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떨어진 한적한 교외. 신도시가 개발되고는 있지만 그 중심부에서 벗어난 곳은 아직도 농사 중인 하우스가 널려 있다. 2차선의 한적한 도로가 길게 늘어진 유일한 통로로, 기차역에서 탈 수 있는 마을버스 하나가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배차 간격 또한 살인적이라 자칫 버스를 놓치면 1시간을 꼬박 기다려야 했다. 걸어서 가면 40분 정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인적이 드물수록 하늘은 높고 넓어지기 마련이었다. 키가 작은 건물들과 가로수를 벗 삼아 영인은 묵묵히 걸었다. 정류장에서 넋 놓고 1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걷는 편이 빠르기도 했고 마음이 편했다. 해를 피할 만한 그늘조차 없어, 걷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고개를 돌리면 펼쳐진 너른 들판과 그 위로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을 등진 채 영인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컨테이너 건물의 허술한 문을 열면 실내를 빼곡히 채운 피아노들의 시체가 그를 반겼다. 이곳 영신 공방은 일명 피아노의 무덤으로 불렸다.
도심과 경기도 일대의 망가진 피아노가 모두 이곳에 모이기 때문이다. 아예 프레임이 두 동강 나다 못해 외형이 크게 손상된 완파 상태라면 그대로 소각장에 가겠지만, 그 수준이 아닌 이상 수도권의 피아노는 모두 이곳을 거쳐 새 생명을 얻거나, 다른 소임을 받는다.
“왔냐? 담배는.”
“…줄이세요. 그러다가 손 잘리세요.”
“너나 잘해 이 녀석아. …진짜 안 사 왔냐?”
그리고 이 공방의 주인인 신주호는 피아노 복원가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장인이었다. 누추한 차림새에 늘 나무 부스러기를 공기처럼 안고 살아가는 그와의 만남이, 영인의 삶에서는 문규화와의 만남 다음으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다.
영인이 서울 시내의 한 고등학교 급식소에서 근무했던 때였다. 어느 날 학교 수위의 부탁으로 음악실의 피아노를 폐기하는 일을 돕게 되었다. 업자라고 온 중년의 남성은 꼬장꼬장한 눈매로 피아노가 있는 공간을 살폈다. 단순히 피아노를 가져갈 줄로만 알았던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미심쩍어 영인은 함께 긴장해 그를 살폈다. 나중에야 알았다. 피아노가 어떠한 환경에서 지내 왔었는지 알기 위해 실내의 온습도와 볕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어찌 됐든 영인은 한가득 의문을 품은 채 그를 도왔다. 그가 가져온 낡은 천을 피아노에 꼼꼼히 두르며, 계속 마음에 걸렸던 한마디 말을 어렵사리 꺼냈다.
‘이제 이 피아노는 어떻게 되나요?’
‘…왜요?’
‘아뇨. 아직 소리도 나는데. …그냥 아까워서요.’
불현듯 물은 말에 공구를 꺼내던 남자가 지그시 영인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집집마다 피아노를 두어 치게 했던 시대는 예전 일이 다 되었다. 이 시대에 피아노는 처치 곤란 취급을 받는다. 피아노를 아까워할 만한 사람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었다.
‘자네는 피아니스트인가?’
묘하게 건반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에서 남자는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인지 영인에게 되물었다. 처음의 어설픈 존대는 자연스레 갖다 버렸다.
‘아뇨, 전혀. 아닙니다….’
‘흠….’
정도 이상으로 당황하는 영인의 얼굴과 손을 유심히 살피던 남자는 가방 속 주머니를 모두 뒤집어 구겨진 명함 하나를 겨우 찾아내 그에게 던져 주었다. 받은 명함은 인쇄된 잉크마저 빛바랠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남자의 이름과 주소만은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신주호. 경기도 김포시….
그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 영인은 약 1년여 이곳에 머무르며 일했다. 사실상 일을 하기보다 배운 쪽에 가까웠으니 임금은 당연히 받지 못했다. 숙식을 제공하며 거두어 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그나마 영인이 할 줄 알던 일이라고는 피아노 운반을 돕는 게 전부, 다른 편에는 오히려 그르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처음엔 요령이 없어 피아노 뚜껑을 접는 것마저 서툴렀고, 액션을 부러뜨리거나 조율된 현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피아노 처음 보냐며 놀려 대는 신 씨 앞에, 열한 살 때 콩쿠르까지 나간 적 있다는 말은 농담 삼아서라도 꺼내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런 영인에게는 제가 끊어 버린 현과 부러뜨린 액션을 아무렇지 않게 뚝딱 고쳐 버리는 신 씨가 마법사나 다름없었다. 달에 한 번은 꼭 복원 의뢰가 들어왔는데, 그때는 장갑만 안 끼었지 그가 꼭 피아노의 생명을 살리는 명의처럼 보였다. 그의 손이 닿으면 울지 못하는 새가 울음을 터뜨리듯 피아노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영인은 자연스럽게 제 길을 택했다. 그는 조율사를, 아니 좀 더 확실히 말하면 복원가를 꿈꾸게 되었다.
연주가와 조율사, 그리고 복원가. 어찌 보면 같은 궤였지만 복원가는 엄밀히 말해 음악보다는 목공에 더 가까웠다. 피아노의 뼈대가 되는 철골과 나무를 다듬고 부러진 곳을 새로 채워 넣는다. 현은 물론이고 건반과 가끔 부러진 프레임을 교체하기도 한다.
장력 20톤을 버티는 철골 프레임이 부러지면 보통 피아노의 생명은 끝난다. 그러나 신 씨는 마치 장기를 이식해 주듯 다른 피아노의 부품을 맞춰서 하나의 새 생명을 탄생시켰다. 그 솜씨를 알아보는 이들은 이 외진 곳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그에게 의뢰를 맡겼다.
“아이고, 신 씨 혼자 있을 때는 내 허리가 다 휘어졌는데 이렇게 수제자가 있으니 아주 좋네.”
“제자는 무슨.”
“제가 잠깐 신세 지는 거예요.”
공방이라고 하지만 인력이라곤 신 씨 혼자. 난데없이 나타난 조수를 다들 하나같이 반가워했다. 몇 년 전의 일이건만 영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트럭에 그랜드 하나를 올리고 땀을 닦고 있는 이 남자도 서울 강남에서 중고 피아노를 판매하는 업자였다.
이렇게 복원되고 고쳐진 피아노는 아마 들여왔던 가격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비싼 값으로 팔릴 것이다. 그들에게는 금싸라기나 다름없는 이 공방이 모쪼록 오래 유지되기를 바라지만, 가족도 없고 제자 하나 두지 않는 신 씨가 못내 불안한지 손님들은 연신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인물도 잘생겼고 힘도 잘 쓰고 훤칠하이 좋은데. 자식 하나 없는 사람이 이런 돌이 굴러옵니다 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그 정력 평생 가겠어?”
“아 시끄러워. 짐이나 빨리 내려! 안 그래도 귀찮아 죽겠구만.”
말은 이렇게 해도, 신 씨가 영인을 무척이나 아낀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의 솜씨에 제자가 되겠다고 나대는 사람도 몇몇 있었으나 하나같이 사흘을 견디지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유일하게 남은 거라면 영인뿐. 그마저도 권 교수에게 들려 보내고는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줄곧 노래를 불러 댔었다. 덜컥 한 달 전 영인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매년 스승의 날에 찾아와 운반이나 실컷 돕고 술이나 사는 게 전부였던 영인이 늦가을 한낮에 찾아오자 신 씨는 희끗한 눈썹을 꿈틀거렸다. 한창 동선을 꼬고 있었는지 턱을 긁는 손끝의 굳은살이 유난히 도드라졌다. 마치 입사 시험이라도 보는 것처럼 영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배낭끈을 고쳐 쥐었다. 손안의 흥건한 땀이 들키지 않도록.
‘…크게 앓았나 보구나.’
‘아, 네, 환절기라서요. 하지만 다 나아서 비강 상태는 괜찮습니다.’
‘멍청한 녀석. 누가 감기 말하디?’
반갑다는 말 하나 없이 쏘아붙이는 인사에 영인은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게 신 씨 나름의 다정함이었다. 해쓱해진 얼굴에 혀를 차던 그는 그 말을 전부로, 사정도 무엇도 캐묻지 않고 흔쾌히 돌아섰다.
‘안 그래도 청소할 놈이 필요했는데.’
그로부터 지금까지, 영인은 일주일에 닷새는 쭉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통학할 수는 없는 거리였기에 온종일 공방에 수거된 피아노를 매만지고 돌봤다.
학교 연습실의 피아노를 돌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연주자의 유무였다. 연주자가 없는 이곳에서는 무조건 피아노 그 자체뿐이다. 소리를 내는 기계로서의 동력과 작용, 그것을 점검하고 살핀다. 소리는 그 뒤, 나중 일이다. 사람 사귐에 서툰 영인으로서는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다소 험하게 굴어도 상관없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현이 끊어져도 그만, 액션이 부러져도 그만. 부러진 페달도 다른 것으로 끼우면 금방이다. 한동안 학교 내에서 금처럼 피아노를 여기다 보니 새삼 낯설기도 했지만, 며칠 안 가 영인은 이 환경에 바로 적응했다.
그리고 그의 가장 큰 직무는 신 씨의 술 상대였다. 가족 하나 없고 일손 하나 없이 일하는 외로운 사내의 말 상대가 되어 주면 나름 보람차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 피아노는 안에 모시고 좁은 방에서 남자 둘이 퉁퉁 불은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신다.
너덧 병으로는 취하지도 않는다며 으름장을 부리던 신 씨도, 세월이 장사인지 세 병째를 비우니 눈이 조금 풀렸다. 그 와중에도 제 코가 비뚤어지게 마실 테니 너한테는 줄 술이 없다, 아까워서 안 된다며 영인에게는 한 방울도 권하지 않았다.
그가 구두쇠라서가 아니라, 그 또한 영인의 병증을 모두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도 제법이야. 권가가 너를 생각보다 잘 키웠어. 야마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배웠구나.”
“아닙니다.”
“과한 겸양은 독이라 했지. 그리고 생각보다 잘했다는 건 네가 아닌 권가 이야기다.”
그가 말하는 권가는 권 교수를 말한다. 그는 권호영 교수의 선배였다. 영인도 둘 사이 과거의 일을 전부 알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것은 권 교수는 그를 무척이나 존경했다. 제가 보기에도 까마득한 권 교수가 신 씨에게 더욱 허리를 굽혀 인사할 정도였다.
“권가 놈이 요사이 엄청 나를 귀찮게 해.”
“…….”
“자꾸 나한테 너 돌려 달라 뭐라 요새 아주 나를 귀찮게 한다.”
“죄송합니다.”
“너도 무어에 삐졌는지 몰라도 적당히 굽히고 돌아가 줘. 나름 걔 너를 많이 아껴. 자꾸 우는소릴 하잖니. 잘 키워 둔 자식을 내가 꾀어냈다고. 한 번 주었으면 됐지 다시 가져가면 어떡하냐고.”
“…알고 있습니다.”
너스레를 떠는 말에 영인은 그저 쓰게 웃었다. 그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신 씨가 지나가듯 툭 던지는 말로 물었다.
“너 아직도 네가, 망가졌니 뭐니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
“여전히 그러고 있을 것 같으면 그냥 권가한테 가거라. 아닌 것 같아서 들여보내 줬더만….”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한 말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첫 튜닝 해머를 쥔 지 몇 달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지금처럼 술자리가 이어지다 무엇에 동했는지, 영인은 만류하던 신 씨의 손을 뿌리치고 제 입에 훅 술을 들이부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대작이었다. 신 씨의 속도에 맞추던 영인은 어느새 만취해서는, 앞뒤 분간도 못 하고 신 씨에게 실컷 주정을 부렸다. 자기는 피아노만도 못하다고.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그때 제 신세 한탄에 신 씨가 답했던 그 일련의 말들을, 영인은 여태껏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인석아. 모든 피아노는 나무로 치면 이미 진작에 망가진 나무다. 우리는 안 그럴 것 같니? …다 결함이 있어. 신 아래 완벽할 사람은 없다. 소리라고 안 그럴 것 같니? 440Hz가 무슨 소용이 있니. 그 어떤 인간의 선율도 자연의 소리를, 새의 지저귐과 빗소리를 따라잡을 수 없어. 절대 음감? 웃기지 말아라. 그거 없어졌다고 네가 소리를 못 듣니? 귀가 먼다고 해서 소리가 안 들릴 것 같아? 어차피 진짜 소리는 귀로 듣는 게 아니다. 이 아둔한 녀석….’
소리를 귀로 듣는 게 아니라니. 이 무슨 궤변인가 싶었던 말들을 내내 캐물었지만 신 씨는 끝내 답해 주지 않았다. 여전히 영인은 그 해답을 알지 못했지만, 아주 조금은 알게 된 것도 같았다. 유리잔을 채우자 경쾌하게 잔을 채우는 액체의 촉감에 느슨히 웃으며, 영인은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저, 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
다행히, 오늘 밤도 다섯 병까진 가지 못했다.
신 씨는 세 병째를 절반 겨우 비우고서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잠든 그를 안방에 눕히자 영인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초겨울 날씨를 잊을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다. 술상을 정리하던 영인은 남은 술병 반을 들고서 주변을 살폈다. 신 씨는 깊이 잠들다 못해 코까지 골고 있었다. 괜히 그의 눈치를 살핀 영인은 병에 남은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해갈은커녕, 더욱 목이 말랐다.
공방에 딸린 하나뿐인 방은 비좁아서 대자로 누워 버린 신 씨 곁에 몸을 누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신 씨에게 이불을 꼼꼼히 덮어 준 영인은 술상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다 불어 터진 라면 면발을 버리고 냄비와 그릇을 씻은 뒤 그는 컨테이너 구석에 마련된 간이 매트리스를 폈다. 잠자리 주변엔 서른 대가 넘는 피아노들이 숨죽이고 있었다.
“…….”
열한 살, 화원 아트홀. 제 인생 마지막 무대.
말 그대로 ‘즉흥곡’이었기 때문일까, 영인은 정작 자신의 연주가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제 앞, 16번이었던 문규화의 연주는 제법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규화의 연주에는 그 맹아나 다름없던, 여덟 살답지 않게 야무졌던 타건 실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지금의 장영인은 신정훈의 연주를 재현해 낼 수 없다.
조율사도 피아노의 상태 확인을 위해 짧은 연주 정도는 할 필요가 있었다. 그 핑계를 대며 영인은 이 버려진 피아노들을 상대로 관객 없는 독주회를 열고는 했다. 물론 엉망이었다. 머리에는 그 ‘소리’가 남아 있어도 고장 난 몸뚱이는 그를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
“…읏.”
뚜껑이 뜯겨 액션이 다 드러난 피아노 앞에서 망연자실 앉아 있던 영인은 건반 위에서 덜덜 떨리던 오른손을 제 가랑이 사이로 가져갔다. 경련은 쉽게도 멈추었다. 실소가 터질 만큼. 느긋이 제 다리 사이를 주무르며 영인은 아직 퇴색되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냈다.
규화가 떠나 버린 뒤, 영인은 체크아웃 시간까지 모텔에 혼자 머물렀다. 침대에 몸을 웅크린 채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규화의 체취를 들이마셨다. 방금까지 손에 잡혔던 촉감이. 멀리서 들려왔던 그 얕은 신음들이 꿈처럼 느껴져, 남은 오감을 죄다 긁어모았다.
“하아….”
또, 헛수고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인은 자신의 연주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 시절 치기 어린 도전의 결과는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같은 위치였던 15년 전과 달리 지금의 규화는 영인이 거들떠보지도 못하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러니 규화가 제 추행을 받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한번 불꽃이 인 마음은 쉬이 꺼뜨려지지 않았다. 치미는 쾌감에 영인은 목을 뒤로 젖혔다. 목울대 아래서 들끓는 신음을 짓이기는 어금니를 물었다. 무의식적으로 되뇌려는 이름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몽정에서 그쳤던 상상은 그 정도를 모르고 부풀어 올랐다. 신음을 흘리던 그 다리 사이로 제 것을 집어넣어 꿈을 현실로 이루어내고자 했던 욕심이 그날 이후로 영인을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어디에서건 주눅 드는 법 없이 또렷하던 눈동자와 제 몸을 강하게 그러안던 섬세한 손가락의 감촉이, 영인의 등줄기를 오스스 긁어내렸다.
“하아….”
왜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을까, 넌.
처음이야 아침이라 발기되었다고 하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분명 규화는 제가 자위하는 것을 보고 재차 발기했다. 그게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여지를 주지 않고 돌아섰던 뒷모습이 원망스럽기는커녕 그마저도 15년 전, 제게서 책을 건네받아 무대로 나아가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반갑기만 했다. 규화는 달라지지 않았다. 미련한 제 집착과 오기도 그대로였다.
한 손에 가득 쥐고도 모자랄 만큼, 제 것과 규화의 것을 함께 비비며 달아올랐던 절정이 터무니없이 좋아서, 그 뒤로 아무리 자위를 해 봐도 그때와 같은 감각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적한 피아노의 무덤 가운데 홀로 성기를 세운 자신이 처량하면서도 영인은 힘겹게 도달한 정점에서 허우적거렸다. 쾌감은 현실 바깥에 있었으나 샘솟은 백탁액은 그가 딛고 선 검은 바닥 위로 뚝뚝 내려앉았다. 흑백의 건반은 언제 노래했냐는 것처럼 굳은 정적 위에서 영인의 자위를 지켜보았다.
홀로 허덕이던 영인은 제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간이 매트리스에 몸을 누였다. 그가 오래 쓰던 휴대폰은 배터리가 방전된 채 죽어 있었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그는 익숙하게 음악 하나를 켰다. 베토벤의 비창 2악장. 적막을 섬세히 채우는 멜로디에 영인은 선연히 빛나는 눈을 애써 감으며 또 하루의 휴가를 흘려보냈다.
휴가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나 어언 신년에 이르기까지, 스마트폰에 전화가 울리는 일은 없었다.
***
영인이 피아노 복원에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는 성당의 피아노에 있었다. 성당이 지어졌을 때부터 함께했다는 그 피아노에 영인은 큰 애착을 두었다. 관리 없이 방치된 지 오래, 건반도 잘 올라오지 않는 데다가 반음 이상 피치가 떨어진 불협화음에 영인은 수녀님들을 졸라 조율사를 불렀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이건 버리는 게 답이라고. 고치는 것보다 사는 값이 저렴할 거라고. 단종된 모델이라 부품조차 호환할 수 없어 조율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기껏 음을 맞춰 놔도 보름도 못 가 피치가 떨어졌다. 결국 두어 번 부르기를 끝으로 피아노는 원래의 소리를 되찾았다. 삐걱거리는 건반, 아무리 도를 눌러도 시와 도, 멀고 먼 그사이 어딘가를 울리는 자신의 소리를.
공방에 다닌 지 3개월이 지났을 즈음, 영인은 직접 성당 피아노의 뚜껑을 열어 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내부는 예상보다 몇 배 더 심각했다. 해머가 현을 어떻게 울려 왔는지 용할 정도로, 내부는 벌레 먹고 썩은 것은 물론 멀쩡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
영인은 실없이 현만 몇 번 조이다 다시 뚜껑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무력감에 몸부림치면서도 한편으로 의욕이 샘솟았다. 삶의 목표가 생겼다. 답이 없다고 모두가 혀를 내두른 이 피아노를 고칠 수 있다면 마치 제 삶에도 어떤 희망이 깃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일었다.
다행히도 그는 음악 외에도 재능이 많았다. 비상한 머리로 곧잘 쉽게 외우고 익혔다. 신 씨가 하는 모양을 한두 번 어깨너머로 본 것만으로 능숙하게 따라 했다. 그래서 신 씨는 영인을 도둑놈이라 불렀다.
과분한 칭찬이었다. 그렇게 영인은 느리게나마 성당의 피아노를 고쳐 나갔다. 피아노를 완전히 복원해 낼 때까지는 이곳 공방에서 뼈를 묻을 생각이었다. 3년 전, 권 교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네가 나 대신 가 줘야겠다. 하나 큰 게 들어온단다.”
다음 날. 엊저녁의 숙취는 흔적도 없이 새벽부터 일어나 오전 작업을 마친 신 씨가 점심상을 내려 둔 영인더러 갑자기 내일 서울로 올라가라 지시했다. 다름 아닌 권 교수가 찾는다는 비보였다. 물론 영인이 아닌 신 씨를. 그리고 그는 저 대신 영인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가시지 않고요?”
“그 정도는 권가가 알아서 잘할 텐데. 몇 개 부탁받은 게 있어서 말이다.”
“해머 분해인가요?”
“지 쓰던 걸 가져왔다나. 뻔한 코쟁이지.”
신 씨의 노골적인 언행에 영인은 말없이 웃었다. 문득 가영이 제게 했던 충고가 떠올라서였다. 그녀의 말대로 대학생들이야 자신이 쓰던 건반과 액션을 챙겨 다니지는 못하겠지만 피아니스트들의 경우는 실제로 흔했다.
괴짜로 유명한 글렌 굴드를 비롯해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중 몇몇은 전세기로 자신의 연주용 피아노를 옮겨 다니기도 했다. 그에 미치진 못하더라도 피아니스트들은 자신의 전담 조율사를 고용해 공연마다 데리고 다니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직접 제 피아노의 액션과 건반 등을 떼어 연주할 피아노에 조립하길 요구했다. 피아노 스툴 정도야 애교에 속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날 공연장의 악기가 프로그램의 색깔을 결정짓는다. 좋게 말하면 프로 의식이 투철한 것이고 일면으로는 제게 고용될 국내 조율사를 무시하는 견해도 없잖아 있었다. 조율사로서는 반갑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자격 미달이었다.
“아마 이놈 때문 아니겠냐?”
찌개를 뜨던 신 씨의 수저가 밥상 아래 펼쳐진 오늘 자 신문 가운데 대서특필된 이름을 가리켰다. ‘안토니오 바나흐 내한 공연.’ 하지만 바나흐의 이름에 붙는 수식어는 따로 있었다. 차이콥스키 우승을 거머쥔 신예, 혜성 같은 실력자. …바로 규화를 꺾고 콩쿠르 우승을 거머쥔 장본인이었다.
폴란드 출신의 신예 바나흐는 올해 고작해야 스무 살로, 지난 차이콥스키가 그의 국제 대회 첫 출전이자 첫 우승이었다. 그 전까지 규화 것으로 점치던 지난 콩쿠르 우승자 자리가 바나흐에게 돌아가면서 많은 구설수가 일었다.
클래식계에서의 인종 차별이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었다. 유럽 내에서의 순혈주의를 떠나 클래식 자체를 백인 귀족의 음악으로 규정하는 시선이 분명 존재했다. 완벽히 모두를 압도하는 연주가 아닌 이상, 평가에 그러한 ‘사견’이 들어갈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애초부터 음악이란 주관이 개입될 수 있고, 해석에는 차별을 비롯한 심사위원의 가치관 또한 반영되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다음 쇼팽 콩쿠르였다. 규화를 앞선 한국인 피아니스트들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동양인 연주자들이 광풍을 일으키는 지금, 유럽의 시선은 모두 이 신예 바나흐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폴란드 출신이다. 바르샤바의 옛 향수를 일으킬 돌풍의 주역을 찾는 그들에게, 쇼팽은 특히 관대할 법하다. 물론 규화는 그에 대해 입도 뻥긋한 적 없지만, 정작 당사자가 아닌 다른 모두가 이 신예를 날 선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지난 콩쿠르에서 ‘우승을 뺏겼다’는 표현으로 기술한 기사도 더러 있었다.
그런 그가 직접, 호랑이 굴과 같은 적진에 내한을 온다니.
“네가 다녀와라.”
“선생님.”
딱딱하게 굳은 영인의 표정은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바나흐를 떠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권 교수의 일을 돕게 되면 공방하고는 또다시 멀어진다.
자신을 찾은 제자를 좋게 돌려보내려는 스승의 언사에 영인은 흔치 않게 제 불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아직 공방에서 지낸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영인은 규화에게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이곳에 머무르며 최대한 많이 배워 갈 생각이었다. 그에겐 목표가 있었다.
“네가 무엇 때문에 여기를 다시 찾았는지는 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너한테 훔쳐 가라 할 만한 것도 지금의 나에겐 없어. 알지 않니.”
건더기가 몇 없는 찌개를 뒤적거리며, 신 씨는 영인의 곧은 눈을 피했다.
“…동선銅線 제조는 장인의 영역이고, 한국에선 인재가 없어. 거기엔 물론 나도 포함이 된다.”
3년 만에 공방을 찾은 영인은 대뜸 신 씨에게 저음부 현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척 당돌한 도전이었다. 아무리 신 씨가 피아노 복원의 장인이라 해도 그건 전체적인 복원에 한해서였다. 단종되어 부품을 정 구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직접 만들기는 하지만, 저음부 현은 시일은 걸려도 주문만 한다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공산품이었다.
그래서 신 씨는 영인에게 그 목적을 물었고, 영인은 짤막하게 대답을 덧붙였다. ‘쇼팽 콩쿠르에 나갈 피아니스트의 왼손에, 가장 무리가 없는 저음부 현을 찾고 싶다’고.
쇼팽은 음색이 맑으며 액션이 가볍고 섬세한 ‘플레옐Pleyel’ 피아노를 유독 선호했다. 반면 당대의 ‘에라르Erard’ 피아노에 대해서는 혹평을 남겼다. 아예 연주를 기피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애연하는 플레옐에 비교하면 에라르의 액션은 무거운 탓에 그가 추구하는 미세한 기법들을 표현하기 적절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규화의 선호는 플레옐보다는 에라르에 가깝다. 무거운 건반과 강한 울림. 게다가 콩쿠르는 쇼팽과 궁합이 좋은 살롱이 아닌 대극장에서 이루어진다. 피아노는 당연히 스타인웨이일 것이다. 그리고 건초염까지.
당대 쇼팽의 곡을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섬세한 주법이 필수다. 과연 현 상태로 규화의 손목이 그 모두를 버텨 낼 수 있을까 영인은 의구심이 들었다.
쇼팽 콩쿠르까지는 대략 20개월 정도가 남았다. 그 전까지 최선을 다해 손목을 치료한다고 쳐도 어떻게든 연습은 필수일 테고 영인은 최대한 그 부담을 줄여 주고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규화가 연습할 때의 피아노만큼은 자신의 영역이었다. 규화의 왼손이 다룰 저음부에 대해서 그는 치열하게 고민했고, 유일한 돌파구를 찾았다. 그게 바로 저음부의 동선이었다.
“게다가 스타인웨이라면 본토에 가는 수밖에 없어. 그것도 뉴욕 말고 말이다. 함부르크라던가, 그 주변에 분명 수주를 받았던 곳이 있을 게다. 지금 공정에서는 그렇게 만들고 있지 않으니까 그마저도 확실치는 않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제조사가 저마다 주문 제작을 고집할 정도로 저음부 현에 대한 접근 방식은 서로 다르다. 스타인웨이에 대한 정보는 아직 영인에게 요원했다. 한국 스타인웨이에 주문하면 받을 수야 있지만, 기존 공정으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더욱 섬세한 현이 필요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그것을 조정할 수 있다면. 규화의 말대로 단순히 콩쿠르가 아닌, 더 나아가 ‘규화만의’ 피아노를 어쩌면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도 좀 알아볼 시간을 다오. 내가 언제 널 내쫓더냐?”
“내쫓으셨죠.”
“말은 바로 해야지. 널 빌려준 거였다. 그 결과 어떠냐. 많은 걸 배웠지 않어?”
3년 전, 공방에 온 권 교수는 영인의 재능을 알아보고 선뜻 학교의 조율사 자리를 권했다. 그때 당시엔 장 씨도 간경화를 앓던 중이라 돌볼 사람이 필요했고, 때문에 영인이 서울을 수시로 오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신 씨는 영인에게 ‘이런 피아노’가 아닌 정상적인 악기를 익히는 것도 공부가 된다며 선뜻 영인을 그에게 맡겼다. 이후 자연스럽게 권 교수는 영인의 이력을 알게 되었다. 그가 열한 살 때 애석하게도 탈락했었던 신정훈이라는 사실까지도.
신 씨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인연이었지만 어쨌든 세상은 좁았고, 어떻게든 만날 인연은 다시 만나게 되어 있었다. 영인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신 씨를 보면서도 그때 제가 권 교수에게 가지 않았더라면 문규화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으리란 사실을 알기에 문득 가슴을 쥐었다.
…어쩌면 만나지 않는 미래가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니 어디 나도 공부해 보자. 네 3년이 헛되지 않았듯, 그 정도의 시간은 걸리지 않을 테지만 잘 훔쳐 와라. 네가 훔칠 거리를 나도 마련해 둘 테니.”
“…….”
“마침 오늘 저녁 스타인웨이 하나가 들어온다고 하더구나. 20세기 초반 거, 다행히 독일제라 하더군. 그걸로 시험해 보도록 하자. 반납까진 한 달이지만, 하루면 되겠지. 네 녀석 눈대중이라면.”
“…알겠습니다.”
“그래.”
결국 운명은 의지와 별개로 어떻게든 흘러가게 되어 있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영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 씨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영인은 찌개를 다시 데워 오겠다며 다 식은 냄비를 들고 일어섰다.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대로라면, 영인은 규화의 라이벌을 돕는 셈이 된다.
***
한편 재형은 무척이나 난처한 상황이었다. 입을 굳게 다문 규화 앞에서 그는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거절해도 좋아. 중요한 건 네 의사니까.”
바나흐의 내한 공연은 뉴욕에 들렀던 재형도 미리 언질을 들어 알고는 있었다. 애석하게도 문규화와 바나흐 모두 같은 매니지먼트 소속이었다. 콩쿠르 우승자와 준우승자를 동시에 배출한 쾌거로 소속사는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지만, 연주자 간의 미묘한 감정싸움은 그 호재와 별개였다.
안토니오 바나흐야 ‘굴러온 돌’이니 아쉬울 게 없었다. 다만 신동 소리를 들으며 성장하고 자리 잡은 문규화는 ‘박힌 돌’이 되고 말았다. 시대가 바뀌어 많이 가벼워졌다고는 하나, 그 권위를 들어 점수로 매기는 콩쿠르와 클래식 업계에서는 승자와 패자 모두의 매너도 중시한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겉으로 드러낼 수 없다. 특히 이런 초청을 받은 입장에서는.
“애초에 거절할 기회조차 없으면 좋았을 텐데요.”
“내 선에서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
“이해는 해요. 우승자의 권위가 준우승자보단 높을 테니까.”
“규화야.”
“형도 이미 대답을 정해 두고 물어보시는 거 아닌가요?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이 Yes 말고 뭐가 있을까요.”
당돌하게도, 바나흐는 자신의 내한 공연에 문규화를 초대했다.
처음 제안은 합동 공연이었다. 규화의 부상은 기밀이었기에 소속사 헤드도 정확한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같은 소속사에 라이벌이 있는 이상 재형 또한 어떻게든 함구해야 했다. 내한 공연만으로도 놀라운데 2부의 합동 공연에 대해 의향을 물어왔을 때 재형은 눈앞이 깜깜했다. 어떤 구차한 이유를 둘러서라도 거절해 내느라 진땀을 빼는 도중에 한국에서 일이 터진 것이다.
화원대에서 비밀리에 개최된 마스터 클래스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상황은 더 난처해졌다. 좋은 점도 있었다. 건초염이라는 루머를 빙자한 사실은 쑥 들어갔지만, 반면 안식년을 위시하면서도 흔쾌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 바나흐 쪽은 더욱 합동 공연을 졸라 댔다.
재형은 뉴욕 본사 출장을 위해 잡아 둔 3주 중 보름 가까이는 그 제안을 거절하느라 진땀 빼는 데 소모했다. 그리고 소식을 듣자마자 권 교수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귀국했다.
연락 두절 뒤 하루 만에 돌아온 규화는 상당히 뻔뻔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주사 치료에 깁스까지 병행하며 간신히 수술을 보류해 온 그 손목은 주인만큼 뻔뻔하지 못했다.
50일여간 치료 끝에 호전된 규화의 손목 상태는 일정 소화를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이전 수준으로 연습량을 늘렸다간 재발할 게 뻔했다. 하지만 여유를 가질 형편이 아니었다. 차츰 쇼팽 콩쿠르를 대비해 레퍼토리를 완성해 나가야 했다.
쇼팽 콩쿠르 예선은 참가자 전원이 자신의 연주 영상을 녹화한 비디오를 제출해야 한다. 물론 규화는 예선 진출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 비디오에 담을 모습만큼은 멀쩡한 손목으로 보여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안 그래도 여러모로 심란한 상황에 도착한 바나흐 공연의 초대권은 더욱 그 불을 지폈다. 합동 공연까진 무리라 생각했는지 방향을 틀었지만, 어찌 됐든 내한 공연에 규화를 부르고 싶은 모양이었다. 당연히 재형 선에서 거절하려 했지만 수를 먼저 읽은 바나흐 쪽은 국내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당돌하게도 규화를 먼저 언급하며 그를 초대했다는 말을 사전에 흘렸다.
도발을 부추긴 이가 바나흐 측 누구인지 몰라도 무척이나 머리가 좋았다. 둘이 같은 레이블 소속임을 이용해 규화의 안식년을 정탐하고, 적절한 기회를 엿봐 패를 던진 참이다. 의도는 불순했고, 그를 숨기려는 시도조차 없이 투명했다. 그 당돌한 행보는 차이콥스키 우승자라는 영예에 빛을 더하며 신예다운 패기로 치장되었다. 클래식계는 숨죽이며 문규화의 반응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노출됐는데 이제 와서 거절하면 이상할 거라면서요. 연주하는 게 아니면 큰 상관은 없죠.”
“괜찮겠어?”
“괜찮지는 않지만요.”
규화는 담담히 부정했다. 웃음기조차 없는 대답에 재형은 연거푸 한숨이었다.
결국, 여기서 거절해 버리면 규화의 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었다. 라이벌의 내한 공연에 속 좋게 모습을 비출 정도로 규화는 서글서글한 사람이 아니었고, 덧붙여 바나흐와의 친분도 전무했다. 그의 입장에선 거절이 당연한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친교를 청해온 후배를 무시하는 처사’로 비출 심산이 컸다.
억울했지만, 패를 뺏긴 현 상황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잘 되어 봤자 결국 본전이다. 규화로선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손해였다. 수락한다면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는 셈이고 거절한다면 지난 콩쿠르 결과에 연연하는 소인배가 된다. 굳이 대인배 행세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후 있을 쇼팽 콩쿠르까지 고려한다면 굳이 결점을 잡히고 싶지는 않았다. 지긋지긋한 클래식 세계에서는 연주자의 매너나 이미지마저도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으므로.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칼을 후 불며, 규화는 눈을 수차례 깜박였다. 완벽히 고정되어버린 왼손의 무딘 감각에 흘끗 미소 지으며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한 공연은 내달이었다. 날짜로 세면 고작해야 3주. 기계적으로 웃는 일이야 그리 어렵지 않다. 기왕 하기로 한 것, 다만 그저 손해만 볼 필요는 없었다. 참담해하는 재형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규화는 결심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
***
당연히, ‘장영인’이라는 변수는 재형의 계산에 없었다.
오래 전 진행했던 규화의 한국 리사이틀 때, 촉박한 일정에 권호영 교수는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공연장 계약부터 기타 편의까지 리사이틀 전반에 직접 개입하며 적절한 권위를 발휘했다. 예민한 규화가 마음을 놓았을 정도로 권호영 교수에 대한 신뢰는 당연한 바였다. 그는 흔쾌히 콘서트 튜너까지 맡아 주었다.
그와 관련한 것들을 상의하던 도중, 자연스럽게 현장에서의 보안 문제가 거론되었다. 게다가 최종 리허설을 제외한 다른 리허설의 경우 권 교수의 본업을 고려하자면 온전히 시간을 투자하긴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나름의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손길을 타면 규화가 불안해할지도 모르니 비밀로 하지. 실력만은 내가 보증하네.’
최종 리허설은 직접 참관하겠지만, 그 전에 당신의 업무를 도울 제자를 직접 섭외했다는 권 교수의 제안을 재형은 큰 고민 없이 승낙했다. 때마침 터진 기자 잠입 사건이 빠른 결정을 도왔다. 생각해 보면, 그게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
사실 규화와의 마찰은 어느 정도 예상된 바였다. 손목 부상이 심해진 이래로 규화는 더욱 예민해졌고, 공연 직전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돌발 행동을 몇 차례 보였다. 직전 콩쿠르에서 세미 파이널 무대 30분 전 대기실에서 사라져 진땀을 뺐던 경험을 생각해 보면, 그래도 사람과의 마찰이 상대적으로 나았다.
우려한 바대로 규화는 폭발했다. 무대에서 최종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대기실을 찾은 재형은 그에게 고개 숙여 정중히 사과했다. 날벼락을 맞은 것 치고는, 그 반응이 생각보다 젠틀해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때 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장영인 씨? 오랜만이네요.”
“…안녕하세요.”
재형은 악수를 위해 오른손을 건네며 눈앞에 일어선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복장 탓일까. 제가 기억과 사뭇 다른 모습에 재형의 눈썹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갖춰 입었던 어색한 슈트 차림과 다르게 평상복을 입은 그는 기억보다 체구가 컸고 게다가 미남이었다. 마주 잡은 손의 악력에 재형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손가락이 굵고 기네요. 피아노 치기 딱 좋은 손인데.”
“…감사합니다.”
농담 삼아 건넨 인사에 재형을 바라보는 그 또렷한 눈동자는 이전과 다르게 완고하고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규화 앞에서 기를 못 펴던 사람과 동일 인물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거친 손끝의 촉감은 제 주인이 기술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재형은 날카로운 눈으로 영인을 관찰했다.
매니지먼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규화가 내건 조건은 지나치게 간단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장영인을 데려올 것. 영인의 소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권 교수에게 행방을 묻고 난 뒤 이틀 만에 오늘의 약속을 잡았다. 이마저도 긴 이유는 필요치 않았다. 단지 규화가 찾는다는 말 하나에 흔쾌히 만남은 성사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만사를 쉽게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물려주어 급한 불은 껐지만, 그 사탕을 계속 쥐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이내 입을 연 재형의 시선에서는 숨기지 않은 적의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말씀은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없을 때 규화가 여러모로 신세를 끼친 것 같더군요.”
깍듯한 말투 속 가시 돋친 속내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영인은 둔하지 않았다. 여타 감정이 깃들지 않은 얼굴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이전의 통화를 떠올렸다.
사흘 전, 권 교수의 연락이 왔다. 신 씨를 통해서였다. 늘 배터리가 충전되어 있던 스마트폰과 달리 기존 영인의 휴대폰은 방전된 뒤 다시 켜 두질 않아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연결되지 않는 덕분이었다.
작업 중이던 액션 교체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난데없는 이름이 들려와 영인의 심장은 손쉽게 가라앉았다. 권 교수는 짤막하게 용건을 전했다. 규화가 그를 찾고 있다고.
재형이 제시한 미팅 장소와 날짜를 전달한 권 교수는 노파심에 한마디를 더 덧붙이고는 전화를 끊었다. 조심하라고. 재형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고.
“규화와 어떤 계약을 어떻게 맺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말에도 영인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수 있었다. 매니저와의 미팅을 각오한 순간부터 예상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권 교수의 전화가 온 그날 밤까지도, 스마트폰은 전화도 문자도 그 무엇도 없었다. 먼저 보내 볼까. 제가 들은 사실이 맞냐 물어보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에는 관뒀다. 직접 연락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묻고 싶었던 규화의 안부에 대한 말을 꾹 눌러 참으며 영인은 차분히 대답했다.
“저보다 문규화 씨에게 직접 여쭤보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제가 을이었으니까요.”
“그건 알고 있는데, 도무지 규화가 입을 열지 않아서 말이죠.”
“그렇다면 저 역시도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밀 유지 조항이 있어서요.”
재형은 까끌까끌한 턱을 쓸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계약 내용이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규화가 넌지시 물었던 5천만 원이란 금액. 그리고 권 교수가 흘린 이야기들을 미루어 볼 때 장영인을 조율사로 고용 계약한 건 뻔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의문이었다. 여태껏 규화는 개인 조율사를 고용할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데다가, 덥석 모르는 사람을 제 곁에 둘 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대체 규화가 무엇에 동했는지 재형으로서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한국행을 결정하고 난 이래로 규화는 예측 불가의 행보만을 지속했다. 게다가 난데없는 마스터 클래스까지. 이미 일어진 일들은 차치하고 이후의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재형으로서도 무언가의 가닥을 잡는 게 필요했다. 그의 예리한 촉의 끄트머리는 한결같이 영인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얕본 것일까, 눈앞의 영인은 그다지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규화의 매니저로서, 규화를 생각해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이전 같은 돌발 행동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규화의 안전을 위해서 그건 약속해 주셔야겠습니다.”
어조가 바뀌었다. 강경한 문장에 영인은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저를 고용한 건 문규화 씨입니다. 해당 매니지먼트가 아니고.”
“…장영인 씨.”
“하지만 계약을 떠나서, 도의적 차원에서는 하나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숨을 고른 영인은 높낮이 없이, 하지만 음절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말을 내뱉었다. 마치 맹세라도 하듯이.
“저는 절대로, 규화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겁니다.”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
무척이나 오만한 말투에 재형은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장영인을 얕본 모양이다. 예상과 다른 대답에 그는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문득 그의 시선이 깍지를 낀 영인의 두 손끝에 닿았다. 맞잡았을 때 까칠하게 와 닿았을 정도로 부르튼 손. 이리저리 불거진 마디.
단순한 조율 작업의 산물은 아닌 것을 증명하는 두 손이 살며시 떨리고 있는 것을, 재형의 날카로운 두 눈은 놓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꾹 깍지를 끼어 제 손을 눌러 잡은 영인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땐 스스로 물러나겠습니다.”
“…지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겠어요?”
“물론이죠.”
반문이 끝나기 무섭게 단호한 대답이 내렸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았다.
***
물리적인 길은 같을지 몰라도, 두 번 다시 과거와 같은 길을 오를 수는 없다.
계절만 해도 그렇다. 매해 겨울을 맞이해도 그 서늘함은 새삼스럽다. 직전에 즐겼던 가을과 그 전 여름을 기억해 내기도 까마득하다. 봄과 가을이 각기 반대 방향으로 흘러서일까, 가을에서 깃든 겨울은 다신 봄은 없을 것처럼 그저 얼어붙기만 했다.
그래서였다. 분명 아는 길임에도 영인에겐 그 모두가 새롭기만 했다. 날씨는 가을이라곤 기억나지 않을 만큼 유독 서늘해, 새벽에는 눈이 내렸다고 했다. 올 겨울은 유독 눈이 드물었다. 새해를 즐기는 거리는 평일임에도 붐볐고 그들의 발자국 아래 모처럼 쌓인 눈은 흙탕물이 되어 짓이겨졌다. 그 물기 어린 운동화 바닥을 툭툭 털며 영인은 호텔에 들어섰다.
영인은 익숙하게 로비에서 용건을 전한 뒤, 오전에 만났던 매니저의 이름을 규화의 이름 대신 댔다. 엘리베이터로 안내하는 직원에게 자연스럽게 가방을 건네자 영인의 얼굴을 이내 알아본 직원이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그 과도한 친절에도 조금은 무뎌졌다. 그 모든 게 규화에게 닿아 가는 길이라 생각하면 감내하기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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