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12/161)

폭주 에스퍼 101화

잠시 놀란 듯 말이 없던 연우가 손을 뻗었다. 두 손이 맞닿았다. 타인과 손잡는 경험이 전무한 주현이 어색하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렸고, 연우가 따뜻한 손바닥으로 온기를 나눠 주었다.

아주 행복했던 감정이 미약하게나마 폭주 에스퍼가 된 주현에게도 밀려들었다. 그러나 주현은 인생에서 얼마 맛보지 못했던 평화로운 행복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했다.

‘기억에 혼동이 있는 건가?’

지금껏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림이 사실 잘못 끼워진 퍼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제껏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기억을 도려내서 자연스럽게 이어 붙인 사람은 누구고 목적이 뭘까.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저 되풀이된 추억이라는 걸 알면서도 놓기 힘들 정도로 현실감 있었다. 까딱하면 이대로 침몰해 잡아먹히는지도 모르는 채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현은 손을 빼내는 대신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이 순간을 알고 있었다. 물론 기억 속에 있는 장면이니 아는 게 당연하나, 문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데 있다.

반들반들한 손톱, 매끄러운 피부, 손가락에 있는 작은 굳은살. 크기는 다르지만 이건 분명…….

그냥 착각일 수도 있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사람 손이 다 거기서 거기지, 주현이 워낙 차인호가 아닌 사람과 느긋하게 손잡아 본 경험이 적어서 착각한 거라면 그보다 부끄러운 일은 없다.

괴물에게 먹혔다는 걸 깨달았을 때보다도 훨씬 빠르게 심장이 뛰었다. 주현은 자신이 기쁜지 분노했는지 구분하지 못했다. 다만 얼른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거는 솔직히 말해 벗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그립고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일 아침이 기대되었던 날들이니까.

거기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정체 모를 아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가 누구고, 왜 주현은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손에 들어올 터다.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결국 괴물에게 잡아먹혀서 거지 같고 불행한 내일조차 맞이할 수 없게 된다. 사실 그 자체로는 주현에게 어떠한 공포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당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어딘가에 끼인 듯한 왼손은 두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뒤덮은 줄기를 잡아당겼다. 작은 동작마저 힘들었으나 어떻게든 절반 이상 떨쳐 낼 수 있었고, 그제야 기억과 현실의 구분이 어느 정도 명확해졌다.

괴물의 몸 안에서 점액이 나왔는지 주현은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피부가 따끔거리지는 않는 걸 보아 다행히 소화액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주현의 안도와는 반대로 괴물은 사냥감의 반항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점액으로 뒤덮인 줄기가 주현의 몸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피하고 싶었으나 워낙 좁은 공간이라 벗어날 수 없었다.

“하아…….”

결국 능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한 주현이 어둠 속에서 눈을 번뜩인 순간이었다. 그를 감싼 공간이 크게 흔들렸다. 몸을 감싸고 움직이던 끈적한 줄기가 멈췄고, 사방이 조용해졌다.

퍽! 퍽! 괴물의 몸체 밖에서 묵직한 타격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그때마다 줄기들이 움찔거렸는데, 어쩌면 다른 괴물의 공격일지도 몰랐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꼴이 될 생각은 없는 주현이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진 몸으로 줄기를 뜯어냈다. 그 와중에도 둔탁한 타격음은 끊이지 않았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발로 어딘가를 디뎌 간신히 반쯤 몸을 일으킨 주현이 능력을 사용했다. 촥- 괴물의 몸이 안에서부터 반으로 찢어졌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흐물흐물 녹아내린 사체 속에서, 주현은 제법 큰 돌덩이를 머리 위로 치켜든 찬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울고 있었다. 눈물로 온 얼굴을 적시며 이를 악물고 거칠게 숨 쉬던 그는 돌덩이를 내던지고 주현에게 달려들었다. 멱살을 잡아채는 손은 불쌍할 정도로 달달 떨리고 있었다. 두려운 건지 화가 난 건지. 두 감정이 뒤섞인 얼굴로 찬휘가 외쳤다.

“널 구해 준 건 나야!”

“…….”

“난 약하지도 않고, 높은 등급 따위 없어도 잘난 사람이라고! 알겠어?!”

주현은 가만히 앉아 진흙과 땀으로 더러워진 찬휘를 응시했다. 초라한 겁쟁이가 얼마나 용기 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장찬휘는 신주현보다 나은 인간이다. 적어도 그는 자신의 단점과 마주 볼 용기가 있으니까.

“……그래. 알겠다.”

작은 중얼거림에 한참을 노려보던 찬휘가 물러났다. 그는 눈물과 함께 흘러나온 콧물을 소매로 닦으며 당당하게 섰다. 엉망진창에 꼴사나운 모습이었지만, 카메라 앞에서 억지웃음을 짓던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천천히 일어선 주현이 점액으로 끈적한 손을 가볍게 털었다. 기분은 나쁘지만 다친 곳은 없으니 임무는 계속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다행인 일이었다. 협회에 도움이 되는 건 주현에게 가장 중요한-

“얼빠져 있지 말고 얼른 와!”

날카로운 고함에 정신을 차린 주현은 어느새 앞쪽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찬휘를 발견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임무에 관심 없어 보이더니 왜 갑자기 의욕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위기감 없이 놀러 나온 사람처럼 가볍게 돌아다니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하나뿐인 눈을 깜빡이며, 주현이 찬휘를 뒤쫓았다.

임무는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크리스털은커녕 닮은 물건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나아갈수록 괴물은 더더욱 많이 나오고 피로가 쌓여 갔다.

결국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쓰러진 나무와 바위에 각자 앉은 때였다. 가방에서 물을 꺼내 꿀꺽꿀꺽 마시던 찬휘가 물통을 제자리에 밀어 넣다 말고 의아한 표정으로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가방 안에서 이리저리 구겨진 종이를 들여다보던 그의 눈썹이 치켜졌다.

“어?”

멍청한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도 주현은 일말의 관심조차 느끼지 못했다. 바위에 걸터앉아 가이드에 대해 생각하느라 바쁘던 그는 제 앞으로 불쑥 다가온 종이에 짜증스레 미간을 구겼다.

그에 움찔하면서도 찬휘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좀 떨떠름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주현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구겨진 종이를 손에 쥐고 살펴보았다.

“……이걸 왜 이제야?”

“나, 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거든?”

종이에는 임무 전 전달 사항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는데, 주현이 받은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임무 대상의 위치가 좌표까지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 등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의 고생은 시간 낭비라는 뜻이다. 심지어 위치도 게이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주현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찬휘가 임무를 성공시키고, 주현은 들러리가 되는 상황을 보여 주려던 게 틀림없었다.

“내가 뭐, 이런 게 있을 줄 알았나.”

괜히 시선을 돌리며 딴청 부리는 모습을 보니 화낼 마음조차 없어졌다. 주현은 그저 한숨만 푹 내쉬곤 벌떡 일어났다.

그 후 임무는 일사천리로 끝났다. 종이에 적힌 대로 크리스털은 게이트와 가까운 위치에 잔뜩 널려 있었다. 애초에 장찬휘만을 위한 임무였던 셈이다.

“있잖아.”

능력을 사용해 크리스털을 허공으로 띄운 찬휘가 작게 속삭였다. 여전히 떨어진 채 걷고 있던 터라 주현은 고개를 상당히 꺾어야 그를 볼 수 있었다.

“넌 폭주 에스퍼지만, 그리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아.”

“……사람 보는 눈이 없네. 살아 있는 폭주 에스퍼 중에서 내가 제일 나쁜 놈일걸.”

“사람이 좋은 말을 하면 그냥 받아들여! 폭주 에스퍼 주제에 말꼬리 잡지 말고.”

“닥쳐. 약해 빠진 B급 놈아.”

“이익……. 네 가이드도 B급이잖아.”

“에스퍼랑 가이드가 같아?”

서로를 헐뜯는 목소리에는 처음과 같은 날 선 분위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날 찬휘의 sns에는 투명한 점액으로 홀딱 젖은 주현과 진흙투성이에 온 얼굴이 찐빵처럼 부은 찬휘가 브이를 하며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얼마 후 <짜니 일상>에 편집된 임무 영상도 올라왔는데, 처음 임무를 제안한 사람조차 놀랐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짜니 일상’ EP.32 폭주 에스퍼와 함께 임무!]

조회수 213만회 3일 전

장찬휘 구독자 9.42만명 좋아요 5만 공유 저장

#장찬휘 #에스퍼 #신주현


댓글 3,856개

생각보다 둘이 재밌게 노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ㄹㅇ티키타카 미쳤음ㅋㅋㅋㅋㅋ

찬휘가 저렇게 짜증 내는 거 처음 봤는데;; 뭐임?

안대 패션인가? 잘 어울리고 멋있기는 한데 불편할 듯ㅠ

땃항숙만 기억에 남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땃항숙ㅋㅋㅋㅋㅋㅋㅋ

┗ 벌써 커뮤에 땃휘들 항숙이로 불리고 있음ㅅㅂㅋㅋㅋㅋㅋㄱㄲㄱㄱㄱㅋㅋㅋㅋ

Amazing! I just can't stop smiling. I love CHANHWI so much(하트)

재밌는데 너무 짧아서 아쉽ㅠㅠ 편집 덜 된 버전도 올려주세용

쭈 안대 뭐야? 에스퍼인데 왜 안대를...?

┗ 에스퍼는 안대 차면 안 되나여?

┗ 에스퍼는 가이딩으로 상처가 쉽게 나으니까 다쳐도 금방 나아서 안대나 붕대 같은 거 할 필요 없어요.

┗ 아하 알려주셔서 감사여

LMAOOO 6:29 HELP WHY IS THIS SO CUTE! I’M A NEW HANGSUK.

장찬휘 저런 성격이었나? 왜 이렇게 달라 보이지

하 개잘생김 진심 폭삭 젖었는데도 존잘일 수가 있네

잉 쨘휘 오빠 기분 안 좋으신가ㅜㅜ

┗ ㄴㄴ좋아 보임 걍 내숭 안 떠는 거

쭈꾸미이자 항숙이로서 봐도 봐도 좋은 영상ㅠㅠㅠㅠㅠㅠㅠㅠ

┗ 항숙이는 땃휘인 거 알겠는데 쭈꾸미는 뭐예요?

┗ 신주현 팬. 줄여서 쭈꾸미임

┗ 엥? 어떻게 줄이면 그렇게 됨?

┗ 아....있어 그런 게

┗ 귀찮아하지 말고 설명해주셈;

다들 장찬휘 B급이라고 욕하지만 사실 현장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게 B등급입니다. 그리 낮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건데 욕먹는 게 안쓰러웠어요. 폭주 에스퍼랑 간대서 걱정했으나 생각보다 사이 좋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쭈 처음 나오는 부분 2:18

뒤태 3:05

능력1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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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찬휘 착한 척 안 하니까 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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