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총통경호 친위대 칼디르 아스트라(LSSKA): 7화(END)
칼디르의 본체가 성적 쾌락에 취해 몇날 며칠을 암퇘지처럼 울어대는 동안에도 분신체는 대규모 부대를 효율적으로 이끌었고, 오랜 전쟁으로 단련된 정예병들은 그녀의 지휘에 따라 목표로 삼은 지역을 실시간으로 탈환해 나갈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늘어가는 것은 아틀란티스의 품 안으로 돌아오는 행성의 개수뿐만은 아니었다. 일주일은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칼디르가 대예언자다!’라는 소문을 믿는 이들이 증식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개 부대의 주둔지 정도를 알아내는 것 정도면 몰라도, 루시드 놈들이 우리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분대 단위로 맞춰버린다니, 이게 예언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내 말이 그 말이네. 육군원수님은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직접 보고 나니 새로 오신 사령관님께 예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구만.”
“칼디르그녀는신인가?칼디르그녀는신인가?칼디르그녀는신인가?칼디르그녀는신인가?”
원한다면 우주 전체의 미래를 한꺼번에 스캔할 수도 있는 칼디르의 입장에서 볼 때는 루시드 군이 어느 행성에 처박혀 있고, 국방군이 공세로 전환할 경우 해당 행성의 루시드 군이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식의 지시(를 빙자한 예언)를 내리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대국을 보지 못하는 병사, 하사관, 초급장교의 시선으로 볼 때는 정말이지 엄청난 것이었다.
적의 움직임을 사단 단위도, 연대 단위도, 대대 단위도 아니고, 무려 분대 이하 단위로 맞춰버리는 데 누군들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덕분에 단 한 번도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지 않고 안정적으로 작전을 수행해나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녀의 지나치게 세세한 지시를 꾹 참고 그대로 따라주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칼디르로서는 자신이 내린 지시가 정확하게 맞아들어가면 갈수록, 자신의 지휘를 곧이곧대로 따라주는 이들의 숫자도 늘어날 거로 생각하며 이러한 소문을 굳이 틀어막지는 않았고, 다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녀답게도 자신에게 빌붙어 먹고 살려고 드는 사이비에 관해 보고를 받게 되면 ‘적절히 처리’해줄 뿐이었다.
사실 그녀가 가진 예지 능력의 정확도를 고려하면 ‘대예언자’로 취급받아도 넘치지는 않았고, 졸렬한 지휘를 보여주는 루시드 군의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유능한 이들도 대예언자라는 이름의 치트키를 등에 업은 국방군의 강공을 막아서지는 못했다.
루시드 제국군도 ‘일단은’ 일개 열강의 정규군인 이상 장교진에 아주 무능한 이들만 포진해 있을 리는 없었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그들의 대응 방식을 정확히 파악하고 내려온 국방군의 강공에 정면으로 노출된 대부분의 무능한 자들이 사르르 녹아버린 탓에 옆구리가 대놓고 드러난 상황을 어찌 타개해나갈 방도를 내놓을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응? 엥? 싸우려고 보니 우리 옆에서 우리 부대를 받쳐줘야 할 다른 부대들은 우리보다 먼저 전멸해버렸네? 우리의 기나긴 옆구리가 아틀란티스 군의 화력 앞에 정면으로 노출되어 버렸나? 그러면 우리는 존나 열심히 싸워도 살아남기 힘들겠네?
시발, 현장이 이 지랄로 돌아가는 데도 상부는 지원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가 겨우 이딴 취급이나 받으려고 군대에 끌려왔나? 끌려올 때는 황국신민, 듣도 보도 못한 신무기에 처맞아 뒤져서 나부라지고 나면 남의 자식...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
루시드 군으로서는 안 그래도 부족한 핵폭탄과 반물질 폭탄을 갖다가 퍼부어도 끄떡도 하지 않는 아틀라늄 병기의 존재로 인해 대예언자를 빼고 싸워도 답이 안 나올 판에, 자기네가 어떻게 움직여도 금세 반격을 가해오는 국방군 병력의 앞에서 한 번 절망하고, 칼디르의 이름을 전해 듣고는 두 번 절망했다.
“젠장... 곳곳에 태양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어째 아틀란티스 놈들의 군기와 국기밖에 보이지 않는구만. 이게 그 예언자로 이름난 자의 실력인가? 그래... 어차피 여기까지 몰린 거, 그자가 예언자가 맞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따져봐야 별 의미는 없겠지만... 상부로부터 지원은 온다든가?”
“아, 아니요... 상부에 지원 요청을 보낸 지 일주일은 됐지만... 답변은 받지 못햇습니다. 저... 외람되오나, 상부는 우리를 구원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지원요청을 받고도 무시해버린 게 아니라, 통신설비에 투자할 예산을 때먹는 바람에 지원요청을 접수조차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네. 흐흐, 이러나저러나 막장은 막장이로구만.”
루시드 군 중에서 그나마 유능하여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자기 부대를 어느 정도 유지는 하던 이들의 막사에서는 대략 이러한 대화가 오갔다. 이런 자들이 상부의 무관심과 무능한 아군 부대 속에서 버티다 못해 항복해버리고 나면 그 뒤에 있던 루시드 군의 운명은 더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었다.
칼디르 버프 덕분에 4천여 년의 역사 중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아틀란티스 국방군에 그나마 맞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초능력자들, 정예병들은 저 멀리 태양계에 처박혀서 총독부 요인들의 발바닥을 닦아주느라고 바쁘니 이렇게 나빠진 상황이 극적으로 호전될 일도 없었다.
“루시드 놈들의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든 간에 우리가 놈들을 봐줄 이유는 없지. 항복해주면 항복해주는 대로 포로로 잡으면 되고, 싸우려고 들면 싸우려고 드는 족족 죽여버리면 그만인 문제가 아니던가?”
국방군으로서는 때마침 원래 우리 땅이었던 곳을, 가증스러운 적군의 손아귀에서 되찾아온다는 상황 속에서 의기 충만하여 모든 곳에서 전력을 다해 상륙작전을 펼쳤고, 행성에 발을 내딛고 난 다음에도 조금도 쉬지 않고 진격하여 전차포와 레이저 건으로 적군의 몸을 무자비하게 찢어놨다.
곳곳에서 전차포에 터져나가고, 레이저 건에 찢겨나간 루시드 군의 육편이 튀어 올랐지만, 대다수의 국방군 장병은 루시드 군의 육편에 눈길을 주지 않고 오로지 전진하는 데만 집중하여 적 부대를 멋지게 섬멸했다. 마치 우리 집 앞마당을 나들이 나가는 것처럼 가벼운 전투였다.
‘우리나라를 침공한 적을 죽인다.’는 상황이 장병들로 하여금 무한한 살인의 경험을 정당화하고, PTSD에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앞만 보고 걸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시체 하나하나에서 일일이 죄책감을 느끼기에는 전장에 널려 있는 루시드 군의 시체가 너무 많기도 했고, 그동안 루시드 군이 쌓아온 죄업이 너무 많기도 했다.
루시드 군을 살해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 카이프가 준 장기간 휴가증조차 반납하고 칼디르를 따라온 싸이코들은 조금 다른 의미로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들에게 살인의 경험은 축복, 아니,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삶의 활력소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칼디르가 주도하는 작전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게 되자, 루시드 군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시간이 끝나감을 직감하고는 더더욱 적극적으로 루시드 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인의 경험을 갈구하는 이 미친놈들은 아마 칼디르가 공식적으로 작전이 종료되었음을 선포하더라도 ‘딱 몇 놈만 더 죽이고 끝내자!’고 소리치고도 남을 터였다.
“야야, 이놈들이 항복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이대로 죽여버려도 되지 않을까? 아직 이놈들의 존재를 사령관님께 보고하지도 않았으니, 우리만 입을 다물어버리면 아무도 모를 거야!”
“일리 있는 말이야. 우리끼리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이놈들을 우리 쌀로 먹여주고 우리 땅에서 재워주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아?”
“솔직히 사령관님께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봐주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칼디르가 공식적으로 작전이 끝났음을 선포한 뒤에도 몇몇 부대에서 살상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들은 루시드 군 포로를 죽일 적에 결코 평범하게 죽이지 않았는데, 루시드 군 포로의 살갗을 발라내거나 죽창으로 온몸을 꿰둟어버리는 등, 루시드 군이 아틀란티스 군의 포로를 죽이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처참히 죽여버렸다.
특히 LSSKA의 초기 구성원 후보로 뽑힌 이들일수록 이러한 성향이 강했는데, 이 부분은 군인들 사이의 PTSD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두뇌 나노 칩 이식을 의무화할 계획마저 가지고 있던 칼디르다운 인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싸이코들로만 부대를 구성하기 VS 두뇌 나노 칩을 박아서 싸이코로 만들어버리기... 과정은 다르지만, 도착지는 하나.
“무장 친위대의 초기 구성원 후보로 뽑힌 이들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칼디르로부터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극에 관한 정보를 넘겨받을 수 있었던 범혁은 매우 무덤덤하게 반응하였다. 그녀와 만나기 전까지 살인은커녕 폭력 사건조차 저질러본 적 없는 범혁이었지만, 무수히 많은 적군의 피를 손에 묻힌 지금도 죄책감을 내비치지 않는 걸 보니 확실히 정상인은 아니었다.
가칭 ‘아틀란티스 제국 슈츠슈타펠 무장 친위대’의 모티프인 나치 독일의 무장 SS는 실제 역사에서 전쟁범죄로 유명했던바, 골수 나치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범혁은 그들의 잔혹 행위가 ‘고오증’에도 맞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사후처리까지 저렇게 ‘말끔하게’ 해놓는 이들을 언제까지 임시 편제로 묶어놓을 생각이지?”
범혁은 LSSKA의 부대원들이 전투를 끝마친 후에 잡아온 포로들을 죄다 죽여버리고 깊숙이 파묻어버리는 걸 ‘사후처리’랍시고 옹호해주고는, 태평한 말투로 칼디르에게 물어보았고 그녀 역시 매우 평탄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무장 친위대의 정식 건군 선언이라면... 우리의 손으로 지구를 해방한 뒤로 미루어도 늦지는 않을 겁니다.”
“아, 하기는 지금 정식으로 건군 선언을 하기보다는 그편이 더 명분이 서긴 하겠네. 아직은 국민들의 앞에서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큼 대단한 승리를 거두어들이지도 못했으니까 말이지.”
‘칼디르 집단’이라는 이름의 임시 편제로 묶인 이들의 정식 편제화. 이는 칼디르 일당이 목표로 세운 것 중에서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이는 절대로 가볍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칼디르의 기준에 따르면 이번에 카이프의 명을 받들어 거두어들인 성과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이었다. 모든 이의 앞에서 당당히 대선 출마 선언을 하려면 이보다 수십 수백 배는 더 큰 전장에서 승리를 거머쥘 필요가 있었고, 지금 이 순간은 이를 위해 부대원들과 신뢰를 쌓아나가는 중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