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멸의 늪-17화 (17/40)
  • chapter 17

    #17

    『나도 줘.』

    『헤이~ 에릭, 나도 안고 싶어』

    그들이 영어로 하는 이야기를 똑똑히 들었다. 효원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설마… 설마…….’

    “기다려. 실컷 가지고 놀다 줄 테니까.”

    “……!!”

    효원은 믿을 수 없었다. 유준태가 자신을 진창에 넣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서범익의 말을 믿었어야 했다.

    앞으로 닥칠 일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수많은 알파에게 강간을 당할 위기에서도 효원은 약 기운 때문에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온몸이 떨리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열이 솟았다. 강간에 대한 두려움이 효원의 온몸을 집어삼켰다.

    누군가 효원의 입에 재갈을 물리더니 한 남자가 효원의 팔을 뒤에서 잡고 결박했다. 효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유준태의 이중성을 몰랐던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다.

    서범익이 그렇게도 경고를 했는데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순순히 따라온 것을 후회했다.

    그가 효원에게 손을 뻗었다. 낯선 남자의 손이 효원의 뺨에 닿자 소름이 돌았다. 목구멍이 따가웠다.

    ‘끝이다. 난, 여기서 끝나는 거야.’

    효원은 서범익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런 효원의 입술을 유준태가 만지려고 할 때였다.

    콰아아앙!

    귀를 찢을 듯한 파열음이 들리더니 곧이어 문이 뜯어져 나갔다. 그리고 건장한 남자들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흐려진 시야에도 그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서범익이었다.

    서범익은 곧장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흉흉한 눈빛으로 물든 서범익의 시선이 흐트러진 효원과 효원을 붙잡은 남자들을 무섭게 노려봤다. 겉으로는 침착해 보였지만 날 선 기운이 공기의 흐름을 바꿨다. 위협적이고 무거운 공기가 집 안에 넘실거렸다.

    “오늘 반드시 죽일 거다, 유준태.”

    퍼억-!

    뭔가 부서지는 듯한 소음이 들렸다. 그의 발길질에 유준태의 몸이 저만치로 날아갔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겼다. 그가 인정사정없이 내지른 주먹질에 유준태의 커다란 몸이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그가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럴수록 서범익은 더욱더 그의 몸을 세게 밟았다.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인지 유준태의 멱살을 잡아 홈바로 몸을 집어던졌다. 쨍그랑,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효원의 귓가에 유준태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

    그가 유준태를 죽일 것만 같았다.

    “나, 남 비서님… 마, 말려야 해요……. 저러다… 사람… 죽…….”

    “효원 씨 몸부터 챙기세요. 대표님이 아무리 이성을 잃으셨어도 선을 다 넘기지는 않습니다.”

    남 비서가 효원의 단추를 하나하나 잠가 주더니 그 위에 코트를 입혔다. 그때,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에 남 비서가 벌떡 일어났다. 효원도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효원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도 비명이 그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서범익은 유준태의 목을 발로 누르고 있었다. 유준태는 곧 죽을 것처럼 컥컥 소리를 냈다. 현재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 사람을 죽일 것처럼 기운이 살벌했기 때문이었다.

    우성 알파의 기운이 폭발하자 엄청난 위압감이 쏟아졌다. 그 기운은 거실에서 제압당한 알파들에게도 전해졌는지 모두가 바들바들 떨었다.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았다. 몹시 날카롭고 불안정한 그의 기운에 효원마저도 불안감이 밀려왔다.

    효원은 서범익의 허리를 잡고 늘어졌다.

    “나 괜찮아요… 버, 범익 씨… 그만하면 됐어요… 가요. 어서, 나 좀… 데리고 가 줘요.”

    효원은 울먹거리며 그가 더 큰 사고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 제 마음이 전해졌는지 그의 기운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서범익은 뒤를 돌아 효원의 몸을 번쩍 안았다.

    그의 팔에 안기자 비로소 효원은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믿음직스럽고 단단한 그의 품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힘차게 뛰는 심장이 효원의 가슴에 와 닿았다.

    그의 진심이 전해졌다.

    서로 사랑을 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 * *

    서범익은 효원의 허리를 잡고 그의 구멍에 자신의 페니스를 맞췄다. 효원의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 살점이 떨어질 듯한 강한 흡입력에 화들짝 놀랐다.

    곧이어 입 안에 들어온 두꺼운 혀가 입천장을 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효원의 혀를 옭아매며 빨았다.

    효원은 마치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 배회하는 듯 호흡이 가빠졌다. 다급한 키스와 함께 묵직한 귀두가 구멍을 파고들었다.

    “으읏-.”

    삽입은 익숙해지지 않아서 처음에 늘 고통이 동반된다. 그러나 이미 효원의 내부는 벌써부터 기대감에 들떠 출렁출렁했다.

    범익의 몸에서 나오는 쿠퍼액과 효원의 애액으로 안은 점차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등줄기로 낯선 쾌감이 내달렸다. 효원은 서범익의 등을 허겁지겁 껴안았다.

    “약 기운을 다 없애려면, 오늘은 대충 못 해, 알지?”

    “으…….”

    서범익의 말을 이해한 효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범익은 효원의 허벅지를 틀어잡았다. 그리고 연달아 같은 곳을 찔렀다. 아찔할 정도의 쾌감이 강렬하게 찾아왔다. 서범익의 커다란 페니스는 정확히 효원의 포인트를 겨냥했다. 눈앞이 번쩍번쩍했다. 붉고 뜨거운 열이 점멸하듯 효원의 뇌를 빠르게 강타했다.

    “아읏, 악, 천천히…….”

    “크읏-, 으읏-.”

    극상의 오르가슴이 효원을 덮쳤다. 효원은 쾌감에 소리를 지르며 서범익의 목을 끌어안았다. 서범익의 근육이 꿈틀꿈틀거렸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그의 구릿빛 육체는 튼튼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그의 강한 어깨에 기대 효원은 뺨을 비볐다. 기분이 몽롱했다. 서범익의 피스톤 운동에 눈이 돌아갈 것 같았다. 아래를 찢기라도 할 듯 그의 성기가 팽팽해졌다. 페니스라기보다 몽둥이에 가까운 뜨거운 기둥이 안을 파고들었다.

    효원은 서범익의 몸짓, 손짓 하나에 흥분해 신음을 터트렸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약 기운 때문에 정신이 몽롱했다.

    효원의 눈에 매력적인 남자의 얼굴이 가득했다. 그는 수없이 입술을 핥으며 키스했다.

    “크읏… 으윽…….”

    “아아…….”

    다리가 서범익의 넓은 어깨에 올라가자 그의 페니스는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더 깊게 파고드는 페니스에 까무러칠 듯 교성을 질렀다. 말 근육 같은 허벅지와 퍽퍽 올려 치는 힘이 굉장했다. 치고, 빠질 때마다 고통과 쾌감이 번갈아 뇌수를 자극했다.

    약 기운 때문에 평소보다 쾌감이 몇 배로는 컸다. 감당할 수 없는 쾌감에 신음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입술을 게걸스럽게 핥는 버거운 키스와 벅찬 심장 박동은 이미 정상 범위를 지났다.

    몸이 뒤로 밀리며 짐승 소리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점점 효원은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허리를 돌린다.

    상대의 피스톤 운동에 함께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입술에서 입술로 옮겨지는 혀를 따라 긴 은색 선이 이어졌다.

    “효원아… 효원, 윽…….”

    * * *

    육체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범익은 흡사 미친 듯이 효원의 입술을 핥으며 섹스에 집중했다. 한 번의 사정으로는 약 기운이 가시지 않는 것을 보고 욕을 퍼붓고 싶었다. 두 번, 세 번, 아니, 이제는 네 번째로 접어들었다.

    범익의 페니스는 크고 단단했다. 그만큼 효원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포인트를 누르는 횟수가 잦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 혈색이 좋아지고 있으니까…….”

    “네… 으으…….”

    그나마 정신을 차렸기에 다행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서지도 못하겠지만, 지금 그것을 따질 여력은 없었다.

    “으응… 읏… 아, 아- 읏…….”

    효원은 그의 테크닉에 즉각 반응했다. 그때마다 범익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었다. 효원에게서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음란한 향이 느껴졌다. 남자를 온몸으로 느끼며 유혹적인 향을 퐁퐁 풍기는 음란한 몸짓이 새로웠다.

    약에 의한 반응이지만, 의도치 않게 서범익의 성욕에 기름을 부었다. 러트사이클이 아닌데도 이렇게 매혹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서범익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어쩌면 제 마음은 몸이 원하는 이상으로 그를 더 좋아할지 모른다고 느꼈다.

    서범익은 효원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달콤한 울림이 저 아래에서 흘러나왔다.

    * * *

    그 시각, 회장실은 시끄러웠다. 서 회장은 프랑스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을 보고 받고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쾅!

    거칠게 책상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게 해. 특히 민성 그룹 쪽은 더더욱 조심하고. 법무팀은 재영 건설에 똑똑히 전하게. 입 함부로 놀렸다가는 더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서 회장의 지시에 비서실은 총동원되어 사건을 수습했다. 그 사건이 언론에 흘러나가게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약혼자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재영 건설도 발칵 뒤집어진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아들이 한 짓이 있으니 합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서 회장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꾹꾹 눌렀다.

    “녀석이 답지 않게 폭력이라니… 이거… 심각한 거 아닐까? 이러다가 둘이 사랑이라도 하게 된다면… 안 되겠어. 범익이 주치의를 부르게, 당장!”

    * * *

    이틀 후, 두 사람은 범익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언론의 눈을 피하기 위해 범익과 효원은 각기 다른 게이트에서 입국 심사를 마쳤다.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비서실장이 범익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회장님께서 따로 모시라고 합니다.”

    “…보고를 받으셨어?”

    “네.”

    “…알았어.”

    서범익은 남 비서에게 효원을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지시한 뒤, 비서실장을 따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공항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회장의 차가 보였다.

    직접 마중을 나올 만큼 화가 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범익의 입술에 쓴웃음이 걸렸다. 비서실장이 뒷좌석 문을 열자 그곳에는 회장이 앉아 있었다.

    곧 리무진에는 두 사람만 남고 모두 밖으로 나갔다. 잠시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다음 주에 네 약혼식을 잡았다.”

    “네? 약혼이요?”

    “그래. 민성 그룹 차녀와 약혼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

    “…아버지!”

    범익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약혼이라니, 비혼주의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약혼을 운운하다니.

    “결혼은 사업의 수단이야.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네가 아니냐? 쇼윈도 부부건, 계약 부부건, 상관없으니까. 결혼만 해.”

    “싫습니다.”

    “뭐?”

    “결혼 안 합니다. 꼭 해야 한다면…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겠습니다.”

    “너, 설마. 지금 계약 정부를 말하는 거냐? 그 오메가를 결혼 상대로 보고 있는 거야?”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하… 돌았군. 확실히 돌았어!”

    범익은 효원과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쉽게 허락하지 않겠지만, 효원을 곁에 두고 싶었다. 이번 사건으로 깨달은 것이 있었다. 효원이 다른 알파에게 강간을 당할 위기를 보자 확실하게 제 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은 효원을 사랑하고 있었다. 러트사이클의 부작용이 생긴 원인이 효원이고, 유일한 치료법이 효원이라는 것이 증명된 그날.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 그와 첫 키스를 했을 때 이미 자신은 효원에게 빠진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2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와 거의 매일 섹스를 하면서 단지 쾌락 때문에 그를 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범익은 효원을 포기할 수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가질 것이다. 그가 저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를 제 삶의 일부로 만들고 싶었다.

    평소 제 집요함을 잘 아는 아버지가 막무가내로 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도박으로 직진했다. 역시, 회장은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건 일시적인 감정이야. 좋다. 그래, 네가 정 마음이 그렇다면 시간을 주지. 그러나 약혼은 해야 한다. 결혼까지 시간이 있으니 네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첩으로 두는 걸 생각해 보마.”

    * * *

    서범익은 자신의 방으로 올라와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걷어찼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약혼이라니… 이렇게 빨리 약혼을 결정하게 될 줄 몰랐다.

    의사가 치료 기간을 2년으로 잡은 만큼 당분간 결혼 이야기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건 저만의 착각이었다.

    서범익은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빼 물었다. 몇 번 크게 빨아들이자 조금 진정이 되는 같았다. 발코니로 걸어간 범익의 눈길은 저 멀리 반짝이는 작은 불빛으로 향했다.

    저택은 넓은 대지에 서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안쪽에 수영장을 비롯한 정원이 있었고 뒤뜰에는 별채가 한 채 더 있다. 그 별채는 주로 집안에 상주한 사용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효원이 드나드는 별채는 좀 더 안쪽으로, 저택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있다. 저택과 별채를 잇는 곳은 작은 문 하나였고, 중간에 담쟁이덩굴이 넓게 퍼져 있어 누군가 그곳에 와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별채로 들어오고 나가는 문은 저택의 정문이 아닌 북쪽 문이다. 주로 집안에 고용된 사람들이 그 문을 이용했다.

    회장은 영영 효원을 버릴 수 없다면 별채에서 살게 해도 된다고 말했다. 단, 정부라는 것을 들키지 않게 비밀이 보장할 수 있는 조건에서… 이 집사 후임으로 들여도 된다고 제안했다.

    “정부라니… 가당치도 않아…….”

    서범익은 효원을 정부로 앉히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은 그렇게 했으나, 한 집에 며느리와 정부를 함께 두는 것을 볼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범익이 비혼 주장을 하지 못하게 작은 떡밥을 던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하나…….’

    효원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이 더 급하게 되었다. 제 딴에는 치료 기간 2년 동안 효원의 마음을 잡고 계약이 아닌 진짜 연인이 되려고 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어차피 쇼윈도 부부지 않아? 뭘 그렇게 고민해?’

    아버지 말처럼 애초에 고민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재벌가의 결혼은 사업의 수단 중 하나였다. 막 결혼한 부부도 결혼을 하나의 사업으로 받아들이고 각자 즐긴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당장 가까운 지인들만 봐도 그저 행복한 가정인 것처럼 행동할 뿐, 사랑은 연인과 즐겼다. 하지만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벌써부터 서두르는 것을 보면 아마도 계속 아버지의 뜻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결혼을 사업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아버지에게 있어 서범익은 최고의 조건을 지닌 훌륭한 상품이었다. JK 그룹에서 우성 알파로 각성한 사람은 저뿐이었으니까… 어쩌면 그의 뜻을 거역할수록 효원과 더 떼어 내려고 할지 모른다.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JK 그룹을 한국의 TOP 1위로 성장시킨 건 앞을 내다보는 듯한 그의 사업적 감각 덕분이었다. 거기다 그의 연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우성 알파라고 해도 범익은 아직 아버지에게 미치지 못했다.

    그는 JK 그룹의 황제다. 노장이지만, 그가 가진 힘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서범익의 힘은 모자랐다.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최소한 10년, 아닌 5년이 지나 자신이 회장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제 사람을 키우고 그룹에서 입지를 다져야 했다.

    ‘역시… 시간을 벌기 좋은 방법은 약혼이겠지? 우선 예비 약혼녀를 만나자.’

    서범익은 제 머리카락을 헝클며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다. 그때, 반가운 벨 소리가 울리자 서범익은 미친 듯이 휴대폰이 있는 탁자로 뛰어갔다. 그리고 영상 통화로 연결해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 이제 자려고요.

    “…이효원.”

    - 네?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니야. 좀 더 통화해.”

    그에게 약혼 사실을 말해야 하나 싶었지만, 기분 나쁜 사람은 저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와 다른 범익의 행동에 그의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금방 씻은 듯 머리카락이 젖은 상태였다.

    귀엽고 예뻤다. 당장 안고 싶을 만큼…….

    “할 말 없으면, 우리 그냥 얼굴만 봐. 이렇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