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 에스퍼 9화
수리 기사, 도진은 안대로 눈이 가려진 상태로 C동에 왔다. 덜덜 떨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간 그는 검붉은 눈의 폭주 에스퍼와 만났다.
에스퍼를 위한 다양한 도구를 개발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도진은 당연히 폭주 에스퍼용 초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폭주 에스퍼를 만나게 될 거라곤, 심지어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딱 달라붙어야 할 것이라곤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살면서 처음 만난 폭주 에스퍼는 무서웠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그냥 척 보기에 사람을 겁먹게 만드는 남자였다.
도진은 살면서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곳에서 위험을 줄줄 뿜어내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보다 반 뼘은 큰 키, 날카로운 눈매 속에 담긴 섬뜩한 눈동자, 살면서 웃어 본 적은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 꾹 다물린 입술. 거기다 상처는 또 왜 그리 많은지. 얼마나 험하게 싸우면 몸이 저리되나 싶었다.
지금껏 다양한 에스퍼를 만나 왔던 도진은 흉터로 뒤덮인 에스퍼의 팔을 보며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문질렀다.
에스퍼는 가이드와 마찬가지로 능력의 강도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SS부터 E등급까지 있는데, 하위 등급과 상위 등급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C등급 에스퍼가 A등급 에스퍼를 날려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폭주. 에스퍼가 능력의 제어를 잃고 폭주하면 제 생명을 깎아 먹으며 폭발적인 힘을 발현한다.
그런데 그 폭주를 한 번 겪어 본, 심지어 언제 다시 폭주할지 모르는 에스퍼가 그의 앞에, 그것도 바짝 붙어 앉아 있다.
건물이 파괴되고 자동차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장면을 뉴스에서 본 적 있는 도진은 애써 눈에 힘을 주며 끊어진 회로를 교체했다. 초커를 빼서 회사로 보내 주면 바로 수리해서 돌려줄 텐데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 잠깐의 시간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폭주 에스퍼의 목에 달라붙어 협소한 공간에서 수리해야 하는 도진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선배들이 미루고 미뤄 억지로 오게 된 자리였다. 보너스가 두둑하게 나온다는 소식만 아니었으면 끝까지 거절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폭주 에스퍼와 단둘이 남겨지게 될 줄 알았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결코 오지 않았을 테다.
‘그나저나 무척 과묵한 사람이네.’
도진은 힐끗 주현의 얼굴을 살피다 검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쳐 어깨를 움츠리며 숨을 삼켰다.
잠시 후 다시 한번 고개 들었을 때, 폭주 에스퍼는 회색 벽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도진에게 관심 없다는 듯, 혹은 그를 겁먹게 하지 않겠다는 듯 고집스러운 시선이었다.
폭주 에스퍼의 눈이 깜빡였다. 제법 기다란 속눈썹이 흔들리고, 어두운 적색 눈동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고 있었다. 그 옆얼굴을 잠시 바라본 도진이 허리 숙여 조금이나마 떨림이 멎은 손으로 수리를 계속했다.
수십 분 후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상처 없이 수리를 마친 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직후 아무리 그래도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그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눈치를 살폈으나, 다행히 폭주 에스퍼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 고쳤습니다. GPS에 연결된 회로가 끊어져 있었어요. 어, 그리고 연결 부위에 튀어나와 있던 쇳조각을 제거했습니다. 거슬리실 것 같, 아서…….”
그가 고쳐야 할 건 GPS뿐이었다. 그저 튼튼하게 고정하는 데만 집중한 탓에 착용자의 통증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수리는 의뢰받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도진은 무심코 수리해 버렸다.
그리고 설명하다 뒤늦게 무서워져 황급히 가방을 품에 안고 폭주 에스퍼를 올려다보았다. 흉터로 뒤덮인 다부진 손이 목덜미를 매만졌다. 희미한 상처가 남아 있던 피부 주변을 손끝으로 훑은 그는 기분 탓인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고마워요.”
슬그머니 올라간 입꼬리.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가늘어진 검붉은 눈동자. 자세히 보니 의외로 섬세한 얼굴이었다.
폭주 에스퍼를 멍하게 바라보던 도진이 번뜩 정신을 차리곤 허둥지둥 방을 나왔다.
“아시겠지만 이곳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됩니다. 물론 인터넷에 올려도 안 돼요. 익명 사이트까지 전부 찾아내서 고소할 테니 그냥 잊고 사는 걸 추천합니다.”
직원의 으름장에 도진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폭주 에스퍼를 만난 것으로 모자라 한 시간 가까이 붙어 앉아 대화까지 나누었다는 건 술자리에서 말하기 좋은 영웅담이지만, 도진은 수억대의 고소를 감당할 능력도 생각도 없었다. 직원 말대로 잊고 사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폭주 에스퍼가 지었던 그 기쁜 듯한 미소만큼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안대로 눈이 가려진 채 차에 올라탄 도진이 생각했다.
* * *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이었다.
에스퍼의 상처는 적절한 가이딩이 있으면 흔적도 없이 곧바로 낫는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상식이지만, 흉터에는 효과 없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가이딩 없이 나아서 흉터가 남아 버린 상처는 그 자체로 아문 것이기에 가이딩을 받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필요한 때 가이딩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 주현의 몸에는 흉터가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손꼽히게 큰 흉터 몇 개는 비가 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콕콕 쑤시곤 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쏟아지는 빗방울을 싫어하는 주현이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오늘따라 기분 좋아 보이네요?”
차인호의 물음에 무의식적으로 목을 문지르고 있던 주현이 눈을 깜빡였다. 눈치챌 줄 몰랐다는 듯 잠시 머뭇거린 그가 의외로 순순히 대답했다.
“전부터 거슬리던 게 사라졌거든요.”
“그게 뭔가요?”
“별것 아닙니다. 그냥, 가시?”
초커의 잠금 부분에 삐죽 솟아 있던 쇳조각은 늘 주현의 목에 작은 생채기를 만들곤 했다. 이미 익숙해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어제부로 완전히 사라졌다. 겁먹어 숨도 제대로 못 쉬었으면서 굳이 시간을 들여 조각을 없애 준 수리 기사가 상당히 고마웠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도 쓰라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 주현을 잠시간 말끄러미 보던 차인호는 어쩐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게 너무나도 온화하고 편안해서, 마치 보면 안 되는 것을 본 기분마저 들었다.
이게 바로 차인호의 이상한 점이다. 한껏 밀어내다가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근처에 다가와 있다. 경계하긴 하지만 거기에 두려움은 없고, 선명한 적의가 있으나 닿는 걸 꺼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남자다.
평소였다면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힘껏 노려보며 강한 척했겠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목이 아프지 않으니까. 빗소리에는 어딘가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으니까. 그래서 주현은 비교적 얌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제가…… 무섭지 않습니까?”
제법 세찬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렸다.
주현은 자신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호출기를 쥐고 있는 손이나 미묘하게 찌푸려지곤 하는 눈을 두려움이라고 생각했지만, 잘 되짚어 보면 두려움과는 조금 달랐다.
“무서워해야 하나요?”
“그렇다기보단 폭주 에스퍼가 옆에 있는데 안 무서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누구나 위태로운 폭주 에스퍼를 두려워한다. 어제 만난 수리 기사가 그렇듯이. 그가 다가가면 총을 움켜쥐는 직원들이 그렇듯이. C동 에스퍼들의 목에 폭탄이 달린 개 목걸이를 채운 인간들이 그렇듯이.
그러나 폭주 에스퍼와 매칭한다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을 짓을 저지른 남자는 남들처럼 행동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기대에 못 미쳐서 죄송하지만, 전 아주 무서운 일을 겪은 적이 있어서요. 당신이 무섭지 않네요.”
“죽을지도 모르는데?”
쭉 뻗은 차인호의 검지가 금이 간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토도독, 빗소리가 정적을 채웠다. 이 와중에도 흘러들어 오는 가이딩에 주현은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차인호는 부드럽게 웃으며 낡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오늘 날씨가 참 좋죠?”
노골적인 말 돌리기에 주현이 입을 다물었다. 좀 더 자연스러운 말이 있었을 텐데도 굳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주현이 자신의 불편함을 알아주길 원한 걸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어째선지 죄라도 지은 기분으로 차인호를 살핀 주현은 위로 올라간 입꼬리와 달리 웃지 않는 눈을 보고 깨달았다. 차인호는 신주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워할 뿐.
개인적인 감정인지 주현이 속한 그룹 전체에 대한 감정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주현은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데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네요.”
이제 와서 새롭지도 않다.
짙은 흉터가 여기저기 남은 손이 느릿하게 담배와 성냥을 꺼내 들었다. 습기를 머금은 성냥은 몇 번의 헛손질 끝에 겨우 불이 붙었다.
“이럴 땐 바보 같은 소리라고 말해야죠.”
“당신이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잖아요.”
차인호는 그것도 맞는 말이라며 웃었다. 불쑥 멀어졌다가도 다시금 아무렇지 않게 곁을 맴도는 그를 어떻게 할 생각은 진작에 접었다. 다만 언제쯤 이 연극에 질릴까. 그게 좀 궁금할 뿐이다.
“저 비 싫어해요.”
기다란 속눈썹에 갇힌 차인호의 눈동자가 물방울이 끝도 없이 처박혀 형체를 잃고 흘러내리는 유리창을 응시했다. 그 목소리가 왜 실망스럽게 들리는 것인지, 주현은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