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 에스퍼 58화
주현은 돌고 돌아 겨우 한 문 앞에 섰다. 쿵쿵, 낡고 녹이 슨 쇠문을 두드리자 한참 후에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주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가 내민 가방을 채 가 안을 열어 보았다.
이윽고 여전히 찌푸린 얼굴의 남자는 주현에게 받기로 한 금액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내밀었다. 얇은 돈다발을 손에 든 주현은 앞으로도 이 일을 하지 않겠냐는 말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쓰레기장을 나와 신나는 발걸음으로 공원에 돌아가자 성규가 놀란 눈으로 주현을 반겼다. 마치 성공할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세하게 캐묻고는 주현이 짜증을 낼 때쯤에 앞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이 공원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면 일거리를 주겠다는 말에 주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기쁘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알겠다고 했다.
지저분한 꼬마가 내미는 돈에 아무 말 없이 키를 내준 모텔 주인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간 주현은 곧장 옷을 벗어 던지고는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뜨거운 물은 수도꼭지를 틀고 한참 후에야 나왔지만, 주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쏟아지는 깨끗하고 따뜻한 물 아래에 서서 눈을 감고 있으니 세상이 살 만하다는 착각이 들었다.
과일 향이 나는 싸구려 샴푸로 머리를 감자 뒤엉킨 머리카락이 한가득 손가락에 잡혀 나왔다. 거품은 금방 회색으로 물들었고, 주현은 작은 샴푸 통이 텅 빌 때까지 몇 번이고 머리를 감았다.
온몸에 달라붙은 묵은 때를 벗기고 나서도 한참이나 물 아래에 서 있던 주현은 노곤한 몸으로 욕실에서 나왔다.
모텔은 너무 낡아서 이불은 버석했고 벽의 절반은 곰팡이로 덮여 있었지만, 주현에게는 이보다 더한 천국이 없었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치를 부려 보기로 했다. 방문을 두드린 배달원은 빼꼼 열린 문틈으로 어린아이가 서 있는 것에 조금 놀란 것 같지만, 돈을 내밀자 음식을 건네주고 돌아갔다.
처음 먹는 닭 다리였다. 엄마는 잦은 출장으로 거의 집에 없었고, 새아빠는 주로 냉동식품으로 식사를 때웠다. 어쩌다 배달을 시켜도 주현에게 돌아오는 것은 가슴살 두어 조각이 다였다.
퍽퍽한 가슴살과는 비교도 안 되게 부드러운 살을 입안 가득 베어 문 채 주현은 조금 울었다. 아주 조용하게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억눌린 울음이나 흐느낌, 하물며 작은 숨소리마저도 없었다. 그런 것들은 오래전에 그의 새아빠가 없애 버렸다.
꾸역꾸역 밀어 넣은 고기는 결국 주현을 탈 나게 했다. 너무 많이 먹은 걸지도 모르고 오래도록 굶은 주제에 갑자기 기름진 걸 먹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주현은 이유도 모른 채 새벽 내내 끙끙 앓았다.
그래도 지붕과 이불이 있었다. 뜨거운 물도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당장 도망가서 살 수 있는 약간의 현금도 있었다.
그러니 그는 괜찮았다. 정말로.
* * *
경찰이 주현을 붙잡은 것은 그가 여섯 번째 심부름을 하려던 날이었다.
이젠 제법 익숙해진 얼굴과 가벼운 대화까지 나누며 가방을 건네받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눈을 크게 뜬 성규가 주현의 손에서 가방을 확 빼앗곤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엉거주춤 뒤따라가던 주현을 단단한 손이 붙잡아 바닥에 패대기쳤다. 흙바닥에 얼굴을 박고 겨우 돌아보자 경찰이 무서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찌검에 질려 공중전화로 아주 나쁜 사람이 있으니 잡아가라고 신고했던 일곱 살 주현은 현관에서 경찰과 웃으며 대화를 마친 새아빠에게 먼지 나게 두들겨 맞았었다. 그 후로 주현은 경찰이 싫었다.
그토록 싫은 경찰이 주현의 팔을 뒤로 꺾어 붙잡고는 멀찍이 서 있는 자동차로 데려갔다. 아무 무늬 없는 새까만 자동차인데, 그것도 경찰차였나 보다.
지금까지 주현이 배달했던 것은 불법 가이딩 약물이라고 했다. 주사할 시 당장은 에스퍼를 진정시켜 줄지라도 과도하게 사용하면 결국 신체를 망가뜨리는 위험한 약이라고.
“불법이야, 불법. 그걸 배달한 너도 범죄자고. 알겠어?”
주현은 센터에서 에스퍼들이 가이딩 부족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면 그런 약이 나돌지 않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디 보자……. 신주현. 열세 살. 가족 관계는, 어머니밖에 없네?”
비난적인 어조에 주현의 어깨가 움찔 튀었다. 아버지가 없는 이유 같은 게 적혀 있을 리 없건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홀로 널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께 죄송하지도 않냐? 응?”
주현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가 새아빠와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야 할지, 아니면 엄마는 내가 태어난 후로 단 한 순간도 날 키우지 않았다고 소리쳐야 할지 고민했다.
경찰서에는 사람이 많았다. 에스퍼가 범죄를 저지르면 바로 센터에서 에스퍼를 파견하지만, 보통은 경찰들이 더 빨리 출동하기에 온갖 무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이곳에서 주현만큼 어린아이는 없었다. 그는 범죄자가 되었다고 엄마와 새아빠가 실망할지 궁금했다. 그럴 줄 알았다고 할까, 아니면 한심하다고 할까. 궁금하지만 한편으론 알고 싶지 않았다.
듣기로는 성규도 잡혔다고 했다. 그는 약을 제조하는 쪽과 연결된 게 확실해 심문받으러 갔다며, 숨길 생각 말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불라고 경찰이 말했다.
애석하게도 주현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화요일이면 성규와 만나 가방을 받고 그것을 전달했을 뿐이니 말이다.
어디로 가져다줬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주현은 골목 밖에 서서 그를 기다리는 남자에게 줬다고 거짓말했다. 항상 돈을 더 얹어 주는 남자는 회색 머리에서 검은 머리로 바뀌었고, 50대에서 30대로 바뀌었다. 주현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아이였다.
성규가 어떤 진술을 했는지는 몰라도 주현을 물귀신처럼 데려갈 생각은 아닌 듯했다. 주현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심부름꾼으로만 이용되었다는 게 입증되었다.
그렇지만 사안이 심각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이나 약을 전달한 점 때문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경찰서를 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일을 어렵게 만들기 싫었던 경찰의 나태함 덕분에 약간의 벌금과 함께 보호자가 와서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기만 하면 풀려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찰서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분명 주현이 말한 번호로 연락한 경찰은 애매한 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이 번호 맞아? 자식 없다는데?”
몇 년이나 사용한 번호를 고작 몇 달 만에 바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아빠가 경찰의 전화를 장난 전화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일을 해결하려면 주현이 직접 전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죽어도 새아빠에게는 전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주현은 오래전부터 외우고 있었지만, 전화 건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번호를 천천히 눌렀다. 두어 번 울린 신호음 끝에 달칵,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엄마.”
저절로 침이 목구멍을 긁으며 넘어갔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대화한 게 언제인지 기억할 수조차 없었다. 사실 얼굴 본 지도 오래돼서 그녀가 지금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지금 경찰서인데…….”
-……왜?
목소리는 평탄했다. 항상 그랬다. 주현은 엄마가 웃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나쁜 짓을 했다고 경찰 아저씨가 오해해서.”
엄마가 오면 주현을 집으로 데려갈까? 바쁘다며 그를 거리에 두고 곧장 사라질까? 실망스럽다고 화내고 노려보다 한숨을 내쉴까?
주현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더 나쁘다는 것이다.
-오해가 아니지. 넌 나쁜 짓을 했잖아.
목소리에 박힌 가시가 주현을 상처 입혔다. 일하고 있었는지 전화기 너머에서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작게 들려왔다. 그들이 엄마에게 자식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을지 모르겠다.
-말해 봐. 네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기일마다 술에 취해 울고 비명을 지르다 결국 아들을 붙잡곤 그 말을 하라고 윽박질렀다.
아빠를 죽여서 죄송합니다.
경찰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입안에 고인 침에서는 쓴맛이 났다. 분명 멍이 들었을 볼이 욱신거렸는데 그는 너무 자존심이 세서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아빠를 죽여서 죄송합니다.
뭐 좋은 세상이라고 예정보다 빠르게 나오려고 했는지, 아빠는 뭐가 그리도 급했길래 천천히 운전할 수 없었는지.
아빠를 죽여서 죄송합니다.
시선이 바늘처럼 피부에 박힌다. 앞니에 짓눌린 입술은 기어코 찢어졌고, 손바닥에는 손톱이 박혀 들었다. 눈이 뜨거워지는 게 너무 선명했다. 눈알이 그대로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아빠를 죽여서 죄송합니다.
사람들 앞에선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었다. 그가 얼마나 추악하게 태어났는지, 어떤 저주를 뒤집어썼고, 어떤 운명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떠벌리는 것은 그를 죽일 것이 틀림없다.
주현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귀에서 삐- 하는 이명이 들린 것도 같았다.
“……안 오신대요.”
보호자의 확인서가 없고, 그렇다고 확실히 범죄가 인정되어 소년원을 갈 수도 없는 주현의 처지는 그야말로 허공에 붕 뜬 것과 같았다. 경찰은 엄마를 설득하려 했으나 그 아이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되풀이할 뿐, 그녀는 주현을 위해 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주현은 보호소로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