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 에스퍼 20화
“상처받았다면 미안한데 사실이야.”
“웃기지 마. 동료가 죽었는데 슬퍼하지도 않는 자식이 어디 있어?”
범규가 소리쳤고, 미처 능력을 조절하지 못했는지 볼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손등으로 문지르자 붉은 피가 조금 묻어났다.
주현의 상처에 놀란 범규가 손을 놓자 그 틈을 채경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만해. 우리끼리 싸워서 좋을 거 없어.”
새까만 선글라스 너머로도 날카로운 눈빛이 보이는 듯했다. 범규는 팔등으로 눈물을 훔치곤 두어 걸음 물러났다.
“물론 우리도 슬퍼. 한나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모든 죽음에 하나하나 울기엔 우리가 너무 지쳤나 봐.”
그래. 그들은 너무 지쳤다. 어제까지 곁에서 웃었던 이가 시신조차 돌아오지 못하고, 당장 본인도 매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줄타기하는 것에 지치고 말았다.
폭주 전에는 겪어 보지 못한 만성적인 가이딩 부족. 손을 더럽히는 임무. 양심의 가책. 죽음의 공포. 그동안 일궈 온 모든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는 상실감.
6년 전 폭주한 세화는 사망으로 처리되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조차 하지 못한다.
C동에 온 지 3년이 넘은 승철의 손목에는 지워지지 않는 깊은 흉터가 남아 있다.
폭주하기 전 S급 에스퍼였던 채경은 남들보다 필요한 수치가 많은 탓에 가이딩 약물에 중독되고 말았다.
그리고 한결은……. 주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건 살아남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어쩌면 주현이 C동에서 11년 동안이나 살아남은 이유는 과거에 두고 온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삶이 엉망이었기에 그리워하며 뒤돌아볼 필요가 없어서.
“난 이해가 안 돼. 사람이 죽으면 슬픈 게 당연하잖아.”
범규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가족과 연락하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에스퍼의 가족들은 어린 시절부터 약간의 거리감이 있고, 커 갈수록 임무 등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애틋함이 덜하다고들 한다. 그러다 폭주 에스퍼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보호를 위해 접촉이 불가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대로 연락이 끊기는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폭주 에스퍼의 악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상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범규의 가족은 아들과 통화라도 하게 해 달라며 귀찮을 정도로 센터에 연락했고, 결국 범규는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임무나 C동에 대해 입도 벙긋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지만 그래도 범규는 만족한 듯했다.
C동 휴게실 밖 복도 벽에는 낡은 공중전화가 하나 달려 있다. 폭주 에스퍼들이 바깥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재미있게도 119와 112, 그리고 에스퍼-가이드 센터에는 전화를 걸 수 없다.
게다가 규칙은 없어도 그만인 게, 애초에 타인에게 비밀을 누설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알아서 불온한 단어를 걸러 통신하기에 상대방은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는 듯한 소리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범규는 처음, 가족과 통화하며 시행착오가 많아 보였으나 지금은 익숙하게 단어를 골라 전화하고 있다. 아무튼 여러 이유로 매점에서 파는 전화 카드를 사는 사람은 C동에서 범규가 유일하다.
센터장은 혹여나 범규가 가족에게 말을 흘릴까 봐 걱정되었는지 그에게는 일반적인 에스퍼가 맡는 임무만 배정했다. 그의 능력이 암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한몫했을 것이다.
C동의 다른 에스퍼들은 그런 범규에게 각자 자신이 맡곤 하는 지저분하고 더러운 임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으니까.
다들 말은 안 해도 폭주 에스퍼답지 않게 밝은 범규가 계속 그대로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렇기에 더욱 지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다.
보통 동료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각자 침묵하며 애도한다. 그리고 일어나서 다시 앞을 향하기 위해 평소를 가장한다. 즐거운 일이라곤 거의 없고, 오직 불쾌함과 고통만 가득한 현실에 슬픔을 추가할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행복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게 당연한 범규에겐 동료들이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그만 질질 짜고 눈물 닦아. 한나 옷은 내가 가진다. 누구 필요한 사람 있어?”
세화가 외치자 다들 고개를 저었다. 범규만이 충격받은 얼굴로 세화를 바라볼 뿐이었다.
폭주 에스퍼가 죽었다고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은 없다. 시신이라도 돌아오면 다행인 수준인데, 시신에 머무는 불안정한 파장이 위험하다며 에스퍼의 능력으로 완전히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물건을 받을 가족도 없고, 애장품을 넣을 관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물건은 동료들의 차지가 된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일이다. 주현도 죽고 없는 이들의 물건을 몇 개나 가지고 있다.
“다들 미친 것 같아.”
씹어 뱉듯 토해 낸 범규가 거친 몸짓으로 휴게실을 벗어났다. 남은 이들은 각자 씁쓸한 표정을 지었으나 따라 나가지는 않았다.
“저 새끼가 아직 어려서 그래.”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세화가 말했다. 내내 침묵하던 승철이 커다란 한숨을 토해 냈다.
“사실 저 반응이 정상이지.”
담배 필터를 앞니로 질근질근 씹던 봄이 툭 내뱉었다. 안대로 가려지지 않은 눈이 날카롭게 허공을 응시했다.
“정상으로 구는 건 정상적인 환경에서나 가능하지. 이 지옥에서 사소한 일 하나하나 다 따져 가며 울고불고 어떻게 그래?”
“친구가 죽은 게 사소한 일이야?”
세화와 봄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평소 사이좋은 두 사람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날이 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싸우지 말자니까. 범규는 이따가 잘 달래 주자.”
“채경이 형.”
“응?”
“우리가 미쳤나?”
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정작 질문한 주현도 답을 원해서 한 물음은 아니었다.
A동에 있는 일반적인 에스퍼들도 매번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전사하면 울면서 추모한다. 세화도, 봄도, 채경도, 승철도. 누구나 폭주하기 전에 같은 경험을 했다.
그런데 C동은 무엇이 다르기에 그들은 동료의 죽음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게 되었는가.
“……글쎄.”
감옥처럼 창살이 처진 창문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이름 모를 새가 저 너머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유독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한나는 맑은 날에 죽었다. 마지막 순간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 그녀의 인생을 애도한 주현이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은 묻어나지 않았다.
* * *
옆에서 자신을 힐긋거리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주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자 범규가 화들짝 놀라며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오늘 맡게 된 임무는 웬일로 범규와 둘이서 가게 되었다. 보통 범규는 게이트 관련 임무만 맡는 터라 이상하다 싶었더니, 그의 능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버려진 항구에 불법 가이딩 약물이 밀수되고 있다. 찾아서 모조리 없애라.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고.’
범규의 능력은 ‘Air bomb’이다. 대기를 폭파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는 불꽃, 재, 심지어는 빛조차도 없기 때문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거기다 눈에 띄지 않게 암살할 수 있는 주현이 함께 가서 조직원을 죽이고 물약을 없애는 게 임무의 진짜 내용이었다.
살인이 따르는 임무임에도 범규를 따라가게 한 이유는 불법 가이딩 물약의 위험성을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위험하고 유통되면 안 되는 약이기에 그 과정에서 범죄자가 죽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일 테니까.
임무 자체는 그리 위험하지도 않고 빠르게 끝날 것 같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현재 범규와 주현의 사이는 묘하게 틀어져 있다. 한나의 죽음으로 문제가 생긴 후, 감정적으로 풀기도 전에 임무에 보내진 탓이다.
정확히는 범규 혼자 화를 삭이지 못해서 조금 굳은 태도를 보이고 있고, 주현은 늘 그렇듯 무덤덤하게 행동했다.
본인이 스스로 풀어야 할 응어리라고 생각하기에 주현은 할 말이 없었다. 사과하기엔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부드럽게 달래 주는 성격도 되지 못한다. 그러니 그냥 두는 수밖에.
다시금 느껴지는 시선에 옆을 보자 범규가 움찔거리며 몸을 돌렸다. 한숨이 나올 것 같았으나 애써 삼켜 낸 주현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에 비친 그는 검은색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협회의 임무를 받고 온 에스퍼라는 걸, 특히나 폭주 에스퍼라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되기에 일반인처럼 입은 것이다.
헐렁한 후드티 안쪽에는 단검과 권총 등 흉악한 무기가 가득했으나 겉으론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아마 그럴 것이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살인자는 분위기만으로 티가 난다거나 뭐 그럴 수도 있으니까.
검붉은 눈동자가 유리창 위에서 흐릿하게 빛났다. 그게 보기 싫어서 후드를 더욱 깊게 눌러쓴 주현이 의자에 몸을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