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37)

34.

[피의자 김 모씨는 투자 실패에 대한 울분을 표출할 길이 없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범행 직후 경찰이 측정한 김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8%로 지극히 만취한 상태였으며…….]

“주혜성이 입원한 병원, 여기래.”

건너편 테이블에서 한 여자가 케이크를 먹으며 말했다. 맞은편 여자가 어? 소리를 냈다.

“진짜? 한 번도 못 봤는데.”

“너 바보야? 입원해 있는 사람을 네가 볼 일이 뭐가 있어.”

“아니, 그래도 산책 같은 거 나올 것 아니야. 내가 오늘 내내 이 병원에 있었는데…….”

“산책 못 해. 아직 안 깨어났대.”

여자가 손가락 사이에 끼운 포크를 기우뚱거렸다. 맞은편 여자가 이해했다는 양 손을 모았다.

“아. 난 또 깨어난 줄.”

문성하의 앞에서 딱, 테이블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멀거니 여자들을 응시하던 문성하가 느릿느릿 정면을 확인했다. 탄식하는 제임스 임이 보였다.

“안 드실 겁니까.”

“충분히 먹었습니다.”

“뭘 먹어요? 하나도 안 비었는데.”

제임스 임이 테이블 위 도시락을 가리켰다. 문성하는 흐릿한 눈으로 그것을 봤다. 장어구이와 불고기, 새우찜, 산적 등으로 구성한 도시락은 새것처럼 빈틈이 없었다. 옆에 굴러다니는 장식용 띠에는 알아주는 특급 호텔의 로고가 들어가 있었다.

“어디 식당을 모셔 가는 게 맞지만, 문 대표님께서 영 여기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비서 통해 제일 비싼 도시락이나마 준비한 겁니다. 성의를 생각해 좀 드시죠.”

문성하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눈싸움을 하듯 도시락을 보다, 마지못해 젓가락을 쥐었다. 내려간 끄트머리가 반찬 투정을 하는 것처럼 안을 헤적거렸다. 한참 후에야 잡힌 불고기 한 점이 입 안으로 들어갔다.

막 씹은 문성하의 낯이 찌푸려졌다. 으깨진 동물 살점에서 비린내가 훅 났다. 헛구역질 한 문성하가 몸을 구부렸다. 쿨럭이는 소리와 함께 입 안의 것이 튀어나왔다. 테이블을 잡은 채 헐떡이던 몸이 흘러내렸다. 입술을 타고 줄줄 위액이 떨어졌다.

“성현 씨! 이쪽 와 봐요.”

황급히 일어선 제임스 임이 누군가를 불렀다. 대기하던 비서가 뛰어왔다. 제임스 임이 지시했다.

“병원 프런트에 얘기해 수액 하나 준비해 달라 해요. 좀 급한 상황이라 하고. 내 이름 대면 신속하게 처리될 거야.”

“알겠습니다.”

떠나가는 비서를 일별한 문성하가 맥없는 팔을 들어 올렸다. 저기요. 남자와 제임스 임이 동시에 문성하를 봤다. 위액으로 범벅이 된 입을 훔친 문성하가 얼굴을 보였다. 입술 틈에서 기진맥진한 언어가 샜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요. 내가 하고 싶지 않아요.”

자못 또박또박한 한마디가 덧붙었다.

“혜성이 일어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해요. 나는.”

***

뒤편에서 소란하게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형처럼 앉아 있던 문성하가 그쪽을 힐끗했다. 의사와 간호사를 둘러싼 제임스 임과 권도재, 한나가 보였다. 어딘가 격양된 세 사람을 의사는 어떻게든 달래 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더 시끄러워지기만 했다.

반듯하게 고개를 튼 문성하가 도로 침대 위를 봤다. 베개에 누워 일정한 심호흡을 반복하는 훤칠한 남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 조금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주 보기 좋은 얼굴이지만 문성하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소독약 냄새 때문에 특유의 체향도 느낄 수 없었다.

“멍청아.”

뇌까린 문성하가 눈을 깔았다. 들었을 리 없는 그의 가슴팍이 천천히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빤히 살피다 옆얼굴을 기울였다. 심장의 위치를 가늠해 가며 귀를 붙였다. 사고가 난 직후 한 걸 또 했다. 이번이 약 서른 번째. 마음 같아선 천 번도 할 수 있었다. 주혜성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같은 걸 할 수 있었다.

사고를 낸 건 에센더에 투자한 30대 초반의 투자자였다. 잘될 줄 알았던 에센더가 그렇게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약 2주 전 에센더 대표가 투자금 전액과 회사 보유금을 들고 해외로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문성하와 처음 만난 2년 전 대면하자마자 사기꾼 인상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런 짓거리까지 할 줄은 몰랐다.

문성하로부터 지분을 사며 2대 주주가 된 NGX코리아는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일목요연하게 사태를 설명하는 보도 자료를 내고, ‘이를 계기로 K-엔젤 벤처 프로젝트 심사 기준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내용의 입장 발표를 했다. 애초에 NGX 입장에서는 티끌도 안 되는 투자 금액인지라 과잉 대처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피해자 입장이기에 투자업계에는 ‘운이 나빴다’ 정도의 동정 여론이 형성되는 데 그쳤다.

뒤집어진 건 일반 투자자였다. NGX가 투자했다는 얘기를 듣고 우르르 몰려든 개인 투자 자금이 30억 원에 달했다. 자연히 곡소리가 났다. 심지어 책임을 물을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 투자 대상 당사자인 에센더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데, 그 에센더가 해외로 날라 버렸다. 100만 원을 투자한 사람은 100만 원을 투자한 사람대로, 1억 원을 투자한 사람은 1억 원을 투자한 사람대로 돈을 잃었다.

피의자는 무려 3억 6000만 원을 잃었다. 집을 사기 위해 모은 돈을 전부 에센더에 꼬라박았다 했다. 투자 직후 못해도 10배는 불리게 될 거라 주변에 자랑하고 다녔다는 증언이 있었다. 정작 찾아온 현실은 반대였지만.

절망에 빠진 피의자는 일주일 내내 술독에 빠져 지냈다. 그날도 강남에서 친구와 술을 마셨는데, 만취 상태로 대리 기사를 기다리며 운전석에 앉아 있다 주혜성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 시점에서 왜 시동을 걸었고, 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고, 왜 주혜성을 향해 돌진했는지는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했다. 그는 ‘불구덩이에 빠진 심정이었기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고 진술했다.

불구덩이. 문성하는 허망하게 그 말을 되뇌었다. 한편으로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한편으로는 너무도 이해가 돼서.

투자업을 하며 깨달은 건 사람은 자신의 돈을 걸 때 매번 천국을 본다는 거다. 나름대로 지옥도 살핀다 하지만, 그럼에도 돈을 붓는 건 이 도박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성공해 천국을 얻으면 다행이다. 문제는 실패했을 때다. 그때 겪는 지옥의 깊이는 천국의 높이와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득하다.

문성하도 종종 겪었다. 천국을 노리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일.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를 충분히 이해했을 거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대상이 주혜성이라 용서할 수 없었다. 문성하는 그가 빠진 지옥보다 더 깊은 지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겪는 지옥은 모든 지옥의 가장 말단에 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뇌에 이상은 없습니다. 24시간 동안 의식 불명에 빠지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흔한 후유증이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주저리주저리 해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성하는 또 뒤편을 봤다. 가만히 듣던 권도재가 어느 대목에서 화가 났는지, 대뜸 몸을 밀어붙였다. 분연한 한 마디가 터졌다.

“24시간이 아니고, 정확하게 25시간 48분입니다.”

의사가 무춤했다.

“그리고 ‘그 흔한 후유증’이 바로 우리가 우려하는 부분이고요.”

이를 간 권도재가 말을 이었다.

“주혜성 대표 ADHD 있었습니다. 이번 사고로 그와 관련한 후유증이 발생하면, 향후 생활하는데 큰 차질이 빚어집니다. 회사 운영은 말할 것도 없고요.”

“됐어. 그만.”

급히 나선 한나가 권도재를 저지했다. 억지로 그를 물러나게 한 그녀가 사과했다.

“미안해요. 선생님. 우리가 워낙 예민해서 그래요.”

의사가 아물거렸다. 한숨 섞인 대꾸가 흘러나왔다.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론상으론 그렇습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어요?”

이번엔 한나가 섟을 냈다. 의사가 피곤하다는 것처럼 제 눈가를 마사지했다. 병실이 냉해졌다.

문성하의 시선이 비껴 났다. 메마른 눈길이 소독약 냄새나는 낯에 걸렸다. 빤히 쳐다보다, 31번째로 옆얼굴을 기울였다. 31번째로 가슴에 귀를 붙였다. 삐, 삐, 하는 심박수 측정기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소리를 찾아 헤맸다. 직접 들어야 한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측정기가 담지 못하는 그만의 소리가 있다는 걸 안다. 오로지 문성하만 안다.

“난 네가 ADHD를 앓던 그때로 돌아가도 돼.”

나직한 언어가 나왔다. 뒤편이 또 시끌시끌했다. 다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바람에 쓸려 바스러지는 낙엽처럼, 조금조금 고적해졌다. 정적을 뚫고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푸르른 숲에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청명한 울림. 나무 향을 머금은 체향도 함께. 비로소 안도한 문성하가 목을 늘어뜨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넌 항상 같은 사람이야. 나에게.”

***

잠시 선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뜬 건 어떤 기척 때문이었다. 등을 세운 문성하가 입구 쪽을 확인했다. 막 들어온 하얀 재킷의 남자가 상체를 굽혔다. 문성하는 앉은 채로 인사했다. 소개도 생략한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문성하의 눈이 도르르 굴러갔다. 걸음걸이가 특이하다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기시감이 있다. 어제 주혜성의 사무실에서 자신을 스쳐 지나간 사람이다.

“밤을 꼬박 새셨나 봅니다.”

곁에 선 남자가 운을 뗐다. 문성하는 얼떨떨하게 답했다.

“네…….”

“주 대표님께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들어, 문안차 와 봤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실까요.”

“같이 종종 체스 두는 친구입니다.”

남자가 빙글거렸다. 문성하의 입이 말아 물렸다. 친구라고. 주혜성으로부터 들은 적이 없는데. 무엇보다, 주혜성보다 나이가 열 살은 많아 보이는데.

“이거 드리러 왔습니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남자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빠져나온 것이 시트에 올라왔다. 바라보던 문성하의 눈이 말똥해졌다. 트럼프 카드였다. 표시된 문양은 스페이드 에이스.

“주 대표님께서 잘못될 일은 없을 겁니다.”

어깨를 으쓱한 그가 카드를 두드렸다. 미심쩍게 주시하던 문성하가 목을 꿀꺽였다. 사이비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묘하게 신뢰가 갔다. 남자를 둘러싼 기이한 기류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물거리는 질문이 나왔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주 대표님께서는 아주 운이 좋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봐 온 사람 중에서 가장.”

말을 마친 그가 카드에서 손을 거뒀다. 그대로 발을 빼려다, 문성하를 일별하며 말했다.

“동생 분께서 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남자가 몸을 틀었다. 곧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문성하는 멀어져 가는 그의 등을 응시했다. 몸을 덮은 하얀 재킷이 깨끗한 도화지처럼 팔랑거렸다. 거기에 뭐라도 새겨야 할 것 같아, 문성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동생 아니에요.”

막 문손잡이를 잡은 남자가 멈칫했다. 돌아간 눈길이 문성하를 머금었다. 숨을 고른 문성하가 못을 박았다.

“애인이에요.”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왜 저렇게까지 웃을까 싶을 정도로 흡족해 보였다. 문성하의 눈이 찡그려졌다. 천천히 고갯짓 한 남자가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문이 열렸다.

“내가 말했잖아요. 운이 아주 좋다고.”

발을 내민 남자가 입구 너머로 사라졌다. 스르르 다물린 문에서 탁, 소리가 났다. 문성하는 얼빠진 표정으로 묵묵한 입구를 봤다. 빙무 속에서 열린 연극을 본 기분이었다.

괜히 째려보다 몸을 돌렸다. 습관적으로 주혜성부터 쫓던 눈망울이 문득 경련했다. 무심코 본 시트 위에 커다란 손아귀에 감긴 자신의 손목이 있었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던 시선이 끌어 올려졌다. 몸을 숙이면 얼굴이 겹칠 법한 거리를 두고, 말초 신경을 녹이는 훈기가 찾아들었다.

“너무 듣기 좋아서, 저절로 눈이 떠졌어.”

반쯤 들린 주혜성의 눈꺼풀 밑에서 반달이 된 눈동자가 빛을 건넸다. 조금은 따스했고, 조금은 탐욕스러웠다. 진 빠진 문성하의 아랫입술이 파들거렸다. 슬쩍 눈매를 휜 주혜성이 말했다.

“애인.”

달아 가는 손목이 들썩였다. 옴짝달싹하다 급하게 빠졌다. 이내 주혜성의 얼굴 쪽으로 끌어 올려, 왼쪽 볼에 손바닥을 붙였다. 소스라치는 질문이 나왔다.

“너 괜찮은 거야?”

“글쎄. 일단은?”

고개를 까딱한 주혜성이 이불 속 하체를 추슬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양다리가 들렸다 내려갔다. 몸을 일으켜 앉은 자세를 한 그가 이불 위를 슥 눈으로 훑었다. 곧 고저 없이 뇌까렸다.

“왼쪽 다리가 좀 뻐근한 것 빼고는 괜찮아.”

“뼈에 금이 갔대. 몇 주간 깁스를 해야 할 거야. 심각한 건 아니라 시간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온댔어. 의사가.”

“아쉽다. 형만큼 다치는 걸 원했는데.”

“장난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 혜성아.”

문성하가 정색했다. 마주 본 주혜성이 사과했다.

“미안.”

“그보다 어디 불편한 건 없어? 머리가 아프다든가.”

“그냥 그래. 약 기운에 취한 정도야.”

주혜성이 안심시키듯 웃어 보였다. 문성하는 머뭇거리며 그의 뺨을 연달아 매만졌다. 약품이 묻어 거칠한 살을 타고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목과 어깨, 팔뚝까지 쓸고 난 문성하가 한숨을 쉬었다. 흐리멍덩한 한 마디가 새어 나왔다.

“괜찮아 보이네. 혹시나 했는데.”

“무슨 혹시나.”

되물은 주혜성이 상체를 숙였다. 얼굴이 부쩍 가까워졌다. 그의 눈빛이 깃털처럼 문성하의 면상에 내려앉았다. 흠칫한 문성하가 입을 옴쭉거렸다.

“아니야.”

“설마 사고로 ADHD가 재발이라도 했을까 봐?”

“그런 것 아니…….”

“맞는 것 같은데. 얼굴 보니까.”

주혜성이 팔을 뻗었다. 창백한 문성하의 귀를 잡고는, 귓바퀴에 손가락을 넣으며 문질렀다. 문성하가 놀라 움츠렸다.

“아…….”

“걱정 마. 내가 예전으로 돌아가면, 형이 아주 힘들어질 것 아니야. 나 형한테 민폐 끼치기 싫어.”

“그런 게 아니고……!”

돌연 소리친 문성하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주혜성이 주춤했다. 그 와중에 문성하의 귓바퀴를 파고든 엄지가 그대로였다. 허리를 떤 문성하의 입 안에서 마른 혀가 구물거렸다. 현이 몇 개 나간 피아노의 연주처럼, 머릿속 상념이 불협화음으로 널을 뛰었다.

문성하가 한탄하듯 제 얼굴을 짚었다. 움켜잡힌 낯에서 따가운 열기가 느껴졌다. 빠르게 덥혀진 몸 안의 혈류가 갈라지는 물살처럼 사지로 번졌다. 문성하는 열대야에 녹아내린 사람처럼 몸을 늘어트렸다. 들끓는 뇌리에서 내내 외면해 온 진심이 용암처럼 분출했다.

주혜성이 ADHD를 앓던 그때로 돌아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 자신만이 주혜성의 곁에 남을 테니까.

“아무튼 네가 그때로 돌아가도 내 입장에선 달라지는 것 없어. 진심이야.”

“그래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지. ADHD가 있던 때의 내가 되는 게, 형 입장에서 반겨 할 일은 아니잖아.”

“실은 반가운 쪽이야.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생각하기까지 했어. 너 잠들어 있는 사이에.”

결국 속내가 튀어나왔다. 주혜성이 움찔했다. 눈을 맞춘 문성하가 입을 열었다. 착 깔린 언어가 이어졌다.

“정신이 나간 것 같다 해도 할 말 없어. 누구 좋아해 본 게 처음이라, 이성적인 사고가 안 돼. 가끔은.”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양 정지해 있던 주혜성이 뒤늦게 팔뚝을 굳혔다. 귓바퀴에 걸린 손가락이 곤두섰다. 아. 조금 아픈 기분이 들어 문성하는 신음을 흘렸다. 평소였다면 바로 놓았을 텐데, 주혜성은 여전히 문성하를 잡고 있었다. 오히려 더 견고하게.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돌연 뒤편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푸석한 머리를 털어 대며 들어선 제임스 임이 침대를 보고는 기겁했다.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주혜성의 앞에 서서 언성을 높였다.

“야! 너 언제 일어났어?”

주혜성은 답을 하지 않았다. 문성하의 귀를 잡은 채 눈만 마주치고 있을 뿐이었다. 뚫어져라 주혜성을 보던 제임스 임이 서서히 긴장했다. 문성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조심스레 흔들며 질문을 건넸다.

“문 대표님. 이 새끼 괜찮은 거죠……?”

문성하는 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 주혜성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혜성이 일어났어?”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뛰어온 한나와 권도재가 제임스 임과 함께 주혜성을 둘러쌌다. 미동도 않는 그를 지켜보다, 안 좋은 걸 예감한 듯 저들끼리 눈길을 주고받았다. 권도재가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망연자실했다.

“이제 우린 망했다.”

“후유증으로 발현한 거라 그리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어. 일단은 알렉스에 보고부터 해. 주혜성 주도로 하는 디지털 월렛 개발은 일정을 무기한 연기해야 할 것 같다고.”

한나가 이성적인 말을 했다. 커다랗게 씩씩거린 제임스 임이 갑자기 벽에다 주먹을 꽂았다.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진짜! 그 씨발 새끼를 내가…… 확 가서 죽여 버릴까.”

“죽이긴 뭘 죽여.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제야 문성하에게서 손을 뗀 주혜성이 경고했다. 화들짝한 제임스 임과 한나, 권도재가 주혜성을 봤다. 제 어깨를 주무른 주혜성이 훈수를 뒀다.

“그리고 1인실이더라도 너무 소란 피우지 마. 여기 병원이야.”

“너 괜찮은 거야? 어?”

주혜성을 붙든 권도재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의 손을 툭, 치운 주혜성이 인상을 썼다.

“그럼 안 괜찮아 보여? 그리고 특별한 사유 없으면 나 만지지 말라고 했지. 다른 사람하고 접촉하는 것 안 좋아한다고.”

싸늘한 태도에도 권도재는 감격한 반응이었다. 펄쩍 뛴 그가 안도의 외침을 터뜨렸다.

“다행이다. 이 새끼 존나 싸가지 없어. 완전히 그대로야.”

“야.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한나가 쏘아붙였다. 관심 없다는 양 손사래 친 주혜성이 벽에 기대어 있는 제임스 임 쪽으로 눈을 돌렸다. 허공을 보며 주기도문을 외우는 그를 노려보다 탁, 소리 나게 벽을 쳤다. 아멘, 한 제임스 임이 다가왔다. 오랫동안 누워 있느라 적잖게 뻐근했던 듯, 또 어깨를 주물러 가며 주혜성이 물었다.

“피의자 누구야.”

“에센더 투자자 김웅철. 우리 쪽에 협박 메일 몇 번 보낸 그 인간.”

“그럴 줄 알았어. 지금은?”

“경찰서에 있어. 현장에서 바로 구속됐거든.”

“선처하자.”

주혜성이 딱 잘라 말했다. 제임스 임이 이마를 구겼다. 허탈한 고성이 병실을 메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살인마 새끼를 왜 선처해?”

“음주 운전한 것에 대해서는 적법한 법원의 판결을 따르되, 나를 해하려 한 것에 대해서만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변호사 통해 전해. 끝.”

“야.”

“그리고 김웅철 피해액 얼마였지.”

“주혜성.”

“김웅철 피해액.”

연신 반기를 드는 제임스 임에 대고 주혜성이 반복적으로 몰아붙였다. 꼿꼿한 눈길이 제임스 임을 관통했다. 도무지 못 당하겠다는 양 이를 간 제임스 임이 답했다.

“3억 6000만 원인가 그래. 그건 왜.”

“내 계좌 빼 보전해 주고, 다른 에센더 투자자에 대해서도 똑같이 조치해.”

“나 진심으로 네가 하는 얘기를 이해할 수가 없다. 본인이 선택해 실패한 투자 건을 왜 우리가 보상해?”

제임스 임이 눈을 부라렸다. 주혜성이 말없이 눈을 굴렸다. 흘러가던 눈길이 문득 문성하와 엉겼다. 문성하의 속눈썹이 달막였다. 주혜성이 착 깔린 음성을 꺼냈다.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르고,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는 게 맞아. 하지만 에센더는 조금 달라. NGX는 알고 있었어. 에센더가 결코 건전한 회사가 아니라는 걸. 우리의 심사 데이터상 그걸 모를 수가 없었어. 알면서도 밀어붙였지. 내가 그리하자 우겼으니까. 사심으로 투자한 건 처음이었어.”

문성하의 동공이 흔들렸다. 주혜성이 권태롭게 팔짱을 꼈다. 찌푸린 제임스 임을 힐금하고는, 쐐기를 박았다.

“내가 기업 가치에 대한 계산을 잘못해 투자 피해가 발생한 건에 대해서는 보상할 이유가 없어. 업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실패 케이스 중 하나일 뿐이니까. 하지만 에센더는 경우가 달라. 나는 에센더에 대한 계산을 잘못한 적이 없어. 그냥 뭔가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돈을 부었고, 그 과정에서 상관없는 사람이 피해를 입은 거지.”

“그게 무슨…….”

제임스 임이 웅얼거렸다.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잠자코 지켜보던 한나가 나섰다.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고는, 제임스 임의 팔을 잡아끌었다. 침착한 음성이 꺼내졌다.

“주혜성 입장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투자자 보상은 나도 필요하다 봐. 에센더 사건으로 국내 여론이 좋지 않아. 투자업계 사람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납득했지만, 대다수 일반인 생각은 다르거든. 에센더 투자자는 따지고 보면 에센더 투자자가 아니야. ‘NGX코리아가 이끄는 K-엔젤 벤처 프로젝트 1호 기업’ 투자자지. 그런 의미에서 잘못한 건 에센더지만 피의자는 NGX로 취급받기 쉬운 구조야. 이에 따른 피해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넘어가는 게 회사 이미지상 필요하긴 해.”

“한 가지만 묻자.”

제임스 임이 입을 뗐다. 주혜성이 심상하게 대꾸했다.

“어.”

“너 그래서 에센더에 투자한 것 후회해?”

“아니.”

망설이지도 않고 답한 주혜성이 재차 문성하를 봤다. 문성하가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문성하의 낯을 머금은 주혜성의 눈초리가 휘었다. 입매를 비뚠 그가 말했다.

“그때로 돌아가도 난 똑같이 했어.”

자조 섞인 한마디가 따라붙었다.

“정신이 나간 것 같다 해도 할 말 없어. 누구 좋아해 본 게 처음이라, 이성적인 사고가 안 돼. 가끔은.”

***

“이건 뭐야?”

제임스 임과 한나, 권도재가 나간 후 둘만 남은 병실 안에서 문성하가 종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까의 소란 끝에 바닥에 떨어진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였다. 받아 든 주혜성이 질문했다.

“이건 어디서 났어.”

“아까 어떤 남자가 주고 갔어. 너하고 체스 친구라던데.”

“아.”

알았다는 양 끄덕인 주혜성이 카드를 제 베개 옆에 뒀다. 매끈한 표면을 갉작인 그가 눈을 내리깔았다. 비식거리는 목소리가 샜다.

“나보고 운이 좋대. 그 남자가.”

“맞는 얘기잖아.”

문성하가 예사로이 응수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국내외 언론에서도 자주 주혜성을 ‘럭키 가이’라 표현했다. 단기간에 손대는 건마다 대박을 터뜨린 투자 기업 CEO가 애초에 흔치 않다.

“희한한 일이지. 아버지는 어릴 때 나에게 불운한 애라고 귀에 박힐 정도로 얘기했는데.”

“난 들은 적 없어.”

“형 있을 때 말고, 둘이 있을 때 그랬어. 종종.”

주혜성의 입 안에서 혀가 굴러갔다. 생각에 잠긴 듯, 스르르 이동하는 눈동자가 잿빛으로 물들었다.

“그래서 난 내가 정말로 운 없는 애인 줄 알았어. 실로 그렇지. 아버지는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잘난 대학 교수인데, 그 아들은 제대로 나사 빠진 집중력 장애 아동이니. 심지어 언제 완치될지도 모르고. 어린 나이지만 내 처지를 아주 잘 알았어. 난 이렇게 살다가 끝날 거라고, 어렴풋이 확신하고 있었고.”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넌 결국 잘 극복해서…….”

“지금의 나를 두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것 알아. 그런데 난 당시의 확신이 실제 내 미래가 될 수도 있었다 생각해. 한 가지 변수만 아니었다면.”

주혜성이 고개를 바로 했다. 그의 눈빛이 본능처럼 문성하를 쫓았다. 문성하는 사진이 찍히는 것처럼 올바르게 앉아 자신의 모습을 내 줬다. 열린 창문 틈으로 훈훈한 서풍이 들어와, 두 사람의 목덜미를 스치며 지나갔다. 조금 나른해졌다.

“형이 찾아오고 나서 내 확신이 틀어지기 시작했어. 나는 형을 통해 타인을 이해했고, 형을 생각하며 ADHD를 극복했고, 형이 시키는 대로 컴퓨터를 하다가 베이스터를 설립했고, 형이 하던 투자업을 나도 하기 위해 NGX를 세웠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는 형이 있었어. 형이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이 삶은 불가능했다는 얘기야.”

주혜성의 손가락에 카드가 걸렸다. 위로 들린 스페이드 에이스가 문성하를 향해 기웃거렸다. 주혜성이 미소 지었다.

“형이 내 운명을 바꿨어. 형이 곧 내 행운이야.”

문성하의 어깨가 얼어붙었다. 무슨 말인지 알 듯하지만, 확연히 와닿지는 않았다. 주혜성은 주혜성의 의지대로 살아왔을 뿐이고, 그 과정에 이정표처럼 자신이 개입했을 뿐이다. 다만 머리와 별개로 온 신경이 전율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성공한 것 같다.

주혜성을 완전히 자신의 안에 가두는 일에. 그렇게나 염원한 것처럼.

“그래서 내키지 않지만 형의 뜻에 따를게. 나는 예정대로 내일 출국할 거야. 당장 미국 본사로 가야 하는 이유가 너무도 많아. 형은 한국에서 계속 동생과 지내. 내 운을 친동생에게도 나눠 줘. 질투 나니까 아주 많지는 않게. 함께하는 것만으로 행운이 되는 사람과 있으니, 동생에게는 최고로 좋은 순간이 될 거야.”

문성하의 입에서 밭은 숨이 터졌다. 마주 본 주혜성의 입매에서 미소가 사라져 갔다. 사뭇 이성적으로 돌변한 남자가 이 답을 받아들여 달라는 듯 손을 잡아 왔다. 손등을 질근질근 눌러 오는 손길이 간질거리면서도 허전했다. 문성하의 눈꺼풀이 까물거렸다. 뭐라 답을 해야 하는데,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는다.

좋은데 허무하다. 반가운데 서운하다. 이 기분을 명확히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답을 찾았는데 왜 공허할까.

“나 잡고 싶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문성하의 앞으로 주혜성이 다가왔다. 몸을 낮춘 그가 볼에다 입을 맞췄다. 문성하의 턱이 덜컥거렸다. 작지만 확고한 대꾸가 나왔다.

“어.”

비껴 난 시선이 주혜성과 마주쳤다.

“애인이 떠나간다는데 당연한 것 아니야?”

주혜성이 부쩍 무표정이 됐다. 문성하가 눈을 치떴다.

“딱 일 년이야. 재림이를 위한 시간. 그다음 내가 미국으로 갈 거야. 너 잡으러.”

“일 년은 너무 긴데.”

주혜성이 탄식했다. 사선을 그어 가며 흐른 눈길이 문성하의 입술에 걸렸다. 무지근한 숨을 뿜은 그가 대뜸 얼굴을 들이밀었다. 훅 가까워진 입술이 문성하의 것과 겹쳤다. 아끼는 것에 경배를 표하듯 조심스럽게 핥고 난 그가 조곤조곤 속삭였다.

“기다려. 내가 먼저 형 잡으러 올 테니까. 내가 가진 모든 걸 동원해서.”

후끈한 목소리가 귀를 옭맸다.

“세 번째로 재회할 땐, 연인으로 대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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