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공연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지 사흘째 되는 아침.
새벽녘부터 르 아브르를 적시기 시작한 비는 정오가 지나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빗방울은 쉴 새 없이 제 온몸을 창문에 부딪혀 댔다. 제멋대로, 끊임없이. 때론 명랑하고, 때론 구슬프게. 때론 힘껏, 모두를 흠뻑 적실 만큼 강하게.
그 자유로운 박자와 음계는 시대를 초월한 모티브가 되곤 했다. 작곡가가 열 명이라면 비를 표현하는 선율도 각기 열 갈래로 나뉘었다. 쇼팽이, 또 리스트가, 그리고 라벨이 그러했듯이 문규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침 식사도 잊고서 몇 시간째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카우치의 끄트머리를 두들기는 손가락만이 빗방울을 따라 분주했다.
그의 품에는 잡지가 안겨 있었다. 커튼 사이로 새어드는 희미한 볕에 기대어 몇 글자를 읽어 내리던 규화는 얼마 못 가 다시 눈을 감았다. 낮은 소파의 등에 기대어 고개를 젖히자 천장을 향해 마른 목울대가 툭 하고 튀어 올랐다. 나지막한 허밍은 거친 빗소리 아래 잠겨 잘 들리지 않았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불청객이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들어갈게, 규화야.”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침입자, 매니저 이재형은 어두침침한 실내에 걸음을 멈추고 벽을 더듬었다. 이내 인기척 없던 실내에 불이 켜지자 문규화가 몸을 뒤척였다. 흠결 없이 고운 이마에 잘게 주름이 졌다.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부신 듯 품 안에 구겨져 있던 잡지를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보폭 큰 걸음으로 걸어 들어온 재형은 신경질적으로 그 잡지부터 뺏어 들었다. . 프랑스의 저명한 클래식 음악 잡지였다. 구겨진 페이지를 펴자 한쪽 페이지의 절반을 장식한 규화의 사진부터 눈에 들어왔다.
지난 6월, 결선 최종 라운드 때의 모습이었다. 지그시 내리깐 눈꺼풀 끄트머리에 매달린 정체 모를 물방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최종 결선을 치르는 대강당은 건물 구조상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연주자들은 하나같이 땀범벅으로 피날레를 장식하기 마련이었다. 사진 속 규화도 마찬가지였다. 연주 도중 눈에 땀이 들어가 따가웠는지 찌푸린 한쪽 눈이 유난히 금안金眼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아름답다 못해 재형은 감탄과 동시에 치미는 욕을 애써 삼켰다. 사진만 보자면 그가 이번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우승자로 보였다. 규화를 대하는 기자들의 취급은 늘 한결같았다. 가십, 그 이상을 넘지 못했다.
슬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트로피보다 더욱 찬란한 금빛은 이미 그의 아름다운 두 눈에서 빛나고 있으니. 그래서 신은 그에게 더 이상의 ‘골드’를 허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