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 에스퍼 33화
-무서워할 거 없어요.
어디서 들어왔는지 날벌레 한 마리가 어둠 속을 비틀거리며 날아왔다. 벌레는 위태로울지언정 추락하지 않으며 빛을 찾아 날갯짓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사람에게 도움받았거든요. 그거 다 갚기 전까지는 안 죽어요.
주현의 능력에 짓눌린 벌레가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스러졌다.
터무니없이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벌레 한 마리. 설령 죽지 않고 빛에 닿았다 해도 결국은 바짝 타서 재가 되어 부서졌으리라.
마치 그와 같다. 주제도 모르고 빛을 향해 손을 내뻗는 주현도 결국은 그렇게 될 운명일까? 너무나도 강해서 약자가 되어 버린 폭주 에스퍼가 무릎을 감싸 안았다.
“어떻게 갚을 건데요?”
-글쎄요. 나름대로 노력하고는 있는데.
담배는 두고 왔으면서 기어코 챙겨 온 라이터를 열자 딸깍 소리가 들렸다. 자그마한 라이터 불은 어둠 속에서 환하게 타올랐다.
“저와 매칭한 것도 그 노력의 일환입니까?”
소문을 잠재운다든가 혹은 주현을 협박해 임무를 강제한다든가. 많은 추측을 해 왔는데 모두 틀렸을지도 모른다. 다른 뜻 없이 그저 이유 모를 죄의식을 덜기 위해 불쌍하다 소문난 폭주 에스퍼와 계약한 걸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라이터는 딸깍거리는 걸 멈췄고, 복도는 아까보다 훨씬 더 어두워졌다. 간신히 어둠에 익숙해졌던 눈은 잠깐 빛을 보았다고 아무것도 비추지 못했다.
-아뇨. 개인적인 사심이에요.
그 목소리는 어딘지 또렷하고 힘이 있었다.
주현은 문득 차인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조금 보고 싶었다. 주현과 계약하는 것으로 무엇을 얻는지는 몰라도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거기 누구 있나?”
복도 끝 계단 너머에서 야간 경비를 서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무가 있는 게 아닌 이상 폭주 에스퍼는 12시가 지나면 방에서 나올 수 없다. 훈련이나 기타 용무로 미리 신청하면 가능하긴 한데, 물론 주현은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직원이 누구냐에 따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 일주일간 12시가 되면 수갑을 찬 채 꼼짝없이 침대에 묶이게 될 수도 있다.
“저 이만 갈게요. 치료 잘 받으시고요.”
-네, 전화해 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힘이 났습니다. 좋은 꿈 꿔요.
차인호는 밤 인사를 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반면 그렇지 못한 주현은 대꾸할 말을 고르다 계단을 올라오는 인기척에 말없이 일어나 전화를 끊었다.
-아, 주현 씨.
아니, 그러려고 했다. 차인호의 부름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시간에 나와 있는 이유를 잘 설명하는 게 좋을 거다.”
사소한 걸로 트집 잡으며 유독 주현과 동료들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직원이 복도 끝에서 나타났다. 직원은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
바로 전화를 끊고 적당한 변명을 내뱉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주현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기는커녕 수화기를 더욱 가까이 귀에 붙이며 차인호가 뭐라 이어 말할지 기다렸다.
-퇴원하자마자 바로 갈게요. 그러니까 그사이에 다른 가이드 만나지 마세요.
만나고 싶다 해서 쉽게 만날 수는 없다든가, 그런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든가.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주현이 이번에야말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폭주 에스퍼는 열두 시가 지나면 방에서 나올 수 없다. 그 간단한 규칙도 기억 못 하는 거냐?”
코앞에서 멈춰 선 직원이 명백한 분노와 즐거움이 담긴 눈으로 주현을 바라보았다.
차인호는 며칠이면 퇴원한다고 말했다. 며칠 후면 그가 주현을 보러 C동에 온다는 말이다. 그걸 생각하니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직원의 불쾌한 손길도 참을 만하게 느껴졌다.
전화하길 잘한 것 같다고, 주현은 수갑을 차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