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21
이설은 어제도 알파에게 몸을 팔았다. 스폰서라는 명목으로 매번 파트너를 바꾸었다. 그러나 지금 이설의 마음 한쪽에는 질투심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서범익… 그를 생각하니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 남자가 자신이 아닌 효원을 선택하고, 섹스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 저 밑에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갖고 싶어. 그의 모든 걸…….’
이효원… 저와는 이란성 쌍둥이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그에게만 나타났다. 공부를 비롯해 다방면에서 재능이라고는 코빼기도 없는 이설과는 너무도 달랐다. 늘 어딘가 넋을 빼놓은 것 같은 멍한 표정임에도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순수하다고 칭찬하곤 했다. 그는 항상 이설의 질투 대상이었다.
부모의 사랑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모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남다른 효원을 귀하게 여겼다. 이설보다 더 예쁘고 똑똑한 효원은 동네 사람들도 모두 좋아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설는 그를 향한 질투심 때문에 자신을 가꾸며 꾸미는 것에 열성을 쏟았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화려하게 꾸미고 밖으로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그게 그렇게 좋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예쁘다고 칭찬을 받는 것이 이설은 너무도 행복했다.
이설이 적당한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기만 해도 많은 시선이 쏠렸다. 기분 좋은 시선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메가로 발현한 후, 이설은 빛나기 시작했다.
주위의 여자들은 부러움을, 남자들은 유혹적인 눈길을 보냈다. 이렇게 노골적인 시선도 이설은 즐겁기만 했다.
그때, 낯익은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몇 개월 전 저에게 계약을 제안했던 남자였다. 의뢰자는 JK 그룹의 회장이었다.
“이렇게 저를 보자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제 용건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우선 이 조건을 읽어 보시고 답을 하시죠.”
그가 내민 서류에 이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콧방귀를 뀌던 이설의 표정이 싹 달라졌다. 이설은 자신의 허벅지를 남자 몰래 몇 번이고 꼬집었다.
남자를 통해 신분 상승을 할 기회가 없다면 스스로 신분 상승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설은 그렇게 될 재능이나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그 기회가 지금 이설의 눈앞에 있기에 너무도 놀랐다.
“이미 아시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도련님과 동생분 계약 말입니다.”
“…알죠. 내가 못했던 일을 효원이 하고 있다는 거요.”
이설은 덜덜 떨리는 입술을 꼭 다물며 눈을 부릅떴다. 효원은 서범익의 정부라는 것을 자신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저도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효원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효원이 서범익을 먼저 꼬셨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받았던 제안까지 고려한다면 아마 비슷한 조건이 아니었을까. 어느 쪽으로 봐도 이용당하는 신세일 뿐이다. 내색해 봤자 저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을 것이고, 오히려 구질구질한 녀석의 삶을 확인하는 것뿐이니까… 모른 척했다.
“정말, 이 조건을 모두 주겠다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건…….”
“추후 따로 연락을 할 테니, 마음이 있다면 그 서류에 동의를 하십시오.”
이설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어떤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생각했다. 이설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이어 이설은 비서가 내민 서류에 사인을 했다. 이설의 눈동자가 지독한 질투심에 번뜩거렸다.
“좋아요. 얼마든지 맡겨 주세요.”
* * *
매번 저를 그리겠다고 하더니, 오늘은 작정한 것 같았다. 범익은 그림 도구를 정리하는 효원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사르르 눈이 절로 접혔다.
“정말 그리려고?”
“네…….”
그는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한 준비를 완벽하게 구상했다. 방 한 귀퉁이에는 스튜디오에서 볼 법한 앤티크 의자와 그 뒤로 벨벳 소재의 긴 천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해서 옷만 벗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효원은 제 알몸만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서인지 레이스와 공단 천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로 유리로 된 비즈 알갱이가 보석처럼 뿌려져 있다.
“그럼 난 어떤 자세를 잡아야 하지? 옷 벗을까?”
“…네, 벗어요.”
누드화를 그리기로 했으니 벗는 게 당연했지만, 범익은 일부러 되물었다. 효원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담담하게 행동하며 이젤을 조립하는 효원의 목덜미가 벌겋게 익었다. 귀여웠다. 효원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머지 범익은 모델이 되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달려들 뻔했다.
치밀어 오르는 충동을 억누른 범익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침대 위에 아무렇게 던져 놓았다.
이젤을 설치하고 뒤를 돌아본 효원이 헉, 하며 잠시간 숨을 멈췄다. 효원이 당황하며 동요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범익은 깨끗한 효원의 얼굴에 미친 듯이 키스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참았다.
“다, 다 벗으라는 건 아닌데…….”
“누드 그릴 때, 원래 다 홀딱 벗겨 놓고 그리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벗기지는 않아요. 이거 입어요.”
“뭐야? 이 쫙 달라붙는 가죽 바지는?”
효원이 던져 주는 것을 냉큼 받자, 그건 범익의 입는 옷의 치수보다 작아 보이는 가죽 바지였다.
“엉덩이에 꽉 낄 것 같은데, 너, 혹시 마조히스트였냐?”
“아니거든요!”
강하게 부인하는 효원을 보며 서범익은 키득키득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팬티 안 입고 입는다.”
“네. 그리고 이거 써요.”
“이건 또 뭐야?”
서범익의 손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금색 월계관이 쥐어졌다.
“그림의 주제가 뭐야?”
“21세기 나르시스…….”
“아, 그 신화 속에 등장하는 멍청이? 물속에 비친 제 얼굴에 뻑가서 사랑에 빠졌다는?”
“아름다운 신화를 그렇게 비꼬아서 말해야겠어요?”
효원은 좀처럼 언어 순화가 되지 않는 그를 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속으로 혀를 차며 나르시스로 변신한 서범익을 그리기 위해 캔버스 앞에 앉았다.
서범익을 그려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그의 몸 전체에 새겨진 근육을 그리고 싶었다. 날씬한 팔 근육부터 복근, 말과 비슷할 정도의 허벅지 근육까지.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알몸이 될 필요는 없었다.
그건 바로 사이즈가 작은 스팬 바지가 그의 몸을 낱낱이 새겨 주고 있기 때문이다. 꽉 끼는 바지를 억지로 꿰어 입고 금색 월계관을 쓴 범익은 효원이 준비한 의자에 비스듬히 앉았다. 그리고 그의 특유의 웃음을 머금으며 우월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분위기를 풍겼다.
효원은 그때부터 아무 말이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서범익의 모습을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는 것에 열정을 쏟았다.
나른하면서도 섹시한 매력을 풍기는 서범익은 정말 21세기에 나르시스가 환생한 듯했다. 아름다운 외모는 두 번째고, 신화 속에 등장하는 나르시스와 달리 강인한 남자의 모습은 흡사 신화 속 신과 같았다. 몽환적이고 이질적인 그의 분위기에 심취한 효원은 숨 쉴 틈도 없이 그림에 매진했다.
범익의 급한 성격을 고려해 손목에 강, 약을 주며 빠르게 그렸다. 이미 머릿속에 새긴 모습이라 범익이 없어도 그릴 수 있음에도 효원은 힐끔힐끔 그를 훔쳐보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곧 온 피부의 솜털이 일어서는 것 같은 떨림이 찾아왔다. 절대로 남에게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누구하고도 공유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효원이 이 감정을 인정했을 땐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로 해 둔 터였다.
마음속에 비밀을 일깨워 준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지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에게 이 감정을 들키면 범익은 자신을 더욱더 놓아 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림에 집중하느라 어느새 범익을 보지 않는 사이 뭔가 효원의 뺨에 닿았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그 무언가가 서범익의 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허리에 부드럽게 둘러진 손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범익의 손가락이 효원의 복부를 쓰다듬으며 조금씩 유두 쪽으로 향하자 놀란 효원이 몸을 비틀었다.
“그만, 조금만 더 앉아 있으면 되잖아요.”
“그게 힘들거든… 날 뚫어지게 바라보는 네 눈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참을 수 없어. 이렇게 섰어.”
고개를 돌리자 벌써부터 흥분을 했는지, 그의 얼굴은 온통 정염에 번들거렸다. 허리 부근에 닿은 그의 페니스는 이미 딱딱해져 있었다.
* * *
시간은 덧없이 흘렀다. 효원이 그의 계약 정부가 되어 집과 별채를 드나든 지 벌써 6개월이 되어 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깊어졌지만 아슬아슬한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미지수였다.
효원은 휴대폰으로 서범익을 검색했다. 그러자 얼마 전 그의 약혼녀가 참석한 파티에서 나란히 찍힌 사진이 검색되었다.
[JK 그릅 차기 오너 서범익 대표이사와 민성 그룹 차녀의 결혼이 임박했다. 두 사람의 결혼과 함께 두 그룹이 그룹 간 협업을 발표하게 되면 JK 그룹과 민성 그룹은 글로벌 기업으로 더욱 발돋움할 것으로 전망된다.]
효원은 기사를 읽다 말고 휴대폰을 내려놨다. JK 그룹도 대단했지만 약혼녀의 집안도 굉장히 유서가 깊은 집이었다.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유명한 정치인도 많았고, 대통령을 배출한 적도 있었다.
권력의 중심에 선 집안과 재력이 합쳐진다면 아마도 세계를 뒤흔들 막강한 기업이 될 것이다.
그녀와 저를 비교해 봤다. 효원이 예술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수많은 화가 중 하나일 뿐, 그를 뒷받침해 줄 집안은 없었다. 결국,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숨겨진 정부로 살다 끝나는 것이 제 운명이었다.
효원은 창밖을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병이 치료가 된다면, 더는 저에게 매달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의 러트사이클이 안정된다면 더는 그의 특별한 오메가가 아니게 된다.
그때, 효원의 휴대폰에 알림이 울렸다.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메일을 확인하던 효원은 너무 놀라 자리에서 펄쩍 뛸 뻔했다.
‘이건… ** 대학원에서 보낸 러브콜!’
미술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대학원이었다. 그 대학원에서 배출한 유명 화가가 많았기에 효원은 학교 이름을 보자마자 손이 떨렸다. 기쁨도 잠시 범익이 떠오른 효원은 냉정하게 화면을 껐다.
하지만 고민이 되었다. 이건 자신의 인생의 첫 갈림길이었다. 서범익이냐 화가로서 미래냐.
“후…….”
고민이 되는 게 당연했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면, 효원의 화가로서의 앞길은 탄탄대로일 것이다. 계약 완료 후 받는 돈으로 충분히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기회만 잘 잡는다면 에이전시와 계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서범익 때문이었다.
‘내가 떠난다고 한다면… 그는 어떤 말을 할까?’
‘조금만 기다려. 난 너와 헤어질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까. 혹시라도 도망쳐 봐.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찾을 테니까.’
문득 음산한 목소리로 말하던 그가 떠올랐다. 너무 좋은 기회지만, 아직은 시기가 이르다. 효원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침대에 벌렁 누웠다.
“내 진로의 방향은 내가 정하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그를 배신할 수 없잖아? 아직은… 그의 옆에 있고 싶어.”
드르르, 드르르-.
휴대폰 진동 소리에 효원은 전화를 귀에 대었다. 발신자는 승주였다. 연애하느라 바쁘더니 어쩐 일로 전화까지 했는지…….
“네, 선배. 오랜만이에요.”
- 뭐해? 공모전도 잘 끝났는데, 한잔 할까?
“…술이요?”
효원은 힐끔 시계를 쳐다봤다. 이제 집에서 24시간 아버지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으니 걱정 없이 자유롭게 생활을 즐겨도 되는 여건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승주는 인생을 즐기는 타입이었지만 타고난 재능도 있어 크게 문제는 없었다. 내년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실컷 놀겠다고 요즘 매일 술자리를 만들었다.
계속 술자리를 피했지만, 굳이 친했던 사람들까지 멀어질 필요는 없었다. 서범익이 경계하는 유준태는 이미 한국을 떠났다.
“네. 갈게요. 어디요? 알아요.”
서둘러 외출할 준비를 하던 효원은 서범익의 초상화를 힐끔 쳐다봤다. 끝까지 다 벗은 모습을 그리라고 우기는 통에 효원은 결국 알몸을 그리게 되었다.
효원은 누가 볼까 두려워 그의 누드화를 숨겨 놓고 혼자서만 몰래 보곤 했다. 한쪽 벽면에 커튼을 쳐 놓고 그곳에 이제까지 그린 그림을 보관했는데 그의 누드화는 그 그림들 사이에 꽁꽁 숨겨져 있었다.
“효원아.”
인기척에 화들짝 놀란 효원이 뒤를 돌아보았다. 효원의 방을 노크도 없이 들어올 이는 서범익 한 사람뿐이었다.
“어디가?”
“과 동기들이 불러서요. 저 한잔 하고 들어가도 될까요?”
최근 들어 그는 많이 바빠졌다. 거기다 저녁 약속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가 짙은 계열 슈트를 입은 것을 보니 오늘도 약속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멋진 남자였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입가가 화사하게 펴졌다. 슈트뿐 아니라 은색 넥타이와 푸른 사파이어로 세공된 핀, 그리고 커프스단추가 서범익의 이미지를 한껏 아름답게 꾸며 주었다.
진한 남자의 향기가 풍겨져 왔다. 범익은 그야말로 물이 오를 대로 오른 강한 알파의 페로몬을 지닌 남자가 되었다. 매력적이었다. 짧은 머리칼을 위로 바짝 세워 드러난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욱 멋지게 보였다.
“싫은데… 다른 알파가 있으면…….”
범익은 시간이 촉박한 듯 몇 차례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유독 효원이 알파를 만나는 것을 싫어했다.
“알잖아요? 다들 친구예요. 그리고 다 짝이 있고요.”
“너만 친구로 생각하는 거 아니고? 지난번 유준태 그 새끼도 악마의 탈을 쓰고 너에게 접근했잖아?”
“할 말 없네요.”
효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어깨가 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구속도 정도껏 해야지, 이렇게 밖에 나갈 때마다 군소리를 듣게 되면 기운부터 빠진다.
“다녀와. 대신 경호원 붙일 거야.”
“네! 알겠어요.”
경호원과 같이 가라는 조건부 허락이었지만, 효원은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경호원이 딱 붙어 있지는 않고 적당히 떨어져 있을 터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효원이 해사하게 웃자,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다른 놈들 앞에서는 그렇게 웃지 마.”
“…으읍-!”
허리가 확, 뒤로 젖혀지더니, 두터운 혀가 밀고 들어왔다. 그의 맹렬한 키스 공세에 효원의 두 손은 그의 슈트를 잡고 늘어졌다.
황홀한 현기증이 이어졌다.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머리는 어질어질했다. 농밀한 키스는 효원의 정신을 멀게 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탐닉을 마무리하며 뜨거운 호흡을 뱉었다. 아무리 키스를 여러 번 해도 그의 키스는 버거웠다.
“가기 싫은데. 너도 약속 따윈 집어치우고 섹스할까?”
“늦었잖아요. 안 돼요. 어서 가요.”
“…알았어. 갈 거야.”
서범익은 효원을 품에 안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등허리를 꽉 껴안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니 그 또한 초조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가 회장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을 하는 것처럼 효원도 그에게 힘을 실어 줘야 했다.
효원은 입속에 피 맛이 퍼졌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던 것이다.
“저 먼저 나가 볼게요.”
“같이 가. 나도 가야 하니까.”
싫다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는 그를 보며 효원은 그가 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원하는 대학원의 러브콜에도 고민한 이유가 바로 이런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의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효원은 그를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아마도 자신이 그의 곁을 떠나는 날은 멀지 않았다. 그의 결혼식 날짜가 점점 더 효원의 목을 옥죄이며 다가왔다.
그는 예정보다 이른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서 회장의 마음이 꽤 급해진 것 같았다.
효원이 그의 아내와 같은 지붕 아래에 숨어 있는 날도 멀지 않았다.
얼마나 아름다울까?
효원은 그녀의 생일 파티 때처럼 그들의 결혼식에 축하객으로 참석해 한 쌍의 부부를 축하해야 할 것이다.
서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서로를 향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효원은 웃으려고 했다.
이 행복함을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스스로 비참한 기분을 삼키고 우울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애를 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