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얼떨결에 가게 된 제주도 여행
뒹굴 굴러가 그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볼을 비비적거렸다. 세원은 하빈의 목덜미를 마사지하듯 주물렀다. 아, 시원하다. 눈을 감고 잠시 시원한 느낌을 만끽하고 있는데 그의 손이 슬금슬금 추가 안으로 들어왔다.
“세원 씨!”
하빈이 놀라 눈을 크게 뜨자 그는 왜? 하고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여전히 하빈의 속살을 쓰다듬고 있었다. 뭐해요! 하빈이 그의 팔을 잡아 빼내려 하자 세원의 손이 앞으로 쑥 들어와 유두를 살짝 엄지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돌기의 끝을 자극했다.
“으응, 잠깐만…….”
꼬집듯이 장난을 치는 세원의 행동에 자극을 받은 하빈이 다리를 배배 꼬며 그를 바라봤다. 쳇. 하빈도 세원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려 했지만 자세가 잘 나오지 않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다 그를 확 밀친 하빈이 위로 올라타 버클을 풀어 버리고 바지를 쑥 내렸다.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요?”
브리프 위로 불룩하게 올라온 세원의 페니스가 눈에 들어왔다. 하빈이 그것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다 말고 살살 문지르며 자극하자 후끈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세원을 향해 히죽 웃어 보인 하빈은 세원의 속옷을 내리지 않은 채로 페니스를 조물거렸다.
“하…….”
세원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침대 헤드에 기대 하빈을 바라봤다. 살짝 풀린 눈빛이 야했다.
아, 좋다……. 하빈은 세원의 브리프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페니스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아직 완전히 발기하지 못한 페니스의 끝을 입에 물고 쪽쪽 빨아 대며 흔들자 위에서는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어설픈 손길로 고환을 만지작거리며 기둥을 핥아 올렸다. 하빈의 움직임에 세원이 머리채를 꽉 붙잡다가도 손에 힘을 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름을 불렀다. 그의 부름에 아래가 바짝 서는 느낌이었다. 하빈은 무릎을 비비적거리며 엎드려 입안 깊숙이 페니스를 머금고 쭉쭉 빨아 댔다.
“우응, 으, 웁.”
“힘들면 안 해도 돼.”
“후아……. 안 힘들어요.”
살짝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마주친 두 사람의 눈이 참 예뻤다. 하빈은 배시시 웃으며 다시 세원의 페니스를 위아래로 흔들다 끝을 혀로 핥아댔다. 할짝거리는 적나라한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이리 와.”
세원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하빈의 얼굴을 쓰다듬다 턱을 당겨 올렸다. 스르륵 끌려 따라간 하빈이 그의 품에 안겨 거친 숨을 골랐다. 옷 속으로 쑥 들어온 손이 조심스레 하빈의 살결을 쓸어내렸다. 야릇한 그의 손길에 하빈이 가쁜 숨을 토하며 세원을 끌어안았다.
“아앙, 으응…….”
서로 아래를 비비적거리며 자극하던 두 사람은 다급하게 옷을 벗고 입을 맞췄다. 헐떡이는 숨이 터져 나오고 세원의 손이 하빈의 엉덩이를 콱 붙잡았다. 아읏! 놀란 하빈이 눈을 크게 뜨고 세원을 쳐다봤다. 그는 작게 웃으며 입을 맞췄다.
“귀여워.”
“뭐예요!”
“살이 좀 더 찌면 좋은데.”
“그러지 않아도 임신하면 살 많이 찐대요. 못나지면 어떡하지.”
“괜찮아, 다 예뻐.”
조몰락거리는 손길이 이어졌다. 다시 정신없이 세원의 머리칼을 붙잡고 키스를 이어 가기 시작한 하빈은 그의 입술을 쪽쪽 빨며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이리저리 얽히고 부드럽게 맞닿는 혀에 자꾸 달아오르는 몸이 좋았다. 하빈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세원의 몸을 더듬어 댔다.
세원은 그런 하빈의 손길을 받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그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렸다. 곧이어 세원의 손가락이 천천히 하빈의 엉덩이골을 타고 내려와 입구를 지분댔다. 흥분한 탓에 애액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아…….”
조심스레 손가락 하나를 밀어 넣자 하빈이 입술을 떼어내고 고개를 젖히며 신음을 토해 냈다. 세원은 그런 하빈의 목 에 키스 마크를 새겼다.
“으, 응…….”
쪼옥 빨아들이는 소리와 함께 목이 콱 깨물려 아픈 것도 잠시, 뒤로 손가락이 하나 더 밀고 들어왔다. 하빈이 움찔거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앞뒤로 들썩이다 이리저리 흔들자 가만히 있으라며 세원이 엉덩이를 꼬집었다.
“아흥! 앗, 세원 씨!”
제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달달 떠는 하빈의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세원은 하빈의 뒤를 쑤셔 대는 행위에 집중했다.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고 이어 세 개가 들어갔다. 찔꺽거리는 소리가 제 귓가에도 들려왔다. 얼마나 젖어 있는지 액이 뒤를 타고 앞까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후우, 하아……. 가슴팍을 찰싹 붙인 채로 엉덩이를 들어 올려 꼬리를 흔들듯 살랑살랑 움직이자 세원이 더욱 거칠게 뒤를 파고들었다. 긴 손가락이 주는 자극에 온몸이 간질거렸다.
“아앙……. 아, 흐, 으응…….”
“좋아?”
“네, 좋, 아…….”
끄덕인 하빈이 고개를 돌려 세원의 목에 코를 비비적거렸다. 그의 페로몬 향기를 맡는가 싶더니, 입을 벌려 콱 깨물어 버렸다. 어설프게 키스 마크를 내는 하빈의 행동에 세원은 웃으며 다른 쪽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마만큼 좋아.”
그가 물었다. 하빈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정신을 반쯤 놓은 채 신음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뒤이어 손가락 하나가 더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아, 아파……. 아파아…….”
낑낑거리며 고개를 흔들자 세원이 허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달래는 듯 손을 움직였다. 그의 행동에 넘어간 하빈은 힘을 쭉 빼고 늘어져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더욱 높이 들어 올렸다. 네 번째 손가락이 들어와 쿨쩍이며 안을 입구가 잔뜩 늘어나 있었다.
“아, 흐앙, 아아, 앙! 아흑, 좋아, 후으, 응…….”
몸을 들썩이며 좋다고 세원을 끌어안은 하빈이 신음을 흘렸다. 손가락은 거침없이 뒤를 파고들었다. 다소 거칠게 안을 쑤셔 대던 손가락이 천천히 빠져나가자 하빈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세원을 붙잡고 졸라 댔다.
“또 해요, 또.”
“또 해?”
“네. 얼른.”
“그래.”
피식 웃은 세원이 하빈의 허리를 잡아 번쩍 들어 올리고는 제 하빈의 뒷구멍을 제 페니스에 맞춰 천천히 앉혔다. 커다란 페니스가 안을 뚫고 들어오는 뻐근한 느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좋아……. 매번 할 때마다 이 쾌감에 중독될 것만 같았다. 하빈은 고개를 푹 숙이고 세원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의 심장도 쿵쾅거리며 거세게 뛰고 있었다.
“움직여.”
“네…….”
세원의 말을 따라 하빈이 허리를 살살 움직이며 섹스를 이어 갔다. 들썩이는 몸에 잘게 자극이 이어지자 더 세게 해 달라며 세원이 엉덩이를 붙잡고 장난을 쳤다.
하빈은 눈을 꼭 감고 강하게 내려찍듯 앉았다가, 엉덩이를 들고, 다시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쑥 빠져나갔다가 퍽 치고 들어오는 페니스가 내벽을 쓸고 지나가며 깊은 곳을 콱 찍자, 머리가 띵해질 만큼의 아찔한 쾌락이 몰려왔다.
“아앙! 앗, 흐, 윽, 우흑, 흣.”
몸을 들썩일 때마다 크고 작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빈은 제 입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세원이 손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바람에에 하릴없이 소리를 내질러야 했다. 옆집에서 다 들으면 어떡해…….
걱정하는 것도 잠깐이었다. 곧 걱정이고 뭐고 모두 잊어버리고 그저 섹스에 빠져 몸을 흔들고 있었다.
안에 질펀하게 사정한 세원이 빠져나오고 하빈은 헥헥거리며 침대에 누워 눈을 가리고 늘어졌다. 그런 하빈의 옆에 누워 세원이 아랫배를 만지작거렸다. 배가 좀 나왔나?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하빈이 팔을 홱 내리고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진짜요?!”
“그런 것 같기도 하지?”
“우와, 우와.”
“앞으로 더 많이 나올 텐데 아프지 않을까. 힘들 것 같은데 어떡해.”
걱정이 가득한 세원의 말에 하빈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엄마니까 그 정도는 해야죠.”
배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적어도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는 각오는 되어 있었다.
진짜 배가 볼록한 것 같기도 하다. 신기한 마음에 연신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바라보고 있자 세원이 몸을 일으켜 앉고는 제 옆을 두드렸다. 하빈도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다가가 앉았다.
“일단 좀 씻고…….”
“더 할 건데.”
“더 할 거예요?”
놀라서 묻는 말에 세원은 당연하지 않냐는 듯이 하빈을 바라봤다.
“어떻게 한 번만 해.”
“그치만 힘든데…….”
“힘들어?”
“네…….”
시무룩해서 세원을 꼭 끌어안자 고민하는 척하던 그는 하빈을 확 눕히고는 위로 올라탔다.
“그럼 한 번만 더 하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지. 난 한 번으로 만족 못 하겠는데.”
“씨잉……. 진짜 피곤한데.”
“자고 싶어?”
“네.”
하빈이 세원의 목을 감싸고 입술에 뽀뽀를 하며 장난을 쳤다. 세원은 고개를 돌리며 그런 하빈의 입술을 요리조리 피해 버렸다. 약이 오른 하빈은 왜 피하냐며 세원의 얼굴을 붙잡고 확 다가가 입술을 콱 깨물었다.
“아, 깨물었어?”
“세원 씨가 피했잖아요!”
“내가 언제.”
“방금!”
“안 그랬는데.”
“시치미 떼지 말아요!”
투덜거리는 모습에 세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빈은 다리를 버둥거리며 이잉, 소리를 내고 세원이 하빈을 번쩍 자리에서 들어 올렸다.
“뭐, 뭐예요?”
“씻으러 가자.”
“욕실도 좁은데 따로 씻어요!”
“싫어.”
“아, 진짜아…….”
세원의 고집에 하빈은 포기한 채로 얌전히 욕실로 옮겨져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비록 욕조도 없는 작은 욕실이었지만 두 사람은 사이좋게 찰싹 달라붙어 샤워를 했다.
“이거 봐요.”
“뭔데?”
“거품.”
샴푸 거품으로 머리를 올려 장난을 치며 하빈이 세원을 불렀다. 세원은 그런 하빈을 잠시 바라보다 샤워기를 틀어 물을 끼얹었다.
“으악, 뭐야!”
활짝 웃는 세원에 짜증을 내려던 하빈도 결국 웃음을 터뜨리며 샤워를 마치고 함께 밖으로 나와 옷을 갈아입었다. 섹스를 하고 난 뒷정리는 세원의 몫이었다. 하빈은 배가 고파 음식을 준비하겠다며 팔을 걷고 나섰다.
“뭐 먹고 싶어요?”
“나 김치찌개 해 줘.”
“김치찌개?”
“어. 네가 해 주는 거 먹고 싶어.”
세원의 말에 하빈은 허리에 손을 얹고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한 번 치고 냉장고를 열었다. 김치가 있으려나……. 단지 우유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단지도 배가 고프지?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지만 사실은 제 배가 고팠다. 김치와 두부, 이것저것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세원은 뒤로 다가와 도와줄 것이 없냐며 기웃거렸다.
“없어요. 가서 티비나 봐요.”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꼭 신혼부부 같다.”
“그러게. 근데 집이 너무 작다……. 더군다나 세원 씨는 원래 큰 집에서 살아서 여기는 너무 좁지 않아요? 저는 원래 작은 집에 살았었으니까 상관없는데…….”
하빈이 간을 보던 숟가락을 입에 물고 세원을 바라보자 그는 뭐가 문제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서울 올라가면 다 해결되는데. 서울 갈래?”
“싫어요. 아직 형 만나기 싫어.”
“그러다 김지환이 너 찾아온다.”
“형이 나 어디 있는 줄 어떻게 알고 찾아와요.”
“아직도 맨날 너한테 전화하잖아.”
“그렇지만 어디 있는 줄은 모르거든요!”
삐죽거리며 하빈이 숟가락을 흔들었다. 그의 말대로 지환은 여전히 매일같이 전화를 해 왔고 어디에 있냐며 걱정을 했지만 아직 제 거취를 들키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이대로 있다가는 지환이 화가 나서 무슨 짓을 할지 몰랐지만 당분간은 더 버티고 싶었다. 무엇보다 세원과 이렇게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으니까. 행복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래. 김치찌개 끓는다.”
“아, 진짜네.”
후다닥 뒤를 돌아 냄비를 휘저은 하빈이 호로록 국물 맛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괜찮네. 점점 더 배가 고파 왔다. 세원과 있을 땐 입덧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빠랑 같이 있어서 그런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빈이 세원을 돌아보자 그는 알아서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상을 차리고 있었다.
“배고프다……. 세원 씨도 많이 배고프죠.”
“나도 조금 배고프네. 얼른 밥 먹자.”
“네!”
계란 프라이 두 개와 김치찌개가 상 가운데 놓이고 밥공기도 내려놓았다. 쌀밥이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져 맛이 좋아 보였다. 얼른 먹고 싶다. 침을 꼴깍 삼키고 있는데 세원이 물을 따라 주다 먼저 먹으라며 턱짓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그, 그럼 한 숟갈만 먼저 먹을게요! 세원 씨도 빨리 먹어요!”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밥을 푹 퍼서 한 숟갈 가득 입으로 가져왔다. 배가 너무 고파 죽을 것 같았다. 세원과 힘든 운동도 했겠다, 씻은 뒤 나른한 상태에서 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내가 해서 그런가, 더 맛있는 것 같네. 김치찌개가 너무 맛있었다. 계란 프라이도 맛있고.
“진짜 맛있다!”
절로 감탄이 나오고 눈이 번쩍 떠졌다. 세원이 하빈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맛있어? 놀리는 것만 같은 그의 모습에 하빈이 눈을 흘기며 장난치지 말라고 투정을 부렸다. 세원은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씨잉…….”
“진짜 아니라니까?”
“맛있는 걸 어떡해요!”
“얼마나 맛있는지 나도 먹어 볼까.”
숟가락을 드는 그의 모습에 잔뜩 긴장한 얼굴로 하빈이 세원을 바라봤다. 무슨 검사라도 받는 기분이었다. 세원은 국물을 한 숟갈 떠먹고는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요? 하빈의 물음에 그는 맛있다며 크게 한 숟갈 가져가 밥을 먹었다.
“헤헤, 저 요리 잘하죠.”
“잘 하네. 누구한테 배웠어?”
“혼자 터득했죠!”
“그랬어?”
“네! 형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형이 많이 해 주고 가끔씩만 제가 해서 잘 못했는데 형 결혼하고 나서는 저 혼자 다 해 먹어야 해서 그런지 많이 늘었어요.”
“그랬구나.”
“따지고 보면 형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금방 는 거죠.”
먹는 것도 잊은 채 조잘조잘 자랑을 늘어놓는 하빈에 세원은 밥을 먹으며 장단을 맞췄다. 밥도 먹어 가면서 말해. 세원이 한 숟갈 가득 밥을 퍼 앞으로 내밀었다. 하빈이 아, 입을 벌려 받아먹고 꼭꼭 씹자 이번엔 세원이 계란 프라이를 작게 찢어 가져왔다.
그와 이렇게 좁은 방 안에서, 이렇게 가까이 마주 앉아 있기 때문일까. 먹여주는 음식을 받아먹는 게 새삼스럽게 어색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하나. 묘하게 소름이 돋았다.
“세원 씨, 저 궁금한 거 있어요.”
밥을 거의 다 먹어 가는지, 하빈이 밥그릇을 박박 긁으며 말을 꺼냈다.
“뭔데?”
“세원 씨는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이렇게 다정했어요?”
“내가?”
“네.”
“내가 다정하다고?”
“네에.”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모습에 하빈이 잔뜩 토라진 얼굴을 하고 입을 삐죽였다. 부러움이 가득했다. 전에 만났던 사람은 누굴까. 얼마나 오래 만났을까. 뭘 하고 지냈을까. 온갖 것들이 궁금했지만 하빈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판도라의 상자라는 것을.
“궁금한 게 너무너무 많은데 물어볼 수가 없어요.”
“왜?”
“알면 슬플 것 같아서…….”
“뭐가 슬픈데.”
“그냥…….”
우물쭈물하자 세원이 손을 뻗어 하빈의 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거. 달래 주는 목소리에 오히려 마음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하빈이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진짜 아니죠?”
“어.”
저 단호한 표정을 믿어야겠지. 믿을 수 있는 건 세원밖에 없었다. 하빈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딱 한 숟갈 남은 밥을 입으로 가져왔다. 맛있던 밥이 모래알처럼 느껴졌다. 퍼석퍼석해진 밥을 꿀꺽 삼키고 물을 들이켰다. 세원은 하빈의 눈치를 보다가 자신이 설거지를 하겠다며 상을 정리했다.
“가끔 이렇게 질투할 때마다 세원 씨가 나한테 질릴 것 같아서 걱정돼요.”
하빈이 중얼거렸다. 세원은 그런 하빈을 바라보다 다가와 꼭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전혀 안 그래. 오히려 좋은데. 질투해서 사랑받는 것 같고 좋아.”
“세원 씨는 질투 같은 거 안 하죠?”
“왜 안 해. 나도 하는데.”
“거짓말…….”
눈썹을 축 늘어트린 하빈이 세원을 바라보자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귀를 만지작거렸다.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근데 왜 나한테 이런 거 하나도 안 물어봐요?”
“그야 넌 내가 너한테 처음이라며. 난 그걸 믿고 있는데? 아니야?”
“맞아요…….”
할 말이 없어진 하빈이었다. 그게 그렇게 되는구나……. 끄덕인 하빈이 입을 꾹 다물고 세원의 품에 안겨 들었다. 두근두근 뛰는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뺨을 비벼 댔다.
“세원 씨 너무 좋아요.”
하빈의 말에 세원은 웃으며 말했다.
“나도 너 너무 좋아. 사랑해.”
* * *
세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하빈은 눈치껏 입을 다물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바나나 단지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어떡하지, 큰일 난 거 아닌가…….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울리던 핸드폰에 무시하려던 세원은 결국 전화를 받았고,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 당장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들려오는 말에 하빈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가면 못 오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무서워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나 혼자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니까. 가만히 기다리는데 세원이 알겠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지금 갈 테니까 다음부터 이런 일 있으면 알아서 해결해. 알았어?”
간다니……. 일이 많이 바쁘구나. 울상을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우유를 바닥에 내려놓고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은 하빈이 세원 몰래 한숨을 쉬었다. 그때 하빈의 머리 위에서 세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빈아, 짐 챙겨.”
“……네?”
“나 지금 출장 가야 하는데 너 혼자 두고 못 가니까 같이 가자.”
“어디, 어디 가는데요…….”
눈치를 살피며 그를 올려다보자 세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제주도.”
“……제주도?”
“제주도. 비행기 타고 갈 거니까 준비해.”
“저 비행기 안 타 봤는데…….”
“괜찮아, 그냥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돼.”
줘 봐. 손을 내미는 세원에 하빈이 허둥지둥 지갑에서 제 주민등록증을 꺼내 내밀었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고 있자 세원은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고는 며칠 자고 와야겠다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 옆에 선 하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 거기서 자고 와요?”
“갔으니까 좀 놀다 와야지. 그냥 오게?”
“놀아요? 세원 씨 일하러 가는 거 아니에요?”
“난 일해도 넌 놀아야지.”
“그, 그치만…….”
“괜찮아.”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은 세원이 하빈에게 주민등록증을 돌려주고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 제주도 간다고? 난생 처음으로 세원 덕분에 비행기를 타게 생겼다. 하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서 있자 세원은 자신이 알아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빈이 가져온 짐가방에 대충 몇 벌의 옷과 여분의 속옷을 담고 하빈의 약을 챙겨 넣었다.
“너 입덧하면 먹을 약도 챙겨가야지.”
“아, 맞다……. 근데요, 신기한 게 세원 씨랑 있으면 입덧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그쵸!”
하빈의 말에 세원도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세원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방을 들고 세원의 손목을 붙잡았다.
“출발하자.”
“……지금?”
“지금.”
“비행기 시간이 언젠데요?”
“얼마 안 남았어.”
“왜 이렇게 촉박해요?”
“일이 급하대.”
“아아, 그렇구나…….”
그렇게 집을 나서 김해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즐비했다. 꽤 북적이네……. 공항에 올 일이 없었던 하빈이 넋을 놓고 서 있자 세원이 하빈을 붙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빨리 가야 해. 정신 차리고.”
“네? 네.”
“주민등록증 잘 챙겼지? 티켓팅하러 가자.”
“티켓팅…….”
아무것도 모르는 하빈은 세원만 졸졸 따라가며 카운터로 향했다. 바로 티켓을 발급받은 두 사람이 검사대를 통과했고 안으로 들어오자 작은 면세점이 들어서 있었다. 신기하네. 하빈이 주위를 구경하는 동안 세원은 연신 핸드폰으로 업무와 관련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세원 씨 많이 바빠요? 어디 가서 앉아 있을까요?”
“그럴까? 그럼 게이트 앞에 가 있자.”
게이트 앞으로 이동한 두 사람은 의자에 앉아 얌전히 시간을 기다렸다. 하빈은 하품을 하며 전광판에 뜬 여러 가지 숫자들을 읽고 또 읽었다. 무슨 뜻일까, 저게. 아무것도 모르겠네. 사방이 별천지였다. 처음 오는 공간에 신기한 것들이 가득했다.
하빈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쁜 세원을 뒤로하고 멀리 보이는 화장실로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아이가 철퍼덕 넘어져 뿌에엥 울음을 터뜨렸다. 하빈이 놀라 달려가 일으켜 세워 주며 괜찮냐 물었다.
“아이고, 괜찮아?”
황급히 뒤쫓아 온 아이 엄마가 하빈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일어나. 안 아프잖아. 뚝.”
“아파!”
“안 아파. 울지 마.”
아이를 참 강하게 키우시네……. 하빈은 신기하단 눈으로 아직 울먹이는 아기와 단호한 엄마를 바라봤다.
나도 저렇게 아기를 키울까? 어떻게 아기를 키워야 할지도 생각해 보아야겠네. 이런 것도 중요하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에 다녀온 하빈의 눈에 옆에 있는 면세점이 들어왔다. 발길이 자연스레 그리로 향했다. 뭐가 잔뜩이었다.
“무슨 담배가 이렇게 많아?”
하빈이 담배를 집어 들자 면세점 직원이 다가와 한 보루에 얼마고 두 보루에 얼마라며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당황한 하빈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서둘러 담배 코너를 빠져나와 과자 코너로 향하자 초콜릿이 가득했다. 먹고 싶다……. 입맛을 다시던 하빈이 마카다미아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거 하나 사 먹을까.”
가격을 보자 꽤 비싼 편이었다. 여긴 원래 이렇게 다 비싼가? 주변을 둘러보던 하빈이 카드를 꺼내 계산을 하고 과자를 뜯었다. 달달한 초콜릿 안에 고소한 마카다미아가 들어있는 게 맛이 좋았다.
초콜릿을 하나둘 집어 먹으며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세원은 여전히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하빈은 그 옆에 앉아 한참 과자를 집어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미안. 통화가 너무 길어졌지.”
“아니에요. 일이 너무 바쁜가 보다. 괜찮아요?”
“괜찮아. 그건 뭐야? 과자 사 먹었어?”
“네. 이거 맛있어요. 먹을래요?”
“아니, 너 다 먹어.”
“그럼 진짜 나 혼자 다 먹을 거예요?”
하빈이 헤헤 웃으며 과자를 입으로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게임을 하며 남은 시간을 기다렸다. 한참 뒤 게이트가 열리고 하빈과 세원이 먼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좌석은 생각보다 좁지 않았다. 자리에 앉고 이륙하자 내주는 웰컴 드링크에 하빈이 어리둥절한 상태로 받아 마셨다. 신기하다. 음료수도 주네. 하빈이 창가에 앉아 음료를 홀짝이며 바깥을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세원이 톡톡 좌석을 두드리며 물었다.
“불편한 데는 없어?”
“네? 네!”
“괜찮지?”
“엄청 신기해요.”
“그럼 됐어.”
세원이 잡지를 집어 들어 팔랑팔랑 페이지를 넘기고, 하빈은 창밖에서 시선을 뗄 줄을 몰랐다. 파란 하늘과 구름뿐인 밖을 뭐가 그리 신기한지 열심히도 구경하고 있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착륙 방송이 나오고 좌석을 정리한 하빈이 세원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주도라니. 살면서 제주도를 올 일이 있을 줄이야. 하빈이 떨리는 마음으로 세원을 바라봤다.
“제주도 오는 거 처음이에요.”
“신나?”
“네!”
손을 덥석 잡고 흔들며 신이 나서 방방 뛰어 대자 세원이 웃으며 하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게이트를 나오자 세원을 기다리던 수행원이 세원을 알아보고 꾸벅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하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다 세원을 번갈아 쳐다보며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누구랑 같이 있어야 하는 건가? 하빈의 표정에 세원은 아차, 하는 얼굴로 서로 인사를 시켰다.
“인사해. 여기는 정찬호 씨라고 내 수행비서인데 오늘 하루 네 가이드야.”
“가이드요?”
“나 일하고 있을 동안 너 놀아 줄 거야.”
“놀아 주는 게 뭐예요! 내가 애도 아니고!”
“그래서 가이드 해 준다고 했잖아.”
할 말이 없어진 하빈이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봤다. 가이드라니……. 세원은 어서 가자며 하빈의 손을 잡아끌었다. 찬호는 밖에 차를 대 놨다며 고급스러운 차량 앞까지 둘을 안내한 뒤 문을 열어 주었다.
이런 에스코트까지 받다니. 하빈이 어색하게 차에 올라타자 문을 닫고 운전석에 앉은 찬호가 시동을 걸었다.
“우선 회사 일 때문에 먼저 호텔에 있는 사무실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간 김에 방 체크인도 해야겠다.”
“많이 바쁘실 텐데 왜 저까지 데려오셔서…….”
하빈이 울상을 하고 세원을 바라봤다. 세원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너 놓고 와서 또 사라질까 불안해하느니 차라리 데리고 와서 내 옆에 두는 게 훨씬 나아.”
“안 없어지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나 못 믿어요?”
“이번엔 못 믿겠어.”
“히잉…….”
울상을 하자 그래도 이미 끝난 일이라며 세원이 고개를 저었다. 창밖으로는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제주도는 뭐랄까, 조금 한국 같지 않으면서도 부산 같았다. 도시 같으면서도 시골 같은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아직 바다 쪽으로 가지 않아서 그런가 예쁜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기대와는 다른 경치에 지루해하던 찰나, 차는 달리고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바닷가가 바로 보이는 커다란 호텔. 이 호텔이 세원의 그룹 소유였다.
차에서 내려 멍하니 호텔을 올려다보던 하빈이 어지러움을 느낀 듯 한 발짝 물러섰다. 세원은 그런 하빈을 붙잡아 품에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하빈은 소파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화려한 조명이 마음에 들었다.
“어디 가 보고 싶으신 곳은 있으신가요?”
옆에 서 있던 찬호의 물음에 당황한 하빈이 고개를 저었다. 갑작스럽게 온 터라 제주도에는 뭐가 있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힘들게 활동을 하고 싶지는 않고 그냥 편하게 구경만 하고 싶은데…….
“저도 오게 될 줄 모르고 갑자기 따라온 거라서 뭐가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하빈의 말에 찬호는 알겠다며 자기가 몇 군데 추천해 드리겠다고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하빈은 찬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원을 기다렸다. 그런데 찬호가 말하는 곳이 어째 족족 산을 올라야 하는 곳이라 난처했다.
너무 무리하면 아기한테 안 좋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또 너무 힘든 일은 아닐 것 같고. 그냥 올라갈까? 예쁘다고 하는데. 고민하고 있는 사이 체크인을 마친 세원이 다가와 카드키를 내밀었다.
“뭐예요?”
“방 카드키.”
“왜 나 주는 거예요?”
“나 없을 때 방에 들어가야지. 두 개 있으니까 하나 네가 갖고 있어.”
“아아…….”
카드키를 받아 지갑에 넣은 하빈이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찬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가 세원에게 하빈을 모시고 어딜 갈 예정인지 설명하고, 하빈이 축 쳐져 옆을 졸졸 따라가자 세원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힘든 코스는 다 빼고 쉬운 거로만 해.”
“네?”
“차 타고 볼 수 있는 것만 해. 그리고 맛있는 것도 잔뜩 사 주고.”
“아, 네. 알겠습니다.”
이럴 땐 내 마음을 다 읽는 것만 같단 말이지. 하빈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자 세원은 또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하빈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하빈이 놀라 세원의 팔뚝을 퍽 때렸다. 찬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다.
“뭐 하는 거예요!”
“뭐가.”
“저기, 찬호 씨가……. 다 보잖아요!”
“그게 어때서.”
“이씨…….”
붉어진 얼굴로 따라 올라온 하빈은 호텔 방으로 들어가고 세원은 사무실로 올라갔다. 호텔에 있는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잘 가요. 손을 흔들어 주자 세원은 피식 웃으며 한쪽 주머니에 손을 꽂고 고개를 까닥였다. 오, 멋있다! 헤실헤실 웃다가 얼른 방을 찾아 들어왔다.
“찬호 씨가 조금 이따가 데리러 오기로 했으니까 짐을 좀 풀어 놓을까.”
방은 역시나 넓은 스위트 룸이었다. 방이 여러 개가 붙어 있었고 욕실도 두 개나 있었다. 부산에 있는 단칸방과는 차원이 달랐다. 호텔은 세원과 온 게 전부라 잘은 몰라도 엄청 비싼 방일 것만 같았다.
신기하다……. 요리조리 둘러본 하빈이 이번엔 꽤 익숙하게 탁자에 가방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아, 편하다. 뭐 좀 마실까…….”
냉장고를 뒤적거려 스파클링 주스를 하나 꺼내 단숨에 반을 들이켰다. 차갑고 따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크으, 좋다.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갑작스레 찬 것을 마신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정신은 번쩍 나는 느낌이었다.
오늘 정말 정신없는 하루가 따로 없었다. 얼떨결에 세원을 따라 제주도에 와 있다니. 신기하기만 한 하루였다.
한참 자리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는데 벨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찬호 씨가 왔구나. 하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찬호가 웃으며 하빈에게 어디로 가고 싶냐며 물어 왔다. 하빈은 잘 모르겠다고 쑥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일단 점심부터 드시러 가실까요?”
“세원 씨는 점심 어떻게 하신대요?”
“아무래도 호텔에서 드실 것 같아요. 회사 일이 바쁘셔서.”
“그렇구나…….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빈이 입을 삐죽이자 찬호는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며 다독여 주었다.
“여기에 계시는 동안 많이 같이 드실 거예요. 아마 오늘만 따로 드실 테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그럼 저녁도 같이 못 먹어요?”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아요.”
찬호의 말에 더욱 시무룩해져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하빈이 핸드폰을 꺼내 세원에게 밥을 먹으러 간다고 메시지를 남겨 놓고 핸드폰을 끄려는데 형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지금은 또 어디서 뭘 하고 있냐는 문자에 하빈이 눈을 꼭 감고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미안, 형. 오늘은 연락 못 하겠다.
그렇게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바닷가 근처에 있는 횟집이었다. 바닷가를 따라 도로가 길게 뻗어 있고, 등대가 있어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빈은 길가에 서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짠 내음을 느꼈다.
“배고프시죠.”
“조금요.”
“회도 드시고 매운탕도 드실래요?”
“저 혼자 먹어요? 같이 드세요.”
“아니에요. 일하는 중이라…….”
“점심 안 드셨을 텐데 저랑 같이 먹어요. 저 혼자 먹는 거 안 좋아해요.”
하빈의 말에 찬호는 웃으며 알겠다 고개를 끄덕였다. 횟집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예약한 자리로 안내를 받아 앉았다. 식사가 나오기 시작하고 하빈은 끝없이 나오는 밑반찬과 회에 눈을 떼지 못하고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맛있다…….”
“잘 드시네요.”
“진짜 맛있어요! 찬호 씨도 많이 드세요.”
“네. 저는 제주도로 출장을 자주 와서 종종 먹을 수 있으니까요. 많이 드세요.”
“감사합니다.”
헤헤 웃으며 다시 회 한 점을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왔다.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매운탕도 먹고 싶은데 배가 많이 부른 상태였다. 근데 나 엄청 많이 먹네……. 하빈이 혼자 생각하며 앞에 놓인 샐러드를 집어 먹었다. 임신을 하니 식욕이 더 왕성해지는 것 같았다.
“매운탕 지금 드실래요?”
“네!”
“그럼 매운탕 준비해 달라고 할게요.”
“감사합니다.”
신이 난 하빈이 남은 회를 집어 먹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찬호는 그런 하빈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사님이 왜 하빈 씨를 좋아하시는지 알 것 같아요.”
“네?”
“엄청 애교도 많으시고 귀여우셔서 사람들이 많이 좋아할 것 같아요.”
“저요?”
“네.”
“에이, 아니에요.”
손을 내젓자 찬호는 맞지 않냐며 팔짱을 끼고 하빈을 유심히 관찰하듯 바라봤다. 그의 노골적인 시선에 부끄러워진 하빈이 왜 그러냐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저는 이렇게 잘 못 하거든요.”
“찬호 씨도 저랑 다를 게 뭐가 있으시다고. 친절하시잖아요.”
“사실 저도 좋아하는 사람 있었는데…….”
“헉 누군데요?”
“다른 팀에 있는 팀장님인데 고백했다가 차였어요.”
“어떡해……. 힘들겠다…….”
하빈이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찬호를 바라봤다. 괜찮아요.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는 그의 모습이 괜히 멋있어 보이는 건 왜일까. 어른스러움이 물씬 풍겨 왔다. 하빈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찬호의 말에 집중했다.
“이사님은 엄청 무뚝뚝하시진 않은데 그렇다고 또 남들한테 다정하시지도 않으세요.”
“그러면요?”
“비즈니스적인 게 몸에 배어 계시다고 해야 하나.”
“아아…….”
“그래서 가끔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근데 하빈 씨한테는 한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서 참 보기 좋아요.”
“그래요?”
“네. 두 분 만나시는 거 보니까 부러워요.”
“감사합니다.”
조금 부끄럽기도 한 그의 말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 매운탕이 나오고 밥이 들어왔다. 밥이다, 밥. 하빈이 신이 나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찬호는 국을 퍼 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건 좀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인데……. 혹시 이사님하고 결혼하시는 거예요?”
그의 물음에 하빈은 잠시 숟가락질을 멈추고 찬호를 바라봤다.
“제가 세원 씨랑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빈의 물음에 찬호는 대답했다.
“당연히 할 수 있죠. 왜 저한테 물으세요? 자신이 없어요?”
“아니, 그냥……. 세원 씨 가족들이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에이, 이사님은 가족들 말 잘 안 들으세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찬호의 모습에 하빈이 힐끔 눈치를 살피다 물었다.
“결혼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뭐가요?”
“저 욕 많이 먹겠죠?”
하빈이 속삭였다. 찬호는 갸웃하며 물었다. 왜 욕을 먹어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에 하빈은 고민하던 말을 꺼내 놨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데 세원 씨랑 결혼하니까…….”
“뭐, 사람들이 뒤에서 말은 좀 하겠지만 누군들 그 집안하고 차이가 안 나겠어요. 좋으면 그냥 하는 거예요.”
찬호의 말이 맞았다. 누군들 그 집안과 차이가 나지 않겠냐고. 내가 좀 더 없을 뿐이지. 하빈이 끄덕이며 국물을 홀짝였다. 짭짤한 맛이 좋았다. 매콤하고 칼칼한 게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맛있다. 고민하던 것들을 하나둘 풀어놓으니 기분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점심 식사가 끝이 나고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조금 더 가까워져 있었다. 알고 보니 나이도 그리 많이 차이가 나지 않던 차였다. 하빈은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며 찬호를 졸졸 쫓아다녔다. 세원은 그동안 회의에 한창이었다.
“그럼 세원 씨랑 같이 일한 지 이제 이 년 정도 되세요?”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뭐 궁금한 거 있어요?”
두 사람은 카페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하빈은 궁금한 게 많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 것인가, 말 것인가. 제 형과 세원 사이에 있었던 일도 궁금했고 모든 것들이 궁금했다. 물론 찬호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근데 사귀면서 너무 다 알려고 하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요. 그렇죠?”
하빈이 물었다. 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모르면 모르는 채로 놔둬야 좋을 때도 있고 그러는 거죠.”
“그럼 그냥 안 물어볼래요.”
“진짜요?”
“네.”
“잘 선택했어요.”
커피가 줄어드는 만큼 시간도 흘러갔다. 석양이 내려앉았고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가볍게 끝내고 호텔로 돌아온 하빈은 샤워를 하고 누워 세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회의가 끝나고 피곤한 얼굴로 들어와 바로 씻으러 들어가 버렸다.
“엄청 힘들었나 보네.”
티비를 끈 하빈이 침대에서 뒹굴다 세원이 머리를 털고 나오자 팔을 벌려 그를 맞이했다. 이리 와요. 하빈의 행동에 세원은 수건을 휙 던지고 침대 위로 올라가 하빈의 가슴팍에 안겨 들어 샤워가운에 머리를 파묻고 마구 비비적거렸다.
“아이고, 세원 씨 많이 힘들었어요?”
“일을 오랜만에 하려니까 피곤했어.”
“그래도 잘 하고 왔죠?”
“어. 내가 누군데.”
“잘했어요.”
하빈의 칭찬에 세원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잘했어?”
“네.”
“그럼 키스해 줘.”
“싫은데. 뽀뽀해 줄 건데.”
고개를 숙여 입술에 쪽 뽀뽀를 하자 세원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하빈은 꺄르륵 웃음을 터뜨리며 세원의 볼을 붙잡고 다시 입을 맞췄다. 기다렸다는 듯 세원이 하빈의 위로 올라타 단숨에 입술을 집어삼키며 키스로 이어갔다.
“우읏, 응…….”
“하…….”
혀가 입천장을 쓸어 올리고 다시 상대의 혀를 옭아맬 때 생기는 틈 사이로 숨결이 전해졌다. 뜨거운 입김이 피부를 간질이고 하빈은 제 샤워가운을 벗겨 내는 세원의 손길에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피곤하다면서요.”
“피곤해.”
“근데 할 수 있어요?”
“그거랑 이거랑 다른 문제야.”
“뭐야, 그게!”
몸부림을 치며 도망치려 하자 세원이 하빈을 막아섰다.
“안 돼.”
“왜 안 돼요!”
“나 너랑 하고 싶어.”
세원이 말했다. 정직한 말에 하빈은 웃으며 세원을 바라봤다. 왜 저렇게 귀엽지.
세원은 거침없는 손길로 하빈의 샤워가운을 풀어 손을 집어넣었다. 속옷조차 입고 있지 않았던 하빈은 제 아래를 대뜸 만져 오는 손길에 놀라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속옷도 안 입고 있었네.”
“그게 왜요!”
“하고 싶어서 그랬어?”
“흐음…….”
아닌 척 고개를 돌리자 세원이 그대로 하빈의 목에 코를 박고 향기를 들이켰다. 하빈의 향기로 온몸이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세원은 황홀감에 젖어 옷을 벗어 던지고 단숨에 하빈을 뒤집어 버렸다.
“자, 잠깐, 세원 씨.”
하빈이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잔뜩 흥분한 세원이 꺼덕이는 제 페니스를 하빈의 엉덩이골에 문지르며 자극했다. 그러다 입구를 쿡쿡 찌르며 장난을 쳐대자 하빈이 살살 신음을 흘렸다.
“아앙, 앙, 으항……. 세, 세원 씨, 자, 잠깐, 아응, 읏…….”
입구를 들락날락하며 길을 내는 세원의 페니스에 하빈은 아픔 섞인 쾌락에 빠져 고개를 푹 처박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많이 아프면 말해.”
“왜 이렇게 흥분했어요.”
“하……. 하빈아…….”
“아으앙……. 세원 씨이…….”
세원의 페니스가 꼭 다물려 있던 하빈의 뒷구멍을 강제로 벌리고 뻑뻑한 내벽을 파고들어 갔다.
페니스가 전부 삽입되자, 제 것에 딱 맞춘 듯 감겨 오는 내벽에 세원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만족한 듯 하빈의 허리를 어루만졌다. 깊숙이 박힌 페니스는 빠지지 않을 듯이 들어차 있었다.
“하아, 아, 으앙, 하앗, 아앙…….”
천천히 허리만 흔들어 줬는데도 꾹꾹 눌리는 안쪽에 하빈이 신음을 터뜨렸다. 아직 추삽질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밀려오는 자극에 하빈은 질끈 눈을 감았다. 조금씩 빠져나갔다가 들어가는 페니스에 따라 내벽이 밀려 나갔다가 쓸려 들어오며 또 다른 자극을 만들어 냈다.
하빈도 세원도 눈을 감고 각자의 쾌락에 빠져 정신없이 허리 짓을 하고 있었다. 세원도 정신없이 퍽퍽 밀어 넣고 있었고 하빈도 허리를 흔들며 신음을 내질렀다.
“으항, 앗, 아응, 흐앙, 아, 흐, 우응, 읏…….”
하빈이 소리칠 때마다 세원의 움직임이 더욱 격렬해졌다.
“미치겠다…….”
세원은 하빈의 앞을 붙잡고 흔들며 끝을 문대기 시작했다. 이어진 세원의 손짓에 하빈이 아흑, 소리를 내며 그대로 가 버리고 말았다.
하빈의 무릎이 무너지고 침대에 엎어지자, 세원은 하빈의 허리를 붙잡아 단단히 받쳐 일으켜 세우고는 그대로 강하게 쳐올렸다. 퍽퍽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으, 흐으, 윽, 후윽, 흣, 아윽, 흑…….”
“괜찮지?”
“하윽, 하앙, 앙, 앗.”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자 더욱 짙어진 쾌감에 하빈은 눈을 감고 세원의 페니스를 느꼈다. 아, 좋아아……. 베개에 이마를 비비적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죽을 만큼 좋았다. 미칠 듯이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한 차례의 섹스가 끝나고 하빈이 축 늘어져 있는 동안 세원은 화장실에서 물수건을 가져와 하빈의 몸을 닦아 주고 있었다. 조심스레 몸을 닦는 손길이 마치 소중한 것을 다루듯 다정하고 또 한없이 다정해 하빈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레는 마음이 멈추지 않았다.
“세원 씨.”
“어.”
“나 얼마나 좋아해요?”
돌아 누운 채 물었다. 하빈의 허리를 닦아 주던 세원이 대답했다.
“사랑하지.”
“얼마만큼?”
“네가 나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내가 더 사랑하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날 두고 도망가?”
“그건!”
하빈이 홱 뒤를 돌아보자 세원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우응, 으응…….”
하빈이 제게 입을 맞춰 오는 세원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런 사람이 도망가냐고.”
다시 떨어진 입술 틈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있는 얼굴이 좋아 곳곳에 입을 맞추며 배시시 웃어 주자 세원은 별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예쁜 얼굴이 무기야, 무기.”
“내가 예뻐요?”
“예쁘지, 그럼.”
“얼마나?”
“글쎄.”
이번엔 또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그에 하빈이 입을 삐죽였다. 그게 뭐야. 몸을 밀어내자 순순히 일어난 세원에 하빈이 가만히 누워 있다 중얼거렸다.
“세원 씨는 다른 사람들한테 다정하면 안 돼요.”
“내가 너 말고 누구한테 다정한데?”
“몰라요. 아무튼 다정하면 안 돼.”
“알았어.”
“약속이야.”
“그래.”
“아, 한 명 더 다정해도 된다.”
“누구?”
“우리 아기.”
“그건 당연하지.”
세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빈도 웃으며 뒤를 돌아누웠다. 다시 입을 맞추고 두 번째 섹스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