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37)

16.

셔츠 단추를 전부 풀어 뒤로 젖혔다. 곧 맨 팔을 뻗었다. 주혜성이 입은 티셔츠의 밑단을 쥐고는, 위로 말아 올렸다. 움칠한 주혜성이 눈을 맞춰 왔다. 문성하는 그의 눈을 통해 자신의 반 나신을 봤다.

“어떻게 하고 싶어?”

티셔츠가 주혜성의 머리 위로 빠져나왔다. 가슴과 복부에 보기 좋게 잡힌 근육이 드르렁거리는 말처럼 울렁였다. 가죽의 섬세한 굴곡을 타고 문성하의 손이 미끄러졌다. 들숨을 삼킨 주혜성이 고개를 돌렸다. 문성하가 말했다.

“하고 싶은 것 얘기해. 형이 다 맞춰 줄…….”

“왜 아무렇지 않아? 형은.”

높낮이 없는 질문이 귀를 스쳤다. 문성하의 손목이 멈췄다. 막 주혜성의 벨트를 붙든 손에서 핏기가 가셨다. 문성하가 부러 은연히 답했다.

“그야 너를 안심시키고 싶으니까…….”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렇게 행동해?”

책망이 비치는 물음이었다. 문성하의 얼굴이 들렸다. 턱을 불룩인 채 호흡을 가다듬는 주혜성이 보였다. 힘이 실린 눈언저리에서 황망한 그늘이 비쳤다. 문성하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누구에게나 이렇지 않지. 혜성이니까, 그러니까 형이 이러는 거…….”

“형, 나 좋아하는 거 맞지.”

목을 휘감는 언어에 묘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녹아 가던 문성하의 등이 가까스로 곧추섰다. 작지만 견고한 대답이 나왔다.

“좋아해. 말했잖아.”

“이유는?”

자못 초조함을 머금은 질문. 어깨에 내려앉는 숨결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후덥지근했다. 늘어져 있던 문성하의 발목이 삐걱거렸다. 혼란한 머릿속만큼이나 어질어질한 발놀림이었다.

“혜성아. 형은…….”

발 근처. 세 번째로 확인한 접시 표면은 이제 하나의 고체처럼 굳어 있다. 체감상 짧았던 시간이 저 접시에게는 꽤나 길었던 모양이다.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문성하는 알았으니까. 세상의 시간은 절대로 문성하의 걸음에 맞춰 주지 않는다는 걸. 안달 난 문성하만 한정된 보폭으로 아등바등 쫓아갈 뿐이라는 걸.

주혜성의 지난 10년을 문성하는 모른다. 자신의 시간보다 빨랐는지 혹은 느렸는지. 더 따스했는지 혹은 차가웠는지. 다만 한 가지는 안다. 자신이 잊었던 몫마저 동생은 오롯이 홀로 감당해 왔다는 것을. 그의 10년은 말하자면, 2인분의 고독이었다.

문성하의 세상에서 주혜성은 자주 사라졌지만, 주혜성의 세상에는 항상 문성하가 있었다. 문성하를 이정표 삼아 긴 시간 노를 젓다 지금 이 시간에 이르렀다. 주혜성은 지금 자신의 목적지에 어떤 글귀가 적혀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고, 문성하는 답으로서의 답을 해야 했다. 거쳐 온 시간이 다를지언정 진실의 시간은 동일한 템포를 지니고 있다. 문성하가 말을 하면, 주혜성은 물결처럼 번지리라.

문성하는 사람과 사람이 섹스를 하는 이유를 안다. 욕망. 응어리진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문성하는 많이도 이 짓을 해 왔다. 다만 매달려 가며 한 적은 없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자신을 원하는 남자는 충분히 있었고, 그렇게까지 해 가며 자신을 끌어 내리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은 매달릴 생각이다. ‘그런 욕망’은 어디에서나 채울 수 있지만, ‘이런 욕망’은 오로지 하나의 대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문성하는 지금 사람을 욕망한다. 그의 앞에서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헐벗길 수 있었다.

“형은 혜성이가 무서워.”

문성하의 손이 주혜성의 벨트를 풀었다. 이어 지퍼를 내렸다. 지익, 소리가 나는 내내 주혜성은 문성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긴 숨을 내쉰 문성하가 그의 어깨에 이마를 붙였다. 주혜성의 흉근이 불룩거렸다. 개의치 않고 체향을 음미한 문성하가 덧붙였다.

“네 냄새가, 네 목소리가, 네 움직임이. 너무나 좋아 사라질까 봐 무서워.”

손가락이 청바지 안 속옷 밴드를 긁었다. 팽팽한 원단이 옴쭉거렸다. 문성하의 고개가 내려갔다.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이런 걸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손가락에 걸린 밴드가 흘러내렸다. 내내 파묻혀 있던 음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적어도 동생이어서는 아니라는 의미니까.”

막 다물린 입술을 찰싹, 때리며 뭔가가 꺼떡거렸다. 문성하가 멈칫했다. 갑갑한 천을 헤집고 나온 살덩이가 몸통을 부풀리며 쿨렁이고 있었다. 딱딱한 가죽 표면에서 꿈틀거리는 핏줄이 고스란히 비쳤다. 문성하의 고개가 재차 들렸다. 주혜성은 그새 문성하를 외면한 채였다. 미적거리며 올라간 주혜성의 손이 제 얼굴을 덮었다. 뜀박질하는 심장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문성하가 물었다.

“왜 그래? 혜성아.”

“이상해.”

“뭐가.”

“그냥 다…… 형하고 내가 옷을 벗고 있다는 게, 형이 말하는 게,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두서없이 말을 맺은 주혜성의 얼굴에서 손이 떨어졌다. 나직한 혼잣말이 이어졌다.

“수음할 때 상상한 것보다도 더 상상 같아. 그래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해.”

문성하의 눈이 깜빡였다. 어른거리던 시야가 꽤나 긴 시간 후에야 자리를 잡았다. 적잖이 곤란한 듯한 주혜성의 낯이 햇살처럼 흐드러졌다. 그 빛을 마음껏 만끽한 문성하가 다정한 질문을 건넸다.

“형 상상하면서 수음했어?”

“어.”

주혜성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희한한 구석에서 수치를 모르는 동생이 귀여워 문성하는 웃고 말았다. 젖어 드는 입 안에서 혀가 얄궂게 너울거렸다.

“어떤 상상.”

“형이 내 것 만져 주는 상상.”

“만져 주기만 했어?”

“다른 것도 했어.”

“어떤 것.”

“그냥…….”

이번에는 어물거리는 반응이다. 피식거린 문성하가 입을 벌렸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두를 향해 혀를 내밀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꼼작거리는 끄트머리에 대고 살살 표면을 굴렸다. 주혜성이 찔끔했다.

“아……. 형.”

“이런 것도?”

“했던…… 것 같아.”

“이렇게 해 주는 건 어디서 배웠어. 포르노 봤어?”

문성하가 조롱했다. 주혜성은 가만히 제 목을 주물렀다. 정확히 맞춘 모양이었다. 문성하는 엷게 웃으며 눈을 깔았다. 딱 봐도 한입에 담기 버거워 보이는 귀두를 응시하며 얼굴을 숙이고, 입 안을 확장했다. 덥석 문 살덩이가 감전된 양 덜덜거렸다. 곧 축축한 내부를 뱀처럼 비집어 왔다. 문성하의 아랫입술이 울렸다. 작은 신음이 나왔다.

“후으…….”

“하……. 갑갑해, 형.”

“포르노에서…… 이런 건 안 알려 줬어?”

“몰라. 두어 번……밖에 안 봐서. 아……!”

갑자기 시트에서 탕, 소리가 났다. 일순 놓칠 뻔한 성기가 허둥지둥 움직인 혀를 타고 문성하의 안에 욱여넣어졌다. 반도 채 들어오지 않은 생식기가 벌써 목구멍을 찔러 왔다. 숨 쉴 구멍을 갈구하며 끙끙거린 문성하가 버겁게 눈을 치떴다. 난처한 듯 어금니를 씹던 주혜성과 눈길이 얽혔다. 기묘한 정적이 두 사람을 옭맸다.

그 짧은 순간, 문성하는 영겁과도 같은 세월의 한 조각을 마주했다. 자신이 일 초라도 봐 주지 않으면 불안해 소리를 지르거나 자해를 하던 소년과 눈앞의 남자가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잘린 셀로판지처럼 꾸역꾸역 겹쳐졌다. 곧 소년은 사라지고, 남자만 남는다. 아. 문성하의 가슴이 철렁였다.

어쩌면 그간 자신이 쫓은 건 전부 허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재는 따로 있는데.

왜 몰랐을까. 자신이 원하는 건, 전부 이 순간에 머물러 있다는 걸,

“형이 알려 줄게. 포르노보다 제대로.”

가다듬은 입으로 뇌까리며 시선을 기울였다. 오물거리고 난 입이 문성하의 팔뚝 크기로 팽창한 살덩이를 꽉 조였다. 하아. 머리맡에서 열기 섞인 탄식이 터졌다. 쾌감에 도취된 입의 움직임이 게걸스러워졌다. 그에 상응하듯 목구멍 입구를 틀어막은 성기가 펄떡였다. 워낙 움직임이 거세 부딪힌 점막이 다 얼얼했다.

잠시 고개를 빼며 숨을 고르고, 보다 힘차게 얼굴을 밀어붙였다. 아까보다 원활하게 들어온 귀두가 또 목구멍에서 막혔다. 할딱인 문성하가 목의 힘을 풀었다. 느슨해진 구멍을 귀두가 마구 파고들었다. 막혀 가는 숨통에 기겁한 맥박이 자지러졌다. 문성하의 목이 벌벌거렸다.

“형은…… 후으, 야한 걸 정말 잘하는구나…….”

늘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기를 아래에서 위로 쭙, 빨고 난 문성하가 위를 힐긋했다.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는 주혜성의 보였다. 귀두를 오물거린 문성하가 물었다.

“그래서 실망했어?”

“실망.”

“혜성이는 처음이지만, 형은 처음이 아니니까.”

“실망하지 않았어. 다만.”

주혜성이 뜸을 들였다. 문성하는 그의 답을 기다리며 펠라티오를 지속했다. 어려서 그런지 빨리도 발정한 남근은 생소한 자극 앞에서 의외로 의연했다. 정액은 물론이고 쿠퍼액조차 나오지 않는다. 역시 어려서인가. 이런 일이 처음이라 언제, 어떻게 몸을 반응시켜야 하는지 몰라서인가.

동생의 순수가 자신에 비해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갖고 있는지, 문성하는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았다.

“조금 슬펐어.”

살덩이를 세심하게 축이고 난 문성하가 흠칫했다. 살짝 빠진 이가 딱딱한 가죽에 자국을 냈다. 주혜성이 제 눈가를 감싸며 태식했다.

“후으으…….”

“왜 슬펐어.”

여전히 눈을 가린 주혜성이 구물거렸다. 한참의 고요 끝에 대꾸가 다가왔다.

“다른 남자도 형이 이렇게 해 주는 걸 즐겼을 거잖아. 그걸 생각하면 슬퍼.”

“형은 다른 남자에게 이런 걸 해 준 적이 없어.”

주혜성의 생식기를 혀로 문지른 문성하가 읊조렸다. 주혜성의 윗눈썹이 삐뚜름해졌다. 문성하가 덧붙였다.

“입으로 해 준 적 없어. 형은 이기적이라 남에게 봉사하는 것 싫어해.”

이어 강조하듯 말했다.

“나는 지금 너에게 몸으로 애원하고 있는 거야. 혜성아.”

주혜성의 호흡이 잦아져 갔다. 또 조용해진 찰나, 문성하의 입 안에서 비릿한 내음이 강물처럼 차올랐다. 아, 소리 낸 문성하가 찡그렸다. 음경으로 꽉 찬 입술 틈에서 녹진한 액이 질질 흘렀다. 문성하의 목을 타고 굵은 침이 넘어갔다.

동생의 쿠퍼액이 나왔다.

“더 못 참겠어.”

내려온 손이 문성하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미처 성기를 뱉지 못한 문성하가 시선만 끌어 올렸다. 눈을 맞춘 주혜성이 조곤조곤 말했다.

“편해지게 해 줘. 형.”

어깨를 주물럭거리던 손아귀에 힘이 실렸다. 들은 말의 의미를 미처 헤아리기도 전에 문성하의 몸이 넘어갔다. 입 안을 빼곡히 채운 성기가 퉁 튀어나왔다. 풀썩 시트에 드러누운 문성하가 가는 눈을 떴다. 다가온 손이 문성하의 얼굴 옆을 짚었다. 부쩍 흐려진 시야에 주혜성의 검은 낯이 걸렸다.

“내가 상상한 전부를 형에게 해도 돼?”

문성하의 눈이 가물거렸다. 초점을 잃은 눈길이 허공에서 부유했다. 먼지처럼 나풀거리는 사물의 조각들이 뭉쳐지는 데에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마냥 벌어져 있던 입이 조금조금 맞물렸다. 지난한 여행을 마친 끝에 정박되는 선박처럼 날연한 언어가 흘러나왔다.

“그럼. 혜성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혜성의 손이 옮겨졌다. 쥐어 잡힌 문성하의 바지 버클이 마구잡이로 풀려 갔다. 속옷과 바지를 한꺼번에 쥔 손이 내려 붙여졌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옷가지 위에서 발정한 성기가 흔들거렸다. 주혜성이 단침을 삼켰다.

“형도 흥분했어.”

발목에 다다른 옷가지가 쑥 빠졌다. 알몸이 된 문성하가 양손을 뻗었다. 한 손으로 주혜성의 가슴팍을 디딘 채 다른 손으로 그의 성기 밑동을 잡았다. 마사지를 하듯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형 다리 벌려 봐.”

주혜성이 고분고분 몸을 낮췄다. 늘어진 허벅지를 양손으로 잡고는, 틈을 만들며 위를 향해 올려붙였다. 문성하가 또 말했다.

“혜성이 어깨에 올리고.”

순순한 손길이 양다리를 널따란 어깨 위에 얹었다. 이어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나아간 주혜성의 장골이 문성하의 엉덩이를 덮쳤다. 맞붙은 부위가 화끈거렸다. 문성하가 미소 지었다.

“그렇게 하고 싶어? 혜성아.”

웃지도 않은 주혜성이 답했다.

“어.”

웃음을 거둔 문성하가 빈손으로 제 회음부를 더듬었다. 자위하는 걸 보여 주듯 엄지와 검지로 틈을 만들었다. 벌어진 구멍 안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입술 틈에서 달뜬 신음이 샜다.

“하아…….”

“보여 주는 거야?”

“실컷 봐…….”

농몽하게 대꾸한 문성하가 두 손가락을 구멍에 처넣었다. 돌연 아래가 차는 감각에 하반신이 찌릿하며 반응했다. 문성하의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후으. 여기다가…… 넣는 거야. 혜성아.”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인 한 마디에 주혜성은 대답 없이 손을 내렸다. 주혜성의 밑동을 감싼 문성하의 손아귀에 또 다른 손이 겹쳐졌다. 가붓하게 주무른 주혜성이 뇌까렸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형.”

새까만 음영이 문성하의 얼굴을 가렸다. 가죽이 아릴 정도로 문성하의 손을 부둥킨 주혜성이 돌연 벌어진 구멍에 귀두를 처박았다. 우악스레 파고드는 살덩이에 놀란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내려다보던 주혜성이 대뜸 허리 짓을 했다. 두꺼운 생식기가 푹, 내벽을 가로질렀다.

“아, 흐읏……!”

배 안을 채워 오는 아찔한 포만감에 문성하의 머리가 젖혀졌다. 그대로 어깨에서 떨어질 뻔한 다리를 주혜성이 받쳤다. 이내 양손으로 문성하의 허벅지를 거머쥐고는, 굶주린 짐승처럼 굴신하기 시작했다. 주혜성의 성기를 그득하게 품은 내벽이 소스라치며 꼼짝거렸다. 배 안이 터질 것 같아 절로 발이 버둥거렸다. 문성하가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잠, 까안……. 빨라, 빨라. 혜성아, 그렇게……. 읏. 그렇게 하는 거 아니……!”

“그럼…… 하아……. 어떻게 해?”

허덕이며 물은 주혜성이 재촉하듯 치골을 들썩였다. 뻐근한 배 안에서 지동이 일었다. 옴지락거리던 점막이 체념한 듯 단단한 이물질과 접합하기 시작했다. 용암을 품은 것처럼 배 안이 달아 왔다. 문성하가 시트를 쥐어뜯으며 호소했다.

“그렇게 갑자기, 흣……. 하면 아, 안 돼. 형 배 터져……. 흡. 아. 제발…….”

“이건 내 의지가 아냐.”

중얼거린 주혜성이 홀린 듯 허리를 튕겼다.

“몸이 멋대로 움직여. 형 안에 들어가고 싶어서.”

착, 하며 그의 앞섶과 문성하의 엉덩이가 부딪쳤다. 보지 않아도 가죽이 빨개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아픔을 느낄 겨를 따윈 없었다. 배 속에서 범람하는 자극의 세기가 훨씬 컸다.

정도를 모르는 주혜성은 폭주 기관차와 같았다.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쉬어야 하는지가 하나도 학습돼 있지 않았다. 그저 본능에 이끌려 움직일 뿐이었다. 닳을 정도로 들쑤셔진 구멍 안에서 내벽이 흐무러졌다. 문성하가 그간 즐겨 하던 피학적 섹스와 별개로, 이런 성교는 처음이었다.

절반 넘게 들어온 성기가 무시로 깊숙한 내벽을 두드렸다. 진 빠진 문성하가 달달거리며 시트를 긁었다. 거센 삽입만 반복한 탓에 물러진 내벽이 물처럼 질척이는 소리를 냈다. 이 생식기를 거부할 기력도, 의지도 없다는 의사 표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이상 성기가 들어올 구석이 없다는 사실이다. 전부 들어오기 전에 막다른 벽에 막혀 버렸다. 더 넣으려면 방향을 틀어야 하지만, 주혜성이 그걸 알 턱이 없다. 애초에 방향을 틀 정도로 큰 생식기를 지닌 사람을 만나 본 일이 없었다.

“형이 지금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모르겠어.”

굴신을 반복하던 주혜성이 중얼거렸다. 문성하는 어느 순간 얼굴을 반쯤 시트에 묻고 있었다. 지금의 낯을 동생에게 비치는 게 싫었다. 분명히 형편없을 거고, 그런 걸 보여 주느니 기절하는 게 나았다.

자신이 주혜성과의 섹스에 블록 빠진 젠가처럼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잠자리에서 단 한 번도 느낀 일 없던 박탈감을 이 순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 와중에 동생과 하는 이 짓거리가 너무도 좋아, 말간 흥분감에 얼굴이 전부 젖었다는 사실을. 그런 자신을 동생에게 보이는 게 싫어 조금 울었단 사실까지도.

전부 알리고 싶지 않았다.

“형.”

불쑥 다가온 손이 문성하의 턱을 잡았다. 으응, 소리 낸 문성하가 도리질을 쳤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물어뜯을 것처럼 기를 썼다. 주혜성이 차분히 문성하의 허벅지로부터 손을 거뒀다. 풀썩. 다리가 무너졌다. 문성하의 허리를 둘러 온 주혜성이 남은 팔로 허벅지를 받쳤다. 축 저진 문성하의 몸이 들렸다.

“울었어?”

나긋한 질문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문성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주시하던 주혜성이 사과했다.

“미안해, 형. 내가 너무 멋대로 해서…….”

“아니. 괜찮아.”

문성하가 보다 힘껏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주혜성이 사과할 건 없다. 그는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였을 뿐이고, 문성하는 타고나길 그런 걸 좋아하는 이상 성욕자다. 주혜성은 지금 이 행위를 후회하겠지만, 문성하는 후회조차 할 수 없다. 모든 수치는 오롯한 문성하의 몫이다.

“이제 아까처럼 안 할게. 어떻게 하는지 알았어.”

주혜성에 안긴 몸이 허공에 떴다. 그대로 자신의 허벅지에 앉힌 주혜성의 고개가 비스듬해졌다. 잔잔한 언어가 찾아들었다.

“형 생각해 가면서 부드럽게 할게. 안 아프게.”

문성하의 등을 쓸며 올라온 손이 뒷덜미를 지분거렸다. 문성하의 눈이 미동했다. 순식간에 등줄기가 싸해졌다. 혈색 가신 면상이 알알했다.

부드러운 섹스. 그딴 건 해 본 일이 없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건 정말로 못 버틴다.

“그렇게 하는 게 형도 좋지. 응?”

문성하의 어깨를 달랜 주혜성이 다리 하나를 시트 밑으로 뺐다. 바닥을 딛고, 시트에 둔 다리의 무릎은 세웠다. 문성하의 엉덩이가 주혜성의 허벅지와 배 사이에 갇혔다. 마른침을 삼킨 문성하가 만류했다.

“아니야. 혜성아.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난 형이 아픈 것 싫어.”

거절한 주혜성이 문성하의 안에 파묻힌 성기를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러면서 받치고 있던 문성하의 엉덩이를 살짝 띄웠다. 온기 어린 허리 놀림이 시작됐다. 내벽을 스멀스멀 가른 성기가 헤엄치듯 나아가 막다른 점막을 비비적거렸다.

손가락이 빨리는 것처럼 간질거리는 감각에 문성하의 발가락이 옴씰거렸다. 어찌할 바 모르고 허둥대던 손이 주혜성의 어깨에 손톱을 꽂았다.

“아, 으응……. 하, 하지…….”

“이렇게 하는 것 싫어?”

“그런 문제가, 아아……. 흡.”

문성하의 속눈썹이 하느작거렸다. 내벽의 주름을 하나하나 세듯, 동생의 성기가 배 안을 애무해 온다. 처음 섹스를 하는 주제에 잘도 이런 걸 한다. 단기간에 문성하의 신체를 파악하고, 구조를 가늠한 삽입법을 터득한 걸로 보였다. 실로 놀라웠다.

어쩌면 이리도 문성하의 것이라면 쉽게도 알아 버리는 걸까. 동생은.

“흐읍……!”

연달아 왕복하던 생식기가 어느 부푼 점막을 밟아 대며 애를 태우기 시작했다. 문성하의 몸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이었다. 설마 그걸 알아챘을까 싶으면서도 문성하는 아, 아, 하며 허우적거렸다. 고개를 내민 주혜성이 문성하의 볼에 입을 맞췄다.

“여기 누르면 형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아, 으응……. 흐읍, 그거, 그거 하지 마…….”

“왜. 형 좋으라고 하는 건데.”

주혜성이 재차 입맞춤을 했다. 문성하의 입에서 무력한 헐떡임이 반복해 터졌다. 그새 열점을 짓누른 귀두가 마구잡이 절구질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거칠어지는 성기의 운동에 곰작거리던 내벽이 기분 좋게 자신을 내줬다. 두 사람의 내밀한 치부가 단단히 교착했다. 문성하의 눈이 질끈 감겼다.

억눌린 매트리스 스프링에서 퉁,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초 단위로 올려붙여지는 주혜성의 치골이 문성하의 엉덩이에 철썩였다. 점막을 뚫을 기세로 처박힌 귀두가 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알싸함이 배를 울렸다. 눈을 까뒤집은 문성하가 주혜성의 맨 등을 긁었다. 쓸린 가죽에서 피가 났다. 주혜성은 아픈 티도 내지 않았다.

“하, 으읍……. 아, 안 돼……. 아……!”

“이렇게 좋아하면서, 왜 안 된다고 해.”

“그런 문제가 아니, 아……. 싫어, 좀……!”

주혜성의 성기를 꽉 움켜쥔 내벽이 둥둥거렸다. 불끈거리는 귀두를 타고 따스한 소름이 번졌다. 문성하의 눈꼬리에 눈물이 고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싶다. 어떻게, 어떻게.

“내 처음이 형이라 다행이야.”

이리도 따스할 수 있을까. 이리도 추잡한 행위를 하면서.

배 안에서 후끈한 분출감이 느껴졌다. 분수처럼 솟구친 온수가 내벽을 적시며 넘실거렸다. 주름 사이사이마저 채워 오는 동생의 온기에 솜털이 바짝 섰다. 문성하는 그만 주혜성의 목덜미를 물어 버렸다. 눈꼬리를 타고 흐른 눈물이 턱밑으로 떨어졌다. 뚝, 낙하한 물방울을 맞은 문성하의 성기에서도 뜨끈한 물이 터졌다. 하나도 시원하지 않은 사정이었다.

목이 멜 정도로 아프기만 했다.

“괜찮아. 형.”

문성하의 등을 다독인 주혜성이 볼을 감싸 왔다. 무기력한 눈초리가 동생을 향했다. 다정히도 볼을 쓸어 준 주혜성이 문성하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붙였다. 춥, 하며 체취를 남기는 소리가 들렸다. 문성하의 시야가 주혜성으로 가득 찼다.

“이 두려움은 내 거야.”

이윽고 조금은 무겁게 읊조렸다.

“그러니 형도 가끔은 내 두려움을 안아 줘.”

그의 눈이 고적해졌다.

“그렇게 살자. 우리.”

문성하가 울컥거렸다. 튀어나온 울음은 아이를 닮아 있었다. 끝내 목 놓는 문성하를 초여름보다도 따스한 요람이 감쌌다. 문성하는 더 울고 말았다. 이 안락이 너무도 낯설어, 울지 않고 참을 수가 없었다.

유독 맑던 그날의 밤하늘에 눈물을 닮은 은하수가 드리웠다 흩어지고, 다시 새 은하수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그런 걸 몇 번이고 반복할 때까지 주혜성은.

길을 잃은 문성하의 유일한 별자리가 돼 주었다.

***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스르르 들린 머리가 곧 기울었다. 반쯤 젖혀진 커튼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이슬 같았다. 문성하는 어깨까지 흘러내린 이불을 끌어 올려 정수리를 덮었다. 그런 채로 한참이나 있었다.

심연 속에서 얼핏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오늘 금요일인데. 출근을 해야 하는데. 그런데 지금이 몇 시지. 아직 알람이 안 울렸으니 좀 남은 것 아닌가. 그래도 불안하다. 얼마나 쉴 수 있을지 알고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한참이나 방황하던 문성하의 눈꺼풀이 끝내 감기는 쪽을 택했다.

몸이 너무도 노곤해, 복잡한 상념이 먼지처럼 흩어지고 만다. 이토록 평온한 아침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형.”

덮고 있던 이불이 살짝 들렸다. 문성하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힐긋한 위편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엷게 미소 띤 주혜성이 손을 내밀었다. 문성하의 뺨이 따스해졌다.

“내가 아침 만들었어.”

“또 순두부찌개 했어?”

“아니.”

고개를 저은 주혜성이 덧붙였다.

“맥앤치즈 했어.”

문성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떨떨한 한 마디가 나왔다.

“혜성이 너 그거 할 줄 알아?”

“응.”

“언제부터.”

“글쎄.”

주혜성이 고개를 까딱했다. 크게 중요치 않다는 투였다. 문성하의 입이 다물렸다. 조금 서운해졌다.

동생은 이제 자신 없이도 홈 메이드 맥앤치즈를 먹을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한 건데, 새삼 그 사실이 씁쓸하다.

“그런데 형.”

말이 없어진 문성하를 살피다, 주혜성이 이불을 들추며 들어왔다. 모로 누워 있는 문성하의 곁으로 기어 와서는 앞 머리카락을 만져 줬다. 손가락에 스친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주혜성이 조곤조곤 말했다.

“형이 만든 게 훨씬 더 맛있어.”

비밀이라도 말해 주는 듯 심각한 어투였다. 자못 진지해진 그를 관찰하던 문성하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나직한 실소를 이어 가다 제 얼굴을 감쌌다. 곧 졌다는 양 주억거렸다.

“그렇구나.”

“진짜야.”

“고마워. 혜성아.”

올라간 손이 주혜성의 손목을 감았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손길이 멎었다. 그대로 끌어 내린 문성하가 주혜성의 볼에 얼굴을 가져갔다. 자국을 남기듯 입을 맞추고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형 좀 씻을게. 맥앤치즈는 그 다음에 먹어도 되지?”

“먹고 씻으면 안 돼?”

“안 돼. 지금 형 모양새가 엄청나게 형편없을 거거든.”

“전혀. 형은 한 번도 형편없었던 적이…….”

주혜성이 바쁘게 부정했다. 문성하가 느긋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은연한 대꾸가 나왔다.

“관심 있는 남자 앞에서 흐트러진 거 보여 주기 싫어.”

***

쏴아, 소리와 함께 세찬 물줄기가 쏟아졌다. 문성하는 동력이 다한 태엽처럼 우두커니 멈춰 있기만 했다. 세수를 하고, 양치까지 했는데 뭐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아 무작정 샤워기 물을 틀었다.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뭘 해야 할지도, 뭘 떠올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가 됐다. 머릿속이 꽉 막힌 저수지처럼 멍했다.

동생하고 잤다. 피는 절반밖에 섞이지 않았지만, 어릴 때 마음으로 얽히고 커서는 기억으로 얽힌 인물과 잠자리를 가졌다.

제정신인가 싶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돌았지.”

문성하의 뒤통수가 벽에 기대졌다. 자책하듯 찧는 내내 물줄기가 소나기처럼 어깨를 내리쳤다. 송곳 같은 물살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벽에 부딪치는 머리 역시 전혀 쓰리지 않았다. 뻐근한 건 오로지 심장뿐이었다.

괜찮은 건가. 이 욕심이.

길을 잃은 시선이 축축한 욕실 바닥을 헤맸다. 진물처럼 차오른 물웅덩이에선 답이 없다. 문성하는 자연스레 수긍했다. 말해 주는 이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다. 이건 오롯한 문성하의 문제다.

자신이 선택해 자신이 벌였다. 그러므로 후회는 자학일 뿐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문성하는 당시 그 의미를 잘 몰랐다. 다만 ‘자학’이란 표현이 어쩐지 두렵게 느껴졌으므로 그러면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 혹은 5학년 때의 일이다.

시기는 불분명하나 그 말을 한 대상은 명확히 안다. 잊으려 해도 있을 수 없는 인물. 어머니. 그녀는 독립적인 동시에 희생적인 인물이었다. 전자는 타고난 성정이었고, 후자는 문성하를 통해서만 발현되는 성정이었다. 문성하는 그녀의 후회덩어리였다. 그녀는 자학하는 대신 문성하를 끌어안았다. 이기심이 낳은 이타심이었다.

왜 나를 낳았어요, 라는 질문에 그녀는 그때는 낳고 싶었다, 고 답했다. 왜 지금은 아닌가요, 라는 질문에 지금은 아니니까, 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비식거렸다. 넌 사람 감정이 10년이고 20년이고 평생 같은 줄 아니?

문성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침 등굣길에서 500원을 주고 산 금붕어가 갑자기 싫어져 개울에다 흘려 버리고 오던 길이었다. 문성하는 생각했다. 8시간 만에 달라지는 감정도 있는데, 10년이나 20년이라고 오죽할까. 문성하는 어렴풋하게나마 어머니의 말을 이해했다.

다만 서글픈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였다. 이 대화의 온도가 좀 더 미지근했다면 이렇게까지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문성하는 그걸 속으로만 생각했다. 차마 어머니에게 따질 용기가 없었다. 어차피 어머니는 또 맞는 말만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성하야, 그럼에도 나는 너를 잉태한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할 거야.

시린 코를 킁킁거리는 문성하를 보며 어머니가 문득 말했다. 문성하는 울적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소파에 걸터앉은 채 손목을 꺼떡거리던 그녀가 눈을 깔았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그녀는 습관적으로 지휘자와 같은 손짓을 했다. 정석적으로 하는 법은 모르는 듯했지만, 음률을 공기처럼 만끽하는 그녀의 몸짓은 마치 악기 같았다.

-네가 처음 태어났을 때 너무나도 예뻤거든. 그 한순간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같은 걸 반복할 수 있어.

그녀가 노랫말처럼 말했다. 문성하는 멀거니 바닥을 지르밟았다. 그녀의 눈초리가 은은하게 휘었다.

-성하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는 아주 많은 기억이 필요하지 않아. 그저 어느 한순간, 어느 짤막한 추억이면 충분해. 사람이 원래 좀 그래. 엄청나게 단순하고 시시해. 웃기지?

쏴, 소리가 다시 귀를 엄습했다. 숙여져 있던 문성하의 머리가 들렸다. 척척한 바닥의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곧 벽에 붙어 있는 선반 앞에 다다라, 손잡이를 잡았다.

열린 문 너머에는 타월이 가득했다. 문성하는 그중 가장 밑에 깔려 있는 하얀 것을 뺐다. 일반 타월과 같은 사이즈, 같은 재질을 지녔지만 차이점이 있었다. 면의 중간에 어떤 사진이 들어가 있다. 하단에는 ‘문성하 탄생 10주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가 문성하의 10세 생일을 맞아 특별 제작한 단 하나뿐인 타월이었다. 어머니와 문성하가 나들이 갔을 때 찍은 사진이 들어가 있고, 하단의 글씨는 문성하가 직접 적은 글씨를 땄다.

문성하의 생일을 앞둔 그해 가을,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가을 소풍에 문성하는 참석하지 못했다. 갑자기 열이 나는 바람에 이틀 내내 병원 신세를 졌다. 며칠 후 학급에서 단체 사진이 들어간 수건을 기념품으로 나눠 줬는데, 문성하는 소풍에 참석하지 않아 받지 못했다. 그것이 묘하게 서러워 울었다. 빤히 지켜보던 어머니는 그해 생일에 그런 걸 해 줬다.

처음엔 이게 뭐냐며 집어던지고 말았지만, 한동안 문성하는 그것만 썼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쓰지 않고 장롱에 보관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고 그녀가 준 물건들을 정리하는데 로봇이니, 자전거니 하는 건 어느 순간 다 사라져 있고 유일하게 남은 게 이 타월이었다. 문성하는 그걸 쓰지 못했다. 한때 보잘것없던 물건이 어머니가 죽고 나자 아까워졌다.

“엄마.”

타월에 얼굴을 묻었다. 주기적으로 물세탁만 하는 수건에서는 다른 타올에서 밴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어머니의 냄새와 닮아 있었다.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그녀는 하루에도 두 번씩 옷을 갈아입었다. 덕분에 항상 몸에서 이런 냄새가 풍겼다.

“저 자학할 게 있어요.”

숨을 몰아쉰 문성하가 얼굴을 들었다. 타월 속 어머니가 무표정으로 마주 봤다. 문성하는 일자가 된 입매를 느릿느릿 움직였다.

“동생을 사랑하게 됐어요.”

눈꺼풀이 흘러내렸다. 목구멍이 먹먹해 왔다. 들끓던 샤워기 소리가 조금조금 잦아들었다. 고요해진 사위를 마음으로 관조하며, 문성하가 독언했다.

“그리고 이 결정을 후회할 생각이 없어요.”

삶을 구성하는 데에는 정말로 길거나 화려한 기억이 필요치 않다. 아주 짧은 순간, 찰나의 기쁨이면 충분했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 머리카락을 만져 주던 동생의 간지러운 손길. 문성하에게 행복이란 그런 것이었으므로.

“잘 살게요. 단순하고 시시하게.”

* * *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욕실에서 나온 문성하의 앞으로 주혜성이 다가왔다. 쥐고 있던 수건을 거둬 가 손수 머리를 털어 줬다. 주혜성이 쓰다듬을 때마다 물방울이 이리저리 튀었다. 연신 수건질을 하고 난 그가 키득거렸다.

“와, 여기 타월에 형 어릴 때 있어. 무슨 여자애 같아. 엄청 예쁘게 생겼…….”

“혜성아.”

“응?”

주혜성이 웃는 낯으로 답했다. 문성하는 자신의 동생을 올곧게 주시했다. 마른입에서 단정한 제안이 흘러나왔다.

“사귀자. 우리.”

막 정수리를 덮은 손길이 멎었다. 주혜성의 눈 밑이 움칠거렸다. 문성하가 또박또박 덧붙였다.

“형 동생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사귀자.”

굵은 침을 삼킨 주혜성이 손을 풀었다. 문성하의 머리를 타고 타월이 흘러내렸다. 떨어질 뻔한 그것을 움켜쥔 주혜성이 낮게 기식했다. 흔들리던 동공이 시간 차를 두고 중심을 잡았다. 머리맡에서 훈기에 찬 숨결이 느껴졌다. 가까스로 가라앉힌 듯한 질문이 찾아들었다.

“진심이야?”

“진심이 아닐 이유가 뭐가 있어.”

“그러면, 형.”

주혜성이 눈길을 비꼈다. 미처 여물지 않은 한낮 같은 눈빛이 시야에서 나부꼈다. 주혜성이 말했다.

“내가 조만간 정식으로 고백할게.”

문성하의 머리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심부 깊숙한 곳에서 끌어 올린 숨이 입 안을 메웠다. 지난한 방황을 으스러뜨리듯 목을 꿀꺽이고 난 문성하의 속눈썹이 가지런해졌다. 상냥한 대답이 나왔다.

“기대할게. 혜성아.”

이로써 문성하는 선택했다. 동생에게 자신의 행복을 걸기로. 그걸 위해 다른 건 무엇이 됐든 기꺼이 버리기로. 언젠가 후회할지 모르지만, 문성하는 그조차 흔쾌히 받아들일 셈이다.

주혜성을 얻는 대가가 값싼 자학이라면, 자신은 얼마든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

「내일 아침 6시에 잠실에서 헬기 띄운대. 너무 이르지 않아? 형은 괜찮겠어?

동생」

갓 들어온 메시지를 살피던 문성하가 주섬주섬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빠져나온 손이 배를 덮었다. 조금 허했다. 기상은 이른 시간에 했는데, 아침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주혜성의 맥앤치즈를 문성하는 삼 분의 일도 먹지 못했다. 주혜성이 자꾸 장난을 쳤고, 문성하는 그때마다 고장이 났다. 장난이라 해 봐야 아주 사사로운 것이었다. 귀를 만져 오거나 손바닥을 간지럽혔고,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뺐다. 무시하면 그만인 장난을 문성하는 지나치지 못했다. 주혜성이 천진난만한 짓을 해 오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다.

참으로 희한했다. 그간 수많은 남자와 섹스를 했지만, 누군가의 앞에서 멍청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문성하는 그들과 의무적인 전희를 치르고 의무적인 섹스를 했다. 섹스 중에는 추잡하며 외설적인 갖가지 말을 주고받았다. 그것에 몸이 녹을 정도의 희열을 느끼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잠자리를 마치면 아무렇지 않게 벗은 등을 보일 수 있었다.

문성하는 그런 만남만 가졌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몸을 섞고, 필요한 걸 모두 채우면 아무렇지 않게 돌아설 수 있는 관계. 이보다 깔끔하며 효율적일 수 없는, 그런 관계.

교접하지 않는 중에도 교접하듯 갈망하게 되는 이는 처음이었다. 문성하는 그것이 두렵되 두렵지 않았다. 지금을 충분히 만끽할 수만 있다면, 벼랑 끝에 있어도 좋았다.

공포를 이기는 욕망 앞에서 이성은 무력했다.

“씨발, 진짜.”

탕! 사무실에 다다른 문성하의 앞에서 입구가 열렸다. 씩씩거리며 나온 김현재가 문성하를 노려봤다. 눈이 온통 충혈돼 있었다. 머무적거린 문성하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

“좆같네.”

욕설로 묵살한 김현재가 문성하를 지나쳐 갔다. 문성하가 찌푸린 눈으로 그의 등을 봤다. 머리가 절로 갸웃거렸다. 방금 전의 ‘좆같네’는 누가 봐도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아, 답장.”

늘어져 있던 손이 뒤늦게 움직였다. 핸드폰 액정을 더듬어 가며 문장을 입력했다. 빠르게 완성한 메시지가 전송됐다.

「형은 언제라도 괜찮아. 형이 먼저 일어나서 혜성이 깨워 줄게.」

송신을 완료한 메시지 창을 주시하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김현재가 닫고 나간 문을 밀며 들어섰다. 훅, 바람이 스치는 문성하의 귓가에 호들갑스러운 숙덕거림이 내려앉았다.

“대박이네. 베이스터 지분 10% 먹으면, 우리가 2대 주주 되는 거야. 세명그룹 3세가 하는 하이넥창업투자도 5%밖에 못 먹었는데. 문 심사역이 큰일 했네.”

“문 심사역, 이걸로 못해도 인센 10억은 먹겠지?”

“10억이 문제야? 내년 말까지 엑시트 안 하고 버티면 50억은 우습게 먹을걸.”

문성하의 눈이 찌뿌둥해졌다. 문 심사역. 이 회사에 문 씨 성을 가진 심사역은 자신뿐이다. 지껄이는 심사역 쪽으로 다가갔다. 잡담하던 무리가 빠르게 조용해졌다. 문성하가 입을 뗐다.

“지금 무슨 얘기하시는 겁니까.”

몇몇 이가 허, 소리를 냈다. 다소 황당하다는 투였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끝에 한 여자 심사역이 손사래를 쳤다. 과장됐다 느껴질 정도로 들뜬 어조였다.

“성하 씨, 너무하다. 어렵게 실적 낸 것 가지고 겸손해 할 필요 없어. 이런 식으로 연기하면 우리가 뭐가 돼?”

“아니, 저는 진심으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아. 김현재 씨 때문에 그래? 휴게실 가 봐. 방금 그쪽 가는 것 같았으니까. 우리는 그저 문 심사역이 너무나 대견하고 기특할 뿐이야. 막내가 이 정도 대어 잡아 오는 거, VC업계 통틀어 흔치 않은 일이잖아. 부담되게 떠들어서 미안해. 자. 이만 다들 일하러 가실까요?”

여자 심사역이 손뼉을 치며 물러났다. 모여 있던 심사역이 뿔뿔이 흩어졌다. 한 남자 심사역이 혼잣말을 했다. 진짜 인생사 새옹지마네, 일리노이스 그 짝 났을 때 문 심사역 나가리 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문성하는 실눈으로 그를 봤다.

두리번거리다 일단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걸어오는 문성하를 미처 보지 못한 남녀 심사역이 또 베이스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베이스터도 상도덕이 없어, 오픈 시점이면 몰라도 클로징 다 돼서 말 바꾸는 건 좀 아니지. 다른 심사역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린애들이잖아, 그 나이대 애들 변덕스러운 것 하루 이틀이야?

스쳐 가던 문성하가 한숨을 쉬었다. 움찔한 심사역들이 어색한 손 인사를 했다. ‘아, 문 심사역 축하해! 조만간 술 사. 나도 운 좋게 그런 빅 플레이어 건져 보고 싶다.’ 옆의 심사역이 말한 심사역의 등을 쳤다. ‘운 좋게는 빼. 미쳤어?’ 문성하는 잠자코 제 이마를 긁적였다. 분위기가 꽤나 좋지 않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동료가 안 되면 마음이 아프고, 동료가 잘되면 배가 아프다. 문성하가 일리노이스 투자 건에 실패했을 때, 그리고 맡고 있던 베이스터를 김현재에 빼앗겼을 때 모든 심사역은 그를 위로했다. 적어도 그건 진심이었다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DF벤처스로부터 투자를 받기로 한 베이스터는 이유는 모르나, 관련 투자 책임자를 문성하로 변경했다. 동시에 문성하를 보는 심사역의 시선이 크게 언짢아졌다. 역시 명명백백한 진심이다.

기고 나는 인물이 널린 게 이 바닥이다. 욕심이 많은 만큼 질투도 많다. 대상이 문성하인 이상 더 그렇다. DF벤처스에 입사할 때부터 뒷말이 많았던 인물이다. 그저 그런 학벌에, 관련 경력도 전무한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막내 심사역이 됐다. 자연히 현주원의 빽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첫 단추가 그렇다 보니 일부 심사역은 대놓고 문성하를 깍두기 취급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금의 결과는 필연이다. 자신보다 한참은 떨어진다 생각해 온 조직원이 갑자기 베이스터라는 거대 플레이어를 물어 왔다. 박탈감 속에서 은연중의 무시감은 질투로 발현했다.

모든 게 문성하만 모르는 새 전개된 일이다. 갑작스러운 롤러코스터에 오른 기분이었다.

“김 선배님.”

휴게실에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담배 연기가 얼굴을 덮쳤다. 쿨럭인 문성하가 입을 가렸다. 당연히 휴게실은 금연이었다. 창틀에 걸터앉아 훅, 연기를 뿜은 김현재가 고개를 돌렸다. 눈빛이 심히 싸늘했다.

“뭐.”

“저기……. 쿨럭,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좀…….”

“문성하 씨. 지금 나 열받게 하려고 왔습니까.”

김현재가 어금니를 물었다. 문성하는 미적거리며 그의 면상을 올려다봤다. 손가락에 끼운 담배를 휘적인 김현재가 미간을 구겼다.

“이해가 안 가면 베이스터에게 물어봐요. 일주일 내내 밤새 가며 그쪽 얘기 들어 주고, 투자 조건 조율한 게 누군데 막판에 와서 손바닥 뒤집듯 담당을 바꾸냐고. 나도 사실 이해가 하나도 안 가거든? 아무리 외국물 먹고 온 애새끼들이라지만 대체 이게 어디서 배운 싸가지야. 물론 우리 CEO 현주원은 좋다고 하겠지. 앞뒤 다 자르고 결과만 잘 나오면 됐다는 놈이니까. 말하다 보니 나도 참 어이가 없네. 뭐 아쉽다고 그런 CEO 밑에서 개처럼 구르고 있…….”

“그럼 나가.”

소리도 없이 다가온 뒤편의 인물이 경고했다. 김현재의 손에서 툭, 담배가 떨어졌다. 급하게 창틀에서 내려온 그가 몸을 굽혔다. 벌벌거리는 정장 바지에 주름이 잡혔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여기 금연 빌딩이야.”

“죄송합니다.”

김현재는 기계처럼 반복해 사과했다. 문성하의 어깨에 툭, 손길이 스쳤다. 문성하의 몸이 돌아갔다. 등을 보인 현주원이 뚜벅뚜벅 발을 옮기고 있었다.

“문 심사역은 내 사무실로 오고, 김 심사역은 오후 중 사표 내. 싫다는 사람 밑에서 굳이 일할 필요 없지. 퇴직금은 두둑이 챙겨 줄게.”

일렁이던 문성하의 눈길이 넘어갔다. 푹 숙인 김현재의 얼굴이 시뻘겠다.

***

현주원은 대표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앉아 데스크 위에 발을 올렸다. 서랍을 뒤적인 그가 담뱃갑에서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치익, 끄트머리에 불이 붙는 걸 본 문성하가 탄식했다.

“금연 빌딩입니다. 말씀하셨다시피.”

“그리고 내 빌딩이지.”

현주원이 유유히 꼬리 모양 연기를 뿜었다. 입을 다신 문성하가 물었다.

“정말 김현재 심사역 사표 받을 겁니까.”

“주면 받는 거지.”

“안 줄 겁니다, 당연하게도. 이 업계 바닥은 엄청나게 좁습니다. 안 좋게 나가면, 낙인이 찍혀 다른 곳에도 못 갑니다.”

“그럼 안 받는 거지. 나 상당히 이성적인 사람이야. 문 심사역 비롯한 대다수는 그렇게 안 보는 것 같지만.”

현주원이 목을 젖혔다. 담배 끼운 손이 재떨이 위에서 꺼떡거렸다. 문성하는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정자세를 유지했다. 이성적인 현주원이라.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 조합이다. 그간 자신의 기분에 따라 멋대로 벌인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손으로 꼽지도 못하는 수준이다.

“신경 쓰이는 사람에 엮인 일만 아니면, 그래.”

단출하게 덧붙인 현주원이 재차 담배를 물었다. 스읍,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담배 끝이 붉어졌다. 문성하의 손가락이 우므러들었다. 어딘가 뒤끝이 시원치 않은 첨언이었다.

“베이스터 가져오느라 고생했어. 10%. 현재 가치로 따지면 300억 원에 불과하지만, 당장 내년에 이게 3000억 원이 될 거야.”

현주원의 입에서 거둬진 담배가 문성하를 가리켰다. 문성하가 정정하듯 말했다.

“저는 아직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베이스터 쪽에서 연락받은 게 없습니다.”

“연락은 김현재가 받았다잖아. DF벤처스에 10% 줄 건데, 대신 담당 심사역을 문성하로 바꿔 달라는 내용이었지. 그거면 된 거야. MIT에서 공부만 한 어린애들에게 그 정도 사회성이며 융통성이 있을 것 같아? 그러려니 하고 말아.”

현주원이 대수롭지 않게 읊조렸다. 문성하는 찡그린 채 뒷짐 진 손만 쥐었다 폈다. 계속해 뭔가가 걸렸다. 레일의 가장 상단에서 멈춘 회전 중의 롤러코스터처럼,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게 하나 있어.”

머리를 쓸어 올린 현주원이 문득 운을 똈다. 문성하가 잠자코 그를 봤다. 입 안에서 혀를 굴리고 난 현주원이 말을 이었다.

“지난 새벽에 세명전자 부사장 김연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 베이스터가 우리 투자를 받을 거라는 걸 사전에 알고 있었어. 김 부사장 사촌인 김인아 하이넥창업투자 대표가 베이스터 예비 주주니, 사전에 관련 보고를 받았을 테고 이 얘기가 김연종에게 넘어간 거겠지. 요는 간단해. 베이스터를 한번 잡고 가자는 거야. 거기 대표인 메이슨이 미팅 때마다 워낙 시건방져 평소 거슬렸나 봐. 무엇보다 일개 벤처 기업이 대기업에 갑처럼 굴어 오는 게 자존심상 용납하기 어려웠던 모양이야.”

“그래서요.”

“본인이 사람 시켜 알아본 이슈 가지고 작업 한번 치른 다음 시작하자더라고. 핵심은 메이슨이야. 미국에 있던 시절 본인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적이 있어.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 받긴 했는데, 어쨌거나 살인 행위를 벌인 인물이 버젓이 사업하고 있다 하면 국내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지. 이걸 이용하자는 거야.”

“그게 무슨…….”

“김연종 제안은 간단해. DF그룹이 소유한 종합언론사를 통해 이 사실을 비롯, 베이스터를 깎아내릴 만한 몇 가지 음해성 보도를 하며 일시적인 매장을 시키자. 이후 하이넥과 DF벤처스가 헐값에 베이스터 지분 매입을 마무리하고. 매입 후 기가 죽은 베이스터는 확실하게 우리가 갑의 위치에 서서 좌지우지하자. 다른 건 몰라도 기술은 배신하지 않으니,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투자자 입장에서는 손해가 없지. 굳이 따지자면 우리 측에서 주도한 바겐세일 같은 거야.”

“고려할 가치도 없는 제안이라 생각합니다. 김연종의 사리사욕에 우리가 휘둘릴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 난 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현주원이 빙긋거렸다. 문성하의 낯이 굳었다. 언뜻 확인한 그의 눈동자에 초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기묘한 오싹함을 자아냈다. 멍해진 뇌리에 아까의 말이 담배 연기처럼 부유했다.

신경 쓰이는 사람하고 엮인 일만 아니면, 그래.

“형 알아서 해.”

입을 말아 물고 난 문성하가 중얼거렸다. 현주원이 턱을 괴었다.

“네 투자 실적하고 직결되는 문제인데, 아주 태연하네.”

“내가 형 고집을 어떻게 꺾어. 좋을 대로 해. 난 베이스터에 투자했다는 명분 하나로 충분해.”

문성하가 피곤하다는 양 몸을 돌렸다. 기탄없이 걸어가는 문성하의 뒤로 현주원의 질문이 찾아들었다.

“내일 여행은.”

보지도 않은 문성하가 답했다.

“안 돼.”

“또 일정 있어?”

“애인이 싫어해.”

딱 잘라 말한 문성하가 현주원을 힐끗했다. 막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그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보다 제대로 응시한 문성하가 못을 박았다.

“더 이상 형하고 잘 일 없을 거야. 회사에서 자르고 싶다면 잘라. 그래 봤자 내 의지는 안 잘려. 이건 형의 변덕처럼 얄팍하지 않거든.”

돌연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문성하의 눈꺼풀이 올라갔다. 상체를 기운 현주원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양 대소하고 있었다. 쏘아본 문성하가 따졌다.

“뭘 웃어.”

“그냥. 귀여워서.”

몸을 바로 한 현주원이 입매를 끌어 올렸다. 그의 팔뚝에 밀려 난 재떨이 위에서 갖가지 담배꽁초가 나뒹굴었다. 현주원이 차분히 덧붙였다.

“최대한 빨리 찾아와.”

“뭘 찾아와.”

문성하가 반문했다. 현주원의 어조가 은은해졌다.

“네 결정 후회하러.”

문성하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무시하듯 몸을 틀고 발을 내밀었다. 성큼성큼 나아가 문 앞에 다다른 뒤, 손잡이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개소리하지 마.”

언젠가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내일도 아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주혜성을 봐야 하고, 내일은 주혜성과 여행을 가야 한다. 그리고 모레도, 한 달 후도, 일 년 후도. 그 후에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문성하는 자신이 긴 기다림 끝에 얻은 행복이 남루하지 않음을 믿는다.

***

“DF벤처스 문성하 심사역님이시죠? 이쪽으로 모실게요.”

역삼동에 있는 베이스터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문성하를 맞이한 건 이곳의 서무 역할을 하는 듯한 여직원이었다. 언행 곳곳에서 환대가 묻어났다. 일전에 베이스터에 왔을 때에는 전혀 이런 대접이 아니었는데, 확실히 뭔가가 달라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이유는 모르지만.

여직원의 안내에 따라 일전에 방문한 회의실에 들어갔다. 의자에 앉는 문성하와 벽에 붙은 시계를 번갈아 본 그녀가 말했다.

“권 대표님께서 아직 회의 중이세요. 이십 분 정도 기다리셔야 해요. 차라도 마시면서 대기하시겠어요?”

“기다리겠습니다. 차는 괜찮습니다.”

문성하가 손을 내저었다. 방싯거린 여직원이 들고 있던 캔 음료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혹 모르니 이거라도 드세요. 캔이지만.”

“감사합니다.”

“저는 옆 사무실에 있으니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시고요.”

“알겠습니다.”

꾸벅한 여직원이 물러났다. 유리문을 열었다 닫는 소리가 밀려들고, 곧 실내가 고적해졌다. 문성하는 가만히 테이블 위에 올라온 캔 음료를 봤다. 겉면에 베이스터 로고와 함께 ‘We are BASETER’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체 제작한 비품인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같은 문구가 회의실 곳곳에서 비친다. 굴러다니는 펜이며 노트, 컵에도 동일한 표식이 들어가 있다.

“여기도 제법 구색을 갖춰 가네.”

캔의 윗부분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문성하가 혼잣말을 했다. 치익, 뚜껑이 열렸다. 입에 가져간 뒤 살짝 기울여 맛을 봤다. 알싸한 오렌지 향 탄산이 느껴졌다.

지잉. 테이블에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문성하의 눈이 내려갔다. 환한 화면에 그새 그리운 이름이 찍혀 있었다.

「형. 나 오늘 일찍 퇴근했어.

동생」

캔을 내려놓은 문성하가 액정을 짚었다. 토독, 토독, 답신이 새겨졌다. 완성한 메시지를 보냈다.

「오후 4시인데, 벌써?」

「응. 내일 여행 준비해야 해.」

「형이 다 알아서 할 거야. 혜성이는 할 것 없어.」

「마음의 준비도.」

「그건 왜?」

대화가 잠시 끊겼다. 문성하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맴을 돌았다. 갑자기 동생의 기척이 사라지니 외로웠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핸드폰이 울렸다. 새롭게 들어온 메시지가 망막을 메웠다.

「내일 여행 때 형에게 할 말 있어.」

문성하의 눈이 동그래졌다. 일단 손가락을 옮겼다. 느릿느릿 대화 창을 활성화하고, 산뜻한 답장을 보냈다.

「형은 혜성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좋아. 굳이 준비하지 않아도 돼.」

「해야 돼. 미안.」

한 치의 빈틈없는 의문투성이 답장. 그걸 끝으로 또 대화가 중단됐다. 문성하의 눈이 깜빡거렸다. 갑자기 초조해졌다. 주혜성의 기척이 느껴지고 느껴지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무지근히 아렸다.

아직 동생에게는 자신을 어려워하는 부분이 남아 있다. 그걸 새삼 여실히 깨달았다. 심부에서 미약한 우울이 일었다.

“아.”

방황하던 손이 들먹였다. 급하게 올려 눈가를 더듬었다. 물기가 느껴졌다. 절로 한탄이 나왔다.

“또 우네.”

난처한 혼잣말이 나왔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없던 눈물이 갑자기 생겼다. 어제 주혜성의 품에 안겨 있을 때 시작해, 터진 봇물처럼 지속된다. 뒤늦게 감정을 배운 아이처럼 눈물샘이 불시에 격동의 널을 뛴다.

“세수하고 와야겠다.”

몸을 일으켰다. 드르륵, 의자가 밀려 났다. 중요한 미팅을 코앞에 둔 시점이다. 상대방에 이런 꼴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문을 열며 복도로 나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편에 화장실로 추정되는 표식이 있었다. 바쁘게 발을 내디뎠다. 권도재의 회의가 끝난다는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왜 하필 DF야?”

문득 들려온 남자 목소리에 발이 멎었다. 반사적으로 벽에다 등을 붙이고, 조심스레 안을 살폈다. 이 회사 휴게실인 모양이었다. 안쪽에 나란히 서서 커피를 내리는 두 남녀의 등이 보였다.

“우리에 대해 이해가 뛰어날 수밖에 없는 심사역이 거기에 있거든.”

여성이 시럽 트레이를 뒤적이며 뇌까렸다. 남성이 또 물었다.

“설마 김현재? 그 사람 까였잖아. 네가 싫다고 해서.”

“아. 김현재 아니야. 그 사람 잘난 척이 너무 심해. 재수 없어.”

여성이 혀를 찼다. 문성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성 쪽 음성이 익숙하다.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럼 누구.”

“이번에 우리가 찍은 심사역 말이야.”

“아, 그 사람. 문……. 누구더라.”

“문성하.”

“그 사람이 왜.”

“착실하고, 합리적이고. 베이스터에 상당히 애정이 있을 예정이고.”

“‘있을 예정’은 또 뭐야. ‘있는 것’도 아니고.”

남성이 킬킬거렸다. 입꼬리를 올린 여성이 얼굴을 드러냈다. 문성하의 등줄기가 바싹 말랐다. 아, 정말로 아는 얼굴이다. 심지어 꽤 잘 아는 얼굴이다.

너무도 잘 알아서, 여기서 봤다는 게 황당무계할 정도다.

“본인 동생이 CEO로 있는 회사에, 설마 애정이 없겠어?”

여성이 생글거렸다. 남성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설마 그 사람이 혜성이 친형이야?”

“어.”

“말도 안 돼. 하나도 안 닮았어. 저번 행사에서 얼굴 봤었거든, 나.”

“그때 행사에서 우리가 엄청 챙겼잖아. 그거 다 이유가 있어.”

“와…… 혜성이 형이라서 그랬구나.”

주억거린 남성이 되뇌었다.

“메이슨 형이구나. 문성하 심사역이.”

쿵. 갑작스러운 소음이 복도를 뒤흔들었다. 화들짝한 남녀가 이쪽을 봤다. 주저앉은 문성하의 고개가 맥없이 들렸다. 눈이 마주친 여성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반쯤 열린 그녀의 입이 아물거렸다.

“아……. 제가, 제가. 여기 계신 걸 전혀 모르고…….”

“무슨 일이야?”

저편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문성하의 시선이 넘어갔다. 막 회의실에서 나온 듯한 권도재가 다가오고 있었다.

“문 심사역님. 괜찮으십니까.”

“메이슨이…….”

문성하가 넋 나간 언어를 흘렸다. 권도재가 심각하게 휴게실을 봤다.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짠 한나가 자기도 모른다는 양 발을 굴렀다. 상황을 파악한 권도재가 허리를 짚으며 한탄했다. 곧 문성하의 팔을 잡아끌며 종용했다.

“일단 일어나시죠.”

“‘그 메이슨’이…… 설마 혜성이입니까.”

“네.”

권도재가 망설이지도 않고 답했다. 비척거리며 일어선 문성하의 몸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덜덜거리는 눈망울이 끌어 올려졌다. 허공을 일별한 권도재가 버겁게 입을 뗐다.

“우리도 힘들었습니다. 메이슨이 형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걸 한사코 원치 않아서, 나름대로 감춘다고 별 노력을 다…….”

“그럼 혜성이가 아버지를 죽였네요.”

고저 없는 읊조림이 튀어나왔다. 권도재의 눈이 확 커졌다. 당혹감에 찬 물음이 찾아들었다.

“문 심사역님. 그걸 어디서 들었……. 설마 혜성이 본인이 얘기를 했을 리가.”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성하의 다리가 나아갔다. 휙 지나쳐 가는 문성하를 권도재는 잡지도 못하고 바라봤다. 곁눈질한 문성하가 뇌까렸다.

“하마터면 제 손에 동생이 다칠 뻔했네요. 그랬다면 저는 죽기라도 했을 겁니다.”

***

“후회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12시간도 안 되네.”

소파에 걸터앉은 현주원이 야유했다. 탕, 소리 나게 현관문을 닫은 문성하가 신발을 벗어 던지며 말했다.

“왜 이렇게 일찍 퇴근했어.”

“글쎄. 네가 이렇게 올 걸 알아서?”

현주원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문성하가 싸늘하게 받아쳤다.

“메이슨이 내 동생인 걸 어떻게 알았어.”

“그게 뭐가 어려워. 김연종 부사장이 메이슨 뒷조사할 때 진작 털린 내용이지.”

현주원이 이죽거렸다. 저벅저벅 다가간 문성하가 눈을 치떴다.

“메이슨이 내 애인인 건.”

“그건 좀 어려웠던 부분이고.”

웃음을 거둔 현주원이 비뚜름하게 고개를 가눴다. 노곤한 한 마디가 그들의 틈을 메웠다.

“혹시나 해 재판 기록 입수해 뒤져 보니 바로 나오더라고. 메이슨 본인이 진술했던데. 아버지가 제 형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학대했고, 그 기억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그의 등이 소파 등받이에 기대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는 걸 본 게 죽도록 싫었다. 참고로 그 ‘사랑’은 형제애와 다른 의미의 사랑이다. 그게 당시의 진술이야.”

문성하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부릅뜬 눈이 현주원을 주시했다. 현주원은 느긋하게 팔짱을 꼈다. 죽일 듯 쏘아본 문성하가 입을 열었다.

“벗어.”

현주원이 피식거렸다.

“좀 더 고분고분하게 애원하면 안 될까. 응? 성하야.”

귓등으로 흘린 문성하가 손을 내밀었다. 현주원의 어깨가 덥석 잡혔다. 몸을 낮춘 문성하가 그의 코앞까지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두 사람의 숨이 우기(雨期)처럼 엉겼다. 문성하가 그르렁거렸다.

“내 동생 두 번 죽이려 한 새끼한테 애원할 혀 없어. 씨발 새끼야.”

현주원이 폭소했다. 그의 눈매가 흡족하게 접혔다.

“진짜 난 네가 너무나도 좋아.”

곧 무표정으로 덧붙였다.

“나도 돌았지만, 가끔은 네가 더 돈 것 같거든.”

문성하가 이를 갈았다.

“미안한데, 난 지금 너보다 돈 정도가 아니야. 현주원.”

문성하의 눈에 핏발이 섰다.

“살인도 할 수 있어. 지금.”

동생은 자신의 전부가 됐고, 문성하는 그를 통해 삶과 죽음을 동시에 얻었다. 예측 불가한 조류처럼 찾아드는 물살은 늘 삶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때때로 다른 모습이 되리라는 걸 문성하는 진작 알았다. 실제 겪은 일이 없었을 뿐.

이건 동생이 처음으로 준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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