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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을 일주일 남기고 전학 가는 미친놈이 어디 있냐. 학원 숙제를 물어보려 전화했다던 성호는 내 말이 믿기지 않는 것처럼 몇 번을 되묻더니 겨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콧등을 긁으며 대꾸했다.
“그러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 미친놈이 나라서. 반대로 성호가 갑자기 내게 전화해서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말하면 나도 비슷하게 반응했을 거였다. 갑자기?
-그럼 너 이제 학교 안 와?
“…그럴 것 같은데.”
-너 전교 1등이잖아. 그렇게, 막 가도 돼? 1등인데?
“1등이라고 전학을 못 간다는 법은 없으니까.”
-아, 그거야 그런데….
성호와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같은 반도 여러 번 했고 사는 아파트도 같아서 등하굣길을 함께했다. 몇 시간 전까지 같이 축구를 하던 그 수많은 친구 중 굳이 나를 콕 집어 숙제를 물어볼 정도로 친하긴 했다. 그렇게 나름 오랜 시간 쌓아온 우정인데도 우리가 더는 같은 아파트에 살지 않을 테고 같은 학교로 등교할 일도 없어졌다는 점에서 순식간에 할 말이 뚝 떨어졌다. 공통의 화제를 잃어버린 우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서울에 올라오면 언젠가 보자는 말과 함께 어색하게 전화를 끊었다.
슬쩍 앞을 보니 3분 전 확인한 것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하얀 중절모를 살짝 눌러쓰고 있는 노인은 내가 오늘에서야 존재를 알게 된 친할아버지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꼿꼿이 앉아 밖을 보고 있었다. 우리 둘 외엔 아무도 없는 평일 낮의 고속버스 안은 한적했다. 이 좁고 폐쇄된 공간에서 내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 없는데,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했다. 흔들림 없는 자세로 앉아 밖을 보는 노인을 관찰하던 나는 곧 그를 따라 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창밖을 살폈다.
얼마나 더 가야 도착하는 걸까. 그곳에도 중학교는 있는 거겠지?
‘이렇게 다짜고짜 와서 훈계한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아버지.’
‘너네들 감정싸움 한다고 죄도 없는 애를 이렇게 두는 건 옳고?’
‘…방치는 아니에요. 도우미 아주머니도 일주일에 두 번은 오시고.’
‘조용히 안 해! 어디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
‘집안 꼴을 봐라, 집안 꼴을! 지 새끼를 어떻게 이렇게 내버려 둘 수가 있어!’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애를 대신 키우시기라도 하겠다고요?’
‘못 할 이유가 없다. 아무렴 이것보다는 낫겠지.’
2주 동안 혼자 지냈던 집에 누군가가 들어와 있던 게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거실에 서 있던 마른 노인은 날 보자마자 명령하듯 말했다.
‘짐 싸라.’
짧고 굵은 한마디가 무겁게 울려 퍼졌다. 그래서일까. 누구세요? 그렇게 묻고 경계해도 모자랄 판에 난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수학여행 때나 펼쳐본 캐리어를 꺼내 옷부터 쑤셔 넣었다. 처음 본 노인은 아빠를 무섭게 닮아 있었고, 난 이혼을 한다며 2주 내내 집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엄마 아빠보다야 빨래 건조대에 널려 있는 내 속옷을 걷어와 옆에 넣어주는 그 사람이 나을 거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아버지. 정말 왜 이러세요, 안 그래도 힘든 시기인데!’
뒤이어 도착한 아빠의 시선은 나에게 닿지도 않았다. 거실에 서 있는 꼿꼿한 노인을 보자마자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울컥해 소리치는 아빠를 보며 난 아주 어렸을 적 그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아빠는 왜 아빠가 없어?’
듣지 못한 것처럼 침묵하던 그는 동화책을 덮은 순간에야 단호히 말했다. 다시는 그런 걸 묻지 말라는 듯이.
‘때로는 없는 게 더 나은 것도 있는 거야.’
난 그제야 그 말을 곱씹었다. 그건 아빠에게나 그렇지, 태어나서 할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나는 할아버지가 없는 게 나은지 있는 게 나은지 판단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 의사는 물어보셨어요? 막말로 그 시골에 도시 애가 가서 어떻게 하겠다고… 선욱아. 너 할아버지 따라갈 수 있겠어?’
붉은 얼굴을 거푸 쓸어내리던 아빠가 2주 만에 처음으로 나를 찾았다. 내게 와 닿는 시선이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 같았다. 이혼을 준비한답시고 내팽개쳐놓은 아들임에도 자신을 배반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혹시나 하는 두려움을 가볍게 압살한 표정이었다.
난 어려서부터 뭐든 혼자서 잘했다. 아무리 다 큰 애래도 날 이렇게 혼자 둘 수 있었던 것은 내가 15년 동안 그들에게 보여준 믿음직스러운 면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양보할 기미가 없는 감정싸움에 모범적인 아들의 안위는 진작 밀려나고도 남았다.
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그 순간에는 그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15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인데, 15년 동안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던 할아버지에게 되레 마음이 기울었다.
‘네. 갈래요.’
내 대답에 아빠는 배신이라도 당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침묵하던 할아버지는 쯧 소리와 함께 캐리어를 집어 들고는 앞장섰다. 난 그처럼 아빠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야 작게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이혼 후에 나는 누구와 함께 살게 되냐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려라.”
할아버지는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어서야 나를 돌아봤다. 그가 날 만나고 한 말이라고는 두 마디가 다였다. 짐 싸라, 내려라. 마치 그 말에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것처럼 따르게 되는 게 신기했다.
터미널에 내려서 버스를 한 번 더 탔다. 어른 1000원. 학생 800원. 지역마다 버스 요금이 다르다더니 사실이었다. 짤그랑 기계에서 떨어진 동전을 주워 든 할아버지가 앞장섰다. 그의 뒤를 따르면서도 창 너머를 연신 흘깃댔다. 이름 모를 들판이나 고속도로를 달리던 아까와 달리 바다가 펼쳐진 밖은 구경할 거리가 많았다. 늘 바쁜 엄마 아빠 때문에 휴가 때도 기껏해야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 끝이었던 내게는 이런 바다를 가까이에서 보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을 잘도 지나갔다. 할아버지는 다섯 정거장이 더 지나고서야 입을 열었다.
“저게 학교다.”
설명은 그게 끝이었지만 대충 알아들었다. 학교로 보이는 건물들을 몇 개 지나치는 동안 말이 없던 그가 이 학교를 굳이 집어 말한 이유는 내가 다닐 학교라서 그런 거라는 것도. 방금 지나친 정거장 이름에 들어 있던 ‘재항중학교’라는 학교명을 확인한 나는 입 안으로 되풀이해보고는 이내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난 지 시간이 오래 지나지는 않았지만, 그가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는 것 정도야 눈치챘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배로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버스를 30분 정도 더 타고 가다가 한 허름한 정거장 앞에서 내렸다. 비탈길을 따라 끝없는 돌담길이 이어져 있었다. 따라오라는 말도 없이 앞장서는 할아버지의 등을 보며 걸음을 뗐다. 멀지 않은 곳에 펼쳐진 지평선 때문인지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는 행위만으로도 바다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도는 보이지 않았지만, 파도 소리는 들렸다. 나는 그 파도 소리가 진짜인지를 생각하며 그의 등을 부지런히 따라 걸었다. 아직도 이곳이 서울이 아니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여섯 시간 전만 해도 난 흙이란 존재는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 가야만 마주할 수 있는 곳에 있었으니까.
할아버지는 파란 지붕의 집 앞에서야 발걸음을 멈췄다. 교과서에나 나올 듯한 옛사람 같은 할아버지의 옷차림을 보며 상상이 과했던 모양인지, 막상 마주한 할아버지의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현대식이었다. 슬레이트 지붕이 얹혀 있는 것만 빼면 모든 것들이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지붕 색과 맞춘 듯한 파란 철문을 열고 들어선 할아버지가 모자를 벗어 대청마루 옆 기둥의 못 위로 걸었다. 신발을 벗자마자 방 안으로 사라지더니 곧 다시 나타나 퉁명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곧 따뜻해질 거다.”
나는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등에 메고 있던 책가방을 벗어 마루 위로 내려놨다. 이미 마루에 앉아 있는 그의 옆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할아버지 말처럼 집이 곧 따뜻해졌다. 슬쩍 뒤로 돌았다. 집에 있는 텔레비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구식인 텔레비전과 고구마가 한 아름 담긴 소쿠리, 잘 정리된 세간살이를 훑다 그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방금 눈으로 열심히 구경한 것들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서울에 놓고 온 것 중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기도 했다.
“아빠랑 싸우셨어요?”
질문하면서도 할아버지가 그 말에 웃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웃었다. 희미하긴 했지만 분명 웃음이었다. 처음으로 본 그의 웃음은 마치 풍선이 쪼그라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처음에만 해도 아빠의 몇십 년 뒤를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할아버지의 얼굴은 자세히 뜯어볼수록 아빠와 닮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어느 모로 보나 아빠가 더 웃음을 달고 사는 직업이었는데도, 할아버지가 웃을 때 아빠의 모습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는 걸 보면. 몇십 년 만에 봤을 아들에게 호랑이처럼 화를 내던 노인은 그 즉시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희미한 존재가 됐다.
“네 애비가 그렇게 말하든?”
나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이든 보태어 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던 그가 입가에 남은 웃음마저 없애고는 이윽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와 자식의 싸움이 어디 싸움이 되긴 허냐.”
“…….”
“그냥 포기하고 사는 게지. 원망과 회한만 남겨서 뭐 하려고.”
할아버지는 끝끝내 아빠와 다툰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건 아빠가 하던 행동과 무섭도록 닮아 있었다. 그도 내가 이렇게 클 때까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한참이나 더 말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겨울의 밤은 빨리도 찾아왔다. 해가 지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선 할아버지가 밥상을 차려줬다. 별다른 반찬이 없는데도 밥 한 공기를 어렵지 않게 비워냈다. 내가 수저를 내려놓는 것을 보자마자 상을 들려는 할아버지를 만류했다. 저녁을 먹으며 설거지는 당연히 내가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집임을 눈치챌 만큼 세간살이가 단출한 부엌은 다소 휑해 보이긴 해도, 필요한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 무언가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고무장갑을 찾아 끼는 날 발견한 그가 만류하는 대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문가에 기댄 그는 내가 설거지하는 내내 그곳에 앉아 날 지켜보고 있었다. 거실의 텔레비전을 틀어놨는지 뉴스 소리가 들렸다. 앵커의 말소리가 커질 때면 종종 거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던 할아버지는 내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들릴 듯 말 듯 하게 중얼거렸다.
“너무 빨리 컸구나.”
처음 들어보는 말도 아닌데, 멈칫했다. 그런 말투로 그런 말을 들어보는 건 처음이라서. 엄마 아빠는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으니까. 둘 중 누구도 오지 않았던 학예회, 운동회, 그리고 올림피아드 대회까지. 한 번도 서운한 티를 내지 않는 나를 보며 애 같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으니까. 그런 우리 집 사정을 아는 도우미 아주머니는 가끔 방에 있는 나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통화하며 지나가듯 그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애는 지네 부모랑 다르게 착해. 싸우는 부모 밑에서 철이 빨리 든 건지, 뭔지….’
그래서인지 나는 할아버지에게 동문서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애답지 않게 군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듯한 그가 어색하고도 낯설어서.
“저 설거지 잘하죠.”
그가 웃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풍선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웃음이라 안심했다.
할아버지가 내게 준 방은 원래 남는 방이었다고 했다. 말이야 그래도, 끝끝내 버리지 못한 것처럼 벽 한쪽에 붙은 학사모 쓴 아빠의 사진을 본 순간엔 아빠가 쓰던 방이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난 후 아빠가 이곳에 드나들었을 리는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데도,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한 방을 보며 과연 아빠가 이 방을 한 번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궁금해졌다. 정말 한 번도 그리워한 적이 없다면, 아빠는 할아버지를 만날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했다. 손자가 혼자 방치되어 있다는 소식에 서울까지 달려온 할아버지와 달리, 할아버지가 이렇게 방을 깔끔하게 쓸고 닦을 동안에도 이곳에 한 번도 내려와 보지 않았던 그라면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으니까.
부모와 자식 간의 싸움은 없다지만 잘 모르겠다. 아마 할아버지는 아빠가 조금만 화해하려는 행동을 취했어도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줬을 것 같았다. 하루아침에 제가 챙겨야 할 존재가 된 손주한테도 이렇게 모든 걸 내어주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서랍과 벽 한 면을 다 차지한 옷장이 전부인 방을 둘러보다가 옷장에서 이불과 베개를 꺼냈다. 서울 집의 방에서는 늘 창문을 열어두고 잤다. 한강 바로 앞 아파트였던 탓에 늘 밖에서는 차 소리가 났다. 이곳은 문이 열려 있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까지 죽이고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백색소음 같아서, 듣고 있다 보니 딱히 의식할 만한 소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너무나 기분이 이상했다.
한참을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옆으로 돌아누웠다. 할아버지 방은 맞은편에 있었다. 문을 열어둔 탓에 누워서 잠든 그의 뒷모습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나이 든 남자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그래서 앉아 있을 때는 늘 그렇게 꼿꼿하게 허리를 곧추세우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난 그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이불을 조금 끌어 올렸다. 문득, 앞으로의 내 삶이 이전과는 완벽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난 그 사실이 괜찮았다. 괜찮다 못해 이전보다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니까, 더는 외롭지 않다는 점에서.
* * *
전학은 생각보다 훨씬 간단한 절차로 이뤄졌다.
“그래. 서울에서 왔다고?”
방학을 얼마 남기지 않고 갑자기 찾아온 전학생이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새로운 담임 선생님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다니던 중학교로부터 팩스로 받은 종이를 앞뒤로 휙휙 넘기며 꺼내놓은 질문도 고작해야 그게 다였다.
“네.”
나는 가만히 서 있기 민망해 쳐다보고 있던 그의 책상에서 시선을 떼며 답했다. 국어 교재가 뒤죽박죽 꽂힌 책꽂이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는 점을 무시하려 애쓰며.
“아침 조회 시간에 같이 들어가자.”
출석부를 옆구리에 낀 채로 따라오라고 손짓하는 그의 뒤를 따랐다. 복도를 지나치던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흘긋거렸다. 나를 곁눈질하며 친구에게 귓속말하는 애들도 있었다. 서울에서 다니던 학교에서도 누군가가 전학을 오면 흔하게 보았던 풍경인데, 막상 내가 그 전학생의 입장이 되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척하며, 어제 맞춘 교복 셔츠를 괜히 아래로 조금 더 당겼다. 빳빳한 셔츠의 촉감마저 낯설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소화하려는 듯이.
앞장서서 휘적휘적 걷던 담임은 2-5라고 적힌 팻말 앞에 멈췄다. 복도까지 들릴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반 아이들은 담임이 앞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선 순간 급격히 조용해졌다. 책상을 밀고 당기는 소리, 의자를 바닥에 끄는 소리…. 문가에 가만히 선 채로 교실 곳곳에서 나는 번잡한 소음이 잦아들길 기다리던 담임은 교실 안이 조용해지고서야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담임에게서 내게로 옮겨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십 개의 호기심 가득한 눈이 내게만 집중되는 느낌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적응되지 않았다. 얼른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담임은 나의 곤란함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출석부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교탁의 양 끝단을 잡고 서서 잔소리를 시작했다.
“주번, 오늘 아침 환기했냐? 그리고 너네 사물함 위에 물건 두지 말라고 혔지. 종례 때 한 번 더 확인할 거니께 물건 주인들 빨리 치워. 그리고 네 번째 분단 끝에, 그려. 현지 옆. 누가 아침부터 저렇게 퍼져서 자나?”
이어지는 잔소리는 끝내 한 명을 콕 집어 지적하기까지 이르렀다. 담임의 못마땅한 시선은 네 번째 분단 끝에 있는 남자애의 등에 박혀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책상에 한쪽 팔을 길게 늘어뜨린 채로 그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남자애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깎은 반질반질한 머리통만 한 번 더 보게 됐을 뿐.
“이지훈이요.”
자느라 바쁜 남자애 대신 옆에 앉은 짝이 대답했다. 눈썹을 올린 담임은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왜인지는 몰라도, 이지훈이라는 남자애는 저렇게 대놓고 잠을 자도 용인 가능한 인물인 모양이었다.
두발 규정이 있는 듯한 이 학교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머리가 짧은 걸 보니 운동부인가 싶기도 했다. 전학 오기 전 다녔던 학교에서도 저런 애들이 있었다. 훈련이다 뭐다 바쁜 탓에 수업도 잘 듣지 않았고 가끔 등교하는 날마저도 밀린 잠을 보충하듯 줄곧 자기만 했다. 선생님들도 딱히 훈계하지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아이들처럼, 저 남자애 또한 앞으로 서로 마주치는 일조차 없이 지내게 되리라 생각하며.
“자, 반장. 인사.”
“차렷.”
반장으로 보이는 애가 선창한 것을 시작으로 수십 개의 머리통이 꾸벅댔다. 담임은 그제야 날 소개했다.
“여긴 오늘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 지선욱. 잘 지내, 다들. 모르는 거 있으면 챙겨주고. 특히 반장은 옆에 앉아서 책임지고 챙겨줘. 교과서도 보여주고. 자, 선욱이. 짧게 인사하고 들어가.”
고작 일주일을 같이 있게 된대도 인사는 하는 게 맞겠지. 이 중 몇 명과는 3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될 테니까.
“…지선욱이야. 만나서 돼서 반갑고.”
그래도 알지조차 못하는 애들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긴 어딘가 뻘쭘해서, 나는 가까스로 나를 보고 있지 않은 유일한 한 사람을 찾았다. 내가 반에 들어온 이후로 고개 한 번 들지 않았던 까까머리에 시선을 둔 채로 입을 달싹거렸다.
“잘 부탁해.”
아침에 출석만 하고는 학교를 빠져나가던 운동부 애들을 떠올렸다. 저 아이 또한 일주일 뒤까지도 내가 전학을 오긴 한 건지조차 모를 가능성이 컸다. 지금 이 어색한 인사조차 듣지 못할 유일한 이라고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 유리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는 반 안을 구경하거나, 이동수업이 있을 때마다 대놓고 흘깃대는 다른 반 아이들만 아니라면 생각보다 무난한 하루였다. 내가 전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챙기게 된 반장은 다행히 그런 귀찮은 일을 그러려니 할 정도로 성격이 좋아 보였다. 내가 꼭 알아야 할 정보도 먼저 잘 알려주고, 교과 선생님들이 들어올 때마다 내가 전학생이라고 소개도 해줬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을 겨우 일주일 남긴 상태라 교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점도 다행이었다.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간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너 그럼 72번 버스 타고 다니는 거야?”
아침에 타고 왔던 그 버스가 72번이었나. 할아버지와 함께 타고 왔던 버스의 번호를 떠올려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난 확신하지 못한 채로도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 어. 그랬던 거 같은데.”
정거장에 적혀 있던 버스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 어차피 그게 그거일 거였다. 그렇구나… 중얼대며 책상 밑으로 의자를 밀어 넣던 반장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잊고 있던 무언가가 떠오른 것처럼.
“근데 그러면 너 종례하자마자 거의 뛰어가야 할 텐데? 72번 버스는 자주 오는 버스가 아니라서 시간 잘 맞춰야 해.”
“자주 안 온다고?”
“어. 한 시간에 한 대는 오나? 그쪽은 아무래도 해안가다 보니까 버스가 잘 안 돌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데가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버스 안에 사람이 늘 꽉 차 있다고는 하던데.”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된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하기가 무섭게 굳었다. 우리가 이렇게 한가히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가 방금 종례가 끝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막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반장의 말에 따르면 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진작에 반을 나섰어야만 했다.
“…이미 정류장으로 가 있었어야 했다는 말이야?”
동시에 같은 것을 깨달은 것처럼 반장이 눈을 끔벅댔다.
“…그럴걸?”
나는 가방부터 추슬러 멨다. 한 시간에 한 대면, 곧 올 버스를 놓치면 최소 5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알려줘서 고맙다. 간다!”
“어? 어… 잘 가! 내일 보자, 지선욱!”
복도는 하교하는 아이들로 인산인해였다. 복도에서 뛰어서 시선을 받든, 전학생이라 시선을 받든.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시선을 받기는 마찬가지라 이제는 반쯤 포기했다. 늘 코앞에 있는 학교에 다녔던지라, 집에 제시간에 가려고 이렇게 뛰어보는 건 또 처음이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한참을 뛰고서야 운동화로 갈아 신지조차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뛰었음에도, 결국 떠나는 버스 꽁무니만 보게 되었다는 것도.
“…하….”
이럴 거면 뛰지나 말걸.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확인해본 버스 노선도는 내가 집에 가기 위해 타야 하는 버스가 72번 버스가 맞았고, 배차 간격 또한 50분이 맞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줬다. 그 뒤로도 수없이 버스가 왔다가 떠났다. 쓰레빠를 운동화로 갈아 신고, 핸드폰을 여러 번 확인한 뒤에도 한참을 더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조용해진 학교를 배경으로 한 채 도착한 72번 버스에 올라탔을 때는 4시였다. 내일은 기필코 늦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근처 공장에서 수위 일을 한다고 했다. 새벽같이 나가면서도 내 아침밥은 꼬박꼬박 챙겨주고 나가는 그 덕분에, 나는 눈을 뜨자마자 그가 차려놓은 상부터 들춰보는 버릇이 생겼다. 서울의 집에서도 아침을 챙겨주시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있었지만, 손재주 좋던 그녀가 매일 해주던 다양한 요리보다 할아버지의 별다를 것 없는 아침상이 더 맛있고 마음도 편했다. 할아버지에게 바로 잘 먹었다고 인사하지 못한다는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오늘은 일부러 이르게 알람을 맞춰뒀다. 그 덕분인지 할아버지가 집을 나가는 소리에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나가세요?”
마루의 끝에 선 할아버지가 몸을 돌렸다. 맨날 이 시간쯤이면 자고 있던 내가 일어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기색이었다. 딱히 감정 표현이랄 게 없는 그가 오랜만에 보인 큰 반응이기도 했다.
이른 기상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 정신이 없긴 했다. 문턱에 머리를 박을 뻔한 걸 겨우 피하고는 뒷머리를 긁었다. 그가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끔 서둘러 덧붙이면서.
“눈이 빨리 떠져서요.”
“그려.”
잠시 나를 훑어보던 할아버지는 모자를 눌러쓰며 대수롭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껏 파악한 바로는 매일 누군가의 차를 같이 타고 직장으로 가시는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늘 약속된 시간보다도 빨리 집을 나섰다. 나는 멀어지는 꼿꼿한 등을 향해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인 후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밥을 먹고 설거지 후 양치까지 끝냈는데도 여섯 시 반밖에 되지 않았다. 어제 반장한테 들은 정보로는 여덟 시 반까지는 등교해야 한다고 했으니, 일곱 시 반쯤 나가면 되겠지 싶으면서도 괜히 마음이 불안했다. 고민하다가 결국 조금 이르게 집을 나섰다. 겨울이라 그런지 해가 늦게 떠서, 하늘은 파랗다기보다는 까맸다. 해가 뜨는 모습은 해가 저무는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누군가 까만 하늘을 뚝 떼어 물통에 넣고 씻기라도 한 것처럼 까만색 사이사이로 서서히 스며드는 파란색과 노란색의 조합을 지켜보며 며칠 만에 익숙해진 돌담길을 따라 발을 움직였다.
“…어?”
무심결에 나온 반응이었다. 해조차 완전히 뜨지 않은 이른 시각, 허름한 정거장을 이미 지키고 선 사람 때문이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눈을 감고 있는 남자애는 파란색 야구 유니폼 차림이었다. 나는 남자애를 흘깃대던 걸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버스가 오고 있었다. 72번 버스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남자애는 어느새 일어서 있었다. 버스 문 앞에 선 남자애의 등을 본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버스에 타자마자 시계부터 급히 확인했다. 7시였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 안은 한적했다. 파란 모자를 쓴 남자애의 뒷모습에 자꾸 시선이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남자애는 출입구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모습이 정해둔 동선대로만 움직이는 사람처럼 고집스럽다고 생각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잠깐의 시선조차 줄 여유조차 없는 것처럼. 나는 그 애의 옆을 지나쳤다. 내가 두 좌석 뒤에 앉았기에 남자애가 아까처럼 눈을 감고 있는 건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그러리라고 예상했을 뿐이다. 남자애는 버스에 탄 순간부터 팔짱을 낀 채로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 자세를 고수했으니까. 같은 정거장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그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나는 확신했다.
어제 교실에서 본 그 운동부 남자애였다. 그러니까, 수업 시간에 잠을 자도 되는 이지훈이라는 남자애.
도대체 50분을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탈 방법이란 게 있긴 한 걸까. 담임이 잔소리를 조금 더 길게 했을 뿐인데, 난 또 정거장에 서서 저 멀리 떠나는 72번 버스의 뒤꽁무니만 보고 있었다.
나만 이렇게 공치는 건지 정거장에 가득 서 있던 아이들은 빠르게도 사라졌다. 겨우 15분이 지났을 뿐인데 72번이 아닌 버스가 다섯 대는 섰다가 갔고, 나만이 변함없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아무리 노선도를 들여다봐야 버스가 빨리 올 리가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오늘도 메시지 함은 서울에서 같은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의 연락으로 꽉 차 있었다. 용량 문제로 이미 한 번은 비웠는데도 그랬다. 내가 전학을 갔다는 소문이 퍼진 모양인지 심지어 한 번도 같은 반이 아니었던 친구들까지도 연락해서는 어디로 갔냐며 앞다투어 물었다. 예고조차 없었던 전학에 다들 의아해하는 기색이었다.
특히 학원에서 같이 외고 준비를 했던 친구들은 그곳에도 외고가 있냐며 묻기도 했다. 이곳에?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태안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주변은 아닌 것 같았다. 태안에서 가장 큰 중학교라고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건물이 크고 넓은 편이긴 했지만 몇 번 견학차 가보았던 외고에는 댈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외고 준비는 이곳에서도 할 수 있는 걸까. 학원은커녕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그 문자 메시지를 한참 봐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낯설어졌다.
학원에서 어울려 다녔던 한 친구가 보낸 문자에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자판 위에서 손이 방황했다. 이렇게 내려온 이유를 설명하려면 왜 할아버지가 벌컥 화를 내며 우리 집에 들이닥쳤는지도 설명해야 할 테고, 그럼 부모님이 이혼한다는 사실도 말해야 할 테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가 잘 상상되지 않았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그런 말을 하고 싶은 대상이 딱히 없기도 했다. 나는 결국 답장하길 포기하고 화면을 껐다.
‘깡-’
아까부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소음이 들려오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거장 바로 뒤의 야구장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전학 온 첫날, 이 학교에 야구장이 있음을 알게 됐다. 반장을 따라 학교를 구경하다 들은 정보에 따르면 야구로 꽤 유명한 중학교라고 했다. 학교 본관 장식장 안에 있던 꽤 오래되어 보이는 흑백사진 속 야구복을 입고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는 사람 중에는 실제 야구선수가 된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학교 바로 옆에 야구장이 붙어 있는 이유도 그래서일까. 공이 함부로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펜스 사이로 연습 중인 야구부원들이 보였다. 문득 아침에 보았던 운동부 남자애가 떠올랐다. 야구복을 입고 있었으니 그 남자애도 야구를 하는 게 아닐까 해서. 어쩌면 지금 저 안에서 훈련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정거장은 비탈진 언덕 아래에 있어 야구장을 보려면 고개를 뒤로 젖혀야만 했다. 그렇게 봐도 다 같은 야구복을 입고 있어서 누가 누구인지는 알기 힘들었다. 나는 남자애를 찾으려 잠깐 노력해보다가 이내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햇살 탓에 눈이 부신데, 그걸 참을 만큼 궁금하진 않았다.
깡- 또 한 번 야구 배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40분 전에 버스가 떠났으니 10분만 더 기다리면 버스가 올 터였다. 나는 가방에서 영어 단어집을 꺼내 들었다. 상황이 바뀌며 외고를 갈지 말지는 알 수 없게 됐어도, 미리 공부해둬서 나쁠 건 없을 터였다.
“저기요!”
누구를 부르는 건지 두리번거릴 필요조차 없었다. 버스정류장에 남은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었으니까. 과연 고개를 들자마자, 펜스에 가까이 다가선 야구복 차림의 남자애를 발견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남자애가 한 번 더 날 향해 소리쳤다.
“거기 공! 공 좀 주워주세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언덕의 중턱에 야구공 하나가 뚝 떨어져 있었다. 야구장 안에서 배트로 쳐낸 공이 기어코 높은 펜스 위를 넘은 모양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공을 주워줄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어 보였다. 그걸 아는지 남자애도 펜스에 바짝 붙은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당연히 주워줄 거라고 믿는 것처럼.
별수 없었다. 나는 단어장을 대충 한 손에 몰아 쥐고는 언덕 중턱까지 올라갔다. 다행히 별로 높지는 않아서 금방 오를 수 있었다. 흙이 묻어 있는 야구공을 들고는 슬쩍 위를 봤다. 파란색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남자애가 날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공이 맞다는 뜻 같았다. 펜스 위로 던져줘야 하나? 자연스레 든 의문에 고개를 들다가 햇빛에 또 한 번 직격타로 얻어맞았다. 나는 이마 위를 손으로 가린 채로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낮췄다. 그제야 날 부른 남자애가 어떤 방식으로 야구공을 전해 받길 원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아.”
펜스 아래에 누군가 구덩이라도 파둔 것처럼 딱 손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작은 틈이 있었다. 남자애는 이미 그 구덩이에 손을 쑥 넣은 채로 내가 공을 전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로 주면 돼요.”
가만히 보기만 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거라 생각했는지, 설명을 덧붙이는 남자애는 급해 보였다.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뒤를 살피는 걸로 보아 누군가 뒤에서 기다리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언덕을 마저 올랐다. 펜스가 눈앞에 가까워진 순간,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이지훈! 뭐 해, 이 새꺄. 안 오고!”
거침없는 말투며, 명령투로 보건대 아마 감독이거나 코치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놀란 건 그 우렁찬 목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 목소리가 뱉은 이름이 익숙했다. 나는 뒤늦게나마 펜스에 바짝 붙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햇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건 여전한데도 이름을 듣고 봐서 그런가, 야구모자 아래 가려지지 않은 코와 입이 익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공 주워 가겠습니다!”
우렁찬 고함만큼 우렁찬 대답이었다. 남자애는 대답하기 위해 고개를 뒤로 튼 상태에서도, 틈 사이에 대고 있는 손을 물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재촉하듯 손가락 끝을 까딱대기도 했다.
“됐으니까 그냥 와!”
한 번 더 고함이 들린 순간에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구덩이 가까이 대고 있던 손이 어느새 사라졌다. 손을 올려 모자챙을 슬쩍 들었다 놓는 남자애 덕분에, 챙 아래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
남자애는 생각보다 날것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코치의 고함에 짜증이라도 난 것처럼 설핏 구겼던 이마도 다시 평평해졌고, 내내 굳어 있던 안면 근육도 빠르게 정비됐다. 군인처럼 짧게 자른 까까머리가 모자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이마에서부터 죽 흘러내린 땀을 소매로 대충 닦은 남자애가 몸을 재빠르게 일으켰다.
“네, 코치님!”
씩씩한 대답만큼이나 하얀 입김이 빠르게 흩어졌다. 그러고 보니 겨울이었다. 외투 하나 없이 연습 중이니 추울 법도 했다. 대답부터 던지고는 모자를 다시 푹 눌러쓴 남자애의 빠른 몸짓에서는 그 사실을 눈치채기 어려웠지만.
자리를 떠나려던 남자애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뒤돌았다. 여전히 언덕에 누군가 남아 있음을 막 깨달은 것처럼. 처음으로, 남자애의 시선이 공이 아닌 내게 닿았다.
“그거….”
나는 말을 하려다 말고 멈춘 남자애의 눈이 내가 입고 있는 코트 가슴팍 어딘가를 훑고 있음을 막 깨달았다. 모자를 다시 푹 눌러쓴 덕분에 아까처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추위에 얼어붙어 있던 남자애의 얼굴 근육이 슬쩍 움직이는 걸 본 듯도 했다. 너무 짧은 순간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기념으로 너 해라, 그냥.”
어쩌면 남자애가 방금 확인한 게 내 가슴팍에 달린 명찰의 색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사실은 언덕에 혼자 남은 순간에야 알게 됐다. 거기다 그 남자애가 내가 전학 온 첫날 머리만 보았던 같은 반 애가 맞다는 사실도. 물론 걔는 내가 같은 반이라는 걸 알아채서라기보다는, 그냥 명찰 색을 보고 반말을 한 거였겠지만.
남자애가 사라지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언덕을 내려왔다. 그리고 때맞춰 도착한 72번 버스에 올라탔다. 집에 가는 내내 손에 잡힌 야구공을 자꾸만 내려다보게 됐다.
인사조차 나눌 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던 같은 반 운동부 남자애의 이름을 하루 만에 기억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어색했다. 어제 아침에 보았던 뒤통수와 오늘 아침에 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는 내내 보았던 뒤통수가 차례대로 떠올랐다.
나는 야구공을 눈앞까지 들어 올렸다. 이걸로 대체 뭘 기념하라는 걸까? 태안에 온 기념?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된 기념?
뭐가 됐든 내 이름조차 평생 모르고 살 운동부 남자애한테 받은 선물로는 생뚱맞았다. 떨떠름한 상태로도 난 일단 야구공을 가방에 넣었다. 시계를 확인한 뒤 시간을 메모했다. 오후 4시 2분. 기억해둬야 했다.
* * *
오늘은 7시 정각에 버스가 도착했다. 참고로 어제는 6시 55분, 그제는 7시 3분이었다. 따지자면 오차 범위는 10분 남짓으로 긴 시간은 아니지만 조금만 늦장을 부려도 다음 버스를 하릴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들쭉날쭉하는 버스 시간을 파악할 수 없었던 나는 차라리 빨리 일어나 정거장에서 죽치고 기다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야구부 남자애와 같은 버스를 매일 타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6시 50분부터 정거장에 나와 있는 나와 달리 기가 막히게 버스 시간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한 그 애는 버스가 오기 딱 3분 전에야 나타났다. 버스를 놓치기라도 했나 걱정이 들 때는 자연스레 뒤를 기웃대게 됐다. 저 멀리 골목길을 올라오는 그 애의 파란 모자를 보고서야 안심이 되곤 했다. 내가 버스를 놓친 건 아니구나 싶어서.
확실히 이른 시간이긴 한지, 72번 버스를 탄 승객 중 중학교 앞 정거장에서 내리는 건 늘 우리 둘뿐이었다. 오늘도 정거장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야구장을 향해 휘적휘적 속도를 내 걸어가는 남자애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반대 방향으로 발을 틀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은 적막했다. 그래도 등교한 지 일주일쯤 됐다고 그새 좀 익숙해진 게 신기했다. 자리에 앉아 문제집부터 꺼낸 나는 다음으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부터 열었다.
‘주번, 오늘 아침 환기했냐? 그리고 너네 사물함 위에 물건 두지 말라고 혔지. 오늘 종례 때 한 번 더 확인할 거니까 물건 주인들 빨리 치워. 그리고 네 번째 분단 끝에, 그래. 현지 옆. 누가 아침부터 저렇게 퍼져서 자나?’
전학 온 첫날 담임의 잔소리는 일리가 있었다. 겨울의 아침 바람이 다소 차갑긴 해도, 퀴퀴한 냄새를 몰아내려면 그래야만 했다. 네 개의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둔 나는 자리로 다시 돌아와 앉았다.
문제집을 다섯 페이지 정도 풀었을 때,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고 있었다.
방금 문을 연 건 그 야구부 남자애일 것이다. 왜 나처럼 바로 교실로 오지 않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연습을 하러 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반으로 돌아온 그 애한테서는 막 뛰다 온 사람이 뿜어내는 묘한 열기와 흐린 땀 냄새가 느껴졌으니까.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 애의 자리가 옆 분단 뒷자리라 내 뒤를 어떻게든 지나가야 하는 걸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예상처럼 뒤를 스쳐 지나가는 인기척과 함께 곧 의자를 뒤로 당기는 소리가 났다. 다음 이어질 행위는 책상에 팔을 얹고 고개를 숙여 잠드는 것이겠지. 나는 이번 주 내내 보았던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보며 샤프 뒤의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어제 분명 샤프심을 넣어두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샤프심의 뾰족한 끝이 나오질 않았다.
한참을 씨름하다 결국은 샤프를 바꿨다. 다섯 페이지를 다 풀고 고개를 돌린 순간, 교실 안 시계의 시침이 8시를 가리켰다. 열어둔 창문 너머로 등교하기 시작한 아이들의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흘렀다. 자연스레 시선이 나와 같이 등교한 한 명의 동급생에게 머물렀다. 예상했던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엎드려 잠든 남자애는 아마 아침 조회시간까지도 저러고 있을 것이다. 마치 내가 처음 보았던 그 모습처럼. 첫날 보았던 이미지를 그 위로 겹쳐 보다 말고 멈칫했다.
“…….”
잠깐, 그때도 패딩을 입고 있었나? 틀린 그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잠깐 지켜보던 나는 금세 흥미를 잃고 문제집으로 시선을 박았다. 패딩을 입든 말든 딱히 내가 상관할 건 아니었다.
“야.”
이동수업을 다녀오던 길에 뜬금없이 붙잡혔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걸음을 멈춘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팔뚝에서 손을 떼지 않는 걸 보니 내게 용건이 있는 건 맞는 모양인데 이유를 몰랐다.
“번호 좀 주라.”
머리가 두발 규정을 한참 넘길 정도로 긴 여자였다. 명찰 색깔을 보니 한 학년 위의 선배인 듯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웃으며 한 번 더 핸드폰을 내밀었다. 신형 핸드폰에는 이런저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팔뚝을 서로 툭툭 치며 웃었다. 어느새 복도에 선 모두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옆을 지나던 같은 반 여자애가 무슨 일인지 궁금한 것처럼 힐긋 이쪽을 보자마자, 여자의 친구 중 하나가 겁을 주듯 그쪽 바닥에 침을 뱉었다. 설핏 인상을 찡그리는 날 봤는지, 여자가 내 눈치를 보며 옆의 친구들을 만류했다.
“야, 야. 나대지 마.”
“아, 뭘. 쟤네들이 먼저 야렸어.”
나는 난장판 속에서도 내게 흔들림 없이 내밀어져 있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이게 해결되어야 이 거북한 상황이 끝날 것 같았다. 나는 키패드 위로 내 번호를 꾹꾹 찍고는 그녀에게 돌려줬다.
“여기요.”
“어? 땡큐.”
핸드폰을 받아들던 여자가 환하게 웃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웃으니 양쪽 볼에 푹 파인 보조개가 보였다.
“근데 너 서울에서 왔다더니 진짜 서울말 쓰네. 신기하다.”
“…….”
“문자 할 테니까 답장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가 친구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때마침 다음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반장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오올-하는 감탄사를 덧붙이는 게 유치한 놀림이라도 시작하려는 모양새라 꺼림칙했다.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도 가끔은 당하던 짓인데, 가십거리가 되는 기분은 늘 별로였다.
“야. 뭐래? 번호 달래?”
“…아, 어.”
“와, 저런 사람도 번호를 먼저 물어보는구나. 나 저 누나 가끔 매점에서나 봤지 여기까지 내려온 거 처음 봐. 근데 예쁘긴 진짜 존나 예쁘다. 너도 좋았지, 솔직히?”
불편했던 상황을 빠져나가는 데에만 몰두하느라 신경 쓰지도 못했던 것들을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대충 고개만 주억였다. 친하지조차 않아서 무시하기도 애매했다. 대충 눈치채고 적당히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반장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처럼 굳이 정보를 덧댔다.
“되게 유명한 공고 양아치 형이랑 사귀었던 걸로도 유명할걸. 듣기로는 그 형이 엄청 매달렸대. 근데 저 누나가 깠다더라.”
누가 누구를 사귀든 말든, 딱히 내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번에는 고개조차 끄덕여주지 않고 대신 참고서를 꺼내 책상에 펼쳤다. 그제야 내가 대화에 별 흥미가 없는 걸 알아챈 반장이 뻘쭘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문제를 읽어나가는데,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로 온 연락이었다. 방금 내가 번호를 찍어준 그 선배일 가능성이 컸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키패드를 두드렸다.
메시지가 전송되었다는 알림을 보고는 핸드폰을 닫았다.
오늘 풀어야 하는 수학 문제는 총 100개. 하교할 때까지는 15개의 문제를 더 풀어야 했다. 시계를 확인한 나는 핸드폰이 더는 울리지 않도록 무음 설정을 해두고는 가방 앞에 넣어두었다.
집에 와서도 선배의 문자는 끊기지 않았다.
진동이 오지 않게 설정해두었지만, 메시지가 올 때마다 핸드폰 화면이 깜빡거렸다. 스톱워치 기능을 쓰려고 핸드폰을 꺼내둔 건데 자꾸만 흐름이 끊겼다. 5분이 멀다 하고 오는 메시지는 답을 할수록 빈도수만 더 늘어나는 것 같았다.
딱히 답장할 말도 없는데….
고민하던 중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핸드폰을 놓고 몸을 엉거주춤 일으켰다.
“이장님, 계십니꺼.”
누군가 할아버지를 찾는 듯했다. 아까 잠깐 볼일이 있다고 나간 할아버지를 떠올린 나는 자리에 없는 그를 대신해서 마루로 나갔다. 마당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얼굴이 까만 중년의 남자가 갑자기 방에서 등장한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뒷목을 긁으며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잠깐 일 있다고 나가셨는데요. 무슨 일로 오신 건지 말씀해주시면 전해드릴게요.”
할아버지를 따라 이곳으로 온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넘었지만, 아직 얼굴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과 마주칠 때면 어색했다. 뻘쭘함을 이기고 겨우 꺼낸 말에 남자가 손을 저었다.
“아이다. 그럴 것까진 없고. 니가 이장님 손자 맞제?”
말투가 이미 나를 알고 있던 것처럼 친근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환하게 웃은 그가 들고 있던 봉지를 내밀며 수더분하게 말을 걸었다.
“고마, 니 듣던 대로 잘생깄네.”
“…….”
“니 왔다는 소문이 마을에 떠들썩한데 일이 바빠가 못 오다가 오늘에야 시간이 나서 고기 좀 사서 왔다. 자자, 가가라. 이장님한테는 내 잠깐 들렀다고만 말하고. 알았나.”
남자가 쓰는 억센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는 마을 사람들이 쓰는 충청도 사투리와는 어딘가 달랐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잘 아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일까, 경계심이 쉽게도 풀렸다. 나는 결국 그가 고집스럽게 내밀고 있는 봉지를 받아들었다. 받아든 것만으로도 손이 무거워질 정도로 꽤 무게감이 있었다.
남자는 내가 봉지를 집어 드는 걸 보고 한 번 더 웃었다. 자칫 날카로워 보일 수도 있을 무뚝뚝한 인상이 그럴 때마다 빠르게도 허물어졌다.
“중학교 이 학년이라고?”
“…네.”
“그럼 니 이지훈이라고 아나?”
갑자기 나온 이름은 생뚱맞았다. 이걸 안다고 해야 하나, 모른다고 해야 하나. 내가 망설이는 이유를 몰라서라고 판단한 듯 남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를 쳤다. 크고 두꺼운 손이 코앞의 모기라도 쫓는 것처럼 허공을 휘휘 저었다.
“괘안타. 그놈도 니 모른다고 하데.”
“아… 네.”
이지훈이랑 아는 사이인가? 그나저나 다행이었다. 걔는 날 모른다고 했는데, 내가 안다고 답했으면 이상했을 테니까.
“모르겠으면 이제부터라도 알면 안 되겠나. 이 마을에 같은 학교 다니는 아라고 해 봤자 몇 되지도 않는데 사이좋게 잘 지내 봐라.”
할 말을 다 한 것처럼 그가 대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시계를 확인하는 걸 보니 갈 곳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바빠서 이제야 오는 거라 말했었지. 그의 뒷모습을 향해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다 말고 갑자기 뒤돈 그와 눈이 마주쳤다.
“니 근데 이름이 뭐라고?”
“…지선욱이요.”
“성욱이. 알았다. 내가 금마한테 니 이름 한 번 더 말해줄게.”
성욱 말고 선욱… 그러나 내가 그 사실을 미처 고쳐주기도 전에 그는 문턱을 훌쩍 넘어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에게서 건네받은 봉투 안을 내려다보았다. 삼겹살이 몇 겹으로 쌓인 투명한 봉투가 두툼했다.
6시 58분. 지난 일주일 동안 그랬던 것처럼 머릿속에 또 한 번의 버스 시간을 기억했다. 할아버지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분 정도. 같은 72번 버스라도 도로에 차가 많은 오후보다는 아침에 더 빨리 달렸다. 보고 있던 영어 단어장을 가방에 넣자마자, 하차벨 소리가 울렸다. 슬쩍 앞을 보니 맨날 버스에 타자마자 잠들기에 바쁘던 애가 웬일로 등을 세운 채로 꼿꼿이 앉아 있었다. 학생이라고는 둘뿐인 버스 안이니 벨을 누른 것도 이지훈일 가능성이 컸다. 나는 하차하는 문 앞에 선 이지훈을 보고만 있다가 버스가 정차할 기미를 보이고서야 슬슬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주일 가까이 같은 버스를 둘이서만 타면서도 인사 한번 하지 않는 사이니, 내릴 때도 구태여 동선이 겹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여태껏 그 어떤 어색함 없이 서로가 지키던 거리는 앞을 막고 있는 이지훈 때문에 급속도로 짧아졌다. 나는 평소라면 발을 디뎠을 자리에 서 있는 이지훈을 피해 옆으로 어색하게 내려섰다. 이지훈이 불쑥 날 향해 뒤돈 것도 동시였다.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야구공을 주워주려 했던 그날 이후 처음이었다.
“…….”
“…….”
뭐지? 흘긋대길 잠시, 학교를 향해 먼저 걸음을 뗐다.
“야. 지성욱.”
그러니까, 걔가 그렇게 날 부르지만 않았어도.
“…나?”
정거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둘뿐인데도 되물어야만 했다.
“그럼 니 말고 누구 있어, 여기?”
나처럼 주위를 둘러보지조차 않고 되묻는 말투가 무뚝뚝했다. 이지훈이 입을 열 때마다 공기를 흠뻑 적실 정도의 하얀 입김이 바람에 흩어졌다. 틀린 말은 아닌데 남의 이름을 틀려놓고도 뻔뻔한 건 어이가 없긴 했다. 나는 정정해주려 입을 열었다.
“…내 이름 지성욱 아닌데.”
“…아빠가 니 이름 지성욱이라고 했는데.”
아… 어제 그 아저씨가 그럼….
남자의 인상착의를 듣자마자 알겠다는 표정을 짓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바로 방으로 들어간 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말하던 소리까지도. 저걸 어떻게 다 먹으라고 사 왔냐고 남자에게 핀잔을 줄 때는 언제고, 좋은 고기라며 소중히 냉장고에 넣어두던 걸 보니 할아버지와 꽤 친한 사이인 듯하다고 내 멋대로 생각했었다. 그가 바로 이지훈의 아버지였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방금 이지훈처럼 나를 성욱이라고 부른 사람이기도 했다.
이름을 고쳐주기도 전에 훌쩍 떠나버린 그와는 달리, 다행히 이지훈에게는 고쳐줄 기회가 있었다. 나는 음절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
“성욱 말고 선욱이야. 지선욱.”
“…아아, 어.”
이지훈이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모자챙을 잡아서 위로 들었다 놨다. 그새 조금 자란 것 같은 짧은 머리가 모자 밑에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그때 펜스 뒤에서도 비슷한 행위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습관인 모양이었다.
“쨌든.”
이지훈이 귀찮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로 말을 뚝 잘랐다. 나는 그제야 이지훈이 내게 할 말이 있음을 눈치챘다. 평소와 달리 휙 멀어지지 않고 내가 내리길 기다린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도.
내 이름조차 모르던 애가 할 말이 생겼다면 그건 대체 뭘까. 생각조차 해보기 전에 이지훈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렇게 마주 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지훈은 나보다 키가 아주 조금 더 컸다.
“니 왜 이 시간에 버스 타는데?”
갑작스러운 물음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잠깐 침묵하던 나는 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듯한 눈빛을 보며 떨떠름히 입을 열었다.
“…다음 버스 언제 오는지 몰라서. 50분마다 온다고는 하던데, 오는 시간도 매일 달라지는 것 같고.”
내 대답을 듣고도 이지훈은 심드렁했다. 마치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으며, 그랬기에 놀랄 필요조차 없다는 듯이.
“7시 45분.”
“…어?”
“월수금은 그렇고, 화요일이랑 목요일은 7시 48분에 다음 버스 온다고. 이른 아침에는 기사 아저씨들 멋대로여도 그다음에는 시간 웬만하면 맞춰서 와. 사람들 많이 타서 시간 어긋나면 안 되니까.”
“…….”
“너네 집에서도 마당 끝에 서서 보면 버스가 언덕 올라오는지 안 올라오는지 보일 텐데. 못 봤냐?”
“…아.”
내 입에서 멍청한 신음이 흐른 것과 동시에, 이지훈이 크게 입을 벌려 하품을 쩍 했다.
“이런 거 영감님이 말 안 해주든?”
영감님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걸 보니 할아버지는 이지훈의 아버지랑만 친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어쩐지 이지훈보다도 손자인 내가 할아버지와 덜 친한 것같이 느껴져서 민망했다. 나는 입술을 말아 물며 머쓱하게 답변했다.
“…안 물어봤어, 내가.”
“하여간. 피는 못 속이는구만. 알다가도 모를 집구석이여.”
열다섯 살이 하기에는 심히 노숙한 발언이었다.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놈이 몸을 돌렸다. 용건이 끝났으니 간다는 듯한 태도였다. 미련 없이 발을 떼는 이지훈을 황급히 붙잡았다.
“야!”
이지훈이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아까 버스에서만 해도 이지훈에게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어색하게나마 입 밖으로 꺼냈다.
“…고맙다고. 알려줘서.”
나한테 시선을 둔 채로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던 이지훈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보니 어제 보았던 아저씨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특히 웃는 모습이 그랬다. 빠르게 허물어지는 얼굴 사이로 장난기가 언뜻 비쳤다.
“고마우면 내일 그 시간에 거기 서 있을 모자란 새끼 머리 한 대만 때려주라. 아, 그리고.”
모자를 한 번 더 고쳐 쓰며, 이지훈이 몸을 돌렸다. 가벼운 투덜거림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창문 좀 적당히 처열어. 나 니 때문에 입 돌아갈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이지훈은 오늘도 야구복 위에 패딩을 걸쳐 입고 있었다. 나는 하얀색과 파란색이 뒤섞인 야구복이 더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고 나서야 학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창문으로 다가서려다 말고 우뚝 멈췄다. 잠깐 망설이던 나는 결국 이지훈의 자리에서 가장 먼 창문 하나만 열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문제집 두 번째 페이지의 문제를 다 풀었을 무렵, 드르륵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오늘도 발걸음 소리가 열 번 들린 뒤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2분가량을 더 기다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옆 분단의 제일 뒷자리에서 야구복 차림의 이지훈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전학 온 첫날 보았던 것과 자세가 똑같았다. 그러나 더는 틀린 그림 찾기라도 하듯 그때와 다른 점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틀린 부분을 만들어낸 게 나였으므로.
놈이 의자 뒤에 얌전히 걸어놓은 까만 패딩까지 보고서야 고개를 돌렸다. 샤프를 집어 들다 말고 웃음이 터졌다. 생각해보니 아침마다 추워 죽겠는데도 나한테 뭐라 하는 것 대신에 패딩을 챙겨 입고 온 놈이 좀 웃겼다. 쟤는 내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 같았다.
이지훈의 말처럼 마당 끝에 서서 저 멀리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면 해안도로를 따라 꼬불꼬불 길을 오르는 버스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버스의 번호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책가방을 메고는 집을 나왔다.
정거장에는 처음 보는 사람 둘이 서 있었다.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었다. 나는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시계를 내려다봤다. 7시 45분.
“야야. 그 전학생인가 봐. 잘생겼다. 그치.”
“…아…. 뭐… 말 걸어보든가, 오빠가.”
“또또, 잘생겼다고 낯가린다 강영은. 이럴 때마다 너무 신기해. 나랑은 어떻게 한 지붕 밑에서 사는 거야?”
“왜 못 살아. 니까짓 거랑은 존나 잘 살 수 있지.”
“조오오온나? 너 엄마한테 욕 썼다고 다 일러.”
“일러라, 일러. 나도 니 어제 여자친구 만난다고 학원 빠진 거 이르면 됨.”
“…오빠가 너를 대신해서 저 잘생긴 전학생에게 말을 걸어 봐줄까, 동생아?”
놀랍게도 이지훈이 말한 모자란 새끼가 누군지는 금방 알게 되었다.
“아, 근데 나 좀 떨리는데.”
“니가… 대체 왜?”
“약간 내 말 쌩까게 생겼잖아. 약간 도도한… 그런 도시 남자 느낌. 네가 밤마다 이불 속에 숨어서 보는 인터넷 소설 속의 그 남자처럼….”
“아이 씨, 니 내 방 함부로 들어오지 말랬지!”
“서열 0위 그놈, 태안으로 전학 오다?”
“아, 좀 닥치라고! 개쪽팔리니까!”
차마 더 듣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느끼자마자 흠칫해 딴청을 피우는 두 사람은 놀라우리만치 닮아 있었다. 큰 눈이나 하얀 뺨 같은 부분이 특히 그랬다. 마치 한곳에서 산 것처럼 색깔만 다른 가방조차. 어쩌다 보니 듣게 된 방금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둘이 남매인 것은 누구라도 금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날 흘긋대다 눈이 마주치자 꾸며낸 듯한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 남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명찰에 ‘강영수’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명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입을 달싹였다.
“…이지훈 알아?”
이지훈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눈이 커지는 걸 보니 이미 답은 들은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웃으며 시선을 떨궜다. 시계를 확인한 순간, 버스가 끼-긱 하고 우리 앞에 멈춰 섰다.
“걔가 너한테 안부 전해달라는데.”
정확히 7시 48분이었다.
* * *
방학식은 빠르게 끝났다. 가방을 챙기다 말고 창밖을 급히 확인한 이유는 단순했다. 방학식 날은 운동부도 예외가 없는지, 교실 내부의 텔레비전을 통해 방학식이 진행되는 내내 따분한 얼굴로 앉아 있던 이지훈이 갑자기 없어진 게 불안해서였다.
불안함은 곧 현실이 됐다. 정확히는,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세 명의 사람을 본 순간.
“야, 선욱. 오늘 방학식인데 애들끼리 시내 가서 피파나-”
“미안. 나 버스 때문에.”
반장의 어깨를 대충 두드리는 순간마저도 마음이 급했다. 황급히 반을 나서다 말고 누군가와 맞닥뜨린 순간엔 당황했다.
“아, 미안. 내가 급해서.”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사과부터 하고는 빠르게 몸을 숙여 쓰레빠를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야. 너 어디 가?”
갑자기 잡힌 팔뚝에 기시감을 느낀 것과 동시에, 앞에 있는 사람이 얼마 전 복도에서 나한테 번호를 물었던 그 선배라는 걸 깨달았다. 뒤에 서 있는 선배의 친구들조차 그때와 같았다.
팔을 붙잡힌 채로 나는 한 번 더 창밖을 확인했다. 이제 보이는 것은 강영수의 뒷모습뿐이었다. 나보다 버스 시간을 잘 아는 이들이 뛰고 있다는 건 곧 버스가 도착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급한 마음에 말이 여과 없이 튀어나갔다.
“저 집에 가야 해서요.”
“하….”
반 아이들처럼 바로 팔을 놓아줄 줄 알았던 선배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내게 들릴 정도의 크기로 중얼댔다.
“컨셉이야 뭐야, 진짜. 연락도 개성의 없고, 진짜 짜증 나게….”
처음 보았을 때의 웃는 얼굴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인상을 찌푸린 그녀를 보다가 멈칫했다. 메시지를 점점 뜸하게 보내길래 내 재미없는 대답에 관심이 사라졌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잡힌 팔뚝부터 조심스레 비틀어 뺐다.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컨셉이 아니라 진짜 집에 가야 해서요.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서 이번에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하거든요. 그리고….”
내가 이렇게 설명할 줄은 몰랐던 것처럼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잠깐 고민하다가 와이셔츠 소매의 끝을 잡고는 슬쩍 내 쪽으로 당겼다. 뒤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흘긋대는 그녀의 친구들이 이 말을 듣기라도 한다면 앞에 선 선배의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르니까. 일부러 연락을 그렇게 성의 없게 한 게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얼떨결에 내 쪽으로 가까워진 그녀에게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목소리를 죽여가며.
“제가 공부랑 운동밖에 안 하는 재미없는 사람이라서 그래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사귀던 여자친구들은 나를 찰 때마다 저런 멘트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했다. 그런 일이 두세 번쯤 반복되다 보니 알게 됐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요.”
지척에서 눈이 마주쳤다. 나는 미안함을 담아 진심으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누나 기분 나쁘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조금 붉어진 얼굴로 계속해서 눈을 깜빡이기만 하는 선배는 멍해 보였다. 그러나 아까처럼 짜증 나 보이지도, 날 더 붙잡지도 않을 것 같았다. 안심한 나는 잡고 있던 셔츠의 소매 부분을 놓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72번 버스는 정거장에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일부러 늑장이라도 부리고 있었던 것처럼 계단 밖으로 한쪽 발을 뻗고 있던 강영수가 날 향해 팔을 흔들었다.
“빨리 와, 서열 0위!”
이것도 이지훈의 말이 맞았다. 아무래도 강영수의 머리를 한 대 때리긴 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