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11
유준태를 비롯한 과 동기들이 식당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효원과 우혁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이 앉자마자 음식이 나왔다. 효원은 늘 유준태의 옆에 앉았지만, 오늘은 우혁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유준태가 인상을 찌푸렸다.
‘죄송해요. 저도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제 뜻과 달리 그를 멀리해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런데도 이렇게 벽을 높게 친 이유는 서범익이 그를 경계하기 때문이었다.
효원은 입 안이 텁텁했다. 서범익의 말 한마디에 동경했던 대상을 하루아침에 경계 대상에 올리다니…….
그런 제 마음을 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사람 오기 전에 워크숍에 대해 의논했는데, 과대와 효원이 생각도 들어 봐야 할 것 같아서 오라고 했지.”
“워크숍이요?”
“공모전이 코앞인데 아직 밑그림도 못 그린 녀석들이 많아."
유준태가 앞에 앉은 선배들을 한심한 듯 쳐다봤다. 그들은 딴청을 피우며 술을 마셨다.
“어때? 강원도에 작은 별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그려 보는 건?”
“별장이요?”
“이 가을에 딱 어울리지, 단풍이 절정일 거야.”
“아…….”
효원의 작품과 잘 맞아떨어지는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그리고 있었기에 구미가 당겼다. 효원은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가고 싶다. 가고 싶어. 그곳에 가서 제 눈으로 풍경을 담고 화폭으로 옮겨 그리고 싶다…….’
효원은 아름다운 절경을 눈으로 보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다.
그런데 서범익에게 어떻게 허락을 맡지? 물론 다른 동기들도 함께 참여하는 워크숍이지만, 유준태도 가니 걱정이 되었다.
몰래 갈까?
어차피 서범익과 나는 한 달에 한 번 그의 러트사이클에만 만나기로 했잖아?
효원은 그를 마지막으로 본 날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그 후로 그에게서 따로 연락이 온 날은 없었다. 하다못해 집에 잘 들어갔는지 메시지조차 없었다.
그와 저는 철저한 계약 관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섹스 파트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왠지 효원의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서늘한 기분이 저 아래에서 올라와 심장을 아릿하게 스치고 지나쳤다. 한번 그를 떠올리자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밀려왔다.
보고 싶어? 내가? 그를……?
미쳤어? 이효원! 정신 차려! 개인적인 감정이 섞이면 넌 그날로 아웃이야!
효원은 머리를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었다. 그리고 제 앞에 놓인 소주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고 바닥에 탁 내려놨다. 그러자 유준태가 빈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그는 서범익이 경고했던 것과 달리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효원의 결정을 기다렸다.
“네, 우리 다 함께 가서 그림 그려요.”
효원도 함께 가겠다고 하자, 승주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야호! 좋아! 그럼 교수님 누가 또 가요? 여자애들도 가요?”
승주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하자 우혁이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썸 타러 가는 거 아니거든? 네가 제일 문제야. 문제! 여자들은 다 빼시죠?”
“그럴 생각이야. 아무래도 숲속이니까 여자들은 위험하기도 하고.”
“우쒸. 나만 미워해.”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철이 없어서 그런 거야. 너 그러다 억지로 네 아버지에게 끌려가 경영 수업 해야 할걸?”
우혁의 말에 승주가 파르르 떨었다. 두 사람의 케미를 보니 절로 웃음이 터졌다. 환상의 커플인데 정작 둘은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 왜 그러지? 알파와 오메가라면 한번쯤 엮일 만도 한데 말이다.
효원은 오늘따라 술이 당겼다. 속이 헛헛하니 술이 물처럼 들어갔다.
‘왜 이렇게 허전한 것인지…….’
테이블에 술병이 쌓이는 것만큼 효원의 입술에도 슬금슬금 미소가 걸렸다. 평소보다 많이 마신 것 같았다. 선배들이 슬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울리지 않게… 너 꽤 많이 마신다?”
“그랬어요? 안 취했어여… 그래도…….”
“음… 어째, 혀가 짧아진 것 같은데? 우리 효원이 연애하나? 꼭 애인과 헤어진 후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여.”
“그러게? 진짜 귀엽다. 그치? 우혁아, 쟤는 어째 더 귀여워지냐? 나, 오메가인데도 서려고 해.”
승주가 효원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럽게 흩트리자, 우혁이 승주의 손을 ‘탁’ 쳐냈다. 두 남자 사이에서 미묘한 눈빛이 오갔다. 동시에 멀찍이 떨어진 유준태의 눈빛도 이채롭게 빛났다.
효원은 술이 약한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술이 척척 잘 넘어갔다. 승주와 죽이 맞아 맥주에 소주를 넣어 폭탄주를 마시다 보니 자신이 술을 마시는지, 술이 저를 마시는지 헷갈렸다. 더웠다. 열이 풀풀 솟았다.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같이 갈까? 나 담배 피우러 갈 거야.”
우혁이 효원의 뒤를 따르려고 하자 유준태가 벌떡 일어났다.
“나도 바람 쐬러. 너희들 마시고 있어.”
“…네, 교수님.”
“우혁이, 승주 챙겨야겠다. 뻗었어.”
효원과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던 승주가 식탁에 코를 박고 뻗었다. 승주 이외에도 술에 취한 녀석들이 여럿이었다. 그들 중에는 사고를 칠 것처럼 날이 선 남자들도 보였다. 할 수 없이 우혁은 자리에 앉았다.
밖으로 나오니 속이 확 풀리는 것 같았다. 효원은 식당 옆 작은 골목으로 향했다. 제 뒤를 따른 유준태가 효원에게 담배를 한 대 내밀었다.
“피울래?”
“아… 그, 그래도 되나요?”
그에게 담배를 받았지만, 교수 앞이라 피워도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 고작 다섯 살 차이야. 격식 차릴 필요 없어.”
유준태가 제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담배를 문 효원의 입술로 다가왔다. 효원은 어어, 하는 마음에 고개를 뒤로 젖혔지만, 이미 머리통이 잡혔다. 이윽고 담배와 담배가 서로 부딪쳤다.
효원은 갑작스러운 유준태의 행동에 당황스러웠다. 유준태는 불씨를 붙여 놓고 떨어졌다. 효원은 멍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슬며시 웃는데 눈가가 예뻤다.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잘됐네. 나 너에게 하고 싶은 말 있었거든.”
“네? 딸꾹…….”
술에 취해 딸꾹질이 나왔다. 유준태는 효원에게 손을 뻗으려고 했으나, 효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서범익의 목소리가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우리 사귈래?”
“…네? 네엑?!! 뭐… 뭐여?”
“사귀자고. 나 너 좋아해.”
“……!”
효원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지금, 유준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인식이 되지 않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유준태는 담배를 뻑뻑 피우며 효원을 바라봤다.
“처음부터 너 좋아했어. 특별히 너를 아꼈던 것도 내 사심이야.”
“저, 저기… 교, 교수님…….”
“교수 말고 형. 형으로 부르라고 했잖아?”
“아, 아녀… 저는… 딸꾹- 딸꾹-.”
효원은 답을 찾지 못하고 버벅거리며 말을 했다.
“술 먹고 취중에 하는 말 아니야. 오랫동안 고민해서 결정한 거야. 당장 결정하라는 것도 아니고. 너에게 시간을 줄 테니까. 생각해 봐. 진지하게.”
“아, 그건…….”
“요즘 아버지가 다시 그림을 그리라고 하시네. 프랑스로 건너가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라고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교수는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 더 늦기 전에 그림을 더 그려 보고 싶어. 너만 괜찮다면, 너 유학 갈 때 함께 갈까도 생각하는데…….”
“잠… 잠깐요! 저…….”
효원은 손을 흔들었다. 도저히 유준태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경제적인 지원은 내가 할 수 있어. 우리 둘 외국에 나가 동거를 하더라도 충분히 먹…….”
“스톱! 쉿! 그만! 그만 해요.”
효원은 제 귀를 막아 버렸다. 유준태의 고백을 받기에는 효원은 그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물론 동경심은 있었지만 이런 식의 호감은 없었기 때문이다. 효원은 상처받은 표정으로 입을 다문 유준태를 보자 도망치고 싶었다. 이런 고백은 처음이라 효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너, 오메가라는 거 알아.”
“헉!”
두 번째로 이어지는 충격에 효원은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처음에 네가 베타라고 생각했을 때도 너한테 끌렸어.”
“……!”
“그동안 네가 숨기고 있기에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예전부터 너에게 마음이 있었거든.”
“다, 다른 사람도 제가 오메가라는 거 알아요?”
“아니. 아마도 모를 거야. 나도 다른 남자와 경쟁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말 안 했거든.”
“…….”
“너 부담스러워할 거 알면서 고백하는 거야. 더 참았다가 너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길 것 같아서. 생각할 시간을 줄게. 언제든 생각이 정리되면 답해 줘. 조금만 더 바람 쐬고 들어와. 먼저 들어간다.”
유준태는 효원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효원은 어두운 골목에 홀로 남았다. 술이 번쩍 깨는 것 같았다. 평생 제 우상이었던 유준태의 고백은 술에 취했던 효원의 정신을 확 차리게 했다. 목구멍 안에 혹 같은 게 걸려 있는 기분이었다.
효원은 문뜩 손가락이 뜨거운 것 같아 손을 내려 봤다. 그는 필터까지 탄 담배를 바닥에 던져 발로 밟았다.
그때, 효원의 발끝에 반질반질한 남자 구두코가 보였다. 코끝으로 진한 향기가 스며들자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세웠다.
제 눈앞에 서범익이 있었다.
‘어떻게? 그가… 어떻게 이곳을 찾은 거지?’
그의 눈빛이 몹시도 차가웠다. 차가운 날씨보다 더 냉기가 흘러나왔다. 목덜미 위로 돋아난 소름이 가벼운 오한이 되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전율이 올라와 가벼운 흥분감이 느껴졌다.
일주일 만에 본 서범익은 더 멋지게 보였다. 효원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효원은 그가 저를 차갑게 바라보는 이유를 생각하다 좀 전에 상황을 떠올렸다. 그가 유준태와 둘이 있던 장면을 본 것이 확실했다. 현재 상황을 부정해도 그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었다.
“아… 안 잡혔어요. 강제로도… 스킨십도 없었어요.”
“…….”
“혹시 이야기도 들, 들었어요? 앗!”
서범익은 효원을 죽을 듯 노려보며 허리를 바짝 안았다. 효원은 헉 소리를 냈다. 그의 입술이 가까워지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유준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했던 것을 알 텐데…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면…….
“학교 그만둬.”
“네?”
“그만두라고.”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서, 서범익 씨?”
“아,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가? 그럼 학교 자퇴하고 유학 준비해.”
“잠깐만요. 학교를 그만두라니, 제가 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
“JK 그룹에서 후원하는 거지, 등록금. 다음 학기부터 없을 거야. 후원금을 지급하지 않을 테니까.”
“……!”
효원은 얼어붙은 미소에 굳어 버렸다. 학교를 그만두지 않으면 등록금 후원을 끊겠다는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 효원의 학교 등록금은 국내에서 가장 비쌌다. 한 학기에 천만 원 가까이 되는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녔다.
아르바이트로 벌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당장 2개월 후면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그것을 끊겠다는 건 화가가 되지 말라는 것과 같았다. 효원은 억울한 마음에 그를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생각해 봤는데, 안 되겠어. 집으로 들어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별채로 들어오라고, 내 집에서 그림을 그려. 내 집에 있는 동안은 후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까.”
“하… 그게 또 무슨 말이에요? 회장님께서 허락하신 거예요?”
“내가 하고 싶다면 하는 거야. 밖으로 내돌려 신경 쓰이는 건 싫으니까.”
“왜? 왜요? 뭐가 그렇게 신경 쓰여요?”
“몰라서 물어? 지금 내 눈으로 본 것, 내가 설명해 줘야겠어?”
효원은 서범익이 미웠다. 정작 그가 신경이 쓰는 건 자신이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것이 걱정이면서, 사람이 오해할 만한 말을 했다. 눈가에 열이 몰렸다. 오랜만에 만난 저를 보며 하고 싶은 말이 학교를 그만두라는 것이라니.
효원은 허리를 두른 그의 손을 떼어 냈다. 그리고 그가 저를 보는 것처럼 차갑게 그를 바라봤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섹스… 그 이외에 없으니 저도 딱 거기까지만 해야 했다.
“거래 조건 다시 보세요. 서범익 씨에게 사생활이 중요한 만큼, 저에게도 중요해요. 등록금 지원하고 싶지 않다면 끊으세요. 학자금 대출 신청할 테니까.”
효원은 쌩하니 등을 돌렸다. 그러자 다시 그의 손에 잡혔다. 서범익은 뭔가를 열망하는 눈빛을 보였다.
“대출? 빚으로 네가 이 꼴이 되었으면서 또 빚을 지겠다는 거야?”
“내 꼴이 어때서요? 아, 알파에게 몸을 파는 오메가요? 그런데, 어쩌죠? 저를 원하는 알파는 당신뿐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뭐야?”
“사실이에요. 주위를 보세요. 얼마나 많은 알파가 저에게 관심 있는지…….”
서범익의 입가에서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나왔다. 서범익이 한국에서 가장 큰 대기업의 아들이지만, 제 주위에도 재벌이 많았다. 물론, 서범익과 거래가 끝나면 다시는 몸을 가지고 거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절대, 절대, 두 번 다시 몸을 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 마음과 달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의 신경을 긁는 말이었다. 서범익의 신경을 온통 자신에게 붙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만 당하는 건 억울하잖아요? 당신도 당해 봐요.’
물론 그가 저에게 사적인 감정은 없겠지만 지금 서범익의 표정은 꽤 봐줄 만했다.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작게 욕을 뱉었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헝클었다. 그리고 차마 놓치기 싫다는 듯 억지로 잡고 있던 손을 놔주었다. 그의 손길이 닿았던 곳이 차가워졌다.
뒤를 돌아 걸어가는데, 효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병신같이… 왜… 눈물이 나오는 거야?’
효원은 눈물을 쓱쓱 닦으며 골목을 나왔다. 모퉁이를 돌려던 찰나, 다시 뒤에서 서범익이 손을 잡아 효원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 입술이 겹쳐졌다.
“으읍.”
입술이 벌어지고 혀가 들어와 성급하게 움직였다. 입술이 부딪혔을 때 효원은 놀라 바보처럼 입이 벌렸기 때문에 막을 틈도 없었다.
서범익은 몹시 열정적으로 키스를 했다. 서범익은 섹스를 하는 것처럼 혀를 밀어 넣어 느리게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두 개의 혀가 야하게 비벼졌다. 아래가 뻐근했다. 효원의 몸이 흥분되었다. 다리가 풀릴 것만 같았다.
‘왜 화가 난 거야? 이런 키스를… 왜 하는 건데?’
효원은 그의 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고개를 틀었다. 키스를 이어 가던 그의 입술이 살짝 떨어지더니 이내 효원의 귀에 닿았다. 그가 혀로 귓불을 게걸스럽게 핥았다. 그의 섹시한 숨결이 또렷하게 들렸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숨결은 효원을 유혹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러다 서범익의 손이 효원의 옷 속으로 들어와 피부를 더듬거렸다. 그에 효원은 억지로 서범익의 몸을 밀었다. 그러자 흥분한 그의 눈빛이 저에게 닿았다.
“무슨 뜻이에요, 이거?”
“…….”
“뭐냐고 물었어요.”
서범익은 답을 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렸다. 효원은 지금 그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효원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몸에서 떼어 냈다.
“모르겠다면, 다음 러트사이클이 올 때까지 생각해 보세요. 그때 뵐게요. 안녕히 가세요.”
효원은 서범익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술집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서범익은 효원이 없음에도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그러다 그의 입술에서 귀신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술 짝을 내놓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왔던 점원이 기겁했다. 점원은 그의 웃음소리에 겁을 집어삼키고 슬금슬금 사라졌다.
범익은 주먹으로 벽을 힘껏 쳤다. 그러자 손등으로 피가 맺혔다.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그것이 저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효원의 주위를 알짱거리는 유준태와 알파들 때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말을 모두 들었다. 효원에게 고백하며 유준태와 미래를 함께하자는 프러포즈까지…….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