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애 딸린 유부녀한테도 따먹힘: 3화
칼디르와 비슷한 금색 빛깔의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가졌으나, 안타깝게도 칼디르의 흉곽에 달린 거대한 지방 덩어리와는 다르게 거유의 축복은 타고나지 못한 빈유 미녀(하지만 엉덩이는 매우 큰).
중견 기업 사장의 딸로 태어났으나 철저히 교육을 받아 고귀한 핏줄을 타고 태어난 이들 못지않은 기품을 뿜어내는 여자.
그 고혹적인 자태로 초거대 기업 가문 출신의 남자 하나를 유혹하여 결혼함으로써 인생을 펴게 되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남편인 테티스 유니온 워싱턴.
이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한나 유니온 워싱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에 대한 평판이었다.
하지만 칼디르의 눈앞에 서 있는 한나의 모습은 일단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벽안이 아닌 것은 기본이요, 기품을 따지기 이전에 제대로 된 속옷조차 입고 있지 않아서 굉장히 천박해 보였다.
“후후, 칼디르...라고 했던가요...? 지금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상이 가는군요...”
칼디르를 향해 관능적인 말투로 말을 내뱉으며 그녀의 속을 떠보는 한나는 신성한 금색 기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꺼먼 흑발을 빨간색 머리끈으로 묶어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나마 몸에 걸친 망사 스타킹과 가터벨트의 색깔과 똑 닮아 있었다.
그런데... 팬티를 입지 않은 바람에 칼디르를 만나자마자 조금 젖어버린 보지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상태에서 스타킹과 가터벨트가 다 무슨 의미란 말인가. 칼디르는 한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자신도 그리 떳떳한 입장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그녀에게서 눈을 피하는 것을 포기했다.
“흐음, 초면에 꽤나 건방지시군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는데, 당연히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해야 할 것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영부인을 어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저, 봐라. 한나도 눈을 피하지 말라고 눈치를 막 주지 않나. 우리나라의 높으신 분들과 독대할 때도, 테티스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주눅 들지 않았건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손바닥에 땀이 쥐어진다.
적어도 그 사람들은 남자라서 나도 모르게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야릇한 살 냄새에 유혹당해 내 몸을 덮치려고 들 일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같은 여자에게 치명적인 냄새를 지우지도 않고 몸에 간직한 채로 여자와 독대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저절로 연상되어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두려운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배꼽 아래쪽에 새겨진 자궁 문신의 형태와 비슷하게 ♥ 형태로 깎은 한나의 빨간색 보지 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건... 머리카락 색깔도 아니고 눈동자 색깔과 깔맞춤을 해놓은 걸까.
으레 보지 털이 나지 않은 체질이라 보지 털을 그런 식으로 관리해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칼디르에게는 나름대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망사 스타킹은 조밀하지 않고 구멍이 제법 커서 한나의 포동포동한 다리 살이 사이사이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모습이 보인다.
가터벨트는 그런 스타킹의 끝을 잡아 허리춤에 매어진 끈에 연결하여 고정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속옷 색깔은 죄다 빨간색으로 맞춰놓고 저기 방 한구석에 산타 모자가 놓여 있는 걸 보니 그녀의 남편인 크리스마스 산타 걸 코스프레를 하고서 쥬지를 짓밟아달라는 요구를 하기라도 했나 싶어진다.
사람 손가락보다 얇은 가터벨트 끈으로 장식된 골반은 나의 순산형 골반과 비교해 보아도 전혀 꿇리지 않은 정도로 컸는데, 움푹 들어간 허리에서 나와 허벅지살로 다시 들어가는 곡선의 매력이 매우 치명적이었다.
시선을 다시 위쪽으로 돌리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복근은 없으나, 군살 한 덩이 없이 매끈한 배가 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조금 전에 봤던 자궁 문신도 다시 눈에 보인다.
한나의 아랫배에 새겨진 자궁 문신은 칼디르의 아랫배에 새겨진 그것과 비교할 때 크기와 형태는 달랐지만, 새겨지게 된 경위나 그 용도는 비슷해 보였다. 여자들의 몸에 음란한 문장을 새겨놓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서큐버스와의 만남.
다만 마조 본능을 타고 태어나서 아랫배에 세겨진 자궁 문신을 지울 생각이 아예 없는 칼디르와는 다르게, 남편의 도움을 받으면 언제라도 서큐버스가 남기고 간 것을 지워버리고 당사자에게 피의 복수까지 할 수 있는 한나가 아랫배에 있는 그것을 지우지 않은 것은 상당히 뜻밖의 일로 다가온다.
“어째 나랑 만난 뒤로 이렇다 할 말도 하지 않고 내 몸만 그렇게 뚫어지라 쳐다 보는 것이... 너도 내 몸에 관심이 많은가 보구나? 후훗, 귀여운 아이야. 나도 네 몸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단다.”
한나는 칼디르를 향해 추파를 던지면서 굳이 물어보지도 않은 것- 자궁 문신을 각인 당하고, 금발벽안의 아리따운 미녀에서 흑발적안의 음란한 변녀가 된 사연-을 설명해주려고 들었다.
“아니, 그, 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칼디르가 거절의 의사를 내비쳐도 한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 하나로 칼디르의 턱을 들어 올리면서 할 말을 했다.
“어허, 여기까지 와서 시치미 뗄 거야? 나는 네가 동성애자에 마조히스트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단다?”
움찔. 아직 증거는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한나에게서 정곡을 찔린 칼디르로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한나가 지금처럼 된 데는 그렇게까지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칼디르가 아랫배에 그런 걸 새기고 다니게 된 것도 공주님의 손길을 뿌리치고도 남을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분에게 당할 것이 기대되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본래 신실한 교인으로서, ‘그날’도 자주 다니는 성당 안에 홀로 남아 기도를 올리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고... 지나가던 서큐버스가 우연히 그녀를 목격하고는, 그녀의 아리따운 얼굴과 때 묻지 않은 순결에 반하여 그만 그녀의 아랫배에다가 음란 창녀로 타락하게 되는 저주를 내리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저도 모르는 새 아랫배에 자궁 문신이 새겨지게 된 한나는 으레 ‘성’에 관해서는 하나도 모르던 풋풋한 소녀에서 서서히 음란한 창녀 쪽으로 성격이 변하게 되었는데, 남편... 아니, 생체 딜도 1호 테티스와의 첫 만남도 이때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그녀는 서큐버스의 힘에 완전히 침식당해 금색 빛깔을 잃고서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흑발적안의 변녀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래서 서큐버스, 즉 여자 서큐버스 사회의 암 노예로서의 정체성을 각성하기 전까지는 그녀의 눈에도 보이지 않던 자궁 문신이 그때부터는 아랫배에 또렷이 모습을 드러내 한나가 음란한 창녀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사실 이제 와서는 아랫배의 자궁 문신을 빼고 봐도, 그녀는 충분한 변녀라고 할 수 있었다. 서큐버스가 남기고 간 저주 때문에 제대로 된 옷을 걸치고 다니면 답답하다는 핑계로 국부를 조금도 가려주지 않는 아주 음란한 란제리 속옷만을 고집하고, 테티스와 더불어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고어 플레이를 즐겨온 그녀였기에.
그랬다. 한나가 지금 노브라 노팬티에 스타킹+가터벨트+유두 피어싱이라는 파격적인 차림으로 나타난 것은 그녀가 만나 볼 사람이 그녀와 똑같은 래서 서큐버스, 칼디르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칼디르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언제나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서 자신의 치부를 눈에 담아두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시선을 피하려고 드는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고는 하였다.
변태적인 취미 외에도 그녀가 굳이 그렇게 다녀야만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그녀의 주인 되시는 서큐버스님이 남성의 양기를 한데 모아 양기의 구슬을 만들고, 여성의 음기를 한데 모아 음기의 구슬을 만든 뒤에 그 둘을 하나로 합친 음양옥을 자신에게 가져다 바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입고 벗는 데 시간을 잡아먹는 보통 옷들보다는 입은 채로 바로 박을 수도 있고, 비빌 수도 있고, 겸사겸사 눈요기도 할 수 있는 란제리 차림이 그 명령을 수행하는 데 유리한바, 사람의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창녀의 차림을 고집하기 시작한 버릇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니 그게 바로 한나의 현주소였다.
지금의 한나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타브급 초능력자인 테티스를 생체 딜도 삼아 양기 구슬 제작만큼은 목표했던 것을 한참이나 초과 달성할 수 있었으나, 여태까지는 서큐버스의 욕구를 충족할 만큼 아리따운 여자를 만나지 못해 음기의 구슬 제작에는 손도 대지 못했던 것.
하지만 칼디르의 매력을 알게 된 순간, 한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저 아이와 함께라면 주인님의 명령을 이른 시일 내로 달성할 수 있겠구나.
내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면서 재미까지 챙길 수 있다면 그 길을 걸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이제 내 사정은 대강 이해했지? 네가 나를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글, 글쎄요... 제가 그 일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그... 이만 연락이 올 곳이 있어서 오늘은 가봐야 할 것 같...”
한나가 해주는 이야기를 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끈기 있게 들어주고 난 칼디르가 딴소리를 하며 도망치려고 하자, 한나가 어림도 없다는 듯이 칼디르의 약점(동성애 성향)을 집대성한 콘돔형의 USB를 한 손에 쥐고는 거기에다 대고 입술 키스를 쪽 날리며 칼디르를 지긋이 바라본다.
“아까 분명히 내가 말했지. 네 약점을 훤히 꿰고 있다고. 설마, 내가 말을 좀 높여줬다고 너랑 네가 동등한 선에 서 있는 줄 알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그... 원, 원하시는 게 뭡니까...”
칼디르가 뭔가 반론을 펼치려다가 이내 체념하고는 자기 뜻에 따르겠다는 식으로 대답해주자, 한나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이야기가 좀 통할 것 같구나. 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나랑 한동안 같이 다녀줬으면 해. 데이트...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