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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늪-6화 (6/40)
  • chapter 6

    #06

    효원이 다니는 대학은 서울미대였다. 한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미대로 실력도 실력이지만 등록금이 비싸기로도 소문이 자자했다. 국내 사립대에서 가장 비싼지라, 종종 실력이 뛰어나도 다른 학교를 선택하는 지망생들도 있을 정도였다.

    효원도 돈이 없어 국립을 선택하려던 찰나, JK 그룹에서 효원에게 더 큰 후원을 해 주었다. 모두 서 회장의 도움이었다.

    참,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지…….

    후원을 받던 학생이 어느덧 자라 그의 아들의 정부가 되었으니까…….

    효원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공동 작업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곳에는 교수님이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교수님?”

    “늦었네. 난 오늘도 너 여기서 그림 그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장신의 미남이 효원에게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효원도 그에게 미소로 화답을 했다.

    “아, 그랬어요?”

    그는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유준태였다. 그는 이미 성인이 되기 전에 국내에서 유명한 화가였다. 그런 유준태는 어린 시절부터 효원의 롤모델이었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 효원은 전시회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다. 그는 주로 명암을 적절히 조화롭게 사용해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렸는데, 그 그림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어린 눈을 사로잡았고 효원은 자연스럽게 그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의 그림에 매료가 되어 화폭의 기법을 따라 그리기도 했다.

    그런 화가가 자신의 지도 교수라는 소식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그런 효원의 마음을 알았는지 태준도 다른 동기들에 비해 효원을 아꼈다. 교수와 제자 사이지만, 어떤 때는 형제처럼 편하게 지내기도 했다.

    “커피 아직이지? 너 좋아하는 거로 사 왔어.”

    “감사합니다. 교수님. 제가 사 드려야 하는데요…….”

    “학생이 돈이 어디 있어? 그런데 얼굴이 왜 이래? 너 또 밤샘 알바 했어?”

    그가 효원의 얼굴이 까칠한 것을 보더니 혀를 찼다. 그는 파스가 붙은 효원의 목을 보고 손을 내밀어 만지려고 했다. 효원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림 그렸어요.”

    “그래? 그럼, 그래야지. 곧 미술 공모전이 시작될 텐데. 그림에 올인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효원이 밝게 웃자 유준태가 효원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커다란 손이 효원의 두피를 가볍게 마사지했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제 우상은 간혹 스승보다 옆집 형 같았다. 그는 효원의 고민 상담도 자주 들어줬기에 더더욱 친했다. 효원이 가까이 지내는 알파는 그가 유일했다.

    물론 그는 효원이 오메라가는 사실을 모른다. 평소에는 억제제를 먹어 숨겼고, 히트사이클 시기에는 이런저런 핑계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효원이 베타라고 말했을 때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유준태는 유준태 대로 가난한 화가 지망생인 효원을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다른 학생들도 지도하지만 효원에게 신경을 더 많이 썼다. 재능도 있었고, 힘든 생활에도 밝은 모습을 보이는 효원이 대견스러웠다.

    “시작해.”

    “네.”

    효원은 붓을 잡고 팔레트에 몇 가지 물감을 짜 마음에 드는 색을 만들어 냈다. 이윽고 효원은 캔버스에 붓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유준태는 뒤에서 묵묵히 효원의 그림을 쳐다봤다.

    효원은 괜스레 목 뒤가 뻑뻑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그의 시선이 캔버스가 아닌 자신에게 향한 것 같았다.

    서범임과 섹스를 하고 와서인지 평소와 달리 알파가 의식이 되는 걸 보니 저도 조금 이상해진 모양이다.

    그림에 집중하던 효원은 잠시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등 뒤로 유준태의 가슴이 닿았고, 그가 입을 열었다.

    바로 옆에서 그가 말을 하자 따뜻한 바람이 귓가에 닿았다. 효원은 흠칫 놀랐지만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그가 앞으로 팔을 뻗어서이기도 하지만 고개를 돌리면 그의 입술이 닿을 것처럼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효원의 캔버스를 가리켰다.

    “여기, 이곳에 색이 죽었어. 여기를 봐, 빛이 빠지는 곳, 다른 사람들도 많이 실수하는 곳이 바로 여기야. 음영에 너무 신경 쓰니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하지 못하잖아? 네 그림은 빛이 주제가 되어야 해. 어둠보다 빛을 강조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말했는데…….”

    “죄, 죄송해요. 여기요?”

    “아니, 거기 말고. 힘이 너무 들어갔어.”

    붓에 힘을 줬더니 색이 강해졌다. 유준태는 효원의 손을 잡은 채로 붓을 터치했다. 손에 힘을 빼 보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그는 효원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터치했다. 효원은 그의 손에 이끌려 터치 감각을 느꼈다.

    몇 번을 같은 동작으로 터치를 했더니 어렴풋이 감이 왔다. 그가 손을 떼자 효원의 손등에 그의 땀이 묻었다. 효원은 그의 땀이 묻은 손등을 무의식적으로 바지에 닦았다.

    그러자 준태의 매서운 눈초리가 효원을 훑었다가 다시 캔버스를 향했다.

    “다시 시작해야겠다. 처음부터 다시 그려 봐.”

    * * *

    얼마나 그렸을까? 한 네 시간을 꼼짝도 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았다. 효원은 집중하기 시작하면 주변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않아 시간이 이렇게 흐른 지도 몰랐다. 효원은 어느덧 붉은 노을로 인해 붉게 물드는 작업실을 보며 깜짝 놀랐다.

    그제야 뒤늦게 졸음이 쏟아졌다. 밤새도록 섹스를 한 몸으로 작업에 몰두까지 해서인지 더욱 피곤한 것 같았다.

    효원은 주위를 살펴봤다. 혼자였다. 좀 전까지 다른 동기들도 함께 그림을 그렸는데, 다들 어디로 간 걸까?

    효원은 붓을 내려놓고 뻑뻑한 손등을 주물렀다.

    ‘아파…….’

    오늘 아침에 넘어지며 손목을 접질린 것 같았는데, 그 손으로 그림 작업까지 했더니 손목이 찌릿찌릿했다. 효원은 가방에서 손목 보호대를 꺼내 손목에 감았다. 그리고 작업실 한쪽에 마련된 소파에 몸을 뉘었다. 눈꺼풀이 감겼다. 어느덧 효원은 고른 숨소리가 나오며 잠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유준태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쇼핑백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유준태는 쇼핑백을 탁자 위에 올려 둔 후 효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은근슬쩍 손을 들어 그의 입술을 만지려던 순간, 잠시 자리를 비웠던 학생들이 들어왔다. 재빨리 몸을 돌린 유준태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 * *

    시끌시끌한 소리에 눈을 뜨니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효원을 보더니 과대가 손을 흔들었다.

    “밥 먹어.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렇게 떠드는데도 잘 자냐?”

    “네, 우혁 선배.”

    “교수님께 인사해. 우리는 얻어먹는 거야.”

    한 쪽에서 유준태도 식사를 하고 있었다. 효원은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합석을 했다. 그때, 우혁 앞에 있던 승주 선배가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했다.

    “스트레스 쌓여 죽을 거 같아. 안 그러냐?”

    “나도야.”

    “술 마신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나고, 섹스는 또 언제 했는지 잊어버렸어. 아무래도 이거 필요 없는 거 같은데 떼어 낼까 봐.”

    “푸하하하. 에이, 선배가? 퍽이나!”

    남자들만 있어서인지 야한 농담이 오고 갔다. 그러다가 미술 공모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들 미술 공모전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지 고민들이 많았다.

    “아, 모르겠다~! 그나저나 불금인데 작업실에 처박혀 있기 싫다. 우리 오랜만에 클럽이나 갈까?”

    승주의 말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크, 클럽?”

    “나, 우리 형에게 카드 받았지롱. 클럽 아테네야!”

    “뭐? 아, 아테네? 거기 엄청 비싼 곳 아니야? 회원제로 운영된다던데? 너희 형도 거기 회원이야?”

    “당연하지. 우리 형 **그룹 상무 된 후로 아버지가 특별히 가입시켜 줬다는 거 아니냐? 난 졸업해도 안 주는데…….”

    승주가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그도 나중에 받을 것이 분명했다. 나름 알려진 재벌가 3세였으니까. 이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도 또 서열이 나뉘지만…….

    “나도, 안 주던데?”

    “자고로 인맥은 상위 3%가 찾는 클럽에서 이어 나가야 하는데, 아직 똥오줌 못 가린다고 안 된데.”

    “언제 가 보냐, 이런 곳.”

    “오늘.”

    유준태가 입을 열었다. 학생들은 놀라운 듯이 그를 바라봤다.

    “교, 교수님 정말이에요? 가도 되나요?”

    “너희들 성인이야. 술 마시는 게 어때서? 사실 나도 그곳 회원이거든.”

    “우와! 정말요? 그, 그럼 우리 좀 구경시켜 주세요.”

    “미친 새끼. 애냐, 구경시켜 주게? 클럽이 다 거기서 거기지… 촌스럽게 굴긴…….”

    우혁이 승주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러자 남자들이 깔깔 웃었다.

    “그냥, 클럽이야. 별다를 것 없지. 물론 알파와 오메가들이 주로 오는 곳이기도 하지만.”

    “알파, 오메가요? 저는 베타인데 괜찮아요?”

    “사람이면 돼.”

    “풉. 네, 그럼요! 저 사람입니다. 하하하.”

    유준태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알파와 오메가들이 주로 오는 클럽이라니, 뭔가 남다를 것 같긴 했다. 더군다나 상위 3%의 재벌들이 다니는 클럽은 일반적인 클럽과도 다를 것 같았다.

    “자고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해야지. 난 꽉 막힌 교수가 아니니까.”

    “역시! 우리 교수님은 멋져요! 네, 교수님 말썽 안 부리고 술 마실게요. 그리고… 여자도 만나도 되겠죠?”

    “서로 눈이 맞아서 원나잇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 단, 합의해야 해.”

    “네! 그럼요! 아싸! 엄청 예쁜 여자들 많을 거야. 하하하.”

    잔뜩 신이 난 남자들은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나가기 시작했다. 어째, 분위기가 효원도 가야 할 것 같은데 몸이 피곤한 터라 딱히 당기지가 않았다.

    몰래 빠지려고 생각하는 사이 과대 우혁이 효원에게 못을 박았다. 오랜만에 술자리이니 빠지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한 말투였다. 효원은 당황스러웠다.

    당장 입고 갈 옷도 없는데… 그런 곳에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없잖아?

    그때 효원의 마음을 읽은 듯 준태가 말을 건넸다.

    “옷 빌려줄게. 내 동생이 너와 비슷한 체구거든.”

    * * *

    잔잔한 음악과 함께 어두운 조명이 쏟아졌다. 이제는 더는 오메가를 찾을 필요가 없을 듯했다. 어제 치밀었던 고통은 말끔히 사라졌다. 정말 감쪽같았다.

    그렇게 아팠던 것이 어떻게 하루 만에 싹 사라질 수 있는 거지?

    러트사이클을 힘겹게 보내고 나면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기에 이런 경험은 생소했다.

    서범익은 술을 들이켰다. 알싸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뜨겁게 내려왔다. 그러자 바로 촉촉이 젖은 눈길로 저를 보던 효원이 생각났다. 예쁜 목소리로 신음을 지르던 목소리와 쾌감에 떨던 몸도 떠올랐다.

    처음에는 반쯤 정신이 흐릿해 꿈으로 생각했는데, 몇 번 정액을 토하자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정신이 들었을 때 자신은 남자의 구멍에 페니스를 박고 헉헉거리며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소스라치게 떨었지만 놀란 건 그게 다였다. 그 이후엔 오직 쾌감을 쫓아 피스톤 운동을 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예쁜 오메가의 입술을 빨고 애무했다.

    거부감? 그런 건 없었다. 그에게 수치심을 주고 두 번이나 거절한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젠장… 거부했던 게 무색하네.’

    서범익의 러트사이클이 처음으로 편하게 끝났다. 이제 다음 러트사이클이 오기 전까지 오메가를 안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효원이 자꾸 생각났다. 오늘 하루 종일 그의 얼굴이 떠나지 않았기에 당황스러웠다. 아침에도 봤는데 왜 또 생각이 나는지…….

    뭐지? 이건 또 다른 부작용인가?

    서범익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그의 친구들이 룸으로 들어왔다.

    “어이, 서범익 오늘은 웬일이야? 네가 클럽에도 오고? 일 안 바쁘냐?”

    “나라고 일만 하겠어? 머리를 식혀야지.”

    혼자 있던 있어 조용했던 룸이 금세 시끌시끌해졌다. 이미 그들이 오기 전에 혼자서 많이 마신 터라 여기저기 술병이 뒹굴고 독한 양주도 더러 보였다.

    “혼자 다 마신 거야? 완전 괴물이야. 하하하. 역시, 우성 알파는 달라도 달라!”

    “앞으로 JK 그룹은 세계 경제에서 더 주목받는 거 아니야?”

    “알파면 다 알파지, 우성 알파라고 다를 거 같아?”

    우성 알파가 되면 오메가를 안을 수 없고 고통에 시달린다는 말을 목 끝까지 나왔으나 참아 눌렀다. 전 세계 3% 미만의 우성 알파가 다 저 같은 현상을 겪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억제제가 들지 않는 거나 오메가 페로몬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그저 자신의 운이 나쁜 것일 뿐이었다.

    서범익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효원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서범익은 사각 탁자에 둘러앉은 친구들을 바라봤다. 그중에 몇몇 알파 녀석은 오메가 연인을 옆에 끼고 있었다. 그중에 남남 커플도 보였다. 그것을 본 서범익의 미간이 구겨졌다.

    남자 오메가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지만, 둘이 눈만 마주치면 키스를 해 댔기 때문이다. 적나라하게 혀를 섞고 서로의 몸을 만졌다. 오메가 녀석이 평소와 달리 더 흥분한 걸 보니 곧 히트사이클이 터질 것 같았다.

    히트사이클이라…….

    그저 궁금증에 그를 바라봤을 뿐인데, 그는 자신의 연인과 키스하는 중에도 서범익을 힐끔힐끔 보며 페로몬을 날렸다.

    그러자 바로 역한 냄새가 느껴졌다. 서범익은 그 냄새를 지우려 술을 털어 넣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냄새는 달콤했지…….’

    잠시 자리를 비웠던 녀석이 들어왔다. 그는 몹시도 흥분한 얼굴로 1층 손님을 품평했다.

    “세상에. 엄청난 녀석이 등장했는걸? 처음 보는 얼굴이던데, 어느 집 아들이지?”

    “아, 아까 그 남자? 오메가인지 베타인지 헷갈리는 녀석 말이지?”

    “응! 역시 너도 봤냐? 내가 느끼기에는 오메가 같은데… 난 오늘 러트도 아닌데 바짝 설 뻔했잖아?”

    “에이, 그렇게 생긴 녀석이라면 연인이 있겠지. 괜스레 찝쩍거리다 치정 사건에 휘말리지 마.”

    “하긴, 오늘 새로 온 알파 녀석들도 많더라. 다 촌스럽던데, 뭐야? 어디서 단체 패키지라도 왔나?”

    서범익의 귀가 솔깃했다. 간혹 이곳에 술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가족이나 지인의 카드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범익은 술을 마시면서도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섹시해?”

    “응, 피부가 탱탱하고 뽀얀 것이, 아주 내 스타일이야. 특히 그 연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가 매력적이던데? 더군다나 야리야리한 몸이 막 올라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면 이해하겠냐? 생긴 건 딱 단아한 스타일인데 아주 입맛 당겨! 술을 마시며 멍하니 보고만 있는데도 사람이 막 빠져들어 버리더라. 춤을 추다 나도 모르게 그 남자만 보고 있었다니까.”

    다른 녀석이 이야기에 불씨를 붙였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생김새가 어째,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와 계약한 그 남자, 이효원…….

    “재영 건설 유준태와 노는 놈이라면 뻔하지. 바짝 붙어 있는 걸 보니 냄새가 풀풀 나던데?”

    “아무튼, 참 재주도 좋단 말이야? 어떻게 저런 보물을 귀신같이 찾아서 사귀지? 오늘의 표적은 딱 저 오메가 같은데. 하하하.”

    유준태라는 이름에 서범익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재영 건설과 JK 그룹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케케묵은 감정이 부모 세대부터 엮여 있기에 자연스럽게 자식들끼리도 날을 세웠다.

    “예전에 트위터질을 할 때부터 구역질 났어. 관종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팬티에 반쯤 벗은 알몸까지 올리며 복근 근육 자랑을 하냐?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업로드를 하는데… 모두 돈 자랑이었잖아? 교수라는 놈의 인성이 관종에 자뻑 왕자라니. 사방에 소문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솔직히 실력보다 돈으로 교수된 거 그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말이야. 아마도 그 새끼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 그 대학에 다니는 오메가를 먹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거야.”

    “그러고도 남지.”

    이야기는 점점 유준태가 오늘 처음 클럽에 데리고 온 남자와 원나잇을 하는 것으로 흘러갔다. 왠지 슬슬 신경질이 났다. 유준태가 찍은 오메가가 보고 싶었다.

    “유준태가 찍은 놈이라 이거지?”

    서범익은 괜스레 신경이 거슬렸다. 서범익이 몸을 일으키자 친구들이 그를 바라봤다. 갈무리하지 못한 기운이 방에 퍼지자 알파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어어… 너, 러트사이클이야?”

    “지났어.”

    “그런데 아직도 흐르는데? 뭐야, 아직 덜 풀린 거 아니야?”

    “그럴지도, 어제 했는데도 모자라는 거 같아.”

    “빨리 가. 어서 가서 풀어. 그 기운 살벌하다. 살 떨려…….”

    때마침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서범익은 룸을 나가 중앙홀을 쳐다봤다. 2층에서 1층을 바라보는데 바로 한 사람이 눈에 와 박혔다. 서범익의 눈이 치켜뜨였다.

    유준태와 웃고 떠드는 녀석은 오늘 새벽까지 저와 뒹굴던 남자였다. 그걸 인식한 서범익의 눈이 불타오르듯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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