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37)

32.

「사기꾸ㄴ색기들아 그다위로 돈벙ㄹ고 어ㄷ자ㄹ디나보자 넌낵가꼭차ㅈ아서주긴다」

대각선 테이블에는 오랜만에 스푼G에 찾아온 최재율이 있었다. 직원들과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계란탕과 제육볶음, 나물 조림으로 구성한 식사 상은 단출하지만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밥을 두 공기나 비운 최재율이 뒤늦게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문성하 쪽으로 손짓을 건넸다.

“안 먹고 뭐 해?”

“아까 샌드위치 먹었어. 그나저나 형.”

문성하의 손안에서 메시지 창이 꺼졌다. 이어서 말하려던 입이 잠시 멎었다. 부엌에서 앞치마를 벗으며 온 안재림이 대뜸 입 안에 뭔가를 넣어 준 탓이었다. 힐금한 문성하가 입에 문 것을 오물거렸다. 닭고기와 간장으로 맛을 낸 주먹밥이었다.

“이것도 신메뉴야?”

“아니요. 그냥 형 드시라고 제가 한 거예요.”

안재림이 둥근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내려 뒀다. 오밀조밀한 주먹밥이 한가득이었다. 음식물을 꿀꺽한 문성하가 픽, 웃었다.

“난 먹었다니까 그러네.”

“그래도 먹어요. 일부러 형 입맛에 맞춰서 한 건데.”

“알았어. 이따가 배 꺼지면 먹을게. 그나저나 재율이 형.”

문성하가 재차 최재율을 불렀다. 밥그릇을 밀어 놓은 최재율이 눈을 마주쳐 왔다. 문성하가 심각한 질문을 꺼냈다.

“최근에 혹시 회사에 무슨 일 없었어?”

“무슨 일.”

“그냥 뭐……. 누가 해코지를 했다든가.”

“글쎄. 아, 지난주에 누가 사무실 유리창 깨긴 했는데.”

생각났다는 양 주억거린 최재율이 등을 젖혔다. 서서히 눈을 굴리다, 대수롭지 않게 덧붙였다.

“경비 얘기로는 예전부터 질 나쁜 고등학생 무리가 이 건물 들락거리며 사고를 쳤다는 모양이야. 비슷한 일이 이전에도 두 번 정도 있었다대. 굳이 잡아내기도 귀찮아 그냥 뒀어. 유리창은 강화 유리로 바꿨고.”

“그래?”

되물은 문성하가 눈을 깔았다. 또 밝아진 액정에서 술 취해 쓴 기미가 역력한 문자가 두드러졌다. ‘넌 내가 꼭 찾아서 죽인다…….’ 속으로 뇌까린 문성하가 핸드폰을 껐다. 재킷 주머니에 넣고, 서늘한 머리로 생각했다. 이런 문자를 받는 게 처음은 아니다. 딱히 놀랄 것도 없다. 심지어 청신투자를 세울 때부터 각오한 일이다.

투자라는 건 태생적으로 위험성을 동반한다. 실체 없는 자산에 기대감만으로 돈을 붓는 일이다. 자연히 허수 매물도 많고 이걸 교묘히 이용하는 세력도 많다. 청신투자는 그 심리를 토대로 설립한 회사다. 가진 게 없어 내세울 게 허상밖에 없었다.

단기간에 수익을 낼 수 있는 D급이나 E급, F급 회사를 찾아 합의 아래 기업 가치를 최대한 부풀리고 냄새를 맡은 호구, 즉 또 다른 투자자가 접근하면 팔아 치운다. 누군가는 이걸 사기라 하겠지만 투자업계에서는 암암리에 비일비재하던 일이다. 심지어 명목이 떳떳하다. 투자. 결코 불법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호구도 또 다른 호구를 잡기 위해 이 판에 끼어들었다. 남이 한 걸 자신은 못 했으므로 호구는 호구가 됐다. 다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죄인을 만든다. 청신투자가 나쁜 짓을 해 자신이 벼랑 끝에 몰렸다며 발악을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건 청신투자만의 죄목이 아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VC들, 나아가 글로벌 투자 기업인 NGX도 방식만 다를 뿐 관행적으로 기업 가치 부풀리기를 한다. 그러나 그런 곳은 호구의 죄인이 될 수 없다. 번듯하며 엘리트 일색인 조직에서 그런 짓을 했다 떠벌려 봤자 세간의 비웃음만 산다.

그러므로 청신투자 같은 회사만이 죄인이 된다. 작고, 만만하며, 근본이 없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성하는 이런 문자를 보면 오히려 안정이 된다.

자신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NGX는 진짜 대표가 바뀌는 걸까요?”

문득 염려스러운 질문이 들렸다. 문성하의 얼굴이 들렸다. 앞치마를 두른 직원이 얼추 식사 마친 테이블을 정리하며 벽에 붙은 TV를 쳐다보고 있었다.

“엊그제 외신에 나온 거 보긴 했는데, 해외 소식이라 이제야 국내 뉴스를 타나 봐요.”

가늘어진 눈이 TV에 쏠렸다. 안재림과 최재율도 TV를 봤다. 스튜디오의 아침 뉴스 앵커가 단조로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주혜성 대표를 SNS로 저격한 닐슨 CFO는 NGX의 주요 창립 멤버이자 3대 주주입니다. 월스트리트 금융인 출신으로, 보수적이며 직설적인 인물이라는 금융업계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론드’지는 닐슨 CFO가 NGX의 2대 주주인 미국 금융회사 ‘NBT가드너’와 손잡고 CEO 해임을 둔 구체적인 논의에 착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NBT가드너는 닐슨 CFO가 임원을 역임했던 곳으로, 주 대표의 경영 철학에 지속적인 반기를 들어왔으며…….]

“확실히 미국 금융 회사에서 한국인 CEO가 승승장구하는 게 쉽지 않네. 미국인 월가 출신들이 눈꼴 시려서 가만히 두겠어? 2대, 3대 주주가 작정하고 달려들었으니 그 잘난 주혜성이라도 버티기 쉽지 않을걸.”

최재율이 혀를 내둘렀다. 말끄러미 TV를 보던 문성하가 고개를 떨궜다. 곁에 있던 안재림이 우물쭈물했다.

“형. 괜찮겠어요?”

문성하의 입이 달싹였다. 들릴 듯 말 듯한 대꾸가 새어 나왔다.

“글쎄.”

***

「혜성아. 아직도 바빠? 형 계속 핸드폰 보는 중이야. 시간 될 때 언제라도 연락해.」

마지막 글자를 새기고 난 손가락이 달막였다. 한참이나 액정을 주시하다 전송 아이콘을 눌렀다. 파란 화면에 갓 작성한 자신의 메시지가 떴다. 문성하는 가만히 액정을 밀어 올렸다. 이틀 전부터 보낸 자신의 메시지들이 보였다.

「회의 잘 끝났어?」

「전화 안 받네. 무슨 일 있어?」

「혜성아.」

「많이 바빠?」

「외신 봤어. 그것 때문이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자를 읽다가 메시지 창을 껐다. 이어 통화 기록 창에 들어갔다. 주혜성에게 건 부재중 전화가 32통에 달했다.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혹시나 해 제임스 임에게도 연락했다. 그는 ‘지금 상황이 안 좋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만 했다.

핸드폰을 내려 두고 노트북에 손을 가져갔다. 포털 사이트 창을 켜고, 검색창에 ‘주혜성’을 입력했다. 갓 올라온 뉴스 기사가 우수수 떴다. 하나같이 공격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다.

「닐슨 “주혜성, CEO 자격 없다” …… 美 BJC 보도」

「“올해 내 NGX CEO 교체”…… 한국인 CEO에 칼 빼든 월家」

「주혜성 다음 주 미국行 …… ‘NGX 내분 사태’ 수습할까」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떨어졌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벽에 붙은 창문을 봤다. 어스레해지기 시작한 하늘이 침침한 구름투성이었다. 왠지 망막이 뻑적지근해, 문성하는 습관적으로 눈을 비볐다. 자극한 건 눈인데 괜히 머리가 어질했다.

주혜성의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안 좋은 듯하다.

상대는 주혜성의 식구나 마찬가지인 설립 초기 멤버로, 유대계 미국인이다. 주혜성보다 나이가 20세나 많고 월가 출신 브레인이라 NGX 내 영향력이 ‘톱3’ 안에 든다고 뉴스에서 얘기했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지만, 회사가 커지며 운영 방향을 둔 여러 마찰을 주혜성과 빚었고 급기야 그의 약점을 저격하며 ‘CEO 끌어내기’에 나섰다는 게 보도의 골자다. 약점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미국 금융가에서라면 치명적인 부분이었다.

주혜성은 미국 회사를 운영하지만 미국인이 아니다.

“형. 저녁 식사 안 해요?”

등 뒤에서 벌컥 문이 열렸다. 열린 틈으로 된장국 냄새가 솔솔 들어왔다. 고개 내민 안재림을 흘긋한 문성하가 답했다.

“금방 나갈게.”

안재림은 그대로 있었다. 구물거리던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한층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주혜성 대표 있잖아요.”

문성하가 갸우뚱했다. 안재림이 아물거렸다.

“그분에 대해 이상한 보도를 봤어요.”

“무슨 보도.”

“예전에 사람 죽였다고…… 본인 아버지를.”

문성하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아간 손이 가쁘게 휘저어졌다.

“진작 정당방위로 결론 난 걸……. 그딴 거 믿지 마. 주혜성 공격하는 사람들이 심심하면 꺼내는 이슈야.”

“하지만 죽인 건 사실이잖아요.”

안재림이 움츠렸다. 풀죽은 한 마디가 덧붙었다.

“전 무서워요. 형은 안 무서워요?”

문성하의 턱이 얼어붙었다. 공허한 눈동자가 일렁였다. 차마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못 하는 문성하를 두고 안재림이 뒷걸음질을 쳤다. 곧 천천히 문을 닫아 가며 말했다.

“늦지 않게 나와요. 형. 국 식어요.”

탁. 문 닫히는 소리에 어깨가 빠듯해졌다.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몸을 돌려 노트북 앞에 찰싹 붙었다. 분연한 손길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검색창에 ‘주혜성 살인’을 치고는, 화면에 뜨는 뉴스들을 살폈다.

「‘주혜성 밀어내기’ 나선 닐슨 …… “과거 살인 무혐의 납득하기 힘들다”」

「20세에 친부 정당방위 살인한 ‘천재 CEO’ …… 들썩이는 세계 누리꾼」

“나쁜 새끼들. 하여간 조회 수만 나오면 뭐든 안 가리고 쓰지.”

이를 간 문성하가 핸드폰을 챘다. 주혜성에게 33번째 전화를 하기 위해 단축 번호 창을 활성화했다. 막 번호를 누르기 직전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본 문성하가 흠칫했다. 주혜성이었다.

“혜성아.”

첫 진동이 끊기기도 전에 전화를 받은 문성하가 소리를 냈다. 건너편에서는 말이 없었다. 문성하가 대뜸 언성을 높였다.

“이상한 얘기들 신경 쓰지 마. 형은 너 믿으니까 개의치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무슨 얘기.]

높낮이 없는 응답이 찾아들었다. 피로감이 비치긴 하지만, 지극히 단조로운 어조였다. 움찔한 문성하가 설명했다.

“그야, 너 5년 전에 벌인 일 가지고 사람들이 또…….”

[그랬어? 전혀 몰랐네.]

역시나 권태로운 투였다. 문성하의 눈이 찡그려졌다.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생각보다 괜찮은 건가.

“회사 상황은. 잘 정리될 것 같아?”

[그냥저냥. 일단 다음 주에 미국 돌아가서 보려고.]

“힘들겠다. 내 연락도 안 받고 두문불출할 정도면…….”

[형 연락 안 받은 건 그것 때문이 아니야.]

문성하의 말을 자른 주혜성이 뇌까렸다. 문성하의 눈매가 굳었다. 방금 들은 언어의 여운이 귓가에서 몽우리처럼 뭉치고 있었다. 숨을 고른 문성하가 핸드폰을 꽉 쥐었다 놓았다. 멸등하는 등불처럼 꺼져 가는 뇌리에서 돌연 언젠가의 기억 조각이 번뜩였다. 문성하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터졌다.

-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나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내 얘기를 해도 나에게는 형 목소리만 들려.

“나 때문이구나.”

깨달음을 머금은 한 마디가 샜다. 주혜성은 답을 하지 않았다. 무지근한 정적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방향성을 잃은 입이 더듬거렸다. 두터운 커튼을 드리운 양 숨어든 주혜성의 온기를 억지로 찾아 헤맸다. 아무리 노력해도 잡히지가 않았다. 멎어 있던 문성하의 입이 느릿느릿 열렸다.

“그래서. 이대로 나 안 볼 거야?”

주혜성은 또 답하지 않았다. 문성하의 손끝이 핸드폰의 뒷면을 갉작거렸다. 부쩍 단호한 언어가 터졌다.

“그래. 보기 싫으면 보지 마.”

주춤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들숨을 삼킨 주혜성이 비로소 말을 꺼냈다.

[형.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야. 나는 이런 상황을……. 그러니까, 형의 친동생이 변수가 되는 상황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어. 내가 짠 판이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

“설마 질투 나?”

[어. 질투 나.]

단숨에 인정한 주혜성이 실토하듯 말했다.

[그래서 실수할 것 같아. 난 그걸 참는 중이고.]

“그러면, 너 미국 갈 때까지 아예 나 안 볼 셈이야?”

문성하가 따졌다. 다시 건너편이 고요해졌다. 밭은 숨을 고르는 소리만이 미미하게 들렸다. 문성하의 어금니가 질근질근 깨물렸다. 이 하나가 아릴 정도로 물어 댄 끝에 응답이 찾아들었다. 문성하 못지않게 이를 악물었다 놓은 듯한 어조였다.

[십 분 후에 회의 있는데, 그거 마치고 내가 형 집으로 갈게.]

“그럴 필요 없어.”

딱 부러지는 대답이 나왔다. 주혜성이 탁, 데스크 짚는 소리를 냈다. 눈을 치뜬 문성하가 또박또박 말했다.

“내가 지금 네 사무실로 갈 거야.”

강고한 언어가 따라붙었다.

“넌 실수할 게 많아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난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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