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37)

9.

“나는 너에게 이래도 된다.”

짜악! 딱딱한 벨트가 등을 후렸다. 이를 악문 문성하가 비틀거린 끝에 허리를 곧추세웠다. 무너지는 꼴을 보이면 더 큰 고통이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문성하가 버거워하는 티를 낼 때마다 엄살 부리지 말라고 했다. 너는 네 엄마처럼 연기도 잘한다 했다. 그러면서 보다 강도 높은 타격을 가했다.

같은 상황을 수차례 겪고 나자, 문성하는 아파도 아파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어차피 저 인간에게는 핑계가 필요할 뿐이다. 이 학대를 정당화할, 허울 좋고 그럴싸한 구실을 원할 뿐이다. 그의 앞에서 엄살로 간주되는 행동을 하는 건, 보다 떳떳하게 학대할 빌미를 안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짜악, 짜악, 짝!

살이 부르트는 마찰음을 들으며 문성하는 눈을 부릅뜬 채 새하얀 벽을 봤다. 흉을 최소화한다는 일말의 배려로 교복 셔츠와 재킷을 입긴 했지만, 칼처럼 내리꽂히는 채찍질을 아무렇지 않게 감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팠다. 많이도 아팠다. 이런 지가 꽤 됐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네가 내 집에 오던 날, 난 분명히 너를 받아 줄 수 없다 했다.”

스무 번 넘게 벨트를 휘두른 아버지가 쉬어 가듯 손을 거뒀다. 반질반질한 벨트가 뱀처럼 꿀렁거렸다. 문성하는 초점 없는 눈으로 너울거리는 가죽을 봤다.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증오였다.

“뭐라도 할 테니 성인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거둬 달라고 한 건 바로 너야.”

벨트가 돌연 튀어 올랐다. 철썩! 세찬 소음과 함께 등짝이 반으로 갈라졌다. 악! 이번에는 비명이 터졌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구부정한 상체가 후들거렸다. 같은 강도로 한 번만 더 맞으면, 소변을 지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난 네게 이래도 되는 거다. 알았니?”

짝! 가죽을 뭉크러뜨릴 기세로 채찍이 날아들었다. 벌겋게 부은 살 어딘가에서 툭, 핏물이 불거졌다. 벌벌거리던 몸이 기어코 무너졌다. 한기에 휩싸인 치부가 후덥지근했다. 소변이 나오고 있었다.

“내 방식이 마음에 안 들면 나가. 오히려 나는 원하는 바야.”

문성하는 입을 꾹 다문 채 바닥을 주시했다. 바지 자락 밑으로 흐른 소변이 어둠 속에서 웅덩이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문성하는 스스로를 책망하듯 머리를 쥐어짰다. 지긋지긋한 의구심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정말로,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암 투병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사망한 17세의 1월, 소박한 장례를 치른 후 문성하는 책가방 안에서 편지 한 통을 찾았다. 내용은 단출했다. 자신의 아들로 살아 줘서 고맙고, 적어 둔 주소에 가 진짜 아버지를 만나라는 것이었다. 하단에는 처음 보는 이름과 주소,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문성하는 어머니가 사망하기 전까지 스무 명이 넘는 그녀의 애인을 접했다. 누군가는 늙었고 누군가는 젊었으며, 누군가는 훤칠하고 누군가는 볼품없었다. 누군가는 주름 하나 없는 고급 정장을 입고 다니는가 하면 누군가는 후줄근한 추리닝을 입었고, 누군가는 교양 있는 말만 골라 했으나 누군가는 욕을 달고 살았다. 중요한 건 그들 중 문성하가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랜 기간 무명 가수로 산 어머니는 서울 외곽에서 라이브 바를 운영했고, 작은 업장이었으나 단골손님이 적잖이 있어 그럭저럭 유지가 됐다. 다만 업장 특성상 새벽 다섯 시나 여섯 시까지 일하다 집에 와 잠드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당연하게도 문성하는 일찍부터 혼자 집안일을 하고, 보호자가 있음에도 사실상 없는 생활을 하는 데 익숙해졌다.

문성하는 자신에게 놓인 상황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의 사정이 있고, 그녀의 밑에서 태어난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므로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다만 가끔 외로웠다. 제대로 된 보호자를 가져 본 적 없다는 사실이 종종 서글펐다. 물론 어머니에게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녀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결국 모든 상처는 문성하의 몫이었다.

SF 소설 같던 아버지의 존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문성하는 크게 설렜다. 지체할 틈도 없이 적힌 주소지로 찾아갔다. 마침 아버지는 집에 있었고, 문성하는 그의 앞에서 자신을 소개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두렵기도 했지만 기쁨이 앞섰다.

편지에 따르면 그는 한 명문 대학의 교수이며, 탄탄한 경제력을 갖췄다. 훌륭한 인품에 인자한 성품까지 겸비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보호자였다. 정식 처에게서 나오지 않은 반쪽짜리 문성하이지만, 늘 갈망하던 ‘좋은 아버지’를 갖는 게 이제는 꿈이 아니다. 문성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글쎄다. 나는 너를 전혀 모르겠는데……. 이만 돌아가 주면 안 되겠니?”

설렘이 종식된 건 순식간이었다. 남보다 더 남 같은 표정으로, 아버지라는 남자는 냉한 질문을 했다. 어안이 벙벙해 멈춰 있던 문성하가 다급히 입을 움직였다. 아니, 저는……. 제가 아버지 친아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저는 이제 아버지가 필요한…….

열심히 설명하다 문득 아버지의 뒤에서 기웃거리는 소년을 봤다. 꽤나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였는데, 문성하의 입을 홀린 듯 주시하고 있었다. 기진맥진할 때까지 호소하고 난 문성하가 눈을 찡그렸다. 저 소년이 아버지의 친아들이구나 싶었다.

이미 아들이 있으니, 자신은 필요 없다 이건가.

“반짝거려요. 이거.”

돌연 달려온 소년이 문성하의 가슴팍을 짚었다. 재킷에 달려 있는 학교 배지를 쥐고 있었다. 금색 실로 만든 것이라, 빛을 받으면 반짝이긴 했다. 문성하가 난처한 듯 소년을 밀었다. 소년이 떼를 썼다.

“내놔! 넌 또 달라하면 되잖아!”

“혜성이.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가 엄포를 놓았다. 울상이 된 소년이 문성하의 팔을 당기며 발을 동동 굴렀다.

“줘, 빨리! 안 주면 죽어 버릴 거야!”

“이 새끼가 진짜…….”

아버지가 성큼 걸어와 소년을 안아 들었다. 키가 140센티 남짓한 아이는 쉽게도 들렸다. 발작하며 버둥거리는 소년이 강제로 옮겨졌다. 어느 방 앞에 서서 문을 연 아버지가 쓰레기를 치우듯 소년을 집어넣었다. 이어 신속하게 닫은 뒤 손잡이를 잠그기까지 했다. 안에서 소년이 문을 두들기며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문성하는 초조하게 하나로 모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정신적으로 아픈 애인가. 저런 애는 처음 본다.

“만에 하나 내가 널 받아 줬다 치자.”

문성하의 곁으로 돌아온 그가 골치 아프다는 양 제 이마를 짚었다. 문성하는 아랫입술을 깨물어 가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의 윗눈썹이 비뚤었다.

“너는 나에게 뭘 해 줄 거니?”

문성하의 입이 여짓거린 끝에 열렸다. 미동하는 눈시울을 추슬러 가며, 최대한 차분하게 대꾸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뭐든지?”

“네. 그러니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이라도…….”

문성하의 눈빛이 꼿꼿해졌다.

“저를 양육해 주세요.”

남자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너 엄청 영악한 애구나.”

문성하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 암묵적 수긍이 모든 것이 시작이었다.

영악한 문성하는 그에게 얄팍하게나마 남아 있을 부성애를 믿었다. 함께 지내다 보면 자연히 자신을 아들로서 받아들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문성하는 타고나길 운이 없는 편이었고, 이 집에서의 삶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문성하가 예의 바르며 모범적인 아들 행세를 했음에도 아버지가 자신과 다정하게 눈을 맞춰 주는 일은 없었다.

최초로 눈을 마주친 건, 어느 날 술에 취해 들어온 그가 문성하를 끌고 제 방으로 들어간 날이었다. 한참이나 씩씩거린 그가 턱짓을 했다. 교복 벗어, 아니다, 벗지 마. 흉이 지면 안 되지. 교근을 불룩거린 그가 양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엄한 한 마디가 침실을 메웠다. 그냥 그 상태로 뒤돌아. 내가 뭘 하든, 소리 내지 말고.

그렇게 시작돼 다다른 것이 오늘의 이 순간이다. 잔혹한 학대의 시간이다.

“귀먹었어?”

철썩! 가시 돋친 혁대가 등에다 사선을 그었다. 문성하는 이를 악물어 가며 바닥에 눈을 고정했다. 싸지른 소변의 범위가 넓어져 가고 있었다. 문성하는 황망한 혼잣말을 삼켰다.

그냥 다 내려놓고 나가 버릴까.

쿵. 돌연 바깥에서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화들짝한 문성하가 입구를 확인했다. 캄캄한 침실 안으로 희미한 빛줄기를 흘리는 문틈이 보였다. 작은 틈새로 후다닥 달아나는 실루엣이 비쳤다. 문성하의 면상에서 핏기가 싹 달아났다. 어쩔 줄 몰라 하던 고개가 기울어, 또 바닥을 향했다. 조도 낮은 수면 등에 의지해 판별해야 하는 바닥이 하염없이 축축했다.

짝, 짜악, 짝! 이어지는 채찍질 소리가 벌레처럼 귓바퀴를 좀먹어 왔다. 사각, 사각, 사각. 쉼 없이 반복되는 소리는 어느덧 사과 깎는 소리로 변질됐고, 문성하는 비로소 편하게 호흡할 수 있었다.

-형은 사과를 좋아해?

조금 웃음이 나왔다. 동생의 귀에는 이 소리가 과일 깎는 소리로 들린 모양이다. 하긴, 바깥에서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버지가 제 형에게 이런 식으로 폭행을 가하리라는 걸 동생이 상상이나 했겠는가. 설령 직접 본다 해도, 동생은 그걸 또 다른 행위라 인식할 거다. 그 정도로 무지하고, 그 정도로 순수한 동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 싸질렀어? 더럽게……. 치워. 네가 벌인 일이니.”

탁, 소리 나게 벨트를 내던진 아버지가 경고했다. 바닥을 흠뻑 적신 소변이 찰박이는 소리를 냈다. 돌아보지도 않은 문성하가 입을 열었다. 오늘 학대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네.”

문성하는 집을 나갈 수 없다. 더 이상 보호자가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이제는 다른 이유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을 보호해 줄 유일한 사람, 그것이 자신이었다.

***

“형. 자?”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문성하의 시선이 넘어갔다. 상체를 일으킨 주혜성이 빤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깜빡이던 눈이 동생의 어깨 너머로 비치는 창밖을 머금었다. 하늘은 지극히 까맸고, 빌딩 상당수는 불이 꺼져 있었으며, 차로를 다니는 차는 드문드문했다. 완연한 밤이었다.

“깼어. 혜성이 너는?”

동생 쪽으로 몸을 틀며 물었다. 문성하를 향해 고개를 기운 그가 답했다.

“나도 방금 전에 깼어.”

문성하가 괜히 찡긋거렸다. 정말일까. 전혀 잔 얼굴이 아닌데. 진지해진 문성하를 보며 주혜성이 미소 지었다. 입꼬리에서 커튼 그림자가 나풀거렸다.

“손은 좀 괜찮아?”

이불 안에서 팔을 뺐다. 시트를 짚은 주혜성의 손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꽁꽁 감긴 천 곳곳에서 핏물이 비쳤다. 갈아야 하나. 고민하다 살살 문질러 딱지가 생겼는지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 생각해 보니 구급함을 호텔 쪽에 돌려줬다. 출혈은 그친 듯하니, 이대로 둬도 괜찮을 듯했다.

“미안해.”

“뭐가.”

“형한테 거짓말해서.”

주혜성이 잡힌 손가락을 꺼떡거렸다. 미소가 자못 사그라졌다. 문성하가 피식거렸다.

“잘못한 건 알아?”

“응.”

“다음부터는 형한테 미리 얘기해. 투자 함부로 하는 것 아니야. 형 이래 봬도 전문이 그거잖아. 그러니 앞으로는 뭐 할 때 꼭 형 허락받고…….”

“또 용서해 줄 거야?”

주혜성의 눈초리가 느슨해졌다. 문성하가 멀뚱히 질문했다.

“뭘 또 용서해.”

“나중에…… 다른 거짓말해도.”

“그건 봐야 알지. 형한테 또 뭐 속인 것 있어?”

“그냥 물어보는 거야.”

잡혀 있던 손이 빠져나가, 역으로 문성하의 것을 쥐어 왔다. 자신이 주혜성의 손을 잡았을 때는 너무도 커 미처 담지도 못했는데, 반대의 상황이 되니 가뿐하게도 쏙 담긴다. 힘이 실린 손아귀가 종용하듯 문성하의 손등을 지분거렸다. 맞닿은 가죽이 간지러웠다. 문성하의 속눈썹이 하늘거렸다.

“간지러워……. 혜성아.”

“내가 또 거짓말하고, 사고 쳐도……. 형은 여전히 이 손으로 나 만져 줄 거야?”

“그건 봐야 안다고……. 아.”

손목이 확 당겨졌다. 덩달아 끌린 문성하의 몸을 주혜성의 다른 팔이 감쌌다. 멀쩡한 손으로 문성하의 등을 어루만지는 한편, 다친 손으로는 문성하의 손을 주물럭거렸다. 누기에 젖어 축축해진 손이 끌어 올려졌다. 제 입가로 가져간 주혜성이 입을 맞췄다. 나직한 목소리가 시트에 내려앉았다.

“또 그런다 해 줘.”

“혜성아. 형 진짜로 간지러워.”

“대답할 때까지 할 거야.”

뾰로통하게 말한 주혜성이 문성하의 검지와 중지를 모아 제 입 안에 넣었다. 쭙, 빨아 들이는 소리에 혈관이 화끈거렸다. 발가락을 오므린 문성하가 애꿎은 시트를 움켜쥐었다. 오한이 이는 것처럼 이빨이 딱딱거렸다. 다리가 배배 꼬였다.

“혜성아. 장난치지 말고……. 이만 자자. 응?”

“대답은?”

주혜성이 심상한 눈길을 떨어뜨렸다. 장난기를 싹 거둔 낯이 문성하의 망막을 엄습했다. 입꼬리에 걸려 있던 커튼의 조영이 온 면상을 덮고 있었다. 이 밤에 혈색을 뺏긴 듯, 어둠 속에서 창백했다. 당장 만져 주지 않으면 부식된 석고상처럼 바사삭 깨질 것만 같았다.

10년 전, 집을 나서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마다 발목을 잡아 오던 그 소년의 낯빛이었다.

문성하의 고개가 홀린 것처럼 끄덕여졌다. 곧 입을 열고, 다정한 언어를 꺼냈다.

“그래, 혜성아. 그렇게 할게.”

“진짜로?”

주혜성이 초조해하며 물었다. 문성하는 또박또박 답했다.

“응. 진짜로.”

곧 부드럽게 덧붙였다.

“그러면 이제 잘까? 혜성아.”

동생의 낯에 그제야 생기가 돌았다. 문성하는 팔베개를 해 주듯 동생의 머리 밑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주혜성이 고분고분 위에다 제 머리를 뉘었다. 가까워진 그의 얼굴에 보기 좋은 눈웃음이 걸렸다.

“잘 자. 형.”

문성하는 가벼운 미소로 답해 줬다. 동생의 눈이 흡족하게 감겼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에 잠긴 얼굴을 바라보던 문성하의 무릎이 갑자기 깐닥거렸다. 소양증처럼 하체를 옭매고 있었으나 미처 의식하지 못한 어떤 감각이 뒤늦게 소용돌이마냥 솟구쳐 왔다. 진동한 눈동자가 미적미적 내려갔다. 덮고 있는 이불 밑으로 비치는, 동굴 같은 암흑에 눈을 뒀다. 목덜미에 식은땀이 맺혔다.

씨발……. 아니겠지.

방황하던 손이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손가락에 닿은 아랫배가 움찔거렸다. 뭔가에 사로잡힌 것처럼 치부가 뻑적지근했다. 머뭇거리던 손이 치골을 더듬다 중심부에 다다랐다. 이내 자지러지며 쫙 펼쳐졌다. 긴장한 목이 덜커덕거렸다. 제대로 드러난 이불 틈으로 빳빳하게 솟은 자신의 중심부가 보였다. 기겁해 손을 뺀 문성하가 제 얼굴을 감쌌다. 맥 빠진 탄식이 터졌다.

“미친 새끼……. 네가 남자가 고파서 돌았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생에게 욕정 했다.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

일어났을 때 주혜성은 옆에 없었다. 협탁에는 작은 쪽지와 함께 음식을 덮은 후드가 놓여 있었다.

「형, 나 사장 형이 불러서 먼저 가 볼게. 아까 의사가 와서 형 보고 갔는데 이제 괜찮대. 룸서비스 시켜 둔 것 있으니 먹고 가. 저녁에 보자. 혜성이가.」

쪽지를 도로 접어 둔 다음 후드 쪽으로 손을 뻗었다. 걷어서 들여다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 그릇이 나왔다. 나란히 놓인 숟가락을 들어 내용물을 떴다. 입에 넣자 고소한 닭고기가 씹혔다. 삼계죽인 모양이었다.

“비쌀 텐데 뭐 이런걸…….”

불평하면서도 연신 숟가락을 움직였다. 아침은 먹지 않는 주의이지만, 동생이 큰맘 먹고 시켰으니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는 넣어 볼 생각이었다. 쉬지 않고 스푼을 움직인 끝에 그릇을 절반 가까이 비웠다. 배가 제법 찼다. 이 이상은 힘들겠다 싶어 커버를 덮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침대 위에서 다리를 쭉 뻗으며 앉았다. 토요일 오전의 햇살이 베이지색 면바지를 보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동하던 시선이 문득 제 사타구니에 머물렀다. 앞섶이 뻔뻔할 정도로 말짱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찌푸린 문성하가 화풀이를 하듯 허벅지를 때렸다. 제 몸이지만 욕이 나올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남자와 몸을 섞지 않은 지 제법 됐다 해도 이건 아니었다. 혈육을 상대로 발정하는 건 짐승도 안 할 짓이다. 심지어 상대는 순박하디 순박한 동생이었다.

“죽어. 문성하.”

앞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액정이 반쯤 나간 자신의 핸드폰이 보였다. 가져와 지난밤 들어온 메시지 내역을 살폈다. 몸은 괜찮냐는 최재율의 문자, 베이스터 설명회는 어땠냐는 김현재의 문자……. 대체로 특별할 것 없는 연락들. 그리고.

「확인하면 전화.

현주원 DF벤처스 대표」

“그래. 이 새끼를 깜빡했구나.”

머리를 헤집어 대던 손이 멎었다. 빳빳해진 손가락이 통화 내역을 뒤적였다. 현주원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만 여섯 통이었다. 문성하의 가슴이 깊은숨을 몰아쉰 끝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머리에 걸려 있던 손이 툭, 떨어졌다.

얼어붙은 나뭇가지처럼 멈춰 있기를 한참, 결심한 다리가 시트 밖으로 빠졌다. 집으로 향하는 것처럼 옷걸이를 향해 나아갔다. 누구의 솜씨인지 멀끔하게도 걸어 둔 재킷을 챙기며, 문성하는 쉼 없이 숨을 골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쩐주다. 상황은 설명해야 한다.

***

현주원의 집은 청담동의 한 고층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가장 평수 큰 동의 꼭대기 층이었다. 출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몇 번 와 본 일이 있었다. 능숙하게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눌러 로비 문을 열었다.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 앞에 선 후, 승강기를 부르고 열린 문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현주원이 사는 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불안정한 손가락이 옴씰거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를 두고 열 가지가 넘는 시뮬레이션을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식의 변명은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현주원은 구구절절하게 자기 변호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발생한 사건과 이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말하는 걸 선호했다.

띵. 알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문성하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다. 정면 돌파.

복도를 향해 발을 뻗었다. 성큼성큼 걸어 익숙한 현관 앞에 섰다. 벨을 눌렀다. 굳이 자신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니터로 다 보인다는 걸 알았다.

짧은 정적 끝에 문이 열렸다. 나타난 건 갓 스물이나 됐을 법한 앳된 청년이었다. 연예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화려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TV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문성하를 뚫어져라 살피던 그가 안쪽을 향해 외쳤다.

“형! 손님 왔는데?”

“알아.”

심드렁하게 대꾸한 현주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트레이닝 바지 차림으로, 상체를 헐벗고 있었다.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인 그가 삐딱하게 문성하를 응시했다. 문성하는 무표정으로 마주 봤다. 하긴, 토요일 오전이다. 평소의 현주원이라면 밤이 새도록 떡을 치고 나서 막 눈 붙일 시간이었다.

“정윤이 넌 이만 가 봐.”

바닥에 널브러진 후드 재킷을 집어 든 현주원이 청년을 향해 던졌다. 받아 든 상대방이 화를 냈다.

“아, 왜! 나 오후 스케줄이야.”

무시한 현주원이 거실 쪽으로 걸어갔다. 마지못해 재킷을 걸친 청년이 씩씩대다 빠르게 말짱해졌다. 뜀박질을 하듯 현관으로 와 문성하를 지나친 그가 숙덕거렸다.

“저 새끼 존나 재수 없지 않아요?”

문성하는 잠자코 한쪽 눈살을 찡그렸다. 청년과 동등하게 취급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얘기를 하고 왔어야지.”

청년이 나선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자마자 현주원이 경고했다. 거실로 걸어가 그를 보고 선 문성하가 볼멘소리를 냈다.

“문자 보냈어.”

“못 봤어. 핸드폰 꺼졌거든.”

“그냥 확인할 의사가 없었던 거네.”

“토요일 오전에 보내는 문자를 누가 봐? 전날 보냈어야지.”

훅, 담배 연기를 뿜은 현주원이 빈정거렸다. 그만두자는 양 혀를 찬 문성하가 목을 세웠다.

“됐고, 본론부터 얘기할게. 일리노이스…….”

“외박했어?”

갑자기 현주원이 물었다. 문성하가 쏘아봤다.

“뜬금없이 그 얘기가 왜 나와.”

“어제 베이스터 시연회에서 입은 옷하고 똑같은데. 다시 한번 묻지. 외박했어?”

“그딴 건 어떻게 아는 거야. 나 스토킹해?”

“스토킹은 얼어 죽을. 유튜브 라이브 봤어. 그 행사, 온라인에서 생중계됐잖아.”

현주원이 재떨이에다 담배 끄트머리를 털었다. 도로 입에 가져간 그가 느물거렸다.

“말해 봐. 남자 생겼어?”

“지금 그게 중요해?”

“난 차라리 그게 중요해. 일리노이스 얘기는 영 재미없을 것 같거든.”

고개를 젖힌 현주원이 입을 뻐끔거렸다. 동그란 도넛 구름이 허공에 연달아 솟아올랐다. 재차 문 담배를 질근거리며, 현주원이 뇌까렸다.

“일리노이스 관련해 뭐라도 보고할 생각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투자처에 불이 났는데 담당 심사역한테 닥치고 있으라는 거야?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이 사달이 났는데.”

“리스크 관리? 관리할 게 뭐 있어. 깔끔하게 감액 처리하고 끝내는 거지. 보통은 다 그렇게 해. 일리노리스 대표 찾아내 배때기라도 쑤셔 버릴 것 아니면, 너도 이 이상 나서지 마. 신경 꺼.”

유독 긴 연무를 내뿜은 현주원이 한쪽 팔을 소파 등받이에 올렸다. 툭, 툭, 가죽을 두드려 대는 손가락이 노곤했다.

“문성하. 난 지금 네게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 일리노이스 건과 관련해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너 스스로 그걸 만회하길 기다리는 거야.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네가 더 잘 알겠지.”

“결국 베이스터 따 오라는 얘기네.”

문성하의 입이 말아 물렸다. 창밖을 본 현주원이 담배 끼운 손을 휘적거렸다.

“생각해 봐. 나 같은 CEO가 어디에 있어? 불가능한 일에 애써 힘 쏟지 않고, 가능한 창구에 집중하게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잖아. 기회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건 바로 너야.”

“참으로 고맙습니다. 연일 VC 쳐 내기 바쁜 그 비싼 베이스터에 목매다는 걸 담보로 제게 기회를 주셨군요.”

문성하가 하나도 고맙지 않은 말을 했다. 곁눈질을 한 현주원이 입매에 호를 걸었다.

“알아줘서 고맙네.”

“여기까지 하자. 난 혹시나 형이 일리노이스 관련해 사후 책임 물을까 봐 온 거야. 베이스터 투자 건 담보로 해소할 수 있는 문제라면, 내가 밖에서 알아서 하는 수밖에 답이 없지. 이만 가 볼게.”

“그렇게 단순하게 끝날 건은 아니야. 다음 주에 출근하자마자 시말서 하나 써. 형식적으로나마.”

“그거라면 속으로 세 번쯤 썼어.”

등을 보인 문성하가 이마를 쓸었다. 곧 분연히 다리를 뻗어 가며 현관을 향하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지 두어 걸음 남겼을 때 불현듯 팔뚝이 잡아채어졌다. 문성하의 얼굴이 돌아갔다. 어느덧 담배를 끄고 다가온 현주원이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또 뭐. 시말서 두 장 쓸까?”

“오자마자 내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은.”

“무슨 질문. 외박? 했으면 형이 어쩔 건데. 우리 그런 것 따지는 사이 아니잖아. 새삼스럽게 왜 이래?”

문성하의 톤이 고조됐다. 헛웃음 친 현주원이 주억거렸다.

“그건 맞는 말이지.”

곧 무표정이 됐다.

“그런데 그게 네 입에서 나올 얘기는 아니야. 나라면 몰라도.”

문성하가 치를 떨었다. 시퍼렇게 뜬 눈이 현주원을 쏘아봤다. 현주원은 예사로운 고갯짓만 했다. 문성하의 목이 울컥거렸다.

잠시 잊었다. 현주원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라는 걸. 그의 독단적 결정으로 DF벤처스 심사역이 된 순간부터 문성하는 합법적인 그의 소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관계는 철저한 수직 구조에 의거하고 있었으므로 현주원이 문성하를 통제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 반대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로 취급됐지만.

평등 사회 속에서 상하 관계란 비인간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이지만 여기에 자본이라는 전제가 붙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주원이 문성하에게 준 것들이 이 불균등한 간극을 메운 순간, 결국 이 관계는 수평이었다. 문성하에게는 불평할 자격이 없었다. 그걸 누구보다 문성하 스스로가 잘 알았다.

“없어. 어제는 일이 있어서 호텔에서 잔 거야. 못 움직일 정도로 아팠거든.”

“누구랑.”

“동생.”

자못 유순한 대답이 나왔다. 현실을 자각한 이상 조금은 꼬리를 내릴 필요가 있었다. 현주원이 고개를 까딱했다.

“저번에 얘기한 그 동생?”

“어. 됐어? 이제.”

“그 새끼가 네 애인 아니었어?”

“애인은 무슨 얼어 죽을 애인이야. 친동생이라고 몇 번을 얘기해. 어?”

문성하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현주원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가붓한 손짓이 건네졌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성질을 내? 이리 와.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유치하게 씻고 가라는 말 하지 마. 그거 최재율이나 쓰는 수법이야.”

“난 그딴 얘기 안 해.”

현주원이 입매를 꼬았다.

“뭘 지금 씻어? 하고 나서 씻는 거지.”

“형. 나 진짜로 할 기분 아니야.”

“나도 기분 별로야. 일리노이스 때문에 헛돈 날아갈 것 생각하면, 살짝 돌아 버릴 것 같거든.”

현주원이 정색했다. 덩달아 문성하가 경직됐다. 방금 전은 진심이었다. 육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애인 없다며. 나하고 안 할 이유 없잖아?”

현주원이 또 한 번 손짓했다. 두 가지 의중이 담겨 있었다. 일리노이스 파산에 대한 책임을 ‘다른 방식’으로도 치르라는 것, 그리고 문성하와 주혜성이 ‘그런 관계’가 아님을 확실히 하라는 것.

보고만 있던 문성하의 발이 떨어졌다. 사실 전자는 상관이 없었다. 비슷한 상황을 몇 번이나 겪은지라, 유연하게 빠져나가는 법 역시 알고 있었다. 움직인 건 후자 때문이었다. 문성하 스스로도 확실히 하고 싶었다. 주혜성은 그저 자신의 동생일 뿐이라는 걸.

그러므로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걸.

현주원의 앞에 선 문성하의 시선이 문득 내려갔다. 재킷 주머니 안에서 빛나는 핸드폰 액정이 보였다.

「형. 모해? 잠깐 통화돼?

동생」

날숨을 뱉은 문성하가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핸드폰 전원 버튼을 꾹 누르고는 얼굴을 들었다. 핸드폰 꺼지는 기계음이 귀를 스쳤다.

“벨트 꺼내.”

단호한 음성이 나왔다. 알아들은 현주원이 저소했다. 흥미로운 질문이 찾아들었다.

“맞고 싶어?”

문성하가 곤로하게 대꾸했다.

“어.”

일단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몸에 상처를 새겨야겠다. 지난밤 눈뜬 이 부적절한 욕망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나서, 그다음에 다른 걸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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