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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161)

폭주 에스퍼 2화

차인호는 가만히 앉아서 그를 바라보았는데, 왼손 주먹 위로 익숙한 호출기가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누르는 순간 직원들이 들이닥쳐 주현을 제압할 테니 안전장치로는 나쁘지 않았다.

“안녕하-”

끼익, 의자와 바닥이 내는 높은 마찰음이 차인호의 인사를 끊었다.

삐걱거리는 의자에 털썩 앉은 주현은 긴 다리를 꼬며 지루한 얼굴로 가이드를 바라보았다. 다시 봐도 놀랄 만큼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러나 굳어서 바보같이 굴기엔 그는 너무나도 치열하게 살아왔다.

주현은 자신이 폭주 에스퍼라는 이름표가 없다고 해도 상당히 위협적인 인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184㎝라는 키와 울퉁불퉁하진 않아도 실전 근육으로 가득 찬 몸, 거기다 폭주 에스퍼의 낙인과도 같은 검붉은 눈동자까지.

녹록지 않은 어린 시절 때문에 시선만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주현은 턱을 약간 들며 의미 없이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렸다.

차인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주현의 위협적인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폭주 에스퍼 앞이라는 상황 자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차인호라고 합니다.”

흉터로 뒤덮인 손이 주머니에 들어갔다. 파란색 무늬가 그려진 담배는 어젯밤에 산 것인데 벌써 절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위험하다며 라이터는 팔지 않는 주제에 성냥은 파는 C동의 유일한 매점을 조금 비웃은 주현이 연기를 깊게 내쉬었다.

“압니다. 차인호. 스물여섯 살. 무슨 영화 찍었는지도 나열해 드려요?”

이틀 전, 직원은 차인호의 프로필이 가득 적힌 종이를 내던지곤 달달 외우라고 말했었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센터장에게 제법 많은 봉투를 찔러준 모양이었다.

“당신 기분 상하게 하거나 털끝 하나라도 건들면 감옥 보낼 거라면서 달달 외우라고 하던데요.”

허공으로 뿜어진 연기가 차인호의 얼굴을 잠시 가렸다가 아스라이 흩어졌다.

“기분 좀 상하게 했다고 감옥에 가다니. 무서운 세상입니다.”

폭주 에스퍼가 검붉은 눈을 가늘게 뜨며 비웃음을 숨기지 않고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보통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맹수를 앞에 둔 것처럼 움츠러들곤 한다.

그러나 차인호는 그러지 않았다. 겁먹기는커녕 눈도 깜빡이지 않고 주현의 얼굴, 손가락, 그 끝에 매달린 담배를 차례대로 뚫어지게 보며 부드러운 어조로 속삭였다.

“그런 말까지 했나요? 직원분이 과장이 심하시군요.”

“왜 저는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요?”

“그야 저도 모르죠.”

주현이 발을 까딱이자 낡은 의자에서 작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묵이 이어졌다. 무표정으로 비죽이는 주현을 바라보던 차인호는 이내 체념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얼굴마저 화보가 되었으나 주현의 동정심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피곤하면 이만 돌아가셔도 되는데요.”

“아뇨, 그저…… 생각과 조금 달라서 놀랐을 뿐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셨길래?”

대답은 없었지만 듣지 않아도 뻔했다. 괴물답게 묵묵하고 죄책감에 절어서 고개 숙이고 있거나 혹은 가이드의 등장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생각했을 것이다.

확실히 주현은, 정확히는 C동에 있는 모든 에스퍼는 만성 가이딩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 때문에 차인호에게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방사 가이딩만으로도 두통이 조금 사그라드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기엔 주현은 너무나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작은 호의에 바닥을 기는 버러지로 보일 바엔 죽을 걸 알면서도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는 게 훨씬 낫다 생각하는 사람.

발목을 감싸는 단단한 부츠가 옆에 있던 의자를 걷어찼고,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낡은 의자가 회색 바닥을 나뒹굴었다.

“폭주 에스퍼 주제에 기 안 죽어서 미안하네.”

큰 소리가 났지만, 문밖에 있는 무장한 직원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호출기가 눌리기 전까진 어떤 소음과 폭력적인 언행에도 문을 열지 않는 게 규칙인 탓이다.

넘어진 의자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던 차인호의 눈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드럽게 휘었다. 빌어먹게 예쁜 얼굴은 웃으니까 더 예뻤다.

“미안할 정도는 아니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굳이 C동을 찾아오는 가이드 중에 멀쩡한 놈은 없다. 주현은 그 진리와도 같은 말을 생각하며 연기를 내뱉었다.

A동이나 B동의 가이딩 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아마 C동과는 다를 것이다.

C동의 가이딩 룸은 낡은 테이블과 낡은 의자, 그리고 낡았지만 커다란 침대로 구성되어 있다. 친절하게도 자그마한 욕실이 딸려 있어 전체적으로 오래된 모텔방과 비슷한 이곳을 주현은 싫어했다. 에스퍼라면 누구나 가이딩 룸을 좋아하겠으나 C동의 에스퍼들에겐 지옥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가이드와 마주 앉아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주현은 시큰둥하게 차인호를 바라보았다.

깊은 생각에 빠진 표정. 초조하게 흔들리는 손가락. 꽉 쥐고 있는 호출기. 그도 원해서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매칭을 맺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 꺼리고 있으면서 어떻게 주기적으로 만나 가이딩을 하겠는가.

예상 범위 내의 모습에 느긋해진 주현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차인호는 매칭에 대해 말하지도, 그렇다고 그냥 일어나서 이곳을 나가지도 않았다. 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뭐가 되었든 주현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설마 진짜로 폭주 에스퍼와 매칭하러 왔을까. 결국 폭주 에스퍼는 너무 위험하고 제멋대로였다는 말과 함께 돌아갈 것이다.

기사가 나가면 폭주 에스퍼 A씨는 온갖 욕을 먹겠으나 어차피 그들이 주현을 실제로 아는 것도 아니니 괜찮았다.

주현은 고개를 들어 칙칙하고 얼룩이 묻어 있는 천장을 보며 연기를 뱉었다. 그러곤 체념조차 없이 눈을 감았다.

폭주 에스퍼는 에스퍼로서 시민들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반대로 인명 피해를 냈다. 그 죄로 그들은 죽을 때까지 봉사해야 한다.

워낙 위험한 임무를 맡는 터라 위험수당으로 많은 급여를 받으나 그중 일정 비율 이상은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 법이 있다. 거의 절반에 육박하지만 그래도 돈 쓸 일이 거의 없는 탓에 나름대로 돈이 모이기는 한다.

에스퍼가 폭주하는 비율은 티끌보다도 작고, 거기서 살아남는 비율은 그 절반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보통 능력 조절이 능숙한 이보다는 상대적으로 미숙한 젊은 에스퍼가 많이 폭주하기 때문에 C동에 있는 에스퍼 중 40대를 넘어가는 사람은 없다. 예전에는 있었지만 이미 죽은 지 오래다. 임무에 나갔다가 살아 돌아오지 않은 이도 많고, 본인 방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동료도 몇몇 있다.

주현은 현재 그런 C동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문 폭주 에스퍼였다. 무려 11년을 있었다. 바깥에 대한 향수를 느끼기엔 이 회색 벽에 너무나도 익숙해졌다는 말이다.

그다지 TV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님에도 주현이 알 정도면 차인호는 아주 유명한 연예인일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는 그저 평범한 가이드일 뿐이다.

가이드가 없으면 목숨이 위험한 에스퍼이면서도 가이드를 썩 좋아하지 않는 에스퍼가 무감정한 얼굴로 고개를 똑바로 해 금이 간 테이블을 응시했다.

결국 침묵에 지쳤는지, 혹은 시간을 때우고 싶었는지 차인호는 나름대로 주현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담배 피우시나 봐요?”

힐끔 바라본 차인호는 의외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걱정이라기엔 멀고, 불만이라기엔 가까웠다. 왜 그런 시선인지 알 수 없던 주현은 엄지손톱으로 필터를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여기 술은 안 팔아서.”

“몸에도 안 좋은 걸 잘도 물고 있네요.”

“폐암 걸리기 전에 죽을 거니까 괜찮습니다.”

작은 숨소리와 함께 내뿜어진 연기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졌다. 처음 피웠을 땐 분명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매캐한 냄새가 불만인지 눈썹을 구긴 차인호가 다리를 꼬며 말했다.

“원래 그렇게 비관적입니까?”

“그쪽이야말로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네요.”

“네. 당신한테 궁금한 점이 많거든요.”

“왜요?”

차인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생이라곤 모를 것 같은 화사한 얼굴은 C동의 회색 벽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도 좋아서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것은 주현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라면 지금쯤 휴게실에서 범규나 세화와 체스를 하고 있었을 텐데. 아니면 오목. 아니면 그냥 드러누워 낮잠을 자든가.’

담배가 거의 끝까지 타들어 갔다. C동 매점에서는 한 가지 종류의 담배밖에 팔지 않는다. 편의점에 내놓아도 아무도 안 사 갈 정도로 독하고 질 낮은 담배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다.

차인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테이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크게 화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썩 기분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에 반해 은근하게 흘러나오는 방사 가이딩에 주현의 몸은 점점 더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었다. 늘 가이딩이 부족한 몸은 겨우 이까짓 가이딩에도 좋아서 기뻐하고 있다. 주현은 그런 자신이 싫었고,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한 차인호도 싫었다.

하지만 아마 차인호는 그보다 훨씬 더 주현이 싫을 테니, 그냥 잠자코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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