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두 사람의 목적지는 부산 (6/20)

6. 두 사람의 목적지는 부산

일이 끝나고 세원이 데리러 오기로 한 날이었다. 하빈은 오늘도 열심히 정운과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며 진을 빼다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지쳐 입을 다물었다. 뭐 그리 불만이 많은지 온종일 제게 트집을 잡는 정운이 얄미워 죽을 것 같았다.

“야! 미리미리 마감 준비를 해 놔야 일찍 가지! 넌 그렇게 일을 하고도 아직도 모르냐?”

“그렇게 해 봤자 손님 또 오면 다시 해야 하거든?”

“손님 오시면 마감했다고 하면 되잖아, 멍청아!”

“누가 멍청이야!”

멍청이라는 말에 벌떡 일어난 하빈이 정운을 노려보며 씩씩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려 몸을 돌리자 세원이 웃으며 하빈에게 손을 흔들었다.

“세원 씨!”

하빈이 카운터 밖으로 나와 쪼르르 다가갔다. 너른 품에 폭 안겨들자 세원은 작은 몸을 그대로 끌어 안고 토닥이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 왔다.

“오늘은 많이 안 바빴어?”

“네. 근데 누가 괴롭혔어요.”

뒤를 돌아보며 이르는 목소리에 정운은 내가 뭘! 하며 딴청을 부렸다. 장난을 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세원은 웃으며 싸우지 말라 말하고는 한쪽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기다릴게.”

“네에. 커피라도 드릴까요?”

“괜찮아.”

“아메리카노 드릴게요!”

“마감 준비 다 했는데…….”

세원에게 뭐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커피를 만들어 주겠다 말하고 있는데 옆에서 정운이 꿍얼거리며 초를 쳤다. 이번에는 못 참겠다. 발을 꾸욱 밟자 정운이 아프다며 난리를 피웠지만 하빈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 커피를 내렸다.

“너 왜 발 밟냐? 일부러 그랬지!”

“아, 그러게 왜 발을 거기다 두냐?”

“내가 언제! 아프잖아!”

“또 밟혀 볼래?”

세원은 굳은 표정으로 카운터 너머에서 툭탁거리며 장난을 치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한참 지나서야 커피를 가져온 하빈이 세원의 옆에 앉아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꽃받침을 하고 그를 바라봤다. 세원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하빈을 마주했다.

“왜 그렇게 예쁘게 웃어?”

“세원 씨 보니까 좋아서요.”

“얼른 끝내고 가자.”

“네!”

하빈이 벌떡 일어나 청소를 하는데 정운이 투덜거리며 빗자루를 마구 휘둘렀다. 하빈의 다리를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치듯 때리는 모습에 세원이 다가와 손목을 확 붙잡자 놀란 정운이 얼어붙어 세원을 바라봤다.

“장난도 적당히 해야지.”

“아, 네, 네…….”

“청소 다 했으면 가도 되나.”

“어……. 저희 다 끝났어요.”

웅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본 정운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빈이 냉큼 마무리를 부탁한다며 말하고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으러 스태프 룸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깥에 남은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하빈이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세원은 가게 밖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정운은 마저 정리를 하다 말고 잘 가라며 어색한 동작으로 손을 흔들었다. 왜 저래? 하빈이 알겠다며 등을 툭툭 두드려 주고 밖으로 나오자 세원이 어깨를 감싸 안으며 살짝 입을 맞췄다.

“수고했어.”

“기다리느라 지루했죠.”

“아니, 그보다 쟤 왜 저렇게 너한테 싸가지 없게 굴어?”

“어……. 쟤가 원래 좀 그래요.”

어깨를 으쓱인 하빈이 얼른 가자며 세원의 손을 잡아당겨 이끌었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 오늘은 세원의 집에서 밤새 같이 있을 계획이었다. 벌써부터 신이 난 하빈은 들뜬 모습으로 차에 올라타 창밖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세원은 그런 하빈을 힐끗 쳐다보고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 정운이라는 애 말인데.”

“네? 걔 왜요?”

“걔랑 안 지 오래됐어?”

“어……. 몇 년 됐어요.”

“그래?”

왜요? 자꾸 정운에게 관심을 가지는 세원의 모습에 하빈이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봤다. 뭐야……. 질투심이 슬슬 올라오는데,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말이 없어진 세원에 덜컥 불안해진 하빈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운전하며 딴생각에 빠진 세원은 그런 하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핸들을 꽉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빨간불에 차가 멈춰 섰을 때, 하빈이 세원의 팔을 덥썩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깜짝 놀란 세원이 옆을 돌아보자 하빈의 눈이 그렁그렁해져 있었다.

“왜 그래?”

“……세원 씨.”

“응?”

“윤정운은 왜 자꾸 물어봐요?”

“뭐?”

“걔한테 관심 생겼어요?”

“무슨 소리야…….”

황당하다는 표정에 하빈이 꾹 깨물고 있던 입술을 열었다.

“그럼 왜 물어봤는데요?”

“그건 그냥…….”

“그냥?”

또다시 답이 없는 그의 모습에 하빈이 팔을 흔들며 재촉하려는 순간 파란불로 신호등이 바뀌고 차가 출발했다. 제게서 시선이 떨어지자 슬금슬금 불안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리게 굴기 싫은데 자꾸 질투가 났다. 이러다 세원 씨가 나 싫어지면 어떡하지…….

하빈이 의자에 늘어져 창밖만 바라보고 있자 세원이 힐끔 하빈을 돌아보고 말을 걸었다. 하빈아, 하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하빈은 대답 없이 그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김하빈.”

“……왜요.”

“너랑 너무 친해 보이니까 그랬어.”

“뭐가요?”

세원의 말에 하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아니, 너랑 그 친구라는 애랑 장난치고 너무 친해 보이길래.”

“질투했어요?”

눈에 불을 밝히고 묻자 세원이 애써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대답이 없는 그의 모습에 하빈은 다시 물었다.

“질투한 거 맞죠?”

그러자 세원이 멋쩍게 귀를 만지작거리며 하빈을 돌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맞아. 근데 그게 그러니까,”

“와……. 세원 씨도 질투를 하는구나.”

“그럼 나도 하지, 안 하겠어?”

“나만 하는 줄 알았는데.”

중얼거리자 세원이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뻗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너만 하다니? 너도 질투했어?”

“저 질투 맨날 하는데?”

“나한테 맨날 할 게 뭐가 있다고 질투를 해.”

“질투할 게 왜 없어요.”

지나다니는 사람들한테도 질투하는데……. 하빈이 속으로 생각하며 세원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잘난 제 애인이었다.

“아무튼 윤정운인가 뭔가 하는 애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

“왜요……. 저 친구 별로 없는데.”

“나랑 놀면 되잖아.”

“저 걔랑 일도 같이 하는데 어떻게 친하게 안 지내요.”

“걔 하는 짓 보면 친한 것 같지도 않더만.”

세원의 말에 입이 다물렸다. 최근 더욱 싸움이 잦아진 두 사람이었다. 특히 정운이 시비를 걸어오는 일이 잦아졌더랬다.

“아니, 걔가 요즘 들어 더 시비를 걸어요.”

“그래?”

“세원 씨랑 사귄다고 말한 뒤로 더 그러는 것 같아요. 솔로라서 질투하나.”

대답이 없는 세원에 옆을 돌아보자 그는 잔뜩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빈은 콧잔등을 긁적이며 분위기를 풀어 보려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세원 씨는 요즘 회사 많이 바빠요?”

“아니, 너 만날 시간은 많아.”

마음에 쏙 드는 대답에 하빈의 입꼬리가 삐죽 위로 올라가 붙었다.

“하빈아.”

“네?”

갑자기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세원을 쳐다보자 주차를 마친 그가 자신을 돌아보고 말했다.

“우리 약속하자.”

“뭘요?”

“질투 나게 안 하기로.”

“……그거는 어, 세원 씨가 못 할 텐데.”

“왜?”

“그야…….”

저는 질투가 엄청 많으니까……. 하빈이 중얼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옆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질투가 많아?”

“네.”

“얼마나 많은데?”

“비, 비밀이에요…….”

가까이 다가오는 세원에 하빈이 눈치를 살피다 얼른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려 버렸다. 세원은 안에서 하빈을 빤히 쳐다보다 따라 내리며 이리 오라 손을 뻗었다. 그제야 쪼르르 다가가 품에 안겨든 하빈이 그를 올려다보고 입을 맞춰 달라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초반에야 어리숙했지만 사귄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저도 모르게 애교가 부쩍 늘어난 하빈이었다. 세원은 그런 하빈을 바라보다 웃으며 입을 맞춰 주고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이끌었다.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다다르고 세원의 집으로 들어서자 그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하빈은 신발을 벗고 쪼르르 안으로 들어가 익숙한 모양새로 소파에 앉아 세원을 바라봤다.

그래도 한두 번 와 봤다고 제법 익숙한 티를 내는 모습에 세원은 웃으며 다가가 옆자리를 차지하고 하빈의 허리를 품에 안았다.

“피곤하지.”

“안 피곤해요.”

“그래?”

“네!”

몸을 들썩이며 신나게 고개를 끄덕이자 세원이 하빈을 확 눕히며 위로 올라탔다. 아래에 깔려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던 하빈이 푸스스 웃음을 흘리고는 팔을 뻗어 세원의 목을 끌어안았다. 예상했던 상황에 벌써 몸이 슬슬 달아올랐다.

두 사람이 정신없이 입을 맞추는 동안, 세원의 커다란 손이 하빈의 옷속을 파고들었다. 세원의 손길에 몸을 맡긴 하빈이 바르작거렸다. 살짝 떨어진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이 토해지고, 세원은 하빈의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벗겨 내며 입술을 쪽쪽거렸다.

짧은 버드키스에 홀린 듯이 입술을 찾아 안달을 내는 사이 옷이 모두 벗겨지고 훤히 드러난 상체에 하빈이 몸을 꿈틀거리며 세원을 끌어안았다.

세원은 고개를 숙여 하빈의 어깨를 콱 깨물고 키스 마크를 새기며 제 페로몬을 강하게 풀어 냈다. 주변을 가득 메우는 향기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아. 하빈이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세원의 입술이 목을 타고 올라오며 새겨 내는 흔적에 바르르 소름이 돋았다.

“흐읏, 으응…….”

“어때?”

대답할 새도 없이 세원이 다시 입을 맞추며 하빈의 혀를 옭아맸다. 응응 앓는 소리를 냈지만 그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하빈의 턱을 붙잡고 키스를 이어 갔다.

손가락은 밋밋한 가슴을 가득 움켜쥐었다가 놓아 주며 돌기를 살살 만지작거렸다. 간지럽고 애가 타는 느낌에 하빈이 몸을 배배 꼬며 다리를 바르작거렸다.

세원은 그런 하빈을 바라보다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며 손으로는 허리춤을 지분댔다. 바지 버클을 슬쩍 건드린 손길이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와 올라와 명치를 쓰다듬었다. 그 야릇한 손놀림에 하빈은 녹아내리는 눈빛으로 세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얼른, 얼른…….”

먼저 해달라고 조르는 목소리에도 세원은 미동도 없이 그저 하빈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판판한 배를 살살 문지르며 온기를 전해 주자 하빈은 못 참겠다는 듯 몸을 일으키며 세원에게 달라붙었다.

빨리 해 주세요, 세원 씨. 목을 끌어안고 유혹하듯 귓가에 속삭이는 야한 소리에 세원은 피식 웃으며 손을 쑥 내려 하빈의 바지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마주 앉은 채로 제 바지 속을 헤집는 커다란 손에 하빈이 끙끙거리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세원이 페니스를 조몰락거리며 거칠게 만지고 있었다.

강하게 그를 끌어안을수록 세원의 손짓이 격해졌다. 세원의 손이 제 것을 움켜쥐고 엄지로 선단을 살살 문지르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쭉 끼쳤다.

“하아, 아앙…….”

“좋아?”

“네, 흐읏, 네에…….”

하빈이 고개를 푹 숙이고 세원의 어깨에 기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사정감이 몰려왔다. 금방이라도 싸 버릴 것 같은 느낌에 하빈이 세원의 손목을 잡고 눈을 마주치자 그는 웃으며 입을 맞췄다.

“아. 아아, 읏……!”

“갔어?”

“후으, 흐아…….”

사정한 하빈이 자신에게 기대 헐떡이며 늘어져 있자 세원은 하빈을 아예 눕혀 버렸다. 곧이어 하빈의 바지가 벗겨져 바닥을 뒹굴었다.

바지를 벗긴 세원이 하빈의 벗은 몸을 감상하다 거칠게 타이를 풀어헤쳤다. 하빈은 그런 세원의 모습에 히죽 웃음을 흘리며 다리를 벌리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그를 기다렸다. 세원이 옷을 벗고 하빈의 위로 다가가 천천히 몸을 겹쳤다.

뜨겁게 달아오른 몸이 한데 섞여 열기를 뿜어냈다. 하빈이 세원에게 몸을 비비적거리며 매달리고, 그런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은 세원은 하빈의 뒤를 지분대며 손가락을 살살 밀어 넣었다. 구멍이 열리며 손가락 하나가 안으로 쑤욱 들어갔다.

“하읏!”

놀란 하빈이 탄성을 내지르며 질끈 눈을 감자 세원은 피식 웃으며 조금씩 안을 헤집었다. 하나둘 개수를 늘리며 뒤를 잔뜩 파헤치는 손가락에 다리가 덜덜 떨려 오고 엉덩이가 바들바들 잘게 움직였다.

하빈이 허리를 가누지 못하고 꿈틀거리자 세원이 반대쪽 손으로 살살 쓸어올리며 하빈을 바라봤다.

“세원 씨…….”

눈이 마주치고, 반쯤 정신이 빠진 얼굴로 저를 부르는 하빈의 표정이 지독하게 야했다.

세원은 입맛을 다시며 손가락을 빼내고 삽입을 시도했다. 잔뜩 부푼 제 페니스를 밑으로 가져가 밀어 넣으며 하빈의 눈치를 살폈다. 하빈은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해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는 상태였다.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는 커다란 페니스에 하빈이 숨을 들이마시고 자신을 짓누르는 세원의 몸을 더듬었다. 판판한 근육이 손에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하으, 아, 흣……. 금방 사정할 것만 같은 느낌에 잔뜩 힘을 주자 세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힘 풀어. 응?”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빈은 웃으려다가도 입을 삐죽이고 대답했다.

“갈 것 같아요.”

“그래?”

“네…….”

참아. 단호한 목소리에 입술을 꾹 깨문 하빈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세원을 와락 끌어안았다. 안으로 거칠게 파고드는 페니스에 끅끅거리며 몸을 들썩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격한 행위가 이어졌다. 퍽퍽 쳐 올리는 세원에 하빈은 울음에 가까운 신음을 정신없이 내질렀다.

소파가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의 움직임을 버텨 내고 있는 동안 하빈은 세원의 밑에 깔려 헐떡이고 있었다. 세원이 움직일 때마다 하빈의 몸이 위로 밀려 올라갔고, 버둥거리는 하빈의 허리를 세원이 단단히 감싸 안고 다시 추삽질을 이어 갔다.

“하, 읏, 으항, 핫,”

새하얀 액체가 앞에서 줄줄 새어 나와 시트를 적시고 하빈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쾌락이 온몸을 지배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헐떡이는 숨조차 버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세원은 그런 하빈을 엎어트리고 뒤에 자리를 잡아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천천히 들어갔다 나오는 그의 페니스가 적나라하게 느껴지고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전율이 일었다.

몇 번 해 보지 않은 관계였지만 늘 세원과 해 온 섹스였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하빈이 다음 그의 행동을 예상하며 몸을 움직이는 순간, 세원은 하빈의 위로 엎어져 등으로 천천히 입술을 내리며 잇자국을 새겨 댔다.

“아읏, 으, 응…….”

세원이 허리를 격렬하게 움직이며 등을 깨무는 통에 온몸이 간질거렸다. 말 그대로 딱 죽을 맛이었다. 하지 말라며 고개를 마구 내젓자 그는 하빈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어잡아 고개를 돌리고 입을 맞췄다. 꽤나 거친 몸짓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흐아, 앗……. 바르르 떨자 세원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야하다니까.”

“아니에요…….”

“아니긴, 이렇게 몸이 반응하는데.”

손을 내려 하빈의 몸을 더듬던 세원이 쑥 빠져나와 몸을 일으키고는 소파에 앉아 제 허벅지를 두드렸다. 하빈은 엉금엉금 기어가 그의 위에 올라앉고는 다시 삽입하며 뜨겁게 달아오른 두 몸이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열정적인 정사를 마치고 지친 상태로 하빈이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을 때, 세원은 배달 음식을 받아 거실 테이블에 차려 놓고 있었다. 준비가 다 됐다는 말에 낑낑거리며 몸을 일으킨 하빈이 쪼르르 밖으로 나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원은 웃으며 하빈에게 젓가락을 내밀고 맛있게 먹으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하빈은 냉큼 고기를 집어 입으로 가져왔다. 배가 너무 고팠던 터라 뭘 먹어도 좋았다.

“그렇게 맛있어?”

“넹.”

오물오물 먹는 하빈을 보던 세원이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다음 쉬는 날은 언제야?”

“저 다음 쉬는 날이요?”

“어. 우리 그때 놀러 가자.”

“여행이요?”

놀란 표정으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세원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이라니. 눈을 껌뻑이다 머릿속으로 제 휴무일과 통장 잔고를 떠올렸다. 휴무일이야 맞추면 되는데 애석하게도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숨을 푹 내쉬자 세원이 왜 그러냐며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다정한 그의 행동에 하빈은 몸을 폭 기대고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의 앞에서 돈이 많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어깨를 으쓱이고 그냥 입을 열었다.

“저 요즘 돈이 부족해서 못 갈 것 같아요.”

“내가 내 주면 되잖아.”

“그래도…….”

세원 씨한테 다 부탁하는 건 싫은데……. 웅얼거리며 슬쩍 눈치를 살피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하빈을 토닥였다. 괜찮다며 다독이는 말에 마음이 기울었다.

그와 놀러 가고 싶은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눈 딱 감고 다녀올까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즈음, 세원이 입을 열었다.

“김지환 때문에 돈이 부족한 거야?”

“네?”

“나한테 돈 빌려 달라고 했었으니까, 너한테도 돈 빌렸나 싶어서.”

그의 말에 하빈은 고개를 저었다. 제게 피해를 줄 수 없다며 대출 제안도 한사코 마다한 지환이였다. 세원에게는 조금 나쁜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제게는 좋은 형이라면 좋은 형이었다. 가끔 이상한 일도 시키지만…….

“형이 돈 가지고 뭐라고 하지는 않아요.”

“그래? 그럼 다행인데.”

“그냥 제가 모아 놓은 돈이 부족해서…….”

“걱정하지 말고 가자.”

짧게 그냥 놀기만 하고 오면 되잖아, 응? 노는 건데 뭐 어때. 살살 꼬시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해 오는 세원에 마음이 혹해서 그를 바라봤다. 하빈에게는 세원의 미인계가 그 누구보다 잘 통하고 있었다.

“좋아요, 가요.”

“그래. 잘 생각했어.”

“언제가 좋지…….”

슬그머니 올라간 입꼬리로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하는 하빈의 옆에 찰싹 붙어 세원도 함께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당장 다음 주도 난 시간 낼 수 있는데.”

“저는……. 친구한테 물어볼게요.”

“그래. 그리고 여권은?”

“여권 아직 없어요…….”

도리도리 고개를 젓자 세원이 알겠다며 볼을 톡톡 두드렸다.

“이번엔 국내로 가면 되지.”

“저는 아무 데나 다 좋아요.”

생각만으로도 신이 났다. 한참 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먹다 시간이 늦어지자 배도 부르고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한 하빈이 양치를 하려고 화장실로 들어왔다. 세원이 따라 들어와 함께 칫솔을 집어 들었다. 거울에 나란히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이 예뻤다.

길게 시간을 낼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짧게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하빈은 여행 전날 잔뜩 들뜬 마음으로 가방을 챙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일 새벽에 세원이 데리러 오기로 했으니 어서 자야 하는데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아, 왜 이렇게 잠이 안 와…….”

계속해서 뒤척이던 하빈이 벽을 바라보고 눈을 깜빡이다 다시 핸드폰을 열어 화면을 눌렀다. 잘 자라는 세원의 연락 다음으로 정운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자고 있으려나? 심심한 하빈이 자냐고 답장을 보내자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안 자고 뭐 하냐?]

“너야말로 안 자고 뭐해?”

[나? 게임.]

“내일 출근 아니야?”

[내일 오후 출근이라 늦잠 자도 돼. 넌 내일 뭐 하는데?]

“나 내일 놀러가지. 부산 간다!”

신나서 자랑을 늘어놓자 정운은 한참 답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신나서 잠이 안 온다 이거지?]

“어. 자야 하는데 밤새고 갈 것 같아. 차 타고 가다가 자면 어떡하지.”

[어쩌긴 뭘 어째, 자면 되지.]

“세원 씨는 운전하는데 나만 자면 너무하잖아.”

[뭐가 너무하냐? 다 그런 거야. 괜찮아.]

그런가? 정운의 아무렇지 않은 대답에 솔깃해진 하빈이 돌아누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가도 답답한 마음에 다시 풀썩 끌어 내리고 눈을 깜빡였다. 여전히 두 눈은 말똥말똥했다.

“아무튼, 그럼 이제 나 자야 하니까 이제 끊자.”

[졸려?]

“아니. 그렇지만 눈 감으면 자겠지.”

[뭐야. 잘 때까지 통화하자.]

“싫어, 내가 왜 너랑.”

단호한 거절에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하빈은 시끄럽다며 일갈하고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알람이 잘 맞춰져 있는지 확인한 뒤 눈을 감고 애써 잠을 청했다. 최대한 빨리 잠들길 바랐다.

다행히 그 후로 바로 잠들었는지 눈을 뜨니 알람이 시끄럽게 귀를 괴롭히고 있었다. 정신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러 들어갔던 하빈이 다시 뛰쳐나와 핸드폰을 들고 세원에게 문자를 넣었다. 지금 일어났다 말하지 않으면 분명 약속 시간보다 더 일찍 와서 기다릴 게 뻔했다.

하빈이 샤워를 마치고 옷을 챙겨입고 있는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화장실에 놓고 온 핸드폰을 가지러 다시 들어가자 수증기가 가득 차 있었다. 환기 팬을 틀어 놓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세원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싱글벙글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얼른 통화 버튼을 누른 하빈이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어, 하빈아. 준비는 다 했어?]

“저 지금 옷 입고 있어요.”

[나 거의 다 와 가는데. 천천히 내려와.]

“네. 세원 씨도 천천히 오세요.”

거의 다 왔다는 세원의 말에 하빈이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새벽 다섯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진짜 빨리 오네. 전화를 끊고 하빈이 다시 가방을 확인했다. 옷도 넣었고 속옷도 넣었고, 세면 도구에다 비상약도 넣었으니 이 정도면 되겠지. 서둘러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일 층으로 내려오자 때마침 멀리서 세원의 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손을 붕붕 흔드는 하빈에게 세원도 마주 인사를 하듯 차에서 불빛이 깜빡거렸다.

헤헤, 세원 씨다. 쪼르르 달려가 뒷좌석에 짐을 넣어 두고 조수석에 자리를 잡은 하빈이 옆을 돌아보자 그는 바로 다가와 하빈에게 입을 맞췄다. 짧은 입맞춤에 입꼬리가 샐쭉 올라갔다.

“잘 잤어?”

너무 듣고 싶었던 세원의 다정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들려오니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다. 비록 잘 자진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둘러댄 하빈이 안전벨트를 매며 얼른 출발하자고 다리를 들썩였다. 세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들을 돌렸다.

아직 동이 제대로 트지 않은 새벽, 거리는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빈은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한적한 길거리를 구경하며 세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부산까지 약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에 헤엑, 소리를 내며 그를 돌아봤다.

“너무 오래 운전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중간에 교대라도 해 주면 좋을 텐데…….”

“괜찮아.”

운전면허가 없는 자신이 못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울상을 짓고 있자 세원이 뭘 풀이 죽고 그러냐며 팔을 뻗어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도움이 되고 싶은데.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하빈이 몸을 홱 돌려 세원을 빤히 바라보고 결연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면!”

“그러면?”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었다가 가면 되겠다.”

“휴게소 가고 싶어?”

“너무 운전만 하면 세원 씨 힘들 거 아니에요.”

“난 괜찮은데.”

“그래도 피곤할 테니까 한 번은 쉬었다가 가요.”

“그래, 그러자.”

중간에 휴게소에 들르기로 약속을 한 하빈이 다시 헤실헤실 웃으며 몸을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차는 빠르게 고속도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은 계속해서 시끄럽게 길을 알려 주고 있었고 세원은 하빈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며 운전을 했다. 하빈은 그동안 세원의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어 놓고 흥얼거리며 대답을 했다.

“바다 좋아해?”

“자주 가 본 적은 없지만 좋아해요.”

“별로 안 가 봤어?”

“사실 거의 안 가 봤어요.”

서울 끝자락에 살면서 다른 지역을 갈 일이 별로 없던 하빈이었다. 기껏해야 경기도 아니면 인천 정도?

이렇게 여행을 가는 것도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때 정도였으니 제게는 흔하지 않은 기회였다. 하빈의 말에 세원은 그렇냐며 고민하는 표정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렸다.

“호텔을 어디로 잡을지 고민 중이야.”

“호텔 아직 안 잡은 거예요? 전 아무 데나 좋은데.”

“바다 보이는 쪽으로 할지 아니면 시내로 할지.”

“진짜 아무 데나 괜찮아요.”

“그래?”

지금껏 세원이 데려간 곳은 제 기대를 저버린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으니 이번 역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겠거니. 배시시 웃는 하빈의 모습에 세원은 또다시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세원 씨가 정 그러면 저는 바다 보이는 곳이 좋아요.”

“바다 보이는 곳으로 갈까?”

“네. 전망 좋은 데가 좋을 것 같은데. 어차피 차 있으니까 굳이 시내에 안 잡아도 될 것 같고.”

“그렇네. 그럼 바다 있는 곳으로 가자.”

하빈의 말에 세원이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하빈은 힐끗 눈치를 살피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나무들이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오늘은 날이 맑고 화창했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푸른 하늘에 하빈이 배시시 웃으며 세원을 돌아봤다. 그는 차에서 내리며 뻐근한 어깨를 풀어 주듯 몸을 돌리고 있었다. 피곤한가……. 서둘러 다가가 어깨로 손을 가져가자 괜찮다며 하빈의 허리를 감싸고 휴게소 안으로 이끌었다.

“뭐 먹을래?”

“음……. 저는 휴게소 감자랑 소시지랑…….”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을 줄줄이 늘어놓는 하빈에 세원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하빈이 한 발 빠르게 결제를 하고 세원에게 음식을 내밀었다.

“응? 내가 사 주려고 했는데.”

“이 정도는 제가 사 드릴 수 있어요.”

“그래? 착하네.”

세원이 웃으며 하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사람이 잠시 휴게소 의자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쉬는 동안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세원의 차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하빈이 멍하니 세원과 차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무 생각 없이 감자를 입에 넣고 있는 세원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졌다. 저렇게 비싸고 좋은 차를 모는 사람하고 내가 사귀고 있다니. 게다가 같이 놀러 가고 있어…….

다시 차를 한 번 더 돌아보고 세원을 쳐다봤다. 그 시선을 알아챈 세원도 하빈을 마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그러냐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그냥?”

“그냥요.”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하빈이 소시지 꼬치를 쓰레기통에 휙 버리고 먼저 차 앞으로 걸어왔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빈을 힐끔거리며 멀어지고 뒷정리를 마친 세원이 다가와 차 문을 열었다.

차가 출발하며 조금씩 멀어지는 시선들에 하빈은 가만히 생각했다. 내게 너무 과분한 것들이 아닐까, 하고.

부산까지 가는 조용한 차 안에서 하빈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새벽에 잠을 설친 탓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하빈을 바라본 세원이 슬쩍 음악 볼륨을 낮추고 운전에 집중했다. 두 사람은 빠르게 부산으로 향했다.

하빈이 눈을 떴을 때 어느새 차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헉, 놀란 하빈이 고개를 돌려 세원을 바라보자 일어났냐며 웃고 있었다. 시무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왜 또 그러냐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 왔다.

세원 씨 운전하는 동안 혼자 심심했을 텐데 나는 잠이나 자고…….

“잘 잤으면 됐지.”

“그래도 세원 씨는 힘들게 운전하는데…….”

“안 잤으면 피곤해서 못 놀 거 아냐. 자면서 온 게 나아.”

배려가 가득한 그의 말에 하빈은 금세 기운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놀러 왔으니까 세원 씨랑 열심히 놀아야지.

“그럼 우리 이제 어디 가요?”

“밥부터 먹을까?”

“네!”

두 사람은 세원이 알아봐 둔 밥집으로 향했다. 맛집이라 그런지 이미 가게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제일 끄트머리에 선 두 사람은 꼭 끌어안고 장난을 쳤다. 하빈의 앞에 선 커플도, 그 앞에 선 커플도 모두 그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웃음이 났다.

“왜 웃어?”

“아니……. 다 똑같아서.”

“뭐가 똑같아?”

“그냥…….”

크흠, 헛기침을 한 하빈이 세원에게서 슬쩍 떨어져 그를 바라봤다. 팔짱을 끼고 살짝 인상을 찌푸린 모습이 멋있었다. 하빈이 다시 세원의 품으로 폴짝 뛰어들자, 그가 자연스럽게 안아 준다. 서로를 마주보는 두 사람의 눈에서 꿀이 떨어졌다.

“뭔지 궁금한데.”

“별건 아니고요. 여기 놀러 온 커플들 다 비슷비슷하게 하고 있길래 웃겨서.”

“아아.”

귀여운 생각을 하고 있다며 세원이 하빈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 같더니만 음식 냄새를 맡으니 시장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입맛을 다시며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죄다 생소한 이름뿐이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제일 많이 먹는 걸로 달라고 할까?”

“네.”

“그러자. 못 먹는 것 딱히 없지?”

“네. 다 잘 먹어요.”

하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을 하고 물을 홀짝이고 있는데 옆에 앉은 오메가가 임신을 했는지 불룩한 배를 감싸 안고 숟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애써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시선이 갔다.

“하빈아.”

“네, 네?”

“이거 먹고 바닷가 갈까?”

“네!”

“바닷가 갔다가 근처에 맛있는 빵집 있다던데 빵 사서 호텔 들어가자.”

“좋아요.”

세원은 계획을 다 짜 왔고, 하빈은 그저 따라다닐 생각이었다. 뭘 해도 좋았다.

옆에 앉은 임산부는 아직 입덧 중인지 숟가락질을 하다가도 신경질을 부리며 숟가락을 놓고, 다시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세원과 하빈의 테이블 위로도 음식이 놓였다.

“얼른 먹어.”

“세원 씨도 드세요.”

“맛있겠네.”

냄비에서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한 숟갈 입에 떠 넣자 짭조름하고 칼칼한 맛이 느껴졌다. 금세 식욕이 동한 하빈이 서둘러 젓가락질을 하며 밥을 먹기 시작하고 세원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배가 부를 정도로 식사를 마치고 한숨을 푹 내쉬자 잘 먹었냐는 말이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빈이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를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바닷바람을 느끼고 있자, 세원이 뒤로 다가와 하빈의 몸을 감싸 안았다.

“얼른 가자.”

“네!”

맛있게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광안리 해수욕장이었다. 드넓은 해변이 펼쳐져 있는 광경을 보자 입이 떡 벌어져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

차에서 내린 하빈이 방방 뛰다 모래사장으로 마구 달려갔다. 등 뒤에서 조심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빈은 신발 사이로 모래가 들어오는 것도 개의치 않고 바닷물 바로 앞까지 다가가 밀려 들어오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파도가 밀려오면 뒤로 물러나며 피하고, 물이 빠지면 그만큼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빈이 혼자 놀고 있는 동안 세원은 멀찍이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

“세원 씨 뭐해요?”

“너 찍어.”

“뭐야.”

배시시 웃자 세원도 웃으며 천천히 다가와 하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날씨 좋다.”

“그러게요.”

맑은 날씨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적당히 쌀쌀한 기온까지 기분 좋았다. 하빈이 자리에 쪼그려 앉아 젖은 모래를 만지작거리자 세원도 함께 몸을 숙였다.

“뭐 하는 거야?”

“그냥…….”

“재밌어?”

“네.”

파 놓은 구멍으로 물이 밀고 들어와 채워졌다가, 모래 틈으로 스며들어 다 빠져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자 세원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신발이 다 젖는다는 세원의 경고에도 하빈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며 피식 웃고는 다시 손장난에 집중했다.

어느새 늘어난 물에 세원은 한참 뒤로 물러나고, 하빈은 아직 눈치 채지 못한 채로 쪼그려 앉아 그대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빈아. 세원이 부르는 소리에도 하빈은 그저 네? 하고 뒤를 돌아볼 뿐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 그러다 신발 젖는다.”

“안 젖는, 으악!”

아니라고 하는 순간 강하게 몰아치는 파도가 신발 위를 덮치고 발이 축축해졌다. 하빈이 울상을 한 얼굴로 돌아보자 세원이 웃음을 터뜨리며 하빈을 놀렸다.

“거봐, 내가 뭐랬어.”

“이거 어떡해요.”

“다 젖었어?”

“네…….”

“숙소까지 걸어와.”

“힝…….”

걸어오라는 그의 말에 하빈은 싫다고도 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폈다. 젖은 신발로 차에 타면 싫겠지……. 콧잔등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뭘 또 끄덕이냐며 어깨를 강하게 감싸 안는 그의 행동에 그제야 안심이 된 하빈이었다.

“그럼 차 타고 가도 돼요?”

“진짜 걸어오려고 했어?”

“걸어오라고 하면 걸어가야죠…….”

“아이고 진짜, 이걸 어떡하냐.”

세원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하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기가 가득한 제 신발만 내려다보며 옆을 따라 걸었다. 해변을 벗어나 샤워장으로 들어온 하빈이 물로 모래와 소금기를 씻어 냈지만, 맨발로 더 젖은 신발을 신자 기분이 이상했다.

“너무 젖었어요.”

“그래? 그럼 그냥 업혀.”

“네? 업히라고요?”

“어차피 차도 코앞이잖아. 그냥 업혀.”

“그래도…….”

“얼른.”

몸을 숙여 뒤를 돌아보는 세원에 눈치를 살피던 하빈이 슬쩍 목을 감싸며 등에 올라탔다. 샤워장을 나오자 사람들이 두 사람을 쳐다보며 지나가고 하빈은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세원의 향기가 느껴졌다. 기분 좋다. 이상하게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었다.

“하여간 손도 많이 간다.”

타박하는 말에도 기분이 좋았다. 차에 도착해 의자에 앉혀진 하빈은 신발을 대충 던져 두고 쪼그려 앉아 그를 기다렸다. 세원은 운전석에 앉아 하빈을 보며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왜 자꾸 웃어요?”

“네가 너무 귀여워서.”

“……거짓말 같은데.”

“귀여운 게 왜 거짓말이야?”

“그냥…….”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자 세원의 큰 손이 하빈의 얼굴을 슥 쓸어내리곤 핸들을 붙잡았다.

“아 뭐에요!”

“이상하게 쳐다보길래.”

“안 이상하거든요!”

“그럴 땐 이상해.”

삐진 얼굴로 세원을 노려보자 운전을 하던 세원이 슬쩍 하빈을 쳐다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운전을 하는 동안도 깨가 쏟아지는 두 사람이었다.

“와……. 여기에요?”

“어.”

으리으리한 호텔의 외관에 압도당한 하빈이 주춤거리며 건물을 올려다봤다. 번쩍거리는 건물 안으로 발을 디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세원은 아무렇지 않게 그런 하빈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어어……. 얼떨결에 따라 들어가자 안에서 일을 하던 직원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해 왔다.

“어서 오세요.”

“아까 강세원으로 방 예약했는데요.”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세원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하빈은 멀찌감치 서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신기하다……. 여전히 축축하게 젖어 있는 신발이 불편해 인상을 찌푸리고 제 발을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등 뒤가 시끄러워졌다.

돌아보니 친구들끼리 놀러 온 무리인 모양이었다. 하빈은 대학교 이야기를 하며 신나게 웃음꽃을 피우는 이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자 세원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며 뺨을 쓰다듬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응? 저 사람들이 뭐라고 했어?”

“아뇨! 그냥 눈이 마주쳐서……. 얼른 가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하빈은 엘리베이터 바닥 한쪽 구석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대학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도 안 계시고 돈도 없던 하빈이 할 수 있던 일이라고는 그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뿐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기분 좋더니 갑자기 왜 그럴까.”

방으로 들어와 대충 신발을 내던지고 소파에 눕자 세원이 하빈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의 다정한 손길에 몸을 돌려 눈을 마주하고 입을 벙끗거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원 씨.”

“응?”

“저 대학교 안 다니는데.”

“알아.”

“그래도 아무렇지 않아요?”

“뭐가?”

“막……. 세원 씨도 학벌 좋고 그렇잖아요.”

“별로 신경 안 쓰는데.”

가볍게 입을 맞춰 오는 세원에 하빈은 삐죽거리며 그의 허리를 감싸 바짝 끌어안았다. 불편한 자세에 세원도 소파 위로 올라와 하빈을 마주 안고 누워 시간을 보냈다. 하빈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잠에 빠져들자 세원은 그런 하빈을 바라보고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빈이 눈을 떴을 때, 세원은 이어폰을 꽂고 탁자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빈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물을 찾아 냉장고를 뒤적였다. 차가운 물과 음료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음료수도 마셔도 되나? 하빈이 슬쩍 세원을 바라보다 물부터 먼저 들이켜고 사과 음료수를 꺼내 들었다.

“세원 씨.”

“어, 일어났어?”

“네에. 이거 마셔도 돼요?”

“그럼. 마셔도 돼.”

세원의 옆에 앉으며 음료수 뚜껑을 따자 달콤한 사과 향기가 올라왔다. 홀짝이며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화면에는 영어가 가득했다. 뭔진 몰라도 엄청 멋있다……. 세원과 노트북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고 하빈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갑자기 뭐야?”

“멋있어요.”

“고마워.”

피식 웃으며 세원이 하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빈은 그 손길을 받고 있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제 발을 바라보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왜 맨발이지? 그리고 이내 신발이 흠뻑 젖어 이곳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저 신발 좀 빨고 샤워도 좀 하고 나올게요!”

“신발 내가 클리닝 맡겼는데.”

“그래요? 그럼 세탁해서 갖다 주는 거예요?”

“어.”

우와……. 시설 진짜 좋다……. 하빈이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며 생각했다. 서비스도 좋고 시설도 좋고, 얼마나 비쌀까. 상상조차 가지 않는 숙박 비용에 하빈은 그저 어리둥절한 상태로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고 머리를 감았다.

샤워 가운을 걸치고 나와 창문 밖을 바라보자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저녁이 다 되어 주황색 노을 빛이 서서히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예쁘다……. 홀린 듯 계속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 뒤이어 샤워를 마친 세원이 다가와 하빈을 끌어안았다.

“바다 예뻐?”

“네.”

“좋아해서 나까지 기분 좋네.”

“세원 씨는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뭐가?”

“돈도 많고 능력도 좋고 잘생기고.”

“그래?”

웃음이 터져 버린 세원이 하빈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볼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하빈은 제법 진지했다.

“나랑 왜 만나는지 모르겠네.”

“왜 만나는지 모르겠다니.”

“난 그냥 평범한 남자 오메가인데.”

“뭐가 평범해.”

이마를 맞대고 콩콩 부딪치며 아니라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계속해서 말해도 부족했다.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자 그러지 말라며 세원이 번쩍 안아 들고 소파로 향했다.

“좋아하니까 만나지.”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성격도 좋고 예쁘고.”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네가 이해가 안 가는 게 난 이해가 안 간다.”

그의 말에 하빈이 샐쭉 웃으며 세원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맞닿은 몸으로 전해지는 온기에 슬슬 몸이 뜨거워지고, 허벅지 살이 마주 비벼져 야릇한 기분이 이어졌다. 세원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려 하빈의 엉덩이를 조몰락거렸다.

커다란 손이 터뜨릴 듯이 엉덩이를 붙잡자 하빈은 질 수 없다는 듯 세원의 샤워가운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판판하고 탄탄한 근육이 붙어 있는 가슴팍과 복근을 지나 밑으로 내려가자 그의 페니스가 손에 느껴졌다. 살짝 흥분에 젖은 세원과 눈이 마주쳤다.

부드러운 키스가 이어지고 하빈은 그대로 세원의 페니스를 붙잡아 천천히 흔들며 자극했다. 세원에게서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엉덩이를 거칠게 만져 대는 손길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질척한 입맞춤과 함께 혀가 얽히고 하빈은 세원의 혀를 쪽쪽 빨며 몸을 들썩였다. 그의 손가락이 제 엉덩이 사이를 살살 자극했다.

“하……. 향기 좋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낮게 읊조리는 세원의 목소리가 감미로웠다. 하빈은 그런 그의 페니스 끝을 만지작거리다 기둥을 붙잡고 조금 빠르게 흔들며 자극을 줬다.

세원의 달뜬 숨결이 하빈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짜릿한 느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좋아요?”

하빈이 묻는 말에 세원은 피식 웃으며 대답 대신 입을 맞춰 왔다. 그의 키스는 언제나 달콤하고 또 맛있었다.

“우응…….”

입천장을 간지럽히는 세원의 혀에 입을 벌리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가 턱을 단단히 붙잡은 채로 치열을 훑어 갔다. 이상한 느낌에 꼼지락거리는 하빈의 허리를 꽉 끌어안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가둔 채로, 세원은 계속해서 하빈에게 입을 맞췄다.

하빈은 정신없이 자신에게 키스를 해 오는 그가 좋아 미칠 것 같았다.

온몸으로 번지는 짜릿한 감각에 하빈이 몸을 들썩이자 세원이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가만 있어. 그리고는 커다란 손을 샤워가운 안으로 밀어 넣어 맨살을 거칠게 쓸어 올렸다. 투박한 손길이 몸을 훑어 올리자 바르르 몸이 떨렸다. 아아……. 아찔했다.

하빈의 유두를 몇 번 매만지던 세원이 결국 가운 자락을 끌어내려 새하얀 어깨에 이를 박아 넣었다. 불긋한 잇자국과 함께 살결에 키스 마크가 새겨지자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가운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즈음, 세원은 하빈의 샤워 가운을 휙 던져 버리고 하빈을 다시 안아 들어 방으로 들어갔다.

“으앗…….”

침대가 크게 일렁이고 곧바로 몸을 짓누르는 세원에 하빈이 놀라 그를 덥썩 붙잡았다.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맞추자 상큼한 향기가 전해져 왔다. 하빈은 입술을 빨다 말고 옆을 슬쩍 돌아봤다. 커튼이 열려 있어 창밖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잠, 깐.”

부끄러운 마음에 몸을 돌려 엉금엉금 기어가자 세원의 손이 얇은 발목을 붙잡고 쑥 당겨 제 아래로 다시 끌어내렸다. 놀란 토끼 눈을 한 하빈이 그를 바라봤다.

“어디 가?”

“차, 창문…….”

“창문은 왜.”

“커튼 치려고요.”

손으로 가리키자 세원이 몸을 일으켜 창문을 바라봤다. 붉은 석양 빛이 들어와 그의 몸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제법 멋진 광경에 절로 웃음이 났다. 세원이 하빈의 손목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얼떨결에 창문을 짚고 서게 된 하빈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그는 탱탱하게 살이 오른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다 골 사이로 페니스를 문질러 댔다. 뭐 하는 거예요……. 부끄러움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중얼거리는데 세원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밖에서 보이려나?”

“저 멀리 건물에서 보면 보일지도 모르잖아요.”

“글쎄.”

“세원 씨!”

하빈이 칭얼거리며 몸을 돌리려 하자 세원이 어깨를 꽉 누르고 뒤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흣! 작은 탄성과 함께 하빈은 눈을 질끈 감으며 유리에 이마를 콩 박았다. 차가운 유리가 얼굴에 닿았다. 동시에 뒤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제 안을 헤집고 있었다.

세원의 길다란 손가락들이 안을 파고들수록 하빈은 애가 탔다. 신음은 끊임없이 새어 나왔고 몸도 마음도 그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 정신을 놓고 그에게 매달릴 때와 달리 섣불리 입이 열리지 않았다.

하아……. 짙은 한숨에 유리창에는 김이 서리고 하빈의 코가 짓눌리며 동그란 자국이 생겨났다. 세원은 손가락을 빼내고 천천히 삽입을 시도했다. 하빈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만 보고 있자 가냘픈 등이 움직이며 세원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손을 뻗어 하빈의 목덜미부터 시작해 척추를 주욱 쓸어내리고 엉치뼈까지 한 번에 어루만졌다.

“으, 읏, 아앙…….”

“오늘따라 엄청 조이네.”

“후으, 흐읏.”

하빈은 몸을 이리저리 꼬며 도망쳐 보려 했지만 세원의 손에 허리가 단단히 잡혀 몸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퍽퍽 쳐 올리며 뒤를 뚫고 들어오는 그의 페니스에 끙끙 앓는 신음을 내지르며 하빈이 창문을 절박하게 긁어내렸다. 하빈의 손바닥 위쪽으로 손자국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축 늘어지자 세원이 하빈을 안아 들고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힘없이 누워 세원을 바라보자 그는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하빈은 다리를 벌리고 누워 그를 받아들인 채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쾌락에 요동칠 뿐이었다.

살짝 고개를 들자 커다란 세원의 페니스가 제 안으로 쑤욱 밀려 들어갔다 나오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더욱 몸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다시 고개를 젖히려 하자 세원은 그대로 하빈의 손을 붙잡아 당겨 일으키고는 하빈을 마주 끌어안고 거칠게 퍽퍽 쳐 올렸다.

“흐, 아앙, 앗, 아흑.”

깊숙하게 파고드는 그에 놀라 부르르 몸을 떨며 가 버리자 세원 역시 하빈의 안에 그대로 파정하며 몸을 기대 왔다. 가만히 끌어안고 숨을 고르는 동안 하빈은 콩닥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세원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옆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거야?”

“그냥요.”

“귀여워.”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세원의 손길에 하빈이 턱으로 그의 어깨를 문질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세원은 다른 쪽 손을 내려 하빈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다 슬슬 다시 몸을 움직이며 시동을 걸었다. 하아, 으, 으응…….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갔다.

“왜 그래?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아, 장난치지 말아요.”

허리를 잡아 돌리는 세원에 하빈이 몸을 흔들었다. 세원이 키득거렸다. 하빈은 입을 삐죽이며 일어나려 했지만 단단히 잡힌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섹스가 시작됐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열정적인 섹스는 밤이 늦도록 이어졌고, 잔뜩 힘을 써 버린 하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졌다. 덕분에 세원이 하빈을 번쩍 안아 들고 욕실로 데려가 직접 샤워를 시켜야 했다.

나란히 가운을 걸치고 테라스에 앉아 멀리 보이는 바다를 구경했다. 마치 우주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밤공기는 차가웠고 손에 들린 커피는 따뜻했다. 옆에 앉은 세원은 하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밤은 흘러가고 있었다.

이 여행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바다를 보고 싶었고, 세원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하빈은 그렇게 짧은 여행을 만끽하며 시종일관 얼굴에서 미소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모든 것들이 만족스러웠다.

“하루가 금방 간다. 벌써 돌아가려니까 아쉽네.”

“그러게요. 다음에 또 오면 되죠.”

“다음에 또 올까?”

“네!”

“다음엔 해외로 나가려고 했는데.”

“해외도 좋고 부산도 좋아요.”

“여권 나오면 가까운 곳부터 해서 다녀오자.”

“아싸, 신난다. 저 그럼 돈 많이 모아야겠다.”

이튿날, 막 저녁을 먹고 나온 두 사람이 차에 올라타 대화를 나눴다.

부산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하빈이 내내 먹고 싶어했던 비빔 밀면이었다. 육전과 함께 먹자 고소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일품이었다. 정신없이 먹고 나서야 배가 부른지 한숨을 푹 쉬며 배를 통통 두드리는 모습에 세원은 웃으며 하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먹었어?”

“네. 완전 많이 먹었어요. 너무 배불러요.”

“다행이야. 그럼 집으로 가자.”

“네! 근데 집에 가려면 또 오래 걸려서 세원 씨 힘들겠다.”

“괜찮아. 넌 가면서 좀 자.”

“저요? 저는 세원 씨랑 계속 이야기하면서 갈 건데.”

“그래? 그럼 그러든가.”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빈은 눈을 몇 번 꿈뻑거리더니만 곤히 잠들었다. 그 모습을 본 세원은 웃으며 작게 라디오 볼륨을 낮췄다. 차는 소리 없이 빠르게 도로를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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