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P: Standard and Poor’s Corporation, 미국 신용 평가 및 통계 서비스 회사
2) 무디스: Moody's, 미국 신용 평가 기관
24.
문성하는 어린 시절 반창고와 연고를 들고 다니지 않는 아이가 부러웠다. 그건 밖에서 다쳤을 때 언제라도 집으로 뛰어가 어머니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아이라는 걸 의미했다. 문성하에게는 그랬다.
문성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어머니로부터 작은 파우치를 받았다. 안에는 반창고와 연고, 거즈, 테이프 따위가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다친 부위에 연고를 바른 뒤 상처의 크기에 따라 반창고나 거즈를 붙이면 된다며 시범까지 보여 줬다.
“엄마는 늦게까지 일하니 성하가 다쳐도 봐 줄 수가 없잖아. 그러니 이걸 엄마라고 생각하면서 잘 가지고 다녀. 알았지?”
문성하는 그저 주억거렸다. 묻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문성하는 일찍부터 어머니 식 ‘선 긋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가족 간에도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은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이해했다.
파우치는 놀림의 대상이었다. 남자가 여자애 같은 지갑을 들고 다닌다며 반 친구가 손가락질을 했다. 문성하는 묵묵히 넘어갔다. 가능하면 싸울 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싸움이 일어나도 어머니가 학교에 올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선생과 학우들의 복잡 미묘한 시선을 받느니, 아예 그럴 일을 만들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파우치를 처음 쓴 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약 한 달 됐을 때였다. 대상은 문성하가 아니었다. 문성하의 파우치를 가지고 놀려 댄 남학생이었다. 하굣길에 뛰어다니다 턱에 걸려 크게 굴렀는데, 얼굴이며 무릎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다쳤다.
겁에 질려 울먹이는 애에게 다가갔다. 울지 말라고 다그친 후 어머니가 알려 준 대로 연고를 바르고 상처에 맞게 거즈를 절단해 붙여 줬다. 애는 다음부터 문성하를 놀리지 않았다. 문성하는 이후에도 종종 다친 학우를 치료했지만, 그들이 정확히 누구였는지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가 학교 급식에 맛없는 카레가 나온 날처럼 예사로이 흘러갔다.
훗날 중학생이 됐을 때 지나가던 남학생이 문성하를 반겨 하며 알은체를 했다. 문성하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적당히 맞장구쳐 준 뒤 보냈다. 나중에 돌아서는 남학생에게 옆의 친구가 물었다. 누구야? 남학생이 답했다. 어, 우리 학교 반창고. 되게 괜찮은 애야.
문성하는 속으로 갸웃했다. 자신이 괜찮은 애였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범하디평범했다 생각한다. 그럼에도 남학생이 자신을 좋게 기억한 이유는 하나일 터다. 언젠가 문성하의 반창고가 그에게도 붙었겠지.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타인에게 연고를 발라 주고, 반창고를 붙여 주는 건 돌이켜 보건대 일종의 의식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행위였다. 문성하는 늘 누군가가 자신에게 연고를 발라 주고, 반창고를 붙여 주길 원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남에게 해 줬다.
결과적으로 문성하는 같은 걸 받지 못했다. 남을 치료해 주는 데 익숙해진 문성하는 자신이 다쳤을 때도 스스로 해결했다. 문성하는 어느 순간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받는 감각이 어떤지를 잊었다. 그것이 억울하지도 않았다.
받는 감각을 알고서 받지 않으면 모를까, 처음부터 받은 적이 없어 모르면 따스한 눈빛 하나 주어지지 않아도 아플 게 없었다.
17세의 초봄, 주혜성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형은 붕대를 되게 잘 자른다.”
주혜성을 만난 후 문성하의 반창고는 전부 주혜성에게 입혀졌다. 주혜성은 사흘에 한 번꼴로 다쳐 왔고, 문성하는 그때마다 덜렁거리지 말라는 훈계를 하며 약을 발라 줬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문성하는 여전히 연고와 반창고, 거즈를 챙겨 다녔다. 오로지 주혜성 때문이었다.
“형은 지금의 혜성이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일 때 스스로 거즈를 잘랐어. 다쳐도 치료해 주는 사람이 없었거든.”
연고가 발린 피투성이 무릎을 후, 불어 준 문성하가 거즈를 펼치며 말했다. 주혜성이 물었다.
“형네 엄마는?”
“엄마가 바빴어.”
“아줌마는?”
“형네 집은 혜성이네만큼 잘살지 못해서 아줌마가 없었어.”
“선생님은?”
“선생님은 바쁘잖아. 형이 알아서 하는 게 훨씬 더 빠른데……. 아. 혜성아, 움직이면 안 돼.”
꼼지락거리는 주혜성을 다잡은 문성하가 꾸짖었다. 주혜성이 순순히 문성하의 손안에서 제 다리를 늘어뜨렸다. 문성하는 거즈 한쪽을 입에 문 채 반대쪽 천을 쭉 당겨 주혜성의 무릎을 덮었다. 이내 천이 남지 않을 때까지 둘둘 감고 테이프를 붙였다. 접합부를 세심하게 살피고 난 문성하가 손을 거뒀다. 주혜성이 거즈에 감긴 무릎을 쭉 폈다.
“형.”
문성하의 얼굴이 들렸다. 눈을 도르르 굴린 주혜성이 말했다.
“나중에 형 아프면 나한테 꼭 말해.”
“고마운 얘기네.”
문성하가 키들거렸다. 주혜성이 진지하게 뇌까렸다.
“진짜야.”
아이의 입이 꾹 깨물린 끝에 열렸다. 제법 어른스러운 말이 들렸다.
“형도 다른 사람에게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
“이거에 답하면 치료하게 해 줄게.”
진중한 한마디가 떨어졌다. 주혜성은 말없이 주억거렸다.
“아까 현주원에게 얘기한 것 무슨 의미야? NGX가 네 회사가 아니라 한 거.”
문성하의 속눈썹이 꼿꼿해졌다. 주혜성은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일순 흔들리는 그의 눈망울이 비쳤다. 문성하는 난해한 암호문을 해독하듯 그를 봤다.
그냥 한 말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못내 짚이는 게 있었다. ‘설마’ 싶으면서도 진짜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답을 요구했다.
정적이 지속됐다. 파도가 들이닥치고 난 직후의 고요처럼 잠잠한 기류가 두 사람을 휘감았다. 적지 않은 시간 멈춰 있던 주혜성이 입을 움직였다. 문성하를 흘깃하고는, 밀물처럼 말했다.
“NGX 자체가 형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회사였기에 한 말이야.”
곧 빼곡해지는 방파제처럼 입을 닫았다. 다시 눈을 피하는 주혜성을 바라보다 문성하는 목적이 불분명한 고갯짓을 했다. 명확한 답은 아니지만 뉘앙스는 이해했다. 게다가 이유가 정말 문성하가 생각한 그것이라면, 소리 내 말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그에게 있어 ‘말할 자격’이 없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무릎은 가볍게 온찜질하면 돼.”
문성하가 다리를 쭉 뻗었다. 주혜성이 조심스레 문성하를 눈에 담았다. 문성하가 곤로하게 말했다.
“시간 없으니 빨리해. 들어가서 쉬게.”
주혜성의 목을 타고 굵은 침이 넘어갔다. 허공을 떠돌던 그의 손이 다가왔다. 후끈한 타월이 무릎을 덮어 왔다. 갑작스레 올라간 피부의 온도에 밑에 깔린 세포가 경련했다. 문성하가 탄식했다.
“으음…….”
“아프면 얘기해.”
“안 아프……. 하아.”
힘겹게 대꾸한 문성하의 얼굴이 돌아갔다. 손을 올려 제 볼을 더듬었다. 퉁퉁 부은 왼쪽은 그렇다 치고, 맞지도 않은 오른쪽까지 뜨겁다. 문성하의 입이 곤란한 듯 오므라들었다.
방금 전의 제안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였다. 알고 싶었다. 5년간 필사적으로 외면해 온 주혜성의 감각을 다시 접하면, 이제는 다를지. 그걸 계기로 확실하게 주혜성으로부터 돌아설 수 있을지. 한 번쯤 거쳐야 할 일이라 늘 생각해 왔다.
찾아온 답은 늘 그렇듯 문성하의 편이 아니었다.
“예전에.”
무릎을 마사지하고 난 타월이 종아리를 쓸며 내려왔다. 자잘한 유기체가 뛰노는 것처럼 가죽에 오소소 소름이 일었다. 문성하는 속으로 신음하며 눈을 치떴다. 주혜성은 홀린 것처럼 문성하의 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이 나한테 이렇게 많이 해 줬는데.”
“난 기억 안 나.”
문성하는 거짓말을 했다. 개의치 않은 주혜성이 말했다.
“원래 해 준 사람은 기억 안 나. 형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걸 안 해 줬겠어? 해 주는 사람은 해 주는 일만 하고 받는 사람은 받는 일만 해.”
어조가 자못 덤덤했다. 타월이 지그시 발목을 감쌌다. 훈훈한 온기에 싸인 발등이 옴씰거렸다. 화끈한 온탕에 빠진 것처럼 발가락이 달달거렸다. 고개 숙인 문성하의 입에서 색색거리는 소리가 샜다.
“그래도 난 그간 받아 온 수많은 사람 중에 형만은 기억해.”
발등을 문지르고 난 타월이 발가락을 덮었다. 요람 같은 천 안에서 다섯 개의 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주혜성은 엄지부터 만져 나갔다. 문성하의 고개가 덜커덕거렸다. 다리 하나가 통째로 달궈진 양 뜨거웠다. 이마에서 열이 났다.
“형이 나에게 준 걸 기억하지 않아도, 내가 다 기억해.”
엄지와 검지, 중지, 약지, 새끼발가락을 차례로 어루만지고 난 타월이 거둬졌다. 고이 접어 바닥에 두고 난 주혜성이 구급함에 손을 가져갔다. 안을 열고는 연고와 거즈를 꺼냈다. 문성하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얼굴은 됐어. 내가 할게.”
“내 손 닿을까 봐 그래?”
걱정하는 말을 흘리면서도 주혜성은 연고를 짜고 있었다. 주욱, 빠진 불투명한 고체를 손가락에 묻히며 주혜성이 속삭였다.
“직접 만지는 것 아니니 괜찮아. 닿는 건 연고잖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축축한 점액이 볼에 닿았다. 번개가 내리꽂힌 것처럼 정수리가 찌릿했다. 바닥을 짚은 문성하의 손이 옴쭉거렸다. 새된 숨소리가 터졌다.
“하으, 하지 마……. 됐다니까.”
“고개 들어. 응?”
조곤조곤 종용한 주혜성이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두 낯이 금방이라도 맞닿을 것처럼 가까워졌다. 떨리는 망막에 주혜성이 그득히 찼다. 돌연 훅, 풍겨 온 익숙한 체향에 목이 수그러들었다. 문성하가 둘 곳 잃은 눈을 미동하며 곰작거렸다.
손길은 신중하며 다정했다. 부어오른 뺨을 갓 낳은 달걀을 다루듯 부드럽게 문질렀다. 연고가 점점 달궈져 갔다. 도무지 버티기 어렵다는 양 할딱인 문성하가 발목을 당겼다. 늘어져 있던 왼 다리가 마법처럼 들려 무릎을 세웠다.
“다리 튼튼하네.”
마무리를 짓듯 문성하의 볼을 꾹 누른 주혜성이 조금 웃었다. 문성하는 괜히 흘겨봤다. 손을 내린 주혜성이 거즈와 테이프, 가위를 챙겼다. 문성하의 볼 면적을 가늠하며 거즈를 자르고는, 고이 접어 척척한 뺨에 붙였다.
“NGX는 형 회사나 다름없어. 이유는…….”
한 손으로 거즈를 잡은 채, 다른 손으로 테이프를 잘라 뗀 주혜성이 읊조렸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테이프가 문성하의 볼에 붙었다. 주혜성이 덧붙였다.
“베이스터 때하고 같은 거야.”
주혜성이 두 번째 테이프를 잘랐다. 조금은 날연한 음성이 들렸다.
“베이스터는 시작도 끝도 형이었어. 형 생각하며 컴퓨터만 하다가 차린 회사고, 5년 전 형을 잃은 걸 계기로 내려놓았지. 형을 보낸 길목에 이정표처럼 존재하는 게 베이스터였으니, 나로서는 꼴도 보기 싫은 게 당연하잖아.”
두 번째 테이프가 거즈 하단에 붙었다. 주혜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한동안 뭘 해야 할지 모르고 헤맸어. 베이스터 한국 법인은 PE에 팔아 버렸고, 베이스터 본사 운영은 알렉스와 DZ, 한나에게 전권을 넘겼어. 베이스터 보유 지분 일부를 현금화해 무작정 백수가 됐는데, 정말이지 할 게 없더라고.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형이 뭘 하고 있었지? 그래, 투자를 하고 있었지. 그걸 생각하니 ‘투자를 해야겠다’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 어릴 때의 증세가 재발한 것처럼 맹목적으로 한 가지 결단만 좇게 되는 거야. 시작엔 늘 그랬듯 형이 있었고.”
테이프를 붙이고 난 주혜성이 잘 자리 잡은 거즈를 손으로 쓸었다. 문성하의 눈동자가 서서히 오롯해졌다. 마주 본 주혜성이 씁쓸하게 웃었다.
“내 인생은 또 형을 중심으로 흘러가. 의지와 관계없이.”
말을 맺은 주혜성이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휘 둘러본 그가 소파로 다가갔다. 시트에 놓인 담요를 가져와서는 문성하의 몸을 덮었다. 포대처럼 감아 오는 천을 문성하는 의아하게 봤다.
“이 정도는 괜찮지?”
묻고 난 주혜성이 바로 등을 둘러 왔다. 아. 단숨에 안긴 문성하가 소스라쳤다. 반사적으로 허둥거리는 다리를 안정적으로 감싸며 주혜성이 발을 옮겼다. 걸을 때마다 불뚝거리는 팔뚝이 담요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갈수록 빨라지는 맥박도 이따금 전이됐다. 문성하의 다리가 느릿느릿 처졌다. 덩달아 뜀박질하는 자신의 심장 때문에 이 이상 버둥질할 수 없었다.
주혜성은 이상할 정도로 천천히 걸었다. 마치 거실부터 침실을 하나의 구간으로 두고 산책하는 사람 같았다. 길디긴 이보 끝에 침대 앞에 다다른 그가 문성하를 내려놓았다. 시트에 널브러진 문성하가 섟을 냈다.
“주혜성.”
“미안. 한번 안고 싶었어.”
주혜성이 입꼬리를 내렸다.
“엄청 좋았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문성하가 멈칫했다. 등줄기가 바싹 말라 왔다.
“갈게, 형. 또 봐.”
언제, 어디서 보자는 말도 없이 그가 등을 보였다. 빠르게 사라진 실루엣이 서벅서벅 걸어가는 소리를 남겼다. 곧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음이 안을 울렸다. 조용해진 침실에서 문성하의 어깨가 흘러내렸다. 삐걱거리던 머리가 푹 기울었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거즈를 더듬었다. 식은 가죽이 종종 화들거렸다. 아까 느낀 주혜성의 맥박 같았다.
-내 인생은 또 형을 중심으로 흘러가.
그 말은 문성하가 예상한 ‘그것’이 맞았다. 정답이 문성하의 편이 되어 준,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진짜 싫다.”
웅얼거리며 이불을 끌어 올렸다. 머리 꼭대기까지 덮고는 어둠 속에서 온몸을 스미는 정적을 견뎠다. 괜히 눈시울이 시큰했다. 분에 바친 혼잣말이 나왔다.
“이 병신아.”
벼락처럼 찾아온 이 재회가 마냥 고통스럽지만은 않음에, 문성하는 좌절을 느꼈다. 이제 자신에게는 그럴 이유가 없는데.
주혜성과는 형제도 뭣도, 아무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