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문성하는 한때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행복한 날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고. 또래 아이에 비해 지극히 불운한 날만을 살고 있다고. 그리고 이 운명이 절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오늘도 집에 갈 수 없으니 부모님 사인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전화를 받고, 60점짜리 시험지 확인란에 어머니 사인을 흉내 내 적으며 확신했다.
“되는 일이 없어요. 저는.”
몸살을 앓다 소풍에 가지 못한 초등학교 재학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라이브 바 휴일이라 어머니는 오랜만에 집에 있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와의 약속이 잡힌 듯, 거울을 보며 얼굴에 파우더를 바르고 있었다. 심드렁한 대꾸가 찾아들었다.
“엄마에게 그런 말 해 봐야 소용없단다. 엄마도 마찬가지거든.”
“좀 좋은 말 해 주면 안 돼요?”
“엄마는 말주변이 없어 그런 거 못 해. 너도 알잖니.”
어머니가 따분하다는 양 파우더 팩트를 접었다. 문성하는 이불 안에서 눈동자를 끌어 올렸다. 뒤도 안 보고 방을 나서려는 어머니를 보는데 돌연 목이 울컥거렸다. 자존심이 강해 좀처럼 운 일이 없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 도무지 서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자신에게는 나쁜 일만 일어날까.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다. 그나마 있는 어머니는 다른 아이 어머니와 많이 다르다. 따스한 말을 해 주지도 않고 60점짜리 시험지를 보며 화내지도 않는다. 자신은 달리기도 못하고 자전거도 못 탄다. 그림 대회나 글쓰기 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없다. 옆 반 여자애는 고양이가 졸졸 따라와 어쩔 수 없이 키운다는데, 문성하 동네의 고양이들은 도망 다니기 바쁘다. 덕분에 문성하는 집에 오면 항상 텅 빈 거실에서 혼자 TV를 본다.
“고양이 갖고 싶어요…….”
문성하가 흐느꼈다. 후끈해진 눈시울에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그것만 했다.
전에 없이 칭얼거리는 문성하를 둔 어머니가 멈칫했다. 그대로 나갈까를 고민하다, 결국 침대 쪽으로 왔다. 끅끅거리는 문성하를 안은 그녀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문성하는 젖은 눈을 훔치며 신열에 시달리는 몸을 앉혔다. 어머니가 사과했다.
“미안.”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됐어요.”
문성하 역시 뭐가 됐다는 건지 모르면서 말했다.
“세상에 행복한 사람만 있을 수는 없는 거야. 또 누군가에게는 네가 아주 행복한 아이일 수 있는 거고. 성하 너도 알잖니. TV에 나오는 아프리카 애들. 그런 애들에 비해 너는 얼마나…….”
“그런 식으로 우월감 느끼는 습관을 들이면 안 된다고 선생님이 얘기했어요.”
“그게 뭐 어때서? 별 웃기는 선생을 다 보겠네.”
어머니가 짜증을 냈다. 문성하는 어깨를 들썩이며 또 쏟아지는 눈물을 닦았다. 골치가 아프다는 양 머리카락을 넘긴 어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문성하의 방을 정처 없이 바라보다, 문득 눈길을 어느 곳에 고정했다. 마른침을 삼킨 그녀가 머리카락 꼰 손을 풀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을 타고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남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 물론 엄마는 성하 네가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생각하지만, 너 스스로에겐 아닐 수 있으니 함부로 얘기하지 않을게. 이렇게 말하는 건, 엄마도 네 나이대 그랬기 때문이야.”
어머니가 들숨을 삼켰다. 적지 않은 시간 고민하고 난 그녀가 또 말했다.
“그렇다고 매일 불행한 일만 겪을 순 없는 거야. 가끔은 좋은 날도 와. 신도 양심이 있다면 항상 불행만 주진 않겠지. 우리는 선물 같은 어느 좋은 날을 기대하며 사는 거야. 다 그러고 살아. 그러니 너무 힘들어할 것 없어.”
어머니가 손을 뻗었다. 문성하의 머리통을 덮은 그녀가 가볍게 다독여 줬다.
“분명히 좋은 날이 와. 응? 성하야.”
간신히 울음을 그친 문성하의 눈망울이 굴러갔다. 떠돌던 시선이 벽면에 붙어 있는 한 사진에 걸렸다. 학교 단상에서 트로피를 들고 있는 어머니의 고교 시절 사진이다. 그녀는 학교 축제 때 반 대항 장기자랑에서 노래를 불러 우승했다. 어머니의 방에는 박아 둔 못이 없어 그나마 못이 있던 문성하의 방에 그걸 걸었다.
흐물거리는 망막에 어머니의 앳된 모습을 담으며 문성하는 마지못해 주억거렸다. 아마도 어머니에게는 저 시절이 가장 좋았던 날이었나 보다, 하며. 그래. 저런 시절도 있어야지, 신이 아주 잔인하지 않다면 저런 선물도 가끔은 주겠지, 하며.
“네. 엄마.”
그런데 자신이 정말 그걸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문성하는 초조함에 속으로 또 울었다.
***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가물거린 눈이 서서히 뜨였다. 흐릿한 시야에 커튼을 젖혀 바깥을 확인하는 주혜성이 들어왔다. 이곳에 왔을 때 오후 3시였는데, 어느덧 어두컴컴한 밤이다. 시간이 꽤 흐른 듯한데 정확히 몇 시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여간 주혜성과 자고 나면 항상 이 모양이다.
“혜성아.”
소파에서 일어난 문성하가 불렀다. 커튼을 도로 친 주혜성이 이쪽을 봤다. 조심스러운 사과가 찾아들었다.
“미안. 내가 깨웠네.”
“아니야. 지금 몇 시야?”
의도치 않게 잠긴 목소리가 나왔다. 어둠 속에서 탁자를 더듬거린 주혜성이 디지털시계를 집어 들었다. 라이트를 켜 액정을 확인한 그가 답했다.
“오전 5시 30분.”
“벌써?”
하품을 한 문성하가 소파 위에서 알몸으로 늘어졌다. 시계를 내려 둔 주혜성이 다가왔다. 기진맥진한 손이 흘러내린 주혜성의 재킷을 추슬렀다. 가을이라 그런지 조금 추웠다. 주혜성과 몸을 겹치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떨어지고 나니 계절을 알겠다.
“네 정액 냄새날 것 같아. 내 몸에서.”
곁에 앉는 주혜성에게 말했다. 주혜성이 픽, 웃었다.
“그렇게까지 안 나.”
“사무실에서 섹스 못 하겠어. 씻을 데가 없잖아. 이 꼴하고 공용 화장실 쓸 수도 없고.”
재차 하품한 문성하가 주혜성 쪽으로 상체를 옮겼다. 그의 허벅지에 머리를 눕히고는, 재킷을 어깨까지 끌어 올렸다. 내려다보던 주혜성이 갸웃했다.
“왜? 난 좋은데.”
“찝찝하잖아. 냄새 배고.”
“그러니까 좋지.”
주혜성이 손을 내밀었다. 재킷 안을 파고든 손가락이 맨 가슴을 간질거렸다. 움츠린 문성하가 신음을 흘렸다.
“으음…….”
“형 몸에 내 냄새 배는 것 좋아.”
피아노를 치듯 두드리다 이동한 손가락이 문성하의 목을 쓸며 올라왔다. 그대로 얼굴을 감싼 주혜성이 뇌까렸다.
“더 남겨야 하는데.”
묘하게 욕정 어린 한 마디에 문성하의 속눈썹이 번쩍 들렸다. 뭉그적거린 몸이 급하게 일으켜졌다. 주혜성의 벗은 상체를 밀친 문성하가 입구를 보며 말했다.
“일어나자. 곧 직원들 출근하잖아. 이러고 마주칠 셈이야?”
“어차피 여긴 아무도 안 와. 3실은 만들 때부터 청신투자 것이라, 함부로 접근 못 하는 공간으로 다들 알거든.”
“그래도 집에는 들러야지. 오늘이 있는데.”
문성하가 엄하게 타일렀다. 빤히 바라보던 주혜성이 물었다.
“설마 동생 봐야 해서?”
“혜성아.”
“지금 가도 동생 없을걸. 내가 이사시켰어.”
“뭐.”
문성하의 입이 벌어졌다. 갑자기 등줄기가 송연했다. 그렇게 안재림에게 손대지 말라 했는데, 기어이 일을 벌였구나 싶었다.
“주혜성. 너…….”
“이 주소 기억나?”
격양된 말을 자른 주혜성이 뭔가를 건넸다. 엉겁결에 받아 든 문성하가 간접 조명의 힘을 빌려 글자를 읽었다. 서울시 강남구의 한 주소지다. 다만 아무리 봐도 명확한 위치가 유추되지 않았다.
“몰라. 어딘데?”
“15년 전 형하고 내가 반년 동안 산 아파트. 미국 가기 직전까지 지내던.”
주혜성이 종이를 거둬 갔다. 그제야 아, 한 문성하가 찡그렸다.
“그게 뭐.”
“거기 재건축했어. 지금은 고층 주상 복합이 됐고.”
“지나가면서 본 것 같아.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데?”
“거기 펜트하우스 계약했어. 앞으로 형은 거기서 살아. 나하고.”
“그럼 재림이는……!”
“형 동생은 그 밑층으로 들어올 거야.”
주혜성이 팔짱을 꼈다. 눈을 키운 문성하가 머무적거렸다. 갑작스러운 얘기에 넋이 나간 문성하를 보며 주혜성이 바람 빠진 웃음을 터뜨렸다. 몸을 숙여 얼굴을 가까이한 그가 속삭였다.
“동생에게는 동의 구했어. 형 잠든 사이 통화해 설득했고, 그쪽에서 그리하자 했어.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이던데. 대단히 깐깐한 부모처럼 굴기라도 할까 걱정했거든. 조금 침울한 티를 내긴 했지만 가까이서 사는 거니 상관없다 했어. 무엇보다 우리 관계를 잘 알고 있더라고.”
문성하의 목이 꿀꺽거렸다. 여전히 조용한 문성하를 바라보던 주혜성이 팔을 뻗었다. 굳어 있는 목을 천천히 두르며 자신 쪽으로 당겼다. 자석처럼 이끌린 문성하가 주혜성의 흉근에 얼굴을 붙였다. 자신의 정액 냄새가 났다.
“15년 전 만난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 이번에는 반년 말고 좀 길게……. 반세기 어때. 그 이상도 좋고.”
“그 전에 거기 재건축할걸.”
“또 지어지는 곳 가서 살면 되지. 땅은 어디 가지 않아.”
주혜성의 어깨가 늘어졌다. 잠이 올 것 같은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거기가 내 행운의 시작이야. 안 떠날 거야, 이제.”
문성하의 눈꺼풀이 달막였다. 옴씰거리다 올라간 손이 주혜성의 어깨를 잡았다. 온기를 새기듯 주무른 문성하가 입을 열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혜성아.”
몽롱한 눈에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낯이 비쳤다. 사뭇 담담한 언어가 나왔다.
“나야말로 운이 없는 줄 알았어. 심지어 너하고 재회하고 나서 더. 저 남자는 손대는 족족 다 잘 되고 다 잘 풀리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서. 그게 힘들 때도 있었어.”
문성하의 입에서 냉소가 샜다. 권태로운 한 마디가 덧붙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아니더라고. 항상 나쁜 줄 알았던 내 인생에도 짧지만 좋았던 순간이 있었고. 전부 돌이켜 보니 희한하게도.”
문성하의 동공이 오롯해졌다. 망막에 담긴 남자가 그림처럼 선명해져 갔다. 문성하는 또박또박 말했다.
“거기에 네가 있었어. 항상.”
곧 주문을 외우듯 못을 박았다.
“내 행운도 너야. 혜성아.”
풀어져 있던 주혜성의 입매가 느릿느릿 호를 머금었다. 문성하의 볼을 덮은 손이 만족스럽게 맨살을 쓸었다. 이내 심장과 가장 가까운 가슴에 다다라, 심박수를 헤아리듯 손바닥을 밀착했다. 눈을 내리깐 주혜성이 입을 뗐다.
“이렇게 하자. 나는 형이 준 운으로 갖고 싶은 걸 전부 가질게. 그게 설령 세상이라 해도.”
살을 비비적거린 손가락 하나가 곤두섰다. 심장을 향해 꾹, 누른 그가 말했다.
“대신 형은 나를 가져.”
주혜성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똑바로 눈을 맞춘 그가 울대뼈에 힘을 실었다.
“내 선물이자 부탁이야.”
문성하의 가슴이 크게 울렁였다.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오싹했다. 단지 주혜성이 만진 가슴이나 목, 얼굴뿐이 아니라. 혈관이나 머릿속, 심장까지도. 전부.
짜릿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일어나자.”
이대로 있다간 무발기 사정이라도 할 것 같아, 문성하가 등을 보였다. 소파 밑으로 발을 빼자마자 뒤에서 다가온 팔뚝이 허리를 둘러 당겼다. 훅 이끌린 뒷등이 주혜성의 가슴팍에 붙었다. 더운 숨을 불어넣은 주혜성이 시트에 모로 누웠다. 덩달아 문성하의 몸이 눕혀졌다. 뒤통수 너머에서 잔잔한 음성이 들렸다.
“조금만 더 누워 있자. 이대로 계속 있고 싶어.”
거부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였다. 발가락을 곰지락거린 문성하가 끝내 긴장을 풀었다. 기다렸다는 양 문성하를 품에 가둔 주혜성이 뒷덜미에 얼굴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냄새를 맡는 것 같기도 하고, 탐색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혹은.
살기 위한 산소 호흡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잠자코 안긴 문성하가 침침한 실내를 눈으로 살폈다. 배회하던 눈길이 살짝 열린 커튼 사이에 걸렸다. 비좁은 틈으로 점점 밝아 오는 도심이 비쳤다. 미지근한 주홍빛을 머금은 하늘이 미세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서울에서 보기 드문 하늘이었다. 벌써 오늘의 일기 예보가 예상됐다. 맑음.
휴식 같은 주혜성의 숨소리를 들으며 환해져 오는 창밖을 연신 감상했다. 커다란 캔버스처럼 펼쳐진 하늘 어딘가에서 새가 날아다녔고, 비행기가 떠다녔으며, 뭉게구름이 나부꼈다. 평온. 이 캔버스가 그림이라면 이보다 그에 걸맞은 제목은 없을 것이다.
“좋다.”
혼잣말을 한 문성하가 눈을 감았다. 종종 솜털을 곤두세우는 어느 남자의 안온한 호흡에 몸을 맡긴 채, 지금 이 순간을 만끽했다. 곱씹고 또 곱씹어도 소름이 끼칠 만큼 안락했다. 모든 것이 완전했다.
어느 나빴던 날을 모조리 잊을 정도로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