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65/161)

폭주 에스퍼 59화

<동백 아동보호소>. 그곳은 일반적인 보호소가 아니었다. 부모가 감옥에 가서 돌봐 줄 사람이 없는 아이 등, 평범한 보육원에 가기엔 상황이 여의찮은 아이들이 그곳에 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외진 곳에 덩그러니 있는 건물은 낡았지만 안은 제법 따뜻했다.

원장은 부드러운 인상의 중년 여성이었다.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라 한 그녀는 보육원을 천천히 걸으며 방 하나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곳곳에 보이는 아이들은 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보다 큰 아이, 작은 아이, 비슷한 아이. 주현이 싫어하는 아이가 너무 많았다.

부원장은 안경을 쓴 30대 남자였는데, 작은 체구가 그를 좀 더 유약해 보이게 만들었다. 악수하자며 내민 손을 일부러 세게 쥐어짰지만, 그는 화내지 않았다. 그저 씨익 웃고는 주현의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을 뿐이었다.

주현의 방은 복도를 끝까지 걸어야 있는 방이었다. 가장 가에 있지만 그만큼 창문이 하나 더 있어서 낮이면 햇볕이 다른 방에 비해 배는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 방에는 원래 두 자매가 살았는데, 때마침 얼마 전 부모님이 데려가서 방이 완전히 비었다고 했다. 2층 침대와 책상 두 개, 그리고 옷장도 두 개가 있는 방은 둘이서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도 좋단다.”

원장 선생님은 다정히 말하며 웃었다. 동정도 비웃음도 없는 미소에 주현은 이유 모를 초조함을 느꼈다.

그는 사실 1층이 무조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겨서 도망가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1층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다리 입구를 막을 경우, 2층에서 도망치기 위해서는 부상을 각오하고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주현은 2층을 고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2층 침대는 살면서 처음 봤다거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본 침대가 생각보다 더 아늑하다든가.

원장 선생님은 주현의 선택을 나무라지도, 마음이 바뀌었다며 1층을 쓰라고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그렇게 주현은 2층을 차지하게 되었다. 1층과의 차이점이라면 천장이 무척 가깝고 바닥이 멀 뿐인데도 어쩐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하게 짐 정리하렴. 필요한 물건은 주말에 선생님이랑 사러 가자. 3층 도서관에 있을 테니까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물으러 와.”

상냥한 말에 잠시 입술을 뻐끔거리던 주현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원장 선생님은 그에 대해 어떠한 타박도 하지 않았다.

홀로 남은 방에서 주현은 홀쭉한 가방을 내던지곤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경찰에게 끌려가고 엄마에게 버려진 후 낯선 곳에서 살게 되었다는 현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주현은 꿈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가 가진 어떤 이불에서도 이토록 향긋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로 주현은 강하게 눈을 감았다.

몇 시간 후 이름 모를 아이가 밥 먹으러 오라며 불렀지만 능숙하게 자는 척하며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다시금 고요해진 방에서 주현의 새까만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결국 그날 주현은 밤이 새도록 단 1분조차 잘 수 없었다. 동백 보호소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 * *

주현의 보호소 생활은 좋게 말해도 끔찍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동안 주현이 지냈던 어떤 곳보다도 풍족했으나, 그는 보호소 사람들이 싫었다. 주현을 따돌린다든가 폭력을 쓰는 건 아니다. 오히려 완전히 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주현은 내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불편함을 느꼈다.

가족과 함께하지도 못하고 버려지듯 이곳에 내팽개쳐졌으면서 웃고 있는 얼굴들이 꼴 보기 싫었다.

그동안 부모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며 그들이 자신을 사랑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아이들이 끔찍하게 싫었는데, 이곳의 사랑받지 못하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훨씬 더 힘들었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그걸 원동력 삼아 살아온 주현은 그런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은 말간 얼굴들이 너무나도 진절머리 났다.

동백 보호소에서 나오는 식사는 학교 급식보다 맛있었다. 홈스쿨링을 선택한 주현은 작은 노트북으로 매일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그를 욕하거나 때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편하지는 않았다. 어딘가 자꾸만 불안하고, 거슬리고, 신경 쓰였다. 다가오는 아이들이 싫었고, 원장과 부원장이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것도 역겨웠다.

아무리 밀어내도 동백의 아이들은 상처받은 기색도 없이 주현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게 자꾸만 동정처럼 느껴져서, 그들의 시선 하나하나가 주현이 가진 유일한 것인 자존심을 마구 짓밟았다.

태도가 누그러지지 않는데도 보호소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다가왔다. 물론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닌, 의무와 동정이라는 걸 알기에 주현으로선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식당에서 홀로 멀찍이 앉아 밥을 먹던 주현에게 자그마한 손으로 식판을 든 민재가 다가왔다. 민재는 주현보다 몇 살 어렸는데, 제법 살갑게 말 붙이는 아이 중 하나였다.

옆에 앉아서 쫑알쫑알 말 거는 녀석을 무시하던 주현은 평소보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곤 벌떡 일어났다. 그에 반사적으로 민재가 주현의 손을 잡았고, 놀란 주현이 민재의 손을 뿌리쳤다.

주현이 어릴 적부터 앓아 온 영양실조로 나이에 비해 체구는 작다지만, 그래도 열세 살과 아홉 살의 신체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민재는 반동에 밀려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심하게 넘어진 것은 아니지만 팔로 식판을 친 탓에 요란한 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음식물로 옷을 더럽힌 민재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몰려와 민재를 달래기 시작했고, 문득 떠오른 과거의 기억에 빳빳하게 굳어 있던 주현은 근처에 있던 혜린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게 신호라도 된 듯 뒤돌아 있는 힘껏 달렸다.

그날 내내 주현은 침대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았다. 몇몇 사람이 들어와 말을 걸었지만, 주현이 대답하지 않자 이내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동백 보호소의 사람들은 대부분 주현의 사생활을 존중하지만,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곤 하는 아이가 몇몇 있었다. 그중 하나인 민재의 발소리는 작고 빠르고 부드럽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느긋했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밟아 누른 주현이 자는 척하며 애써 고른 숨소리를 내뱉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어둡다 싶더니 오후부터 부슬비가 내렸다. 그러다 밤이 되자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굵은 빗줄기가 요란하게 떨어졌다. 창문이 두 개인 주현의 방은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도 더 크고, 한 번씩 떨어지는 번개도 훨씬 눈부셨다.

번개 따위를 두려워하기엔 삶에서 무서운 게 너무 많았던 주현은 쏟아지는 비에 아무 생각도 없었다. 기껏해야 최소한 지붕 아래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 정도가 다였다.

그렇기에 작은 발소리와 함께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민재가 말을 걸었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혀, 형…….”

주현은 낮의 일이 있은 후로 민재를 어떤 얼굴로 봐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사실 민재와 다시 대화할 수 있을 거라곤 기대조차 하지 못했기에 더욱 그랬다.

“주현이 형.”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쓴 채 대답하지 않자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부르는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결국 주현은 막 잠에서 깬 척하며 일부러 눈을 가물가물하게 뜨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들지 못했기에 이미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시야로 울상인 민재가 보였다.

어쩌면 낮의 일을 화내러 온 걸지도 모른다. 이 방에서 나가 달라거나, 아니면 사과라도 하라고 따지러 왔다거나. 아빠를 죽여서 죄송합니다. 그 말을 수백 번은 더 했는데도 여전히 사과는 주현에게 낯선 분야였다.

볼 안쪽을 씹으며 주현은 무슨 일이냐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 무서워서 그런데…… 오늘만 같이 자면 안 돼?”

주현은 정말이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의 상식으로는 나에게 떨어질 확률이 거의 없는 번개보단 직접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훨씬 무서워야 하기 때문이다.

“혜린이 누나랑 석규 형이 주현이 형한테 부탁하라고 했어. 나 진짜 무서워. 응?”

누군가가 의지하는 게 처음인 주현은 당황스럽게 눈을 끔뻑이다 민재의 울상이 짙어지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아이는 사양 한 번 안 하고 곧장 주현의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옆구리에 딱 달라붙어선 그제야 안심한 듯 표정을 푸는 걸 보고 있자니 뱃속이 울렁거렸다. 배가 부른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고픈 것 같기도 했다. 뜨거운 물을 마신 것도 같았다.

머뭇거리던 주현은 느리게 팔을 내려 이불 위로 민재의 등을 감싸 안았다.

말랑하고 뜨끈뜨끈한 몸은 조금 더 가깝게 달라붙었고, 누군가와 그렇게 가까이서 자는 게 처음인 주현은 한참을 설치다 겨우 잠들었다. 악몽은 없었다.

* * *

주현은 아이가 싫었는데 민재는 예외였다. 민재는 밝고, 친절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강아지 같았다. 못되게 대했는데도 기꺼이 의지하고 손을 뻗는 녀석을 주현은 거부할 수 없었다.

꼭 약점이라도 잡힌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기엔 또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주현은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민재를 시작으로 주현의 싫지 않은 아이 리스트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더니 결국 동백 보호소에 있는 아이 10명 모두가 이름을 올렸다.

그들은 가족이었다. 그렇다고 했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있고, 그들을 그리워하는 이도 많았으나 동백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걸 부정하는 아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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