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37)

19.

“왜 하필 나비니?”

초등학교 5학년의 여름, 양호 선생이 그런 걸 물었다. 전날 비에 흠뻑 맞는 바람에 몸살에 걸린 주혜성이 양호실 침대에서 앓는 걸 간호하다 건넨 질문이었다. 그는 주혜성에게 ‘왜 그렇게 비를 맞았냐’고 물었고, 주혜성은 전날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양호 선생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주혜성의 사고를 뒤흔드는 ‘나비 떼’의 개념에 대해 난해해 했다.

주혜성은 수긍했다. 많은 사람이 주혜성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형은 사람들이 멍청해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주혜성은 그들이 멍청하든 멍청하지 않든 진작 개의치 않았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존재는 이미 있었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것만 있으면 다른 사람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자신의 시계였고, 책이었고, 언어였다. 주혜성의 모든 세상이 그의 안에 있었고, 그리하여 그는 주혜성의 우주가 되었다. 그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건 주혜성의 습관이자 본능이었다.

발단은 전날의 아침이었다. 언제나처럼 문성하와 함께 집을 나섰고, 그는 가는 와중에 주혜성이 학교에 챙겨 가야 할 준비물을 하나하나 상기해 주며 빼먹은 것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문성하는 늘 집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주혜성과 함께 갔다. 거기서 문성하가 버스를 타고 등교하면, 주혜성은 좀 더 걸어 오 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향했다.

“어어, 성하야. 너 잘 만났다.”

정류장을 몇 발자국 남겨 뒀을 때 막 다가온 남학생이 알은체를 했다. 문성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주혜성은 그를 알고 있었다. 문성하와 같은 반 친구라고 했다. 인근 공터에서 주혜성이 공차는 걸 문성하와 함께 봐 준 일이 있었다.

“이거 저번에 빌린 것.”

남학생이 뭔가를 내밀었다. 접이식 우산이었다. 받아 든 문성하가 쏘아붙였다.

“이걸 이제 주냐?”

“나도 깜빡했다. 오늘 비 온다기에 우산 챙기다 보니 생각나더라.”

“오늘 비 와?”

“예보 못 봤냐? 학교 끝날 때쯤 비 와.”

남학생이 어깨를 으쓱했다. 손에 쥔 우산을 내려다보던 문성하가 심각해졌다. 곧 주혜성의 팔을 잡고는 몸을 반대로 돌렸다. 얼떨결에 등을 보인 주혜성의 가방 지퍼가 열렸다. 안에다 우산을 넣어 준 문성하가 꽉 지퍼를 닫으며 가방을 두드렸다.

“혜성아. 이따가 비 오면 이것 써. 응?”

“형은?”

“형은 친구 것 같이 쓰면 돼.”

“이 우산 형 거잖아.”

“이제 혜성이 거야. 아, 버스 왔다. 가자, 서준영.”

문성하가 갑자기 남학생 쪽에 손짓했다. 달려가는 문성하를 따라가던 남학생이 주혜성에게 인사했다. 학교 잘 다녀와라, 혜성아. 치익, 열리는 문틈으로 두 남학생이 뛰어 들어갔다. 주혜성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사라져 가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봤다. 끄무레한 혼잣말이 나왔다.

“이 우산 형 거인데.”

***

종례 시간을 삼십 분 앞두고 천둥이 쳤다. 이내 우박 같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교실의 학생들 사이에서 소요가 일었다. 아, 우산 안 가져왔는데. 어수선한 교실을 잠재우며 선생이 타일렀다. 우산 안 가져온 학생은 가져온 학생하고 같이 쓰거나 이따가 부모님께 연락해라. 그만들 하고 집중하자. 어?

종례를 마쳤을 때 빗발은 두 배 정도 굵어져 있었다. 입구에 모인 학생들이 술렁였다. 아씨, 이거 다 맞으면 감기 걸려! 한 남학생이 볼멘소리를 했다. 책가방의 지퍼를 만지작거리며 우중충한 하늘을 보던 주혜성의 눈이 둥그레졌다.

-이거 다 맞으면 감기 걸려.

곱씹던 말이 리본처럼 머릿속에서 나풀거렸다. 리본은 곧 나비가 됐고, 주혜성은 묵직한 두통에 시달리며 끙, 관자놀이를 짚었다. 현기증 속에서 자신이 방금까지 뭘 생각했고, 뭘 하려 했는지가 안개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머리만 쥐어짜던 주혜성의 가방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황급히 떨어진 눈길이 바닥을 머금었다. 주혜성의 입이 벌어졌다. 우산이다. 형 우산. 그러고 보니 형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형 우산은 나한테 있는데, 그러면 형은 우산이 없는데. 그러면 형은 비를 맞게 될 텐데.

그러면 형이 감기에 걸리는데.

콰앙! 세찬 천둥소리가 입구를 덮쳤다. 으아악! 몇몇 학생이 호들갑을 떨었다. 정신을 차린 주혜성이 몸을 숙였다. 굴러다니는 우산을 집어 들고는, 손잡이의 버튼을 눌렀다. 팡, 차양이 펼쳐졌다.

우산을 쓴 주혜성이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운동장에 발을 딛고, 뛰기 시작했다. 몇 걸음 가지 못했다. 정면에서 불어오는 돌풍에 자꾸만 몸이 밀렸다. 와들거리던 우산이 확 젖혀졌다. 찡그린 주혜성이 뒤집힌 우산과 비바람 부는 하늘을 번갈아 봤다.

안 되겠다. 우산은 가방에 넣자. 이걸 쓰고 달리면 방해만 된다.

결심한 주혜성이 우산을 차곡차곡 접었다. 그대로 가방에 넣고, 꼭꼭 지퍼를 닫은 뒤 등에 멨다. 이내 정문을 향해 돌진했다. 멀찍이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 주혜성 그냥 간다! 맞고 가려나 봐.

정문을 빠져나와 곳곳에 웅덩이진 바닥을 밟아 가며 뛰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바닥에서 튄 물까지 더해 옷이 흠뻑 젖었다. 지나쳐 가던 어른들이 걱정했다. 아이고, 저걸 그냥 맞고 가네. 주혜성은 들은 척도 않고 달음박질만 쳤다. 물안개 자욱한 사위를 가르며 무작정 내달렸다. 형의 학교를 향해.

뇌리를 채운 건 하나의 목적이었다. 형을 감기에 걸리게 해선 안 된다. 다른 건 다 잊어버렸다. 형이 어쩌다 우산을 줬는지, 주면서 뭐라 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형에게 한시 바삐 닿아야 한다는 것 말고는 새까맣게 망각하고 말았다.

버스 네 정거장짜리 거리를 십칠 분 만에 돌파했다. 비에 젖어 할딱이는 주혜성을 우르르 하교하는 남학생들이 힐긋거렸다. 잽싸게 학생들을 가로지르며 널따란 운동장을 달렸다. 쏟아지는 비에 맞은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주혜성은 비로소 편안했다. 형을 지키기까지 이제 몇 걸음 남지 않았다.

건물 복도에서 우왕좌왕하다 형의 교실을 찾았다. 1학년 7반. 열린 뒷문 틈으로 안을 살폈다. 대부분의 학생이 빠져나간 가운데 몇몇 학생들이 서로 펜을 집어 던지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형은 창틀에 걸터앉아 배를 잡는 중이었다. 아침에 봤던 남학생이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아, 씨발. 또라이 새끼야! 뚜껑 열고 던지냐? 이거 살인 미수야.”

“씨발 놈아, 너도 아까 했잖아.”

“내 건 최소한 0.4밀리짜리였어.”

“그럼 내가 0.5밀리짜리 송곳 가져와서 너 존나 찔러도 무죄네.”

시시덕거리는 문성하의 어깨를 누군가가 때렸다. 문성하의 얼굴이 돌아갔다. 한기에 사로잡혀 색색거리는 주혜성을 가리킨 남학생이 물었다.

“야, 네 동생 아니야?”

넋이 나가 바라보던 문성하가 헉, 소리를 냈다. 가쁘게 창틀에서 내려온 그가 달려왔다. 이어 벌벌거리는 주혜성의 어깨를 잡으며 채근했다.

“혜성아! 우산은?”

주혜성은 아무렇지 않게 메고 있던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곱게 접힌 우산을 빼서는, 형에게 내밀었다. 문성하가 아연실색했다. 주혜성이 생글거렸다.

“우산 쓰고 뛰면 늦어. 형 감기 안 걸리는 게 우선이야.”

벙해 있던 문성하의 얼굴이 돌아갔다. 제 낯을 움켜쥔 형의 입에서 돌겠네, 소리가 나왔다. 주혜성은 골똘히 갸웃거렸다.

뭐가 문제지. 형만 안 맞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내 세상은 곧 형이니, 형만 지키면 그만 아닌가.

난 정말로 그거면 되는데.

***

“원래도 저 괴롭히는 거 있었는데요.”

양호실 침대에 걸터앉은 주혜성이 다리를 파닥거렸다. 맞은편의 양호 선생이 턱을 괴었다. 주혜성이 덧붙였다.

“형 오고 나서부터 그게 나비가 되었어요.”

“왜 나비일까?”

“형이 사과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나비가 형한테 사과를 가져다준대요.”

“동화 같은 얘기네.”

“그 나비가 제 머릿속에도 들어와 있는 거예요. 시도 때도 없이 팔랑거리고 날아다녀요. 그래서, 음…….”

주혜성이 어물거렸다. 선생은 참을성 있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간신히 뇌리를 정리한 주혜성이 입을 뗐다.

“머릿속에 떠오른 걸 그때그때 하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어요. 다른 걸 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가끔은 화가 엄청나게 나요. ADHD는 원래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인터넷에서 봤어요.”

“보통은 뭐가 가장 하고 싶어?”

“형과 관련한 건 다요. 같이 노는 것도 그렇고, 형이 제 말을 들어 주는 것도 그렇고…….”

“혜성이는 형이 참 소중한가 보구나.”

“네. 우리 형은 대단한 사람이거든요.”

주혜성이 배시시 웃었다. 몸살 때문에 머리가 띵했지만,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형 얘기를 하면 주혜성은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언제라도 웃을 수 있었다.

물끄러미 주혜성을 살피던 선생이 턱에 걸려 있던 손을 내렸다. 자세를 고친 그가 진중하게 눈을 맞춰 왔다. 어르는 언어가 찾아들었다.

“그런데 형이 늘 너에게 맞춰 줄 수는 없는 일이잖아.”

“보통은 해 주는데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아무튼. 좀 고쳐 볼 생각 없니? 너무 형만 생각하는 것도 피곤할 것 같은데 말이야.”

“형도 어제 그 얘기했는데요.”

주혜성의 낯이 어둑해졌다. 흘러간 시선이 허공에 걸렸다. 생각을 모으려 하니 갑자기 머릿속이 아득해지며, 또 나비가 날아다닌다. 자신이 어디에 있고, 뭘 하고 있었는지가 불현듯 가마득하다.

주혜성은 익숙한 것처럼 눈을 감았다. 나비를 쫓을 사람을 불러온다. 형. 형을 떠올린다. 어제의 형. 한 손에 우산을 들고 푹 젖은 주혜성을 업은 채 빗길을 걸어가던 형. 형은 말했다.

-혜성아. 가끔은 형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하는 연습을 하자.

주혜성은 답하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다물린 입술에서 비릿한 내음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빗물인 줄 알았지만, 형의 목에 맺힌 물방울의 색을 보고 알았다. 피라는 걸. 스스로 깨물어 터진 제 체액이라는 걸.

그걸 보면서도 주혜성은 깨문 입을 풀지 않았다. 줄줄이 떨어진 방울이 형의 목덜미에 그림을 그렸다. 주혜성은 울음을 참으며 그것을 주시했다. 꼭, 나비 같았다.

형이 오늘도 주혜성의 나비를 잡아 줬다.

“그러면……. 저는 아무것도 못 하는데요.”

기어 들어가는 음성이 양호실을 메웠다. 선생의 미간이 구겨 들었다. 주혜성의 머리가 들렸다. 자못 또박또박한 소리가 나왔다.

“형이 없으면, 저는 고장이 나는데요.”

문성하는 주혜성의 유일한 동력이라서, 그가 없으면 주혜성은 저절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주혜성에게 ‘형을 참으라’는 말은 ‘전원을 끄라’는 명령어와 같았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건 진작 알았다. 눈앞의 양호 선생을 비롯해 그 어떤 어른이나 또래도 이 마음을 모를 것이다. 주혜성은 상관없었다. 적어도 형은 이해해 줄 테니까. 주혜성의 세상을 만든 형이라면, 반드시 알아 줄 테니까.

주혜성이라는 피조물은 오로지 창조주에 따르는 일밖에 하지 못해서, 그를 제외한 온 세상이 뜬구름처럼 생경했다.

그래서 보통의 세상이 어떻게 죄를 지으며,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를 미처 알지 못했다.

***

“형!”

쏴아, 쏟아지는 빗줄기 틈으로 형의 뒷모습이 보였다. 빌라 단지에서 한 블록 떨어진, 신호등 없는 차도였다. 몇몇 차량이 새하얀 라이트를 빛내며 형의 앞을 오가고 있었다. 서서히 다가간 주혜성이 문성하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을 디뎠다. 형은 돌아보지 않았다.

주혜성이 눈길이 올라갔다. 미명을 뚫고 내리꽂히는 빗물이 성난 화살 같았다. 헬기 기사로부터 금일 새벽 서울에 비가 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폭풍우 속이었다.

“다가오지 마.”

빗소리를 뚫고 경고가 다가왔다. 얼어 있던 주혜성의 눈이 굴러갔다. 여전히 등을 보인 형이 부서져 가는 암초처럼 비척거렸다. 주혜성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처럼 헉헉거리다, 온 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조금만…….”

발이 나아갔다. 물이 고인 바닥에서 철벅이는 소리가 번졌다. 주혜성이 목을 놓았다.

“조금만 다가갈게. 가서 얘기할게. 형, 제발 내 말 좀…….”

“주혜성.”

싸늘한 한 마디가 주혜성의 말을 잘라먹었다. 어두컴컴한 저편에서 힐금하는 눈빛이 비쳤다. 제대로 보이지 않음에도, 심장이 쏜살같이 냉하게 옥죄어 왔다. 주혜성의 입이 얼어붙었다.

“내가 다가오지 말라고 했지.”

말을 마친 문성하가 몸을 뺐다. 이내 아찔한 비바람에 휩싸인 차도를 횡단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주혜성은 스위치 꺼진 기계처럼 발목만 덜컥거렸다. 귓가를 장악한 빗소리가 고막을 멀게 할 양 사나워지고, 소음과 비례해 형이 멀어져 간다. 점점, 온기가 옅어져 간다.

쾅!

돌연 굉음이 차도를 울렸다. 멀찍이서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주혜성의 눈이 부릅떠졌다. 새하얀 전조등 앞에 널브러진 인영이 보였다. 너무나도 익숙한 실루엣이라, 절로 숨이 멎어 갔다.

“저기요! 괜찮아요?”

운전석 문을 벌컥 연 남자가 튀어나왔다. 주혜성의 발이 내뻗어졌다.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여명을 뒤흔들었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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