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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늪-7화 (7/40)
  • chapter 7

    #07

    효원은 선배들이 불러도 꿈쩍하지 않고 한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 현란한 조명, 역시나 클럽은 효원의 성향과 전혀 맞지 않았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놀아 본 적이 없던 효원에게는 어색함 그 자체였다.

    특히나 티브이 드라마를 통해 봤던 클럽과 상위 3%들이 즐기는 클럽은 확실히 달랐다. 이곳은 종업원들도 얼굴로 뽑는지 모두 잘생기고 예뻤다.

    시선을 들어 위를 쳐다보니 멋들어진 샹들리에가 보였다. 클럽과 호텔 연회장을 접목한 듯한 인테리어는 고급스럽고 화려했다. 효원은 자신이 입은 슈트가 불편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은 JK 그룹 사장의 정부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효원이 짧은 한숨이 내쉬자 유준태가 맥주잔을 건넸다. 서글서글한 미소를 보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처음이라 그런 거야. 괜찮아. 충분히 잘 어울려.”

    “처음인 거 티 나죠?”

    효원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유준태가 효원의 머리카락을 흩뜨렸다.

    “술 마시려고 온 자리니까. 편하게 마셔. 억지로 춤출 필요 없어. 자, 마시자.”

    “네!”

    둘은 맥주병을 서로의 병에 부딪치며 건배를 했다. 그리고 숨도 쉬지 않고 넘겼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가장 큰 고민도 해결했고, 계약이 끝난 이후를 조금씩 계획할까 싶었다.

    “네 동기들 몇몇은 유학 준비하던데, 넌 계획 있어?”

    “졸업하면 프랑스로 유학갈까 해요. 그곳에서 공부도 더 하고 경력 쌓고 싶어요.”

    “프랑스라… 하긴, 화가에게 프랑스만큼 좋은 곳은 없지. 그런데 물가가 비싸서 꽤 힘들 텐데… 네가 받는 후원은 대학교가 끝이라고 하지 않았어?”

    “조금 모아 둔 돈이 있어요. 등록금은 될 것 같은데, 생활비는 직접 벌어야죠.”

    “흠… 그래? 그렇다면 내가 아는 사람 소개해 줄까?”

    “정말요?”

    효원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지 않아도 유준태가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왔다고 들어서 그에게 조언을 구할 생각이기도 했다. 유준태는 환하게 웃으며 효원의 볼을 꼬집었다.

    “특별히 아끼는 제자니까. 아니지, 학교 밖에서는 형이라고 생각해.”

    “고마워요! 교수님!”

    “형.”

    “그게… 그래도… 형은…….”

    “밖에서도 교수님이라고 부르면 정말 나이가 많아 보이잖아? 나 아직 스물일곱이라고.”

    그가 손으로 제 얼굴에 주름을 잡으며 나이 든 사람 흉내를 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웃겼다. 효원이 웃자 그가 더 장난스럽게 얼굴에 주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효원의 옆구리를 툭 건들며 간지럼을 태웠다.

    “반칙이에요. 아하하! 간지러워요!”

    “이 녀석 잡아먹을 거야. 흐엉!”

    “하하하.”

    사람들과 어울리며 적당히 취하니 즐거웠다. 효원의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웃었을까? 한참을 유준태와 장난을 치고 있었더니 몇몇 선배가 자리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고 다른 이들은 그 자리에 남아 춤을 추었다.

    효원은 춤을 추는 선배들을 바라보다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현란한 조명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쿵! 순간,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서, 서범익? 저 남자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효원은 심장이 얼어붙는 위압감에 흠칫 떨렸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효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효원과 함께 있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노려봤다. 굳게 다문 비틀리고 있어 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효원의 심장 박동이 격해졌다. 쿵쿵쿵, 울렸다. 효원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서범익을 피하고 싶었다.

    어디로든 피하지 않으면 그가 자신이 있는 자리로 와 저를 끌어낼 것 같았다. 물론, 그 스스로 계약 조항을 바꿀 일은 없겠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빨리 다녀와. 아! 그리고 너 아무리 베타라고 해도 알파 조심해. 너처럼 잘생긴 남자는 베타라고 해도 노리는 사람이 많다고.”

    “네! 선배!”

    선배가 효원에게 남자 조심하라고 경고를 했다. 아직까지 베타 흉내를 잘 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학교에 들어와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제 근처에 알파들이 제법 많았다.

    효원은 서범익을 피할 장소로 화장실을 택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그런지 길을 찾기 힘들었다. 특히나 화장실 가는 곳곳이 룸이 있었기에 문을 잘못 열면 다른 손님에게 실례를 하게 될 것 같았다. 마침 지나가는 종업원에게 물어 긴 복도로 들어갔다.

    ‘아, 저긴가?’

    화장실 표시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빠르게 걸어가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쿵쾅거리는 음악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았다.

    “……!”

    불쑥 다가온 손이 목덜미에 닿았다. 효원은 찬물을 뒤집어쓴 강아지처럼 펄쩍 제자리에서 뛰었다. 그리고 어떠한 힘에 억지로 룸으로 끌려 들어갔다.

    “으윽.”

    힘에 의해 어깨가 벽에 박혀 아팠다. 어둠 속에서도 짙은 음영이 드리워지며 익숙한 체향이 훅 끼쳤다. 등이 벽에 바짝 닿았다. 동시에 넓은 가슴이 효원의 육체에 밀착되며 거칠게 손목을 휘어잡았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눈앞에는 맹수의 눈처럼 번들거리는 눈이 효원을 험상궂게 노려봤다.

    “서, 서범익… 씨.”

    “아침에 다 죽어 가기에 봐줬더니. 순전히 연기였어? 알파들 사이에서 여왕벌이 따로 없던데… 어장 관리라도 하는 거야? 아니면, 그새 또 다른 남자가 필요한 건가?"

    서범익은 효원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술이 비틀며 비웃음을 지었다. 그는 면전에 대놓고 바람둥이 취급을 했다.

    효원은 제 몸 샅샅이 훑고 휩쓸고 간 서범익의 눈빛에서 치욕스러움을 느꼈다. 앞뒤 맥락을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한 가지만 보고 오해하는 그가 미웠다. 효원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며 서범익을 쳐다보았다.

    “신경 끄세요.”

    “뭐?”

    “제 사생활이에요. 어장 관리를 하든, 다른 남자를 만나든 그쪽이 러트사이클이 아니면 상관없다는 거예요.”

    효원은 그에게 잡힌 손목을 빼려고 했으나, 단단히 잡힌 손은 빠지지 않았다. 오늘 아침 다친 손목이 다시 욱신거렸다.

    효원은 서범익이 쳐 놓은 그물에 잡힌 물고기 같았다. 파닥, 파닥,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오싹한 두려움이 솟았다. 숨이 막혔다.

    서범익이 지닌 압도적인 분위기에 힘없는 동물이 된 느낌이다. 자신을 압도하는 알파의 기운에 위험을 감지한 듯 이성이 아우성을 쳤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그저 재미있다는 듯 입술을 비틀었다. 한순간 그의 얼굴에 시선이 사로잡힌 효원은 기회만 된다면 자신을 후려치고 싶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의 얼굴을 그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놔주세요.”

    “못 놔주겠어.”

    “네?”

    “못 놔주겠다고. 그리고 내 러트사이클 아직 안 끝났어.”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끝났잖아요?”

    그의 러트사이클은 오늘 새벽에 끝이 났다. 그때, 효원의 눈길이 범익의 하체로 향했다. 정말 그의 페니스가 부풀어 있었다.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더불어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몰라 울상을 지었다. 함께 온 일행이 있는데, 서범익과 호텔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서범익이 지키고 싶은 비밀은 효원도 지키고 싶은 것이었다. 지금껏 베타라고 우기며 지냈는데, 하루아침에 오메가라고 알려지고 싶지 않았다. 알파의 먹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빨아.”

    “네?”

    “뒤로 할 수 없다면 입으로 빨라고.”

    “…헉!”

    효원은 너무도 놀라 숨이 막혔다. 지금 그는 펠라티오를 요구했다.

    펠라라니… 펠라를 어떻게 해?

    머릿속이 아득했다. 화폭에 그려 놓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남자는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효원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풀고 싶어 했다.

    아마도 앞으로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이 밀려올 것이다. 목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왠지 누군가 저에게 경고를 하는 것 같았다. 한 번 그에게 빠져들면 목숨을 잃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질 것이라고…….

    “계약이야. 너는 내 정부잖아? 숨겨진 정부…….”

    그가 효원의 손을 끌고 와 앞에 앉게 한 뒤 다리를 넓게 벌렸다. 그는 턱을 높게 치켜들고 효원을 바라봤다. 효원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하면 되는 거야. 그가 원할 때…….

    그의 바지 속에 숨겨진 성기가 확연하게 보였다. 완벽한 남자가 바지를 뚫을 것처럼 발기한 모습은 색스럽기 그지없었다. 더군다나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듯 차가운 남자가 아래만 흥분한 건 어울리지 않았다.

    “어디 솜씨를 보지. 얼마나 잘하나.”

    “…솜씨랄 게 있나요?”

    효원은 오기가 생겼다. 그가 저를 남창으로 취급해도 자존심이 깎이는 건 싫었다. 잠깐이라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흉흉하게 선 그의 페니스가 옷 사이로 튀어나왔다. 그는 자신의 페니스를 더 가까이 효원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후끈한 열기와 함께 강한 체취가 효원의 코를 마비시켰다.

    힐끔 그를 보니, 그는 설핏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효원에게 펠라를 부추겼다. 효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냥, 잡고 흔드는 게 아니야. 깊게 빨아야 해.”

    “알고 있어요.”

    비아냥거리는 투의 목소리가 효원의 신경을 박박 긁었다. 효원은 옷 사이로 튀어나온 그의 페니스를 잡았다.

    ‘펠라티오를 어떻게 하는 거지? 그냥 빨면 되는 건가?’

    실전을 모르니 자신이 아는 이론을 모두 꺼내 귀두를 물었다. 혀끝이 귀두에 닿자 진한 색향이 전해졌다. 처음엔 짠맛이 느껴졌다. 효원은 인상을 구기며 그의 귀두를 조금씩 삼켰다. 입 안에 다 담기 힘든 커다란 성기를 입으로 넣자 두 배는 더 커진 것 같았다.

    ‘커… 너무…….’

    이렇게 큰 것을 밤새도록 받아 냈는데도 몸이 멀쩡하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한입에 담기 힘든 페니스는 겨우 반만 삼킬 수 있었다. 중간부터는 효원이 손바닥으로 감쌌다. 입술을 최대한 사용해 이가 닿지 않게 빨았다. 중간중간 혀를 사용해 핥기도 했다.

    페니스의 뿌리 끝부터 아이스크림 핥듯 핥다가 다시 귀두를 삼키자 서범익의 입에서 달뜬 신음이 흘렀다. 흥분한 그의 페니스는 혈관이 도드라지며 움찔거렸다.

    효원이 그의 귀두를 혀를 세워 파고들었다. 그가 흥분하자 페니스에서 밤꽃향보다 진한 페로몬의 향기가 느껴졌다.

    효원은 멈추지 않고 예민한 귀두 주변을 뾰족한 혀로 콕콕 찔렀다. 그러자 서범익의 신음이 커졌다.

    “하아… 이거 물건인데? 역시, 여러 번 해 본 솜씨야…….”

    그가 하는 말이 칭찬이 아닌 비난임을 알면서도 효원은 그의 오해를 정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의 허벅지를 손톱으로 짓누르며, 페니스를 강하게 흡입했다. 그러자 그가 효원의 머리통을 잡았다.

    “으윽. 으읍.”

    갑자기 주도권이 빼앗겼다. 그가 효원의 머리를 잡고 허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반쯤 삼켰던 페니스가 목젖에 닿았다. 효원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목젖을 찌르는 페니스 때문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흡흡, 숨이 막혔다.

    “으읍! 으읍!”

    순간, 그의 허리가 멈춤과 동시에 효원의 입에서 페니스를 빼 정액을 토해 냈다. 많은 양의 정액이 터져 나왔고 효원은 서범익이 뿌리는 정액을 고스란히 얼굴에 맞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했는데 어째서인지 서범익이 너무 조용했다. 효원이 고개를 올려 서범익을 바라봤다. 의외로 그는 제 감정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는 원하는 것을 해 줬음에도 차가운 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효원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제 얼굴에 묻은 정액을 닦았다.

    “용무가 끝났으니 저는 그만 가 볼게요.”

    효원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다시 손목이 잡혔다.

    “아앗!”

    그가 또다시 아픈 손목을 잡았다. 밀려오는 아픔에 효원이 멈칫한 사이 서범익은 먹이를 낚아채듯 효원의 위로 올라탔다. 서범익의 손아귀에 갈색 머리카락이 잡혀 효원이 눈을 부릅떴다.

    “다시 말해 봐.”

    “뭘요? 다 풀었으니 그만 가도 되는 거잖아요?”

    “안 끝났어.”

    “네? 으읍!!”

    순간, 그가 효원의 입술을 깨물고는 혀를 넣었다. 그는 혀를 거칠게 휘저었다. 서범익의 송곳니에 혀가 스쳐 비릿한 혈향이 돌았다. 그는 윗잇몸과 입천장 혀 밑바닥까지 닥칠 것 없이 핥았다. 열정적으로 혀를 움직이며 키스했다. 효원은 갑작스러운 키스에 정신이 혼미했다.

    “으읍, 읍-, 하아- 서… 범익, 읍-!”

    그는 성이 찰 때까지 키스를 멈추지 않을 것처럼 혀를 움직였다. 효원이 거부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게 몰아붙이는 키스에 넋이 나갈 것 같았다.

    점점 효원의 몸이 뜨거워졌다. 효원의 히트사이클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우성 알파와 키스로 인해 히트사이클 전조증상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효원은 몸이 뜨거워 미칠 것 같았다. 억지로 주어지는 쾌감이 아닌 키스에 의해 비롯되는 만족감이 너무도 황홀했다.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기에는 너무도 날카로운 쾌감이었다. 고양된 흥분에 쾌락에 솔직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다.

    혀가 뒤엉켰다. 촉촉하게 젖은 혀와 음란하게 비벼지는 하체가 적나라했다. 다시 흥분한 그의 페니스와 효원의 페니스가 옷감 너머로 부딪쳤다. 얇은 옷에 가려진 서로의 페니스는 단단했다. 그가 섹스를 하듯 허리를 튕기자 효원의 입술에서 신음이 터질 것 같았다. 효원은 입술을 아득 물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두 사람의 몸이 이렇듯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불꽃이 튀었다. 서범익은 입술을 떼어 내고 육욕에 젖은 눈빛으로 효원의 바라봤다.

    “한 달 후, 다음 러트를 기대해. 네 모든 것을 가질 테니까.”

    * * *

    클럽 밖으로 나오자 효원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 겨울이 되지 않았는데, 손등이 시렸다. 효원이 떠는 모습을 본 남 비서가 니트 소재의 부드러운 겉옷을 내밀었다. 효원은 그를 향해 눈가를 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아우터를 걸쳤다.

    잠시 후, 검은 롤스로이스가 호텔 뒷문으로 정차했다. 효원은 머뭇거리더니 뒷좌석에 탔다. 탁, 문이 닫히자 롤스로이스는 빠르게 클럽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뒤늦게 클럽에서 뛰어나온 유준태는 멀어져 가는 롤스로이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손에는 효원이 두고 간 가방이 있었다. 유준태는 효원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만, 메신저로 메시지가 들어왔다.

    [교수님 죄송해요. 몸이 안 좋아서 먼저 집에 갈게요. 가방은 학교로 가져와 주세요.]

    * * *

    효원의 일탈 아닌 일탈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도망치듯 클럽을 나와 서범익의 차를 탔다. 그리고 현재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효원은 차장에 비치는 서범익을 바라봤다. 그는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좀 전에 짐승처럼 달려들어 키스하던 남자가 맞을까 싶을 만큼 차분했다.

    ‘두 얼굴을 지닌 남자야, 뭐야? 하긴, 흥분했을 때와 평상시는 어쩌면 저렇게 다르지?’

    그는 과연 기억할까? 10년 전 열두 살 꼬맹이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효원은 10년 전을 떠올렸다. 당숙의 도움으로 처음 후원을 받기로 한 날, 그의 집에 아버지와 함께 갔다. 어른들은 효원을 정원에 두고 안채로 들어갔고, 효원은 저택을 구경했다. 커다란 저택에 펼쳐진 넓은 정원에는 꽃과 나무가 가득했다.

    수영장도 있었고 정원에도 홈 바가 따로 있었다. 어린 마음에 집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 쪼르르 그곳으로 뛰어가 수영장을 쳐다봤다. 주위를 휘휘 둘러도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와, 깨끗해…….’

    효원은 싱글벙글 웃으며 수영장 안을 들여다봤다. 그때, 뒤통수가 갑자기 아파 옴과 동시에 몸이 수영장 안으로 풍덩 빠져 버렸다. 아무런 준비 없이 수영장에 빠진 효원은 괴로워했다.

    깊은 곳에 빠졌는지 수영장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이 저린 것도 모르고 수영장을 바라봤던 효원은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물에 빠져 죽을까 봐 몹시도 겁이 났다. 숨이 가빠지며 물 속에 잠기려던 순간,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효원의 몸을 잡아끌어 위로 올렸다.

    상대가 웃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가 장난을 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장난에 당한 효원은 눈앞이 가물가물했다.

    그는 효원이 숨을 제대로 못 쉬자 그때야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인공호흡을 했다. 입술에 닿은 타인의 입술은 몹시도 부드러웠다. 동시에 향긋한 냄새가 입 안으로 들어왔다.

    효원은 까마득히 오래된 옛 추억을 끄집어내다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차창을 바라봤다. 그 차창에서 그와 시선이 얽혔다. 언제부터 저를 봤던 것인지, 어느새 그는 턱을 괴고 효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효원은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가 손을 내밀어 효원의 턱을 잡았다.

    “내 시선 피하지 마.”

    “…제 마음이에요.”

    “나와 있을 땐 나만 봐.”

    “계약서에는 없는 조건인데요.”

    “그건 아버지랑 한 거고, 계약을 추가하지.”

    “됐거든요. 거기에 사인하지 않을 겁니다.”

    효원은 팽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자 서범익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뭐야?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겠지? 그가 웃었어?’

    슬쩍 고개를 돌리자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없었다. 그저 평소와 같은 차가운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신경 끄자… 신경 꺼…….

    효원은 피곤함이 밀려왔다. 적당히 올라온 취기와 따뜻한 차 안에 꾸벅꾸벅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효원은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자 서범익의 고개가 효원에게 돌아왔다.

    서범익은 효원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잡아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그러자 효원은 편한 듯 서범익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서범익의 눈이 가늘게 접히며 입가에 설핏 미소가 걸렸으나, 곧바로 사라졌다.

    백미러를 통해 제 모습을 관찰하는 남 비서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서범익은 남 비서를 쳐다보며 굵고 낮은 톤으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 쓸데없는 말 흘리지 마. 그저 쉬게 하는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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