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땅속에서 올라온 천사
가이드와 마찬가지로 에스퍼도 능력에 따라 등급이 나누어지며, 높을수록 드물고 낮을수록 많다.
그리고 주현의 등급은 ‘Unknown’이다. 그뿐만 아니라 C동의 모든 에스퍼가 그러한데, 이유는 폭주 에스퍼 특유의 불안정한 파장에 있다. 컨디션이 좋으면 S로 나오고, 어떨 때는 B로 나오는 등 유동적이기 때문에 어느 한 등급이라고 확정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주현은 몰랐는데 폭주 에스퍼의 그런 특성은 남들 눈에는 무섭게 보이는 듯했다. 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힘을 조절하지 못하는 걸로 보인다고. 그걸 말해 준 사람은 봄이었다.
‘정말 싫은 임무가 들어올 때는 오늘따라 컨디션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 뭐, 결국 다른 날 다시 불려 가긴 하지만.’
능력의 범용성이 커서 유독 임무가 많은 봄은 가끔 주현에게 작은 사탕을 쥐여 주곤 했다. 그다지 어린 나이도 아닌데 오래 봐 온 탓에 어리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정말 싫은 임무 나도 어제 갔다 왔는데. 왜 우리한텐 그런 일만 주는 걸까?’
사탕은 이미 녹아 없어졌음에도 입안에 남은 단맛이 혀끝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죄인이라서 그래. 개처럼 굴려도 뒤탈이 없으니 여기저기 더러운 곳이면 다 문지르는 거지.’
그렇게 말한 봄은 작아진 사탕을 어금니로 마구 깨물어 먹었다. 그 표정이 무척 슬퍼 보여서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 결국 입을 다물었던 기억이 있다.
봄의 말대로 험하게 다루어도, 심지어는 죽어도 상관없는 폭주 에스퍼에게 돌아오는 임무는 대체로 위험도가 높은 것들 뿐이다.
주현은 앞 좌석과 방탄유리로 나뉜 차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위험하고 곁에 두면 안 되는 시한폭탄이라고 외치는 것치고 시민들 속에 자주 불려 간다고 생각하며.
오늘 그의 임무는 다른 에스퍼와 함께 새로 발견된 게이트를 조사하는 것이다. 괴물이 쏟아지는 게이트를 관리하고 일반인이 피해받지 않도록 지킨다는, 일반적인 에스퍼의 임무와 같았다.
물론 조사되지 않은 게이트이기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폭주 에스퍼에게 주기에 딱 좋은 임무였다.
“…….”
주현은 한숨을 삼켰다.
C동이 아닌 A동 에스퍼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꺼려지는 일이다. 대체로 태도가 꼴불견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주현은 이 감정이 질투인지 열등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주현의 감정 따위를 신경 쓰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오늘처럼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제가 어디까지 해도 되나요?’
쾅! 에스퍼의 주먹이 유리창을 때렸다. 운전사의 어깨가 움찔 떨리는 걸 봤지만 주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왜 갑자기 차인호의 말이 떠오른 건지는 그도 모른다. 애초에 알고 싶지도 않다.
단단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주현이 검붉은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임무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이게 누구야! 폭! 주! 에스퍼 아냐?”
커다란 목소리에 주현의 표정이 짜증스레 일그러졌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사나운 얼굴에 상대방의 곁에 있던 가이드가 움츠러들었으나 도저히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이런 위험한 게 거리를 막 돌아다녀도 되나?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히죽거리는 남자의 이름은 ‘윤가람’으로, 오늘 주현과 함께 임무에 갈 S급 에스퍼다. 몇 번 함께 임무에 간 후로 어째서인지 주현을 고깝게 보며 시비를 걸어오는 싹퉁바가지 없는 놈이기도 했다.
“어디서 혀라도 잘렸나? 왜 말이 없어.”
“닥쳐.”
가람의 움직임에 따라 그의 등 뒤에 달려 있던 날개가 부드럽게 팔락였다. 새하얀 깃털과 어깨까지 기른 백금발 탈색 머리가 합쳐지니 꼭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보였다.
보통 S급이나 SS급 정도 되는 에스퍼들은 알음알음 유명해지기 마련인데, 그중에서도 가람은 특히나 더 유명하고 인기가 많았다. 실력도 있고 잘생긴데다 무엇보다 늘 등 뒤에서 팔락이는 날개가 그를 성스러워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현은 진실을 알고 있다. 윤가람은 하늘에서 내려오기는커녕 땅속에서 기어 나온 악마에 가깝다는 사실을.
“짜가 비둘기 주제에.”
“썩은 구더기가 말이 많네?”
“구워 먹어 버린다?”
“번개 맞고 싶니?”
눈을 굴린 주현이 손을 흔들자 가람의 날개가 흩어졌다가 다시금 모여들었다.
가람의 능력은 날개가 아니다. 정확히는 전기를 조종하는 것인데, 미세한 정전기를 조작해서 깃털을 고정해 날개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뿐이다. 쓸데없는 능력 낭비라는 생각밖에 안 들지만, S급 에스퍼인데다 매칭 가이드만 세 명인 몸을 주현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방해하면 가만 안 둬. 듣고 있어? 폭주 에스퍼.”
예쁜 얼굴을 팍 구긴 가람이 거들먹거리며 주현을 훑어보았다. 주현은 문득 왜 그와 이런 사이가 되었는지 잠시 생각했다.
‘오늘 함께 일하게 된 윤가람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조금 수줍어 보이기까지 했었는데.
당시 가람은 폭주 에스퍼에 대한 소문을 들었으면서도 두려움보단 호기심이 더욱 커 보였다. 본인이 S등급을 받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설령 주현이 폭주한다 해도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언제 폭주했어요?’
‘예전에요.’
‘왜 폭주했어요?’
‘어쩌다 보니요.’
‘폭주할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또 그런 기분 든 적 있어요? 지금은요? 폭주할 것 같아요?’
그때 주현은 늘 그랬듯 가이딩 부족에 머리가 아팠고, 옆에서 떠들어 대는 애송이도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두통 때문에 날카로워진 얼굴로 가람에게 말했다.
‘저기요. 그 날개 안 쪽팔리세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주현만 보면 속을 긁기 위해 안달을 내는 가람은 가끔 웃겼지만 대부분 귀찮았다. 그보다 반 뼘 정도 작은 가람이 턱을 한껏 치켜들며 요란스럽게 주현을 노려보았다. 선명하게 반짝이는 파란색 컬러렌즈에 주현은 콘셉트 한번 지독하다는 생각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쉬고 싶은 사람은 나거든?”
“쉬든가.”
“와, 말하는 것 봐. 너 그냥 가면 안 되냐? 벌써부터 방해되는데.”
듣기로 가람은 주현보다 두 살이 적었다. 본인도 그걸 알고 있으면서 반말을 뱉는데, 어딜 봐서 천사란 말인가.
“거기다 언제 폭주할지 몰라서 무섭고.”
씨익 웃는 얼굴에는 사나운 조롱이 가득했다.
가람은 늘 폭주 에스퍼라는 점을 들먹이며 주현을 모욕하려 했다. 물론 철이 들기도 전부터 폭주 에스퍼로 살아온 주현의 마음엔 흠집조차 내지 못했지만.
“너같이 약한 애한테는 좀 무섭긴 하겠다. 이번 일은 나 혼자 할까? 상부에는 잘 말해 줄게.”
덤덤하게 흘러나온 말에 가람이 인상을 썼다. 남의 관심을 즐기는 만큼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은 그는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도 컸다. 그렇기에 주현을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공과 사를 잘 구분해서 임무에 지장이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들으라는 듯이 혀를 찬 가람이 휙 돌아서서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남몰래 깊은숨을 뱉은 주현 또한 운전사가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올라탔다.
* * *
“우리가 둘러볼 게이트의 이름은 ES-23이야. 새로 발견된 거라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까 정신 바짝 차려.”
가람의 날 선 목소리에 주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미덥지 않다는 눈초리에도 주현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지역에 따라 A~ G까지 구분하고, 그 안에서 또 나누어야 할 정도로 게이트는 전국 곳곳에 퍼져 있다. ES-23은 E 지역의 남쪽에 있는 23번째 게이트라는 뜻이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깊은 산 속에 덩그러니 있는 ES-23은 겉으론 여타의 게이트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임무는 게이트를 조사하고 만약 밖으로 나온 괴물이 있다면 처리하는 거다. 참고로 이번 팀 대장은 나니까 멋대로 행동하지 마.”
“멋대로 행동한다는 범위가 얼만데? 숨도 허락받고 쉬어야 하나?”
“그런 헛소리 좀 하지 말란 거야.”
고개를 내저은 가람이 새하얀 날개를 펄럭였다.
지형이 험하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모르기에 가람은 가이드를 안전장치가 있는 차에 두고 주현과 둘이서 ES-23에 들어서기로 했다. 급박한 전투 상황에선 가이드와 멀리 떨어지는 게 위험할 수 있지만, 이번 임무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아서 가능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