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너의 그 시 플랫을 듣지 않았더라면.
***
아이는 자신의 이름이 싫었다.
그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고 했다. 밤새 내린 눈이 얼기 전에 쓸기 위해 나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그대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은 생색이었다. 그때 주먹 두 개만 했던 게 어떻게 이렇게 컸냐며, 장씨 아저씨는 가슴 한쪽 비뚤게 단 카네이션 옆을 팡팡 치며 기분 좋게 잔을 비웠다. 그때 마침 주민 센터 직원이었던 영희 이모와 인숙 이모가 그를 도와 보육원을 수소문했다. 그렇게 아이는 희망원에서 거둬졌다.
선물이라며, 그 은인 셋은 인심 좋게도 제 이름에서 각기 한 글자씩을 떼어 아이에게 주었다. 그 글자들을 조각조각 기워, 아이의 이름은 장영인이 되었다.
‘이름은 원래 남들이 붙여 주는 거야.’
부쩍 머리숱이 줄어든 영희 이모는 처녀 때부터 목숨처럼 고수해 왔던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인숙 이모는 변함없이 파마머리였다. 장 씨까지 세 사람은 어버이날이면 꼬박꼬박 찾아오는 아이를 대견스러워하면서도, 여전히 버림받은 갓난아이를 보듯 아이를 안쓰러워했다.
‘생각해 봐, 영인아. 누가 태어났을 때부터 자기 이름 가지고 나 황인숙이요~ 하고 태어났겠니?’
‘그치만….’
…너무 티가 나잖아요. 고아라는 게.
아이는 하고픈 말 대신 장씨 아저씨의 술잔을 채웠다. 이모들의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삐죽이 튀어나온 마음은 모난 돌이 정을 맞듯 늘 세파에 부대끼었다. 보살펴 줄 둥지가 없어,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의 풍파를 알아 버렸다. 일찍 철이 든다는 것은 그토록 서글픈 일이다.
희망원이 전부였던 시절만 해도, 아이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의 아이들 모두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순하고 착했다. 수녀님들은 엄하신 한편 부모보다 더 아이들을 사랑했으며, 아이들도 형제보다 더 서로 간의 우애가 깊었다.
희망원은 산동네 판잣집 중에도 산꼭대기에 있었다. 성당 부지에 딸린 보육원이라 애초에 일손이라고는 수녀님 두 분이 다였다. 가뭄에 콩 나듯이 봉사자들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사를 오르기 험한 겨울이나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깜깜무소식이었다.
이곳 아이들에게 만남과 이별이란 늘 일방적이었다. 대문 앞에 무릎을 모으고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는 한편 차라리 아무도 오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경계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었다. 계절에 한 번 남짓, 아주 가끔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마치 가판 위에 무르지 않은 과일을 고르듯 아이들을 고르고 훑고는 했다. 아이들은 둘로 나뉘었다. 부러워하거나 제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거나. 아이는 후자에 속했다. 아이는 희망원이 좋았다. 그 이상의 세계는 원치 않았다.
비극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학부모 수업 참관일이었다. 장씨는 인연에도 없는 양복까지 빌려 입고 영인의 반을 찾았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어설픈 아빠 노릇은 금세 들통이 났다. 아무리 번지르르한 옷을 입었어도 장씨 아저씨는 아저씨일 뿐, 아이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야, 너 고아라며?’
‘너 사는 데가 산꼭대기 고아원이야? 내 옷 저번에 거기다 버렸는데.’
‘쟤 완전 불쌍하다. 그럼 아빠 엄마도 없어?’
‘거지새끼.’
희망원이라는 그 연약한 껍질이 깨져 버렸다. ‘다름’에 면역되지 않은 아이가 처음 맛본 세상은 고통스러웠다. 장영인은 엄마 아빠 없는 고아래요, 거지래요. 그 경쾌한 리듬에 맞춰 눈을 깜박이며 아이는 깨달았다. 드라마 속 세상 같던 가정의 존재가 현실이고 평범이었다는 그 단순한 사실을.
아이는 곧 외톨이가 되었다. 희망원도 더는 아이의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아이는 비보다 더 자주 울었다. 내려앉은 지붕에 대야를 두드리는 물방울 소리에 맞춰 아이는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혼자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지, 잠든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아이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소리도 없이 울었다.
해가 거듭 지나 열 살이 되기까지도 아이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이는 방과 후 텅 빈 운동장에서 몇 번이고 벽에다 대고 공을 차며 놀았다. 마침 당직이었던 음악 선생이 아이를 발견했다. 사정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가타부타 말할 것 없이 그 흙투성이 손을 물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영인이, 심심하면 선생님이랑 놀아 줄래?’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주름치마를 입은 음악 선생님은 아무래도 아이와 공놀이를 해 줄 수는 없어 보였다. 대신 두 사람은 텅 빈 방과 후의 계단을 올랐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에 맞춰 아이는 왼발 오른발을 디뎠다. 건넨 손을 수줍게 잡은 아이의 손가락은 체구에 비해 크고 길었다.
‘저 악보 볼 줄 몰라요.’
‘그럼 어떻게 반주를 했어?’
‘그냥…. 들리는 대로 쳤어요.’
‘그럼 영인아. 선생님 따라서 쳐 볼 수 있겠어?’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눅진해서 건반이 제대로 올라오지도 않는 성당의 피아노와 달리 음악실의 피아노는 명쾌한 소리를 냈다. 완전히 다른 건반과 소리에 아이는 신이 나다 못해 양손까지 쓰며 처음 듣는 쿨라우의 소나티네를 수월하게 따라 쳐 냈다.
마치 투명한 물속을 누비는 붉은 잉어의 매끈한 비늘처럼, 영인의 재능은 화려하고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는 높은음자리표도 읽을 줄 몰랐으나 건반을 만지는 데엔 두려움이 없었다. C를 모르면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의 기본음을 짚었고, 레가토를 모르면서도 트로이메라이의 도입부에서는 힘을 빼고 소리를 이었다. 마치, 자장가처럼.
‘여기 부분이 시냇물이 떠올라요. 그래서 이렇게.’
‘푸른색이에요. 밤하늘 빛. 그리고 여기서 달님이 빛나.’
실로 아이의 재능은 깊고 험했다. 일개 학교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더욱이, 없던 일처럼 무시할 수 없었다. 그 길로 두 사람은 학교를 나섰다. 희망원으로 가자는 말에 아이는 주저했지만, 그 작은 다리를 움직이게 한 건, 결국 피아노뿐이었다.
‘피아니스트가 되자, 영인아. 넌 그러려고 태어난 아이야.’
두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희망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져 세상이 어둑해진 뒤였다. 형아가 왔다며 뛰어 내려오던 동생들은 낯선 사람의 등장에 의좋게 기둥 뒤로 숨었다. 호기심 어린 아이들을 내보내고 좁은 방에 셋이 모였다.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피아노라는 단어에 아녜스 수녀는 몹시도 어려운 얼굴을 했다.
가난에 깃든 재능은 오히려 재앙이었다. 그녀 역시 아이의 비범함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모른 체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지원해 줄 상황도, 여력도 없었다. 차라리 꿈꾸지나 말면 좋으련만. 진심과 현실의 경계는 좁힐 틈 없이 벌어져 깊은 구렁텅이를 두고 있었다. 영특한 아이는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 한댔잖아요. 나 피아노 싫어요. 재미없어. 안 할 거야.’
아이는 부르는 이름에도 그것이 제 이름이 아닌 양 뛰쳐나갔다. 그 서툰 연기가 어른들을 서글프게 했다. 아녜스 수녀가 마음을 달리 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부모가 포기한 아이라고 해서 아이마저 세상을 포기하는 데 익숙해진다면 안 된다.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부터가 욕심이었다.
때마침 신동훈 사장을 알게 되었다. 그는 피아노를 수입하고 유통하는 무역 회사의 사장이었다. 음악 선생의 옛 스승이기도 한 그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대번에 관심을 보였다. 아녜스 수녀와 상담을 한 지 보름 만에 그는 희망원을 찾았다. 마당을 채운 커다란 외제 차의 등장에 아이들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구경하기 바빴다.
‘네가 영인이구나?’
그도 한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다고 했다. 하지만 젊은 날의 사고는 그에게 꿈과 한쪽 다리 모두를 앗아가 버렸다고. 지팡이를 짚은 채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낯선 이에 아이는 두려운 듯 몸을 숨겼다. 하지만 두 눈은 신 사장에게서 떼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알아보았다. 드디어, 자신을 데려갈 누군가가 운명처럼 다가왔다는 것을.
‘너,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면서.’
몸을 반쯤 숨기면서도 끄덕이는 고갯짓만은 단호했다. 신 사장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쥐고 있던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랑 갈래?’
‘네…?’
‘아저씨는 피아니스트였어. 그래서 네 마음을 잘 알아. 집에도 엄청 큰 그랜드 피아노가 있단다. 이렇게 작고 비틀린 것 말고. 네 덩치에 몇 배나 되는 것.’
‘…….’
‘언제든, 네가 원하는 만큼 마음껏 칠 수 있어. 음악도 가르쳐 주마.’
아이는 대답 전에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혹여나 수녀님이 제 말을 들을까 두려웠다. 피아노는 이제 재미없다고 호언장담한 제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아이는 가능한 한 가장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정말 매일매일 쳐도 괜찮아요?’
‘그럼.’
‘아침부터, 막 밤까지요?’
‘물론이지.’
‘남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아저씨도 혼자야. 아내도 없고, 너처럼 예쁜 아들도 없거든.’
‘아….’
‘그러니까 네가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살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난 피아노를 정말 좋아하거든, 너처럼.’
여태껏 아이에게는 선택권이라는 게 주어진 적이 없었다. 선택은 늘 받는 거였다. 입양을 갔던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리고 착한 동생들은 늘 선택받았고 아이는 받지 못했다. 이별은 하는 게 아니라 당하는 거였다. 따돌림도 당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체념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눈앞의 손을 쥔다면, 그것은 체념이 아닌 선택이 된다. 아이는 손을 내밀기도 전에 입술을 깨물었다. 상상해 본 적도 없어서, 꿈꿔 본 적도 없어서 몰랐다. 싫을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늘, 피아니스트 아들이 갖고 싶었단다.’
처음으로 욕심이 났다. …꼭 그 이름이 갖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는 열한 살이 되기 두 달 전에 장영인을 버리고 신정훈이 되었다. 태생이 조각조각 기운 이름이라 버리는 데에도 큰 노력이 들지 않았다. 서운한 내색을 감추질 못하는 장씨 아저씨의 품에 머리를 꾸욱 한 번 비빈 아이는 이모들의 눈물을 닦고 그 젖은 뺨에 입을 맞추는 것만으로 손쉽게 작별했다.
차가 움직였다. 아이는 절대 백미러를 보지 않았다. 산비탈을 지나 평탄한 도로, 낯설기만 한 거리를 한참이고 지나고 나서야 아이는 운을 떼었다. 하지만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어서 차마 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럼 아저씨가 이제 제….’
‘아버지.’
‘아….’
‘아버지, 라고 한번 불러 볼래?’
꿈에서라도 뱉어 본 적 없는 호칭이었다. 아버지. 아빠. 엄마. 가족. 수없이 책에서 보고 귀로 들었지만 한 번도 말해 본 적은 없었다. 말로 내뱉어 버리면 더 비참해질 것 같아서, 불러도 대답해 줄 누군가가 없다는 걸 새삼 두 번 깨닫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버지.’
‘그래, 정훈아.’
하지만 이제는 있다. 아버지라고 부르면 대답해 줄 사람이. 감격보단 신기하다는 얼굴로 아이는 웃었다. 몇 번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훈….’
아이는 몇 번이고 새로 받은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 신정훈. 뭔가 더 정감이 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애매한 이름이 아니라 정훈, 공부도 잘하는 부잣집 아들 같은 세련된 이름이었다. 게다가 ‘신정훈’은 ‘장영인’과 달리 남에게 구걸해 끼워 맞춘 이름이 아니었다. 양아버지의 이름은 신동훈, 그러니까 신정훈. 피 대신 이름이 두 사람을 이어 주고 증명해 주었다.
그 이름을 열 번은 외었을까, 달리던 외제 차가 대궐 같은 집 앞에 멈췄다. 동화책에서나 본 높은 철문이 열리고 희망원 크기만 한 마당을 건너고 나서야 진짜 집이 나왔다. 그리고 그 거실 한가운데에는 정말 커다란 피아노가 있었다. 아이는 피아노에 미처 다가서지도 못했다. 학교에서 봤던 것보다 두 배는 더 큰 풀 사이즈의 그랜드 피아노에 황홀하다 못해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어디 한번 지금 쳐 볼래?’
‘저걸, 제가 쳐도 되나요?’
‘말했잖니, 언제든 쳐도 좋다고.’
남자의 거친 손이 부드럽게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이제 네 피아노야.’
희망원의 마당은 고즈넉하다. 한달음에 뛰면 열다섯 걸음이 고작이던 그 좁은 마당이 세계의 전부이던 때가 있었다. 서로가 다르지 않고, 모두 똑같아서 욕심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 아이는 분명 그 속에서 행복했다. 행복은 뿌리 없이 자라나던 아이에게 작은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막상 떼어 놓고 보면 사소하다 못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동네에서 가장 이른 아침을 맞이하던 옅푸른 동녘도. 손을 조금 뻗으면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처럼 눈앞에 들썩이던 만월도. 건반이 올라오지도 않아 옥타브가 뒤섞이던 피아노 선율에도 흥겹게 입 모아 노래 불러 주던 동생도, 친구도, 형도, 수녀님도….
‘와….’
아이의 손이 흑건에 닿은 순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열 살짜리의 순정이란 고작 그뿐이었다.
***
낯선 이름 탓일까. 아이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희망원에서는 지금 방의 반절도 안 되는 크기의 방에서 다섯이서 함께 잤다. 이불은 너덜너덜한 것 두 채. 그나마도 온전히 덮지 못해 배탈이 나곤 했다. 같이 덮는 탓에 누가 하나 방귀라도 뀌면 그날은 밤새 전쟁이었다. 옆방에서 여자애들과 어린아이들을 돌보며 주무시던 수녀님이 기어이 혼을 내러 오셔야 겨우 자는 체를 했다.
그 눅지고 습한 곳에 비하자면 이곳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침대는 푹신했고 마치 구름 위에 누운 것 같았다. 두 팔을 뻗어 봐도 침대의 끝과 끝이 닿지 않았다. 눈을 다시 감았다 떠도, 뺨을 꼬집어 봐도 곰팡이 하나 없이 깨끗한 천장은 그대로였다. 묵직하고 두꺼운 이불은 몸부림칠 틈이 없을 정도로 아이를 빼곡하게 감쌌다. 마치 묶이기라도 한 듯 묘하게 숨이 답답해졌다.
낯설지 않은 게 없는 세상 속, 오직 아이만이 그대로였다.
아이는 방을 나섰다. 어두컴컴한 거실을 지나 유일하게 불이 켜진 안방 쪽으로 살곰살곰 발을 옮겼다. 안경을 벗은 채 피곤한 듯 눈을 문지르던 신 사장은 열린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는 아이를 발견했다. 주춤거리며 선 아이의 의중을 알아챈 그는 아이를 향해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왜. 잠이 안 오니?’
아이는 베개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얼굴에는 경계심이 선연해 미소가 어색할 지경이었다. 남자는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손짓에 아이가 다가서자 나머지 한 손으로 아이를 붙들고 몸을 움직였다. 바로 옆의 문을 열자 침실이었다. 그림책에서나 보던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방에 아이가 이리저리 구경하기 바쁜 사이에, 남자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리 와, 정훈아.’
그리고 아이를 불렀다. 새로운 이름엔 꼭 알 수 없는 힘이 흐르는 것 같았다. 마치 홀린 것처럼, 아이는 저를 부르는 이름에 기대어 양아버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수녀님에게도 한 번 부려 보지 않은 어리광이었다. 어스름이 등 뒤를 쓸어내리는 그 커다란 손길이 아이에겐 낯설 만큼 다정했다.
‘절제하라고 했지, 절제!’
하지만 양부는 마냥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피아노 시간마다 아이는 혼이 났다. 내려친 회초리에 아이의 손등에 붉게 줄이 갔다. 눈물이 찔끔 났지만 아이는 아파할 여유가 없었다. 메트로놈을 좇아 바삐 두 손을 움직여 봤지만 한 번 놓친 리듬을 되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다시 한 번 손등에 불이 났다.
‘악보를 봐. 악보 어디에 리타르단도가 쓰여 있어!!’
양부는 젊었을 적 피아니스트였다고 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꿈을 포기했지만, 아이가 그 꿈을 대신해 이루기를 바랐다. 그리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부실한 기본기를 익히느라 바빴다.
아이는 높은음자리와 낮은음자리를 배웠다. 샵이 무엇인지, 장조와 단조가 무엇인지도. 콩나물로만 보였던 악보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악보가 보이는 만큼, 아이는 피아노를 치면 눈앞에 절로 펼쳐졌던 광경을 외면하게 되었다. 막연한 밤하늘보다 16분음표와 데크레셴도, 코다와 알레그로에 집중했다. 절로 들썩이는 어깨도 낮추고, 제멋대로 내뻗던 손을 계란 쥐듯 오므리고 힘을 빼는 데 허덕였다.
솔직히 말해 재미없었다. 칭찬은 백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늘 혼나고, 또 혼나기만 하다 보니 피아노를 치는 게 두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포기할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는 예술가라지만 몸을 쓰는 직업이야. 쓸데없는 근육이 아닌 체력은 몸으로 연주하는 자의 근본이지. 모든 걸 완벽히 단련해야 한다.’
그래서 쉴 틈이 없었다. ‘정훈’의 삶은 곧 훈련이었고 연습이 곧 생활이었다.
가끔 무턱대고 놀던 희망원이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양부는 ‘장영인’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모조리 버리길 바랐다. 뒤를 돌아봐선 안 된다는 진언을 받은 오르페우스처럼 아이는 앞만 보고 달렸다. 생각해 보면 뒤돌아볼 가치도 없는 것들이었다. 어설픈 이름과 가난에 기울어진 지붕 따위, 다 미화된 추억일 뿐이라 생각하며 아이는 피아노에 몰두했다.
앞만 보고 달린다면, 양부의 말대로 이 행복이 깨어지지 않을 테니까.
‘거봐라. 넌 재능이 있어. 그런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깝지 않겠니?’
‘죄송해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열심히 해야 따라잡을 수 있단다. 그러니 아버지의 말을 들어야지. 그래야 착한 아이지. 우리 정훈이는.’
‘네, 아버지.’
양부의 품에 안긴 채 아이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면 됐다. 아버지가 사랑해 준다면, 조금 엄격한 훈련도 피아노 연습도 모두 다 이겨 낼 수 있었다.
‘날 부디 자랑스러운 피아니스트의 아버지로 만들어 주렴.’
그리고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아이는 아버지가 원하는 아들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
화원 예술제는 음악 영재들의 대표적인 엘리트 관문이었다. 아이는 높은 경쟁률을 손쉽게 뚫고 본선에 진출했다. 피아노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지 고작해야 10개월 차, 첫 콩쿠르 본선이었지만 아이는 자신만만했다. 제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우승하면 큰 상을 주마.’
양부는 정말 아들이 되고 싶다면 아이에게 그 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자랑스러운 피아니스트 아들이 되기 위하여. ‘신정훈’은 제 뛰어난 재능을 현실에서 입증하기로 했다.
‘이 세계에선 2등은 기억해 주지 않아. 이 좁은 한국에서 1등을 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는 어림도 없어. 꼭 명심해라.’
목표가 생긴 아이는 놀랍도록 성장했다. 형 동생들과 나눠 먹던 밥을 독차지하자 몸도 굳건해졌다. 키도 무럭무럭 자라 몇 달 새에 훌쩍 커졌다. 타고난 손가락 길이는 이미 옥타브를 넘었다.
아이는 자신감이 넘쳤다. 양부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천재였으니까. 소나티네도 몰랐던 제가 1년도 안 되어 쇼팽과 베토벤을 치고 있으니. 두려울 것은 없었다.
이윽고 본선 무대를 앞두고, 아이는 가장 마지막 번호를 뽑았다. 17번이었다. 마지막은 싫었지만 그래도 행운의 번호 7이 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아이는 번호대로 나란히 놓인 의자 가장 끄트머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제 옆에는 16번 아이가 앉았다. 저보다 머리가 하나는 더 작아 보이는 꼬맹이였다. 초등부 콩쿠르니까 분명 초등학생일 테지만 얼핏 보면 유치원생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체구가 작았다.
나보다 어린아이도 있구나. 위안이 되는 한편 저 꼬마는 얼마나 떨릴까 싶어 아이는 안쓰러웠다. 경쟁자라는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 정도로 16번은 작은 꼬마였다.
‘안녕? 네가 16번이야? 반가워.’
긴장도 풀 겸 아이는 꼬마에게 소탈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민 손이 갈 곳을 잃었다. 야무지게 제 가슴에 16번 스티커를 붙인 꼬맹이의 눈을 마주한 순간, 아이는 아차 싶었다.
‘…어.’
외국인인가? 두 손으로 눈을 비벼 봤지만 바라보고 있는 홍채의 빛깔은 그대로였다.
‘눈이 코코아 색깔이야.’
양부는 단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영인에게 코코아는 희망원에서 아이들과 마셨던 그 연한 맛이 전부였다. 추운 겨울이면 아녜스 수녀가 아이들 얼굴만 한 커다란 잔에 코코아를 타 주곤 했다. 돌아가며 한입씩 나눠 먹을 때마다 입 안을 부드럽게 맴돌던 그것은 무척이나 달콤했다.
그 달콤한 액체의 빛깔 그대로를 닮은 밝은 갈색 눈에 아이는 작게 탄성을 흘렸다. 무대 쪽에서 내리쬐는 빛에 더욱 밝게 빛나는 꼬마의 달콤한 눈망울은 얼이 빠진 아이의 얼굴까지 모두 비추어 낼 정도로 맑았고, 또 아름다웠다. 사활을 걸었던 피아노도 콩쿠르도 순간 모두 잊어버릴 만큼.
‘내가 17번이야. 우리 마지막까지 같이 있겠다.’
꼬마는 말없이 아이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경계심은 조금 풀린 듯했다. 연한 눈동자와 달리 머리카락을 닮아 유독 새까만 속눈썹은 꼬마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춤을 추듯 너울거렸다.
아이는 문득 희망원의 동생 은혜를 떠올렸다. 은혜는 저보다 다섯 살이 어렸었다. 유독 오빠 오빠, 하며 제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었다. ‘정훈’이 되어 희망원을 떠나던 날에도. 오빠 어디 가냐며 코가 빨갛게 되도록 울어 대던 아이를 금방 오겠다며 거짓말해 떼어 놓은 게 문득 떠올랐다.
잊고 지냈던 기억인데, 신기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처음 보는 이 꼬마가 마냥 예쁘고 귀여웠다. 그래서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무 말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이 꼬마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너 대단하다. 엄청 어려 보이는데 여기까지 올라오고.’
‘…….’
‘몇 살인지 물어봐도 돼? 아, 참고로 난 열한 살이야. 4학년.’
솔직히 말하자면 체구만 비슷했지, 꼬마는 은혜보다 훨씬 예뻤다. 검은 머리카락은 매끄러웠고 피부도 뽀얘서 여자애들이 가지고 노는 작은 인형 같았다. TV에서 보는 아역 배우처럼 모난 데 없는 작은 얼굴에 들어찬, 커다란 코코아색 눈이 현실감이 없어서였을까. 아이를 묘하게 두근거리게 했다.
아이는 자연스레 꼬마를 부잣집 아가씨라고 짐작했다. 잘 꾸며진 옷차림새는 물론이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느 하나 부티가 났기 때문이었다. ‘장영인’이었으면 몰라도 ‘신정훈’의 모습이면, 그래도 이런 꼬마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다. 아이는 용기를 냈다.
‘안 떨려? 오빠랑 손잡고 있을래?’
하지만 서툰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얌전히 눈만 깜박이던 꼬마의 고운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아이는 당황했다. 제가 무얼 잘못했는지 몰라 허둥대는 사이, 16번 꼬마는 쌩하니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버리고 말았다.
‘왜 그래? 기분 나빴어? 미안해….’
대체 뭘 잘못한 걸까. 은혜는 손을 잡아 주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색하게 사죄를 건네 봐도 심통이 난 꼬마의 머리통은 아이를 돌아봐 주지 않았다. 아이는 풀이 죽었다. 참 까칠한 꼬마구나. 서운한 마음에 잠시 긴장마저 잊었다.
‘내 책, 깔고 앉을래?’
하지만 이상하게도 밉지 않았다. 이윽고 16번의 차례. 당당히 무대에 나섰다가 황급히 대기실로 돌아온 꼬마에게 아이는 순순히 제 책들을 빌려주었다. 고맙다는 말도 없는 그 뾰로통한 표정에도 이상하게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꼬마가 좋았다.
야무지게도, 의자 위에 제 책 두 개를 깔아뭉개고 통 튀어 올라서는 몸짓까지 그저 사랑스러웠다. 쇼팽의 강아지 왈츠가 생각나는 그런 발랄한 몸짓에, 그 꼬마의 손에서 피어날 선율은 막연히 그러한 장조겠거니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조금 얕봤던 것도 사실이다. 피아니스트는 예술가라지만 결국엔 몸을 쓰는 직업이다. 체구가 작다는 건 여러모로 불리한 요소니까. 서툴게 실수한다면 격려해 주고, 또 제 연주를 들려주어 감탄하게 해야지 생각도 했다. 그럼 그 달콤한 눈으로 다시 자신을 쳐다봐 주지 않을까.
‘나랑 같은 곡이야….’
하지만 아이의 예상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첫 음, 그 시 플랫을 들은 순간 아이는 굴복했다.
‘이건 못 이겨, 안 되겠어.’
아이는 좌절했다. 상상 그 이상이었다. 꼬마의 외모와 달리 그 연주는 전혀 귀엽지 않았다. 오히려 징그러울 정도로 노련했고 울림에 깊이가 있었다. 소리의 질이 달랐다. 눈만 감고 듣는다면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음반의 소리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어떡해…. 어떡해요, 아버지.’
아이는 좌절했다. 꼬마의 연주가 잊힐 새도 없이 연이어 같은 곡을 쳐야 한다니. 이대로라면 1등은 무리였다. 잘해봤자 2등이겠지.
꼭 대상이어야만 한다고 강조하던 양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상뿐이라고 했다. 이 콩쿠르의 대상을 받아야 영재원에 입학할 수 있고 엘리트로서의 길이 펼쳐질 거라고. 이 좁은 땅에서 2등은 소용없다고. 2등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없다고.
어떻게 생각하실까. …무척 실망하실 거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어째서.
왜 어째서 같은 곡이었을까, 하필이면.
아이는 경탄과 원망이 뒤섞인 눈으로 무대 위를 올려보았다. 힘껏 발돋움한 그 작은 발이 섬세하게 페달을 눌러 가며 차근차근 아이의 미래를 짓밟고 있었다. 미스 터치 하나 없는, 탁월하고 정교한 연주였다.
안 돼, 싫어. 이대로는, 하지만….
흠결 없는 연주 앞에서 아이는 눈을 감고 호흡을 깊이 머금었다. 나이에 비해 긴 손가락이 절로 움직였다. 가면 갈수록 떨어져 내리는 자신감과 별개로 아이는 그 음악에 몰입했다.
그리고 감탄했다. 아버지가 바랐던 세련된 연주가 이런 거구나. 군더더기 없는 악보 그대로의 재현은 이토록 아름답구나.
꼬마, 16번 문규화는 완벽한 연주를 선보였다. 꼬마의 연주에 스며들고 감동할수록 다른 한편으로 아이는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처음 맛보는 절망감은 아니었다. 오랜만이었고, 반가웠다.
바닥일수록 아이는 두려울 게 없었다. 해봐야 했다. 완벽하게 연주를 마친 꼬마에게 느릿하게 박수를 건네며, 아이는. 신정훈은 해보기로 했다.
- 17번, 신정훈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