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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늪-18화 (18/40)
  • chapter 18

    #18

    유준태가 공식적으로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프랑스에서 그 사건이 있었으니 입원했겠지…….’

    효원은 걱정이 되었다. 혹시라도 그가 범익을 폭행으로 고소를 하면 어떻게 하지? 며칠을 고민했었다. 그러나 유준태는 서범익을 고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쪽 집안에서 효원에게 찾아와 합의를 요구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합의에서 중간 역할을 한 사람은 서범익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합의서를 작성했는지 효원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범익은 그저 걱정하지 말고 공모전에만 집중하라고 말했다.

    미안했다. 그에게 여러모로 미안한 점이 많았다. 동시에 회장님을 볼 면목도 없었다. 효원에게 그 일을 직접 추궁하지 않아도 분명 회장의 귀까지 들어갔을 것이다.

    “후우-.”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효원은 저 멀리 석양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녁노을이 아주 예뻤다. 효원은 앞으로 2주 남은 공모전에 사활을 걸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성적을 내야 했기에 하루에 여섯 시간은 꼼짝없이 그림을 그려야 했다.

    효원은 별채 뒤뜰에 자리를 잡고 이동식 이젤을 펼쳤다. 그리고 그 위에 전에 밑그림을 그려 둔 그림을 올려 두었다. 붓과 물감을 통에 넣고 배경을 마저 그리기 위해 집중을 했다.

    그렇게 얼마나 그렸을까? 석양이 어느덧 어둠이 되었다고 인식했을 땐, 이미 주위가 컴컴했다.

    효원은 배경을 넣은 그림이 마르기를 좀 더 기다렸다. 그리고 주변을 주섬주섬 정리하며 그림 도구를 챙겨 별채 욕실로 들어가 세척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이 집사가 효원을 찾았다.

    “아저씨, 오셨어요?”

    “그래. 우리 잠깐 얘기 좀 나눌까?”

    “네, 금방 갈게요.”

    아직 퇴근 시간 전인데 저를 찾는 건 처음이었다. 효원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던지라 손을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아저씨가 커피 두 잔을 식탁에 내려놨다. 효원은 긴장된 마음으로 그의 앞에 앉았다.

    “너도 우리 집안이 대대로 이 집안을 모셨다는 것 알고 있겠지?”

    “알아요.”

    “회장님께서 특별히 너를 후원했던 건 앞으로 가능성도 가능성이지만, 네 딱한 사정을 듣고 후원하기 시작한 거야. 도련님께 필요한 오메가가 너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

    “집안 어른으로서 너에게 이 말까지 꺼내기는 좀 그렇지만, 효원아. 선을 넘지 말아야 해. 도련님과 너는 다른 길을 갈 사람이고 섞여서도 안 되는 사이야.”

    효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의 가족은 병든 아버지와 허영심 가득한 누나 뿐이었고 달리 가진 것도 없었다.

    “내일, 도련님 약혼식이야.”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약, 약혼이요?”

    효원은 너무 놀라 소리를 버럭 질렀다. 손이 벌벌 떨렸다. 그가 약혼한다니… 약혼…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저씨는 효원의 반응을 보더니 혀를 쯧쯧 찼다.

    “쓸데없는 감정은 접어. 어차피 이뤄질 수 없는 사람이니까. 넌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잖아?”

    “…….”

    “네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다 버리고 도련님 하나만 볼 수 있어?”

    “아니요…….”

    “넌 똑똑한 아이니 내가 더 주의를 시키지 않아도 되겠지?”

    “네… 전 가족도 꿈도 포기할 수 없어요.”

    효원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아저씨 말처럼 그와 효원은 이뤄질 수 없는 관계였다. 아저씨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효원은 아저씨를 배웅한 뒤, 다시 2층으로 올라왔다.

    그러다 말려 놓은 그림 도구를 다시 꺼냈다. 붓을 잡고 물감을 짜 색을 만들었다. 만족스러운 색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같은 행동을 하다 캔버스에 붓을 터치했다. 지금 효원의 감정이 작품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평소에는 빛을 강조했는데 지금은 감정에 따라 어둠을 강조하다 보니 그리려던 작품과 전혀 다른 색으로 물들였다.

    그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작품을 망친 상태였다. 효원은 참을 수 없는 화가 밀려와 거칠게 붓을 던졌다. 퍽, 하고 바닥에 떨어진 작품에는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된 숲이 보였다.

    눈두덩에 열이 몰렸다. 바보처럼 눈물이 나려고 했다. 효원은 다시 붓을 잡았다. 그리고 망친 작품을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서범익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효원의 뒤에서 가볍게 껴안으며 목덜미에 쪽 입을 맞췄다.

    “다정하게 굴지 말아요.”

    “…기다려 달라고 하면 내가 나쁜 새끼가 되는 건가?”

    “네. 맞아요.”

    “이효원.”

    효원은 뒤를 확 돌아 범익을 노려봤다.

    “기다리지 마세요.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약혼을 하든 결혼을 하든 나와 상관없어요.”

    “너는 상관없을지 몰라도 나는 상관있어.”

    “뭐라고요?”

    효원은 눈을 부릅뜨며 그를 쳐다봤다. 진짜 상처를 받은 건 자신인데, 마치 그가 상처를 받은 것처럼 아파 보였다.

    ‘왜? 모든 걸 다 가진 당신은 잃을 게 없잖아!’

    효원은 약혼을 앞둔 그를 보는 게 싫었다. 그와 함께 있는 이 공간이 너무 답답했다. 이 공간에서 벗어나려 효원은 그림을 팽개치고 가방을 들었다. 방을 나가려고 하자 서범익이 효원의 손목을 틀어잡았다.

    효원은 거칠게 손을 떼어 내며 이를 갈았다.

    “건들지 마세요. 그럴 기분 아니니까.”

    * * *

    기분이 엉망이었다. 어제 그와 다투고 집으로 돌아온 후, 전화를 꺼 두었다.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그의 약혼식 날이었다. 서범익은 오늘 약혼을 한다. 어젯밤에 서범익의 약혼 소식이 포털을 장식했다. 그의 약혼 소식은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효원은 버스 창문 너머로 화려한 불빛들을 바라봤다. 오늘은 12월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히터가 빵빵하게 돌아가는 버스임에도 온몸이 떨렸다.

    곧 히트사이클이라 컨디션이 더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효원은 자신이 오메가인 것을 원망했다. 알파를 유혹하는 페로몬을 축복으로 생각하는 이설과 달리 효원은 더럽고 추하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애써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다들 즐거워 보였다. 연인, 가족, 친구들과 어울려 웃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때, 효원의 눈에 이 추위에도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가 저보다 더 큰 손수레를 밀며 인파를 버겁게 헤치는 것이 들어왔다.

    순간, 효원은 버스 정류장이 아님에도 아저씨에 내려 달라고 우겼다. 험상궂은 기사 아저씨가 욕을 했지만, 소리를 질러 간신히 내릴 수 있었다.

    효원은 저 뒤에서 멈춘 할머니를 바라봤다. 그녀는 제과점 가게의 생크림 케이크 상자를 막연히 응시하고 있었다. 케이크를 사고 싶어도 돈이 없는 것이다. 효원은 상점으로 들어가 가장 큰 케이크를 샀다. 그리고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돌아서는 할머니를 불렀다.

    “날 불렀수?”

    효원은 할머니에게 상자를 안겨 주었다.

    “가져가세요.”

    “아, 이런 건 안 줘도 되는데.”

    “아뇨. 아이들 먹이세요.”

    “비, 비쌀 텐데…….”

    “저 돈 많아요. 곧 크리스마스잖아요? 모두 행복할 자격이 있는 날이에요.”

    효원의 지갑에는 할머니에게 케이크를 사 주고도 몇십만 원이 더 남아 있었다. 효원은 서범익이 준 돈을 빨리 없애고 싶었다. 화대로 받았다는 기분이 떠나지 않았기에 거의 반강제로 할머니의 손에 쥐여 주었다.

    효원은 가끔 그가 준 돈을 종종 불우한 이웃에게 썼다. 때론 고아원에 물건을 보내기도 하고, 가끔 이렇게 불시에 어려운 이웃을 만나면 선물을 했다.

    그러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위에 꽉 막혀 있는 체증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순전히 저를 위한 행동이었다.

    “돈, 돈은 받을 수 없수.”

    “아뇨. 가족에게 선물을 하세요. 그럼 저는 갈게요.”

    효원은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 아까와 같은 번호의 버스가 오길 한참을 기다렸다. 그때, 눈앞에 익숙한 차가 멈추었다. 뒷좌석에서 멋지게 슈트를 입은 서범익이 내렸다. 효원은 흠칫 놀라 저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섰다.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한참 약혼식을 치르고 있을 터인데… 왜, 그가…….

    “왜, 이런 곳에 떨고 있어?”

    “버스 타려고요.”

    목이 아팠다. 칼칼한 것이 꼭 목이 가시가 걸린 것처럼 당장 죽을 것 같았다.

    “전화 끄지 말라고 했잖아?”

    “내 마음이에요.”

    범익은 물끄러미 효원을 쳐다보다, 곧이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곳에서 들리지 않아도 그의 목소리 톤이 흥분된 것이 느껴졌다. 효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몰랐는데 손이 얼어 버린 것 같았다.

    최근에는 집 안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렸던지라 날씨가 이렇게까지 추워졌는지 몰랐다. 꽁꽁 얼어 버린 손을 입김으로 녹이고 있자 따뜻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고개를 들자 범익이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 같은 남자가 봐도 눈이 튀어나올 만큼 잘난 남자였다.

    “꽁꽁 얼었잖아? 손 다 텄어. 손이 중요한 녀석이 장갑도 안 끼고 다녀? 내가 사 준 가죽장갑은 또 어디다 버려둔 거야?”

    타박하는 목소리에 걱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효원은 서범익이 그의 손을 잡아 제 입김으로 호호, 녹이는 것을 멍하니 쳐다봤다.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가자.”

    “어디로요?”

    “어디든.”

    “그게, 무슨…….”

    “알아서들 하겠지.”

    “범… 범익 씨.”

    그는 효원의 팔을 잡아끌었다. 효원은 당황스러움에 얼빠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으나, 제 몸은 그가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두 사람이 차에 오르자 그의 차는 서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리더니 인적이 드문 숲길에 들어섰다.

    눈이 내려 하얗게 물든 나무와 길이 아름다웠다. 어두운 산속을 밝혀 주는 빛이라고는 전조등에 불과했지만, 작은 빛을 반사하는 눈이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곧 유럽식 주택이 몇 보이더니 차는 한 주택의 넓은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디예요?”

    “별장.”

    범익은 그렇게 답을 하고 내렸다. 그러고는 효원의 좌석으로 와 에스코트를 하듯 손을 내밀었다. 잠시간 그 손을 바라보던 효원은 그의 손을 잡고 내렸다. 미리 언질을 받은 듯, 유럽식 별장 안에는 따뜻한 훈기가 어려 있었고, 식탁 위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준비된 것에 비해 아무도 없었다.

    “여긴 우리 둘뿐이야. 별장을 관리하는 관리인들은 저 아랫집에 살고 있어. 배고프지? 이리 와.”

    그가 이끄는 대로 효원은 소파에 앉았다. 그가 그릇에서 이것저것 음식을 옮겨 와 효원의 앞에 놓아 주었다. 효원이 먹지 않고 포크로 뒤적거리자,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스테이크를 하나 찍어 효원의 입속에 넣어 주었다.

    효원은 속이 답답했기에 먹고 싶지 않았다. 효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서범익이 효원의 손을 잡았다. 효원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효원은 범익이 약혼식은 어떻게 하고 저를 찾아왔는지 묻고 싶었다. 왜, 이 시간에 그가 여기에 있는지 궁금했지만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썹이 힐끔 올라갔다.

    “내가 약혼하는 게 싫어?”

    “…아뇨.”

    “거짓말. 얼굴에 다 써 있어.”

    “아뇨! 아니에요.”

    효원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암울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인지…….

    범익의 입에서 작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건 효원이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한 원망이었다.

    순간, 그가 벌떡 일어서더니 휴대폰을 들고 잠시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통화하더니 휴대폰 전원을 끄고 아무 곳에나 던졌다.

    효원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범익은 그런 효원의 턱을 잡고 눈을 맞췄다. 그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이효원… 잘 들어. 난 너와 영원히 헤어질 마음이 없어… 우리, 한번 해 보자. 너와 내 마음이 같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보니까.”

    * * *

    범익의 표정은 꽤 진중했다. 그의 말을 들은 효원의 눈에서는 벌써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눈물로 젖은 효원의 뺨을 부드럽게 훔쳐 준 범익은 효원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우리 진짜 연애를 하자. 네 생각은 어때?”

    “우욱, 흐흑…….”

    범익이 닦아 준 것이 무색하게 효원의 눈에서 눈물이 쉼 없이 떨어졌다. 그의 말이 효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사랑한다는 고백이 아닌 겨우 진짜 연애를 하자는 말이었지만, 효원은 말할 수 없이 기뻤다. 행복했다.

    와락, 그의 어깨에 힘껏 매달렸다. 효원의 울음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그가 효원의 몸을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역시 내 생각과 같았네. 바보처럼. 우리 둘 다…….”

    “외면했어요. 당신이 내게 보여 준 모습들이 제 페로몬이나 몸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10년 전, 그의 반응과 첫 관계 전에 거부했던 모습까지. 첫 관계 이후 변한 그의 모습을 진심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다정한 행동을 진심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했다. 몸으로 시작한 관계는 금방 식어 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계약 이외의 감정은 결부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서범익이 약혼을 한다는 말을 듣자 그때부터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그렇게 좋았던 그림도 싫고, 음식도 맛이 없었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심장이 욱신욱신거리며 저릿하고 슬펐다. 그 아픔에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몇 번이고 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해도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약혼식을 상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 그저,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아프고 화가 났다. 누구인지 얼굴도 모르는 여자를 질투했다.

    처음에는 몰랐다. 너무도 낯설고도 먼 감정이었던지라, 몇 날 며칠을 그 문제로 고민했다. 결국 효원은 인정하고 말았다. 자신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뜻밖에 범익도 효원과 같은 마음이었다. 흔들리는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다. 그도 효원과 계약 관계로만 끝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약속할게. 너를 버리지 않겠다고.”

    “…….”

    그 약속이 결혼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 그가 더 잘 알 테니까. 결국, 효원은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 때까지 함께할 정부에 지나지 않았다.

    효원의 입술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그의 다정한 표정이 너무도 낯설었기에 오히려 목이 턱 멨다.

    “날 믿어 줘. 시간이 조금 필요하니까. 2년, 아니 1년. 그 시간만 기다려 줄 수 있겠어?”

    “…기다린다면 우리의 관계가 변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회장님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되는 거예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

    그가 효원의 아랫배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효원은 화들짝 놀랐다.

    “설마… 임신을 뜻하는 거예요?”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아뇨, 그럼 더 안 되죠. 애만 빼앗기고 전 쫓겨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니까요.”

    “우리 둘을 연결할 고리를 만들면 아버지도 어쩔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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