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B급 가이드
보기 좋은 손가락이 잠든 이의 뺨을 스쳤다. 전시된 미술품을 몰래 만지는 것처럼, 혹은 선반에 쌓인 먼지를 훑는 것처럼 조심스럽고도 어딘가 거북한 손길이었다.
“네가 죽으면 후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한된 스킨십 속에서 몇 시간이나 가이딩을 퍼부은 탓에 초췌해졌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 달빛 속에서 빛났다.
피부 위를 미끄러지던 손끝은 멈추지 않고 나아가다 결국 터서 껍질이 일어난 입술에 닿았다.
“……그렇지도 않네.”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번지는 피, 적색, 고통, 두려움, 분노, 절망. 작은 지옥 속에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며 날뛰는 이는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수줍게 웃고 있었다.
인호는 초커가 단단하게 잠겨 있는 목에 손을 올렸다. 약간 힘을 주었지만 에스퍼는 어떠한 반항도 보이지 않았다. 말이 좋아 잠든 것이지, 거의 기절한 상태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총격 속에서도 살아남은 에스퍼는 쉽사리 죽는다.
‘널 살린 가이드가 네 목을 졸랐다는 걸 알면 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할까?’
옆에 있는 이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주현은 눈을 감고 고요하게 자고 있을 뿐이다. 희미하게 들리는 숨소리와 가볍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가슴팍이 아니었다면 이미 죽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핏기 없는 얼굴이었다.
연락을 받았을 때, 인호는 한창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에스퍼가 부상을 입었을 경우 가장 먼저 연락받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매칭 가이드다. 오직 그 이유로 전화를 받게 된 인호는 촬영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완전히 잊어 버린 채 당장 가겠다고 대답했다.
온통 피에 젖어 누가 봐도 죽어 가는 몰골로 누워 있던 신주현을 본 순간,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는 결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울지 않았다. 하다못해 소리치지도, 초조함에 먹혀 떨거나 움츠리지도 않았다. 다만 재와 먼지와 폭주 에스퍼의 피가 옷에 스며드는 걸 무시하며 차가운 몸을 끌어안았을 뿐이다.
고개를 들자 까만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 무리가 눈을 시큰거리게 했다.
목에서 어깨까지 내려온 가이드의 손가락은 끝을 모르고 살결을 타고 움직였다. 폭주 에스퍼의 팔은 온통 흉터로 뒤덮여 있다. 크고 작은 흔적들은 손등까지 이어지는데, 그 못난 손을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다.
“하…….”
입술 새로 흘러나온 고뇌 섞인 한숨은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고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그런, 밤이었다.
* * *
오전에 시작한 화보 촬영은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모든 걸 모델에게 맡기는 사람도 별로지만, 작은 동작 하나하나까지 전부 코치하는 사진가도 꽤 힘들다. 특히나 오늘은 겨우 그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며 열정을 불태웠기에 하루 종일 시달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이미 거절했던 제안임에도 몇 번이고 연락이 왔다고 매니저가 말했던 것도 같았다.
잠시 생각하던 인호가 고개를 들었다. 텅 빈 화장실에서 홀로 거울에 비치는 남자는 소름 끼치도록 무감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생기 없는 두 눈과 마른 볼, 꾹 다물린 입술. 아름다움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다. 최소한 인호는 그렇게 생각한다.
수면에 비친 자신에게 반해 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다는 나르키소스처럼 집요한 시선이지만, 두 눈동자에 담긴 것은 사랑처럼 아름다운 감정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매끈한 볼을 매만지던 남자는 화장실로 들어서는 인기척에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었다. 자신감 있으면서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작은 미소에 문으로 들어온 남자가 볼을 붉혔다.
인호는 말을 걸려는 남자를 자연스럽게 넘기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인호 씨. 만나자마자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정말 잘생기셨네요. 화면보다 훨씬 더 빛이 나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평소에도 그런 말 자주 들으시죠?”
“뭐, 적게 듣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난스러운 대답에 인터뷰어가 즐겁게 웃었다.
그녀는 인호가 속한 소속사 상무의 조카의 여자친구의 동생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남과 다를 바 없음에도 인맥은 인맥인 모양으로, 인호는 없는 시간을 쪼개 잡지 인터뷰를 위해 이곳에 앉아 있다.
어린 얼굴답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터뷰어는 비교적 서툴고 재미없게 인터뷰를 이어 나갔다. 그래도 대놓고 속을 긁거나 기분 나쁜 질문을 하진 않았다.
‘애초에 잡지 인터뷰라 진행이 좀 느려도 문제 될 건 없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인호 씨는 매칭 에스퍼 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분명 방금까지 좌우명 따위를 묻고 있었으면서 불쑥 튀어나온 질문엔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만약 인터뷰어의 행동도 글로 변해 잡지에 담긴다면 ‘눈을 빛내며’라는 문장이 적힐 것이다.
인호는 천천히 질문을 곱씹었다. 매칭 에스퍼. 신주현. 어떻게 생각하냐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콕 집어 말하기가 어렵네요.”
“그럼 한 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가장 특징적인 부분.”
어떻게든 그와 매칭한 폭주 에스퍼의 정보를 끄집어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인호가 폭주 에스퍼와 매칭했다는 건 과장 조금 보태서 전 국민이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에스퍼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퍼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든 이 잡지는 화제가 될 것이다.
고개를 조금 꺾어 천장 부근을 응시하는 인호는 그 자체만으로도 묘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었다.
신주현. 이런 곳에서 뱉기엔 너무 크고, 무겁고, 쓰다. 타액조차 마른 입으로 목젖을 움직인 남자가 고개를 내렸다.
불과 며칠 전에 그를 잃을 뻔했다든가, 고집이 세지만 쉽게 볼을 붉히고 자존심이 하늘을 뚫을 정도라든가. 매칭 에스퍼에 대해 생각하던 인호가 피식 웃었다. 평소의 부드럽고 맑은 미소가 아닌, 조금 일그러졌으나 보는 사람이 흠칫 놀랄 정도로 예쁜 미소였다.
인터뷰어의 눈이 동그래졌다.
“웃는 게 귀여워요.”
“네?”
“직접 보시면 알 텐데.”
제가 그걸 어디서 보겠어요? 말하지 않아도 감정이 그대로 떠 있는 얼굴을 알아챘음에도 가볍게 넘긴 인호가 발끝을 까딱였다.
그의 매칭 에스퍼는 제법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가정환경 탓인지 말없이 눈빛만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법을 안다.
그러나 미소만큼은 눈에 띄게 예쁘다. 날 선 눈이 둥글게 휘고 보조개를 만들며 올라가는 입술은 그를 아주 어리고 사랑스러워 보이게 만든다.
심지어는 인호를 겁먹게 만들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웃어도 효과는 똑같다. 적어도 인호가 느끼기엔 그렇다. 본인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니, 분명 모를 테지만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인터뷰어는 자신이 들은 게 사실인지 가늠하는 표정으로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그 반응에 인호는 며칠 전 황급히 C동으로 달려갔던 날을 떠올렸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누워 있던 그를 본 충격으로 아마 수명이 3개월은 줄었을 것이다.
그 복수라고 해도 좋았다. 길을 걷는다면 누구라도 뒤돌아볼 만큼 아름다운 남자가 약간의 장난기를 머금은 채 씨익 웃었다.
“꼭 생쥐를 잡은 기세등등한 고양이처럼 웃거든요.”
그것만은 하나도 안 변했더라고요. 누구에게도 뱉을 수 없는 말을 꿀꺽 삼킨 인호가 느긋한 손길로 차가운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유리잔 표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손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 * *
발매된 잡지에는 매칭 에스퍼에 대한 내용이 쏙 빠져 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내용도 아닐뿐더러 무섭고 사악한 폭주 에스퍼를 좋게 말하는 것 자체가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한 것도 아니라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혹여나 잡지에 그 대화가 실렸다면 그것을 본 신주현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궁금증이 미약하게 남았을 뿐이다.
인상을 쓰며 쓸데없는 말 지껄이고 다니지 말라고 할까. 아니면 볼을 붉힌 채 있는 힘껏 노려볼까. 그도 아니면 왜 나를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볼까.
그럼 인호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지?
잘 익은 체리처럼 붉은 눈동자가 똑바로 시선을 맞추고, 늘 미운 말만 하는 입술을 얌전히 다물고. 그런 얼굴로 신주현이 물끄러미 올려다보면, 그는…….
“……부질없다.”
“응? 뭐라고?”
“아무것도. 그냥 혼잣말이야.”
“싱겁기는.”
대기실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매니저가 약간 일으켰던 몸을 다시금 의자에 파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