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장 (117/161)

14장 Red

주현은 자신이 이상해졌다는 걸 알고 있다. 잘 걷다가도 한순간 멍해져서 멈춰 서기 일쑤고, 정신 차리고 보면 날짜가 며칠씩 지나 있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현을 괴롭히는 건 기억의 부재였다. 정확히는 그가 여태껏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왔던 과거가 실은 조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게이트 DS-17에서 만난 괴물을 조사해 본 결과, 오직 사냥감의 머릿속을 뒤져 과거를 강제로 떠올리게 할 뿐이지 환각을 일으키는 능력은 없었다. 다시 말해, 괴물의 몸속에서 주현이 본 모든 것은 그의 뇌에 잠들어 있던 기억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난 것인가. 그 의문이 며칠째 주현을 성가시게 했다.

“채경이 형. 혹시 교육받고 나서 이상하다고 느낀 적 없어? ……기억이 바뀐 것 같다거나.”

둘밖에 없는 휴게실은 의미 없이 깔깔거리는 TV 속 연예인을 제외하면 조용했다. 낡은 소파에 웅크린 주현이 안대를 문지르며 묻자 화면을 응시하던 채경이 고개를 돌렸다. 까만 선글라스 때문에 주현을 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음, 그런 적이 있었나? 그냥 졸다 나온 기억밖에 없는데.”

턱을 문지르며 갸웃거리는 채경에 주현은 실망을 숨기며 소파에 푹 파묻혔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냥. 좀 오락가락한 기분이어서.”

입술을 달싹이던 채경은 이내 말을 삼키곤 주현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폭주 에스퍼 사이에서 주현이 받은 3주간의 ‘교육’을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말의 죄책감 때문인지, 혹은 이미 나 버린 상처를 구태여 건드릴 필요가 없다 생각했는지. 이유가 뭐든 상관없다. 동정받을 바엔 미움받는 게 훨씬 나은 주현이 하나뿐인 눈을 문질렀다. 어깨가 무거웠다.

그 후 주현은 채경뿐만 아니라 임무로 자리에 없는 봄을 제외한 나머지 동료, 세화와 승철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승철은 걱정스럽게 주현을 살폈고, 세화는 무슨 짓을 당한 거냐며 무서운 얼굴로 물었다.

“무슨 짓을 당하긴……. 요즘 좀 깜빡깜빡하는 기분이라 물은 것뿐이야.”

세화는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한 채 주현을 살피다가 이내 넘어가 준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은 안대에 닿는 시선을 모른 척하며 낡은 책을 펼쳤으나 집중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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