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바이 파이브(5x5) 6권
“확실히 공기가 좋네요. 관리도 잘되어 있는 것 같고.”
창문도 열어보고 침대 주변을 정돈하며 병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간병인 아주머니의 첫 소감이었다. 서울에서 있었던 병원만큼 좋은 시설을 갖춘 건 아니었지만, 아주머니 말마따나 장점이 있긴 했다.
오늘 한 거라고는 구급차로 할아버지를 서울에서 태안까지 옮긴 것뿐인데, 창밖으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내일은 진료가 잡혀 있었다. 나는 의사와 상담하며 할아버지를 놓아줄 방법에 대해서도 물을 예정이었다. 지난 5년간 외면해왔지만, 이제 더는 그럴 수 없었다. 할아버지를 보내줘야 할 때가 왔다. 어쩌면 그보다 내가 먼저 잘못될 가능성을 생각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할아버지를 위해서. 그러려면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내가 할아버지를 고향으로 모실 거라는 이야기를 한 순간부터 무언가를 직감한 듯한 간병인 아주머니는 차마 따라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쉽게 읽어냈다. 내 손을 잡고는 끝까지 같이 하겠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감사하다는 말조차 할 염치가 없어 고개를 숙이기만 했었다. 마음이 추를 단 것처럼 자꾸만 아래로 늘어졌다.
나는 이곳에 왔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를 향한 시선을 한 박자 늦게 눈치챘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간병인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며칠 전부터 날 볼 때마다 안부를 묻는 걸 보니 내가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배 안 고프세요? 식사 시간인데….”
“…아, 다녀오세요. 여기 1층에 식당이 괜찮은 편이에요. 만약 다른 거 드시고 싶으시면 저한테 말씀….”
“아이고, 병원 생활이 몇 년째인데 제가 그런 거 모를까 봐요. 선생님 밥 챙겨야 할 것 같아서 물어본 거예요, 내 밥 말고.”
“…….”
“요새 밥은 제때 잘 챙겨 먹어요? 얼굴이 반쪽이야, 반쪽.”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해서인가, 그녀는 본능처럼 아픈 사람을 알아챈다. 나는 힘없이 웃으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내 머리에 혹이 있으며,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다는 걸 들킬까 봐 겁이라도 내듯이.
“바빠서….”
“그래도 밥은 잘 챙겨 드셔야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녀요?”
질문을 연달아 쏟아내며 병실을 떠나지 못하던 그녀는, 오늘 밤은 할아버지와 둘만 있고 싶다는 내 말을 듣고서야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방을 챙기던 그녀가 말없이 잠깐 내 팔을 어루만졌다. 말보다는 그런 행위가 위로될 때가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따뜻한 걱정이 담긴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 또한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이자, 할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복기하면서.
아주머니마저 떠나고 나니 병실 안에 나만이 남았다. 태안으로 옮기며 1인실을 택했다. 조금 더 넓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간병하는 누군가가 말하지 않는 한 무덤같이 조용한 공간이라는 점은 같았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말없이 누워 있었다. 혼수상태인 사람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동 중 생명을 위협하는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서류에도 사인해야만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그 일을 묵묵히 견뎠다. 5년간 내 옆에서 견뎠던 것처럼. 아무도 예후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음에도, 그걸 비웃듯 살아 있었던 것처럼.
‘영감 너 보러 살아 있는 거야.’
‘…….’
‘네가 자기 없어도 잘 사는 거 보고 가려고. 네가 붙들어서 억지로 연명하는 게 아니라, 영감도 어떻게든 네 옆에 있어 주려고 이곳에서 버티고 있는 거라고.’
또다시 이지훈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건너편에서 날 바라보던 놈의 눈동자까지도 선명히 떠올랐다. 나는 그때와 달리 아무도 서 있지 않은 침대 건너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지훈의 말처럼, 할아버지가 날 위해 버틴 거라면.
‘그러니까… 힘들겠지만, 영감한테 네 이야기 해.’
내가 자신이 없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버틴 거라면.
‘후회하지 않을 만큼 털어놓고, 너 괜찮게 잘 살고 있다고 안심도 시켜주고 그래.’
괜찮다고 말하며, 그를 놓아줄 수 있는 것도 나뿐이겠지.
“할아버지.”
손을 잡고도 용기가 나지 않아 한참을 망설였다. 대신 온기를 잊지 않으려 할아버지의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 끝을 계속해서 만지작댔다. 나중에 이 손을 놓아야 할 때가 생겼을 때도, 이 촉감만은 기억할 수 있도록.
“계속 여기로 내려오고 싶으셨던 거 알아요.”
내가 들어도 목소리가 볼품없었다. 어차피 할아버지는 듣지 못할 테니 괜찮겠지 싶다가 스스로 저지하듯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이지훈의 말대로 해보려고 했다. 할아버지가 듣지 못함을 알면서 말하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전부 듣고 있다고 생각하며 말할 것이다.
“다 알면서도… 늦게 모셔 와서 죄송해요.”
어차피 인간은 죽을 걸 알고 사는데, 그 끝이 코앞에 다다라서야 절박해진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순간마저도 우리가 어떤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제가 이기적이었고, 욕심부렸어요.”
이상했다. 내 말을 할아버지가 듣고 있다 생각하니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감긴 눈조차 보지 못하고 점차 내려가던 시선이 결국 침대 시트 위에 고정됐다. 5년 내내 할아버지의 의지로 구겨진 적 없던 하얀 시트를 눈에 담으며, 누구에게도 말해 본 적 없던 이야기를 꺼냈다.
“살면서 욕심내본 게 별로 없어요. 중학생 때 할아버지랑 태안에 있을 거라고 했을 때가 처음이었는데….”
할아버지에게 수술을 받으라고 설득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난 정말 절박했는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이런 말은 못 했다. 그때만 해도 할아버지는 들을 수 있었는데, 내게 뭐라고 답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늦었다. 이제는 기회가 없다. 할아버지가 살아 있는데도 그 사실을 매일같이 깨닫곤 한다.
“그게 정말… 좋았거든요.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평생 후회했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할 정도로.”
할아버지를 열다섯에 만났다. 그 이후로 배운 것들이 내 삶을 좌우했다. 그 전에 학습한 것들이 아니라. 덕분에 학습과 배움은 다르다는 걸 알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종일 책을 붙들고 있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을 직접 알려줬으니까.
“할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전….”
이제 목소리는 아무리 가다듬어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됐다. 나는 발음이 뭉개지는데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계속 그렇게 살았을 거예요. 행복이 뭔지 모르고… 누군가한테 행복하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행복해?’
행복하냐고 물어보는 애를 평생 알지 못하고 살았겠지.
“누군가를 사랑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 인생이 내 것일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거라는 것도.
할아버지의 손에 고개를 깊숙이 묻었다. 그가 내 옆에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의 손에 어리광이라도 피우듯 얼굴을 비볐다.
“그러니까 전 괜찮아요.”
끝이 다가오는 순간, 떠올리는 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다. 나는 그 안에 있는 익숙한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닿아 있는 몸을 통해, 할아버지도 같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하면서.
그제야 가슴 깊숙이 감춰뒀던 마음을 말할 용기가 났다. 나는 손에 입술을 댄 채로 그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지훈이를 사랑해 봤으니까.”
그러니까 저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래야 걔를 떠난 걸 후회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할아버지의 손바닥이 축축했다. 할아버지의 앞에서 우는 건 5년 만이었다. 5년 전 눈물을 흘렸을 때도, 지금도 할아버지는 내 눈물을 닦아주진 않았다. 다만 함께했을 뿐이다. 내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그리고 자신을 껴안을 때까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느낌에 잠에서 깼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는데, 긴 악몽에서 간신히 도망친 사람처럼 몸과 정신이 불시에 깨어났다. 경련이라도 하듯 움찔대는 볼을 더듬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나는 침대 위에 몸을 반쯤 엎드린 채 누워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로 이야기하다가 지쳐서 눈을 감았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자세 그대로 바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병실 안이 깜깜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6시였다. 한 시간 후면 간병인 아주머니가 올 터였다.
방은 고요했다. 자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자느라 할아버지의 오른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려 있었다는 것 빼고는. 헐겁게 잡혀 있는 손을 완전히 놓기 전에 괜히 한 번 더 잡아보다 말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새끼손가락을 스치듯 지나간 감촉은 지난 5년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거였다. 몸의 모든 기능을 멈춰버린 사람에게 기대할 수 없던 것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그 사람의 이름을 다급하게 외치는 순간마저도, 내가 방금 느낀 이 촉감을 할아버지가 움직였다는 증거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움직였음을 분명히 느꼈다.
“잠깐, 잠깐만요.”
자리에서 일어서서 일단 병상 위에 달린 의료진 호출 버튼부터 눌렀다. 곧 의료진들이 병실 안으로 달려올 테다. 어떤 방식으로든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할 테고, 그러면 방금 할아버지가 손을 움찔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어떠한 방식이든 설명을 해줄 거였다.
아직은 잠잠한 문을 확인하며, 손을 고쳐 쥐었다. 모든 감각이 맞닿은 피부로 몰렸다. 그러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또 한 번 손을 움직여줄 것 같았다. 내가 느낀 게 착각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알려줄 것 같았다.
“할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부르듯이 목소리를 높이며 할아버지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할아버지의 얼굴에 시선을 둔 채 거듭 물었다.
“저 선욱이에요.”
이런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걸 아는데.
“들리면 손 한 번만 더 움직여주세요. 아주 조금만이라도 괜찮으니까, 한 번만.”
간절하게 말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얼굴을 응시했다. 눈가나 볼, 턱이 미세한 속도로라도 움직일지도 모르기에 눈을 떼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할아버지가 깨어난 걸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차마 바라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난 걸지도.
눈을 깜빡였다. 할아버지의 눈가가 움찔대는 것처럼 보여서였다.
내가 미친 걸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나는 손을 더 꽉 쥐었다. 할아버지 쪽으로 몸을 굽힌 채 빠르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바로 앞에, 눈만 뜨면 보일 거예요.”
할아버지의 움직임을 놓치기라도 할까 봐,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손에 땀이 났다. 나는 미끌미끌한 손을 한 번 더 고쳐 쥐었다.
“한 번만, 한 번만 움직여주시면 돼요. 제발요.”
딱 한 번만 더 느끼면, 완전히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5년간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마음이 급해졌다. 이 시간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게 남은 마지막 기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고개를 돌렸다. 간호사와 눈이 마주친 순간에는 헐떡이며 말했다.
“손이, 손이 움직인 것 같아서요.”
잠깐 당황한 것처럼 보이던 그녀는 재빨리 침대에 다가섰다. 할아버지의 눈을 까뒤집고 그 안을 살피던 그녀가 곧이어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여러 사람과 함께였다. 나는 어느새 침대에서 밀쳐나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침대를 둘러싼 의료진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래요? 네?”
팔을 급하게 부여잡는 감촉에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손가방조차 내려놓지 못한 채로 침대 옆을 빙 둘러선 의료인들 사이를 기웃대는 간병인 아주머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예감한 것처럼 불안해했다. 예고 없이 이렇게 할아버지의 병실이 시끄러워질 리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사람처럼.
발을 동동 구르는 그녀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할아버지가 손을 움직였고 눈가를 움찔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려 했다. 할아버지가 미동 없이 누워 있을 때조차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듯 늘 일정한 포물선을 그리던 심전도 그래프를 가리키면서.
심전도 그래프를 가리키려던 손짓이 멈췄다. 바이털 모니터 안에서 축을 사이에 둔 채로 위아래를 오가던 선의 폭이 급격히 좁아져 있었다. 하나의 선은 아니더라도, 곧 한 줄로 합쳐질 수도 있을 것처럼 완만하게 휘어졌다.
허벅지로 툭 떨어지는 고무 같은 손을 느끼고서야 나는 이 현실이 기적이 아닌 비극에 가까움을 인식한다.
내가 서 있는 곳은 할아버지의 무덤 앞.
물에 가라앉은 것처럼, 내 주변으로 하나의 막이 씌워진다. 밖에서 아무리 누군가가 소리치고 비명을 지른대도 내게는 온전히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 나는 듣지 못하니 보기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두리번댔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입을 막고 침대에서 물러선다. 할아버지의 입 주위에 씌워져 있던 산소마스크가 목 근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마스크에는 김이 서려 있지 않다. 얼굴이 익숙한 의사가 침대 위로 올라가더니 손을 겹쳐 할아버지의 흉부를 압박한다. 힘을 어찌나 주는지, 저러다가 갈비뼈가 부러질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그런데 아무도 그런 그를 말리지 않는다. 의사의 몸이 반동을 감당하지 못하고 크게 들썩댄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그가 옆을 향해 무언가를 크게 소리친다. 그가 기계를 할아버지의 얼굴 위로 씌운다. 나는 막을 향해 다가섰다. 막 바깥의 사람에게 말이라도 걸듯이.
그러다 죽겠어요. 그러다 할아버지 갈비뼈가 부러지고, 숨을 쉬지 못할 거라고요.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려던 말과 뻗으려던 손은 우뚝 멈췄다. 예고된 수순과도 같이 심전도 그래프 위로 시선이 멎었다.
막이 깨지고, 막을 채우고 있던 차가운 물이 머리 위로 온통 쏟아졌다.
아, 할아버지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를 죽지 않게 하려고 그러는 거구나. 할아버지가 숨을 쉬지 않으니, 숨을 쉬게 하려고. 심장이 뛰지 않으니, 어떻게든 심장을 뛰게 하려고.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그 행위가 소용이 없었다는 것쯤은 알게 됐다. 환자의 위에 올라타 흉부를 압박하고, 기계를 이용해서든 어떻게서든 숨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하던 의사의 등이 점차 느려지더니 이내 정지했다. 하얀 가운 너머로 마지막 망설임이 읽혔다. 의사의 시선은 더는 할아버지에게로 가닿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일을 해도 환자를 살릴 수 없다는 걸 대신 알려주는 바이털 모니터를 멀거니 보고 있다.
침대에서 내려오는 그를 본다. 한때는 내게 희망을 전해주려 애쓰던 의사의 완벽하게 참패한 표정을 본다. 이런 일을 해도 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사람처럼 고개를 떨군 그가 옆을 향해 눈짓하는 걸 멍하니 보며 예감한다.
“…사망 선고하세요.”
“예.”
그보다는 조금 더 어려 보이는 의사가 손을 모으고 서는 것을 지켜봤다. 나를 둘러싼 막이 완벽히 사라진 것을 느낀다. 이제 이 상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건 없다.
“12월 10일 오전 7시 20분 지청우 환자, 사망하셨습니다.”
당연한 절차인 것처럼, 병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내가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음을 실감하게 만드는 시선 속에서 발을 뗐다. 시트 위로 내팽개쳐진 손을 바라본다. 방금까지 움직였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품게 만들었던 할아버지의 손을.
아직 차갑게 식지조차 못해 미지근한 손은 할아버지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시트 위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소리가 없다. 마치 할아버지가 끝내 그 어떤 소리조차 없이 떠나야 했던 것처럼.
할아버지가 죽었음을 확인하는 서류 몇 개에 사인하고 장례지도사를 만났을 뿐인데 밖은 그새 환해져 있었다. 장례식장 앞의 벤치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보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우습게도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 현장을 본 순간에야 내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핸드폰을 쥐고, 전화번호를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른 후에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오, 선욱 씨. 웬일로 모닝 전화를 다 갈기시고? 병원은 잘 옮겼어? 안 그래두 전화해보려 했는뎅.
오늘도 강영수는 옥상에 올라가 내 전화를 받은 모양이다. 빨대로 커피를 쭉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누구의 것인지 모를 와글대는 소음이 함께 들려왔다. 일상적인 소음들 속에서 앞으로 내가 꺼낼 말은 한없이 이질적이게 느껴질 테다. 그 생각이 든 순간에는 목 안의 근육들이 뻐근하게 경직됐다. 나는 눈을 감고, 목을 가다듬었다. 턱 끝까지 치받던 것들을 아래로 밀어내자 입 안이 텅 비었다.
“…영수야.”
겨우 그 말만을 했을 뿐인데, 통화 건너편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용해졌다. 침묵이라는 걸 모르는 놈이 입을 다문 탓이다. 그 부름에서 무언가를 예감한 것처럼. 평소 살갑게 부르지 않는 내가 그렇게 불렀을 때 할 말은 정해져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처럼.
“할아버지가….”
강영수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장례의 시작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앉아 있는 벤치 앞, 아스팔트 사이로 자란 시들시들한 민들레 뿌리에 시선을 두고서야 명치에 얹혀 있던 말이 튀어나갔다.
“돌아가셨어.”
말하는 순간에야 내가 그 사실을 지금에야 실감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놈이 이미 들었다는 걸 알면서도 입 안으로 그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죽었어. 이제 내 옆에 없어.
그렇게 말하면 그 사실이 조금 더 견딜 만할 일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 * *
엄마는 절을 하고도 한참 제자리에 서서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지훈의 아버지나 강영수의 어머니처럼 눈가를 붉게 물들이지도, 강영수처럼 엉엉 울지도, 영은이처럼 가만히 잘 있다가 남들 몰래 눈가를 훔치지도 않았다.
영정사진 속 할아버지와 긴 눈맞춤을 이어가던 엄마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밥은 먹었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내내 이리저리 불려 다닐 일이 많았다. 밥을 먹으라고 끌어 앉히고,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등을 쓸어주는 어른들이 많았다는 소리다. 그들이 밀어주는 하얀 플라스틱 접시 위의 음식들을 기계적으로 씹어 넘겼다.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턱을 움직이면 무언가가 목 너머로 넘어가는 걸 어렴풋이 느꼈을 뿐.
엄마가 별다른 대답 없이 시선을 거뒀다. 뒤로 물러서 있던 강영수가 다가와서 내 옆구리를 찌르며 슬쩍 눈짓했다. 신발장 쪽으로 향할 줄 알았던 엄마는 예상과 달리 장례식장 가장 안쪽 자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장례식장 구석에 마련된 간이 주방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들이 벌써 엄마가 앉은 테이블 위로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어른들이 엄마를 흘긋댔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 의아해하는 것도 같았고, 누군가는 엄마가 누구인지를 눈치챈 것처럼 옆 사람에게 귓속말하기도 했다. 나는 모여드는 시선을 뒤로한 채 걸었다.
엄마는 내가 맞은편에 앉는 걸 보고서도 흘깃 볼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뻘건 육개장 위에 뜬 기름을 걷어내듯 한참을 휘휘 젓던 엄마가 불쑥 입을 열었다.
“너 임신했을 때 처음 뵀어.”
목적어가 없는 말인데도 누굴 말하는 건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이었으니까. 그를 잘 아는 사람조차 입에 거미줄을 칠까 봐 걱정했을 정도로 과묵하던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희한할 정도로 북적댔다. 어떤 방식으로든 할아버지와 연이 있었던 사람들이 연이어 찾아와서는 내게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건넸다. 그들의 추억 속에 있던 할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 같기도, 모르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들은 공감을 바라기보다는, 손자인 내게 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할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털어내려 했다.
엄마도 그들과 같다는 게 놀라웠을 뿐, 그 행위 자체가 놀라운 건 아니었다. 나는 듣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계속 말을 이었다.
“상견례도 아니고, 결혼식도 아니고.”
“…….”
“배가 부를 대로 불러서야 처음 만났지. 그것도 네 아빠 모르게 간다고, 아침 댓바람부터 집 앞에 들이닥치듯 가서는 다짜고짜 내가 당신 며느리라고 말했어. 이 배에 있는 건 당신 손자고. 난 내 애한테 멀쩡히 있는 할아버지 없다는 거짓말은 못 하겠다고. 그러니 태어나기 전에 우리끼리 말이라도 맞추자고 말이야.”
그때를 떠올리는 것처럼, 비닐이 씌워진 식탁 위 한구석을 바라보던 엄마가 씁쓸히 미소 지었다.
“그때 네 할아버지가 뭐라 했는지 아니?”
나는 순간 엄마가 울컥한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이었다. 목울대를 한번 넘기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것으로 동요의 흔적을 깔끔히 감춘 엄마는 곧 아무렇지 않아 보였으니까.
“다행이라고 했어. 적어도 나는 널 책임질 사람으로는 보인다고. 그러면서 널 잘 책임지라고 하시더라. 자신은 그러지 못했고 그걸 보고 자란 네 아빠도 그럴지도 모르니까, 나라도 그렇게 하라고.”
“…….”
“네 아빠랑 싸울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났어. 네 아빠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바쁜 인간이었잖니. 그걸 매일 다른 방식으로 느낄 때마다 후회했지. 내가 네 할아버지의 말을 조금 더 깊이 생각했다면, 뭔가 바뀌었을까 생각하면서.”
엄마가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눈동자 안에 무표정한 내가 비쳤다. 엄마는 잠깐의 머뭇댐이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흔들림 없는 투로 말했다.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담담했다.
“그래서 네 할아버지가 널 책임지겠다고 했을 때…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어.”
“…….”
“책임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데 이길 자신이 없더구나. 거기다 떼 한 번 쓴 적 없던 아들이 행복하냐고 묻는 말에 대답할 수조차 없는 엄마였으니까, 난.”
나는 드디어 건더기를 담기 시작한 엄마의 플라스틱 수저에 시선을 뒀다. 육개장에 한 번 들어간 것만으로도, 뻘건 색을 그대로 옮아온 수저를. 엄마의 뒤로 보이는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다. 창문을 조금 열어둔 모양인지, 창가에 툭툭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입고 있는 재킷의 옷깃에도 미처 털어내지 못한 빗방울이 남아 있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엄마와 눈을 맞췄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마주 앉았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서로를 깊숙이 응시하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서 할아버지를 본다. 방식이야 달랐대도, 엄마도 할아버지도 날 최선의 방식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저를 위한 결정을 하셨다고.”
“…….”
“그렇게 생각해요.”
“…….”
“그때… 그렇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목 안을 사포를 긁으면 이런 목소리가 날까 싶을 정도로 목소리가 거칠했다. 울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울지 않았으니까. 마치 내 안의 모든 물이 말라버린 것 같았다.
빗소리 속에서 엄마가 아주 천천히,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언젠가 지금처럼 비가 오던 날, 담벼락에 서서 엄마와 헤어지던 밤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젊었던 엄마와 어렸던 나는 결코 흉내 낼 수 없었던 어떠한 유대감이, 지금 우리의 안에 자리함을 깨달으며.
엄마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까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았던 때처럼, 나를 한참 물끄러미 응시하던 엄마가 수저를 들어 식은 육개장 건더기를 한가득 펐다. 그러고는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가 육개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장례식장의 뒤편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향해 걸어가는 내내 묵묵히 함께했다. 들고 있는 까맣고 큰 우산을 엄마 쪽으로 조금 더 기울이면서. 뒤로 따라붙어 우산을 씌워주는 나를 모른 척 묵묵히 내버려 둔 엄마는 운전석 문을 여는 순간에야 몸을 돌렸다.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던데… 가끔은 몸을 사리는 것도 방법이야.”
날 보지 않은 채로 날 향해 말하는 엄마는 생전 하지 않던 일을 하는 중이었다. 별장 사건이 최정호와 엮이며 크게 번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면서도 한 번도 말을 얹은 적 없던 엄마조차 이렇게 돌려서 조심하라는 말을 할 정도이니. 할 수 있는 말을 헤아리다가 입을 열었다.
“…조심할게요.”
“안 하겠다는 말은 안 하는구나.”
“…….”
“네 아빠와 닮지 않아 좋다고 말하면서, 이런 건 싫다고 하면 모순이겠지.”
눈썹을 찌푸린 엄마는 그러나 기분 나빠 보이진 않았다. 나는 엄마가 운전석으로 발을 들이는 걸 보다가, 닫히려던 문을 잡았다. 놀란 눈을 마주하고는 턱 끝까지 차올랐던 말을 아래로 꾹 눌렀다.
내가 아빠보다는 할아버지를 닮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나도 할아버지처럼 머리에 혹이 있다고,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할아버지처럼 쓰러져서 영영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문을 놓고는 뒤로 물러섰다.
“조심히 운전하세요. 비가 많이 와요.”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인사를 건네는 아들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엄마는 그래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차가 후진할 수 있도록 완전히 뒤로 물러서서, 까만 세단이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걸 지켜봤다. 자갈이 깔린 야외 주차장에서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나는 엄마의 차가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서 있다가 장례식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이틀 동안 장례식장을 함께 지켜주던 마을 사람들도 집으로 거의 다 돌아간 뒤라 주차장이 썰렁했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가로등 빛이 비쳐 흐렸다. 하나, 둘, 셋. 드문드문 띄워진 가로등 사이를 지나며 번지는 빛들을 응시했다. 그게 꼭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눈가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이틀 내내 그런 눈들을 보아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울지 않은 건 나뿐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제 감정을 추스르기 바빠 나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점차 그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타지에서 온, 할아버지의 동창이었다던 어떤 분은 대놓고 내게 묻기도 했다. ‘자네는 슬프지도 않은가?’ 질타라고도 할 수 없는 순수한 물음이었다. 지팡이를 짚으신 그분을 부축하던 아들이 화들짝 놀라며 그를 만류했지만, 나는 사실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이가 유별났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가 봐. 어떻게 지 할애비가 죽었는데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려. 독하다, 독해. 슬프지도 않은가?’
‘어우, 언니. 그만해.’
‘뭐, 내가 못 할 말 했남? 신기하니까 그러지. 신기하니까.’
화장실 근처에서 들은 대화가 떠올랐다. 누군가를 따라온 게 분명한, 내가 얼굴조차 잘 모르는 그들이 하는 말에 화가 나진 않았다. 일부분은 공감하기도 했다. 강영수만 봐도 그랬다. 빈소에 혼자 앉아 있던 날 본 순간부터 엉엉 울기 시작한 놈은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볼 때마다 울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내게 다가와서 어깨를 주물러주고 팔을 끌어 잡으면서, ‘욱아. 넌 지금 너무 슬퍼서 오히려 울 수가 없는 거야.’라며 대신 변명해주듯 말했다. 퉁퉁 부은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슬퍼서 울지 못하는 게 맞을까. 슬퍼하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니고?
나도 내가 이상했다. 울지 못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몸 안의 어떤 부분이 아예 도려내진 것처럼 존재감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공간이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그걸 슬픔이라고도, 상실감이라고도 부르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스스로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독하다던 그 사람들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슬퍼야 하는 상황에서, 슬퍼하는 법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일은 할아버지의 발인일이다. 할아버지는 죽는다는 이야기만 나와도 저를 설득하려 드는 손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미리 자신이 화장하길 원한다는 사실을 귀띔해뒀다. 나는 그 사실을 일러주는 이지훈 아버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보호막이 사라진 탓에, 그렇게 말하는 내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다. 일할 때와 별다를 것 없는 말투였다. 할아버지를 막 잃은 손자 같은 목소리가 아니어서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되는 걸까 스스로도 의아했기에.
“…….”
장례식장 입구를 목전에 둔 채로 멈춰서, 눈두덩이 위를 쓸 듯이 만졌다. 차가운 손이 닿았지만 흠칫하지조차 않는 눈가는 여전히 메말라 있었다. 내일도 난 이러고 있겠지. 갖가지 방식으로 슬퍼하는 사람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할아버지가 떠나는 모습에 시선을 둔 채로 건조한 눈가 한 번 떨지 않을 것이다.
갈수록 굵어지는 빗줄기에 물웅덩이가 점점 커졌다. 넓어진 물 위에 새로운 빛이 끼어들고서야 나는 아래를 보던 시선을 들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택시 한 대가 보였다. 타이어가 웅덩이를 스치며 물을 튀기는 소리가 났다.
택시는 장례식장 입구에서 멈췄다. 차가 선 것과 동시에 튕겨 나오듯이 내린 사람을 멍하니 응시했다. 눈가를 더듬던 손이 허공에 애매하게 멈췄다.
귀를 먹먹하게 채우는 빗소리 속에서, 나는 눈을 깜빡였다. 숨을 뱉듯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이지훈?”
희미한 부름이었는데도, 뛰어가던 등이 멈칫했다. 계단을 미처 밟기도 전에 뒤돈 검은 인영의 시선이 몇 걸음 뒤에 있는 내게 곧장 꽂혔다.
“…….”
“…….”
두리번대지조차 않고 나를 금방 찾아낸 이지훈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부터 짓는다. 이지훈의 머리며 옷이 젖어 있었다. 늘 한 톨의 어긋남조차 없었던 모든 것들이 죄다 엉망이었다. 나는 이지훈의 얼굴에서, 옷을 갈아입을 틈조차 찾지 못하고 달려온 놈의 차림에서 이지훈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을 본다. 이지훈이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걸 내팽개치고 달려왔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그려 보면서.
생각해보면 늘 그래왔다. 내가 울 것 같은 상황엔 항상 네가 내 옆에 있었지. 나는 슬플 때 울어도 된다는 걸 널 통해 알았지. 너로 인해 슬픔을 배웠지. 너로 인해. 네가 있어서.
그러니까, 나는…
“…지훈아.”
울기 위해서 네가 필요했구나. 네가 없어서 여태껏 울지 못한 거야.
믿지 못해서. 할아버지가 없는 내 세상에, 너마저 없다는 사실을 차마 믿고 싶지가 않아서. 할아버지가 없는 내 세상엔 이제 너뿐인데. 네가 아니면 나는 더는 살 이유조차 없는데.
힘을 잃은 손에서 떨어진 우산이 볼품없이 아래를 나뒹군다. 나는 칠흑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이지훈을 향해 발을 끌 듯이 걸었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볼을 타고 흐르는 게 빗방울만은 아님을 깨달으면서.
“지훈아,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이지훈의 이름 대신 울음이 터져 나왔다. 겨우 다섯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줄곧 뛰어왔던 사람처럼 심장이 부풀고 온몸이 떨렸다. 숨을 헐떡이며 손을 뻗었다. 어떻게든 숨을 쉬려 할 때마다 꺽꺽대는 벅찬 소리만 흘러나갔다.
빗속에서 이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표정의 놈이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았다. 어지러움에 휘청이기 전에 놈에게 잡혔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거쳐야 했던 바깥 냄새가 가득 묻은 젖은 품에 안기고서야 내가 숨을 쉬고 있다고 믿었던 게 사실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내가 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놈 앞에서뿐이라는 것도.
“알아. 늦게 와서… 미안해. 미안해, 지선욱.”
조금이라도 더 나를 껴안으려고 드는 놈의 어깨에 머리를 박은 순간에야, 텅 비어 있다고 생각했던 속을 게워내듯 울 수 있었다. 해묵은 울음이 터졌다. 언제부터 쌓아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이, 더는 숨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쏟아졌다.
사실은 줄곧 말하고 싶었다.
네 생각이 났다고. 네가 없는 내 집에서, 할아버지의 병실에서, 장례식장에서. 네가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고. 그리고 그 말로 인해 내가 여태까지 살 수 있었던 것임을 깨달았다고. 근데도 네 이름조차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고. 널 그렇게 밀어내놓고 너를 그리워할 수는, 그딴 짓을 해놓고 네가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바랄 수는 없는 거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래야만 하니까. 그렇게 작정하고 상처를 줬을 때는, 영영 잃을 각오 정도는 해야지. 그게 싫으면 애초에 상처를 줘서는 안 됐던 거니까.
“내가… 내가, 지훈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나는 내가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지훈을 좋아하면서 내가 한 거라고는 언젠가 그 세상에서 밀려나는 날을 대비하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이지훈의 세상에서 나와도, 내 세상엔 여전히 이지훈이 있었다. 애초에 걔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었다는 걸 깨닫기만 했다.
근데 네가 와줬잖아. 여기 와줬잖아. 내가 밀어냈는데도, 그런 말까지 하면서 널 상처 줬는데도 여기까지 와서 날 안아주고 있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지훈아. 너는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어.
그럼 나는 너를 못 놔. 네가 사라진 인생이 어떤지를 알게 됐으니까, 앞으로는 정말 엄두조차 못 낼 거야.
“미안해. 미안해, 이지훈. 내가… 내가 잘못했어. 가지 마.”
애원하며 놈의 팔을, 어깨를, 목을, 내가 잡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붙잡았다. 애원하려고, 가지 말라고 부탁하려고. 얼굴로 곧장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인지 이지훈의 얼굴이 흐리게 보였다. 초점을 잡으려 눈에 힘을 줄수록, 이지훈이 여러 개로 겹쳐 보이기만 했다. 귓가를 어지럽히던 빗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스친 바람에 몸이 크게 휘청댔다.
“지선욱!”
허리를 붙드는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익숙한 어둠이 기다렸다는 것처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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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에 오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병원 가까이에서 볼일이 있었다며 우릴 데리러 온 이지훈 아버지가 눈치를 볼 정도였다. 할아버지와 나는 원래도 말이 많지 않은 편이었지만, 타자마자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부터 한 내가 한 번도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부터 아저씨는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하신 듯했다.
마을 어귀에서 차가 멈추자마자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오는 내내 밖을 쳐다본 이유는 탈출할 타이밍을 찾기 위해서였다. 때를 놓치지 않은 나는, 내리는 순간마저도 할아버지를 외면하며 허공으로 던지듯 말했다.
“늦게 들어갈 거니까 기다리지 마세요.”
“…어어, 그래. 선욱아. 바쁘제? 아저씨가 이장님이랑 같이 있을 테니까는 걱정 말고 바람도 쐬고 그러다가 천천히 온나.”
대답은 아저씨한테서 대신 돌아왔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것처럼 쩔쩔매는 그의 옆에서 할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겠지. 그쯤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골목 아래로 내려가는 내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으리라는 사실조차. 난 그걸 알면서도 바다로 이어지는 긴 골목길을 성큼성큼 내려가는 내내 한 번도 뒤돌지 않았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병원에서 권하는 수술을 제멋대로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할아버지 때문에, 의사와 제대로 이야기조차 해보지 않았으면서 상담을 받다 말고 진료실을 뛰쳐나간 할아버지 때문에, 그러고는 뒤늦게 로비에서 자신을 발견한 손자에게도 아무런 설명 없이 주차장으로 앞장서 나가기부터 하는 할아버지 때문에.
근데 이런 분노를 할아버지한테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는 나보다 어른에게는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늘 그들이 주는 감정을 그대로 흡수하며 살았다. 이건 그 어떤 어른도 내게 가르쳐준 적 없는 감정이었다. 알아서 해결해야만 했다.
바다를 한참 노려보던 내가 찾은 방법은 그냥 그 분노를 꿀꺽 삼키는 거였다. 덩그러니 하나만 놓인 벤치에 앉아 한 시간쯤 시간을 죽이다가 아까 내려온 골목길을 다시 올라갔다.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목적지를 고했다.
“태안대학병원이요.”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돌아온 나를 본 의사는 놀라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뛰쳐나간 탓에 끝내지 못했던 설명을 잇는 그를 보는 대신에, 할아버지의 뇌 사진만 뚫어질 듯 응시했다.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외면할 생각이라면 나라도 대신 알아야 했다. 꼼짝하지 않고 듣던 나는 그가 말을 멈춘 순간에야 고개를 돌렸다. 안경 너머의 눈이 나를 안쓰럽게 응시하고 있었다.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이 넘어왔다.
“아까 할아버님이 그렇게 뛰쳐나가셔서 당황스러우셨죠.”
“…….”
“손자분은 놀라셨겠지만, 실제로 어르신들께서 많이 보이시는 반응입니다. 또 아프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으시기도 할 거고, 특히나 할아버님 같은 경우는 병원 생활 자체를 많이 답답해하신 분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부정해도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
“거기다 수술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데, 그걸 안 한다는 건….”
“사실….”
의사가 말을 끌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수술이란 것 자체가 100% 성공률을 담보로 할 수 없는 의료적 행위입니다. 설령 수술 성공 확률이 97%라 해도, 환자분이 언제든 극소수의 3%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고요.”
“…….”
“그렇기에 신중해야 하는 거죠. 환자분이 위험성을 알면서도 수술을 받기로 결심하시는 게 중요한 거고요. 저희도 의학적 소견을 말씀드리며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을 권할 뿐, 환자분에게 특정 선택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도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는 말장난처럼 들렸다. 3%가 될 확률보다는 저 혹을 방치하다가 맞게 될 필연적인 결말이 더 끔찍하게 느껴졌으니까. 내 고집스러운 침묵에서 그 사실을 눈치챈 것처럼 입을 다문 의사는 내가 일어설 때가 되어서야 무언가를 내밀었다.
“최근에 보호자 분들을 위해서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가벼운 심리 상담이니까, 부담 없이 가보세요.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파란색으로 꾸며진 3단 리플릿 상단에는 크게 적혀 있었다.
-보호자 멘탈 케어 프로그램
: 1층 로비 옆 간이상담실에서 1:1 상담 지원
그는 아까 할아버지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내 표정과 다시 돌아온 내 행동에서 꽤 많은 것을 읽어낸 모양이었다. 입술을 달싹대던 나는 더 말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성의를 무시하지 못하고 가지고 나온 리플릿은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처박았다.
병원에 올 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꽤 괜찮았는데, 내가 그 진료실에 처박혀 할아버지의 혹 사진을 외우는 동안 도로가 흠뻑 젖어 있었다. 지나갈 소나기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그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직감인지, 헛된 믿음인지 모를 것을 견디던 나는 비가 그치길 기다리기보다는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평일 오후의 버스정류장 옆,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공중전화부스는 존재에만 의의를 두는 곳 같았다. 나는 그 좁은 공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정거장으로 걸어오는 그 짧은 새에 머리며 옷이 젖었다. 대충 털어내고는, 주머니 속에 있는 지갑과 핸드폰을 꺼내 전화기 옆에 올려뒀다. 버스는 올 기미가 없었다. 택시라도 부를 요량으로 핸드폰을 들고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콜택시 번호가 아닌 내가 잘 아는 번호를 뚫어질 듯 응시했다.
지금 한국이 오후 2시니까 13시간의 시차가 나는 뉴욕은 새벽 1시겠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1 오후 2:03 뭐하냐
이지훈에게도 종종 오곤 하는 메시지를 똑같이 따라서 했다. 만약 자고 있지 않다면 답이 올 것이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통화할 수도 있는 거고.
이지훈과의 마지막 통화는 2주 전이었다. 지난 3년간 우리 학교의 학사 일정을 대충이나마 파악한 이지훈은 시험 기간에는 굳이 전화하지 않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서로를 완전히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빈도로는 연락했다. 문자든 통화든 늘 ‘뭐 하냐’라는 심드렁한 물음으로 시작해서 ‘어. 끊어.’라는 시시한 인사로 끝났다.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택시를 불러야 할까 생각하면서도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공중전화기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이지훈]
진동하는 핸드폰은 메시지가 아닌 전화임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놀랄 틈조차 없이 급히 핸드폰부터 집어 들어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먼저 전화를 걸었으면서 조용하던 이지훈은 내가 입을 연 순간에야 답했다.
-…밖이냐?
빗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한두 번이 아닌데도, 놈이 통화 너머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눈치챌 때마다 신기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공중전화부스 안에 혼자라, 지나가는 사람의 목소리라거나 생활 소음 등 유추할 만한 게 별로 없었을 텐데도.
“그게 들려?”
-빗소리?
“어.”
-뭐, 조금.
“아….”
-어딘데. 집?
학기 중일 때는 딱히 어디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는데, 얼마 전 대학에서 치르는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태안으로 아예 내려온 나를 아는 놈은 자연스럽게도 묻는다. 별것도 아닌 질문인데, 오늘 겪은 일이 있던지라 쉽게 답하지 못했다. 걸어 나온 뒤로 기를 쓰고 무시하던 보람이 없게 하얀 건물부터 확인하게 된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병원.”
-병원엔 왜.
“할아버지 정기검진이라서.”
-벌써? 잠깐만, 나 달력 좀 봐야겠다.
“…달력은 왜?”
“왜긴 왜야, 새꺄. 안 적어놓으면 까먹으니까. 저번 검진일 적어놨던 것 같은데. 오늘이 12월 10일이니까… 아, 맞네. 저번에 6월에 갔었잖아. 너 시험 끝난 다음 날.”
달력을 넘기는 모양인지, 종이가 휙휙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건너편의 이지훈이 6월로 돌아간 달력을 다시 12월로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운동화 끝으로 바닥을 툭툭 찼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지훈이 그곳에서는 어떤 달력을 쓰고 있을지. 우리가 고등학생 때 썼던 가로로 긴 형태의 달력일지,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들 쓰는 평범한 탁상달력일지. 그걸 올려둔 곳은 어디일지 같은 것들.
이지훈이 미국으로 떠난 지도 어느덧 2년이었다. 얼굴을 보지 못한 시간도 그쯤 됐다. 우리는 안 이후로 가장 오래 떨어져 있었다. 직접 보지 못해서, 어떤 달력을 쓰는지는커녕 이지훈이 어떻게 사는지조차 자세히는 몰랐다. 이지훈은 제 소식을 전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놈이지만, 정작 궁금한 것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물을 수가 없다. 그곳에서 힘든 일이 있진 않은지. 왜 어느 시간대에 통화하든 목소리가 늘 피곤에 잠겼는지 같은 것들을. 굳이 먼저 털어놓지 않는 놈의 의도를 알 것 같아서, 오히려 망설여졌다.
-그래서.
“…뭐.”
-영감 괜찮대?
나와 달리 이지훈은 늘 너무도 쉽게 묻는다. 할아버지는 괜찮은지, 내게 혹시 힘든 일은 없는지 같은 것들을. 먼저 털어놓지 않는 이유가 있을 테니, 숨기지 못하게 본인이 직접 묻기라도 해야겠다는 것처럼.
“…그냥. 뭐. 똑같지.”
매번 이런 시원찮은 대답을 듣고도 묻고 또 묻는 놈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놈을 알면서도 전화하고 싶었던 나는 아마도 그런 관심이 내심 퍽 고마운 게 아닐까 하고도.
“안 자고 뭐 하냐. 밤인데.”
고맙다는 말은 어려운 게 아닌데, 이지훈에게 품은 감정이 들어간 순간엔 꼭 눈속임같이 들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말을 뱉는 것 대신 화두를 돌렸다. 병원에 다녀온 내 기분을 알 이지훈은 순순히 넘어가줬다.
-형 주경야독 중이시다.
점잔 빼는 것 같은 느릿느릿한 말투를 흉내 내던 이지훈이 뜬금없는 타이밍에 웃었다.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멋쩍은 듯 변명을 붙이기도 했다.
-내가 말하고도 웃긴다.
“뭐가.”
-나 이번 주에 이 시간에 책상에 앉아 있는 거 처음이거든. 그래 놓고 존나 공부하는 척하는 게 웃기잖아.
“뭐가 웃겨. 아르바이트하느라 어쩔 수 없는 건데.”
-그래도.
“…….”
-가끔은 공부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아르바이트하려고 공부를 하는 건지 헷갈려.
자조 어린 웃음은 귓가에 닿기가 무섭게 끝났다. 내가 고맙다는 말을 잘 못 하는 것처럼, 이지훈은 힘들다는 말을 못 한다. 그 말을 꺼낸 순간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오늘도 놈은 빠르게 주제를 바꿨다.
-너 입대 날짜 나왔다며.
“…어떻게 알았냐?”
-너보다 너한테 관심 많은 새끼랑 어제 통화했거든.
“아….”
-2월이라며.
“어.”
-마음의 준비는 됐고?
“남들 다 가는 군대 가지고 무슨.”
-하긴. 그 울보 새끼도 잘 다녀왔는데, 뭐.
강영수 이야기만 두 번째인데, 두 번 다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 웃겼다. 입술 새로 나온 바람 같은 소리를 용케 들은 이지훈이 같이 웃는다. 안전한 주제를 찾은 우리는 편하게 웃었다. 웃음이 잦아든 순간에야, 이지훈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훈련소 같이 못 가줘서 미안.
“…….”
-날짜 맞춰서 들어갈까 하고 표까지 봐놨는데, 하필 그날이 비행 시험이더라.
예상치 못한 사과를 들은 순간에는 멈칫했다.
비로소 실감이 났다. 우리 인생의 타임라인은 앞으로도 이렇게 어긋날 거라는 걸. 이지훈을 못 본 건 2년이 됐고, 앞으로 몇 년간은 더 그럴 터였다. 이지훈이 자격증을 따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나는 군대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휴가 때 본다고 쳐도 족히 1년은 넘게 걸릴 거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을 부정하던 고등학생 때는 심심할 때마다 이런 상황을 상상하며 마음을 달랬다. 대학에 가고 나면 지금처럼 이지훈을 자주 보지 못할 테니, 그때는 놈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쉬울 거라고.
2년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는데도, 이 말을 하고 있을 이지훈의 표정을 눈에 보이듯 그리는 나는 아무래도 가망이 없는 것 같다. 이건 얼굴을 보고 말고, 그런 문제와는 별개다.
내가 이지훈에게 걸 수 있는 확률이 고작 3%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오늘 할아버지처럼 굴지 않는 게 목표인 것처럼, 충격적인 진단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이상한 용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도 아니고 단숨에 솟아올랐다.
“내가 너 보러 갈까?”
충동적인 제안이었다. 무수히 생각했어도,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던 말이기도 했다.
-…뭐?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였다면 믿기지 않는 것처럼 당황한 목소리로 되묻는 이지훈의 목소리에 겁부터 먹었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단단한 결심이 섰다.
뉴욕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가서 일단 이지훈을 보면 모든 게 선명해질 것 같았다.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처럼.
나는 줄곧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길 내심 바랐던 모양이다. 그 계획이 실행된 순간, 우선 이지훈을 볼 수는 있을 테니까.
“내가 뉴욕으로 갈게.”
-…….
“너만 괜찮으면.”
-나는 당연히 괜찮지. 괜찮은데… 야, 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나 놀리는 거 아니고?
이지훈은 답지 않게 여러 번 물었다. 평소에 당황하기보다는 남을 당황시키는 일이 더 많은 놈이라 그런지 더 티가 났다. 강영수야 이지훈 있을 때 뉴욕에 놀러 가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어도, 나는 장난으로나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지훈이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을 물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생각은 했어도 입 밖으로 꺼내 본 건 처음이었는데 마치 정해져 있던 계획이 있고, 이제야 그걸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었다.
“비행기 표 끊고 연락할게. 자세한 건 그때 이야기하자.”
어어…. 갑작스러운 내 제안이 당황스럽긴 한지, 이지훈은 끝까지 얼떨떨해 보였다. 나는 전화를 끊고는 크게 심호흡했다.
그래. 일단 뉴욕에 가자. 이지훈을 보고, 아니. 그냥 이지훈을 보기만 해도 될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생각하자.
저 멀리 택시가 오는 게 보였다. 전화 부스를 나가다 말고 옆 보도블럭에 떨어져 있는 리플릿을 발견했다. 아까 뛰면서 흘린 모양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그걸 주워 들었다. 택시에 타자마자 리플릿부터 들여다보았다. 엄지와 검지를 모아서, 다림질하듯 비에 맞아 쭈글쭈글해진 그 종이를 펴면서.
* * *
뉴욕으로 떠나는 날짜가 일주일 뒤로 정해졌다. 최대한 빠른 편을 구한 건 맞지만, 그런 것치고도 급하게 정해진 날짜였다. 애초에 남은 선택권이 없었다. 연말이었고, 항공사는 가는 데만 총 14시간이 걸리는 비행을 일주일 전에 결정하는 사람을 위해 표를 남겨두지 않았다. 화면을 수백 번 새로고침 하다가 발견한 취소 표는 기적 같았다. 이지훈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했다. 수학 과외를 해주던 부잣집 꼬맹이도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나는 주고, 아르바이트 스케줄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여행을 간다는 말을 듣고서도 묵묵부답이었다. 우리는 검진 날 이후 필요한 대화 외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수술에 대해서조차. 둘 다 의견을 굽힐 생각이 없어서였다. 평행선 같은 서로의 고집에 숨이 막힐 때면, 잠시라도 떠나 있을 수 있는 이번 여행이 오히려 시기적절해 보였다. 뭐가 됐든 할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내 여행 소식을 듣고 바빠진 건 도리어 이지훈네 아버지였다. 떠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매일같이 우리 집에 들르는 그의 손에는 늘 짐이 한가득 들려 있었다. 햇반, 김을 비롯해 유통기한이 긴 즉석조리식품이 주였다. 이지훈이 지내는 아파트에 냉장고조차 없다는 걸 들은 그가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그의 마음을 알아 일부러 큰 캐리어를 사기까지 했는데도, 벌써 반이 찼다. 그 사실을 나보다 먼저 눈치챈 아저씨는 오늘따라 유독 겸연쩍어 보였다.
“선욱아. 이것도 좀 넣어가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금마가 자주는 아니어도 한 번 아프면 희한하게 아파가… 진짜 조금씩만 챙겼는데. 공간 없으면 이거라도 어찌 안 되까? 목 아플 때 먹는 기거든? 도라지로 만든 건데, 효과가 좋아가 한 포씩만 먹어도 된다. 저번에 통화하는데 금마 목소리가 영 아이든 게 자꾸 신경이 쓰여가….”
오늘 아저씨가 가져온 건 상비약 꾸러미였다. 약상자를 다 뺀 채로 약만 챙겨 오신 것 같은데도, 봉지가 터질 것 같았다. 봉지 사이로 삐죽 나온 약 껍질 옆에 어떤 상황에서 먹어야 하는 약인지가 네임펜으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글씨까지는 읽지 못할 보안검색대 엑스레이에서는 그냥 용도를 알 수 없는 캡슐들이 한가득 있는 걸로 보일 테다. 어쩌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받아들었다. 타협하듯 하나만 넣어도 된다고 말씀하실 때는 언제고, 내가 상비약 꾸러미를 어떻게든 짐들 사이로 구겨 넣는 걸 확인하고서야 아저씨는 한시름 놓은 표정이 됐다. 그는 그러고도 캐리어를 정리하는 내 옆에서 자리를 뜨지 못했다.
“햇반만 아이믄 조금 더 넣을 수 있었을 긴데….”
캐리어 안을 기웃대며 미련이 남은 것처럼 중얼대는 아저씨를 바라봤다. 우리가 이지훈을 걱정하는 마음은 같다. 말재주가 없어 그걸 잘 표현하질 못할 뿐이지.
언젠가 조별 과제로 세계 각국의 물가를 조사하던 강영수가 내게 전화해 이지훈 걱정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뉴욕 물가 미쳤던데? 월세가 특히 장난이 아니라서 텐트 치고 자는 직장인들도 많대. 애초에 유학 생활이 다 돈인데, 이지훈 그 새끼 그거 괜한 자존심 부린다고 아저씨한테 말도 안 하고 버티는 거 아닌지 몰라. 엄마한테 들어보니까 아저씨도 슬슬 신경 쓰이시는 눈치던데.’
‘…그렇게 말씀하셨대?’
‘엉. 야구도 그렇고, 공사도 그렇고 자꾸 그만두니까 그게 습관이라도 될까 봐 겁주듯 한 말인데 이렇게까지 도와달란 말도 안 할 줄은 모르셨나 봐. 아저씨가 한 수 접고 도와줄까 돌려 물어봤는데도 괜찮다고 했대. 할 만하다고. 하여간 혼내는 것도 상대 봐가면서 해야 해. 상대는 독한 놈이라고.’
나는 망설이면서도 그를 불렀다. 기다렸다는 듯 돌아보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제가… 가서 잘 지내나 볼게요. 지훈이.”
“…….”
“주신 것도 잘 전달해주고 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는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빙그레 웃었다. 오늘도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을 보러 갔다가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을 그의 그을린 얼굴에서는 이지훈이 물려받았을 게 분명한 단단한 애정이 흘러내렸다.
“선욱이 니 아니었으면 우리는 진짜 우얄 뻔했노. 그놈의 새끼, 내가 함 갈까 할 때는 아빠가 와서 할 게 뭐 있냐고 콧방귀나 뀌더니 그래도 니 간다니까는 좋아하는 눈치데.”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아저씨와 이지훈은 닮은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볼수록 이지훈은 아저씨를 많이 닮았다. 특히 이렇게 가까이에서도 사람 눈을 보고 애정을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인 게.
그때마다 느끼는 묘한 죄책감과 그리움을 곱씹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선욱아.”
시선을 끈 아저씨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 순간에는 당황해 딱딱하게 굳고 말았지만. 아저씨는 내가 그렇게 반응할 것을 알고 있었는지, 그 봉투를 내 품이 아닌 캐리어 안으로 곰살맞게 끼워 넣었다. 아까 내가 약 봉투를 어떻게든 햇반과 즉석 카레 사이로 끼워 넣었던 것처럼.
“용돈 쪼매 넣었다. 진짜 쪼끔이니까네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아, 아니에요. 저 돈 있어요. 지훈이도 이렇게 대신 주시려는 거 알면 안 좋아할 거고요.”
“금마가 먼 상관이고. 내가 선욱이 니 용돈 주고 싶어서 주는 긴데.”
“…….”
“가서 돈 걱정하지 말고 맛난 거 많이 사 무라, 알았제. 그리고….”
내가 봉투를 꺼내지 못하도록 기어이 캐리어 반쪽을 닫아버린 아저씨가 말을 멈추고 잠깐 내 눈을 들여다봤다.
“네가 가 있는 동안 아저씨가 이장님 잘 설득해볼 테니까는. 가서도 할아버지 걱정한다고 마음 썩히지 말고.”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건너오는 말에는 문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정하게 말하는 아저씨의 눈조차 보지 못하고, 고개를 위아래로 주억이는 게 고작이었다. 아저씨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는 일어섰다. 내일 아침에 시간 맞춰 데리러 올 테니 그때 보자는 말을 남기고서는. 봉투를 건넨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던 그를 기억하고 있는 나는 이번에도 그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점검 차 혹시라도 빠뜨린 게 있나 방을 둘러보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문간에 선 할아버지가 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잠깐 나와 봐라.”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나는 보고 있던 서랍을 닫고는 거실로 나갔다. 할아버지는 거실 가운데에 차려진 조촐한 술상 앞에 이미 앉아 있었다. 2인용 술상 위로 간단한 안주와 청주 한 병이 보였다. 말투를 점검할 겨를도 없이 울분에 찬 말이 튀어나갔다.
“병원에서 분명 술은 먹지 말라고….”
“내가 먹을 거 아니다.”
“…….”
“앉아라.”
못 박힌 듯 서 있는 나를 본 할아버지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앉으래도. 나는 더 거역하지 못하고 주저앉듯이 다리를 굽혔다. 할아버지와 이 상에서 마주 앉은 건 처음이었다. 수술 전 종종 반주를 즐길 때만 해도, 할아버지는 나한테 같이 술을 먹자고 권한 적이 없었으니까.
“…….”
“…….”
먹으라고 차린 상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말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먼저 움직인 건 할아버지였다. 청주 뚜껑을 딴 그가 내 앞에 놓인 잔 위로 술을 기울였다. 나만을 위해 차린 술상이라는 걸 증명하듯, 잔은 하나뿐이었다. 우습게도 그 사실에 화가 누그러들었다. 할아버지가 그래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받는 것 같아서.
할아버지가 채워준 잔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결국 들었다. 알코올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생생할 정도로 도수가 높은 술이었다. 취기가 금세 올랐다. 다행히 어지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두 잔, 세 잔… 나는 할아버지가 채워주는 술을 연달아 비웠다. 내가 채워진 잔을 바로 들어 올리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할아버지는 잔을 채우는 일을 멈췄다. 무겁던 침묵을 깬 건 할아버지였다.
“…오래 아팠었다, 네 할머니.”
말을 시작하는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이 작아 보였다.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노인임을, 세상살이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사람이라는 걸 실감할 정도로.
할아버지가 할머니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마을회관에서, 때로는 강영수의 어머니 입에서, 아주 가끔은 이지훈네 아버지 입에서 지나가듯 그녀의 이야기가 등장하곤 했어도 할아버지만은 그러지 않았으니까.
스스로 정해둔 금기를 깨는 할아버지는 괴로워 보였다. 이마의 주름이 깊어지고, 마른 볼이 홀쭉 패었다.
“간병 지겹다고 뛰쳐나간 네 아빠 한 번 탓하지 않고, 짐이 되기 싫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매일… 매일 죽던 날까지.”
“…….”
“도망친 네 애비나, 그게 괜찮다는 사람이나… 평생 이해 못 하고 살았다.”
할아버지는 어려운 말을 하려는 게 분명했다. 그동안 굳이 꺼내놓지 않던 기억을 내게 이렇게 먼저 내보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을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이제야… 알 것 같다. 너를 보니.”
할아버지는 제발 틀리길 바랐던 내 예감을 적중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듣기 두려워하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시작이 할머니의 이야기일 줄 예상하지 못했을 뿐, 할아버지가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 정도야 눈치로 알고 있었다.
시간의 유한성 안에서 우리의 대화는 돌고 돈다.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날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내 병 수발이나 들라고 너 데리고 온 거 아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
“이게 수발들어야 할 정도로 평생 갈 병도 아니고요. 겨우 혹 하나예요, 할아버지.”
“…….”
“마지막이에요. 이번에 수술만 잘 마치면, 다시는 저도 강요 안 할게요. 이번 한 번만.”
“…마지막이 아니면.”
“…….”
“그때마다 이렇게 옆에서 쩔쩔맬 거냐. 네 할 일도 다 내팽개치고, 이 촌구석에 틀어박혀서.”
할아버지는 대학교 1학년, 학기를 끝마치지 못하고 돌아온 나를 보던 때의 낭패 어린 표정을 고스란히 묵히고 있었다. 그 이후 매 학기 방학과 동시에 이곳에 틀어박혀 잠시도 집을 떠나지 않던 나를 볼 때마다 그는 이런 날을 기다린 것이다. 그걸 참아주는 건, 이런 순간이 오기 전까지만이었다는 걸 강조하려고.
“어차피 살 만큼 살았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명줄 조금 더 늘리겠다고 주변 사람들 살 다 깎아 먹을 바에는….”
“할아버지!”
참은 보람도 없이 끝내는 소리치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죽겠다는 말이 송곳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소리까지 질러 할아버지가 더 말하지 못하게 입을 막아놓고서는, 내가 한 짓을 믿지 못하는 사람처럼 입술을 뒤늦게 말아 물었다. 손바닥에 무딘 손톱이 박히는 느낌이 이토록 생생한데, 이 순간에도 할아버지 머리 안에는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을 시한폭탄 같은 혹이 있고, 나는 그걸 그대로 두겠다는 할아버지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그와 싸워 이길 무기가 없었다. 무언가를 원한다고 말하는 방법이라고는 우는 것밖에 없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럼… 저는요.”
눈앞이 차츰차츰 흐려졌다. 술 때문에 올라온 열기인지, 그게 아니면 꾹꾹 눌러 참고 있던 게 터지기라도 한 건지 내 안에서 묵은 말들이 줄줄 새어 나왔다.
“할아버지 가시면 저한테는 아무도 없어요.”
“…….”
“할아버지가 아픈 게 제 살을 깎아 먹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게 절 죽이는 일이라고요. 이해하세요?”
할아버지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그 사실에서 희망이라도 읽은 것처럼, 무릎을 질질 끌었다. 마음이 약해질까 봐 날 보지 않으려 하는 할아버지를 고집스럽게 따라가며 간절하게 애원했다.
“제가 여기에 처박혀 있는 게 싫으신 거면, 가끔은 나갈게요. 뭐든 다 할게요. 할아버지가 걱정 안 해도 되시게끔 제 일도 잘할게요. 그러니까….”
날 뿌리칠 힘조차 없는 팔을 잡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마룻바닥 위로 눈물이 점점이 떨어졌다. 나는 달리는 호흡마저 그러모아서 말로 뱉기 위해 노력했다. 고개를 저으면서, 할아버지가 한 말을 어떻게든 부정하려 힘쓰면서.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저는… 아니에요. 한 번도 할아버지가 짐이란 생각해본 적 없고, 제가 늘 짐일까 봐 무서웠어요.”
“…….”
“그렇게 당장 가실 것처럼 말씀하지 마세요. 제발….”
마른 노인의 몸은 살점이 없어 딱딱할 뿐이다. 나는 시드는 고목의 밑동 같은 어깨에 이마를 박을 용기조차 없어, 할아버지의 팔을 고쳐 쥐면서 끊임없이 중얼댔다.
준비가 안 됐어요. 전.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가지 마세요…
보호자 상담센터의 선생님은 내가 보호자인 걸 감안하고서도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자제력과 표현력이라고 적힌 항목 위로 번갈아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힘들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 않냐며, 그 사람에게 아주 작은 것부터 말해 보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하던 그는 내가 그것조차 하지 않을 사람임을 눈치챈 것처럼 끝내는 혼잣말이라도 하라고 권했다. 속에 있는 것을 모조리 털어놓고, 시간이 흐른 후에 그걸 한번 들어보라고. 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감정을 견뎌내고 있는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고 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그 말을 떠올린 데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술을 먹었고, 이지훈을 보러 간다고 방을 이미 한바탕 들쑤신 이후였고, 그러다가 내 미련의 흔적들을 발견하기까지 한 참이었다.
주인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구매자에게도 쓰인 적 없던 하얀색 MP3는 배터리조차 닳지 않았다. 옷장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MP3의 동그란 휠을 의미 없이 돌려댔다. 책상 옆에 세워진 캐리어 안에는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양은 같지만 사용감 있는 MP3가 놓여 있었다. 이지훈에게 가져다주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이기도 했다.
“…….”
이지훈이 요청한 MP3는 저거다, 내가 들고 있는 이 MP3가 아니라.
주지도 못하고, 쓸 생각도 없는 MP3를 여태 갖고 있었다. 그걸 샀는지조차 잊고 있었다고 하기엔, 매년 이지훈의 생일마다 이 선물을 떠올리기까지 하면서.
할아버지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쏟고 청주 한 병을 비운 지 30분도 지나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숨을 크게 뱉을 때마다 내게서 나는 술 냄새가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불어나는 취기를 느끼며 MP3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의미 없이 휠을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느새 ‘녹음’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화면에 접속해 있었다.
마치 힘든지조차 몰랐는데, 어느새 이지훈부터 떠올리고 있던 때처럼. 그러니 상담 선생님의 충고에 따르면 이지훈은 내가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터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럴 수가 없다.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이지훈은 동시에 나를 가장 많이 참게 하는 사람이기도 해서.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과,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사람이 같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선생님조차 답을 줄 수가 없을 테다.
“…큼.”
녹음이 시작되고서야 목을 가다듬는 건, 이게 저지르는 것에 가까운 행위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빨간색의 동그라미가 깜빡이는 걸 보는데 왈칵 눈물이 나려 했다. 충동과는 먼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지훈을 만나고부터는 빨간불을 무시하고 뛰어들기부터 하는 일이 생긴다. 경고하듯 사방에서 나타나는 깜빡이들마저 무시한 채 달려 봤자 어차피 목적지에 닿지 못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이지훈.”
이름 하나의 무게가 1분 45초인 사람이 내 인생에 또 나타날까. 답을 알고 있는 나는 우는 것 대신 MP3를 세게 쥐었다. 술 냄새가 조금이라도 빠져나가게 하려고 열어둔 창문 사이로, 희끄무레한 달빛이 보였다. 흐린 달에 눈을 둔 채로, 나는 전해지지 않을 고백을 시작했다.
* * *
“왜 이렇게 얇게 입고 왔어? 여기 개추운데.”
2년 만에 만난 이지훈이 날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입국장에서 나를 발견한 순간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던 놈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차 심각해지더니, 마침내 앞에 선 순간에는 내 어깨를 잡아 앞뒤로 휙휙 돌려대며 혀를 찼다. 얼마나 심각한 표정을 짓는지 나야말로 살이 왜 이렇게 빠졌냐는 말을 건넬 타이밍을 놓쳤다.
“캐리어에 목도리 없냐? 장갑은? 그것만 꺼내고 가자. 어차피 시간 많으니까. 너 안 하면 내가 한다?”
공항 한복판에서 내 캐리어까지 풀어 헤칠 기세인 놈을 말리는 것만으로도 기가 다 빨렸다. 연말을 앞둔 공항은 고작 붐빈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신기하게 쳐다보든 말든, 꼿꼿하게 팔짱을 끼고 서서 나한테 잔소리하는 이지훈이 오히려 대단했다.
이지훈은 캐리어 안에도 목도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말 안 듣는 아이를 대하는 부모처럼 구는 짓을 멈췄다. 팔짱을 끼고 나를 쏘아보던 놈은 내 캐리어를 가져가 대신 끄는 순간마저도 투덜댔다.
“선욱아. 그렇게 멋 부리다가는 얼어 뒤지는 수가 있어.”
이지훈이 충고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던진 이유는 공항 밖으로 나간 순간 알게 됐다. 코끝이 얼얼할 정도로 추웠고, 세찬 눈발이 휘날려 옷이며 얼굴을 더럽혔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부터 창문을 통해 곳곳에 쌓인 눈을 보긴 했지만, 그건 사람의 손이 닿아 그나마 정돈된 모습이었다. 사방이 눈 천지였다. 어제는 폭설 경보까지 내렸었다고 전하는 이지훈은 혹시 공항이 폐쇄되기라도 할까 봐 몇 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얼어붙은 입을 겨우 움직여 ‘그럼 밥은?’ 묻자마자 날 돌아본 놈이 피식대고 웃었다.
“그 질문 존나 오랜만에 들어.”
“…밥 먹었냐는 거?”
“어. 여기 애들은 정 없게 그런 걸 안 물어보더라. 내가 먼저 물어보면 지한테 관심 있는 줄 알고.”
말을 이어 나가다 말고 이지훈이 허공으로 손을 쳐들었다. 이지훈이 양손을 번쩍 들어 흔든 보람도 없게, 이쪽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던 택시 한 대가 돌연 멈춰서 우리보다 앞에 있던 승객 둘을 태웠다. 우리같이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 택시에서 막 내린 사람, 그 와중에도 중간중간 멈춰서 껴안고 환영인사인지 작별인사인지 모를 것들을 나누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어지러이 섞인 터미널 밖은 혼란스러웠다.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 있는 긴 줄 속에서, 같은 짓을 몇 번 반복했던 우리는 이 북새통에 택시 잡길 포기하고 돌아섰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내내 줄곧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던 이지훈은 겨우 난 빈자리에 나를 재빨리 앉히고 나서야 안심한 듯 한숨을 쉬었다. 좌석 옆의 봉에 딱 붙어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내게 설명을 덧붙이는 얼굴이 멋쩍어 보였다.
“좀 더럽지, 여기 지하철이 그래. 사람도 늘 많고, 시끄럽고.”
“…….”
“나중에 공항 올 때는 택시 타자. 미안해.”
그러는 너는 매일같이 이 사람 많고 시끄럽고 더러운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지난 2년간 보지 못했던 걸 어떻게든 만회하려는 사람처럼 이지훈을 관찰했다. 못 본 사이 이지훈은 살이 많이 빠졌고, 꼭 그만큼의 키가 자란 것 같았다. 한창 크던 성장기 때, 밤새 성장통을 앓고 나면 그다음 날에는 더 커진 기분이 드는 것처럼. 이지훈은 그런 밤을 몇 번은 견뎌낸 사람 같았다. 제가 하고 온 목도리를 억지로 내게 두른 탓에 훤히 드러난 목덜미가 보였다. 놈은 골격마저 자란 듯했다. 앉아 있는 날 향해 고개를 숙이거나 혹은 주변을 살필 때마다 목부터 쇄골까지 붙은 근육이 두드러졌다.
시선이 길었는지 이지훈에게 들켰다. ‘왜?’ 의아한 듯 묻는 놈에게 아까 공항에서 만났던 순간부터 혀끝에서 맴돌던 질문을 꺼냈다.
“살 빠졌어?”
이지훈은 그 질문 또한 이곳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내 시선이 스치는 곳을 따라 볼 근처를 성의 없이 더듬대던 놈이 어깨를 으쓱했다.
“빠졌나? 잘 모르겠는데.”
살이 빠진 것도 모르는 놈이 키가 컸는지를 알 리가 없다. 나는 더 말하지 않고 이지훈이 꽉 잡고 있는 캐리어를 뺏어왔다.
“내가 들게.”
이지훈이 난리를 떨기 전에도, 이미 공항에서 캐리어를 한 번 풀어 헤쳐야 하는 일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물건을 쑤셔 넣는 데 골몰하느라 적재 가능한 무게를 고려하지 못한 탓이었다. 추가금을 내고서라도 그대로 가져가려 했는데, 나보다 먼저 수속을 마친 승객 중 그렇게 한 사람들이 많아 불가능하다고 했다. 무게를 줄이는 것 외엔 별수가 없었다.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내가 공항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결심한 건 음식들이 아닌 겨울옷들이었다. 그거야 나중에 다시 사면 되는 거니까.
그러길 잘했다고, 앞에 선 이지훈을 보며 새삼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두고두고 생각났을 것이다.
이지훈이 살고 있다는 아파트는 입구부터 소란스러웠다. 유학생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더니, 젊은이들이 아니라면 살 수 없는 조건을 가진 곳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우선 건물 전체에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계단으로 가는 복도마저 길었다. 그 길을 지나가다 이지훈에게 말을 건 이웃만 해도 벌써 세 명이었다. 성별, 인종, 나이도 다 달랐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지훈이라는 이름을 또박또박 정확히도 발음하는 거였다. 마치 누가 집중적으로 교정이라도 해준 것처럼 특히 ‘훈’을 힘주어 말하던 주황 머리의 여자와 인사하듯 포옹한 이지훈이 내 시선을 느끼자마자 시치미를 떼듯 말했다.
“꼬맹이 수학 과외 그만두면 한국어 선생님을 해볼까 봐.”
그들의 발음을 고친 데에 자신의 공이 혁혁했음을 인정하는 거였다.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이지훈은 이지훈이었다. 피식대는 나를 본 놈이 따라 웃더니 캐리어를 들고는 먼저 계단을 성큼 올랐다.
이지훈의 집은 건물 5층 계단의 마지막 칸으로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곳이었다. 앞장선 이지훈이 문을 연 채로 내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문 앞에 선 순간 침대가 바로 보일 정도로 좁은 곳이었다. 집이라기보다는 방에 가까운 인상을 줬다. 방 가운데를 기점으로 침대 두 개가 나란히 거리를 둔 채 놓여 있었고, 침대 바로 뒤에는 코너형 책상이 창문과 바짝 붙어 있었다. 옷장은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다시피 했다. 문 앞의 허름한 신발장과 비슷한 모양새로.
“개좁아서 놀랐지.”
웃으며 그렇게 묻는 이지훈은 침대의 발치와 주방 사이에 난 좁은 공간에 서 있었다. 이지훈의 뒤로 화장실이 보였다.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로 선 놈이 뭔가를 더 말하려는 순간, 벽에서부터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그게 뭐든 방에서 들을 만한 소음은 아니어서 순간 놀랐는데, 나와 달리 이지훈은 눈조차 찡그리지 않았다. 귀를 의심하게 만든 소리가 또 들려오고서야 나는 그게 악기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지훈이 무덤덤한 건, 저런 소리를 매일같이 내는 이웃에게 익숙해져서라는 것도. 기껏해야 샤프 굴러가는 소리와 의자 끄는 소리가 다인 독서실에서조차 귀마개를 하고 있던 놈이, 여기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 정도는 당연히 버텨야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듯이. 지금도 이지훈은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들었을 내가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벽을 눈짓하며 묻는 얼굴에 멋쩍은 미소가 떠 있었다.
“시끄럽지?”
그게 이지훈이 아까 지하철에서 한 차례 보인 적 있던 표정임을 떠올린 순간에는, 자동반사적인 답변이 튀어나갔다.
“아니, 별로.”
빠른 대답에 나를 놀란 눈으로 보던 이지훈이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에 익숙한 장난기가 드글했다.
“와, 지선욱 여전하네. ‘아니’랑 ‘별로’를 발명한 남자답다.”
“…아니거든.”
“봐 봐, 또 아니라고 했어.”
그것 보라는 듯 대놓고 킥킥대는 이지훈에게는 반박하지 못했다. 못 본 게 몇 년이 됐는데, 내 말버릇이야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장난을 거는 놈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꾸깃꾸깃 접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내가 이상했는지 이지훈이 갸웃했다. 나는 그제야 시선을 끊고는 캐리어를 손짓했다.
“저거 좀 열어 봐.”
“왜? 장갑 꺼내게? 야, 잘 생각했다. 직접 겪어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지?”
“아니, 그거 말고.”
“…와, 너 설마 장갑도 안 갖고 왔냐?”
머리를 짚은 이지훈은 도와주기는커녕 잔소리 2차전을 시작할 기세라서, 결국 내가 캐리어를 열었다. 다행히 침대 사이에 캐리어를 풀어 헤칠 만한 공간이 있었다. 바닥에 눕혀 놓은 캐리어 앞에 앉아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내 옆으로 이지훈이 쪼그려 앉았다.
“짐 벌써 풀게? 일단은 두고 나가서 밥부터 먹자. 배고플 거 아냐.”
나는 대답하는 것 대신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다행히 가져온 물건들 중 그 어느 것도 깨지거나 터지지 않고 무사했다. 나는 캐리어 한 짝에 조금의 틈도 없이 빽빽이 들어차 있던 햇반이며 음식들을 죄다 꺼냈다. 하나둘 쌓으니 마치 탑처럼 보였다.
캐리어 한쪽이 휑하게 빌 정도로 다 꺼내 쌓은 후에야 옆을 돌아봤다. 이지훈은 벙찐 표정이었다. 캐리어에 모자나 장갑이 아닌 이런 것들이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처럼.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 너 주라고 챙겨주신 거야.”
“…….”
“아, 삼분 짜장은 강영수가 줬어. 꼭 말해달라더라.”
한참 말없이 서서 아래의 물건을 내려다보던 이지훈이 풀썩 쪼그려 앉았다. 놈이 가장 먼저 손을 뻗어 쥔 건 떠나기 전날, 아저씨가 특별히 챙겨준 약 봉투였다. 봉투 안의 약을 하나 꺼내서 뒷면에 적힌 글씨를 확인한 이지훈이 희미하게 웃었다. 흐린 그리움이 떠오르다 말고 사라졌다. 피식대며 핀잔을 던지는 순간에는 놈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낮아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여간, 이씨 남자들은 마음이 너무 약해.”
“…너도 이씨잖아.”
“그래요, 지씨. 제가 지금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얘기를 돌려 했잖아요.”
그런 것치고는 물기조차 없는 눈 밑을 괜히 쓸며 우는 척하던 이지훈은 이내 아구구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어느새 품에 햇반이 한 아름 들려 있었다. 씩씩하게 부엌으로 걸어가 찬장부터 열던 놈이 뜬금없는 타이밍에 뒤돌았다. 햇반을 들고 선 놈의 표정이 애매했다.
“너 혹시 이거 가지고 온다고….”
말은 중간에 끊겼다. 뒷말을 이을까 고민하는 순간마저도, 이지훈의 시선은 아직 바닥에 그대로 펼쳐져 있는 내 캐리어를 향해 있었다. 그러나 다시 눈을 든 이지훈의 얼굴에는 머뭇거림이라곤 없었다. 양쪽 입꼬리를 끝까지 쭉 올려 웃은 놈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
“야, 고맙다. 덕분에 몇 달은 든든하겠네.”
아무래도 이지훈이 키가 큰 게 맞는 것 같다. 성인 남성의 머리를 거뜬히 넘길 높은 찬장 안으로 햇반이며, 김을 차곡차곡 쌓는 놈이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지훈의 등 너머로 그릇 몇 개와 컵 두엇 정도가 보였다. 이지훈은 5분도 되지 않아 모든 정리를 끝냈다. 애초에 안에 들어 있던 게 없으니, 정리할 것도 없이 채워 넣기만 하면 됐다. 좁은 부엌의 딱 그만한 찬장이었는데, 가져온 물건들을 죄다 넣어도 반 이상을 넘게 채우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신경 쓰였다.
“야, 코트 입어. 밥 먹자, 밥.”
이지훈이 문 앞에서 기다리는 걸 본 순간에야, 찬장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오는 길에 본 한인 마트가 어디쯤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잠 안 오냐?”
천장을 멀뚱히 보고 있던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이지훈의 룸메이트 형은 오늘 방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연유로 룸메이트의 침대를 차지한 이지훈은 내 쪽을 보고 누워 있었다. 팔까지 포갠 후 머리까지 얹어놓은 자세가 편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묻는 능청스러운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내일 뭐 할 건지 브리핑해줘?”
엄밀히 말하면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고작 방 하나뿐인 공간이었다. 그래서 달린 스위치도 하나뿐이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형광등 빛은 밤에 켜놓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책상에 있던 스탠드만 켜둔 이지훈 때문에 방은 어둑했다.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희끄무레한 빛이 다였다. 이지훈을 자세히 보려면 침대 끝에 가까워져야 했다. 나는 이지훈에게 대충 끄덕이며 고민하다가도 결국 베개의 위치를 조정하지 못하고 그대로 누웠다.
내가 눕길 기다린 것처럼 이지훈이 내일부터 며칠 동안 우리가 실행해야 할 계획을 줄줄 읊었다. 박물관, 미술관, 공연, 심지어 버스 투어까지. 1시간 단위로 촘촘히 세워둔 계획은 듣기만 해도 바빴다. 이지훈의 얼굴을 보는 것이 목표인 여행이지만, 그걸 모르는 이지훈은 친구의 3박 4일 짧은 뉴욕 여행을 어떻게든 의미 있게 만들어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일 작정 같았다. 뭐, 어쨌든 그 계획을 치르는 내내 함께 있을 테니 됐지. 그렇게 생각하며 천장에 눈을 둔 채로 듣던 나는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한 시 반에 뮤지컬을 보는데 두 시에 박물관에 들어간다고?”
“응.”
“그게 가능은 한 계획이야?”
“아니.”
“…근데 왜 그렇다고 말했는데?”
“잘 듣고 있나 깜짝 테스트해 봤어. 그 김에 옆도 좀 돌아봐줬으면 해서.”
사람이 너무 황당하면 말이 안 나온다. 팔만 세워 상체를 일으키자 실실대고 웃고 있는 이지훈의 얼굴이 누워 있을 때보다는 조금 더 잘 보였다. 나는 옆에 있던 베개를 놈의 얼굴로 집어 던졌다.
“아!”
“며칠 후면 스물넷이다, 새꺄. 스물넷.”
“스물넷도 베개 맞으면 아파!”
충분히 피할 수 있었으면서, 굳이 처맞고 아픈 척하는 꼴을 어이없게 보다가 다시 누웠다. 중학생 때도 안 칠 법한 장난을 치는 걸 보니 성장통이니 뭐니 하며 잠깐 감상에 젖었던 게 민망할 지경이었다.
내가 더 반응하지 않으니 이지훈도 조용해졌다. 자는지 확인하려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가, 예상치 못하게 눈이 마주쳤다. 베개에 볼이 다 눌린 채로 나를 보고 있던 이지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너 보고 싶었나 봐.”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된 나와 달리, 뉴욕의 시간이 익숙할 놈은 툭 건드리면 잠이 들 얼굴이었다. 장난기가 아닌 졸음기가 그득한 눈이 날 향한 채로 끔벅이는 걸 보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갑자기 무슨….”
한참 후에야 나간 대답을 들은 이지훈은 웃기부터 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이. 아까 이 방에서도 ‘아니’, ‘별로’란 말을 하는 내가 웃기다고 했을 때처럼 눈을 휘면서. 그러면서도 자신이 방금 꺼낸 터무니없을 정도로 간지러운 말을 회수하는 것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어. 나도 갑작스럽긴 한데, 네가 어이없어 죽겠다는 표정 짓는 거 보니까 실감 나서 말하는 거야.”
“…….”
“여기서 뭐가 막 내려가는 것 같아. 까스활명수 먹은 것처럼.”
체한 사람이 하듯 손바닥으로 제 명치 부근을 연이어 쓸어내리던 이지훈이 피식대며 베개를 얼굴 가까이 끌어당겼다.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놈의 웃음이 조금씩 흐려졌다. 나는 그 모습을 숨조차 쉬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이 순간을 이루는 것들이 깨져버릴 것 같아서.
“그런 건 사진에도 안 나오는 표정이니까. 보고 싶을 때 못 봐서 체한 것 같았나….”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리던 걸 끝으로 이지훈이 입을 다물었다. 잠이 든 듯 미동조차 없던 놈은 한참이 지나서야 몸을 뒤척였다. 내내 쳐다보고 있던 걸 들킬까 봐 시선을 황급히 거뒀다. 곁눈으로 보니 이지훈은 비척대며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누운 침대 옆으로 놈이 지나가는 기척이 들린 것과 동시에 맨발로 마룻바닥 위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방향을 보니 책상 쪽이었다. 스탠드 앞에 선 놈이 짧게 하품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불 켜둘까?”
“…아니. 꺼도 돼.”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방이 깜깜해졌다. 이어지는 마룻바닥 위를 걷는 소리. 이불을 젖히는 소리. 베개 위로 얼굴을 고쳐 묻는 소리.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침묵. 나는 그 소리 중 어느 것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이면서, 어둠 속에서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서야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켰다. 블라인드가 쳐져 있지 않은 창문을 통해 거리의 가로등 빛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이지훈이 아까처럼 내 쪽을 향해 누워 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을 정도의 희미한 주황빛이었다. 나는 다시 누웠다. 천장을 본 채로, 다만 몸을 조금 더 침대 끄트머리로 당겼다. 귀를 기울이면 이지훈의 쌔근대는 숨소리를 아주 희미하게나마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길 바랐다.
이지훈이 책임감을 가진 건 비단 여행 계획뿐만이 아니었다. 놈은 계산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지갑이라도 꺼내는 꼴을 못 봤다. 평소에도 나나 강영수한테 돈을 잘 쓰는 놈인 건 알지만, 여행 기간 내내 모든 비용을 다 부담하겠다고 덤벼드는 건 과했다. 더군다나 살인적인 물가의 이곳에서 버티겠다고 아르바이트에 치여 사는 걸 뻔히 다 알고 있는데.
당장 본 뮤지컬 티켓만 해도… 이건 심지어 미리 사둔 거라고 했다. 이지훈 몰래 인터넷으로 확인한 티켓 가격이 눈앞을 둥둥 떠다녔다. 자꾸 나 대신 카드를 내미는 놈 때문에, 이곳에 와서부터 어딜 가서든 가격부터 확인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돈을 모으기도 바쁜 놈한테 괜히 놀러 와서 돈만 쓰게 하고 가는 것 같아 찝찝했다. 있는 일정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지 이지훈은 돈 쓸 일을 더 찾으려 성화였다. 지금도 놈은 추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카페에 밀어 넣었다. 브로드웨이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 곳이라 그런지, 커피 가격이 유독 비쌌다. 이지훈은 그 와중에 케이크까지 시키려는지 투명한 디저트 진열창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놈이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계산대로 다가갔다.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주문하고는 카드부터 내밀었다.
“뭐 하냐?”
카드를 돌려받다 말고 이지훈에게 팔이 붙들렸다. 인상을 쓴 놈이 상황을 파악하듯 나와 종업원을 번갈아 봤다.
“이건 내가 낼게. 네가 뮤지컬 보여줬잖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놈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받아온 커피가 테이블 위에 놓일 때까지도 그랬다. 싸운 건 아닌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일부러 커피를 슬쩍 앞으로 밀어주기까지 했는데도 이지훈은 가만히 커피를 내려다볼 뿐 말이 없었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을 걸기에는 표정이 심상찮았다. 그렇다고 사과하기에는 잘못한 게 없었다. 고민만 길어지다 결국 대화다운 대화도 못 하고 거리로 다시 나왔다.
극장에 들어갈 때부터 눈이 내리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몇 시간 사이에 쌓인 눈의 양이 어마어마해서 도로는 거의 마비된 것에 가까운 상태였다. 지하철조차 정전이 되어 집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다행히 걸어갈 만한 거리였다. 쌓인 지 오래된 눈은 아닌지라 미끄러지는 것보다는 눈을 밟고 푹 아래로 꺼질까 봐 걱정해야 했다. 용기를 내 한 걸음 뗄 때마다 신발 밑창이 푹푹 젖어들어 갔다.
이지훈은 옆에서 말없이 걷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걷기만 하다 도착할 거라고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얼굴만 보고 가도 짧은 기간인데, 이렇게 어이없는 걸로 소모될 시간조차 아쉬웠다.
결심한 나는 걸음부터 멈췄다.
“야.”
두 걸음 앞서 걷던 이지훈이 뒤돌았다. 나는 알 수 없는 표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가 너 주라고 용돈 주셨어. 주신 거 다 쓰고 가려고 내가 내겠다고 한 거야.”
“…아닐걸.”
“뭐?”
“우리 아빠가 그랬을 리가 없다고. 진짜 아빠가 그렇게 말했어? 나 주라고?”
사실 아저씨가 줬다고 하면 적당히 넘어갈 줄 알아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부정하는 놈을 본 순간엔 말문이 막혔다. 엄밀히 말하면 아저씨가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니까. 비록 봉투 안에 들어 있던 금액이, 이지훈과 같이 쓰지 않는다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컸던 건 맞지만.
이지훈은 입을 다문 나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대신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담배 있냐?”
얼떨떨한 채로도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내 바지 주머니에서 나온 담배를 본 이지훈이 미리 봐둔 듯한 흡연 구역을 눈짓하며 앞장섰다.
불이 꺼진 펍과 빨간 벽돌 건물 사이의 공간이었다. 이지훈은 건네준 담배와 라이터로 쉽게 불을 붙이고는 두 건물 사이의 좁은 틈으로 들어가 섰다. 잠깐 망설이던 나 또한 그 비탈길 사이로 발을 들였다.
싸웠다기에는 가깝고, 아무 일도 없다기에는 애매한 거리를 두고 서서 담배를 피웠다. 나는 반도 태우지 못한 담배를 손에 끼운 채로 허공으로 연기를 내뿜는 이지훈을 흘끔댔다. 부러 건물들 사이로 들어와 섰는데도 세찬 바람이 이지훈의 앞머리를 흩뜨리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마주 보는 건물 벽에 시선을 둔 채로 담배만 피우던 이지훈이 뜬금없이 말을 걸었다.
“야. 나 자존심 상해.”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기부터 했다. 나는 무표정한 이지훈의 옆얼굴에 눈을 고정한 채 침을 삼켰다. 커피 좀 사줬다고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기에 당황했다.
“너한테 담배 하나 빌리는 건 괜찮거든? 근데 네가 나 보러 와서 돈 내는 건 좀 그래.”
이지훈은 태연했다. 보이기엔 그랬다. 꽁초를 눈 위로 버린 놈이, 확인하듯 그 위를 지져 밟고, 이내 주워서 옆의 쓰레기통에 넣는 행위도 평소와 별다를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태연함을 가장하는 것치고 뱉어내는 말들은 족족 평소처럼 넘겨버릴 수가 없는 것들이어서.
“나 지금 여유 없는 거 맞고, 네가 그거 신경 쓰여서 돈 내려고 하는 거 아는데.”
“…….”
“너한테 쓸 돈은 있어. 그것도 못 할 것 같으면 오지 말라고 했겠지.”
고개를 든 이지훈과 눈이 마주친 순간에는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지훈의 얼굴이 정말 자존심이 상한 사람처럼 보여서. 아니, 그보다는 속상해 보이기까지 해서. 이지훈이 나서서 돈을 내려고 할 때마다 머릿속에 빼곡하게 들어찼던 반박할 말마저 잃어버리는 기분이었다.
“나 본다고 멀리까지 온 애한테 돈 쓰게 하기 싫어. 이틀 뒤면 떠나는데 놀기도 아까운 시간에 이런 쪽팔린 이야기하는 것도 싫고.”
이지훈을 알아 오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 어쩌면 이지훈은 그런 표정을 내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제, 저녁을 먹은 내가 계산대 앞에 서기가 무섭게 웃으며 밀어내던 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내가 내려고 할 때마다 계속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게 아니라….”
네가 힘든 거 아는데, 괜히 부담을 줄까 봐 그랬어.
변명하듯 이으려던 말은 목구멍도 넘지 못하고 막혔다. 나는 차마 뱉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거야말로 이지훈이 싫어할 말인 것 같아서.
“…알았어. 미안해.”
어정쩡한 사과부터 뱉은 순간에야, 내가 이지훈의 이런 표정을 견딜 수가 없음을 깨닫는다. 빠른 사과에 이지훈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내가 진심인지를 가늠하는 것처럼.
이내 놈이 피식 웃었다. 볼에 보조개가 패는 걸 본 순간에야, 진심으로 웃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미안하면 앞으로 돈 쓰지 마.”
“…알았어.”
“하다못해 껌 먹고 싶을 때도 사달라고 말해.”
“알았다고.”
머쓱히 대답하면서도 짧아진 꽁초를 아래로 버리고, 이지훈이 그랬듯 그 위를 밟았다. 내가 쓰레기통에 꽁초를 넣자마자 걸음을 옮길 줄 알았던 이지훈은 여전히 벽에 기대 있었다. 점퍼 안으로 양손을 쑤셔 넣은 채로 허공에 하얀 숨을 뱉던 놈이 물었다.
“영감이랑 싸웠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것도 반쯤은 이미 답을 예측한 듯한. 도착한 후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의식적으로라도 하지 않았던 터라 멈칫했다. 이지훈은 말없이 다가왔다. 나는 놈이 내 앞에 서기 전에 시선을 가까스로 아래로 내렸다. 망설였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한테 들었어?”
“아니. 그냥 느낌이 그래서.”
“…….”
“너 방학 때는 웬만하면 영감 옆에 있으려 하잖아. 근데 뉴욕까지 왔길래, 무슨 일 있나 했지.”
이지훈은 내가 대답하길 기다리듯 가만히 있다가, 마음을 바꾼 것처럼 다가왔다. 이지훈에게서는 향수 냄새와 하늘색 섬유탈취제의 냄새가 섞여서 났다.
“너무 마음 쓰지 마.”
놈은 아까 뮤지컬을 보러 가다 추워 보인다며 내 목에 둘러준 자신의 목도리 위로 쌓인 눈을 툭툭 털어주고 있었다.
“어차피 돌아갈 거잖아. 가서 잘하면 돼.”
그치? 확인하듯 물어보는 놈을 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어깨를 한 번 더 툭 친 놈이 골목을 나가자고 눈짓했다.
아까 본 뮤지컬 이야기를 나누며 조용한 거리를 걸었다. 극장 앞이 붐볐던 것과 비교하면, 이지훈 집으로 가는 길은 지나치게 한적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의외였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보여줬던 것처럼, 거리마다 축제 분위기로 신난 사람들이 가득하고 주위도 밝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사람이라고 해 봐야 거리를 잘못 찾았는지 두리번대는 관광객들이 다인 썰렁한 거리를 돌아보며 걷는 내 옆에서 이지훈이 설명했다.
“크리스마스 날은 원래 이래. 쇼핑은 그 전에 하고, 이런 날에는 오히려 밖에 잘 안 나오고 집에 있더라. 가족이랑 보내거나, 애인이랑 보내거나.”
나는 그렇게 말하는 이지훈의 뒤로 보이는 커다란 저택을 응시했다. 응접실로 보이는 공간은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러고 보니 거리에만 사람이 없을 뿐, 지나가다가 마주친 창문 안은 어디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렇다면 이곳에 가족이 없는 이지훈은 지난 2년간 어떤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걸까. 거리에 사람도 없고, 음식점조차 닫은 곳이 더 많은 이런 날이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가 더 어려울 텐데. 어느 집 앞을 지나가든 창문 한 번 들여다보는 법이 없는 놈의 무덤덤한 얼굴을 흘긋대다 보니 어느덧 아파트 앞이었다.
이틀 새에 익숙해진 문 앞에 선 순간, 이지훈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곤란한 얼굴의 놈이 대답하는 걸 들어보니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고, 이지훈이 가야만 해결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혼자 남을 내가 걱정되는지, 이지훈이 돌려 한 거절은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가로막혔다. 자그마치 세 번이나 거절을 한 뒤에도 여전히 전화를 붙잡고 있는 이지훈을 본 나는 손을 저으며 놈의 등을 떠밀었다.
“괜찮아. 나 신경 쓰지 말고 다녀와.”
미안한 표정을 짓던 이지훈은 그러는 시간마저 아깝다고 판단했는지 빠르게 뛰쳐나갔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말만 남겨두고.
혼자 남아 방을 둘러봤다. 이지훈이 옆에 있을 때는 마음 편히 하지 못한 일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 살펴본 곳은 책상이었다. 공간의 한계 때문인지 룸메이트 형의 책상과 붙어 있는 이지훈의 책상은 주인의 성격을 반영하듯 깔끔했다. 애초에 올라와 있는 게 몇 개 없기도 했다. 기껏해야 책꽂이, 스탠드, 액자, 그리고 달력이 다였다. 책꽂이에는 비행학교에서 이론 수업에 쓰는 것 같은 교재와 모양과 크기마저 똑같은 노트 몇 권이 줄지어 꽂힌 채였다. 스탠드 주변에는 액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이지훈네 집에서도 본 적 있던 가족사진이었다. 다른 액자엔 강영수와 나, 그리고 이지훈까지 셋이 찍은 사진이 자리 잡았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조금이라도 더 추억을 남겨야 한다는 강영수의 성화에 따라나섰던 곳에서 찍은 사진이었고, 강영수가 SNS에 우리를 태그하며 올리기도 했었다. 고작해야 3년 전의 일인데, 장소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낯설었다. 액정을 향해 브이를 그리며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이지훈과 정반대로 뻣뻣하게 굳어 있는 나를 바라보다가 액자를 제자리에 다시 내려놨다.
“…그게 그거 같은데.”
이 사진 속 표정이나 느닷없고 유치한 농담에 황당해하는 표정이나 별다른 게 없는 것 같은데, 이지훈이 구분 짓는 게 오히려 신기했다.
이상하게도 달력에 손을 뻗은 순간에는 이지훈을 의식하듯 현관문부터 돌아보게 됐다. 언뜻 보기에도 빽빽한 달력에는 내가 한국에서는 알 수 없었던 정보가 적혀 있을 것 같았다. 뒤늦은 양심이라도 챙기려는 사람처럼 머뭇대다가도, 여기에 숨길 게 있었다면 아예 책상 위로 내놓지도 않고 감췄을 놈의 성격을 떠올리고서야 더 고민하지 않고 집어 들었다.
아예 1월로 돌아가서, 뒤로 한 장씩 넘겼다. 덕분에 이지훈이 아르바이트를 늘 세 개 이상은 하며, 함께 적어둔 아르바이트 시간으로 보았을 때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자는 날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달 1일에 쳐진 동그라미는 아마 월세를 내는 날인 것 같았다. 4월로 달력을 넘길 때쯤 그 사실을 파악했고, 이지훈이 정말 6월에 할아버지의 검진일을 기록해뒀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르바이트 종류나 시간은 알파벳이나 숫자를 이용해 간단하게 표시해둔 놈 덕분에, 가끔가다 쓰여 있는 한국말은 오히려 눈에 쉽게 띄었다.
내 생일을 표시해둔 부분도 그랬다.
29일에 동그라미 하나. 한국말은 29일이 아닌 28일에 적혀 있었다.
[한국 시차 맞춰서 연락할 것.]
그러고 보니 생일 당일에 연락을 받았던 것 같다. 그게 이렇게 달력에 표시까지 해두고 챙겨준 건지는 몰랐지만.
다음 장을 넘기려다 말고 우뚝 멈췄다. 내 생일 외에도 빨간색으로 크게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짜 아래에 ‘훈련비 2/3’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앞장에서 비슷한 문구를 본 것도 같았다. 기억을 더듬으며 낱장을 다시 넘겨보다 7월에서 빨간색 동그라미를 찾았다. 그 아래에는 ‘훈련비 1/3’이라고 적혀 있었다.
7월 4일 밑에 적힌 글자 ‘훈련비 1/3’, 10월 5일 밑에 적힌 글자, ‘훈련비 2/3’.
분수로 표시된 숫자를 보니 아마도 훈련비를 세 번에 나눠 내기로 한 모양이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앞으로 훈련비를 내야 하는 일은 한 번이 더 남았고, 지금까지의 텀에 따르면 다음에 내야 하는 달은 1월일 터였다. 나는 7월과 10월의 일정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그러다 보니 알게 됐다. 7월과 10월 전후로 이지훈의 일정이 유독 빡빡하다는 걸. 아르바이트가 5개로 늘어날 때도 있고, 기존 일정 위로 줄을 그어두고는 새롭게 추가해 적어둔 듯한 일정들도 많았다. 이지훈이 고군분투한 흔적이 이 달력 위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나는 12월 달력을 넘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12월 첫째 주부터 이지훈이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는 5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뉴욕에 도착한 날도 이지훈은 새벽 6시까지 일을 했다. 갑자기 오기로 한 나 때문에 더더욱 몰아붙였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나는 한참을 멈춰 있다가 겨우 달력을 뒷장으로 넘겼다. 으레 달력이 그렇듯 12월 뒤에는 흰 종이뿐인데도 불구하고 뭐가 더 있지는 않을까 기대하는 것처럼 마지막 장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며칠 뒤면 새해다. 1월을 앞둔 이지훈은 훈련비를 준비해 뒀을까. 놈 성격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지 싶으면서도 달력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이지훈은 내가 달력을 손에서 뜯어놓듯 내려놓은 뒤에야 돌아왔다. 뛰어왔는지 찬 바람에 노출된 얼굴 부위가 유독 붉었다. 열이라도 내려는 것처럼 귀를 죽 당기며 문 안으로 들어서던 놈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슥 확인하더니 패딩을 벗어 문 앞의 옷걸이에 걸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면서.
“뭐 하냐, 거기 서서. 계속 그러고 있었어?”
찬 바람에 붉게 쓸린 볼로 묻는 놈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도착한 날도 그랬다. 이지훈이 무의식적으로 제 목뒤를 주무르다 말고 대답 없는 나를 의아하게 응시한다. 내가 어딘가에 앉지도 않고, 방 한가운데에 멀거니 서 있는 게 이상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랬듯이 놈이 내게 숨기려 하는 것들을 이번에도 모른 척해야 함을 알았다.
“…자지도 않는데 침대에 앉기가 좀 그래서.”
“의자에 앉아 있지, 그럼.”
“그러다가 일어선 거야.”
다행히 이지훈은 더 묻지 않았다. 부엌에 있는 네모난 2인용 식탁 앞에 서서 까만 봉지를 끄르는 놈은 다른 데에 신경이 쏠린 눈치였다.
“야, 일로 와. 타코 좀 사 왔어.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으니까 빨리.”
재촉하듯 손짓하는 놈에게로 걸어가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일은 잘 해결됐고?”
“어. 그냥 눈으로 확인만 하면 되는 일이어서.”
“금방 갔다 왔네, 그래도.”
“요 앞이거든. 기억나냐? 그때 내가 밤에 설거지한다고 했던 레스토랑 거기.”
“…그만둔 거 아니었어? 밤낮 바뀌어서 피곤하다며.”
이지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페이가 세긴 해도,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세 시간도 자지 못하고 학교에 가야 해서 오래는 못할 것 같다고 지나가듯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기까지 한 아르바이트를 계속 이어가는 건 내야 할 돈이 있어서겠지. 예를 들면, 훈련비 같은 거.
의자에 앉기 전까지 등 뒤로 숨기고 있던 핸드폰 화면을 껐다. 끄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한 화면에는 7천 달러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이지훈이 다니는 비행학교에서 학비 외에 따로 받는다고 알려진 한 학기 훈련 비용이었다. 놈에게서 타코를 받아드는 순간조차도, 이 식사가 이지훈의 7천 달러에 보탬이 되어야 했을 일부가 아닐까 생각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