전화를 받는 세원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세원 씨.”

    [어, 전화했네.]

    “퇴근하고 있어요?”

    [응. 집에 가다가 마트 들려서 고기 좀 사 가려고. 고기 먹고 싶다고 했잖아.]

    “네. 근데 집에도 고기 있는데.”

    [집에 고기 있어?]

    “아주머니가 사다 줬어요.”

    [그래? 음료수는?]

    “다 있어요. 그냥 와도 돼요.”

    [그럼 빨리 가야겠다.]

    “네. 조심해서 와요.”

    [알았어. 세빈이는 뭐 하고 있어?]

    “조금 칭얼거리더니 재우니까 잠들었어요.”

    [거실에서 자?]

    “네. 저 티비 보는데 옆에서 자고 있어요.”

    [방에서 재우고 티비 편하게 보지.]

    “깼는데 못 알아챌까 봐 걱정돼서 그냥 밖에다 재웠어요.”

    [잘했어. 금방 갈게.]

    전화를 끊은 하빈이 금세 드라마에 푹 빠져 집중했다. 아기는 잘도 잠들어 있었다. 세원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세빈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하빈은 보고 있던 드라마의 다음 편이 보고 싶어 다시 보기를 찾던 중이었다. 세원의 등장에 하빈이 후다닥 달려가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세원 씨, 배고파요.”

    “얼른 밥 차려서 먹자.”

    “고기 먹고 싶어요. 고기.”

    “그래, 고기 구워 먹자.”

    세원이 고기 구울 준비를 하는 동안 하빈은 아기가 잘 자는지 확인한 뒤 담요를 덮어 주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깨면 울겠지? 힐끗 밖을 내다보고 다시 세원에게 다가가 뒤에서 폭 끌어안았다. 하빈의 손길에 세원은 웃으며 돌아섰다.

    “배고프다면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얼른 차려야 빨리 먹지.”

    “그래도 세원 씨랑 좀 이러고 있고 싶은데.”

    “밥 먹고 붙어 있어도 안 늦어.”

    “그러다 아기 깨면 또 바빠지잖아요.”

    “그런가?”

    “그렇죠.”

    하빈이 세원의 가슴팍에 이마를 비비적거리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의 향기가 몸 안에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세원은 그런 하빈을 마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잠시 애정을 나누던 두 사람은 하빈의 배가 꼬르륵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떨어져 밥 먹을 준비를 이어 갔다.

    불을 올린 불판에 고기를 올리자 익어 가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하빈은 설레는 마음으로 고기가 어서 익길 기다렸다. 세원은 익은 고기부터 하빈의 입에 넣어 주며 얼른 먹으라고 말했다.

    아기가 울 때가 다 됐는데……. 하빈이 또 거실 쪽을 힐끔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거실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원이 서둘러 거실로 나갔다. 그가 세빈을 안아 들고 달래는 동안 하빈은 분유를 탔다. 지금 세빈이 밥 먹여야 할 것 같은데.

    고기를 불 위에 올려놓은 채로 분유를 타다 고기를 하나 집어 먹고 또 분유를 흔들고, 하빈은 주방에서 정신없이 바빴다.

    “여기요, 세빈이 밥.”

    “내가 먹일 테니까 가서 너도 밥 먹어.”

    “내가 빨리 먹고 세원 씨랑 교대해 줄게요.”

    “됐어, 천천히 먹어.”

    하빈이 후다닥 식탁으로 달려와 너무 익어 버린 고기를 입안에 허겁지겁 집어넣었다. 질긴 고기가 잘 씹히지 않아 밥도 있는 대로 욱여넣었다. 아기 키우는 거 한번 엄청 힘드네…….

    하빈이 대충 밥을 먹고 세원에게 다가가자 분유를 다 먹였는지 세빈을 재우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게요. 하빈의 말에도 세원은 괜찮다며 세빈을 안고 천천히 토닥이며 잠을 재웠다.

    그의 손길에 세빈은 얌전히 잠에 빠져들고 다시 침대로 옮겨졌다. 아기들은 이렇게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 덕분에 하빈은 정신이 없었다. 세원은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고기를 구워 하빈의 입에 넣어 주며 더 먹으라고 말했다.

    “체할 것 같아요…….”

    “너무 급하게 먹었어?”

    “네.”

    “다음부터는 내가 세빈이 볼 테니까 그냥 천천히 먹어.”

    “그래도…….”

    “체해서 둘 다 고생하는 것보다 그게 낫지. 안 그래?”

    세원의 말에 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배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속 아파……. 결국 하빈은 식사를 마치고 소화제를 먹어야 했다.

    세빈은 한참 잠을 자다 다시 깨어나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또 뭐지? 하빈이 허둥지둥 아기를 살폈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세원은 쉬 싼 게 아니냐며 기저귀를 갈아야겠다고 일어났다.

    “세원 씨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응? 나도 몰라.”

    “근데 나보다 잘 아는 것 같아…….”

    하빈이 신기하다는 듯이 세원을 쳐다보자 그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찍는 거야.”

    “그게 뭐야!”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보는데 거기 나오는 대로 해보는 거야.”

    “세원 씨 또 회사 가서 이것만 검색하고 있어요?”

    하빈의 물음에 세원은 어색하게 고개를 저으며 일도 한다고 대답했지만 이미 다 들키고 말았다. 그의 귀여운 행동에 하빈은 웃으며 세원의 팔뚝을 찰싹 때리고는 그러면 안 된다며 잔소리를 늘어놨다.

    “회사 가면 일을 해야죠! 아기 보는 건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돼요.”

    “아줌마가 잘 알려 줘?”

    “네. 근데 제가 잘 못하는 것 같긴 한데…….”

    하빈이 어설픈 손놀림으로 기저귀를 채우자 옆에서 보고 있던 세원이 그래도 잘 했다며 손뼉을 쳤다. 세원의 박수 소리에 놀란 세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며 하빈이 웃음을 터뜨렸다.

    “세빈이가 깜짝 놀랐나 보다.”

    “그러게. 조심해야겠다.”

    “소리 나는 거 좋아하려나? 딸랑이 사 줄까요?”

    “내가 내일 집에 올 때 백화점 들러서 사 올까?”

    “뭘 백화점까지 가서 사 와요. 그냥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되지.”

    하빈이 소파에 폭 엎어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육아용품 전문 쇼핑몰에서 이것저것 검색하며 장바구니에 넣고 있는데 세원이 뭘 그렇게 보고 있냐며 하빈의 위로 올라탔다. 짓눌리는 몸에 하빈이 끙끙거리며 핸드폰을 떨구고 돌아눕자 세원이 입을 맞추며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우응……. 잠깐만…….”

    “왜.”

    “아기 아직 안 자는데…….”

    세빈이 침대에 누워 눈을 깜빡이며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세원은 잠시 생각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세빈을 안아 들고 빨리 재워야겠다며 등을 쓰다듬었다. 하빈은 씻고 나오겠다며 욕실로 쌩하고 들어가 버렸다.

    오늘이야말로 드디어, 오랜만이구나.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하빈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까지도 세빈은 칭얼거리며 울고 있었다. 아직도 안 자네……. 하빈이 다가가 세빈을 받아 안고 토닥이며 어르고 달랬다. 세원은 자신도 씻고 나오겠다며 뒤를 부탁하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얼른 좀 자자, 응?”

    하빈이 세빈에게 입을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냥 울기만 하던 세빈은 하빈의 손길에 눈물을 그치고 훌쩍이며 하빈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세빈이 졸려?”

    하빈이 묻는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목을 감싼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빈이 잠들었다.

    잠든 세빈을 방에 있는 침대에 눕힌 하빈이 안방으로 들어와 샤워 가운을 풀어헤쳤다. 드러난 배에 아직 선명한 수술 자국을 하빈이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샤워가운 차림의 세원이 들어와 침대 위로 올라왔다.

    “아기는 자?”

    “네. 방에다 재워 놨어요.”

    “잘했네. 엄마 품에서 더 잘 자는 것 같아.”

    “역시 내가 엄마는 엄마예요.”

    하빈이 뿌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자 세원이 그렇게 좋냐며 장난스럽게 하빈의 볼을 앙 깨물었다. 하빈이 꺄르륵 웃음을 터뜨리며 세원의 목을 끌어안았다.

    세원이 천천히 하빈의 샤워가운을 벗겨냈다. 알몸이 된 하빈은 세원의 밑에서 꼼지락거리며 이불에 몸을 파묻었다. 세원은 자신도 가운을 벗어 던지고 하빈의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격렬한 키스가 이어졌다. 숨 쉴 틈 없이 파고드는 혀에 하빈이 헐떡이며 세원의 어깨를 붙잡았다. 부드러운 살결이 만져졌다. 세원은 하빈의 허리를 살살 어루만지며 간지럽히다 손을 올려 가슴을 움켜쥐었다. 부어서 뭉쳐 있던 가슴이 손아귀에 가득 들어찼다.

    “아앙……. 아, 좋아…….”

    하빈이 고개를 숙이고 세원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세원이 거친 손길로 가슴을 애무하며 목을 씹어대듯 입을 맞췄다. 자국이 생기든 말든 하빈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움찔거렸다. 세원은 한쪽 손을 내려 하빈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다가 쭉 올라오며 등을 쓰다듬었다.

    하빈의 가슴을 주무르던 세원이 밑으로 내려가 꼭지를 앙 물고 빨아들였다. 젖이 나오려나. 혀로 핥으며 쭉쭉 빨아대자 하빈이 숨을 헐떡이며 가슴을 들썩였다. 자극적인 그의 행동에 온몸이 짜릿했다. 하빈이 세원의 머리카락을 꽉 붙잡고 애절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 어떡해……. 세원 씨…….”

    “어때, 좋아?”

    세원이 물었다. 그는 이로 젖꼭지를 잘근잘근 씹으며 하빈을 놀리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쭉 빨아들이며 혀로 유두를 자극했다. 간질거리는 가슴에 아래가 서 버릴 것 같았다.

    하빈이 손을 내려 제 페니스를 붙잡으려 하자 세원이 하빈의 손을 제지하고 밑으로 내려와 배꼽을 핥았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입을 맞췄다.

    “아……. 후으…….”

    커다란 손이 페니스를 붙잡자 반쯤 서 있던 아래가 놀라 뻣뻣하게 서 버렸다. 세원은 하빈의 아래를 붙잡고 느긋하게 흔들며 더 아래로 내려와 끝을 입에 물고 쭉쭉 빨아들였다.

    “아흑! 아앙, 앗!”

    아찔한 느낌에 하빈이 다리를 접어 올리고 바들바들 떨며 몸을 일으켰다. 세원이 손으로 하빈의 가슴팍을 짓누르며 다시 눕히고는 하빈의 페니스를 입 안 깊이 집어넣었다.

    춥춥 빠는 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아, 흐으……. 하빈이 몰려오는 사정감을 참기 위해 이불을 꽉 붙잡고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

    세원은 그러거나 말거나 하빈의 고환을 만지작거리며 페니스를 빨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빈이 세원의 머리를 붙잡고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갈, 것 같아요……. 하……. 그만…….”

    그의 말에 페니스를 쑥 빼낸 세원은 몸을 일으켜 제 페니스를 붙잡고 살살 흔들었다. 하빈은 세원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페니스를 붙잡았다. 시키지도 않았건만 잘도 펠라티오를 따라 하고 있었다.

    그가 했던 것처럼 끝을 입에 물고 빨아들이다 끝까지 쭉 밀어 넣고 앞뒤로 움직였다. 하빈의 행동에 세원이 머리채를 붙잡고 작게 신음을 흘렸다.

    “하…….”

    “우응, 읏.”

    하빈이 커다란 페니스를 입에 물고 욱욱거리며 빨다가 빼내며 손으로 빠르게 흔들었다. 세원은 하빈의 손을 겹쳐 잡고 흔들며 입을 맞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원이 사정을 하자 밑에서 진득한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손을 적시는 세원의 정액을 하빈이 만지작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얼른 해요…….”

    하빈의 말에 세원은 잠시 기다리라며 몸을 일으키고는 콘돔을 가져왔다. 하빈이 웬 콘돔이냐며 묻자 세원은 피식 웃으며 콘돔을 끼우고는 말했다.

    “둘째는 안 될 것 같아서.”

    “그게 뭐예요!”

    “그냥 콘돔 끼고 하는 게 낫겠어.”

    “세원 씨도 웃기다니까…….”

    웃으며 누워 다리를 벌리자 세원이 다리 사이로 자리를 잡았다. 구멍 입구를 지분대며 엄지손가락을 밀어 넣자 오랜만의 행위에 뻣뻣하던 밑이 차츰 벌어졌다. 하빈은 꿈틀대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하아……. 빨리…….”

    조르는 목소리에 세원이 페니스를 붙잡고 하빈의 밑으로 다가가 천천히 삽입했다.

    “괜찮지?”

    “네…….”

    하빈이 팔을 뻗자 세원이 마주 안아 주었다. 두 사람이 꼭 달라붙었다. 몸을 맞댄 채 천천히 하빈의 안으로 들어가던 세원이 깊숙한 곳을 찔러 들어왔고, 하빈이 신음을 흘리자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흐, 으앙! 앗! 아앙, 하으, 읏!”

    거칠게 퍽퍽 쳐올리는 세원의 허리 짓에 하빈은 흔들리며 교성을 내질렀다.

    침대가 삐걱거리고 하빈은 눈물을 매단 채 울먹이며 신음을 터뜨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온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버둥거리던 하빈의 다리가 그의 허리를 꽉 조였다. 세원은 하빈의 엉덩이를 바짝 붙잡아 벌리고 더욱 거칠게 밀어 넣었다.

    “하앙, 앗, 흐응, 흐, 읏.”

    퍽퍽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진 끝에 하빈이 절정에 오르며 사정했다. 그럼에도 세원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계속해서 파고드는 그의 페니스에 하빈은 다시 아찔해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세원은 사정하고 나서야 하빈을 놓아 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빈은 바들바들 떨며 이불을 붙잡았다. 예쁜 입술에서는 헐떡이는 숨결이 새어 나왔다. 세원은 하빈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며 허리를 번쩍 들어 올려 엎드리게 하고는 다시 뒤에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으, 아앙……. 앗…….”

    엎드린 몸을 지탱하던 하빈의 팔이 꺾여 자세가 무너졌다. 세원이 골반을 단단히 붙잡으며 하빈의 안을 계속해서 쳐올렸다. 철썩이며 허벅지와 엉덩이가 맞닿았다.

    아흐, 앙! 앗! 안을 푹푹 찌르는 세원의 페니스에 하빈이 눈을 감고 이불을 움켜쥐며 다시 또 사정했다. 이미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정신없이 관계를 갖고 난 뒤, 하빈이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세원은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빈은 지친 몸으로 소파에 풀썩 엎어졌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온 세원은 지치지도 않는지 하빈에게 다가와 또 몸을 치댔다.

    “으응, 하지 말아요.”

    귀찮다는 듯이 세원을 밀어냈지만 그는 끈적한 손길로 하빈의 몸을 더듬었다.

    “아, 세원 씨! 방금 했잖아요!”

    “또 하고 싶네.”

    “지치지도 않아요?”

    “또 하고 싶지 않아?”

    “피곤해서 좀 쉬고 싶어요.”

    하빈이 울상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때 마침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빈이 벌떡 일어나 방으로 튀어가자 세원이 뒤따라 들어와 아기를 받아 들었다.

    “내가 세빈이 볼 테니까 가서 자. 이부자리 정리해 뒀어.”

    “그래도…….”

    “피곤하다며. 안 자면 또 괴롭힌다.”

    세원의 말에 하빈이 얼른 방으로 들어가 침대 속으로 쏙 숨었다. 세빈을 안고 침대에 걸터앉은 세원은 하빈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얼굴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잘 자.”

    “세원 씨도 세빈이 얼른 또 재우고 와서 자요.”

    “알았어, 금방 올 테니까 먼저 자.”

    “네.”

    * * *

    돌아보면 느린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빠르게 지나가 버린 일 년이었다. 처음 형의 부탁을 받아 세원을 만나고, 얼마 전 세빈을 낳기까지 많은 일이 일어나는 동안 시간은 금세 흘러가 버렸다. 그동안 자신도 많이 자라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옛날과 비교하면 아주 많이 행복했다.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복에 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나 싶다. 돈과 시간에 쫓겨 허덕이던 삶은 멀어지고 그와 함께하며 자신의 일상을 사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하빈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세원과 함께한 덕분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큰 행운과도 같았다.

    하빈은 잠에서 깬 채 세원의 얼굴을 바라보느라 다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따금 이렇게 그가 잠든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기분이 이상했다. 마음 한쪽이 시린 느낌이었다.

    세원을 한참 쳐다보던 하빈이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짧게 입을 맞추고는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세원은 자연스럽게 하빈을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하빈은 다시 눈을 감았다.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싶었다.

    “어젯밤에 잘 못 잤어?”

    “네?”

    “새벽에 깼던 것 같은데.”

    아침에 세원이 밥을 먹다 말고 하빈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냐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하빈이 잠시 후에야 기억이 났는지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자다 깼는데 잠이 안 와서 세원 씨 보고 있었어요.”

    “그랬어?”

    “나 때문에 잘 못 잤어요?”

    “아니야, 그런 거.”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하도 치근덕대길래 알았지.”

    “그게 뭐예요!”

    하빈이 투덜거리며 발로 세원을 건드렸다. 아기 의자에 앉아 있던 세빈이 그 모습을 보며 혼자 장난을 치고 있었다.

    세원은 웃으며 세빈의 손에 들려 있던 숟가락을 뺏어 들고 이유식을 퍼 입으로 가져갔다. 먹기 싫다며 입을 벌리지 않는 세빈에 세원은 입술을 간지럽히며 밥을 먹이려 했다.

    요령껏 세빈의 밥도 먹이고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랜만에 다 같이 외출할 준비를 했다. 세원의 본가에 갈 생각이었다.

    더구나 오늘은 특별히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하빈은 더욱 신경 써서 세빈의 옷을 갈아입히고 출발했다. 세원은 뭔들 안 예쁘겠냐고 말했지만 더 예뻐야 한다며 하빈이 고집을 부렸다.

    “머리핀은 또 왜.”

    “이게 더 귀여우니까…….”

    “애가 불편하다잖아. 찡찡거리네.”

    “조금만 참아, 세빈아. 아이고 참나…….”

    세빈이 칭얼거리며 머리에 꽂은 핀을 잡아 뜯었다. 그리고는 아프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하빈은 하는 수 없이 조심조심 머리핀을 빼고 머리를 정리하며 세빈을 어르고 달랬다. 그제야 울먹이던 세빈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하빈은 그사이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던 세빈의 손을 잡아 내렸다. 손 그만 빨아. 하빈의 말에 세빈은 뾰로통한 얼굴로 입을 내밀었다.

    몇 번 왔다고 제법 익숙하게 세원의 본가로 들어가자 가족들은 이미 모여 있었다. 세원의 등장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헐레벌떡 다가오며 세빈부터 찾아 댔다. 하빈은 웃으며 세원의 어머니에게 세빈을 맡기고 거실로 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가족들은 세빈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기가 엄마를 많이 닮았네. 너무 예쁘다.”

    “저 많이 닮았어요?”

    “클수록 더 닮아가는 것 같아. 눈도 그렇고.”

    큰 형님의 말에 하빈이 괜히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렸다. 세원은 좋냐며 하빈의 볼을 꼬집었다.

    세원의 조카들은 아기를 안아 보고 싶다며 옆에서 난리를 피웠다. 조심해야 해. 어른들이 신신당부하며 조심히 아기를 건네자 큰애가 세빈을 안아 들고 좋다며 복도를 걸어다녔다. 세빈은 불편한지 낑낑거리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울렸네, 울렸어. 이리 데려와.”

    “왜 울지?”

    “잘못 안아서 그래.”

    세원의 어머니가 익숙하게 세빈을 받아 안고 토닥이자 금세 울음을 그치고 다시 웃으며 장난을 쳤다. 가족들은 해맑은 세빈에게 시선을 빼앗겨 얼굴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하빈은 뿌듯함에 어깨를 으쓱이며 세원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가족들이 다 세빈이 너무 좋아하는데요!”

    “누구 앤데 당연히 좋아하지.”

    “내 앤데!”

    하빈의 말에 세원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래. 대충 맞장구를 치자 하빈이 재미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로 팔뚝을 콩 박았다. 한참 하빈과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세원의 아버지가 하빈을 불렀다.

    “하빈아.”

    “네?”

    “너 학교는 안 다니고 싶니?”

    “학교요?”

    “그래. 대학교 안 다녔으면 가 보는 건 어떨까 해서.”

    뜬금없는 대학교 이야기에 하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봤다. 가족들도 세원의 아버지를 쳐다보며 무슨 이야기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하빈이도 아기 낳고 했으니 하고 싶은 거 해야 할 것 아니야. 집에서 애만 보는 것도 심심하고 힘들 텐데. 일 배우는 건 할 필요 없으니 하고 싶은 공부라도 하는 건 어떤가 싶어서 생각해 봤다.”

    “아, 그러면 저 대학 보내 주시려는 거예요?”

    “그래. 네가 원한다면 대학 보내 주려고 하는데. 세원이랑 이야기도 해 보고.”

    “하빈이 너는 어떤데? 가고 싶어? 네가 하고 싶으면 해. 나는 괜찮으니까.”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하빈은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이다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지금 당장에 학교를 다니는 건 무리였다. 물론 대학을 다녀 보지 않아 가 보고 싶긴 했지만, 세빈이 너무 어렸고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할 때였다. 아직은 집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빈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음, 근데……. 세빈이가 아직 어려서 제가 학교 다니기에는 좀 무리인 것 같아요.”

    “그럼 조금 더 크면 다니는 건 어떨까 싶은데. 기회가 있으면 포기하기 아쉽지 않니. 나이는 상관없으니까 언제든지 도전하면 되지.”

    세원의 아버지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그의 모습에 정말 부모 같은 마음이 들어 가슴 한쪽이 찡해 왔다.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빈의 인사에 세원의 아버지는 인자하게 웃으며 알겠다 고개를 끄덕였다. 세원의 가족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세원이 이렇게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 걸까.

    하빈은 그의 인생이 참 부럽고 또 부러웠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가 있을까. 곁에서 지켜본 그는 완벽하기만 해 보였다.

    다 함께 식사하고 다시 거실에 모인 가족들은 회사를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하빈은 세빈을 품에 안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혼자 심심하게 멀뚱거리며 앉아 있었겠지만 지금은 세빈과 함께 있어 외롭지 않았다. 세빈은 엄마의 품에 안겨 좋다며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세빈의 웃음소리에 가족들은 뭐가 그렇게 좋냐며 이따금 하빈과 세빈을 돌아봤다. 그들의 시선에 하빈은 부끄러워져 세원의 뒤로 얼굴을 숨겼다.

    한참 잘 놀고 있던 세빈이 배가 고프다며 울어 젖히자 하빈은 얼른 이유식을 가져와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이유식을 납죽납죽 받아먹던 세빈이 세원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왜, 우리 예쁜이.”

    세원이 세빈을 번쩍 안아 들자 아빠를 보고는 좋다며 손을 뻗었다. 하빈은 밥 먹이는데 왜 자꾸 딴짓하냐며 타박했지만 두 사람은 이미 딴 세상에 가 있었다.

    세빈이 꺄르륵 웃음을 터뜨리며 비행기 놀이를 하다 세원의 무릎 위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연습을 했다. 하빈이 밥을 먹여야 한다며 세원의 팔뚝을 두드렸다.

    “가만히 좀 있어 봐요!”

    “세빈아. 아, 해.”

    “그런다고 애가 말을 들어요?”

    “말 잘 듣는데. 그치?”

    말을 듣기라도 하는 듯이 세빈이 입을 아 벌리고 하빈의 숟가락을 받아먹었다. 하빈은 그 모습에 또 내심 질투가 나 세빈의 손을 붙잡고 장난으로 깨물 듯이 앙 소리를 내었다. 세빈이 놀란 눈으로 하빈을 쳐다봤다. 지금 나 먹었어? 하는 눈빛에 하빈이 웃음을 터뜨렸다.

    “뭘 그렇게 놀라, 세빈아?”

    “네가 자기 잡아먹어서 놀랐잖아.”

    “내가 언제 잡아먹었다고요.”

    모르는 척 이유식을 정리하고 돌아오자 세빈이 다시 제 손가락을 쪽쪽 빨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하빈이 하지 말라며 손을 빼내자 손가락이 퉁퉁 불어 있을 정도였다. 입을 삐죽거리며 세빈이 짜증을 냈지만 하빈은 안 된다며 손가락을 붙들고 흔들었다.

    “세빈이, 그러면 안 돼요.”

    “그런다고 애가 알아듣겠어.”

    “그래도 계속해서 하지 말라고 해야 안 하죠.”

    하빈의 말에 세원은 알겠다며 세빈의 손을 붙들었다. 두 사람에게 단단히 붙잡힌 세빈이 바르작거렸지만 풀어 주지 않자 결국 또다시 으에엥, 울음을 터뜨렸다. 지켜보는 가족들은 재미있어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재밌게 노네. 둘은 종일 그러고 있으면 재밌겠다?”

    누나의 말에 세원은 당연한 말을 하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도 애 낳아 봐. 다 이렇게 돼.”

    “내가 애를 왜 낳아. 싫어.”

    “요즘에는 다 비혼한다고 하니까…….”

    “비혼도 비혼이지만 애 낳는 거 무서워서 싫어.”

    세원 누나의 말에 하빈이 맞장구를 쳤다.

    “애 낳는 거 얼마나 무서운데요. 저도 낳았는데 또 낳으라고 하면 못 낳을 것 같아요.”

    “하빈이 네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더 무서워.”

    “낳을 땐 무슨 정신으로 낳는지 모르겠는데 과정이 너무 길고 힘들어서 또 하기 싫어요. 근데 막상 낳고 보면 예뻐서 하고 싶기도 하고.”

    옆에 있는 세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빈의 표정을 지켜보던 세원의 누나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난 싫어……. 중얼거리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너희 둘 다.”

    세원 어머니의 말에 세원의 둘째 형도 누나도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만나기만 하면 나오는 결혼 잔소리에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하빈은 멀뚱멀뚱 바라보다 슬쩍 세원에게 두 분은 사귀는 사람이 없냐고 묻자 세원은 자신도 모른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왜 몰라요? 형제가 그것도 몰라요?”

    “내가 그것까지 어떻게 알아.”

    “나는 우리 형이 누구 사귀는지 다 알았는데.”

    “그래서 나랑 사귈 때 다 알았었어?”

    “그 얘기를 왜 해요!”

    하빈이 버럭 짜증을 내자 세원이 놀라 눈을 깜빡였다. 미안해……. 급하게 사과하는 세원에 하빈이 알겠다며 중얼거렸지만 이미 속은 상할 대로 상한 뒤였다. 아무리 예전 일이라도 싫었다. 왜 형하고 사귀어서는! 속으로 혼자 투덜거리고 있는 하빈의 귓가에 세원이 속삭였다.

    “질투하는 거야?”

    “질투가 아니라 진심으로 싫어하는 거예요.”

    “왜 싫어?”

    “당연히 싫죠. 세원 씨 같으면 안 싫어요? 만약 내가 둘째 형하고 사귀었다고 하면?”

    “싫겠지.”

    “거봐요.”

    세원이 한 방 먹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하빈이 씩씩거리며 세빈을 빼앗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빈이 다시 손을 쪽쪽 빨았다. 엄마가 하지 말랬지. 하빈이 세빈의 손을 빼내며 투덜거리자 세원이 그만 화 풀라며 하빈의 어깨를 감싸 안고 살살 쓰다듬었다.

    “내가 미안해. 장난이었어.”

    “진짜 짜증 나.”

    “알았어, 다음부터 안 그럴게.”

    “하지 마요.”

    “어, 진짜 안 할게.”

    세원이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을 한 뒤에야 하빈은 다시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렇게 세원의 집에서 저녁까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렸다. 하빈은 가장 큰 사이즈를 택하고는 신이 나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세원은 그저 웃으며 아기를 품에 안고도 마냥 아이 같은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저, 이거랑 이거, 이거 담아주세요. 저거랑, 그 옆에…….”

    “집에 가시는 데 몇 분이나 걸리세요?”

    “십오 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하빈이 발을 동동거리며 직원이 아이스크림을 포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세빈은 그 품에 안겨 뒤에 있는 아빠를 바라보고 손을 흔들었다. 세원은 그런 두 사람을 핸드폰에 담고 있었다. 누가 애인지 모르겠네.

    “다 샀어요!”

    “아까 너 아이스크림 살 때 세빈이가 나한테 손 흔들었다.”

    “진짜요? 세빈이가 아빠 찾았어요?”

    “어. 그래서 내가 안을까 했는데 네가 너무 아이스크림에 정신 팔려 있어서 그냥 놔뒀어.”

    “그게 뭐야……. 정신 안 팔려 있었어요!”

    “정신 팔려 있었어.”

    세원의 말에도 하빈은 아니라며 고집을 부렸다. 이씽……. 투덜거리는 하빈에 세원은 웃으며 얼른 집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며 손을 잡아 밖으로 이끌었다.

    * * *

    “여행 가자.”

    “여행이요?”

    뜬금없는 여행 이야기에 하빈이 옷을 정리하다 말고 세원을 올려다봤다. 세빈을 재우던 세원이 하빈에게 여행을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이제 세빈이도 여행 다녀도 될 거 아냐. 너도 여행 많이 안 가 봤으니까 여행 많이 다니자.”

    “해외 나가려면 여권도 만들어야 하는데…….”

    “만들면 되지. 세빈이 여권도 만들고.”

    “애 데리고 해외까지 나가요?”

    “그럼 안 나가? 괜찮아, 나가자. 편하게 다녀오면 돼.”

    고민하는 모습에 세원이 가자며 무릎으로 하빈의 허벅지를 콕콕 찔렀다. 하빈은 그만 좀 하라며 세원의 다리를 밀어냈지만 세원은 멈추지 않고 하빈에게 여행을 가자며 들이댔다.

    알았어요, 알았어. 하빈이 알겠다고 말한 뒤에야 세원은 기다렸다는 듯 세빈을 방에 데려다 놓고 나와 하빈에게 제 계획을 줄줄이 늘어놨다.

    “일단 런던 갔다가 파리도 갔다가…….”

    “어딜 그렇게 많이 가요. 애 데리고 가면 힘들 것 같은데 한 번에 한 군데씩만 가요.”

    “그럴까? 그럼 일단 어디로 갈까? 가고 싶은 나라 있어?”

    “모르겠는데…….”

    하빈이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디가 좋지……. 여행이라고는 세원과 함께 다녀왔던 부산과 제주도가 그나마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그런 하빈에게 해외여행은 생소하다 못해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런던 다녀올까?”

    “런던……. 거기 너무 멀지 않아요? 몇 시간이나 걸리지? 아기 데리고 가기에는 너무 먼 곳은 무리 같은데. 우리 처음이니까 좀 가까운 곳으로 가요.”

    “그럼 일본 갈래? 일본 어때.”

    세원의 말에 하빈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본은 아르바이트할 때 함께 일하던 친구들도 많이 다녀왔던 기억이 있었다. 런던도 좋지만 굳이 가자면 일본을 먼저 다녀와 보는 게 편하지 않을까……. 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까운 일본부터 가 볼래요. 너무 멀리 가면 아기가 힘들 것 같아요. 나도 힘들고.”

    “그래, 그래. 여권부터 만들자. 내일 여권 사진 찍고 만들러 가야 해. 알겠지? 까먹지 말고.”

    “알겠어요. 애처럼 왜 이래요.”

    하빈이 웃으며 잔뜩 들뜬 세원을 붙잡았다. 그는 일본에 가서 뭘 할지 봐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꺼내 왔다.

    “디즈니랜드 가 볼래?”

    “디즈니랜드요? 거기 놀이공원이죠? 일본 어디에 있는 거예요?”

    “도쿄에 있는 거야. 여기 퍼레이드도 하고 재밌는 거 많대. 너 좋아할 것 같은데.”

    “디즈니랜드 가려면 디즈니에서 하는 영화도 봐야겠다.”

    “그런 거야?”

    “미리 보고 가면 더 좋은 거 아니에요?”

    어느새 하빈도 세원의 옆에 찰싹 붙어 앉아 함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세원은 그런 하빈을 품에 안고 나도 잘 모르겠다, 하며 다음 페이지를 클릭했다.

    “어디서 잘까?”

    “아무 데서나 자요.”

    하빈이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세원을 돌아봤다. 절대 안 되지. 또 열심히 검색하기 시작한 세원의 모습을 보니 금방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빈은 하품하며 그에게 폭 기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세원은 비행기부터 호텔까지 직접 예약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심지어는 여행 동선까지 짜겠다며 노트를 들고 와 메모하기 바빴다.

    하빈도 처음에는 그의 행동력에 박수를 보냈다지만 슬슬 피곤했다. 이걸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하나……. 하는 심정으로 세원의 품에 안겨 있는데, 그제야 세원이 졸리면 먼저 들어가서 자라며 하빈을 놓아줬다.

    “저 먼저 자도 돼요? 너무 허겁지겁 계획 짜는 거 아니에요? 제가 듣기로는 여권 만들려면 오래 걸린대요.”

    “나흘 정도 걸리니까 여행을 일주일 후로 잡으려고.”

    “……그렇게 빨리 가요?”

    “빨리 다녀와서 다른 데 또 가야지.”

    “어딜 그렇게 열심히 가려고요?”

    “너 데리고 갈 수 있는 곳 다 가 봐야지.”

    신이 난 그의 모습에 하빈은 웃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막을 수 없는 열정이었다. 세원은 밤늦도록 일정을 짰고 하빈은 세원 대신 세빈과 함께 잠이 들어 있었다.

    세원이 뒤늦게 침대로 왔을 땐 이미 세빈이 자신의 자리에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졸지에 잠 잘 자리가 없어져 버린 세원은 고민하다 세빈을 안아 들고 아기방 침대에 눕힌 뒤 하빈의 옆으로 돌아가 곤히 잠들어 있는 하빈을 품에 안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세원은 출근하며 하빈에게 꼭 여권을 신청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빈은 귀찮은 얼굴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여권을 신청하려면 세빈을 데리고 사진관에 들렀다가 시청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아, 귀찮은데…….”

    점심이 다 되도록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세원에게 또 전화가 왔다. 출발했냐는 물음에 하빈은 이제 간다며 세빈을 품에 안고 내려와 사진관으로 향했다. 차를 보내 준 세원 덕분에 편하게 다닐 수는 있었지만 귀찮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쩜 이렇게 아기도 예쁘고 엄마도 예뻐요?”

    “감사합니다. 헤헤…….”

    그래도 예쁘다는 칭찬은 기분이 좋았다. 사진가의 말에 하빈이 실실 웃으며 세빈을 안고 사진을 받아들었다. 긴 속눈썹이 예쁘게 올라간 세빈의 눈이 정말 예쁘게 찍혀 있었다. 내 새끼지만 정말 예쁘네. 사진에 쪽쪽 입을 맞추며 사진관을 나온 하빈이 다시 차에 타고 시청으로 향했다.

    시청에서도 아기가 예쁘다며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하빈은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하하. 웃는 얼굴에 하빈에게도 예쁘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하빈은 신이 나서 밖으로 나오며 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원 씨!”

    [어. 여권 신청 잘 했어?]

    “네! 오늘 사진관도 가고 시청도 다녀왔는데 다 저랑 세빈이 보고 예쁘다고 그랬어요.”

    [그걸 이제 알았어? 내가 늘 얘기했잖아.]

    “세원 씨 얘기는 너무 객관적이지 못하잖아요.”

    [뭘 객관적이지 못해. 내가 얼마나 객관적인 사람인데.]

    “에이……. 세원 씨는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안 돼요.”

    하빈의 말에 세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웃긴 말인가? 하빈이 갸웃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세원의 회사 건물이 지나가고 있었고, 바쁘게 돌아다녀선지 허기가 느껴졌다. 하빈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기사님께 다시 돌아가달라며 부탁했다.

    “저 지금 세원 씨 회사로 가고 있어요.”

    [왜? 지금 온다고?]

    “네! 배고파요.”

    [배고파? 와서 밥 먹을래? 뭐 먹을까.]

    “몰라요. 일단 세원 씨 보러 갈래요. 우리 사진 찍은 것도 보여줄래요.”

    익숙하게 열어 주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하빈을 힐끔거렸다. 제법 왔다 갔다 하니 이제는 알아보는 사람도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든 말든 하빈은 신경도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세원이 있는 19층으로 올라갔다.

    “저 왔어요!”

    “어서 와. 세빈이도 왔네.”

    세원이 바로 세빈이를 받아 들고 하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빈은 세원의 품에 안겨 오늘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늘어놨다.

    “사진관에서도 그랬는데 시청에서도 그랬어요.”

    “다들 잘 아네.”

    “기분 좋았어요. 그리고 세빈이한테 예쁘다고 해서 더 좋았어요.”

    하빈이 싱글벙글 웃으며 세빈의 손을 붙잡았다. 자그마한 손이 한 손에 쏙 들어와 잡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기분이 좋았다. 세원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가 배가 고프냐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빔밥 먹고 싶어요.”

    “비빔밥? 비빔밥 잘하는 곳이 근처에 어디 있을까.”

    세원이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며 자켓을 집어 들었다. 하빈은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짐가방을 챙기는데 손목이 시큰거렸다. 인상을 찌푸리고 손목을 살살 돌리자 욱신거리는 게 손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았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 봐야겠는데. 하빈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세원이 걱정스럽게 다가와 하빈의 손목을 붙잡았다.

    “손이 아파?”

    “손목이 아파요.”

    “왜 아파.”

    “몰라요. 시큰거려요. 파스라도 붙여야 하나.”

    “밥 먹고 병원 가 볼까?”

    “네.”

    하빈과 함께 회사를 나선 세원은 일단 식당으로 향했다. 고급 한정식집을 찾아가자 점심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꽤 한산했다. 넓은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은 두 사람은 앉자마자 비빔밥을 주문했다.

    “더 아프기 전에 병원 다니면서 치료 잘 받아.”

    “그래야겠어요.”

    “하루 종일 세빈이를 계속 안고 있어서 그런가?”

    “정말 그럴지도 몰라요.”

    세원의 말에 하빈이 안고 있던 세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말 손목이 아픈 게 세빈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아파도 참아야지 어쩌겠어. 엄만데. 그런 하빈을 바라보던 세원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내가 데리고 있을 테니까 이리 줘.”

    “괜찮아요.”

    “어차피 밥 먹어야 하잖아.”

    “세원 씨도 밥 먹어야 하잖아요.”

    “괜찮아, 내가 데리고 있을게.”

    하빈이 결국 세빈을 넘기고 가뿐한 몸으로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고급스러운 한옥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가게가 예쁘네.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찰나, 때마침 음식이 나오고 앞에 비빔밥이 놓였다. 하빈은 입맛을 다시며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제가 빨리 먹고 세빈이 받을까요?”

    “천천히 먹어. 난 세빈이 안고도 먹을 수 있어.”

    “진짜요? 한번 봐야지.”

    세원이 한 손으로 세빈을 안고 어렵지 않게 밥을 비비는 모습에 하빈은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웃으며 자신도 밥을 비볐다. 맛있는 참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고추장을 조금 더 넣고 비비자 밥알이 붉게 물들었다. 하빈이 입맛을 다시며 비빔밥을 한 숟갈 입으로 크게 가져왔다.

    “맛은 어때?”

    묻는 말에 대답할 새도 없이 하빈이 한 숟갈 더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

    여전히 입을 다문 채로 고개만 주억거리자 세원이 피식 웃으며 자신도 그제야 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일상의 행복이 아닐까.

    쉬지 않고 숟가락질을 하다 밥그릇을 다 비우고서야 하빈이 고개를 들었다. 세원은 천천히 밥을 먹으며 세빈이 자꾸 손가락을 빠는 걸 빼내고 있었다.

    “다 먹었으니까 세빈이 이제 제가 볼게요.”

    “왜 그렇게 빨리 먹었어.”

    “맛있어서 빨리 먹었어요.”

    “그래도 천천히 먹지, 체하겠네.”

    세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빈을 바라보다 세빈을 넘겼다. 하빈이 세빈을 안아 들고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 주며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이고, 예쁜 내 새끼. 애정이 가득 담긴 하빈의 말에 세원은 웃으며 두 사람을 지켜봤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식혜를 마셨다. 달달하고 차가운 식혜가 속을 채우자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하빈이 잠시 쉬었다 가자며 세빈을 안고 세원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세원은 오늘도 회사에서 일은 하지 않고 일본 여행에 관련한 정보만 검색한 모양이었다.

    “일은 언제 해요?”

    “내가 알아서 하고 있지.”

    “가만 보면 엄청 노는 것 같아요.”

    “노는 것처럼 보여도 일 열심히 하고 있어.”

    “……그건 그런데 놀기도 너무 잘 놀아서 걱정이에요.”

    “뭐가 걱정이야.”

    세원이 웃으며 팔짱을 끼고 대답했다.

    “제가 세원 씨한테 방해되는 것 같으니까 그렇죠.”

    “네가 나한테 왜 방해야. 내 반쪽이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세원에 하빈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입을 다물었다. 반쪽이라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하빈이 세빈의 머리 위에 턱을 괴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고개를 돌려 세원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왜 그러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세원 씨는요.”

    “어.”

    “가끔 멋있는 말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만 멋있어?”

    “아니요, 멋있는 건 매일 멋있는데 말을 잘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분이 이상해요.”

    설렌다고 해야 하나……. 하빈이 중얼거리자 세원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반응에 부끄러워진 하빈이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왜 웃어요? 내가 설렌다고 한 게 웃겨요?”

    “아니, 너무 귀여워서.”

    “뭐가 귀여워요! 웃겨서 그러죠?”

    “귀엽잖아. 나랑 계속 얼굴 보고 사는데도 설렌다고 해 주니까 기분도 좋고.”

    “그럼 세원 씨는 나 보면 안 설레요?”

    하빈의 물음에 세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난 너랑 키스할 때 설레는데.”

    “거짓말 같은데…….”

    새초롬하게 눈을 뜨고 노려보자 그는 진짜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자. 세원이 손을 뻗자 하빈이 뒤따라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가게 밖에는 제법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어느새 날은 꽤 더워졌고 하빈은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야 했다. 하지만 세원은 세빈을 안고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뽀송뽀송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어쩐지 약이 올랐다.

    “세원 씨는 왜 땀이 안 나요?”

    “나는 땀이 잘 안 나더라. 운동할 때도 그렇던데.”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왜, 우리 섹스할 때도 나는 땀 별로 안 나잖아.”

    “그런 얘기를 왜 밖에서 해요!”

    그렇지 않아도 더워 붉어진 하빈의 얼굴이 더욱 화끈거렸다. 세원은 그런 하빈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만 걷고 차 타러 갈까?”

    “네. 저 힘들어요. 이제 병원 갈래요.”

    “그래, 병원 가서 진찰받고 얼른 집에 가서 쉬자.”

    “네……. 피곤하다.”

    하빈이 지친 얼굴로 세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매달린 몸을 질질 끌고 세원이 차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가득했다. 하빈은 그 사이에 앉아 차가운 물을 마시며 차례를 기다렸다. 이제는 세원과 어디를 다니는 게 제법 익숙해져 버렸다. 세빈은 어느새 세원의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세빈이 자요?”

    “잘 자는데.”

    “깨우면 안 돼요. 또 칭얼거린다.”

    “근데 지금 자면 이따 안 잘 것 같은데.”

    “지금 안 자도 이따 안 자요. 그냥 재워요.”

    질린다는 얼굴로 하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기들은 지겹도록 잠을 자는 것 같다가도 수도 없이 깨어나서 엄마들을 괴롭혔다. 하빈도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진찰을 받으러 들어가자 세원이 따라 들어와 하빈의 상태를 함께 확인했다. 엑스레이를 찍어 봤지만 손목에 큰 이상은 없는 상태였다.

    “근육에 무리가 간 것 같은데 물리치료 좀 받고 파스 붙이고 약 먹으면 나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아기 돌보느라 힘들 텐데 몸 관리 잘 하세요.”

    “네.”

    예상했던 말을 듣고 나오자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심각한 건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빈이 헤실헤실 웃으며 세원을 바라보자 그는 아프면서 뭘 웃냐며 하빈을 타박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물리치료만 빨리 받고 갈래요.”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물리치료 받고 나와.”

    “네에.”

    하빈이 물리치료실로 들어가고 세원은 대기실에 앉아 세빈을 품에 안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하빈은 치료를 받으며 잠깐 잠들어 버렸다.

    쪽잠이 더 꿀맛이라고 했던가. 물리치료실을 나오면서도 비몽사몽인 하빈을 보고 금방 하빈의 상태를 알아차린 세원이 그새 잤냐며 장난스레 옆구리를 찔렀다.

    “아, 안 잤어요…….”

    “잔 것 같은데?”

    “안 잤다니까요?”

    “근데 얼굴이 왜 부었어.”

    “진짜 부었어요?”

    하빈이 핸드폰을 꺼내 얼굴을 비춰 보는데 세원이 옆에서 얼굴을 들여다보며 잤지? 하고 다시 물어 왔다. 결국 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원에게 응석을 부렸다.

    “너무 졸렸어요…….”

    “그래, 졸릴 수도 있지. 근데 집에 가서 편하게 자지 그랬어.”

    “물리치료 받다가 졸린 걸 어떡해요.”

    “집에 얼른 가서 자자.”

    “네. 세원 씨랑 가서 낮잠 잘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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