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37)

7) ICO: 암호 화폐 업계의 IPO

8) 월렛: 암호 화폐 전자 지갑

9) 아비트리지: 차익 거래

11.

주혜성과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문성하는 작은 방으로 향했다. 장롱 서랍을 열어 구급함을 찾아내고, 안에서 연고를 꺼냈다. 표면을 눌러 손가락에 불투명한 점액을 묻혔다. 일어나서 상의를 탈의하고, 거울에 등을 비췄다. 불그죽죽한 체형의 흔적이 열 개는 훌쩍 넘어 보였다.

“씹새끼. 하여간 힘 조절을 못 해요.”

욕설을 하며 손을 뒤로 넘겼다. 뻘건 상흔에 약을 바르자마자 억, 소리가 났다. 쓰라린 등줄기가 울렁였다. 잔뜩 찡그린 채 억지로 손가락을 비볐다. 새빨간 상흔에 미끄덩거리는 액이 스멀스멀 덧입혀졌다.

빠진 곳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며 세심하게 약을 발랐다. 등이 점점 질척했다. 마지막 남은 부위에 약을 바르고 나자, 새하얀 살이 온통 반질거렸다. 이를 악문 문성하가 팔을 늘어뜨렸다. 스스로가 진저리 나게 싫어졌다.

자신을 혐오하지만 자해할 자신은 없다. 그래서 타인의 손을 빌린다. 그렇게 난 상처를 보며 제자리를 찾았다 안도한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병신.”

있는 대로 쥐어짜 껍데기만 남은 연고 통을 던지며 발을 내디뎠다. 거실로 나와 소파에 걸터앉았다. 굴러다니는 티셔츠를 집어 목에다 끼워 넣었다. 연고에 스치지 않게끔, 등 부분을 당겨 가며 몸을 뉘였다. 소파에 웅크린 채 모로 누운 자세가 됐다.

머리맡에 둔 핸드폰이 홀연히 울렸다. 반짝이는 액정에 익숙한 발신자명이 떴다. 문성하는 무표정으로 글자를 읽었다.

「약 잘 발라. 덧나면 나중에 힘들다.

현주원 DF벤처스 대표」

“지랄.”

툴툴거린 문성하가 소파 시트에 머리를 박았다. 눈꺼풀이 점점 내려갔다. 심박수가 떨어져 갔다. 캄캄한 머릿속에서 아까 전 마주한 현주원의 얼굴이 비에 맞은 수면처럼 번졌다.

-자는 건 왜 싫은데.

질문에는 두 가지 감정이 어려 있었다. 흥미, 그리고 분노. 문성하는 답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스스로도 까닭을 몰랐다. 알지도 못하는 걸 굳이 언어로 만들 만큼 문성하는 영민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은 하고 싶지 않았다. 등에 피가 날 정도로 맞아야겠다는 욕망은 있어도, 현주원과 섹스 하고 싶다는 욕망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하지 않겠다 했다. 현주원은 그저 웃었다. 조금 화가 나 있었다. 지그시 미소 지은 그가 말했다.

-네 변덕이 어디까지 가나 보자.

“무슨 변덕…….”

읊조림이 사그라졌다. 다 안다는 양 지껄이는 현주원이 부쩍 불쾌했다. 평소에도 달갑지 않았으나, 이 순간 유독 그랬다. 깜빡이던 눈꺼풀이 보다 흘러내렸다. 초점을 잃은 시야에서 정체불명의 먼지가 날아다녔다. 마치 눈발 같았다.

눈을 감았다. 까맣게 잠긴 뇌리에서는 그 어떤 환영도 환청도 비치지 않았다. 사뭇 편안해진 고개에서 힘이 빠졌다. 노곤한 머리가 팔 받침에 비비적거렸다. 단침이 고여 가는 혀를 타고 혼잣말이 나왔다.

“아이스크림.”

***

삑, 삑, 소리에 눈을 떴다. 벌떡 일어난 문성하가 마른 눈을 훔쳤다. 막 문이 닫힌 현관 쪽에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문성하의 어깨를 부여잡은 상대방이 몸을 낮췄다. 훈기를 머금은 언어에 잠이 녹아 갔다.

“왜 여기에서 자고 그래. 추울 텐데.”

문성하의 속눈썹이 곤두섰다. 주혜성이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손을 내민 문성하가 그의 볼을 건드렸다. 투정하는 한 마디가 나왔다.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

“사 온다고 했잖아.”

“아……. 그거.”

주혜성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문성하가 그의 뺨을 꼬집었다.

“또 정신 놓고 다니는구나.”

“미안해, 형.”

“진짜로 먹고 싶었단 말이야.”

“어떻게 하지……. 많이 먹고 싶어? 내가 나가서 사 올까?”

주혜성이 안달했다. 빤히 보던 문성하가 주혜성의 목을 둘러 안았다.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입을 열었다.

“됐어. 형이 봐줄게.”

“정말 아이스크림 안 먹어도 돼?”

“응. 괜찮아.”

문성하가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렸다. 알아들은 주혜성이 나란히 착석했다. 그의 목덜미를 주무른 문성하가 물었다.

“토요일인데 회사 갔어?”

“응.”

“장사 엄청 잘되는 곳인가 보다. 안 바쁜 날이 없네.”

“장사가 잘되는 것도 있고, 서비스업 특성상 휴일이 없다 보니 좀 그래.”

“궁금하다. 형이 한번 구경…….”

“아, 형. 나 월급 나왔어.”

갑자기 주혜성이 말을 돌렸다.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흰색 봉투가 문성하의 손에 올라왔다. 문성하가 안을 들여다봤다. 빳빳한 오만 원 권이 한가득이었다. 문성하의 눈이 커졌다.

“뭐가 이렇게 많아?”

“보너스 포함한 세 달 치 월급이야. 사장 형이 미리 줬어.”

“너 사장한테 가불 요청했어?”

문성하가 기겁했다. 주혜성이 머뭇거렸다.

“사장 형이 필요하면 미리 준다 하기에…….”

“이거 총 얼마야.”

“1000만 원.”

“이런 건 함부로 받는 것 아니야, 혜성아. 사장도 사람이 좋아 그렇지, 엄청 부담스러웠을 거야. 보통은 이렇게 안 해.”

문성하가 꾸중했다. 주혜성이 울적해했다.

“난 그냥 형한테 빨리 나 돈 번 것 보여 주고 싶어서…….”

그의 입이 말아 물렸다.

“미안해. 형.”

문성하의 호흡이 탁해졌다. 잔뜩 기가 죽은 동생을 보고 있자니 습관처럼 할 말이 없어졌다. 푹 숙인 동생의 머리통을 지켜보다, 손을 내밀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달래는 말을 건넸다.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응?”

“알았어.”

“형도 돈 있어. 혜성이가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

“그렇지만…… 형이 낮에 통화할 때 지금 회사에서 더 다니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주혜성이 웅얼거렸다. 정수리를 쓰다듬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손을 거둔 문성하가 제 눈가를 덮었다.

동생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있었다. 정말이지 창피했다.

“그건 형이 알아서 해. 혜성이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형도, 혜성이도 형이 충분히 책임져.”

잡생각을 떨쳐 낸 문성하가 동생을 다독였다. 주혜성이 문성하를 관찰했다.

“회사 계속 다니려고?”

“응. 그래야지.”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가능해?”

“형 걱정하는구나? 착해라.”

재차 물어 오는 주혜성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진심으로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은 근심을 사그라뜨리는 호기심이었다. 널따란 등판을 쓸어 준 문성하가 홀로 자책했다.

이런 동생에게 걱정을 끼칠 순 없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형. 할 말 있는데.”

돌연 다가온 팔뚝이 허리를 감아 왔다. 착 달라붙은 옷감에 쓸린 등이 소스라치며 들썩였다. 문성하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아……!”

놀란 주혜성이 손을 뗐다. 문성하는 잔병치레를 하는 사람처럼 끙끙거렸다. 유심히 살피던 주혜성이 또 팔을 뻗어 왔다. 문성하의 허리춤에 다다른 손이 상의 밑단을 잡았다. 입고 있던 티셔츠가 빠르게 올라갔다.

“혜성아!”

외마디 소리를 묵살하듯 또 다른 손이 찾아들었다. 문성하의 어깨를 잡아 반쯤 튼 주혜성의 미간이 좁혀 들었다. 문성하의 턱이 얼어붙었다. 세찬 파도에 얻어맞은 것처럼 등짝이 화끈했다. 문성하의 아랫입술이 짓씹혔다.

망했다.

“혜성아. 이거는 형이 물건 옮기다 쓸려서…….”

황급히 선수를 치려는 문성하의 어깨가 억세게 고쳐 잡혔다. 도로 자신 쪽으로 돌린 주혜성의 눈초리에 서늘한 음영이 졌다. 조잡하게 엮어 가던 변명의 실타래를 낱낱이 흐트러뜨리는 눈빛이었다. 문성하의 목울대가 울컥거렸다. 이런 동생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된다.

동생이 아니라 처음 보는 남자 같아, 여러 가지로 힘들다.

“현주원이야?”

고저 없는 질문이 들렸다. 문성하의 눈이 동그래졌다. 늘어진 손이 덜커덕거렸다. 예상치 못한 물음에 머리가 텅 비어 갔다.

대체, 주혜성이 현주원을 어떻게 아는 거지.

“형한테 가끔 이상한 문자 보내잖아. 그 사람이.”

어깨에 걸려 있던 손이 내려왔다. 이내 티셔츠 안으로 들어와, 더운 등을 타고 미끄러졌다. 오소소 돋은 소름에 문성하의 발가락이 웅크려 들었다. 뻐끔거린 입에서 다급한 대답이 나왔다.

“혜성아. 그건…….”

“그 사람이 형 때려?”

문성하의 얼버무림은 들은 적도 없다는 양, 주혜성이 따졌다. 심장이 아찔하게 꿰뚫리는 것만 같았다. 손바닥이 맨살에 착 달라붙었다. 가죽 너머의 세포가 톡, 톡, 터져 나갔다. 오싹함에 휩싸인 척추가 경련했다.

달달거린 문성하가 혼신을 다해 혀를 가다듬었다. 절박하게 들린 얼굴이 정면을 바라봤다. 어둑하기 그지없는 동생의 낯에 시선을 걸고는, 추스른 입을 열었다.

“혜성아.”

“어.”

반응이 더없이 건조했다. 문성하의 입이 느릿느릿 벌어졌다. 흐리멍덩한 오감을 헤집어 가며 하나의 신념을 끌어 올렸다. 턱 막혀 가던 숨통이 틔었다. 풀어진 동공이 동그랗게 뭉쳐 갔다.

동생 앞에서 나약함을 드러내느니, 수치를 내비치는 쪽이 낫다.

“형은 남자를 좋아해.”

단출한 언어가 거실을 울렸다. 주혜성은 놀라지도 않고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문성하의 어조가 차분해졌다.

“형이 남자를 좋아해서……. 어쩌다 보니 현 대표랑 엮였어. 현 대표도 남자를 좋아하거든.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났어. 현 대표가 일부러 형을 때린 건 아니고. 그냥……. 성인이라면 잠자리를 가질 것 아니야. 형도 현 대표하고 잠자리를 했어. 하다 보니 좀 거친…… 그런 일들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됐어. 그게 다야.”

구체적인 상황을 생략하되 대략적인 정황에 대해 인지할 수 있게끔, 조곤조곤 설명해 줬다. 동생은 내내 듣고만 있었다. 들숨을 삼킨 문성하가 손을 뒤로 뺐다. 올라가 있던 티셔츠를 끌어 내리고, 주혜성의 손을 잡아 시트 위에 뒀다. 어지러운 머리가 속에서 쉼 없이 가로저어졌다.

차라리 이쪽이 낫다. 동성애자는 그 성적 취향을 경멸당할 뿐이다. 그러나 맞는 걸 좋아하는 변태 새끼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스스로 존중하지 않음을 방증하는 일이고, 자신의 무가치함을 만천하에 떠벌리는 꼴이다.

동생에게 그런 형을 뒀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형은 남자면 다 되는 거야?”

나직한 질문이 돌아왔다. 문성하의 눈 밑이 움찔거렸다. 마주 본 동생의 표정이 이상하리만치 안정적이었다. 문성하가 뭉그적거렸다.

“그게 무슨 얘기야.”

“형은 남자면 다 좋아하고, 다 잠자리를 가져?”

“그런 게 어디에 있어, 혜성아. 형은 취향에 맞는 사람을 좋아해.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취향에 맞는 건 어떤 건데?”

동생이 캐물어 왔다. 매우 진지한 문제인 듯, 이마에 간헐적으로 주름이 잡혔다. 영문 모르고 바라본 문성하가 서슴거렸다.

“그러니까, 마음이 동하면…….”

“마음이 동하는지 어떻게 알아?”

“키스 같은 걸 할 것 아니야. 그러면 알지. 보통은.”

대답하다 보니 볼이 조금 붉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동생은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상식이 부족하다. 해소해 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문성하의 몫이다. 다만 이런 내밀한 영역까지 설명하게 될 줄은 몰랐다. 민망했다.

“그렇구나.”

주혜성이 끄덕였다. 조금은 이해한 투였다. 눈치를 본 문성하가 몸을 뺐다. 이 이상 동생의 호기심을 자극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보루만 오픈하지 않았다 뿐이지 문성하는 사실상 동생에게 밑바닥까지 보였다. 문제는 동생이 그런 설명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순박한 종족이고.

문성하는 그런 동생에게 욕정 한 적 있는 추잡한 종족이라는 사실이다.

“형.”

세수라도 할 양으로 일어나려던 문성하의 팔목이 잡혔다. 문성하가 동생을 일별했다.

“응. 혜성아.”

“나 형하고 키스해도 돼?”

퍽이나 현실감 없는 질문이었다. 주혜성에 잡힌 손목 밑에서 다섯 개 손가락이 오므라들었다. 핏기가 싹 가신 무릎이 달막였다. 주혜성이 문성하의 팔을 지분거렸다.

“형이 하는 얘기, 솔직히 의미를 잘 모르겠어. 그래서 형이랑 직접 해 보려고. 그러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문성하의 한쪽 무릎이 끝내 꺼부러졌다. 주저앉을 뻔한 몸이 당겨 오는 주혜성의 손힘 덕에 버텼다. 문성하를 주시하던 동생의 고개가 비뚜름해졌다. 심각한 물음이 찾아들었다.

“안 돼?”

경직된 입에서 밭은 숨이 터졌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동생은, 무지를 무기로 문성하를 시험에 몰아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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