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 에스퍼 133화
과거 같은 일을 한 적이 있는 주현은 도경의 상황을 곧장 이해했다. 아이들이 이런 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이 끔찍했다. 만약 도경이 경찰에게 잡힌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열세 살 주제에 범죄에 손을 댄 싹수가 노란 어린애로 볼 것이다. 애초부터 다른 선택권 따위는 없었는데도.
“그거, 심부름?”
도경이 가방을 조금 더 강하게 안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이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갔다. 손바닥에 묻은 피를 옷에 문지른 그가 도경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아까 쫓기던 거 봤어. 같이 가 줄게.”
고개를 든 도경이 희미한 기쁨을 담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잡히는 어깨가 너무나도 작아서 마음이 아팠다.
주현이 봄, 승철과의 뽑기에서 뽑은 종이에는 ‘복제 에스퍼’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일. 너무나도 막막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차에 주현은 우연히 아이들과 만나게 되었다.
쓰레기장의 주민답게 경계심이 강한 아이들은 주변 소문에 민감하다. 어른과는 달리 서로를 진심으로 의지하기에 정보 공유도 비교적 활발하고, 아이를 경계하지 않는 이가 많기에 정보의 질도 의외로 좋다.
바로 그런 이유로 주현은 아이들이 휴식처로 삼는 창고에 자리를 차지하고서 뻔뻔하게 순진한 애들 틈으로 끼어들었다.
의외로 이 작전은 성공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방대하고 자세한 정보를 많이 얻은 것이다. 문제는…….
‘너무 정이 들어 버렸어.’
주현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모르는 도경이 주현의 손을 꽉 잡은 채 묘하게 들뜬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연장자에 속하는 터라 어리광을 자주 부리지 않는 아이가 제 나이답게 구는 게 기꺼웠다.
세상에 상처받고 삶이 팍팍한 와중에도 아이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떠올라 있다. 그런 어린 얼굴을 보고 있자면 주현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불쑥 치밀어 오른다.
<동백 아동 보호소>. 영원히 행복할 거라 생각했던 순진한 열네 살의 신주현은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비참한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형?”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준 주현이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손가락을 열었다. 그럼에도 떨어지지 않는 아이의 온기가 기꺼웠다.
‘……제 가족을 두 번이나 죽인 기분이 어때요?’
그는 그리워할 자격조차 없다.
* * *
“이걸로 끝이야. 고마워. 형 덕분에 잘 끝냈어.”
도경이 기분 좋게 웃었다. 마약 배달을 무사히 마쳤다고 기뻐하는 열세 살. 쓰라린 현실이지만 주현에게는 바꿀 힘이 없다. 그래서 그는 그냥 따라 웃곤 다시금 도경의 손을 잡았다.
“집에 데려다줄게.”
잡힌 손을 조금 쑥스럽게 보던 도경이 순순히 주현을 따라 걸었다. 멀쩡한 가로등이 드문 탓에 골목은 무척 어두웠다. 하지만 예민한 감각을 가진 에스퍼와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에게는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았다.
도경의 안내를 따라 걷던 주현이 슬쩍 입을 열었다.
“배달은 매일 하는 거야?”
“아니. 월요일이랑 목요일에만 해. 다른 날에도 오라고 한 적 있긴 한데, 한두 번밖에 없어.”
월요일과 목요일. 어딘가 익숙한 요일에 주현이 머릿속을 뒤졌다.
협회에서 제공한 정보 중 마약이 들어온다고 의심되는 곳 중 하나가 쓰레기장 북쪽에 있는 항구였다. 항구에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마다 정박하는 배가 의심스럽다고.
주현은 도경을 내려다보았다. 설령 조직이 소탕된다 해도 잔심부름이나 하던 어린애까지 수사망에 들어가지는 않을 터다. 애초에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 알아서 몸 사릴 줄도 알 거고.
“아, 그런데 최근에 양이 줄었어. 원래 이런 가방 두 개는 되거든.”
“……언제부터?”
“한, 6개월 됐나? 딜러가 두 명이나 거래를 끊었다고 아저씨가 길길이 날뛰어서 기억나.”
보고서에서 새로운 마약이 떠돌기 시작했다는 시기와 얼추 비슷했다. 협회에서 맡긴 마약 조사 임무는 봄의 일이었으나, 어차피 세 개의 임무를 모두 마쳐야 돌아갈 수 있으니 주현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거기다 승철이 맡은 ‘쓰레기장의 복지 현황 조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였다. 안 그래도 거지 같던 쓰레기장이 마약으로 인해 더더욱 나락에 빠져들고 있으니까.
감사의 의미를 담아 도경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자 아이가 영문도 모른 채 웃었다.
언제 어디서 깡패나 강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쓰레기장에 있는데도 마음이 평온했다. 예언을 듣지 못했다면 감히 아이들 틈에서 느긋하게 누워 있지 못했을 터다. 그는 악취가 스민 공기를 들이마셨다.
주현은 이곳에서 폭주하지 않는다. 그가 죽는 곳은 노란 하늘이 펼쳐진, 괴물이 가득한 게이트 너머니까.
“그, 그만해!”
저도 모르게 거칠게 머리를 쓰다듬은 주현이 손을 떼어 냈다. 원래 헝클어져 있던 머리가 더욱 산발이 되었다. 도경은 툴툴거렸으나 진심으로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좀 더 걷자 손을 놓은 도경이 후다닥 달려 골목 안쪽 벽에 붙은 철문을 가리켰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그래?”
“응!”
주현이 고개를 들었다. 대략 6층 정도로 보이는 건물은 쓰레기장이 아닌 다른 동네에 있었다면 안전 혹은 거리 미관 등을 이유로 철거 명령이 내려질 만한 모양새였다.
조금 더 시선을 올리자 건너편 건물과 연결된 정체 모를 전선들이 까만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좀 엉성하기는 해도 당장 와르르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았다.
“도경아, 뭐 해?”
“쉿.”
녹슨 철문에 귀를 가져다 댄 채 집중하던 도경인 2분이 지난 후에야 몸을 떨어뜨렸다. 표정이 제법 밝았다.
“오늘은 아무도 없으니까 들어가도 돼.”
“평소에는 누가 있어?”
“주정뱅이 아저씨.”
어린 목소리에는 혐오가 가득했다. 이곳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술 없이도 무서웠던 부모를 가진 주현은 위로도 동정도 하지 못하고 도경을 따라 철문으로 들어갔다.
비좁고 지저분한 집 안은 서늘했다. 도경은 익숙하게 돌아다니며 손님이랍시고 주현에게 물 한 잔을 내왔다. 컵에 묻은 얼룩을 지적하지 않은 주현이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걸 입에 담았다.
“혼자 있으면 위험하지 않아?”
쓰레기장에서는 누구나 범죄의 타깃이 되지만, 홀로 있는 어린애, 특히나 마약 운반으로 먹고사는 어린애는 더더욱 나쁜 놈들의 눈길을 끌 게 분명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도경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고개 저었다.
“괜찮아. 옆집에 엄청 강한 에스퍼 아저씨가 살아서 이 근처를 건드는 사람은 거의 없어.”
“에스퍼 아저씨?”
“응. 무섭게 생겼는데 나 괴롭히지는 않아.”
“그렇구나. 무슨 능력인지 알아?”
쓰레기장에 사는 에스퍼는 당연하게도 협회의 눈을 피해 숨어든, 걸어 다니는 불법이다. 범죄자, 게이트와 괴물이 두려워진 자, 협회와 뜻이 맞지 않는 자. 다양한 사정이 있으나 협회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잡아넣어야 할 범법자에 불과하다.
협회의 사냥개인 주현은 그 아저씨를 잡아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잠입 임무 중이고, 어떤 사람을 봤든 임무가 최우선이다. 괜히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다만, 쓰레기장에서 제대로 된 가이딩을 받기란 요원한 일이다. 혹여나 폭주라도 했다가 도경과 다른 주민이 휘말릴까 걱정스러웠다.
“으음, 정확히는 몰라. 그래도 강하기는 진짜 강해. 저번에 철물점 앞 거리에서 5대1로 싸웠는데 순식간에 쓰러뜨렸다니까?”
“그래?”
철물점 주인은 무슨 죄가 있나. 떠오른 생각을 굳이 입에 담지 않은 주현이 더 말해 보라는 듯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에 신난 도경이 사소한 일화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반 이상이 과장이었으나 웃는 얼굴을 보는 게 기분 좋았기에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맨날 집에만 있고, 일도 안 하는데 돈이 많아. 지갑에 현금이 가득해. 저번에 한 번 훔쳤…… 어쩌다가 봤어.”
도경은 마치 잘못한 걸 아는 강아지처럼 주현을 힐끔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주현은 설령 도경이 은행을 털었어도 개의치 않지만, 그렇다고 범죄를 옹호하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양심이 저리는 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어떤 능력인지 궁금하네. 아저씨는 혼자 살아?”
“결혼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같이 사는 누나가 있어. 착해. 가끔 먹을 거 나눠 주고.”
주현은 그 사람이 가이드이길 바랐다. 그렇다면 도경을 포함한 근처 주민들이 더욱 안전할 테니까.
‘……가이드.’
순간 떠오르는 얼굴을 애써 털어 냈다. 지금은 임무에 집중할 시간이다.
이야깃거리를 고르듯 턱을 긁으며 고심하던 도경이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신기한 일 있었어! 옆집 누나가 쿠키 구웠다고 나한테 가져다준 적이 있었는데, 그날 저녁에 아버지가 접시를 던져서 깨졌거든? 근데 며칠 후에 누나가 빵 구웠다고 또 나눠 줬는데, 접시가 전에 받았던 거랑 똑같았어.”
“세트로 여러 개 샀나 보지.”
“그게 아니라 작은 흠집까지 똑같았다니까? 쿠키 가루 주워 먹느라 확실하게 봐서 기억한단 말이야. 금 간 거랑 이 빠진 것도 완전히 같았어.”
주현이 찰나의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곧장 아무렇지 않게 물을 마시는 얼굴은 머릿속과는 달리 평온했다.
‘설마,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