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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만 모여 있으면 별 말들이 다 오간다.
수다를 떠는 걸로 따지자면 어지간한 여자들 수다 못지않을 거라고, 학창 시절 이후로 줄곧 남자들의 사회에 몸담아 온 정태의는 생각한 바 있었다. 개중에서도 질이 좀 더 나쁘다 싶은 놈들은 새로 사귄 여자 친구와 어제 드디어 처음으로 같이 잤는데 가슴이 크더라 작더라 하는 이야기도 떠들어 댔다.
사관생도 시절, 그런 이야기들을―굳이 듣고 싶어하지 않아도 사람들 모인 데서 으레 한두 마디씩 꼭 들려오는 그런 이야기들을―들으며, 정태의는 여러 가지를 배웠다.
순진한 여자를 침대로 데려가기 위한 테크닉 같은, 정태의에게는 하등의 쓸모가 없는 정보에서부터, 저런 식으로 입을 놀리다가 좀 성실하고 엄격한 훈육관에게 잘못 걸리면 주말 외출 반납하고 굴러야 한다는 유용하고 실질적인 정보까지, 그들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다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과 주로 어울리듯이, 정태의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이야기를 달고 사는 녀석들과는 그리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호불호를 떠나서, 정태의 자신과 상관이 없는 주제였던 만큼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태의가 흔히 잘 지내곤 하는 동기들과는 여자 이야기를 나눌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친한 동기 중 하나가 주말에 외박을 나갔다 오더니 내내 얼굴이 풀어져 있었다. 헤슬헤슬 웃음을 웃는 것이, 몹시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좀체 입을 열려고 들지 않는 그 동기를 둘러싸고 다함께 주리를 틀어 알아낸 진실은,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주말에 애인의 집으로 가서 묵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걸로 그 동기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뿐이라면 다른 때와 다를 바도 없어, 그렇게 표정이 풀어질 일은 아니었다.
이놈이 사실은 수백 억짜리 복권에 당첨됐는데 우리들에게 떡고물 한 푼 나눠 주기 싫어서 이러는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른 동기들은 다시 그 동기의 주리를 틀었다. 진실이 하나 더 터져 나왔다.
사실은 그간 애인과 함께 잠자리를 해도 그저 그랬을 뿐이었다, 나는 평범하게 기분이 좋았지만 애인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냥 습관적으로 몸을 섞고서 같이 자곤 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동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동기들의 험악한 분위기에 짓눌려 나머지 말을 토해놓았다.
‘그런데 그저께는 말이야, 뭐가 어떻게 잘 맞아떨어졌는지 몰라도, 걔가 굉장히 흥분하더라고. 다른 때는 안 그랬거든.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나도 더 흥분되고 그래서 평소보다 더……, 뭐 그랬던 거지.’
동기는 그렇게 말하곤 멋쩍게 웃으며 콧잔등을 긁적였다.
뭐야, 정말로 복권 아니었어? 하고 미심쩍게 묻는 동기를 밀어내며, 다른 동기가 말했다.
‘애인이랑 손잡고 같이 천국 구경하고 오느라 수고 많았다. 그래, 아침 밥상은 잘 얻어먹었고?’
‘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 주더라.’
그렇게나 좋았던지 평소에는 과묵하니 말도 별로 없는 녀석이 실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후광처럼, 남자의 자신감이 눈부시게 번쩍인다.
그렇지, 아침 밥상이 어떻게 차려져 나오냐에 따라서 지난밤에 여자가 만족한 정도를 알 수 있다고 뭇 선현들이 흔히들 그러더라, 하고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던 동기들은, 일확천금의 떡고물에 대한 기대가 어긋나자 곧 관심을 잃은 듯 얼마 지나지 않아 화제는 다른 데로 비껴가고 말았다.
정태의는 자신과 사귀고 있는 미청년을 떠올리며, 확실히 열과 성을 다해 밤을 만족시켜 주고 나면 그 다음날 아침엔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 보였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끝내주고 죽여주는 밤을 보냈다 하더라도 자신은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그 밥상이 좀 부럽긴 했지만, 곧 고개를 젓고 만다.
여자든 남자든 몸의 욕구가 빈틈없이 충만하게 채워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정태의는, 이내 뒤이어 따라온 화제인 ‘아침 밥상에 오르기에 더 좋은 것은 한국인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된장국이냐, 아니면 위장에 부담이 덜 가고 산뜻하게 먹을 수 있는 북엇국이냐’의 열띤 토론에 휘말려들어 성욕에서 식욕의 세계로 넘어가 버렸다. 덧붙여 정태의는 담백하고 부담 없는 북엇국 쪽에 표를 던졌다.
***
향수라도 달래라며 숙부가 보내 준 한국 영화 몇 편을 보던 중에 나온 북엇국에서 파생된 기억이 몇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아무렴, 아침 빈속에 먹기에는 된장국보다 말갛게 끓인 북엇국이 낫지, 그러고 보니 아침 밥상을 푸짐하게 얻어먹고 좋아했던 그 동기는 된장국파派였던 것 같은데 요즘도 애인이 푸짐한 밥상에 된장국을 올려 주고 있으려나. 어쩌면 지금쯤은 애인이 아니라 부인이 되었으려나.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먹어 본 지 꽤 오래된 고향의 맛이 떠올라 괜히 입맛이 당겼다. 먹을 것에는 까다롭지 않은 정태의였지만 가끔 옛 맛이 당길 때가 있었다.
나중에 한국음식점이라도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몸을 일으켰다. 먹을 것 생각이 나자,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입술이라도 축여야 할 것 같았다.
식당으로 가자 마침 차를 끓이고 있던 리타에게 청해 시나몬차를 마셨다. 이번에는 수정과 생각이 난다.
숙부가 향수 운운하며 한국 영화를 보내 주겠다고 했을 때엔 웬 향수, 하고 뜬금없이 여겼던 정태의였지만 한 번 생각이 떠오르고 나자 음식이 좀 그리워지긴 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수정과 생각까지 나는 걸 보니 많이 그리운가 보다.
“거참, 애라도 섰나…….”
저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린 정태의는 그 말에 스스로가 화들짝 놀라면서 몸을 움츠렸다.
농담도 해서 될 농담이 있고 안 될 농담이 있다. 이건 명백히 후자다. 상상만 해도 여러 모로 두렵다.
순식간에 소름이 우수수 돋은 팔뚝을 문지르면서, 냉장고에서 맥주를 두세 캔 꺼내어들고 다시 방으로 걸음을 돌리던 정태의는, 어쨌거나 모처럼 뭔가 고국의 맛을 느끼고 싶어져 저녁에는 외식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우선 리타에게 말해서 자기 몫의 저녁은 준비하지 말라고 하고, 또 그놈에게도…….
“애? 거 경사로운 일이군. 병원에 가서 진단은 받고 온 건가?”
묵묵히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던 정태의는, 갑자기 시야를 가로막는 널찍한 가슴을 보고 번뜩 발을 멈추었다.
샤워라도 하고 막 나온 참인지 미처 다 못 닦은 물이 방울방울 맨살 위로 타고 흐르고 있었다.
정태의는 하마터면 코를 박을 뻔한 그 몸에서 두어 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들었다. 짤막한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일레이가 서 있었다.
“벌써 일어났어? 더 자지, 왜.”
정태의는 멀쩡히 길 가다가 육식맹수를 맞닥뜨린 것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지난주부터 집을 비웠다가 어젯밤―정확히는 오늘 새벽 두 시―에 먼지를 다 뒤집어쓴 거지꼴로 돌아온 일레이와, 이렇게 낮에 집 안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게 대략 일주일 만이다.
“샤워를 하고 시원하게 맥주라도 마실까 했지.”
“맥주?”
정태의는 팔에 끌어안고 있던 캔을 하나 내밀었다. 일레이는 곧 그것을 받아들어 그 자리에서 바로 풀탭을 땄다. 목을 넘어가는 소리가 시원하다.
음……, 멀리 있는 저녁의 한식보다는 가까이 있는 맥주가 더 끌리는군…….
정태의도 덩달아 한 캔 뜯어서 몇 모금 넘겼다. 시원했다.
“아, 저녁에 한식을 먹으러 가려고 하는데.”
“한식?”
“응. 갑자기 북엇국이 먹고 싶어서.”
“북엇국? 그게 뭐야?”
“아―그러니까 pollack을 말려서―. ……그런 게 있어.”
“흠? 생선 수프인가?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일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태의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맥주를 주욱 들이켰다.
그때, 지그시 정태의를 내려다보던 일레이는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꺼내었다.
“나 태어날 때에는 난산이라서 어머니가 고생 많이 하셨었다더군.”
“……?”
맥주를 꿀꺽거리던 정태의는 그 갑작스런 말을 들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가끔 맥락에서 튀어 버릴 때가 있단 말야, 이 녀석은.
순식간에 맥주 한 캔을 다 비워 버린 일레이는 빈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며 말을 이었다.
“들어섰다는 게 내 애라면 너도 낳을 때 고생 좀 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
“푸억!!!”
피처럼 아까운 맥주를 뿜어내고 말았다. 그런 뒤로도 한참 동안 기침을 했다. 배 근육이 당겨서 아플 때까지.
자업자득으로 맥주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일레이는, 조용히 한 손으로 얼굴을 닦아내었다. 그리고 비스듬히 정태의를 내려다보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걱정할 것 없어. 어지간한 우량아라도 힘들이지 않고 나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벌어지도록 지금부터 열심히 도와줄 테니까.”
“그……! 애……!”
그런 도움 따위는 추호도 필요 없다고 외치는 게 먼저일지, 애가 설 리가 있냐고 외치는 게 먼저일지 버벅거리는 정태의를, 갑자기 일레이는 훌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짐짝처럼 어깨에 떠메고서 걸음을 돌린다.
“그러잖아도 너를 찾으러 가려던 참이었어, 태이. 새벽에 돌아왔더니 너는 자고 있지, 나도 일주일간 열 시간도 채 못 잤지, 그래서 그냥 자 버렸거든. 이제 정신이 좀 드는군.”
“그, 잠깐, 일…….”
“일주일간 산 속에 박혀 있었더니 아래에 쌓일 대로 쌓여서 아주 묵직해서 아플 지경이야. 가볍게 풀어내면서 땀 좀 흘린 뒤에 저녁을 먹으면 시간도 맞을 테고 밥맛도 좋을 테니 딱 좋군.”
“땀을 몇 시간이나 흘리려고!!”
정태의가 더럭 소리를 쳤지만 일레이의 걸음은 가뿐하게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
오늘이 위험일이라는 걸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일주일 이상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면 이 남자는 언제나 아랫도리가 흉흉해져서 왔다.
가끔 정태의는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과거에 들은 바로는 남자는 열혈 청소년기를 벗어나면 점점 성욕이 줄어든다고 들었다.
정태의는 원래 다소 담백한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에 있을 무렵에는 연인을 사귀면서 육체관계도 제법 즐겼던 터라, 한 일주일 정도야 안 해도 별 불편을 못 느끼는 몸이 되자 역시 나이 탓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일레이와 정태의는 나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러니 정태의가 담백해진 만큼 이 남자도 담백해져야 계산상 옳았다.
그런데.
……그런데……!
젠장, 잠든 동안 빼 둘 걸……. 위험일인 줄 뻔히 알면서 왜 나는 바보 같이 북엇국 따위에 정신이 팔려 있었을까.
정태의는 스스로를 원망했다.
이제는 다리를 벌리고 허리 아래를 허공에 띄운 채 누워서 천장을 쳐다보는 이 멋쩍은 자세에도 익숙해졌다. 이 남자와 시시때때로 몸을 겹친다는 사실에도 익숙해졌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삶 자체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아직껏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건…….
정태의는 누운 채 흘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자신의 쇄골에 입을 대고 자국을 남기고 있는 일레이의 몸 아래로, 보였다.
묵직하게 끄덕거리고 있는 두툼한 살덩이가 보였다.
일주일 동안 산 속에 박혀 고생하면서 살이라도 좀 빠져서 올까 했는데, 오히려 저건 일주일 동안 쌓였다면서 더 커지지 않았나 싶다.
역시 잠든 동안 빼 뒀어야 하는데…….
정태의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후회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여유가 있나 보지. 이제는 좀 익숙해졌나?”
정태의가 딴 생각을 하는 걸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쇄골 아래로 고개를 떨어뜨리던 일레이가 속삭였다. 약간 웃는 것도 같다.
“아니, 그냥 앞으로 닥칠 고난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정태의는 얼른 적당한 말을 주워섬겼다.
아무리 그래도,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일레이가 꽤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온 날이면, 그가 잠들어 있는 동안 슬그머니 그의 침대로 숨어들어가 자신이 그의 욕구를 손으로 한두 번쯤 해소해 버린다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완벽하게 성공하는 건 다섯 번에 한 번 정도, 네 번쯤은 도중에 일레이가 깨어나서 그대로 곤욕을 치르는 꼴을 당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손으로 한 번쯤이라도 빼놓고 나면 체력적으로 견딜 만했다.
처음에는 자다 깨어서 몹시 의외로운 얼굴로 ‘네가 어쩐 일이냐’고 묻던 일레이도, 정태의가 ‘그냥 오랜만에 보잖아, 웅얼웅얼’ 하고 얼버무리길 거듭하자 요즘에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깨어나면 그저 졸음이 묻은 눈으로 피식 웃곤 바로 정태의의 위에 올라타곤 했다.
한 번은 정태의가 아주 약간, 쥐꼬리만큼의 가책이 느껴져서 은근히 ‘너 자는데 내가 마음대로 네 거시기 만지작거리면, 좀 기분 나쁘진 않아?’라고 물었더니 그는 두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먼저 하고 싶어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까 그런 때면 오히려 좋지. 나는 몸의 욕구에 솔직한 성격이 좋아, 태이. 언제든 하고 싶어지면 내가 자고 있더라도 오도록 해. ……네가 점점 더 섹스를 좋아하게 되는 데에 기꺼이 협력해 줄 테니.’
그 말을 하던 일레이의 표정이 사뭇 흐뭇했던 것 같다.
뭔가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긴 했지만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도 그랬어야 했는데, 북엇국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의 몸을 위험으로 내몰아 버린 정태의는 마음의 각오를 다졌다.
정태의가 심호흡을 하자, 문득 일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정태의를 내려다보다가 미묘하게 찌푸린 얼굴로 웃었다.
“아직도 그렇게 힘드나?”
“음……, 안 힘들다고는 말 못하지……. 견딜 만은 해.”
정태의는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안 솔직하게 말하면 초상날 듯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사실, 힘들었다.
그나마, 예전에는 좀 과격하게 한다 싶으면 다음날 병원에 가 볼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는 않았다. 내일은 병원에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도록 힘든 시간이 지나도, 어쨌든 그럭저럭 멀쩡했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적어도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될 만큼은 익숙해졌다’였지, ‘마음 편하게 임전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는 아니었다.
“쯧, 어느 정도나 더 해야 익숙해지는 거지. ……적응력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도리어 적반하장 격으로 혀를 차는 일레이를, 정태의는 무섭게 노려봐주었다.
“그런 걸 밀어 넣는데 출혈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것만 해도 적응력이 엄청나게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러나 생각해 보면 네가 삽입으로 제대로 느낀 적은 없었지.”
“뭐……행위 자체가 싫지는 않으니까 그럼 됐잖아.”
정태의는 어깨를 움츠리며 중얼거렸다.
그나마 다행히 일레이 리그로우라는 남자는 최소한의 매너는 남겨 두었는지, 정태의가 아랫도리가 버거워 하얗게 질려 식은땀을 줄줄 흘려도 혼자만 즐기고 끝내지는 않았다. 끈기 있게 정태의의 앞을 자극해서 그 역시 절정에 이르도록 해 주었다.
게다가 아랫도리가 둘로 찢어질 것처럼 벅차긴 하지만, 알몸에 곧바로 전해져 오는 체온은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비록 앞날이 두려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긴 해도 전체적인 행위가 싫지는 않았다.
어쨌든 자신도 행위를 하는 동안 이 남자가 앞을 주물러서 사정을 하긴 하니까, 욕구가 아예 충족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흠……, 뭐 어쨌든, 좋아. 슬슬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까.”
정태의의 가슴 위를 지분거리던 일레이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정태의는 전쟁에 임할 각오를 굳혔다.
*
정말로 전쟁이었다.
이미 아래쪽을 충분히 풀 만큼 풀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 부피감은 버거웠다. 내장이 빼곡하게 다 들어차고도 모자라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다.
여느 때보다 행위는 더 격렬했다. 아래쪽이 뜨거워 견디기 힘들 때까지 마찰한 끝에, 정태의가 정말로 완전히 정신을 잃고 기절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겨우 일레이는 절정을 맞았다.
그러나 기절하기 직전이라고 해 봐야 이미 몇 초쯤의 짧은 기절은 몇 번이나 거듭한 뒤였고, 정태의는 세상에 이 이상 격렬한 운동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침대 위에 시체처럼 뻗었다.
아래에 감각이 없었다. 혹시 이번에는 오랜만에 병원에 가 봐야 할까 말까 걱정을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 건 아닐까.
아래를 더듬어서 출혈 사태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사실은 머리부터가 몽롱했다. 사흘쯤 밤을 새워 일한 뒤 술을 한 말쯤 퍼마신 것 같다.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깜빡 정신을 놓았다가 눈을 뜨자 일레이는 엎드린 정태의의 위에 엎드려 있었다. 몹시 무거웠지만 그 감각조차 머리로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한 발 빼고 나니 좀 낫군. ……벌써 뻗으면 곤란한데.”
등 뒤에 엎드린 무거운 근육덩어리가 중얼거렸다.
더 할 작정이면 차라리 날 죽여라……, 정태의는 깜빡깜빡하는 머리로 얼핏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정태의에게, 마치 꿈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그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늘 새벽에는 왜 안 왔어. 일주일 만이라 너도 제법 쌓였을 테니 슬슬 몸이 근질거릴 줄 알았는데.”
“그러게……, 갔어야 하는데 안 간 내가 바보지…….”
이렇게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질 정도로 격렬하게 당할 줄 알았더라면 만사 젖히고라도 갔을 텐데.
“흠……? 마치 의무적으로라도 왔어야 한다는 말투군.”
정태의는 웃음 섞인 그 목소리를 몽롱하게 들으며 혼곤한 피로에 취해 조그만 목소리로 흑흑 서럽게 두어 번 울다가 한숨을 쉰다.
머리에서 핏기가 다 가신 것 같았다. 머리에 있던 피가 손발로 다 갔는지, 납을 매단 것처럼 손발이 무거워 움직일 수가 없다. 피가 안 돌아서 머리도 안 굴러간다.
그래서, 정태의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망발을 해 버렸다.
“가서 미리 손으로 두세 번 빼 놨어야……내가 몸 고생을 덜했을 텐데…….”
그 말을 하고 다시 울먹울먹 훌쩍이다가 깜빡 잠든다.
정신을 잃고 잠든 시간은 고작해야 몇 초쯤일 텐데, 다시 희미하게나마 의식을 차리자 어쩐지 조용했다. 분명히 등 뒤에 무겁게 얹혀 있는 체중은 느껴지는데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놈도 잠들었나……, 무거워…….
끙끙거리며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머리는 몽롱했고 몸은 무거웠고 실린 체중도 막중했다.
답답하지만 깔린 채로 자야겠다, 혼곤한 머리로나마 그렇게 생각하며 정태의가 다시 의식을 놓으려고 했을 때였다.
“……아하……. 그래서, 내가 조금 오래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면 꼭 내가 잘 때 침대로 들어와서 내 물건을 만지작거렸던 거였군……?”
나직하고 위험스런 목소리가 마치 지옥 밑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귓가에 와 닿았다.
그 순간, 정태의는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대로 된 사고를 흐트러뜨리던 노곤함도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감이 좋달까, 이미 생존 본능만큼은 투철하게 단련된 정태의는 자신에게 뭔가 아주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잠깐……, 일레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했지?”
자신이 뭔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얼른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정태의는 맑게 갠 정신으로 눈을 깜빡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냉랭한 웃음이 감도는 혼잣말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나는 또, 네가 몸에 부담이 되더라도 오랜만에 나를 보니까 반가워져서 나랑 즐기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지…….”
“어……응?”
정태의는, 여전히 그 무거운 몸에 짓눌려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눈동자만 불안하게 데굴데굴 굴리며 반문했다.
“안됐군, 태이, 오늘은 미리 빼 두지 못해서. 덕분에 나는 아직도 아래에 힘이 충분히 남아 있단 말야. 몇 번 정도로는 시들지도 않을 것 같아. ……그럼 천천히, 다시 가 보자고.”
“어……?”
어설프게 대답한 정태의는, 바로 다음 순간 깨달았다.
전쟁은 시작되지도 않았었다는 사실을.
*
“악……, 아, ……아, 아, 아, …….”
목이 쉬어서 신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랫도리가 얼얼했다. 아까부터 끊이지 않고 계속 드나드는 살덩이 때문에 입구가 틀림없이 부어올랐을 것 같았다.
지치고 고단한 머리는 이미 다시 반쯤은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머지 반은 자신의 위에 엎드려 있는 남자 때문에 생생하게 현실로 끌려와 있어야 했다.
“아래에 힘 빼, 태이. 슬슬 넣을 테니까.”
이렇게 말하는 일레이는, 이미 넣고 있는 상태였다.
뭘 넣어, 이미 들어올 만큼 다 들어왔는데 더 어떻게 넣어, 그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입이 바싹 말라 말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아래쪽으로, 뭔가 비집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일레이의 무시무시한 물건으로 가득 차, 그가 조금이라도 더 부풀리면 틀림없이 찢어지고 말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그곳으로, 딱 맞물린 틈새를 비집으며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뭐, ……뭐, 가…….”
정태의가 허덕허덕 숨이 넘어갈 것처럼 겨우 중얼거렸지만, 일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미 온 내장을 빡빡하게 채우고 있는 그의 끔찍한 성기와 내벽 사이로 억지로 공간을 만들며 벌리고 들어온 그것을, 살짝 움직였다.
아아, 손가락이다.
까무룩하게 정신이 넘어갈 것 같은 상황에서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정태의는 왈칵 울음이 나왔다.
“이 빌어먹을 놈아……, 네 물건만 집어넣어도 나는 저승길을 왔다갔다하는데, 너는 손, 손가락까지, ……이 나쁜…….”
아래가 찢어지고 숨이 넘어가더라도 욕을 해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욕설은 특히나 또렷한 발음으로 말을 하면서 정태의는 펑펑 울었다.
“힘 빼! ……찢어지진 않았어. 아슬아슬해 보이긴 하지만. 어디……, 좋아, 그대로 힘 빼고 있어, 그대로.”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오히려 힘 빼라고 준엄하게 소리친 일레이는, 정태의가 그 엄청난 압박감으로 숨이 넘어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듯이, 신중하게 손을 움직였다. 입구를 비집어든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내벽을 덧그리며 움직였다.
오늘은 틀림없이 죽고 말 거다, 아니 최소한 병원행은 결정 났다, 그렇게 생각하며 숨이 턱턱 막히는 압박감으로 밭은 숨을 겨우 내쉬고 있는 정태의의 귀에, 일레이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말이지, 태이. 사실 나는 네가 답답했어. 네 몸속이. 지나치게 좁았거든. 그런 만큼 세게 조여 주긴 했지만 내가 마음껏 즐기기엔 너무 좁았단 말야. 그렇다고 여태 다른 인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밑이 찢어지든 내장이 망가지든 상관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박아 대기도 안 내켰고. ……게다가 내가 잘 때에도 내 물건을 붙잡고 보챌 정도로 이 녀석이 나와 섹스하는 걸 점점 더 좋아하기 시작한 모양이니 한동안은 좀 참아 줄까,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
“너도 네 몸 편하자고 그랬던 거라면 나도 내 몸의 편의를 좀 도모해서, 지나치게 좁은 것부터 좀 넓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태의는 울었다. 몸도 마음도 펑펑 울었다.
말실수를 한 자신이 가장 원망스러웠고, 그 다음으로는 아무리 정태의가 흑심을 품고 침대로 좀 숨어들어갔었기로서니 이렇게까지 사람 몸을 괴롭히는 이 남자가 원망스러웠고, 마지막으로는 아랫도리를 빡빡하게 넓히며 파고들어 있는 저 인간 같지 않은 살덩이가 원망스러웠다.
아래가 찢어지거나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레이는 손을 움직였다. 몸속에서 빈틈없이 들러붙어 있는 성기와 내벽 사이를 살짝살짝 벌리면서 공간을 만들어 갔다. 그래 봐야 손가락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꼭 맞붙었지만.
유혈사태로 인한 아픔은 없었다. 그러나 언제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벌어져 있는 몸을 두드리는 압박감에 숨을 잘 쉴 수가 없었다. 뱃속을 살덩이로 꾸역꾸역 다 채워넣는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몸이 벌어지는 느낌.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 학생 때에 단체 기합을 받을 때 박달나무 몽둥이로 허벅지를 수십 대나 있는 힘껏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서 거의 걸을 수가 없었을 때에도 울지는 않았는데, 이런 류의 압박감은 생리적으로 참을 수가 없었다.
손가락은 아주 조금씩이나마 점점 더 여유롭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몸속의 압박감은 줄어들지 않고 여전했지만, 그래도 내벽을 누르며 벌려 대는 손가락에 여유가 생겼다는 건 알겠다.
“딱 내 마음에 들 정도까지만 벌어지면, 태이, 너도 덜 힘들어질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울지 마. 너도 좋아지는 거니까.”
“뭐, 야, 그게…….”
정태의는 울먹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손가락과 함께 몸속을 드나드는 성기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아랫도리가 얼얼하게 감각이 없을 만도 했다.
일레이가 정태의에게 삽입한 뒤로 벌써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기분상으로는 족히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되지 않겠지만―, 도무지 나갈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아니, 나가기는커녕, 분명히 엄청나게 발기해서 부풀어 있는데도 어찌된 셈인지 끝을 맺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놈이 이상한 약이라도 먹은 거 아냐……하고 아련한 머리 한구석으로 생각하는데, 그의 혼잣말이 들렸다.
“이제 슬슬 왼손 엄지까지 마저 넣어서 벌려 볼까…….”
“……!! 그, 그러지 마!!”
잠시 아련해지고 있던 정신이 다시 확 들었다.
머리털이 주뼛 서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정태의는 체면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울며 매달렸다.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다시는 네가 잘 때 지분거리지 않을게, 울음과 애원이 뒤섞여 정태의 자신이 들어도 알아듣기가 힘든 말이었지만, 그 뜻만큼은 전해졌는지 비좁은 입구에 막 손가락을 하나 더 걸치려 하던 일레이는 그 손을 멈추고 있었다.
“난, 그것까지 넣으면 정말, 정말, 죽어 버릴 거야……, 정말로 그냥 콱 죽어 버릴 거라구…….”
슬프게 흐느끼는 정태의의 위에서 지그시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힘들고 슬퍼서 정태의는 훌쩍훌쩍 울었다.
이윽고 천천히, 몹시 아쉬운 듯이 막 몸속으로 파고들려던 다른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그제야 정태의는 히끅거리면서 그렁그렁 눈을 떠 일레이를 쳐다보았다.
어린애처럼 섧디섧게 울면서 손등으로 연신 눈가를 훔치고 있으려니, 낮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일레이가 혀를 차더니 한숨을 내쉬곤, 조용히 말했다.
“이래 봬도 나는 매우 낙담했다고, 태이. 나는 네가 내 페니스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 같아서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는데.”
“…….”
우는 와중에도 뭐라고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를 말이었다.
“나와 같이 지내면서 네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게 이 물건이니까, 이걸 좋아하게 된다면 나머지는 말할 나위도 없을 테니.”
“……. …….”
아니, 그건 아냐……,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 예전에는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한 건 그 물건보다는 오히려 네 성격이었어…….
그러나 도무지 그런 말을 할 분위기는 아니라서, 그리고 히끅거리는 목으로는 말을 할 수도 없어서 정태의는 입을 다물었다. 게다가 저 말만 듣고 생각해 보니 자신이 진짜로 몹쓸 짓을 한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도 봐, 너는 그런 식으로 결국은 나를 휘두르지.”
언짢은 듯 중얼거린 일레이는, 다시 한 번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몸속을 억지로 벌려 대고 있던 손가락을 마저 끄집어내었다. 주르륵, 질척거리는 느낌과 함께 부피감이 줄어든다.
갑자기 한결 몸이 편해진 것 같았다.
부풀대로 부풀어 몸속에 남아 있는 물건은 그대로인데도, 다시 짤막하게나마 숨을 쉬기가 편해진다.
정태의는 그제야 생리적으로 끊임없이 밀려나오던 눈물이 좀 잦아들어, 일레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빨개진 눈을 보고 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곧 그는 다시 무거운 얼굴을 하더니, 정태의를 와락 끌어안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프도록 세게 짓씹는 이에서, 그가 정말로 속이 뒤틀렸다는 게 느껴졌다.
문득 가슴속이 초조해졌다.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태의는 자신의 입술을 깨물고 있는 일레이의 두 뺨을 양손으로 감싸쥐고 억지로 약간 떨어뜨렸다. 그리고 바로 코앞에 있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힘들게 허덕거리면서도 분명하게 말한다.
“너는, 오해하고 있어.”
일레이는 설핏 눈살을 찌푸린 채 내려다보기만 했다.
정태의는 먼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굳게 결심한 듯 입을 꾹 다물곤, 아래에 힘을 주었다. 아래를 비집어 들어 자리 잡고 있던 물건을 꾹 조인다.
순간 아찔한 아픔이 현기증처럼 스쳐갔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느껴졌다. 몸속에 이 남자가 담겨 있다. 지금 분명하게 이어져 있었다.
아파서 찔끔 눈물이 새어나온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널 싫어했더라면, 아니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더라면, ……내가 왜 이런 짓까지 참으면서 여태 네 곁에 있었을 것 같아……!”
눈을 부릅뜬 채 부루퉁하게 말하자, 일레이는 잠시 미동도 없이 정태의를 바라보았다.
문득 그가 가만히 시선을 돌리는가 싶었다. 시선을 마주칠 수 없기라도 한 듯이 잠시 허공에 시선을 헤매던 그는, 어느 순간 갑자기 정태의를 부둥켜안았다.
겨우 다시 숨을 좀 돌렸나 했는데, 도로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로 거세게.
등을, 허리를 있는 힘껏 끌어안는다. 뼈가 부러질 것 같아 진심으로 걱정될 만큼.
그러면서 동시에, 몸속에 담겨 있던 물건이 다시 거세게 추삽질을 시작했다.
정태의는 간신히 몸을 바둥거려 호흡을 확보한 뒤에야, 그 추삽질에 덩달아 흔들리는 허리 아래의 감각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놀라고 말았다.
아아, 아까 했던 말이 아주 빈말은 아니었구나. 거의 비등비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손가락 하나로 벌려 놨던 만큼의 여유는 일시적으로나마 늘어났는지, 아주 조금은 견디기 편했다.
정태의는 저절로 긴장되어 온몸을 굳히고 있던 힘을 조금 뺐다.
한참 동안 그의 성기가 몸속에서 나오지 않고서 담긴 채 조금씩 안을 적셔 준 덕분인지, 이미 몸속은 질퍽하게 젖어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몸속은 뻑뻑하고 벅찼지만 그 흥건한 물기와 함께 아주 조금이나마 벌려 놓은 여유 때문에, 그 무지막지하기만 하던 물건이 여느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드나든다.
질퍽질퍽, 그의 샅이 정태의의 엉덩이를 두들길 때마다 끈적한 소리가 났다. 겹쳐진 입에서도 타액이 뒤섞이는 조그만 소리가 난다.
그때, 일레이가 뭔가 중얼거린 것 같았다.
너무나 작은 혼잣말이라 알아들을 수 없었던 그 중얼거림은, 몇 번이나 끊임없이 거듭됨에 따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태이. ……태이. ……태이.
그 말만 끝없이 거듭된다.
일순 정태의는 숨을 멈추었다. 잘못 들을 리 없는 그 이름에 다시 귀를 기울이면서.
바람소리처럼 조그맣게 귀를 스치는 목소리가, 언제부터인가 아래와 위에서 질척이는 물소리와 섞여들었다.
갑자기 귀에 들리는 그 모든 소리들이 더없이 음란하게 들려, 문득 정태의는 가슴이 뜨끔해졌다.
“……?!”
일순간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가슴이 뜨끔한 건 처음이었다.
정태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몇 번 심호흡을 했다.
잠깐, 설마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복상사는 아니겠지……, 아니 내 경우는 복상사라고 할 수는 없나.
잠시 걱정을 하며 숨을 죽였지만 그 뒤로는 아무렇지 않았다.
정태의가 다른 생각을 하면 늘 귀신처럼 알아차리는 일레이가, 갑자기 허리를 세게 추어올렸다. 퍼억, 물기 때문에 미끈거리는 살덩이가 뱃속을 후려쳤다.
“……!!”
아, 입모양만으로 짧게 신음을 흘린 정태의는, 불현듯 눈을 크게 떴다. 그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뭔가, 이상하다. 또 가슴이 뜨끔했다. 그런데 가슴이 아닌 것 같다. 가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좀 더 아래……, 아니 온몸…….
정태의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그 뜨끔한 감각이 찾아들었다. 이번에는 좀 더 세게, 숨이 막히도록.
“……? ……??”
그 감각이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정태의는 알 수 없었다. 찬찬히 따져 봐야겠다고 생각할 즈음에는 이미 점차 짧은 간격으로 치밀던 그 뜨끔한 감각이 쉴 새 없이 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 느낌은 꼭…….
정태의는 정신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거세고 격렬해진 그 감각 속에서 더없이 당혹스러워졌다.
이런 느낌을 정태의는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같지는 않았다.
이보다 훨씬 완만하고 온건한 느낌이라면 뭔지 안다. 하지만 지금의 이 감각은, 비슷한 종류이긴 하나 그에 비할 수 없이 강렬하고 숨 막혔다. 이런 감각은 처음이다.
뭐가 뭔지 알 수도 없이 온 머릿속까지 다 뒤흔들어 놓는 듯한 감각 속에서, 정태의는 자신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연달아 터져나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울음소리와도 비슷하고 신음소리와도 비슷하고 웃음소리와도 비슷한,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목소리다. 귀를 막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 때문에, 혹은 갑자기 뜨거워지는 몸 때문에, 얼굴까지 달아오른다.
그때였다.
정태의가 의아하고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몸속을 두들기던 움직임이 멈추었다.
아득하던 시야가 조금이나마 돌아오자, 바로 눈앞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일레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 역시 정태의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의아하고 당혹스럽고 놀라운 얼굴이다.
똑같은 표정 둘이 서로를 마주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그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변화가 생긴 쪽은 일레이가 먼저였다.
그의 얼굴 위로 천천히, 천천히 웃음이 번져 갔다. 금세라도 커다랗게 웃음소리를 터뜨릴 것만 같은 웃음이 그의 표정 위에 나타났다.
얼어붙은 것처럼 멈춰서 서로 바라보고만 있던 가운데, 갑자기 일레이는 허리를 툭 추어올렸다. 동시에 정태의는 저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터뜨렸다. 조금 전의 그 부끄러운 목소리다.
그제야 정태의는 한 발 늦게, 그 목소리의 이유를 깨달았다. 이미 온몸을 휘감아 버린 그 격렬한 감각의 정체도.
“어…….”
몇 번인가 눈만 깜박거리는 사이에, 정태의의 얼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넋 나간 듯 멍한 얼굴 그대로, 빛깔만 빨갛게 익는다.
“태이. ……태이.”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몸이 떨렸다.
일레이는 다시 정태의의 몸속을 두들기기 시작했고, 정태의는 점점 더 볼썽사나워질 게 뻔한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일레이의 목을 세게 끌어안아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그 저릿한 감각에 숨이 막혔다. 몸속이 통째로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
언제 이런 감각을 느껴 봤을까.
아득하게 겁이 날 정도로 휘몰아치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이 감각의 파도 속에서, 정태의는 오로지 일레이의 목만 꼭 끌어안고 매달렸다.
이윽고 몸속에서도 내벽을 밀어내며 빡빡하게 부풀어오르던 살덩이가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팍 터졌다. 몸속에 뜨거운 물줄기가 왈칵 터져나온다.
그와 동시에, 정태의 역시 아래가 뻣뻣해졌다. 뜨거운 열기가 아래에 모여들며 부르르 흔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눈앞이 하얘졌다. 머릿속도 하얗게 수백 수천의 플래시가 터진다.
어쩌면 소리를 질렀는지도 몰랐다. 울었는지도 모르고, 몸부림을 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인식하기 전에 정태의는 긴 한숨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
눈을 뜨고 난 뒤에도 한동안 자신이 눈을 떴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눈앞에 흐릿하게 보이는 협탁만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다.
이윽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하자 처음으로 제대로 보인 것이 협탁 위의 시계였다.
《 9 : 46 》
9시 46분……. 형광등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니 밤이다.
시간 감각이 완전히 없어진 머리에 그 숫자와 함께 밤이라는 인식을 집어넣으며, 정태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자다가 깨어날 만한 시간이 아닌데, 자신은 왜 자고 있었을까.
어쩐지 몹시 나른하고 멍한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며, 정태의는 몸을 뒤척였다.
“……!!”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자신이 왜 여태 정신을 잃고 늘어져 있었는지.
아랫도리가 뻐근했다. 몹시 뻐근했다. 아니, 실낱만큼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허리 아래가 없는 것처럼.
손가락을 까닥거려 보자 손은 문제없이 움직였는데, 다리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걷기는커녕 침대에서 나가지도 못하겠다.
정태의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나?”
정태의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아무런 기척도 없어서 혼자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뒤에서, 그것도 제법 가까운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천천히 고개만 돌려 돌아보자, 침대 옆의 의자에 일레이가 앉아 있었다.
책을 읽던 참이었는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고 안경을 벗으며 일어선 그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지그시 정태의를 내려다본다.
“기분은 좀 어때.”
“……. 나른해. 노곤하고. 머리가 멍해. ……좋아.”
잠시 망설이다가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이자 일레이는 가만히 웃었다.
“기억은 다 나지?”
“……, 어…….”
정태의는 웅얼웅얼 대답하며 슬그머니 이불을 끌어올렸다. 코끝까지 덮은 이유는, 또 낯부끄러운 얼굴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옆에서 일레이는 피식피식 웃기만 했다. 어쩐지 그 웃음이 좀 바보웃음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여태 그와 관계를 가지면서, 그때마다 나름대로 사정은 했고 그에 따른 쾌감도 얻긴 했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그 느낌은, 그보다 훨씬, 비할 수도 없이 더욱―.
“…….”
정태의는 이불을 좀 더 끌어올렸다. 아예 이마 위까지 덮어 버렸다.
그런 뒤에도 한동안 옆에서 웃는 기척이던 일레이는, 정태의가 이불 속에서 숨이 답답해질 지경이 되자 그제야 이불을 끌어내렸다.
다시 얼굴이 마주치자 좀 멋쩍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마주보았다.
일레이는 뭐가 우스운지 다시 피식피식 웃다가, 그나마 고맙게도 다른 화제를 꺼내어 주었다.
“아까부터 꼬박 깨지도 않고 잤으니까 배가 고플 텐데, 뭔가 먹어야지.”
“응? ……어. 그러고 보니 조금 출출하네.”
그 말을 듣고서야 정태의는 허기를 느꼈다. 몸이 고단해서 그런지 별달리 식욕은 없었지만 배는 고팠다.
그리고 그제야 문득, 코를 스치는 냄새를 깨달았다.
“어? 이 냄새는…….”
정태의가 의아하게 중얼거리자 일레이는 그 위로 몸을 구부려 정태의를 부축해 일으켜 앉혔다. 앉는 순간 엉덩이 아래가 저릿하게 욱신거렸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은 했다.
침대머리에 기대어 앉은 정태의는, 그제야 그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엄청나게 커다란 쟁반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쟁반 위에 빼곡하게 들어선 수많은 접시며 그릇들.
“급하게 마련해 오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솜씨가 좋다는 한식집을 수소문해서 사 왔어.”
일레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훌쩍 들어다가 정태의의 앞에 내려놓은 쟁반은, 온갖 그리운 고국 음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쟁반의 한가운데에는, 큼직한 대접에 한가득 담겨 있는 노르스름한 국물.
“네가 먹고 싶다고 했던 게 이것 맞지? 많이 먹어. 더 있으니까. 또 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봐.”
“어……, 아냐, 고마워. ……와아.”
갑자기 눈앞에 현란하게 펼쳐진 고국 음식 모음전에, 정태의는 조그맣게 감탄했다.
한 젓가락씩만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푸짐하게 놓인 그 음식들은, 정태의가 좋아하는 것들뿐이었다.
정태의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들어 일레이를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먹으려니까 너무 좋다. 입맛이 막 도는데. 고마워. ……그런데 오늘 무슨 날이야? 뭘 이렇게 푸짐하게…….”
정태의는 젓가락을 집어들며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숟가락으로 북엇국을 떠서 한 숟갈 마신 뒤에야 정태의는 의아하게 일레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레이는 웃고 있었다.
미묘하게 웃고 있었다.
기분 좋고 시원하게, 그러나 어딘지 미묘하게.
“오늘……좋은 날이지.”
“……어…….”
정태의는 뭔가 미심쩍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나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향기로운 음식 냄새에 넘어가 다시 부지런히 수저를 놀리기 시작했다.
입맛이 없었는데, 먹기 시작하니까 의외로 많이 들어갔다. 게다가 어디서 사왔는지 음식이 다들 맛있었다.
한동안 넋을 잃고 먹고 마시던 정태의는,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나자 그제야 자신을 지그시 지켜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 흘끔 눈길을 주었다.
일레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음식들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웃음 짓는다.
“더 먹어.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갖다줄 테니까.”
“어, 아냐. 이 정도면 충분해. 벌써 배가 부른데.”
“그래? 많이 먹고 힘내야지. 앞으로도 계속.”
일레이는 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휘어지는 눈매가, 맛있게 밥을 먹는 정태의를 몹시 흐뭇하게 바라본다.
“…….”
갑자기 그 순간 정태의는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푸짐한 음식들을 갖다주는 마녀 앞에 놓인 헨젤이 된 기분이었다.
정태의가 머뭇머뭇 수저를 내려놓고 물까지 마시고 나자, 일레이는 쟁반을 치웠다. 그리고 정태의의 옆에 바싹 다가앉더니, 눈가에, 뺨에, 입가에 살짝살짝 입을 맞춘다. 낮고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태이. 아까, 아주 좋았어. 여태껏 중에 제일.”
“……어……, 나도…….”
짧은 고민 끝에 일단은 진실을 대답한 정태의는, 그 순간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황홀한 밤을 보내고 나면 그 다음날 아침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호화롭게 차려진 아침상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지난밤의 환락에 대한 대가인 것만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런 환락을 더 맛보아야겠다는 내심의 표현이기도 했던 것이다.
“…….”
정태의는 다시금 물끄러미 일레이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왜 그러냐는 듯한 눈길을 보낸 일레이는, 정태의가 대답하지 않자 곧 상관없다는 듯 입맞춤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폭포수 같은 입맞춤 세례 속에서, 정태의는 뭔가 석연찮은 암울함이 잠시 어른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렴 어때.
솔직하게 말해서 아까 분명히 정태의는 극락을 맛보았다.
그런 감각은 여태 한 번도 맛본 적이 없이, 처음이었다.
무서울 만큼 머릿속과 몸속이 무아지경에 가까운 쾌감에 휩쓸렸던 그 감각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몸속이 욱신거릴 정도였다.
다시 맛볼 수 있다면, 정태의도 좋았다.
그러니까 음식 속에 담겨 있는 일레이의 속셈이 뭐든, 기꺼이 먹어 줄 수 있었다.
“아니지……, 혹시 이건 내가 일레이한테 부지런히 먹여야 하는 상황인 건가……?”
정태의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잠시 눈매를 찡그리고 고민에 잠겼지만, 자신에게 입맞춤을 퍼부으며 어느새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는 일레이의 아래쪽이 슬그머니 부풀어올랐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화들짝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안 먹여도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열심히 먹어야 하는 게 옳았다. 체력의 차이가 너무나 확연했다.
정태의는 으음, 하고 암담한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되었든 지금 정태의는 나른하긴 했지만 기분이 좋았고, 눈앞에서 몹시 기쁜 기색으로 정태의에게 입 맞추고 있는 일레이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면 그걸로 좋았다.
[bonus track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