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 에스퍼 108화
A동으로 가는 길은 의외로 조용했다. 혹시 모를 산소 부족에 대비해 창문을 조금 연 채로 달리며 괴물의 부리를 매만지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갔다가 폭주하면 어쩌지, 누군가 다치면 어쩌지, 죽으면 어쩌지, 또 죽어 버리면, 또 죽여 버리면 어쩌지.
대체로 비슷한 고민이었다. 초조하게 손가락을 말아 쥐던 주현은 오른손의 화상 상처를 응시했다. A동에는 유치원에서 많이 견학 온다던데, 흉하게 녹은 살갗을 보고 놀랄지도 모른다.
스카프로 손을 감싸던 주현은 문득 이게 없으면 흉측한 초커를 가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쇠로 된 튼튼한 목줄을 만천하에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해야 둘 다 가려질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손길이 멈춘 게 불만이었는지 방어막 안에서 불사조가 날개를 펄럭였다. 그리고 주현의 손을 부리로 물었는데, 하필이면 스카프를 물고 잡아당겼다.
“잠깐-”
화르르, 스카프에 불이 붙었다. 재빨리 잡아당겼지만 손에 잡힌 스카프는 절반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폭주 에스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타다 만 조각을 응시하던 주현은 멍하게 고개를 들었다가 백미러를 통해 직원과 시선이 마주쳤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는지, 직원은 몸을 돌려 방탄유리 너머로 주현의 손에 들린 스카프를 봤다.
“아니, 하……. 그거 하나 관리 못 해? 넌 죽었다.”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손길이 신나 보이기까지 했다. 비록 처벌을 좀 받는다 해도 새로운 걸 받을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주현은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통화를 엿들었다.
“이 쓸모없는 자식이 중요한 때에 목줄 가리개를 태워 버렸는데 어떻게 할까요?”
목줄 가리개. 괜히 초커를 만지작거리자 끼이- 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은 얌전한 몸짓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잘못을 사과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설핏 웃은 주현이 남은 조각을 손가락에 감싸 부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무슨 처벌을- 네? ……네. 알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듯 뚱한 표정의 직원이 전화를 끊고는 퉁명스레 말했다.
“그냥 그대로 들어가라신다. 목줄이 보여야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지 않겠냐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초커는 주현에게 있어서 죄의 상징이었다.
‘위험한 괴물에게 안전장치를 해 두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나. 목줄이 있으므로 너는 개와 다를 바 없다. 그걸 잊지 마라.’
낮고 조롱 섞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말투도 목소리도 태석이 틀림없었으나, 주현은 저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비슷한 말은 몇 번 했어도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지끈거림을 억누르기 위해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주현이 시트에 등을 기댔다. 몸에 남은 재로 차가 더러워지겠지만, 그건 주현이 알 바 아니었다.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속도 모른 채 지나가는 창밖 풍경에 속이 탔다. 하지만 주현은 그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끼이…….]
이 아름다운 불사조는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하게 될까. 그걸 생각하니 어떻게든 떼어 놓고 왔어야 했나 다시금 후회가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후회해도 일은 이미 벌어졌다. 폭주는 일어났고, 괴물은 게이트를 벗어났다. 전부 주현의 손을 떠난 일이었다.
“어이, 도착했다. 참 나, 이 상황에서 태평하게 잠이나 처자다니. 쯧!”
번쩍 눈을 뜬 주현은 기억나지 않는 악몽을 잠시 헤매다 곧 정신을 차렸다. 짙게 선팅된 창문 너머에는 거대한 건물이 서 있었다. 분명 예전에 임무로 와 본 적 있건만 이상하게도 그때보다 훨씬 큰 위압감이 느껴졌다. 오늘은 스스로를 숨기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직원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손가락을 말아 쥐고 있자니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바라본 창밖에는 누군가의 주먹 쥔 손가락이 있었다.
“뭐 해? 안 내리고.”
더듬거리며 문을 열고 내린 주현은 조금씩 다른 제복을 입은 에스퍼가 다섯 명이나 서 있는 것에 내심 놀라고 말았다. 만약 폭주가 일어난다면 다섯으로도 부족할지 모른다는 걸 생각하면 불쾌함을 느낄 수도 없었다.
“이걸로 괴물을 가려 주십시오.”
무뚝뚝한 인상의 키 큰 에스퍼가 내민 건 새까만 천이었다. 괴물을 밀반입했다는 걸 시민들에게 알릴 게 아니라면 가리는 게 당연했다. 그새 정이 들어서 녀석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으나 주현에게는 거부권이 없고, 최소한 괴물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된다.
[끼이-!]
“미안해.”
검은 천이 방어막 위로 덮였다. 역시나 괴물은 갑자기 어두워진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꺼내 달라고 난리를 쳤다.
기죽은 걸 티 내지 않기 위해 어깨에 힘을 주며 고개 든 순간, 긴 소매로 감싸인 팔이 불쑥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경계하며 물러선 주현은 갑자기 조용해진 울음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현도 작은 편은 아닌데 그보다 한 뼘은 더 커 보이는 에스퍼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제 능력입니다. 빛, 소리, 산소. 모든 걸 차단할 수 있죠.”
“……그렇다면 직접 운반하시면 되겠네요.”
공간을 차단해서 데려가면 모두가 편할 텐데. 그 생각이 표정이 드러났는지, 에스퍼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지속 시간이 짧습니다. 다시 능력을 거는 사이에 괴물이 탈출하기라도 하면 큰일이 일어날 겁니다.”
여전히 불만스러웠으나 주현은 더 말을 얹지 않았다. 얼마나 세세하게 능력을 조절할 수 있는지 모르는 이상, 산소가 차단되어 녀석이 비실비실해지는 건 주현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럼, 가시죠.”
남자의 손짓에 몰래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대기하던 에스퍼 네 명이 주현을 둘러싸며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치 팬에게서 연예인을 지키는 경호원과 비슷했으나, 실은 안으로부터 밖을 지킨다는 점에서 완전히 달랐다.
걸을 때마다 바닥으로 잿가루가 떨어졌다. 주현은 자신이 사람 꼴이기는 할지 궁금했다. 지저분하고 지친 얼굴과 더러운 옷 때문에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 못나 보일 게 분명했다.
세련되고 거대한 건물은 몇 번을 와도 적응되지 않았다. 특히나 사방에 사람이 가득하다는 점에서 A동은 주현에게 발도 들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어? 저 사람…….”
“어머! 진짜다!”
“왜? 뭔데?”
“저기 지나가는 사람, 폭주 에스퍼잖아!”
주현은 눈을 꾹 감았다. 절로 움츠러드는 어깨를 펼 수조차 없었다.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 입구와 로비에는 에스퍼 몇 명이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 서 있었다.
A동에는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에스퍼, 가이드, 그리고 일반인이 뒤섞인 채 곳곳에 널려 있었다.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쥐구멍이 있다면 기어들어 가서 평생 나오고 싶지 않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깨끗한 옷을 입은 사람들과 지저분한 주현. 상처 하나 없는 에스퍼와 흉터로 뒤덮인 폭주 에스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이들과 폭탄이 달린 목줄을 찬 신주현.
수치심은 분노와 함께 온다. 따라 나온 열등감이 가슴을 울렁이게 했고, 그의 커다란 자존심은 그 감정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신주현은 눈을 뜨고, 턱을 들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미 누군가의 손에 엉망으로 부서진 자존심이지만, 차인호가 아닌 사람에게까지 파편을 내줄 생각은 없었다. ‘협회에서 관리하는 미친개는 자주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많이들 구경하세요’. 원한다면 그리 외칠 수도 있었다.
“근데 목에 저거 뭐야?”
멀리서 들려온 속삭임은 마치 확성기로 외친 것처럼 주현의 귀에 박혀 들었다. 모멸감을 짓밟으며 주현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에스퍼를 따라 걸었다.
들어선 복도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장소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널찍하고 깨끗한 벽과 바닥을 보던 주현이 눈을 깜빡였다.
위험 속에서 살아온 주현은 등 뒤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사실이 두려울 정도로 불안했지만, 감히 에스퍼들에게 떨어져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불을 끄려는 소방관에게 그만 물 뿌리라고 외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거기다 주현은 그의 곁을 둘러싼 이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과장 좀 보태서 커다란 건물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목숨이 그들의 손에 달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주현이 폭주했을 때 빠르게 제압하지 못하면 어떤 피해로 이어질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부서지는 건물, 흐르는 피, 쓰러진 사람들.
“…….”
“안색이 안 좋군요. 임무 후 바로 왔다고 들었는데, 혹시 가이딩 수치가 많이 떨어졌습니까?”
키 큰 에스퍼의 말에 그를 둘러싼 이들의 몸에 더욱 힘이 들어가는 게 시야 끝에 잡혔다. 여기서 잘못 대답하면 순식간에 제압될 게 불 보듯 뻔했다.
“아뇨. 견딜 만합니다.”
“확실한 겁니까? 괜히 자존심 세우다 폭주하면 쉽게 안 끝난다는 건 알 거라 생각합니다만.”
“폭주하면 그때 가서 욕하세요.”
“그때는 너무 늦죠.”
두 에스퍼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눈을 빤히 바라보던 주현이 설핏 웃었다. 즐거움과 기쁨이라곤 한 톨도 담기지 않은 미소에 에스퍼의 미간이 약간이나마 구겨졌다.
“지금 가이딩 부족하다 하면 가이드라도 대령해 줄 겁니까?”
“…….”
“아니면 닥치고 각자 맡은 일이나 합시다. 죽어도 당신들 앞에서는 폭주 안 할 테니까.”
어느 정도 허세가 담기긴 했으나 주현은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비록 극악한 환경의 게이트에서 이틀을 보냈다고는 해도 능력을 많이 사용한 건 아니라 수치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