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딩(Pending) 4(완결)
28.
문성하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도 익숙해 그에 대한 결핍조차 느껴 본 일이 없었다. 아버지가 있었다 없어졌으면 모를까, 처음부터 없었는데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와닿을 리 만무했다. 존재의 결핍은 습관이 됐다. 그래서 가끔은 그 상실감이 궁금하기도 했다.
종종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남자를 만났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라이브 바에는 다양한 나이대와 직업을 지닌 남자 손님이 찾아왔다. 일부는 어머니에게 진지한 애정 공세를 했다. 어머니는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둬 가며 바 사장과 단골손님 간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유지했다.
“애인인가요?”
가끔 남자를 본 문성하가 물으면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친구야.”
“엄마보다 10살은 많아 보이는데요.”
“그래도 친구야.”
어머니에게는 모든 손님이 친구였다. 10살이 적어도, 20살이 많아도 친구라 했다. 문성하는 어느 순간부터 그들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많은 남자가 어머니에게 호감을 드러내도, 그중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날 찾아온 남자도 절대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어머니의 수많은 친구 중 하나라 생각했다.
“얘기를 좀 하고 오지?”
문성하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간 해의 봄이었다. 바에 들어서자마자 단단히 심기가 거슬린 표정으로 홀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맞은편에는 어머니보다 서너 살 어려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옆자리에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서너 살가량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를 유령 취급하며 남자가 담배를 물어 불을 붙였다. 어머니는 그저 낯을 찌푸렸다.
“너 라면 하나 끓여 와라.”
남자가 대뜸 문성하에게 지시했다. 막 구석진 테이블에 책가방을 내려 둔 문성하가 흠칫했다. 흘러간 눈길이 어머니에게 걸렸다. 곤란한 숨을 내쉰 어머니가 말했다.
“주방 가서 하나 끓여 오렴.”
눈을 깜박거린 문성하가 움직였다. 홀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향하는데, 남자가 불렀다.
“잠깐 이리 와 봐.”
귀찮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틀어 남자 앞으로 갔다. 주머니를 뒤적인 남자가 오천 원짜리 지폐를 빼서 내밀었다. 그가 턱짓을 했다.
“받아. 라면값.”
“만 원인데요.”
손을 뒤로한 문성하가 말했다. 남자가 살며시 이마를 구겼다. 문성하는 또박또박 덧붙였다.
“여기서 파는 라면, 만 원이에요.”
“누가 정한 건데? 그거.”
“예전부터 그렇게 받고 있어요. 싫으면 안 드시면 돼요.”
문성하가 퉁명스레 입을 다물었다. 잠잠하던 남자가 저소를 터뜨렸다. 그저 어이가 없다는 양 비식거리다, 재차 주머니를 뒤적여 지폐 하나를 추가로 뺐다. 만 원짜리였다.
“총 만 오천 원. 계란 하나 넣어서 가져와.”
“네.”
돈을 받은 문성하가 주방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부엌 안에서 찬장을 뒤져 냄비와 라면 한 봉지를 꺼냈다.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 불에 올리고, 끓기 시작한 물에 라면과 계란을 차례로 투하했다. 바글거리는 소리 틈으로 두런거리는 바깥쪽 대화가 스몄다. 라면 끓는 소리 때문에 명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여자 친구 있어?”
완성한 라면을 가지고 왔을 때 남자가 뜬금없이 물었다. 냄비를 내려놓은 문성하가 시큰둥하게 응수했다.
“없는데요.”
“왜 없어?”
“지금 저하고 대화하시는 거예요?”
“이게 대화가 아니면 뭐야.”
“대화하시려면 돈 내야 해요.”
“이거 아주 웃기는 놈이네.”
남자가 낄낄거렸다. 맞은편의 어머니가 가만히 입술을 찌그렸다. 문성하는 뒷짐을 진 채 우두커니 서서 남자를 봤다. 기기묘묘하게 힐금거린 남자가 젓가락을 들었다. 냄비 안의 라면을 건져 후룩, 입에 넣고는 몇 번 씹은 끝에 삼켰다. 그의 입꼬리가 느물거리며 올라갔다.
“이야. 요리 잘하네.”
“감사합니다.”
“너희 어머니가 내 얘기 안 하던?”
“무슨 얘기요.”
“경찰 아저씨 만났었다는 얘기 안 해?”
남자가 젓가락으로 어머니를 가리켰다. 어머니의 눈 밑이 옴씰거렸다. 덩달아 어머니를 일별한 문성하가 질문했다.
“경찰이세요?”
“지금은 아니야. 예전엔 맞았고.”
“왜 지금은 아니에요?”
“사고를 좀 쳤거든. 아주 오래전에 애를 하나 낳았는데 양육비가 깨나 들게 생긴 거야. 그거 해결하려고 관할 지역에서 수금을 좀 했어. 그 일대 잡상인들 대상으로. 그게 나중에 본청에 발각돼 뉴스 타고, 결국엔 잘렸어.”
“수금은 많이 했어요?”
“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남은 게 없더라. 일부는 너희 엄마 이 가게 차리는 데 들어가고…….”
“그만.”
어머니가 급하게 말을 잘랐다. 남자의 손안에서 젓가락이 달그랑거렸다. 옆자리 아이가 다 먹은 주스 컵을 들고 두리번거렸다. 문성하는 아이에게 손짓했다. 줘. 우물쭈물한 아이가 컵을 내밀었다. 받아 든 문성하가 뒤편의 빈 테이블에 치웠다. 다시 테이블을 봤을 때 아이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눈도 크고 귀여운 인상인데 숫기가 없는 듯했다.
“그거 다 먹으면 가. 조금 이따 오픈해야 해.”
소파에 등을 붙인 어머니가 한탄처럼 말했다. 남자가 눈을 치떴다.
“돈은.”
“마련해 보겠지만, 당장은 안 돼.”
“너한테 아주 잘해 주는 놈 하나 있다며. 장 사장인가? 대부 업체 운영한다는. 그 새끼한테 달라고 해. 너라면 냅다 지갑 열어 줄 텐데.”
“그게 나한테 할 소리니?”
어머니가 버럭 했다. 남자는 놀란 기색도 없이 면발을 후루룩거렸다. 아이만 새파래진 얼굴로 수그렸다. 화난 어른에 겁을 먹었는지, 등줄기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관찰하던 문성하의 눈매가 석연치 않게 접혔다.
“너 참 예쁘장하다, 야. 학교에서 인기 많겠는데? 여자애들은 너처럼 생긴 애 좋아한다며.”
남자가 갑자기 문성하를 칭찬했다. 문성하는 심상하게 받아쳤다.
“감사합니다.”
“나하고 사진 찍을래?”
“네?”
문성하가 무춤했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남자가 세 번째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파란 지폐가 한 움큼 나왔다. 엉겁결에 받아 든 문성하가 눈으로 장수를 셌다. 총 다섯 장이었다.
“그거 줄 테니 너희 엄마하고 같이 사진 하나 찍자. 저 밑에 입구 있는 데에서. 우리 아들도 껴 갖고.”
“왜요?”
“왜냐고?”
문성하의 물음에 남자가 낯을 굳혔다. 못마땅하게 쏘아보는 어머니에 곁눈질을 하고는, 다시 문성하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냥 기념. 내가 여기 왔었다는.”
높낮이 없는 언어가 따라붙었다.
“더는 안 올 것 같거든.”
***
이 잡듯 뒤진 끝에 발견한 사진은 짐 상자의 밑부분에 처박혀 있었다. 어머니의 유품 정리함, 그 안에서도 가장 구석이었다. 보통 크기의 절반 사이즈인 사진에는 어머니와 교복을 입은 문성하가 들어가 있다. 앤티크한 글씨체의 네온사인과 어두컴컴한 지하 통로를 둔 뒤편의 배경이 오랜만임에도 어제 본 것처럼 익숙하다. 15년을 운영한 어머니의 라이브 바.
색색거린 문성하가 천천히 사진을 뒤집었다. 연필로 적은 작은 글자가 보였다.
성하 아버지 만난 날.
“혜성아.”
맥없는 고개가 떨궈졌다. 어둑한 스푼G 창고의 열린 문틈으로 희미한 빛이 찾아들고 있었다. 여울 같은 광채에 목이 멨다.
***
NGX 빌딩의 1층 프런트 직원은 문성하의 얼굴만 확인하고 바로 게이트를 열어 줬다. 문성하가 누군지 정확히 아는 눈치였다.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는 직원들 틈에 껴 엘리베이터를 탔다. 가장 꼭대기 층 버튼을 누르는 문성하를 몇몇 직원이 힐금거렸다.
마지막 층에 다다른 승강기 문이 열렸다. 비척거리며 걸어가 프런트 앞에 선 문성하를 보며 여직원이 화들짝했다. 황급히 나아간 손이 수화기를 챘다. 입을 가린 직원이 수화기에 대고 속삭였다. 임원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대표님. 1번 딜이에요.
통화가 끝난 지 일 분도 안 돼 안쪽 복도에서 문이 열렸다. 우르르 나오는 인물이 열 명은 훌쩍 넘어 보였다. 절반은 외국인이었다. 남은 절반 중 낯익은 이가 있었다. 권도재와 한나, 제임스 임이었다.
“어서 들어가 봐요.”
문성하의 곁에 선 제임스 임이 어깨를 두드렸다. 한나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문 대표님 왜 이렇게 수척해요. 어디 아프세요?”
“주혜성이 뭐라 하던가요.”
걱정을 한 귀로 흘린 문성하가 물었다. 머무적거리는 한나 대신 권도재가 답했다.
“지금부터 CEO층 폐쇄한다 했습니다. 한동안 보고 안 받으니, 아무도 올라오지 말라고.”
작게 주억거린 문성하가 발을 뻗었다. 미약한 사과가 나왔다.
“민폐 끼쳐 죄송합니다.”
무기력한 다리가 지벅거리며 나아갔다. 등 너머로 엘리베이터에 우르르 오르는 사람들 기척이 느껴졌다.
대표실 문은 열려 있었다. 문성하는 불청객처럼 발을 들였다. 안쪽 소파에 앉아 있던 주혜성이 몸을 일으켰다. 고적한 눈길이 문성하의 면상을 훑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텁지근한 질문이 건네졌다. 주혜성은 대답 대신 눈을 내리깔았다. 가마득한 세월을 헤아리듯 침묵으로 일관하다, 서서히 입을 열었다.
“형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어. 놀라게 하고 싶지도 않았어. 그래서 상황을 만들었어. 시간을 두고, 형이 알아서 눈치채게끔. 모든 걸.”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울컥거리며 외친 문성하가 간격을 좁혔다. 저벅저벅 걸어 주혜성의 앞에 서서는 똑바로 얼굴을 들었다. 마주친 주혜성의 눈이 비 맞은 물낯처럼 흔들렸다. 깨져 가듯 출렁이는 망막 안에서 문성하는 수십 번씩 흩어졌다.
“시키지도 않은 걸 한 것도 맞고, 형 몰래 한 것도 맞아. 하지만 이번엔 기만이 아니야.”
탁한 한마디와 함께 눈망울의 일렁임이 잦아져 갔다. 표면에 비치는 문성하가 점점 오롯해졌다. 주혜성의 울대뼈가 불끈거렸다.
“발악이었어.”
문성하의 호흡이 가빠졌다. 물컹거리는 혀가 입 안에서 길게 굴러간 끝에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몰아붙이는 목소리가 터졌다.
“그놈의 발악을 하러 엊그제 안재림네 가게에도 왔어? 내가 나 찾지 말라고 분명히 얘기했잖아.”
등을 떤 문성하가 따졌다.
“내가 안재림과 있다는 걸 알아내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어.”
주혜성은 대답 대신 어금니를 씹었다. 말라붙은 그의 입이 여진처럼 달싹인 끝에 열렸다. 무지근한 목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한 푼도 들지 않았어.”
그의 눈매에 자조적인 눈웃음이 걸렸다.
“내가 직접 찾았거든. 내 발로 뛰어다니면서.”
낮은 실소가 따라붙었다.
“참 힘들더라. 돈 안 쓰고 형 만나는 거. 12세 때 이후 처음이야.”
문성하의 손이 툭 떨어졌다. 고요를 가르며 훈훈한 바람이 찾아들었다. 이 밀폐된 공간 어디에서 그런 것이 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문성하는 느릿느릿 어깨를 늘어뜨렸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의 맥이 화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